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카 「…응」
미카 「고마워.」
미카 「항상 날 지켜봐줘서 고마워.」
사오리 「!」
사오리 「열어주는 건가?」
미카 「나, 힘낼게.」
미카 「…사오리도, 그러니까 힘내야 해.」
미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 밖에 없지만…」
미카 「모두를 위해서, 기도할게.」
날개 「―! ――――!! ―――――――!!!」
카야 「히이야아악! 저게 또 난사를!」
히요리 「어, 어쩌죠… 괴롭네요… 망했네요… 비참하게 게임 오버네요…」
미사키 「미안.」
카야 「미안? 지금 미안이라고 했죠? 그러니까 안 한다고 했잖아요!」
카야 「이, 이제 끝장이야!」
날개 「―――!!! ――!! ―! ―…」
카야 「어?!」
카야 「방금, 날개랑 사자상이 빛났죠?」
카야 「그때 그 자전거랑 똑같이…」
히요리 「날개가 솜사탕처럼 녹아내려서 사라져가요… 사, 산 건가? 산 거죠?」
미사키 「응. 리더가 해낸 모양이야. 작전 종료다.」
카야 「다… 다행이다아…」
아츠코 「…아.」
아츠코 「이럴 때가 아니야! 사오리의 부상, 심각해 보였어!」
아츠코 「어서 가서 조치를 취해야!」
미사키 「안 그래도 가고 있어. 무너진 계단을 뛰어넘어야 하니까 조심해.」
아츠코 「후우…흐우… 여, 여긴가.」
아츠코 「삿쨩!!!」
미카 「…」
사오리 「…」
히요리 「뭐, 뭐죠? 언니랑 이 사람, 어깨를 기댄 채 잠들어 있는데요?」
미사키 「아마도 서로 업어주려다가 혼절해버린 모양인데.」
미사키 「한 명은 단식이고, 한 명은 중상인데… 나 참. 환자 둘이서 부대끼니 이 꼴이 나지.」
아츠코 「풋.」
미사키 「…?」
미사키 「공주, 방금 웃었어?」
아츠코 「응. 왠지 흐뭇해서.」
히요리 「에헤헤… 공주가 웃는 거, 오랜만에 봐서 좋네요!」
아츠코 「자, 그럼 이 잠꾸러기 두 명을 데리고 돌아가자.」
아츠코 「…선생님. 이 정도면,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부탁…」
아츠코 「지킨 거, 맞겠지?」
그림자 「질리지도 않고 또 기어오르는군.」
그림자 「그 사구는 사람의 손 따위론 기어오를 수 없는 곳이다.」
그림자 「얼마나 더 추락해야 포기할 텐가?」
선생 「시끄러.」
그림자 「나만은 너를 안다.」
그림자 「누군가는 너의 무가치한 노역을 용기나 의지라며 칭찬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림자 「나를 속일 수는 없다.」
선생 「칭찬 따위, 듣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림자 「너는 실패를 이겨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 「그저 실패가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 뿐.」
선생 「…」
선생 「윽, 으아아아악!」
그림자 「또 추락해라. 저 나락의 밑바닥까지…」
그림자 「…?」
그림자 「날개?」
선생 「으아아아아아, 으, 응?」
선생 「…사구의 정상이다.」
선생 「방금, 어떤 부드러운 무언가가, 날 저 위로 밀어올려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림자 「또 그건가.」
그림자 「쓸데없는 짓을.」
선생 「뭐야?」
선생 「너는 알고 있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그림자 「또 요행으로 목숨을 건졌군.」
그림자 「이제 마지막 장해가 남았다.」
선생 「알려줘. 혹시, 바깥의 누군가가 도움을 주고 있는 거야? 아까 그 자전거도 그렇고…」
그림자 「알 필요 없다.」
그림자 「물어볼 시간이 있으면 움직여라.」
그림자 「어차피 마지막 시련에선, 어떤 도움도 결코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카야 「으윽, 허리야…」
세이아 「요통인가? 앉아만 있으면 허리 건강이 나빠진다네. 운동을 좀 하도록 하게.」
카야 「밧줄에 묶여서 그런 거잖아요!」
나기사 「자, 자. 진정하세요, 실장님.」
나기사 「그래서, 사자상의 의식은 확실하게 이루어졌나요?」
