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6자
#치히로
원문 ザンパンのトライオ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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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몇 년 전 나에게 말을 전할 수 있다면 『그녀들을 만만히 보지 마라』라고 할 것이다.
분명 일시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실책이다. 한때의 사랑이었다고 단정해 버린 자신의 우둔함을 저주하고 싶다.
"그래서."
"넵..."
선생님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들면 치히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겠지만 무리였다. 올리고 싶지 않았고 올릴 수 없었다. 치히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이 두려웠다.
"잊었다고?"
"아, 아니 그게..."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 감각은... 린에게 대량의 서류 미비를 지적받았을 때의 감각이다.
선생님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겨우 고개를 조금 들었다.
"나는 계속 기억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잊어버렸다는 거구나, 흐음?"
... 화났다. 더할 나위 없이 화났다.
"이래서야 내 일생일대의 고백도 잊어버렸겠네."
"아, 아니! 그건 아닌──"
"... 그럼 왜 잊은 거야?"
"그게... 그, 그 때는 설마..."
횡설수설하는 선생님을 치히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진심일 줄은 몰랐다?"
"... 네."
──몇 년 전, 카가미 치히로라는 한 소녀가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을 졸업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녀는 사회로 발을 내딛었다. 그 뒤로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의식적으로 나와 연락을 취하지 않은 이유도 클 것이다.
하지만 본론은 그녀가 졸업을 앞둔 시점, 그녀가 학생으로서 마지막으로 실시한 보안 검사의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날 그녀는──
◇
"──좋아해, 선생님."
그 말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위화감 없이 너무 녹아들어서 선생님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어?"
선생님이 뒤돌아보면 치히로가 서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카가미 치히로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선생님을 좋아해. 친구로서도 스승으로서도 아니고, 이성으로서."
선생님은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거절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한 그럴 듯한 말과 함께.
◇
"──그리고 그 그럴 듯한 말의 결과가 이거야."
치히로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의 주머니에서 꺼낸 녹음기를 재생 버튼을 눌렀다.
『치히로의 마음은 기쁘지만──』
흘러나오는 것은 그날의 대답.
"녹음되고 있었다고는 생각 못했나봐. 뭐, 방범 시스템에 녹음된 거지만."
치히로가 조작하자 음성이 빠르게 재생된다.
"여기는 지금도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아. 그게... 꽤 데미지가 크니까."
『──그러니까 치히로. 만약 치히로가 가슴을 펴고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아직 나를 좋아한다면──』
그 뒤의 말은 듣지 않아도 기억할 수 있었다.
"네. 여기까지."
치히로는 녹음기를 소중하게 챙겼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어. 그... 남자랑 연애도 해봤어."
"그, 그래서...?"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게 대답이야."
치히로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을 지나 선생님 쪽으로 움직였다.
"자, 선생님."
"치, 치히로..."
선생님의 옆 소파 빈 공간에 앉은 치히로는 그대로 몸을 기댔다. 치히로의 체온과 옷 너머의 부드러움, 그리고 상큼한 민트 계열의 향이 느껴졌다.
"나, 어른이 되었어. 생활 사이클도 그때보다 나아졌... 다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치히로! 나는──"
"거기까지."
검지를 선생님의 입에 대고 치히로는 미소를 지었다. 상냥하지만 강한 미소. 이 미소는 빠져나갈 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미소라는 것을 선생님은 직감했다.
"자, 이거."
"이게 뭐──"
갑자기 종이를 꺼내 책상 위에 두는 치히로.
"뭐냐니, 당연하잖아."
"... 치히로 씨?"
"혼인신고서야."
"치히로 씨?!"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난 선생님을 홱 잡아당겨 다시 앉힌 치히로는 손에 볼펜을 쥐어주었다.
"선생님."
"왜 그러시나요..."
"이번엔 도망칠 수 없어. 이 숫기없는 사람."
"으윽..."
그제야 선생님은 치히로가 이쪽 소파에 앉은 의미를 이해했다.
위압, 즉 놓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다.
... 치히로가 이렇게 적극적인 여자였나...
"지금 여기서 이름을 쓰고 평화롭게 나랑 맺어질래?"
"평화롭게라니..."
