
( 1 )
황륜대제.
키보토스의 모든 학원들이 참가하는, 최대의 축제이자 대운동회.
그것을 주최하는 밀레니엄의 구석진 대기실에, 우리 아리우스 스쿼드는 모여 있었습니다.
"헤헤... 옛날 사람들은, 정말로 이런 팬티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수업을 받았던 건가요. 수치스럽네요... 고통스럽네요... 하지만,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겠죠..."
히요리가 자꾸만 엉덩이로 파고드는 블루머를 고쳐입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히요리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지금 블루머에 체육복 차림으로 어색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황륜대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 곳에 모였습니다.
"불편해도 참아라. 완벽한 위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다. 알겠지, 이번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리우스 스쿼드라는 걸 들키지 않는 것이다."
사오리는 팔짱을 끼고 근엄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블루머에 흰 체육복 차림인데다,
목덜미가 시원하게 드러나도록 포니테일까지 하고 있어서,
그렇게 진지하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사키, 네 복장은 위험해. 최대한 일반 참가자와 같은 복장을 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체육복은 뭐지?"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어? 난 그 바보같은 옷을 입고 웃음거리가 되기 싫은데."
창틀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던 미사키가 대답했습니다.
미사키는 혼자 블루머 대신 겨울 체육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맨살이 드러나지 않는 점은 부러웠지만, 굉장히 더워 보였습니다.
미사키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은 늘 있던 일이었으므로, 사오리는 한숨을 내쉬고 브리핑을 이어갔습니다.
"조금쯤은 다들 공주를 닮아 주었으면 좋을 텐데... 공주를 봐라. 완벽하게 일반적인 여고생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 않나."
"평소에 입던 옷도 노출도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부끄럽지 않았어."
사실 조금 부끄러웠지만, 힘내서 대답했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겠다."
곧 사오리는 칠판을 두들기며, 우리가 황륜대제에 참가하는 목적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목표! 그것은 '아리우스 학원'도 평화롭게 황륜대제에 참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서, 아리우스 학원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입지를 다져놓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 때 듣지 않았나. 선생에게의 보은이다. 선생은 마담을 무찌른 다음, 언젠가 아리우스를 다시 키보토스의 제도권에 편입시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아리우스의 이미지는 최악.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가 황륜대제에서 활약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듯하다."
"...납득이 잘 안 되는데."
미사키는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사오리는 일축하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리우스 출신의 평범한 학생들로 신분이 위조되어 있는 상태다. 작전 중에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녔으므로, 위조 신분을 들킬 가능성은 적지만, 아무튼 정체를 들켜서 선생을 곤란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헤헤.. 그래서, 정확히 뭘 해야 하는 건가요?"
"황륜대제의 여러 종목들에 참가해서, 성과를 남기고, 사진을 찍어 선생에게 보내면 된다."
"그럼... 저, '빵 먹기 경주'에도 참가할 수 있는 건가요?"
"음? 히요리, 경주를 좋아했나?"
"그것보다는, 빵을 먹는 걸 좋아하는데요... 아아, 잡지에서 봤어요. 빵 먹기 경주, 공짜로 단팥빵을 두 개나 먹을 수 있는 꿈의 경주... 그걸 해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두 개나?"
자신만의 세계로 떠난 히요리를 바라보면서, 저는 회상에 빠졌습니다.
갑자기 선생님에게, 황륜대제 참가를 권유받은 날의 회상에.
( 2 )
폭우가 쏟아지던 밤이었습니다.
우리 넷은 정처없이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장마 때문에 임시 거처가 허물어져서, 몸을 뉘일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숙을 할 곳조차 찾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있을 때, 제 낡은 스마트폰이 울렸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의 메시지였습니다.
"뭐지?"
"...선생님이야.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아츠코는 괜찮냐고 메시지가 왔는데."