카야 「그거야 당연하죠!」
카야 「이제 이 삼두사자상의 머리 두 개는 끝났고, 마지막 하나만 남았어요.」
세이아 「다행이군. 그럼 마지막 의식의 대상자는 누군가?」
카야 「후후,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야죠.」
카야 「자, 이렇게 사자상을 꺼내서.. 비추면… 제 이름이랑 같이 다음 학생의 이름이…」
카야 「…어라?」
나기사 「왜 그러시죠?」
카야 「어?」
카야 「워, 원래는, 이러면 알아서 다음 학생의 이름이 떠올랐는데…」
카야 「제 이름밖에 안 떠오르는데요?」
그림자 「드디어 당도했군.」
선생 「이건… 하늘?」
선생 「밤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그림자 「자세히 보아라.」
선생 「…아.」
선생 「엷은 호수… 인가.」
선생 「호숫물이 지평 끝까지 들어차서, 하늘을 가득 반사하고 있는 거구나.」
선생 「(연보랏빛 성운이 적란운처럼 수직으로 치솟아 별빛을 흩뿌린 밤하늘…)」
선생 「(수면에 비쳐서, 세상이 하나의 은하수로 연결된 것만 같다.)」
선생 「어디서 하늘이 끝나고, 어디서 세상이 시작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림자 「그래. 이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거울. 소금 호수다.」
선생 「이것도 시련인 거야? 너무 아름다운데…」
그림자 「이 위에 네가 발을 들이미는 순간, 이것은 시련이 된다.」
선생 「…뭐?」
그림자 「거울의 가장 끔찍한 점은, 성교와 마찬가지로 나의 숫자를 증가시키는 데에 있다…」
그림자 「…비오이 카사레스는 그런 잠언을 남겼다.」
그림자 「이 위에서 너는 매 발자국마다 장엄한 우주를, 그리고 초라한 너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림자 「그것을 버텨내고 이 호수를 완전히 가로지를 수 있다면, 너의 승리다.」
선생 「…」
그림자 「두렵다면, 이 자리에서 포기해도 좋다.」
선생 「이제와서 두려움 같은 게 있을 것 같아?」
선생 「가자.」
카야 「후우. 다시 돌아왔군요. 선생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카야 「’지금 선생님과 연이 깊은 학생들은 다 병원에 있으니까, 그 곳에 가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네’ 라니…」
카야 「정말이지. 제가 왜 발품 팔아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냐구요.」
카야 「그런데, 이건 다 뭐야?」
카야 「우와. 이거 설마 다, 선생님 앞으로 온 병문안 선물들인가…」
체리노 「앗! 거기!」
체리노 「왠 이상한 염소같은 녀석이 콤라드한테 줄 선물을 밟고 있어!」
카야 「뭐, 뭐야?」
마리나 「당장 체리노 회장의 영광스러운 위안 물품에서 발을 떼라, 이 불경한 녀석!」
카야 「선물이요? 아, 이 이상한 장난감 말하는 거에요?」
체리노 「장난감 아니야! 권위의 상징인 수염이다! 위원장, 이 엄청 무례한 반동분자는 뭐지?」
카야 「…수염… 아! 설마 이 꼬맹이가 레드윈터의 학생회장?」
체리노 「꼬맹이 아니거든!」
체리노 「우우… 지금, 각 학원의 모든 지도부가 이 병원에 모여 있다고 해서…」
체리노 「콤라드를 위해 특별히 큰 수염을 준비했는데…」
마리나 「이건 숙청 사안이다! 회장님, 부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토모에 「자, 자. 체리노 쨩? 집에 가면 푸딩 두 개 꺼내줄 테니까요. 병원에서 소란 일으키지 말고 그냥 돌아가죠?」
체리노 「푸딩 두 개…」
체리노 「운 좋은 줄 알라고, 반동 분자! 콤라드 곁에서 소란을 떨고 싶지 않으니 넘어가주지!」
토모에 「네, 네. 돌아가요. 그럼, 실례했습니다, 방위 실장님.」
카야 「저 학원은 볼 때마다 참…」
카야 「…아니, 아니지. 그래도 좋은 정보를 얻었어요.」
카야 「후후. 이 자리에 각 학원의 수뇌부가 전부 모여 있단 말이죠?」
카야 「그렇다면, 이 곳은 제가 총학생회의 정점에 오르기 위한 접선… 교섭… 그 모든 것을 하기 최적인 공간이군요!」
