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공식
7,487자
공주는, 아츠코는 잘 웃는 아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문을 모르고 무장한 간부들에게 둘러싸여 삐질삐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기가 인질이 되어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그 처지를 이해하고 있기나 한 걸까.
“아얏!”
누더기를 걸친 네댓 살 난 아이가 무너진 담벼락 뒤에서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나자빠졌다.
이 동네에서 자주 보던 여자아이인데, 아무래도 친구들과 놀다가 미처 도망치지 못한 모양이다.
재수 없게 행렬을 가로막는 꼴이 되자, 인상이 사나운 간부 하나가 퍽 기분 나쁜 티를 내며 거들먹거렸다.
“애새끼가 길을 막고 지랄이야. 안 그래도 아침부터 욕 처먹어서 기분 나빠 죽겠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표정을 풀고 잘 됐다며 땅을 박차고 달려가 아이의 복부를 걷어찼다.
안타깝지만 이 상황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자신의 나약함을 외면하려 시선을 피할 뿐이다.
몸이 굳어 벌벌 떨고 있던 아이는 당연히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굼벵이처럼 움츠리고 울컥울컥 고통을 토해냈다.
괜히 큰 소리를 냈다가 더 얻어맞을까 싶어서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는데, 나는 그 소리 없는 비명이 귀가 찢어질 듯 아팠다.
“잠, 잠깐만요…. 그만, 그만해 주세요….”
아츠코가 보다 못해 아이 앞을 가로막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 뻗은 팔과 다리.
역시 공주니, 뭐니 하면서 치켜세우는 것처럼 보여도 저 반응을 보아, 미사키의 말대로 저들 사이에서의 취급은 뻔했다.
화풀이를 저지당한 간부가 신경질적으로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아츠코는 그 순간까지도 입고 있는 순백의 드레스처럼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만 하고 돌아갈 거야? 사오리 언니?”
“아니, 당연히 덮쳐야지. 저 인파를 이용해서 값비싸 보이는 걸 최대한 훔치는 거야.”
저래선 이 회색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자, 가자.”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아니, 물든 건 내 시야뿐인가.
이제는 익숙한 붉은 액체가 머리를 타고 흘러 눈에 들어가 고통스러웠다.
차가운 돌바닥에서 고개를 드니, 흐릿한 시야 너머로 저 멀리 골목길에 숨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미사키와 히요리가 보인다.
붙잡히기 직전에 끝까지 도망치라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저 녀석들은 이럴 때만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이 녀석이야?”
“예, 툭하면 빈민가 식료품점 곳간을 털던 그놈입니다.”
“3인조였잖아. 다른 놈들은.”
가면을 쓴 두 사람이 대화하는 틈에 멀쩡한 한쪽 눈을 부릅뜨고 바둥거리며 몸을 틀었다.
“그게 다 도망치고 이놈만…, 아니. 이 새끼가….”
“크…, 악….”
뻔하다고도 말하기 부끄러운 이런 수작질, 당연히 건방지고 꼴사나웠겠지.
두꺼운 워커의 굽이 허공을 향해 뻗은 손을 짓이겼다.
마치 딱딱하고 퍼석하긴 해도, 가까스로 훔쳐 온 썩은 빵을 달라며 팔다리에 매달리던 벌레들을 우리가 짓밟았을 때처럼.
안타깝지도 않겠지만 이런 상황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깨진 창문의 커튼 사이로, 누군가는 손가락만큼 벌어진 식당 문 사이로, 누군가는 온몸에 멍이 들어 죽어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지켜볼 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잡아다가 조금만 놀아주면 금세 은신처 위치를 불 겁니다.”
우리 같은 하루살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남의 원망만 빨아 먹을 뿐이니, 이처럼 누구에게도 눈엣가시나 마찬가지로 보일 것이다.
우리에게 웃어주는 이는 없다.
아니, 혹시 모르지. 이들에게 붙잡혀 고문당하고 바퀴에 깔린 인형 같은 몰골로 공터에 버려지면 저들이 보고 비웃기라도 해 줄지.
“끄…, 아아아아악….”
이를 악물고 무게 실린 워커를 들어 올렸다.
“하! 아직도 그럴 기운이 남았나.”
그럴수록 짓누르는 무게는 증오를 더 해 무거워져 갔지만, 더더욱 반대쪽 손을 뻗어 돌부리를 잡아당겼다.
