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84자

교회로 돌아온 세나는 곧바로 응급의학부 학생들에게 불려가더니 안쪽 방으로 사라졌다. 선생이 귀를 대고 들어보니 압도적인 우위 하에 전투가 진행되었기에 찰과상 정도를 제외하면 게헨나 학생 중에 부상자는 0이었으나, 자신의 메디컬 체크는 대충 넘긴 채로 제압된 아리우스 학생의 응급처치를 맡게 된 모양인지 무사히 돌아왔음을 기뻐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일에 착수해야 하는 모양이다.
선생은 그런 모습을 보고 나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차가 날아가던 광경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더니 몇 명분 치료를 끝낸 듯한 세나가 돌아왔다.
“그럼 오늘 밤에 잘 곳 말인데요.”
“아리우스 아이들도 치료해 줬구나. 수고했어, 고마워.”
세나의 말을 억지로 농담 취급하면서 말을 가로막았다. 누구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조금 불만스럽게 입술을 내민 세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한숨을 쉬더니 다른 용건을 꺼냈다.
“사실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다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리우스 학생?”
“네. 거의 경상이라 치료할 필요가 없어서 교회 지하실에 있는 독방에 들어갔습니다.”
***
세나와 함께 돌계단을 내려가, 교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음산한 분위기의 지하실로 들어선다. 서늘한 느낌이 드는 돌벽으로 둘러싸여 독방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지하감옥 같은 분위기였다. 철창으로 둘러싸인 방들을 본 선생은 이 방들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을지에 생각이 미쳐 기분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세나가 옆에 딱 붙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다.
“선생님께서는.”
세나의 목소리가 돌에 반사되어 평소와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이런 광경은 별로 보기에 좋지 않으시겠네요.”
“괜찮아, 너야말로 어때?”
세나의 배려에 선생도 다시 배려로 대답하자 조금 더 강하게 부정하려는 듯 세나가 약간 빨라진 어조로 되물으려는 듯이 말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아졌습니다. 피나 꺼림칙한 광경을 원체 많이 봐서, 완전히 감각이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을 좋지 않게 보시는 선생님께서 옆에서 지켜봐 주시니까요. 저 혼자 생각했을 뿐입니다만, 선생님께서 계신 덕에 저도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세나는, 괜찮아.”
그럴싸한 말을 건넬 수 없었다는 사실에 후회하는 선생. 세나는 걸음을 멈추고 목적지를 가리켰다. 때마침 화제가 바뀌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쪽 방입니다.”
그 방은 조명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공간이었다. 선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묘하게 높은 천장에 매달린 램프와 너덜너덜한 침대, 그리고 의자였다. 또한 방 구석 바닥에 부자연스럽게 뚫린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의자에 앉지도 않고 웅크려 있는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히익.”
소녀는 사람의 기척을 감지한 순간 비명을 지르더니 그 작은 머리를 더욱 깊숙이 움츠리려는 듯 작게 웅크렸다. 선생은 적의가 없다는 것을 표현할 생각이었지만,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자 말을 걸 수 없었다.
“타나시 나즈나 씨, 저입니다. 히무로 세나입니다.”
그러자 세나가 이미 확인한 듯한 이름을 불렀다. 선생이 보기에 소녀는 몸의 떨림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는 선생에게 세나가 정확하게 속삭여 준다.
“아무래도 저희 게헨나가 아니라 아리우스 학생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작전상 실패 때문에 보복을 당할까 상당히 두려운 모양입니다. 아마 선생님과 면담을 요구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구나.”
내용을 이해한 선생은 세나에게 짧게 대답한다. 그러자 세나는 한 발짝 물러나 선생과 거리를 두고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도 말씀드리듯이 저희 응급의학부는 외과 전문입니다. 정신적 치료는 전문 분야가 아닙니다. 특히 저는…”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지 세나는 웬일로 말을 하다가 말았다.
“아무튼, 선생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까지 말을 마친 세나는 선생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
선생은 짧게 대답한 뒤 방 안에 있는 나즈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즈나 쨩, 안녕. 나는 샬레의 선생이야. 세나에게 들었어. 나한테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그렇지? 세나.”
“네.”
소녀는 고개를 살짝 떨궜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고, 격자 문 너머로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나즈나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나머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고개를 푹 파묻는다. 그래도 선생은 나즈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세나도 그동안 선생의 곁에 있었다. 잠시 후 나즈나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샬레의 선생님.”
선생이 아는 사람 중에서 빗대어 말하자면 시모에 코하루를 연상시키는 가녀린 몸에서 나오는 새된 목소리는, 선생에게 나즈나라는 소녀가 1학년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저기, 제 이야기… 들어주실 수 있나요?”
“응, 천천히 말해도 되니까 이야기해 봐.”
한쪽은 방 구석에 앉은 채로 위를 올려다보고, 다른 한쪽은 방 입구에서 다정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 눈이 마주친 채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저… 이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은, 아리우스로?”
“저… 저 때문에 부대원들이 숨어있던 곳을 들켰어요.”
세나와 선생은 나즈나의 그 말이 방금 전에 있었던 전투의 발단이 된, 게헨나 측의 최초 정찰대를 향한 발포를 뜻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숨어서 지나가게 두었어야 하는데 눈앞에 있는 이 소녀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부대의 의사에 반하여 발포를 했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공격을 받아 부대가 괴멸한 것, 첫 발포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접하자 그 상황 속에 모두가 막연하게 느꼈던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 같이 쓸모없는 애는 역시 아리우스에 있을 자격이 없어요. 대원들한테 사과해 봤자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마담에게도 분명 심한 벌을 받을 거예요… 분명… 죄송해요… 죄송해요죄송해요.”