카야 「그렇게 생각하니 의욕이 생기는데, 어디, 선생님 병실에나 가 볼까요?」
히나 「선생님. 안녕. 또 왔어.」
히나 「어제보다는 혈색이 좀 좋아진 것 같네.」
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음… 말해도 될까?」
히나 「…어젯밤에, 이 병실에서 이오리랑 마주쳤지 뭐야.」
히나 「순찰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선, 여기서 밤새 서성였던 모양이야.」
히나 「아코도, 어제 안 하던 계산 실수를 열세 번이나 해서, 내가 다 고쳐줘야 했고…」
히나 「…둘 다, 재미 있는 이야기는 아닌가. 미안해. 나는, 이런 이야기엔 재주가 없어서…」
카야 「!」
카야 「(저건 게헨나의 선도부장…!)」
카야 「(저 정도면, 좋은 교섭 상대가 되겠어요.)」
아코 「부장님, 면회 시간이 끝났는데…」
아코 「연장을 요청드려볼까요?」
히나 「…아니야.」
히나 「룰을 어길 순 없어. 응. 오늘은 여기서 돌아갈게.」
카야 「어머, 안녕하세요. 격조했군요.」
아코 「어, 방위실장?」
카야 「당신은 됐고! 게헨나의 소라사키 히나 선도부장이시죠.」
카야 「둘이서 긴밀히 나눌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요. 협조해주시겠어요?」
아코 「무슨 속셈이죠?」
아코 「부장님. 이 녀석, 아주 음험한 녀석이에요. 바로 거절해버리는게 좋아요!」
카야 「후후,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아코 「!」
카야 「알고 계시죠? 모두가 선생님을 배신할 때, 제가 마지막까지 선생님 곁에 있었다는 걸.」
카야 「그런 제가, 중요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고 하는 건데요.」
히나 「…그거, 선생님의 건강에 관련된 이야기야?」
카야 「흐응, 글쎄요?」
히나 「들었어. 당신이 아비도스와 트리니티를 오가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히나 「알려줘. 선생님을 깨어나게 하는 것과 관련된 일이야?」
카야 「크게 보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히나 「…협조할게.」
아코 「부장님!」
히나 「…응, 괜찮아, 아코. 내가 다 잘 판단할 수 있어.」
카야 「자, 자, 그럼! 하급자는 빠지시고! 함께 옥상으로 가죠.」
카야 「초저녁이라 날씨가 스산하네요. 커피, 뭘로 드시겠어요?」
히나 「나는 자판기 커피로 충분해.」
카야 「흐응, 선생님이랑 닮았네요.」
히나 「그, 그래?」
히나 「음, 그렇구나…」
카야 「선생님과 선도부장은 무슨 관계였죠?」
히나 「응?」
히나 「주,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 않았어? 관계 있는 거야?」
카야 「관계 있어요. 아주 중요해요.」
히나 「별로…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아프고. 음, 그게…」
히나 「…그냥.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카야 「그런가요. 후후, 귀엽네요.」
히나 「귀, 귀엽지 않아.」
카야 「그럼 히나 선도부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히나 「이번 사태…」
히나 「…슬퍼.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어.」
히나 「내가 출장을 가 있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이 저렇게 되는 건 막을 수 있었을지도.」
카야 「밉지는 않나요?」
히나 「…미워?」
카야 「선생님을 저렇게 만든 총학생회, 만마전, 트리니티… 그 모든 게, 밉고 불안하지 않은가요?」
히나 「저의를 모르겠어.」
카야 「후후. 하지만 저는 당신을 알아요. 소라사키 히나 선도부장.」
카야 「엉망진창인 게헨나의 지도부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건, 당신의 초인적인 봉사와 능력 때문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죠.」