사오리는 우뚝 멈춰섰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폭우가 너무 심하니까, 정 잘 곳이 없으면 샬레에서 하룻밤 묵고 가라는데. 전부 다."
"어쩔까? 리더."
"...거절해야겠지. 우리는 수배자다. 수배자가 선생의 집에 드나들었다간, 어떤 오해를 살 지 몰라. 공주는 어떻게 생각하나."
"동감이야. 그럼,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할게."
그렇게 말하고 문자를 보내려고 했던 때였습니다.
저는 이미 제 손에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새에, 히요리가 스마트폰을 슬쩍해서 답신을 보냈던 것이었습니다.
- 선생님, 지금 비 때문에 비맞은 생쥐꼴이 되어서 저체온증으로 죽어버릴 것 같아요. 꼭 갈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난방 최대로 하고, 가능하시면 우롱차도 따뜻하게 준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헤헤...
"히요리!"
저는 얼굴이 빨개져서 스마트폰을 다시 빼앗았습니다.
"히요리! 더 이상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했잖나!"
"그, 그치만, 춥고 배고프단 말이에요...흐에에에엥..."
사오리의 다그침에 히요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울음을 못 이겨서, 우리 모두는 비 맞은 생쥐꼴로 샬레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선생. 멋대로 떼를 쓰는 바람에..."
"아냐, 아냐. 괜찮아. 추운데 빨리 들어와서 목욕부터 해."
선생님은 다정하게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사오리는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방 안은 후끈후끈하게 느껴질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거실의 탁상에는 우롱차도 놓여 있었습니다.
"으으... 목욕에 이어 이렇게 우유까지 받아마셔버리다니... 이젠 정말 끝장이에요... 그치만 감사해요. 헤헤..."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목욕을 마치고 거실로 나왔을 때,
히요리는 우유를 두 손으로 쥐고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습니다.
제 몫의 우롱차와 우유도 책상 한 켠에 놓여 있었습니다.
알맞은 온도로 데운 우유는 고소하고 달콤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날씨에 밖을 헤매고 다니던 이유는 뭐야? 사오리가 다시 합류한 이유는 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물어보았습니다.
"아아, 별 이유는 아니다. 곧 황륜대제가 열리는 건 알고 있겠지, 선생."
"당연하지. 그 실행위원회 일도 내가 맡고 있는걸."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그 대회의 주최에 온 신경이 쏠려 있어서, 지금 키보토스의 곳곳은 치안 공백 상태다. 그 틈을 타서 물자를 수거, 확보하기 위해 합동 작전을 시행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반문했습니다.
"그러니까, 축제 기간을 틈타서 폐자재나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다고...?"
"담백하게 표현하면 그렇게 되겠지."
"그렇지만 2년에 한 번 있는 황륜대제인데, 구경가거나 하지 않는 거니?"
"그런 팔자 좋은 일은 우리에겐 무리다."
"그렇지만, 모처럼 키보토스의 모든 학생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즐기는 축제인데..."
"괜찮다. 덕분에 겨울을 지새기에 충분할 만큼의 자재를 모았으니까."
사오리는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트북을 키더니 메신저로 누구와 긴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도울 것이 없나 헤매다가, 밀린 설거지와 세탁을 도와드렸습니다.
마지막 접시를 닦아서 찬장에 내려놓을 때쯤, 선생님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너희들, 내가 꼭 부탁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그 부탁이, '아리우스 학원 명의로 황륜대제에 참가해주었으면 한다'는 의뢰였습니다.
( 3 )
그렇게 참가하게 된 황륜대제였지만, 영 순탄치 않았습니다.
의욕적으로 나선 것은 사오리뿐, 나머지 스쿼드 멤버들은 시큰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참가한 종목인 장대 넘어뜨리기에서, 미사키는 바로 기권.
히요리는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치이더니 쓰러져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학생이 적어 위태했던 우리의 장대는 순식간에 표적이 되었고,
사오리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공주! 괜찮나?"
