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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선생님, 섣불리 진실을 믿지 마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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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uZWnn05wmI

(우클릭 - 연속 재생)

카데노코지 가의 비극

11,993자

​

​

환장할, 텅 비어 있다.

지금 나는 그야말로 텅 빈, 언제 죽었는지도 알 수 없이 까마귀에게 내장을 파먹힌 살덩이와 다르지 않다.

사흘째. 아니, 나흘째인가.

모르겠다. 뭐……, 됐다.

며칠이나 못 잤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세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럴 여력이 있거든 역겨운 것을 쑤셔 넣은 듯 가슴이 꽉 막혀 올라오지 못하는 가쁜 숨을 끄집어내는데 집중하는 게 낫고.

누군가 올라타 짓누르고 있는 듯한 눈꺼풀을 닫히지 않도록 지탱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백번 옳다.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입이 바싹 마른다.

솔직히 갑작스레 업무가 이렇게까지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아로나가 말하길, 최근 기상 사정이 몹시 좋지 않아 키보토스 각지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우후죽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바깥을 보면 그곳에는 심연밖에 없고, 육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장대처럼 내리고 있다.

분명 업무관과 외부를 유리가 가르고 그 경계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음에도 나는 유리가 미덥지 못했다.

이런 하찮은 유리 따위, 오늘 같은 날이 하루라도 더 이어진다면 저 심연이 대수롭지 않게 통과해 나를 집어삼켜 버릴 것만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주머니에 넣어둔 태블릿이 미약하게 진동했다.

“괜찮……, 지는 않아 보이네.”

괜찮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거울에 비친 몰골을 보아하니 그래선 뻔한 거짓말이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그대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만 쉬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

나는 푸석푸석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아로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이제는 정말로 쉬는 게 좋을 거라고 머릿속에서도, 몸속에서도 사이렌이 울려대고 있다. 쌓여있던 업무도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으니 분명 문제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어제부터였나.

나는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날씨가 날씨다 보니, 며칠 전부터 샬레에는 왕래가 없었다. 당번 학생 역시 내가 오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했고 대부분의 설비도 절전으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업무관은 마치 잠수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물이 무서워 눈코입, 그리고 귀를 틀어막은 채 수영장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처럼 컴컴했다.

어디에서도 그 흔한 기계음조차 들리지 않고 복도는 전부 불이 꺼져있다. 당연히 어떠한 냄새도, 인기척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방을 제외하면 지금 샬레는 숨도 쉬지 않고 죽어있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

​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

​

누군가 온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샬레의 보안 시스템은 방문하는 학생이 입구의 게이트를 통과할 때 휴대폰을 태그하면 그 정보가 곧장 내 컴퓨터로 넘어온다.

모니터 화면 한구석의 트레이 아이콘에 커서를 가져다 대자, 당연하게도 방문자는 0명으로 표시되어 있다.

“착각이겠지.”

만약 이게 착각이 아니라면 누군가 방문 절차를 거스르고 몰래 잠입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짓을 할 학생이 아예 없느냐 묻는다면 글쎄. 꼭 긍정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단, 여기가 내 집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샬레는 다르다. 언제인가부터 샬레의 보안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어기는 것이 금기시된 도의로 여겨지고 있다.

일전에 장난으로 샬레에 몰래 들어와 나를 놀라게 해 주고 싶다는 한 학생의 장난스러운 이야기에 근처에 있던 여러 명의 학생이 동공에 빛을 잃고 무채색의 화폭에 그려진 장승처럼 일제히 그 학생을 노려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미지의 위기감을 느끼고 그 아이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며 눈치를 주는 게 고작이었다.

보안을 중요시 여겨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어딘가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뒤로 장난치던 그 아이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 내가 알던 학생들이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일까. 만약 이게 착각이 아니라면, 지금 잠입한 건 학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니, 그만하자. 이 이상 생각에 꼬리를 무는 것은 정신에 해가 된다.

그래. 착각이다. 그렇게 단정 짓는 편이 합리적이다.

지금의 나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잠을 청한 적이 없으니, 이것이 현실이라고 자각하고 있음에도 육신과 영혼의 좌표가 어긋난 것 같은 미묘한 고양감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선생님. 어딘가 아프신가요?”

“……어? 아. 아니. 미안, 아로나. 잠시 멍때리고 있었어.”

아무튼.