카야 「그 엉망진창인 시스템 때문에 선생님이 저렇게 된 거라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히나 「…뭐?」
카야 「당신이라면 이해할 거라고 믿어요.」
카야 「선생님은, 분명히 지금까지 키보토스의 이런저런 일을 잘 해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행동양태는 분명히 망가져 있었어요.」
카야 「남들에게 편리한 쪽으로 망가져 있으니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을 뿐.」
히나 「…계속해봐.」
카야 「표정을 보니 공감가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역시 제가 인정한 초인다워요.」
카야 「선생님은, 남을 도왔지만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어요.」
카야 「그래서는 안 돼요. 시스템이 성립되질 않잖아요? 그런 망가진 시스템은 반드시 파멸하게 되어 있어요. 배신을 당해서든, 지쳐 쓰러져서든.」
히나 「지쳐서… 쓰러진다고…」
카야 「아비도스의 일을 해결했다면, 아비도스의 권한과 자치권 몇은 뺏어왔어야 했어요. 트리니티의 일을 해결했으면 트리니티 평의회의 의결권 하나 정도는 가져와야죠. 그런데 선생님은 뭘 했죠?」
카야 「동전 한 닢 만큼의 가치도 없는 학생들의 ‘호의와 감사’. 한때의 기분, 감정…」
카야 「그런 무가치한 보답이면 됐다고, 만족한 결과… 배신 당해서 저렇게 된 거잖아요?」
히나 「…그런.」
카야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동물이에요.」
카야 「그래서 모든 인간은, 거짓말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계약을 맺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런 기능이 달려 있어요.」
카야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그 기능이 망가진 사람인 거에요.」
히나 「…」
카야 「그러니까, 우리가 지켜줘야 하지 않겠어요?」
히나 「뭐?」
카야 「선생님이 할 수 없는 ‘의심’과 ‘감시’를, 우리가 대신 해 주는 거에요.」
카야 「당신이 게헨나의 학생회장이 되고, 제가 총학생회장이 되어서…」
카야 「샬레를 해체하고, 우리가 신설한 새 기구에 선생님을 배속시키는 거죠.」
카야 「그리고, 선생님이 의뢰를 받아서 일을 해결하고 오면… 그 대가를, 우리가 받아내서, 선생님을 지키는 거에요.」
히나 「샬레를 해체한다고?」
카야 「후후. 당신의 무력과 제 지위를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히나 「…당신,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카야 「그리고 그렇게 되면, 선생님을 당신이 독점할 수 있어요.」
카야 「그렇게 소중하다는 선생님과 늘 함께 있고, 어리광부리고, 연인처럼 지내도 좋다구요?」
카야 「자아, 어떻게 하시겠어요?」
히나 「…」
히나 「나는…」
히나 「나는, 그런 제안, 거절하겠어.」
카야 「잘 생각했어요. 그럼 우선 만마전부터… 예?」
카야 「방금, 뭐라고 했어요?」
히나 「거절한다고 했어.」
카야 「어째서?!」
카야 「당신한텐 이득밖에 없는 이야기라구요?」
카야 「아, 혹시 실패 리스크가 걱정되어서 그래요? 후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이번 사고의 책임은 트리니티에 있었으니까…」
히나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야.」
히나 「아까, 선생님이랑 내가 닮았다고 했지…」
히나 「…그래서야.」
히나 「선생님은, 이런 제안… 절대 받지 않았을 것 같아. 그러니까, 나도 받지 않을 거야.」
카야 「…」
선생 「나는, 쿠데타 같은 건 하지 않아. 카야.」
카야 「또… 또야.」