마지막까지 장대를 지키다가, 장대와 함께 쓰러진 제게 사오리는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응, 괜찮아."
"상처는 없나? 아픈 곳은?"
"없어. 아. 살짝 생채기가..."
사오리의 손을 잡고 일어났을 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머, 부상자가 발생한 모양이군요. 그럼 구호실에서 치료를 받으셔야 해요."
체육복에 매단 십자가 모양의 장식을 보아하니, 트리니티 학생.
그 중에서도 임원인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처럼 황륜대제 실행위원회 소속인지, 실행위원회의 완장 역시 차고 있었습니다.
"잠시 이 아이를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그 임원은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제 팔을 잡아끌었습니다.
저는 엉거주춤 그 손에 이끌려 구호품이 가득한 천막에 들어갔습니다.
저를 앉힌 그녀는, 쓰라린 소독약을 생채기에 무성의하게 발라 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아리우스 학생이군요? 선생님이 특별히 참가를 요청했다는."
"...응."
일단은 존댓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선 경멸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신경쓰이는 것이 있어서, 저는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특별히 참가를 요청했다니?"
"어머, 모르셨군요. 아무리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열리는 황륜대제라지만, 전범 집단인 여러분의 학교 따위가 참가하는 게 쉽게 허락될 리가 없지요."
"그런..."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고개를 숙이고, 여러가지 대가를 치른 덕분에 여러분이 이 운동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거랍니다."
저는 고개를 숙이고 우물거렸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저희를 황륜대제에 참가시키고 싶어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임원은 생채기가 난 자리에 거칠게 반창고를 붙이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대체 얼마나 대단한 학생들이길래 선생님께서 직접 신경을 쓰시나 해서, 알아보러 왔는데... 뭐, 늘 그렇듯이, 선생님이 동정을 베풀었던 모양이군요.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고."
"...치료가 끝났으면, 가 볼게."
"감사하다는 말도 안 하는 건가요? 이름 정도는 알려주는 게 예의일 텐데요."
"그 쪽도 이름, 안 말했잖아."
임원은 그 말에 푸훗, 하고 입을 가리며 웃었습니다.
"아, 그랬었죠. 뭐, 됐어요. 그럼 별명으로 부르면 될 뿐이니까요. 뭐라더라, 당신한테 '공주'라고 그랬었죠?"
그 임원은 비웃는 듯한 시선으로, 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습니다.
너 따위가 무슨 공주냐, 소꿉장난하지 마라, 그런 의도가 말 없이도 전해지는 눈빛이었습니다.
"모쪼록 황륜대제를 즐기시기를, 거지 공주님."
그 말을 끝으로, 저는 천막에서 나왔습니다.
( 4 )
"공주, 괜찮나?"
천막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오리가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응. 별 문제 없었어."
"그렇다기엔 안색이 어두운데.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가감없이 말해주었으면 한다."
사오리는 제 어깨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히요리와 미사키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저는 담담하게 방금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런가. 트리니티의 개가 그런 말을 했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모두의 얼굴은 변해 있었습니다.
약간의 분노와, 진지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이런 놀이 따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딱히 제대로 할 생각은 없었는데."
미사키는 지금까지 쭉 입고 있던 겨울 체육복을 벗어, 허리에 묶으면서 말했습니다.
"...동감이에요. 빵 먹기 경주를 위해서, 에너지를 아껴 두려고 그랬는데..."
히요리도 결연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무래도 방금 제가 들려준 이야기가, 두 사람이 진지해지도록 만들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일 분개한 것은, 늘 냉정했던 사오리 언니였습니다.
"작전의 보조 목표를 새로 설정한다. 우리의 목표는, 트리니티가 종합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알겠나. 트리니티가 참가하는 종목에 최대한 참가해서, 놈들의 발목을 잡는다. 아니, 쳐부순다."
"알겠어, 리더."
