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다음은 이거"
히비키가 대량의 서류 안에서 몇 장을 건낸다. 천장에 닿을듯 쌓여있는 서류들은 그야말로 선생의 생활을 압박하는 요소다
"고마워. 좋았어"
다시 기합을 넣고 선생은 펜을 손에 쥐었다.
일단은 전투후 처리관련. 사인을 하는것만으로 종료
다음은....
◇
"후우......"
"......선생님 수고했어"
히비키가 머그컵을 두 잔 가져왔다. 향을 맡아보니 코코아인듯하다.
"어어 고마워"
잔을 받아서 선생은 한입 홀짝인다. 따뜻한 단맛과 약간의 텁텁함이 오히려 느낌이 좋다.
히비키가 선생을 돕고나서 선생의 서류처리 속도는 비약적으로 올랐다. 처리 순서부터 자료 모으기, 분류나 보관방법까지 히비키의 일처리는 완벽에 가까운 것이 역시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의 학생이라 할만하다.
"......후후 따뜻해"
히비키의 표정에도 온화함이 드러난다.
오늘은 지금까지도 유례없던 일의 양이었다. 매일 샬레에 얼굴을 비추던 그녀에게도 이렇게 밤늦게까지 있던적은 처음일거다.
어두워진 밖을 보던 선생은
"오늘 꽤 늦게까지 도와줘서 고마워 히비키."
"아냐 괜찮아 달성감 느껴지기도하고"
"벌써 밖은 어두우니 집까지 바래다 줄게"
그렇게 말하자 히비키는 컵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가지고 왔던 트렁크를 연다.
"괜찮아 준비는 완벽하니까......"
트렁크 안에는 다양한 기계들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히비키는 작은 파우치를 꺼낸다.
그 안에서 나타난건 케이스에 담겨진 칫솔.
"그러니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자고가도 돼?"
"잠......"
이번엔 선생님의 얼굴색이 바뀔차례다. 아무리 사이가 좋고 아무리 선생과 학생이라도 그녀와 그 자신은 이성(異性).
역시 자고 가는건 위험하다. 사람들의 시선이라던가 그 밖에 여러가지로 생각해봐도 도저히 동의 할 수 없다.
"잠시만 기다려봐 그건 아무래도 역시......"
"나를 바래다주고 돌아갈때 습격당하면 누구도 대응할 수 없어. 선생님은 좀 더 중요인물이라는 자각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해"
"그건......"
반박할 수 없다.
물론 여기까진 히비키가 예상한대로다. 선생은 착하다. 과하다고 느낄정도로.
밤 늦게 학생을 혼자서 돌려보낸다니 가능할리 없다. 그 뒤론 어떻게든 해서ㅡㅡ
ㅡㅡ같이 잘 상황까지 끌고간다!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같이 잘뿐이라는 건 선생한테는 다행이라해야할까......
◇
둘이서 나란히 양치질을 끝내고 다음은 샤워.
역시 히비키도 같이 씻을정도로는 대담하진 못하고 선생님보다 먼저하고 나온다.
「――」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로말이다.
평소의 모습으론 상상도 못할정도로 뷰드러운 색 조합인 잠옷으로 몸을 감싼 그녀의 모습은 선생의 눈엔 평소와는 전혀다른 모습으로 비춰졌다.
"......선생님 들어가도 돼"
"으 응 알았어"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그녀는 드라이기를 사용하며 선생을 재촉한다. 선생은 허둥지둥 대답하는 것밖에 하지못했다.
샤워 소리가 들려오자 히비키는 다시 행동으로 옮긴다.
"완전"이 붙을정도로 사람좋은 그라면 어차피 침대를 양보할게 틀림없으니 그 전에 선생님의 향기를, 분위기를, 생활감을 가득 맛보고싶다.
문을 열고 문을 열고 문을ㅡㅡ
"......찾았다"
집무실과는 다른 분위기의 방. 이불이 약간 구깃구깃한 침대가 중앙 안쪽에 자리잡고 있고 책상에는 책과 몇개의 피규어가 소중하다는듯 전시되어 있었다.
쭈뼛쭈뼛 방에 발을 디딘 히비키는 너무나도 "냄새"가 좋아서 승천할듯한 느낌이 들었다.
달콤함은 아니고 매움이나 시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기분좋다.
"선생님의......향기"
생활감과 더불어 뭔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은걸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히비키는 이끌리듯이 침대에 몸을 맡겼다.
"......후후후 좋은 냄새"
폭신한 무언가가 몸을 감싸는 듯한 감각. 그것은 극상의 깃털을 뛰어넘는 극상이다.
"......핫 이러면 안되지"
히비키는 제정신을 차린다. 슬슬 선생이 나온다.