카야 「이해가 안 가요. 당신도, 선생님도…!」
카야 「인간은 곤란해지면 거짓말을 해요. 믿음, 우정, 그딴 건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믿을 수 있는 건,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건 권력밖에 없다구요. 알아들어요?」
카야 「당신도, 선생도, 그 정도는 충분히 알 만한 위치에 있잖아요…!!!」
카야 「그런데 왜, 그런, 멍청한 소리로 거절하는 거죠?」
히나 「카야 실장…」
카야 「대체 왜…」
카야 「….아.」
카야 「흥이 식었군요.」
카야 「이만 돌아가겠어요.」
그림자 「…」
그림자 「쓰러져서 의식을 잃은 지 한 시간 반…」
그림자 「길고 긴 명줄이었다만, 드디어 끊어졌나.」
그림자 「예상보다는 훨씬 오래 버텼군.」
선생 「…어.」
그림자 「아니군.」
그림자 「아직, 숨은 붙어 있나.」
선생 「엄마…」
선생 「울지…착한 아이가, 잘… 나를, …가지 마세요…」
그림자 「…고약한 꿈을 꾸고 있군.」
그림자 「일어나라.」
선생 「…윽! 쿨럭, 크허억… 윽…으윽…」
선생 「여긴…아. 나는, 무엇을…」
그림자 「쓰러져서 악몽을 꾸고 있었다. 잠꼬대도 하던걸.」
그림자 「엄마, 이제부턴 울지 않고, 착한 아이가 될 테니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세요. 라고. 」
선생 「…윽.」
그림자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그림자 「여전히 넌 어린아이니까.」
선생 「시, 시끄러…」
선생 「이제, 푹 쉬었으니까, 일어서야…」
선생 「…윽.」
그림자 「몸을 일으킬 힘도 없나. 그렇겠지.」
그림자 「버림받던 날의 기억. 그 악몽은, 네가 삶을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마다, 저 편에서 손짓하듯 찾아오는 것이니까.」
선생 「…」
그림자 「망각했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그런데 그 최초의 기억은, 왜 갈수록 선명해져만 가는 것인가…」
그림자 「마치 내 삶에 부과된 저주처럼.」
선생 「너...너는, 왜 그걸 알고 있어?」
그림자 「…」
그림자 「…지혜의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은 영원히 사막을 헤매이게 되었다…」
그림자 「이제는 스스로가 운명의 주인이라는 가냘픈 긍지, 단 하나만을 손에 쥔 채.」
그림자 「이 곳은 네 마음 속의 사막이다.」
그림자 「이 사막은 네가 품은 죄만큼 넓다.」
그림자 「그렇기에, 이 고행은 끝나지 않는다.」
그림자 「네가 삶을 바쳐 그려왔던 이상은 무엇인가?」
선생 「그건…」
선생 「아이들이…」
그림자 「아이들이 울지 않아도 되는 세계.」
그림자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그림자 「네가 아무리 애써도, 네 손 닿지 않는 곳에서 멋대로 불행해지는 아이들은 나온다.」
그림자 「그 모든 걸 네 죄라고 여기고 있기에, 이 사막은 이다지도 광막한 것이다.」
그림자 「’아이들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같은 말을 중얼거리지만,」
그림자 「내가 보기에는, 너야말로 어린아이다.」
그림자 「…그 좁은 방에 갇혀서, 돌아오지 않을 어머니를 찾으며 목놓아 울고 있는…」
선생 「…닥쳐.」
그림자 「너는 결코 어른이 아니다.」
그림자 「아이는 모든 것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림자 「용사도, 왕도, 공주도 될 수 있으리라고.」
그림자 「하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이라는 존재의 왜소함을 깨닫고, 인간이란 낙원에서 추방된 유배자… 패배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라는 걸 배운다.」
그림자 「가냘픈 긍지 하나로 모든 것을 짊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자 「그러니까, 아이는 좌절을 거듭하면서 계속 스스로를 잘라낸다.」