“어딜, 가려고!”
“으아아악…! 우, 읍. 으읍…!”
머리를 걷어차여도, 등을 밟혀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비릿한 쇳물이 토쏠리듯 역류해도.
이쪽으로 도망쳐서 미사키와 히요리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만 도망치면 미사키도 포기하고 어떻게든 히요리를 데리고 추적으로부터 도망칠 거다.
“그, 그만…!”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아츠코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눈이 부은 탓에 고개를 들어도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아서, 가냘프게 떨리는 그 목소리만으로 그녀임을 눈치챘다.
“…공주. 저희를 뒤따라오셨군요.”
“그, 그만…. 이러다 정말 죽어요.”
“비켜요! 하…. 저번에도 그러더니. 그땐 마담의 전언 때문에 어떻게든 참았지만, 이번엔 그런 거 없어요!”
“하…, 지만….”
대체 어떤 표정으로 이런 위험한 일을 자처하는 걸까.
처지가 생각만큼 퍽 좋지 않다고 해도 공주는 공주다.
순순히 저들의 명령에 복종하면 최소한 이렇게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다리를 떨며 위협받을 일은 없을 터였다.
간부 중 한 명이 아츠코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조금씩 조금씩 다시 손을 뻗어 땅을 기었다.
그녀의 발을 앞지르고, 철컥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아츠코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만. 가자.”
“하지만…, 큭….”
무슨 변덕이 들었는지 두 사람이 총구를 거두고 떠났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이대로 나도, 그녀도 끝나리라 생각했는데.
적잖게 당황하며 어떻게든 실눈을 뜨고 올려다본 아츠코는,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괜찮아?”
그녀가 맥없이 널브러진 내 몸을 부축해 벽에 기대어 앉히며 말했다.
“무슨 생각이야….”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그런 건…”
그런 건…, 이곳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환상이다.
“너만 다칠 뿐이야….”
살아남는 데에 필요한 건 누군가를 밟고 서는 처절함 뿐이니까.
“괜찮아. 저 사람들…, 말은 험악하지만 나한테는 절대 공격하지 않으니까.”
“….”
아츠코는 아직까지도 무섭게 몸서리치고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종종 감시를 몰래 빠져나온 아츠코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츠코는 모두에게 친절했다.
항상 의심의 눈으로 사람을 경계하는 미사키에게도, 자기와 그녀를 비교하며 비관하느라 섣불리 말을 붙이지 못하던 히요리에게도.
나에게도.
먹고 자는 것이 부족하지 않은 또래 아이들이 노는 것처럼 재미있게 해줄 순 없었지만, 빈민가에서 주워들은 하잘것없는 이야기나 히요리의 서툰 실수에도 아츠코는 콘크리트에서도 드물게 피는 꽃처럼 활짝 웃어 주었다.
미사키가 쓰레기통에서 운 좋게 낡은 디지털카메라를 찾아 다 같이 사진을 남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가면을 쓰지 않던 시절에는 그녀의 미소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은신처를 들켰다.
“―놔!! 큭…. 히요리를 놔 줘―!!”
방심했다.
한동안 낯설고 아련한 감정에 휘둘려 신경이 느슨해진 탓이었다.
“사오리 언니!”
아츠코가 자주 모습을 감추던 것을 의아하게 여겼는지 ‘그녀’가 함정을 판 모양이었다.
“미사키!”
“크, 크읏….”
붙잡힌 히요리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미사키가 개머리판에 얻어맞고 완전히 제압당했다.
저렇게 부술 듯이 무릎으로 허리를 짓누르고 있어서야 꿈쩍도 할 수 없을 터였다.
“아아, 이것 참….”
무장한 병력 사이로 누군가가 우아하게 걸어 나왔다.
아츠코와 같은 색의 순백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녀 피부는 존재를 경고하는 것처럼 불그스름했다.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에 안색의 빛을 잃은 아츠코가 기계처럼 연신 중얼거리며 따라 나왔다.
“아츠코. 제가 무슨 연유로 일일이 당신을 속박하지 않고 풀어 두었는지 아시나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발광하는 아츠코의 두 눈동자만으로 나는 이 상황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신의 피가 고귀해서? 아니요…. 아니지요. 그건 의식을 위해 제가 필요로 하는 것뿐,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아츠코―!! 안 돼! 듣지 마!”