"아, 아까, 황륜대제 정보 잡지를 받아왔는데요. 여기에 관련 정보가 적혀 있어요. 헤헤..."
갑자기 돌변한 세 사람의 태도에 놀라서, 저는 더듬거리면서 말했습니다.
"잠, 잠깐. 모두 잊어버린 거야?"
"응? 뭔가 의견이 있나, 공주?"
"절대로 우리가 아리우스 스쿼드인 걸 들켜서는 안 된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트리니티처럼 커다란 학원의 발목을 잡으면, 들킬 수도..."
그 말에 사오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것보다, 지금은 모욕당한 우리의 공주의 명예를 되찾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한 말, 맞는 말이잖아. 나는, 딱히, 공주 같은 게..."
우물거리는 내게, 사오리는 진지한 눈동자로 말했습니다.
"공주. 아리우스의 기원에 대해서 알고 있나."
"...응."
"아리우스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리인 삼위일체를 거부하고 나선 유일한 분파다. 누군가를 구원하는 사람이 굳이 성자나 성령일 필요는 없다. 글 한 줄 읽을 줄 모르는 어린아이라도, 그 영이 맑고 깨끗하다면, 다른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노라고 주장했던 분파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온 근본이고, 우리의 신념이다."
"...알아. 몇 번이나 얘기했었잖아."
"공주는 그 신념의 증거다. 선조의 선조 때부터 모진 세월에 맞서 지켜온 긍지의 권화다. 그런 공주가 모욕받았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모욕당한 것과 같다. 부디 우리가 공주의 기사가 되어, 그 명예를 되찾도록 허락해주길 바란다."
그 너무도 진지한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응. 알았어."
공주라. 저는 정말로 공주가 맞는 걸까요.
로열 블러드로, 공주로 태어나서 좋은 일은 이 사람들을 만난 것 정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렇게 모두가 저를 소중하게 대해줄 때마다, 기쁘면서도 어쩐지 서글펐습니다.
( 5 )
그 다음부터, 스쿼드의 멤버들은 쾌진격을 이어갔습니다.
"저 녀석, 정의실현부의 정예들보다도 저격의 정확도가 높잖아? 만점이야!"
"어디서 저런 녀석이 나타난 거지?"
"헤헤... 죄송하지만, 1등 상품인 조명 로봇 대신에 장려상의 통조림을 받으면 안 될까요? 어차피, 전기세도 못 내는 형편이라..."
"예? 물론 가능합니다만..."
"아! 그럼 기왕 주시는 김에 그 도시락도 주시면 안 될까요?"
히요리는 장거리 사격에 출전해서 1등을 차지하고,
통조림과 도시락을 한아름 받아서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좋아, 박 터뜨리기의 배당은 1대 4. 이건 확실하게 트리니티의 우세..."
"아니, 저 녀석은 뭐야? 축제용 미사일을 저렇게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16발 전탄 명중! 완파! 역대 최단 기록이다!"
미사키는 박 터뜨리기에 용병으로 출전해서,
페로로 모양의 박을 터뜨리고 비산하는 폭염을 배경 삼아 승리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주목을 받은 것은 사오리였습니다.
"저 언니, 멋지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단체전에 개인으로 출전해서 결승까지 올라왔는데."
"어? 기권? 트리니티를 꺾었으니 됐다고?"
언니는 당돌하게도 단체전인 피구에 혼자 출전해서,
4강까지 올라가 트리니티를 꺾고 기권했습니다.
혼자서 열 명이 넘는 적을 거꾸러뜨리고 체육복으로 땀을 닦는 그 모습은,
밀레니엄 종합운동장의 가장 큰 스크린에서 중계되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정도였습니다.
"아리우스 대표로 출전한 선수!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음, 그, 저... 평범한 여고생이다."
그제서야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는 지침이 떠올랐는지,
사오리는 한참이나 신음하더니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다행히도 개그로 받아들여주어서 사방에선 폭소가 터져나왔지만,
저는 위태로움을 느꼈습니다.