불안해지는 단어가 나왔다.
"지금 여기서 쓰지 않고 억지로 나랑 맺어질래?"
"저기, 치히로. 아무리 그래도 그건 범죄──"
"──선생님, 그런 말을 했었지. 치히로도 언제나 소중한 나의 학생이라고."
카가미 씨, 아까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선생님은 이제 기절할 것만 같았다. 과거에 저질렀다고는 해도 이런 위기가 찾아오다니.
"... 치히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지도 몰라?"
최후의 변명. 하지만 틀림없는 본심이기도 했다. 학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 거짓은 없다. 그리고 치히로는 지금도 선생님에게 행복을 바라는 학생이다.
그러니까 할 수 없다. 치히로의 행복을 빼앗아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 있어서는──
"우읍... 음?!"
어느새 입술이 막혔고 발버둥쳐도 떨어지지 않았다.
"푸하... 선생님."
"으으...?"
"뭔가 착각하고 있어. 선생님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 줄 거야."
"치, 치히로..."
"키스만으로도 당황하는 얼굴. 솔직히 그래서 좋아, 선생님."
◇
"좋았어... 후후, 아아, 아니지... 표정 관리하기 힘드네."
써버렸다. 결국 쓰고 말았다.
솔직히 아주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내 자신이 무섭다. 저렇게 미인이고 상냥한 여자의 남편이 되는 것에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그보다 지금은 짐작되는 또 하나의 진실에도 눈을 돌리고픈 마음이 더 크다.
"아 맞다, 선생님.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지만 모르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진실을 알려줄게."
귀를 막고 싶다. 하지만 막으면 뒷감당이 무섭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선생님에게 이런 저주를 받은 학생은."
저주. 그말대로다. 치히로는 눈앞에서 머리를 싸맨 선생님을 보며 생각한다.
선생님의 친절은 저주다. 몸은 떠나도 마음은 떠나지 못하는 저주. 몇 번이고 잊으려 해도 결국은 되돌아오게 되는 저주.
그런 저주를 이 사람은 대체 몇 명의 학생에게 심었을까? 고의가 아니더라도 저주는 분명 저주다. 주변 학생도 그랬다. 후배도, 친구도, 모두 그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히마리..."
그렇게 중얼거리며 치히로는 슬쩍 천장의 감시카메라를 올려다보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타칭 미소녀인 그녀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퍼져나가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방금 생각났는데."
치히로는 짐짓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키보토스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거든."
"응...?"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오히려 수용 능력이 한계를 초과한 선생님에게 치히로는 말했다.
"다시 말해 그런 거야. 중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지."
선생님은 이번에야말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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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신혼생활.
치히로는 정식으로 샬레의 보안 고문으로 취임했다. 그것도 주재원으로. 그래서 치히로는 선생님과 호적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함께할 수 있는 대의명분도 확보한 셈이다.
"좋은 아침, 치히로."
"... 좋은 아침, 선생님."
둘 다 일중독 기질이 있어 수면부족인 날이 늘어났지만 그것도 곧 해결될 것이다. 둘 다 서로를 배려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미안 선생님, 잠시 다녀올게."
"다녀와, 치히로. 늦을 것 같으면 문자해줄래?"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늦을 것 같으니까 먼저 자고 있어."
겉옷만 입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치히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러 뛰어다니는 그 모습은 학생 때와 다르지 않다──하지만 곧바로 되돌아왔다.
"학생에게 오해를 부를 말 금지. 상냥하게 대하는 것도 안 돼. 알겠어?"
"... 아, 알겠어..."
"다녀올게."
다시 뛰어나가는 치히로. 못박긴 했지만 선생님은 또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며 불쌍한 저주의 희생자를 늘릴 것이다.
"하아... 정말이지..."
그래도 괜찮다.
"괜찮아, 어차피 나의 서방님이니까."
스스로 말했으면서 붉어지는 뺨을 애써 가라앉히며 치히로는 밤거리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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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6자
댓글 13
오 소설핫산
왜 본거같지
찾아보니 있긴하네... 근데 다음편 하려고 한거라 알았어도 했을듯?
다음편도 있구나 색스
쀼
맛있다
남자랑 연애를 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