그림자 「용사를 꿈꾸던 아이는 소방관이 되고, 공주를 꿈꾸던 아이는 아내가 된다.」
그림자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잘라내기를 거듭한 끝에…」
그림자 「어떻게 해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한 줌 무언가만 남은 사람.」
그림자 「그것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선생 「어른…」
그림자 「그런데 너는 뭐냐.」
그림자 「터무니없는 이상을 마음 속에 품은 채, 필사적으로 어른 흉내를 내면서.」
그림자 「이미 숱하게 좌절하고 패배했으면서도…」
그림자 「아무것도 포기하려고 하질 않았다.」
선생 「…」
그림자 「그 결과를 마주해라.」
그림자 「아무리 발을 내딛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열사의 사막.」
그림자 「목적도 없고, 방향도 알 수 없는 사토의 어딘가.」
그림자 「이것이 네 최후에 예비된 풍경이다.」
그림자 「너는 결국 한 사람의 아이조차 구하지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죽을 것이다.」
선생 「아니야… 나는.」
그림자 「마지막까지 후회따윈 하고 싶지 않다고 그랬었지.」
그림자 「그렇다면, 더 발버둥치지 말고 지금 죽어라.」
그림자 「어차피 이룰 수 없는 꿈인 바에야, 조금 더 버둥대고 죽나, 지금 죽나.」
그림자 「패배자로 죽는 것은 똑같지 않나.」
선생 「나, 나는… 나는…」
그림자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그림자 「목적이 없는 너는 방황 속에서 죽는다.」
그림자 「안식을 받아들여라…」
카야 「후우.」
카야 「나도 참. 나답지 않게,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화를 냈을까요.」
카야 「도어락 비밀번호가… 후후, 오랜만에 집이군요.」
카야 「다녀왔습니다! 선생님, 목욕물은 받아 놓으셨… 아.」
카야 「나도 참. 선생님과 함께 있었던 건 겨우 일주일이었는데.」
카야 「일주일 사이에 그게 습관이 되어버렸네요.」
카야 「흠, 흠흠…」
카야 「돌이켜보니, 그 사람이랑 함께였던 일주일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최악.」
카야 「맨날 싸구려 믹스커피나 타 주고…」
카야 「모두한텐 비밀이야? 라면서, 쓸데없이 달기만 한 불량 과자나 먹여주고…」
카야 「후후, 저처럼 품격 있는 사람은 역시 이런 에스메랄다 커피를 마셔야죠.」
카야 「…써.」
카야 「…」
카야 「흠, 흐흠, 이 삼두사자상, 조형물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니 나름 우아하군요.」
카야 「굴절률도 좋아서… 비친 제 얼굴도, 언제나처럼…」
카야 「아, 아름다워서…」
카야 「…」
카야 「누, 눈에, 티끌이 들어갔었나. 참, 부끄럽네요.」
카야 「…」
카야 「광대짓은 그만할까요.」
카야 「(…깨달았어요. 비로소.)」
카야 「(내가 왜 그렇게 선생님을 싫어했는지.)」
카야 「(왜, 샬레를 꼭 해체하고 싶어했는지.)」
카야 「나는, 권력자는 외톨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카야 「사람이 더 적게 묶여 있는 선로로 기차를 보내는 사람.」
카야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
카야 「그렇게 미움받지만, 분명히,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사람…」
카야 「그거야말로, 초인이니까.」
카야 「…하지만.」
카야 「그 사람은 권력자이면서도… 외톨이가 아니었어요.」
카야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었어요.」
카야 「…그게, 견딜 수 없이 싫었던 거에요.」
카야 「내가, 뿌리부터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카야 「(그래서, 증명하고 싶었어요.)」