다른 스쿼드의 멤버들은 명백히 폭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정체를 들키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습니다.
"헤에, 최종 특별전은 '물건 빌리기 경주'네요. 실행위원회에서 한 명씩 참가한다는데, 여기서 우승하면 고급 뷔페 초대권을 준다는 모양인데요..."
"뷔페? 그게 뭐지?"
"모, 몰라요. 엄청 비싼 식당 아닐까요? 가서 돈을 내고 먹는것만으로도 초대권이 필요할 정도로..."
이윽고 점심 시간.
우리는 포플러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히요리가 받아온 도시락을 나눠 먹고 있었습니다.
히요리와 다른 멤버들이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는 화장실을 핑계로 슬쩍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분수에 혼자 앉아 있던 선생님에게 찾아가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우리 모두, 실격한 걸로 해 줘."
( 6 )
당황하는 선생님에게, 저는 차근차근히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트리니티 임원과 있었던 일과, 다른 스쿼드 멤버들이 폭주하게 된 경위까지 전부.
"그러니까, 놀이는 여기서 끝. 내가 멈춰줘야 해. 괜찮지? 아리우스의 이름을 알린다는 성과는, 이미 충분히 달성했으니까."
"그렇지만..."
"여기서 들키면 힘들어지는 건 선생님이잖아. 우리 때문에 선생님이 곤란해지면, 난 많이 슬플 거야."
그 말에 선생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진지한데.
그리고, 선생님은 저를 곁에 앉히고 물었습니다.
"아츠코는 기쁘지 않은 거야?"
"기뻐? 뭐가?"
"공주를 지키기 위해서, 다들 열심히 싸워주고 있잖아."
선생님도 그 얘기인 걸까요.
저는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철쭉으로 시선을 돌리고서, 자그맣게 중얼거렸습니다.
"잘 모르겠어. 나는 내가 공주라고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황륜대제는 즐거웠어?"
"즐겁다니, 왜? 여기는 임무를 하러 온 거잖아."
선생님의 질문의 속뜻을 알 수가 없어서, 저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답답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때였습니다.
"아, 정말로!"
관목림에서, 보라색 트윈테일을 한 여학생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웅크려 숨어서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명찰에는, '하야세 유우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나요! 선생님한테 자초지종은 다 들었지만, 선생님은 딱히 진짜로 아리우스의 제도권 편입이니 이미지 개선이니, 그런 걸 생각한 게 아니라구요."
"...어?"
참다 못해 말한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저는 멍하니 대답했습니다.
유우카는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모든 키보토스의 학생들이 다 황륜대제를 즐기고 있는데, 당신들만 빠지면 속상하다.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생각해서 억지를 써서 참가시킨 거라구요. 그저 축제를 즐겨줬으면 해서. 그렇죠?"
"그게..."
"그렇죠?"
"예. 맞습니다."
저는 눈을 껌뻑거렸습니다.
그 유우카라는 밀레니엄 학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선생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정체를 들키는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세미나에서 뒷수습을 해주기로 했으니까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기한테 총을 쏜 사람들한테 그렇게까지 해주나 싶었지만... 뭐, 그게 선생님이니까요."
"그래. 아츠코. 아츠코는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그냥 마음껏 황륜대제를 즐기고 오면 돼."
"즐긴다니... 내가? 하지만."
"이미 다른 세 사람은 충분히 황륜대제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걸."
선생님은 그 말과 함께, 새하얀 태블릿을 꺼내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사오리가 보낸, 승리의 순간을 찍은 사진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진심으로 활짝 웃는 사오리가, 히요리가, 그리고 미사키가 찍혀 있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구김살 없는 미소들이었습니다.
"아츠코는 착하니까, 공주라는 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짐을 짊어지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봐. 덕분에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다면, 공주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아?"