◇
"선생님 어서와"
"다녀왔어...... 샤워실에서 온거지만"
선생이 문을 열자 그곳에는 의자에 앉은 히비키가 있었다.
"그러면......음"
선생은 시계를 올려다본다. 시간은 벌써 새벽3시를 지나려하고 있었다.
"이제 잘까. 히비키는 내 침대에서 자고......"
"잠시만"
히비키는 선생의 말을 막는다. 자신이 낸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기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
"선생님은 피곤한 상태야......선생님이야말로 침대에서 자야해"
"그치만 그러면 히비키가 자기 힘들잖아?"
"문제 없어"
드물게 히비키가 흥하며 콧김을 뿜는다. 그리고 선생님은 어딘지 모를 불안함이 적중했다.
"나도 선생님하고 같이 잘거니까"
"......같은 ㅇ"
"같은 이불에서"
잠깐의 정적이 두 사람을 감싼다.
히비키는 귀를 천천히 움직이고 선생은 완전히 얼었다.
"......선생님?"
"아 아니아니아니 아무리그래도 그거는 안되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선생.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히비키도 반박한다.
"......왜? 선생님은 피곤한 상태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같이 침대에서 자는 편이 효율이 좋아."
"효율같은게 아니라 나와 히비키는 선생하고 학생이기도하고"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자면 다음날 작업 효율이 좋다는 데이터도 있어"
일단 전제로서 미성년 거기다 학생과 같은 침대에서 잔다니 될 리가 없다. 게다가 히비키의 몸매는 또래중에서 성장한 편이고 평소의 모습도 절묘하게 노출도가 높다.
미묘하게 히비키를 의식하는 입구에 선 선생으로선 "세상이 보는 눈으로써"와 "남자로서" 두가지 관점에서든 동침할순 없는 것이다.
"설령 작업효율이 오른다 해도 히비키는 여자아이고 나는 남자야"
"선생님은 학생한테 손대?"
"그건 절대로 아냐!"
"그러면 같이 자도 괜찮아"
"윽"
이건 히비키한테도 금지된 수단이었다. 선생님이 의식해주길 바라는 생각이 깔린 이 작전에서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를 자기가 꺼내버리면 근본이 무너진다.
하지만 이젠 형편 차릴때가 아니다. 어떻게서든 선생과 같이 침대에서 자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꺼낸 필살기였다.
"선생님"
불쑥 한 발 앞으로 나온다. 슥하며 몸을 빼는 선생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밑에서 올려다보듯
"혼자선 잘 수 없어...... 같이 자자?"
"......으에 에 음......네"
◇
"그 그러면"
"......응"
"자... 잘자"
불이 꺼졌다. 어두워진 방안을 헤일로의 은은한 빛이 비춘다.
선생은 숫총각이다. 여학생은 커녕 여자와 같은 방을쓰는 경험이 지금까지 있을리가 없다.
등을 맞댄 그녀의 샴푸향과 가끔 닿을때 느껴지는 체온으로 머릿속은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선생님"
"왜......?"
히비키가 말을 걸지만 선생은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다. 만약 지금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아마 눈이 빙빙돌고 머리에선 김이 샐것이라고 확신했다.
"선생님하고 있으면 안심 돼"
졸려서 그런건지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건지 히비키는 드문드문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하고 있으면 편한 기분이 들어"
"......히비키?"
"선생님하고 있으면 효율이나 계산이나 무엇이든지 좋아져"
"......"
"저기 선생님. 나 선생님 하고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히비키"
살짝 히비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단숨에 얼굴을 끌어당겼다.
"히 히비키......씨?"
어느새 몸을 뒤척인건지 선생의 눈앞에 히비키의 얼굴이 있었다.
히비키는 양손으로 선생의 얼굴을 잡고 사랑스러운 듯이 미소지었다.
"......후후 선생님 얼굴 귀여워"
"그 그래?"
"응 엄청"
히비키의 얼굴이 가깝다 눈 안의 광채의 모양까지 보인다. 촉촉한 입술도 붉게 물든 뺨도 구불구불한 머리카락도 모두 보석처럼 빛나는것처럼 보인다.
"선생님"
"왜 히비키"
왜인지 진정되었다. 아까까진 요동치던 고동이 잦아들고 선생은 평정심을 되찾는다.
"선생님"
"무슨일이야 히비키"
"선생님"
"히비키"
"선생님"
"히비키"
툭하며 얼굴을 잡던 히비키의 손이 이불위로 떨어졌다.
조금 뒤에 헤일로의 빛이 천천히 사라진다. 새근새근하는 숨소리가 들린다.
"......잘 자 히비키"
선생은 다시 히비키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는 얼굴은 마치 천사의 초상을 보는 듯했다.
"잘 자"
다시 한 번 더 말하고 옆의 온기를 느끼며 선생은 의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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