“그래요. 당신이 스스로 삶의 의지를 놓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아츠코!!”
“시끄럽네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우리는 어떠한 움직임도 취할 수 없도록 폭력에 둘러싸여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크큭큭. 좋아요. 이젠 자유로 당신을 속박할 필요가 없어졌군요. 제 입으로 족쇄의 위치를 가져다 바쳤으니. 들으세요, 아츠코.”
아츠코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녀의 수많은 눈을 응시했다.
“지금부터 당신이 또 한 번 이런 짓을 벌였다간 저들을 죽이겠어요. 아, 좀 더 확실히 하지요. 이쪽 관용어대로, 헤일로를 파괴하겠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그 스산하고 괴기스럽게 벌어진 입이 깔깔 웃으며 아츠코를 잡아먹을 듯이 위협했다.
아무리 무서워도 내 앞을 가로막았던, 그렇게나 친절하고 살가웠던 아츠코는 절망과 공포를 눈코입에서 하염없이 쏟아내며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끄덕였다.
“…저들을 끌고 가세요. 그렇게 좋으면 같은 분대에라도 배속해 드리지요. 준비되는 대로 ‘교육’시키세요.”
나는 아츠코를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스러운 것은 나의 나약함 뿐이었다.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그녀는 우리를 만나고 돌아갈 때마다 적잖게 고문을 받은 모양이다.
자유 같은 소리 하고 있군.
어제까지만 해도 깨끗하던 아츠코의 목과 팔다리에는 누구 것인지 모를 시커먼 증오가 들어있었다.
아츠코가 가면을 썼다.
마담의 명령이라고 한다.
아츠코가 웃음을 잃었다.
나는 끌려온 그날 이후로 8번 분대장이라는 이름을 떠받고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받았다.
다양한 전투 기술들과 모든 것은 헛되고 또 헛되다는 진리(Vanitas vanitatum omnia vanitas).
그건 교육이나 훈련이 아니라 세뇌에 가까웠던 것 같다.
8번 분대의 맨 앞에 서 버린 나는 어떤 일에도 고개를 끄덕여야 했고 손을 들어 반론하면 죽기 직전까지 구타당하거나 끔찍한 고문 시설들을 순회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건 나 혼자 감내하면 될 일이니까.
내게 지옥은 따로 있었다.
“일어나, 미사키.”
미사키가 죽은 사람처럼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숨은 아직 붙어있는 것 같은데, 손가락에는 미동도 없다.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다. 일어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히요리가 표정을 마구 구기며 달려와 다리에 매달렸다.
“그만…, 그만 해요…. 사오리 언니…. 제발….”
입술을 송곳니로 꽉 깨물며 내려다보니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저앉으면 고통받는 건 내가 아니다.
명령에 불복종한 미사키와 히요리였다.
“…큭.”
나는 있는 힘껏 다리를 걷어차 히요리를 떼어냈다.
잔돌 섞인 흙바닥을 미사키 옆까지 뒹굴고 바들거리며 신음했다. 거칠게 쓸린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일어나. 미사키. 히요리.”
미처 두 사람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또박또박 말했다.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져 초조해졌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가까스로 악에 받친 저 아이들의 의욕도 해이해질 게 분명했다.
꽉 쥔 주먹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
울 것 같은 눈망울로 아츠코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때, 아츠코는 가면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직접 손을 뻗지 못하고 아츠코에게 기대어 버린 나를 보고.
그럼에도 괜찮다며 웃고 있어 주었을까?
사격 훈련장에 둔탁한 증오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이런 지옥에는 퍽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머리칼의 소녀가 간부에게 지독하게 구타당해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안타깝지만 이 상황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
모두 시선을 피했다.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은 나약한 이가 어른의 ‘명령’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나섰다간 저 발길질의 끝이 그땐 어디로 향하게 될지.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아츠코가 있었다.
그녀는 나나 다른 이들과 달리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올곧게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오고, 감정이며, 육체며 무엇 하나 빠짐없이 깎여나가 마모되었던 그녀의 팔다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떨고 있었다.
그래, 그때와 같이 그녀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표정도,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그 가면 속에 여전히 꽃이 피어 있음을 믿었다.
비록 뜯기고, 잘리고, 넝마가 되어 가는 꽃잎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고개를 돌려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그만둬!!”