선생님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사오리의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아츠코는 스쿼드의 막내였지. 막내를 부를 때에는 원래 우리 공주님이라고 하잖아. 그냥 소중한 가족이 바깥에서 괴롭힘을 당해서, 지켜 주고 싶었던 거야. 그 이상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런 걸까.
저는 자그맣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귓가에 퉁명스럽지만, 어딘가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유우카라는 학생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친구들과 즐기고 와요. 한 번 뿐인 황륜대제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유우카의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 쓰다듬었습니다.
솔직하지 못한 성격인지, 유우카는 팔짱을 끼고 말했습니다.
"따, 딱히, 선생님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 건 아니니까! 황륜대제의 실행위원회로서, 그냥 학생들이 충분히 운동회를 즐겨주었으면 해서 그런 거니까요!"
"알았어, 알았어."
"그럼, 선생님. 다시 가 볼게. 고마웠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저는 분수를 빠져나와 돌아왔습니다.
슬쩍 뒤돌아보니, 선생님과 유우카가 아직도 티격태격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 7 )
"어머, 누가 꼬리치러 왔나 했더니, 그 공주님이셨군요?"
하지만 그런 유쾌한 만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쿼드에게로 돌아가는 길에, 또 그 임원을 만났습니다.
그녀 역시 몰래 숨어서 회화를 엿듣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꼬리치다니, 무슨 소리야."
"선생님한테 의뢰를 받은 모양이죠? 우리의 종합우승을 저지해달라고."
그 트리니티 임원은 길다란 머리를 거만하게 넘기더니,
혼자 무언가를 넘겨짚고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의뢰?"
"시치미를 뗄 생각이군요. 이미 들었겠지만, 선생님은 당신들을 참석시키는 대가로 조건을 받았어요. 트리니티가 종합우승을 하면, 제가 선생님을 우리 분파의 고문으로 모시기로 했지요."
"고문이라니?"
"후후, 상임 고문이에요. 선생님께서 우리 분파의 고문이 되시면, 늘 저희 분파의 건물에서 저와 함께 있어야 하죠."
아까 말했던 대가라는 게 그건가.
저는 조용히 되물었습니다.
"당신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거야?"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아뇨, 딱히. 얼굴도 제 취향이 아니고, 쓰잘데기없이 고지식하고, 재미없어요. 마음을 다 터놓고 반려로 삼을 상대는 아니죠."
"뭐?"
"하지만, 유혹할 가치는 있으니까요. 키보토스 최고의 권력자니까. 몸을 바쳐서라도."
그 말에, 저는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그 임원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임원은 실눈으로 미소지으며 말할 뿐이었습니다.
"알겠나요? 그 정도 각오도 없다면, 괜히 꼬리치는 건 그만두고 꺼지라는 거예요."
그 임원은 그것으로 기를 꺾었다고 생각했는지,
코웃음을 치고는 멀어져갔습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저 녀석만큼은 우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 8 )
그 후 시간은 흘러, 어느새 마지막 경기만이 남았습니다.
모두가 노력한 덕분에, 트리니티의 점수를 많이 깎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1등은 밀레니엄. 2등이 게헨나, 그리고 3등이 트리니티였습니다.
가장 큰 점수가 걸린 이 경기.
'물건 빌려오기 경주'에서 트리니티가 승리하지만 않는다면,
트리니티의 종합우승은 저지되는 셈이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 황륜대제의 막을 내릴 마지막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관람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실행위원회의 서기, 우시오 노아라고 해요!"
저는 스쿼드 멤버들과 함께 관중석에 앉아서, 초조하게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물건 빌려오기 경주'에는, 실행위원회의 임원들이 각 학교의 대표로 출전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히 선생님께서도 출전하십니다! 아쉽게 됐네요, 유우카?"
"뭐가?"
"저 종이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뽑았을 때 데려올 사람이 없어졌잖아요?"
"노, 노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놀리는 건 그만둬!"