이 나이 먹고 이런 말 하기 좀 민망하지만, 요컨대 겁을 먹어서 휴게실로 향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사실 날씨가 이 지경이 된 날부터 복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무서워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은 얼추 이 업무실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니까 굳이 나가지 않아도 좋지만, 이제는 이 긴장감을 내려두고 휴게실의 침대에서 편히 자고 싶다.

나중에 날이 개고 꾀죄죄한 모습을 학생들에게 들켰을 때 귀신이 무서워서 그랬다, 같은 이야기를 제 입으로 절대 꺼내고 싶지 않으니까.

「선생님, 누군가 샬레에 온 모양이에요. 마침내 완전히 이어졌네요.」

“응? 이 시간에……?”

뭔가 이상하다 싶어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내어 보니 아로나가 평소처럼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프라나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방문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마우스를 움직였다.

[방문자 수 : -10명]

“아무도 안 왔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어라라? 이상하네요. 제 센서에는 분명 한 분 오셨다고 감지됐는데……. 아. 그. 제 센서에 이상이 생겼나 봐요! 분명 그런 거예요.」

“흠…….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 복도로 이어지는 문앞의 조명이 깜빡거린다. 얼마 전부터 상태가 좋지 못한 것 같더니 슬슬 수명이 다한 모양이다. 다행히 완전히 죽은 것은

​

​

―복도에 누군가 서 있다.

​

아니, 서 있었다.

“뭐, 뭐야. 아로나, 방금……. 방금 봤어?”

「…….」

아로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정수리를 시작으로 발끝까지 피가 바싹 마르는 싸늘한 감각이 살갗을 찌른다.

잘못 본 것이라 믿고 싶지만, 분명 방금 복도에 누군가 서 있었던 것 같았다. 잠깐. ‘누군가?’, 그건 정말 사람이었을까? 어둠 속에서 일순간 투영되었던 그 모습은 머리가 보이지 않는 장신에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몸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넝마쪽을 두른 허수아비 같은―

「선생님, 확인하지 않으신 모모톡이 있어요.」

“어?”

겁에 질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던 나는 차분하다 못해 얼음장 같은 아로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아로나는 웃고 있지만, 여전히 프라나는 보이지 않는다.

분명 아까 전에 휴대폰을 확인했고, 확인하지 않은 모모톡 같은 건 없었다. 진동이 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재차 확인해 보니.

동영상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유카리가 보낸 것이다.

표정에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영상을 재생하려는 순간, 아로나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어?”

「그거 누르시는 순간부터 절대 뒤를 돌아 서랍장 위의 천장 뚫린 곳을 보시면 안 돼요.」

“서랍장 위에 뚫린 곳이 있었던가? 그런데 갑자기 왜?”

「그건 저도 몰라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그럴 리가……. 만약 보면?”

​

「안 돼요―!!」

​

​

“아, 아로나?”

깜짝 놀랐다. 처음 듣는 아로나의 겁박은 싯딤의 상자 스피커가 버티지 못하고 찢어져 귀를 아프게 했다.

「그그그, 그러면 제가 지는 거잖아요……. 선생님…….」

“……미안해. 알겠어. 조심할게.”

오늘의 아로나는 어딘가 이상했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이상 따지는 것을 단념했다.

아로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척을 하려는 건지, 나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영상을 재생했다.

카메라가 약간 흔들린다. 적당히 휴대폰을 거치할 위치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카데노코지 신사의 돌탑 앞이다.

곧, 무녀 복장을 차려입은 유카리가 화면 가운데에 앉는다. 그리고 늘 함께 다니던 참새 사용인과 반야의 가면을 쓴 8명의 사용인이 그녀의 뒤에 부동자세로 선다.

“선생님. 이 영상을 보고 계실 즘이면 아직 무사하실 거라고 믿고 싶사와요. 혹시 화면이 보이지 않거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요? 네. 백화요란의 엘리~트 카데노코지 유카리여요.”

약간 불안한 눈빛. 하지만 목소리는 기운을 잃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유카리였다.

“선생님. 현재 키보토스에는 왜곡된 날씨와 함께 괴이 현상이 만발하고 있사와요.”

유카리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어느새 뒤에 있던 사용인이 한 명 늘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건 저희……, 저희 카데노코지의 잘못이어요.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순간 사운드가 찢어져서 말이 끊긴다. 참새 사용인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의 이상을 발견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대로 후회에 안주해선 안 되어요. 저는 선배들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사와요.