카야 「(그런 권력자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카야 「(모두들, 그저 권력 앞에 아첨하고 있을 뿐이고…)」
카야 「(샬레를 해체하고, 권력을 잃으면, 모두에게 비참하게 배신당해서 버려질 거라고.)」
카야 「(그러면 잔뜩 비웃어준 다음에, 내 것으로 만들자고… 집사로 쓰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카야 「그런데 왜…」
카야 「왜, 저 꼴이 되어서,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어졌는데도.」
카야 「…다들, 저렇게 매달리는 건지.」
카야 「그 사람은 모두에게 배신당한 주제에, 왜 그렇게까지 노력했던 건지.」
카야 「…지난 2주간, 만나온 모든 사람들이.」
카야 「내가 틀렸다고…」
카야 「망가진 건, 내 쪽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카야 「…」
카야 「흐흥. 아니야.」
카야 「결국 선생님은 저 꼴이 났으니, 내가 옳았죠.」
카야 「이제 내가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거에요.」
카야 「이제, 선생님이 없어져서…」
카야 「더 이상 커피를 타 주지도 못하고…」
카야 「바보처럼 웃으면서 어깨를 툭 툭 치지도 못하게 되면…」
카야 「그럼, 분명히…」
카야 「나도…」
카야 「…싫어.」
카야 「그런 건 싫어.」
카야 「선생님!」
카야 「뭘 누워 자빠져 있는 거에요?」
카야 「조금 있으면 꽃도 져 버린다구요?」
카야 「약속했잖아요, 같이 꽃놀이 가기로!」
선생 「…」
선생 「방금, 먼 곳에서…」
선생 「날 부르는 목소리가…. 아.」
선생 「…」
선생 「하하, 맞아. 그랬었지.」
선생 「미안하지만, 나한테도 목적은 있어.」
그림자 「무슨 소리인가.」
선생 「돌아가면,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어.」
선생 「함께 올해의 꽃을 보러 갈 거야.」
선생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 쓰러져 있을 수는 없어.」
그림자 「…또!」
그림자 「여기까지 와서도 그런 하찮은 거짓말로 스스로를 기만하나?」
선생 「…분명히, 하찮지만…」
선생 「거짓말은 아니야.」
선생 「비웃어도 괜찮아.」
선생 「언젠가 패배하고 말 거라는 건,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선생 「그래도,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선생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하나라도 더 있을 거야.」
그림자 「너는…」
그림자 「…」
그림자 「그런가.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거였군.」
선생 「…나?」
프레나파테스 「승패는 판가름났다.」
프레나파테스 「아무래도 이 사막에 남아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인 것 같군.」
프레나파테스 「네 최후까지 전진해보아라.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
프레나파테스 「마지막으로, 나 또한 기원하겠다.」
프레나파테스 「너는, 부디 무언가를 지켜낼 수 있기를.」
유우카 「선생님… 아침이라구요? 이제 일어나주세요…」
유우카 「앞으로는, 말 잘 들을게요…」
유우카 「이제는 다시 장난감 같은 거 사지 말라고, 절약하라고 하지 않을게요… 과, 과금도 마음껏 하세요.」
유우카 「그러니까, 제발…」
선생 「정말?」
유우카 「…네.」
선생 「그럼 말이지, 유우카랑 닮았다고 했던 그 게임 캐릭터, 곧 피규어가 나오는데 사도 돼?」
유우카 「네…네. 마음껏 사세요…어?」
유우카 「선… 선생님?」
유우카 「선생님!!!」
선생 「그, 그렇게 갑자기 와락 달려들면 무거워!」
유우카 「다행이다… 다행이다…」
유우카 「저희를 버리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선생 「…내가, 모두를 버릴 리가 없잖아?」