출발선에 선 주자들 가운데에는, 유우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북한 얼굴도 있었습니다.
트리니티의 임원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 만담에 끼어들었습니다.
"어머, 그건 저도 좀 유감인데요."
그 임원이, 멋쩍어하는 선생님의 팔에 가슴을 들이미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증스러웠습니다.
우승을 하는 사람은, 저 트리니티 임원이 아니라, 저 유우카라는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응원했습니다.
"자 그럼, 주자들 모두 출발선에. 3, 2, 1. 출발!"
총이 울리고, 주자들은 일제히 뛰쳐나갔습니다.
괜히 대표로 출전한 것이 아닌지, 선두는 트리니티 임원이었습니다.
쪽지가 들어있는 상자에 제일 먼저 도착한 그녀는, 내용을 읽자마자 게헨나 관중석 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 다음으로 도착한 것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쪽지의 내용을 읽은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뭐가 나온 걸까.
구하기 쉬운 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제 시선이 선생님의 시선과 맞닿았습니다.
"바, 방금, 선생님이 공주님을 보지 않았나요?"
히요리가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제 착각이 아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곧바로 제 쪽으로 달려와서, 제 손을 움켜쥐었습니다.
"미안, 아츠코. 같이 달려줄래?"
얼떨결에 손을 붙잡혀 일어난 저는 사오리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녀 역시 놀란 표정이었지만, 곧 훗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녀와라, 공주. 저 녀석의 마지막 숨통은 공주의 손으로 쳐부숴라."
사오리다운 응원에 고개를 끄덕이고, 저는 관중석을 벗어나 트랙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 9 )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뱃고동처럼,
관중의 응원 소리가 아스라이 귓전을 울렸습니다.
손을 맞잡고,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한 우리는 금세 선두 그룹에 도착했습니다.
여전히 1등은 그 트리니티의 임원이었습니다.
힘이 다한 것인지, 아니면 힘을 아끼고 있는 것인지.
처음엔 압도적이었던 그녀와의 간격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러너스 하이라는 걸까요.
첫 번째 반환점을 돌았을 때, 갑자기 세상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후덥지근한 땀도, 미지근한 바람도, 더 이상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느리게 재생한 비디오처럼 멍한 세상을 비집고, 선명한 응원이 들려왔습니다.
"지지 마, 공주!"
"고통스러워도 힘내는 거에요!"
"...힘내."
스쿼드의 응원이었습니다.
그 수줍은 응원은 범선의 돛을 밀어내는 순풍처럼 제 다리에 힘을 더해주어서,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나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어느새, 저희는 그 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습니다.
"선두 그룹이 반환점을 돌파했습니다! 1등은 트리니티와 선생님의 경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 트리니티, 갑자기 치고 나갑니다! 힘을 아끼고 있었던 건가요!"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 임원은 갑자기 속도를 더해 치고나갔습니다.
아무래도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기를 꺾을 셈이었던 듯싶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 작전은 먹혀들어갔습니다.
갑자기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 거리에 초조해진 저는, 발을 헛디뎠고,
성대하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츠코! 괜찮아?"
"괜찮아, 선생님. 빨리, 다시 뛰자."
얼굴에 묻은 진흙을 슥 닦아내고, 저는 다시 다리에 힘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이었습니다.
이미 임원은 그 사이에 저만치 멀어져 있었습니다.
"풋."
어지간히 성격이 나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넘어져서 더러워진 제 몰골을 보고 비릿하게 웃었습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습니다.
"..아."
그 비웃음을 보자, 아까 저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알겠나요? 그 정도 각오도 없다면, 괜히 꼬리치는 건 그만두고 꺼지라는 거예요.'
...여기서 지면, 선생님은 강제로 저 여자의 고문을 맡아서, 매일 만나야 하는 건가.
자기를 이용할 생각인줄도 모르고.
우리들마저 용서해버리는 선생님이니까, 바보처럼 착한 사람이니까.