선생님. 믿어 주실지 모르겠지만, 키보토스에는 반대편이 있사와요. 이곳과 몹시 흡사한 곳이어요.

그리고 카데노코지가의 오래된 사당에는 반대편과 이어지는 우물이 하나 있사와요. 원래는 그 우물의 바닥이 메꾸어져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뻥 뚫려 있사와요.

아니지요. 명확히는 뚫려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입으로 뻐끔거리고 으깨서 뭉친 고깃덩어리 같은 것이 맥박치는 @#$@ 님으로 변해 있사와요.”

마찬가지로 사운드가 깨지는 구간이 있다. 갑자기 참새 사용인이 돌탑 앞에 서 있는 토리이에 부리를 쪼기 시작한다.

“선생님께서는 원래 백귀야행 연합학원이 먼 과거에는 분란과 광란으로 소용돌이치는 전쟁터였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천하 만물의 기를 다루는 이가 적고, 이면의 틈새를 관리하는 이가 없었던 당시에는 괴이의 장난과 욕망에 휘둘린 자들이 미쳐 서로의 멱을 탐하고 욕을 탐하며, 괴기를 축제처럼 즐기고는 했사와요.

초대의 카데노코지는 그것들이 사는 세계의 음기와 이곳의 양기를 모두 지니고 태어나 이면의 틈새를 관리할 힘을 얻었다고 들었사와요.

카데노코지는 그것들에 씐 자들을 하수인들과 함께 모조리 잡아 와 이 사당 안의 우물 아래에 산채로 처박았고 그러자, @@!@# 님으로 변한 우물은 생명체처럼 그들을 씹어 삼켰사와요.

괴이들을 반대편으로 돌려보내는 행위, 그것을 카데노코지가에서는 어스름에 숨기기라고 한답니다.”

참새 사용인이 부리를 쪼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뒤에 서 있던 사용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친다. 무언가를 응원하는 것처럼 들린다.

“어라. 사용인 씨, 화장실이 아주 급하셨나 보네요.”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참새 사용인의 부리에 조금씩 금이 간다. 사용인들의 박수 소리가 무언가에 쫓기듯 거세진다.

“그런데 거기는 변기가 아니지 않사와요? 아무튼, 그렇게 어스름에 숨기기가 끝나고 초대 카데노코지는 곧장 우물 바닥에 양기를 잔뜩 머금은 사양토로 덮어 우물의 입을 틀어막았사와요.

그런데, 최근. 그러니까 때마침 하늘이 붉었던 그날 즈음부터인가, 우물에 음기가 쌓이기 시작한 거시와요. 얼마나 빨리 쌓였는지, 저희가 알아챈 것도 바로 며칠 전이어요. 몇 달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튼튼했던 봉인은 본디 이렇게 삽시간에 풀리지 않사와요.

그래서 미처 제때 대응하지 못했고……, 지금에 이른 것이어요. 지금 키보토스는 반대편과 이어져 그곳에 살던 그것들이 건너오고 있사와요.

최대한 빠르게 @#%!# 님의 봉인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어요.

일단 키쿄 선배가 선생님의 안전을 최우선 사항으로 생각해 백련을 지닌 나구사 선배를 샬레로 보냈사와요. 나구사 선배가 샬레에 도착하면 절대 마중 나가지 마시고 비상구로 탈출해 고개를 숙이고 계시어요.

절대. 고개를 드시면 안 되어요. 절대여요. 그렇게 기다리시면 나구사 선배가 선생님을 모시고 가장 안전한 저희 신사 별관으로 안내해 주실 거에요.

그럼, 지금부터 제가 긴히 드리는 말씀을 잘 기억하시어요.”

마침내 콰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참새 사용인의 머리가 완전히 으깨져 한쪽으로 덜렁거리고, 그 내용물과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다.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하지만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머리가 사라진 그녀의 목소리가 어떻게 휴대폰 마이크에 잡히는지 모르겠다. 박수를 치던 사용인은 1명이 더 늘었고, 그들은 더 큰 갈채와 함께 우는 소리까지 낸다.

“그것들은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사와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인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허물. 그것들을 상대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어요. 절대 이성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척추뼈가 드러난 참새 사용인의 목 절단면이 부글부글 끓더니 전신을 덮은 피보다 더욱 강렬한 붉은색 피부의 도마뱀이 흙바닥을 기어다닌다.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다. 어디선가 얼굴을 본 기억이 있지만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나왔다!”