“비켜라, 8번 분대장.”
“헤일로를 부술 셈이야!?”
“제발…, 제발 그만…. 으흑, 으흐흑….”
“저 녀석은 우리에게 저항했다. 보통 독종이 아니야. 비키지 않으면 너도 같은 꼴이 될 거다.”
“쿨럭…, 쿨럭. 웃기지 마…. 누가….”
―‘같은 꼴’이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증오와 경멸에도 굴하지 않고 나서서 맞설 수 있다면.
“이놈이 감히!!”
“기다려!! 내, 내가…! 내가 이 아이를 가르칠 테니까!”
“가르쳐…?”
“…또 쓸데없는 짓을.”
미사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 나는 가르치는 건 잘하잖아? 히요리도, 미사키도 엄청 성적이 좋고, 고, 공주님도 내가 가르치고 있어. 그러니까, 나에게 맡겨줘. 내, 내가 잘 타이를 테니까…!!”
그때의 내 팔과 다리도 분명 흐린 시야 사이로 올려다보았을 때처럼 추하게 떨고 있었겠지.
하지만 어쩐지 마음속은 벅차올랐다.
어쩌면 나도, 너처럼.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환풍구가 없는 지하 감옥은 무척이나 습하다.
공기가 퀴퀴하고 먼지 때문에 목이 걸걸하다.
반딧불 같은 불빛도 하나 없이, 이곳은 완전히 암전되어 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칠흑 속에 들리는 건 쥐 새끼가 뛰어다니는 소리와 내가 내는 울음소리. 그리고, 추위에 비명을 지르는 입술의 경련뿐이다.
“다시는 어른의 말을 어기지 않을게요…. 다시는 반항하지 않을게요…. 희망을 품지 않을게요….”
벌써 며칠이나 홀로 이곳에 갇혀 있었을까.
배고픔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저 언제인지 알 수도 없는 밤이 찾아오지 않길 빌었다.
“다시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기도하지 않을게요…. 그러지 않을게요….”
매일 밤이 찾아오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찾아와 내게 헝겊으로 만든 두건을 씌웠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얼굴에 죽음보다도 차가운 증오를 부어 댔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이 춥고 고독한 밤에는 언제쯤 해가 뜰까.
그래, 그런 생각도 내겐 사치였다.
그렇게 또다시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서를 구하는 일뿐이다.
“제발…, 자비를….”
자비를.
공포와 증오에 잡아먹힌 나는 더 이상 망설이는 일도, 남의 눈치를 살피는 일도 없었다.
그저 내가 겪은 일이 다른 이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간곡히 바라며 내가 깨달은 허무를 최선을 다해 모두에게 가르칠 뿐이었다.
고로 남아있던 아츠코의 미소를 완전히 멎어 들게 만든 것은 나일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꽃을 나 스스로 꺾어버린 셈이다.
>[사진]
>[삿 쨩. 꽃봉오리가 맺혔어]
[들꽃…, 인가?]<
>[응. 이름은 아직 몰라.]
[아직?]<
>[나중에 선생님이랑 같이 알아보기로 했어.]
[그런가.]<
[….]<
저녁까지 건설 현장에서 일을 거들다 퇴근하는 길, 강변 둔치에 앉아서 아츠코에게 답장했다.
아츠코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건 바로 너의 삶이야. 사오리.’
모두와 함께 우리의 것이 아닌 증오로부터 도망쳤을 때, 아츠코는 가면을 벗고 웃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한 번 빛이 바랬던 것은 온전히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어색하게 싱긋거렸다.
[…활짝 피었으면 좋겠군.]<
>[그러게.]
>[꼭 그럴 거야.]
만약, 만약에 다시 한번 그때처럼 활짝 만개한 꽃을 볼 수 있다면―, 나에게 그럴 자격이 남아있다면.
나는 고개를 드는 중인 꽃봉오리가 시들지 않도록 두 번 다시 외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FIN.
***
2 / 2연습겸 트위터에서 4차 pv에 나온 어릴 적 아츠코 미소랑
5차 pv에 나온 수츠코 미소랑 대조하면서 잘 웃던 아이의
미소가 돌아왔다는 내용 보고 너무 뭉클해져서 써 왔다.
분명 올 여름에는 사오리도 그 아이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