어쩌면 넘어가버릴지도 모르지.
그건, 싫은데.
"아츠코? 무리하지 마!"
...선생님을, 지켜야 해.
지고 싶지 않아.
저 녀석에게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선생님의 걱정을 뒤로 하고, 저는 다시 각력을 더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심장과 삐걱거리는 다리를 채찍질해서, 속도를 올렸습니다.
"아! 선생님 조! 다시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거리가 놀랍도록 빠르게 좁혀지고 있습니다! 이제 차이는 몸 하나! 아니, 머리 하나! 이제 완전히 동률입니다!"
어느새 하얀 결승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퍼트를 끊으면서, 저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너한테는, 안 져!"
툭,
가슴이 결승선을 끊는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물에 들어갔다 빠져나온 것처럼, 귀가 멍했습니다.
이윽고 운동장 가득 울려퍼진 커다란 함성이 저를 정신차리게 만들었습니다.
"1등, 선생님! 2등, 트리니티! 3등, 밀레니엄! 이것으로 황륜대제의 최종 순위가 결정되었습니다!"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아서, 저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이긴 거야?"
선생님은 대견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응."
가슴 밑바닥에서 어떤 감정이 부글거렸습니다.
이런 걸 기쁨이나, 환희라고 하는 걸까요.
저는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와락 안겨들었습니다.
"역시, 할 땐 하잖아."
"공주! 대단했다!"
"저는 공주님이 해낼 줄 알았어요! 헤헤..."
관중석에서부터 달려온 스쿼드 멤버들이 우리를 덮친 것은 그와 동시였습니다.
선생님은 와락 안겨든 여러 명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넘어졌습니다.
황륜대제의 드론이 사진을 찍은 것은 그 때였습니다.
그 사진에 찍힌, 진흙투성이인 저는,
제가 보기에도,
정말로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 10 )
황륜대제가 폐막하고, 일주일 후.
- 이게 그날 찍은 사진이야.
저는 그 사진을 선생님에게 모모톡으로 전송하면서, 짓궂은 말을 더했습니다.
- 맨다리가 드러나는 여자애들 여럿한테, 선생님이 깔아뭉개지는 사진이야. 이런 사진을 받으니까 좋아?
- 아츠코,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범죄자 같잖니.
당황한 듯한 선생님의 문자에, 저는 입을 가리고 후훗 하고 웃었습니다.
어쩐지, 이렇게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있잖아, 선생님.
- 응?
- 쪽지에 적혀 있던 거, 뭐였어?
- 어?
선생님이 곤란해하는 것이, 화면 너머로도 느껴졌습니다.
- 안 말해줄 거야?
- 글쎄, 아츠코한테 말하기는 좀 부끄러운데.
- 안 말해주면, '좋아하는 사람' 이었다고 생각할게. 선생님은 자기보다 훨씬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나쁜 어른이었구나.
그 당돌한 메시지에, 선생님은 당황한 스탬프를 보낼 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 그럼, 내일 고급 뷔페 식사, 기대하고 있을게.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크게 기대하고 있어.
- 맡겨 둬!
오늘의 회화를 마무리하고, 저는 핸드폰을 꼭 끌어안은 채 매트리스 위에서 몸을 웅크렸습니다.
선생님은 1등 상품으로 받은 식사권으로, 우리 모두를 뷔페에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단지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할 뿐.
그 뿐인데도, 어쩐지 내일이 설레고 기다려졌습니다.
"...그 쪽지에 적혀 있던 거."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몰래 그 쪽지를 봤기 때문이지요.
그 쪽지에는, 분명히, '공주'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갑자기 얼굴이 확 뜨거워져서, 저는 스마트폰을 꼭 끌어안고 뒹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저는 그 폐허를 벗어난 이래 처음으로,
공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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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읽어 말어

블갤의 문신

너무 재밌다
ㄹㅇ 재밌노 필력 좋다
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