참새 사용인이 쓰러진다. 박수를 치던 하수인들은 울고불고 자지러지며 더욱 그 기세를 더한다. 손뼉에서 피가 나는 이들도 보인다. 도마뱀이 그들에게 향한다.

“아! 대체 얼마나 급하셨던 거시와요! 하는 수 없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어요. 배설물은 제가 치워드리겠사와요.

흠흠. 그리고 당연히 그것들을 자극해선 안 되어요. 어떻게 하면 자극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면, 저도 말씀드릴 게 많지 않사와요.

개체마다 다르거든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들은 선생님이 알고 계시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어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사와요.”

하수인들이 하나씩 비명을 지르며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기분 나쁜 소리가 이어진다.

“그것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마시어요. 만약 그것들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할지여도. 선생님, 섣불리 모든 진실을 믿지 마시어요.

개체에 따라서는 선생님을 꿰어내 해하려는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진정으로 선생님을 보호하려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사와요. 하지만 선생님은 절대 그것을 구분하실 수 없으니 믿을 건 자신뿐이라 여기시어요.

마지막으로 만약 이미 괴이와 접촉했거나, 접촉한 것 같은 감각을 느끼셨다면 기록을 찾으시어요. 어떤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으시는 선생님이시니 분명 기록을 남겨두셨을 것이와요.

꼭 무사하시어요.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 님에게 필요한 분이니까요.”

영상은 여기서 끝났다.

나는 이 영상을 맨정신으로 끝까지 보았다는 성취감과 거미처럼 털끝을 타고 오르는 역겨움에 전율하는 팔뚝을 마구 문질렀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있는 건 유카리의 말대로 누구의 말도 믿어선 안 될 것 같다는 것뿐.

잠깐. 이 영상조차 내가 믿어도 되는 걸까? 이런 게 정말 말이 되는 일이긴 한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소란스럽긴 해도 그렇게나 화기애애했던 키보토스가?

그래. 영상은 합성일 거야, 몰래 카메라 같은 학생들의 장난일 거야.

나는 이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창문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간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장대같이 무언가가―

​

​

사람이 떨어졌다.

​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너무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인제 보니 창문 구석구석에 끈적해 보이는 붉은 액체가 묻어있었다. 위로 향하는 듯한 누군가의 손바닥과 발바닥 자국이었다.

공포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와중에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건 잘못 본 게 아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밖이 너무 어두워 인상착의나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가녀린 체구, 커다란 눈. 그것은 곤두박질치는 그 찰나의 순간, 손에 든 원통을 통해 명백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래……. 기록, 기록을 찾아야 해…….”

「선생님. 뒤. 보시면. 안 돼요. 선생님……. 도망치셔야 해요.」

아로나가 당부했다. 그런데 방금.

“방금 혹시 프라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아니요. 그건 프라나 쨩이 아니에요. 프라나 쨩은……. 부정. 선생님 저는…….」

줄곧 웃고 있던 아로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밤 호수에 떨어져 날아가는 낙엽만큼이나 쓸쓸해 보이는 눈망울이었다.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그녀가 당부한 대로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쳐 책상으로 돌아왔다.

“이건…….”

한참이나 정신없이 어질러진 책상 위를 뒤적거리다 노트 한권을 발견했다. 한 번도 사용했던 적이 없는 노트인데, 낯선 사용감이 생생하게 묻어있었다.

―――

1페이지

무언가 잘못됐다. 씨발 이건 단단히 뭔가 잘못됐다고.

샬레가 이상하다. 아니, 정확히는 키보토스가 이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연락했던 아이들과도 연락이 안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연락망이 두절되었다.

싯딤의 상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로나가 침착하게 상황에 대응하려고 했는데 씨발.

그때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

먼저 사태 파악에 나선 아로나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자 싯딤의 상자가 먹통이 되었다.

내 눈이 삔 게 아니고서야 그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화면은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얼굴이 게임 같은 데서 버그로 그래픽이 깨진 것처럼 뒤죽박죽이 된 프라나가 피눈물을 흘리며 아로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겁에 질려 업무실을 방황했고 그것과 마주쳐 버린 것이다.

내 좌석 뒤 서랍장 위 천장의 뚫린 곳.

절대 쳐다봐선 안 된다.

좆되고 싶지 않다면

아무튼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의 나는 멀쩡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기록을 남긴다.