선생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유우카 「선생님…」
유우카 「잘, 돌아오셨어요.」
선생 「응.」
선생 「다녀왔어.」
카야 「…그래서, 약속한 자전거 여행 날입니다만…」
카야 「이 상황은 뭐죠?!」
선생 「아하하, 그게…」
카야 「분명히 단 둘이서 가기로 했잖아요? 근데 이건 뭐에요?」
이즈미 「옥수수 먹고 싶은 사람? 마마이트 바른 옥수수 사세요! 두리안맛 옥수수도 있어요!」
하루나 「후후, 잘 하고 있어요. 여기서 한 밑천을 벌고 가는 거에요.」
후우카 「나는, 왜 여기 끌려와서 오징어랑 옥수수를 굽고 있는 건데에…」
카야 「수백 명이 몰려들어서 아예 장사판이 열렸잖아요!」
나기사 「어머, 카야 방위실장님. 그게 무슨 품격 없는 말인가요.」
나기사 「우연히 트리니티 행사와 선생님의 여행 행선지가 겹친 것 뿐이랍니다.」
히나 「응. 우연히. 선도부 강화훈련도 겹쳤어.」
호시노 「으헤~ 아저씨도 우연히 여기 와버렸지 뭐야?」
카야 「그런 우연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미카 「와오☆. 무서워라.」
미카 「카야 실장은 독점욕이 심하네. 아주 집착이 심해.」
미카 「세이아 쨩. 저 분홍머리, 너무 성가시지 않아? 저런 귀찮은 여자, 분명히 친구 없겠지?」
세이아 「…자네가 할 말인가…」
소라 「저, 저기, 선생님! 아이스크림을 준비해왔는데, 같이 드실래요?」
소라 「저번에, 무례하게 굴었던 거 사죄하려고… 알바비를 전부 털었어요!」
선생 「우왓, 소라?」
선생 「아니야. 내가 소라한테 선물을 받는 건 조금 면이 안 선다고나 할까, 위험…」
아로나 「먹을래! 먹을래요!」
아로나 「우와… 아이스크림이 잔뜩…」
아로나 「에헤헤, 초코바나나랑 아이스 에클레르, 뭐부터 먹을까…」
린 「…그 AI, 누구랑 취향이 참 비슷하군요.」
아로나 「…으붑! 켁, 켁… 선생님, 배 만져주세요… 둘 다 먹다가, 배 차가워졌어요…」
카야 「그 흐물텅한 퍼랭이, 음식도 먹어요?」
아로나 「실례네요!」
아로나 「저는 흐물텅한 퍼랭이가 아니라, 슈퍼 OS 아로나쨩이라구요!」
린 「그런데, 슈퍼 OS 아로나 씨?」
린 「지금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요.」
아로나 「…앗!」
아로나 「아,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려서, 헷갈렸다…!!!」
아로나 「으우, 어떡하죠, 목적지까지 20분 정도 더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카야 「선생님. 이 멍청한 고물텅이, 그냥 삭제해버리죠?」
아로나 「히이익! 선생님, 살려주세요!」
선생 「아니, 괜찮아.」
선생 「조금 돌아가고 헤매는 것도 좋잖아.」
선생 「헤매이는 길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카야 「…그런가요?」
선생 「응. 분명히.」
카야 「(…결국, 이 날의 여행은 엉망진창으로 끝났습니다.)」
카야 「(어쩌다보니 싸움이 나서, 미식연구부가 묵기로 한 여관을 폭파하고, 온천개발부가 난입하고…)」
카야 「(저도, 엉망진창이 돼서, 자전거도 망가지고… 결국 선생님 등에 업혀서 돌아왔어요.)」
카야 「(하지만, 얼마만일까. 그 등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카야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푸른색이었습니다.)」
카야 「(어쩌면, 우민들은 이런 걸…)」
카야 「(…’청춘’이라고, 부르는 걸지도.)」
카야 「(나도 참. 바보가 옮았나 보네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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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화까지 맛있게 잘 읽었어요 완결 감사합니다

드디어 나왔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