잠깐, 창문 밖으로 뭔가 떨어졌는데?

―――

​

―――

2페이지

이게 씨발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방금까지 분명 내 몸은

아니, 됐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적어도 지금은 멀쩡하니까.

아프지도 않고 전부 멀쩡히 붙어있다.

확실한 건 절대 창문 앞에 서 있어선 안 된다.

창문에는 그것의 자국이 남아있다.

그 자국이 무엇인지 궁금해해선 안 된다.

들여다보는 순간 하늘에 뭔가 떨어질지도, 뭔가 올라올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것과 한 번 정도 눈이 마주치는 것은 괜찮다.

나는 그게 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씨발 올라오는 것과는 절대 마주쳐선 안 된다.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최소한 절대 팔이 뻗는 거리에 있으면 안 된다.

유리는 날 지켜주지 않는다.

지금 나는 기억과 관련된 어떤 정신병에 걸린 모양이다.

이 노트를 발견했을 때, 나는 1페이지에 쓰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아로나에게 혹시 아는 것이 있냐고 묻자, 무언가 떠올린 듯 절대 앉은 자리에서 뒤돌아보지 말라고 비명을 질렀다.

또다시 싯딤의 상자가 먹통이 되었다.

나는 잔뜩 겁에 질렸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총학생회와 이어지는 비상 연락 수단이 있는 휴게실까지 가보려고 한다.

―――

​

―――

3페이지

이걸로 확실해졌다.

지금 쓰는 건 3페이지지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 3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로나의 상태를 보고 깨달았다.

이 노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아로나에게 묻자, 아로나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기만 했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온몸을 벌벌 떨며 눈물 흘리는 아로나를 달래고 자초지종을 묻자, 그녀는 절대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그럼 선생님이 죽는다고 말했다.

아로나는 내가 알아선 안 되는 것들을 알고 있는지 꼭 필요한 정보 외에는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싯딤의 상자가 먹통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프라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아서 애써 무시해야만 했다.

휴게실로 가야 한다.

하지만 절대 냉장고 불만 깜빡이는 식당에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

무언가를 추잡스럽게 먹는 소리가 나든, 찰파닥거리는 발소리가 나든 일절 모르는 척해라.

먹을 거라면 업무실의 작은 냉장고 안에도 있고 휴게실은 식당에 들르지 않아도 갈 수 있다.

더 이상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좆됐다.

방금 생각났는데 며칠 전 휴게실 열쇠를 도서관에 두고 왔었다.

도서관부터 가야 했는데.

―――

​

―――

4페이지

씨발씨발씨발

당장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

키보토스의 시간이 되돌아가는 건 줄 알았는데, 돌아간 건 내 시간뿐이었다.

나구사는 이미 샬레에 침입했다.

두 명. 두 명이다. 두 명의 나구사가 샬레에 있다고. 씨발

목소리마저 똑같다. 난 도무지 구분할 자신이 없어 무턱대고 도망쳤다.

애당초 한쪽이 진짜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잖아.

대체 누가 진짜였지? 유카리는 내게 누구를 보낸 거지?

나는 씨발 진짜 난 누굴 믿어야 되는 거지?

아무튼 이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그 녀석이 온다.

붙잡히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차라리 붙잡힐 바에 샬레 어딘가에 있는 허수아비 같은 그림자를 찾거나 닥치고 식당으로 뛰어가라.

다시 한번 강조한다.

끝나고 싶지 않다면 식당으로 가라.

나는 그 선택이 더 나은 미래로 이어지리라고 믿고 있다.

마주치기 전에 총학생회와 연락이 닿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유일한 상책이다.

당장 이 노트를 가지고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

도서관에는 무턱대고 들어가선 안 된다.

반드시 아래 적힌 대로 행동해야 한다.

1. 드물게 도서관 안에서 머리카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절대 휴대폰의 불빛을 정면에 비추어선 안 된다. 그것은 빛을 싫어한다. 노트를 보기 위해 불빛을 비출 때는 입구에 있는 검은색의 작은 손전등을 이용해라. 밝기를 줄이고, 불빛은 반드시 아래로만 향해야 한다.

……

―――

이 아래부터는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열쇠를 챙겨서 나오기까지의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 노트에 쓰인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게 버거웠고, 상황을 냉정하게 이해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지끈거렸다. 뇌를 숟가락으로 파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다.

하지만 하나 완벽하게 이해한 건 이대로 주저하고 있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일 분, 이 분 시간이 지나자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온 세상의 공포가 나를 향해 뛰어오는 듯한 조급함, 초조함, 긴박함.

나구사가 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이 노트에 적힌 것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고민할 틈도 없이 나는 노트를 챙겨서 복도로 향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무거운 발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거친 숨소리가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흐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밝기를 최대로 낮춘 휴대폰의 불빛만을 의지했다.

도서관의 입구가 있는 중앙 로비와 가까워질수록 어둠 속에 도사린 불가해한 공포들 때문에 속이 메스꺼웠다. 위가 뒤집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찰팍거림, 천장의 들썩거림, 다른 층의 쿵쿵거림.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것들의 날카롭고 기괴한 존재감이 이 칠흑 속에서도 선명하게 피부를 긁어댔다. 아로나는 절대 큰 소리를 내선 안 된다며 경고했고,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심각한 편집증 환자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더 이상 아로나의 말을 믿기 힘들다. 지금 그녀는 내가 알던 순진한 아이가 아니었다. 언제부터? 처음? 처음부터 이상했나?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 또한 서서히 미쳐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고 돌이킬 수 없는 방면에서 자멸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나는 천신만고를 삼키며 정신적으로 내몰린 채, 어떻게든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내부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에 나는 떨리는 숨을 애써 억누르는데 급급했다.

이런 거,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

안에서 무언가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쯤.

​

1. 드물게 도서관 안에서 머리카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절대 휴대폰의 불빛을 정면에 비추어선 안 된다. 그것은 빛을 싫어한다. 노트를 보기 위해 불빛을 비출 때는 입구에 있는 흰색의 작은 손전등을 이용해라. 밝기를 줄이고, 불빛은 반드시 아래로만 향해야 한다.

​

가위에 눌린 듯, 행동 하나하나가 무거웠다. 식은땀에 젖어 축축해진 손으로 나는 첫 번째 주의사항을 강박적으로 따랐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차례차례 실행에 옮겼다.

2. D열의 책장 옆 트레이 위에 열쇠가 있다. 하지만 바닥 곳곳에 책들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절대 책을 발로 차거나 밟아선 안 된다.

3. 어떻게든 소리를 참아라. 그것은 빛뿐만 아니라 큰 소리에도 반응하는데, 도서관 벽에는 소리를 낼 만한 물건들이 많이 걸려 있다.

4. 찾았다면 곧장 휴게실관으로 향하지 말고 1분, 아니. 3분 정도 제자리에서 대기해라. 그 뒤에 들어왔던 도서관 입구로 천천히 나와라.

5. 앗싸리 도망칠 때는 손전등의 밝기를 높여 그것의 눈을 향한 뒤 전력으로 도망쳐라. 대충 10초 안팎으로 도서관 밖으로 도망칠 여건이 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6. 다음으로 고개를 들지 말고 뒤를 돌아

​

​

***

나폴리탄 스타일로 써 봤다.

근데 무서운 소설 자체를 처음 써 봐서 내가 제대로 분위기를 짜냈는지 모르겠네.

재밌게 봐 줬으면 좋겠다.

난해한 만큼 해석이 있긴 한데 그냥 개인이 보고 추리하는 편이 재밌을 거 같음.

어차피 이 장르에서 개연성은 있으나 마나 한 장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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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4.08.19창작

소설) 선생님, 섣불리 진실을 믿지 마시어요.

#선생#소설
좋아요 0댓글 29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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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DC
타케루토작가
게시물 45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YouTube
게시일2024.08.19 23:51
조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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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9

나
ㅇDC
ㅇㅇ124.08.19

블끼야아아아아아악

ㅇDC
ㅇㅇ224.08.19
디시콘
ㅇDC
ㅇㅇ324.08.20

으아아아아ㅏ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ㅇDC
ㅇㅇ324.08.20

이런 루프물 나폴리탄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저 정도로 상세한 메뉴얼이 작성될 정도면 도대체 몇 번을 리트라이해야 가능한 건가 싶음. 못해도 천 단위로는 안 끝날 것 같은데...

ㅇDC
ㅇㅇ424.08.20

잘 볼게

ㅇDC
ㅇㅇ524.08.20

미사키 메이 오랜만이네

타DC
타케루토작성자24.08.20

무서운 거 써 보려니까 문득 쟤가 생각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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