그 뒤로 선생도 세나도, 그저 거듭되는 눈물 섞인 참회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져 버린 소녀에게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생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선생님,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선생의 뒤에서 같이 걷고 있던 세나가, 서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똑같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게헨나는 포로를 잡지 않습니다. 응급의학부의 치료도 예외는 아닙니다. 치료는 평등하지만 보호 또한 평등해야 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아리우스 학생은 신병을 확보한 뒤 예외없이 돌려 보내게 됩니다.”
세나의 말은 지하실의 공기만큼이나 감정이 배제된 차갑고 냉정한 말이었다.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선생은 세나에게 대답했다.
“당연히 게헨나의 방식에 간섭할 생각은 없어.”
“샬레에서 신병을 억류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게헨나의 전쟁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번 사안에 샬레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테니까요.”
선생의 대답에 세나는 반사적으로 반론하고 있었다. 세나가 그렇게 말하자 지상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선생은, 돌아서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짓는 세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 생각 안 해. 그 아이는 아리우스 학생이니까, 아리우스로 돌아가야 해.”
그 말을 들은 세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놀란 목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금빛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반응이 의외라고 생각한 선생은 오히려 세나의 반응에 더 신경이 쓰였다.
“왜 그래? 세나.”
선생의 목소리에 조금 당황했던 세나는 이내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고개를 가볍게 젓더니 선생의 물음에 대답한다.
“아뇨,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외였습니다. 그녀를 감싸주실 줄 알았는데요.”
세나가 보기에 선생의 존재는 이상 그 자체였다. 행동 하나하나를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통 이해할 수가 없는, 하지만 납득만큼은 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선생이기에 세나는 자신의 의사와 반대로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를 샬레의 권한을 이용해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선생의 대답은 그런 세나의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학생의 편에 선다는 건, 어느 학생을 편애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리우스 학생들의 다양한 감정들을 한몸에 받으면서 풀려난 뒤 걸어서 자신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배웅한 뒤, 선생과 세나는 잠자리였던 차량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방으로 배정된 교회의 어느 방에서 단둘이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나는 말야.”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이야기가 끊겼을 때, 선생은 세나에게 항상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말을 꺼내려던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들어오세요.”
세나가 문을 열자 만마전 제복을 입고 총을 든 두 사람이 문 밖에 서 있었다. 세나의 모습을 본 둘은 크게 놀랐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세나에게 이렇게 전했다.
“전에는 신세 졌습니다. 덕분에 전선의 동료들과 합류할 수 있게 됐어요.”
선생은 듣고 나서야 알았지만 이 둘은 부비트랩에 피해를 입어 세나에게 치료를 받은 학생들이었다. 배에서 피를 많이 흘리는 모습을 분명 봤는데, 새삼스레 키보토스 사람의 강인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하더니 도망치듯이 떠나는 학생들을 세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잠옷으로도 보이는 하얀 원피스 차림의 세나는 다시 선생이 앉은 테이블로 돌아왔다.
“전황이 이런데, 저렇게 급히 전선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을 텐데요…”
걱정하는 듯이 말하는 세나에게 선생은 방금 하려던 질문을 다시 하려 했다. 하지만 호흡 하나 차이로 세나에게 추월당하고 말았다.
“선생님, 들어 주시겠어요?”
“...왜?”
“저는 부상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세나의 눈에는 초롱초롱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치료를 원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게헨나 학생 두 명과 아리우스 학생 다섯 명을 치료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아팠을 겁니다.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전장으로 나가면 또 다시 같은 일을 당할 가능성이 낮지 않을 겁니다…
아리우스는 모르겠지만 저희 게헨나는 본질적으로 군대가 아닙니다. 적진에서 도망쳤다고 해서 총살형에 처한다는 군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그랬듯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다들 자신의 의지로 전선으로 향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세나는 말 그대로 고민에 빠진 듯했다.
“제 치료 행위는 구원의 손길도 뭣도 아닙니다. 치료하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에는 더 큰 괴로움이 드러날 뿐이에요. 저는 고통을 고통으로 덮어 사람들을 더욱 큰 고통으로 이끌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쏟아져 나오는 세나의 말에는 끝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시체가 되는 게…”
“세나.”
자칫하면 아리우스의 그 소녀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질 수 있었던 세나를 선생은 한 마디로 제지했다.
“나는 세나 덕분에 이렇게, 지금도 살아있는 거야.”
눈을 크게 뜨는 세나를 본 뒤, 선생은 에덴조약 편에서 생긴 상처 부위를 문질러 보았다. 옷 위로는 보이지 않는 그 상처는 당시 상처의 깊이와 출혈량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봉합되어 옷을 벗긴다 해도 아무도 상처를 입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할 만큼 깔끔한 상태다.
“아까 그 둘도 마찬가지야. 물론 세나 말대로 왜 그런 위험한 곳에 몸을 던지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나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몸이 움직이는 이상, 뭐라도 할 수 있는 이상, 죽지 않는 이상,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어. 우리는 시체가 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리고, 세나 덕분에 시체가 되지 않을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쉽게 알 수 없는 건 당연한 거야, 세나. 네가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게 아냐. 세나는 타인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는 착한 아이야.”
“만약 너한테 내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착각하는 거야. 나는 단 한 번도 마음을 읽었던 적이 없어. 듣고, 말하고, 오해하고, 그래도 또 말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면서, 그러다가 겨우 조금씩 알게 되는 거야.”
“그래서 말야, 세나. 너처럼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해 주는 학생은 참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어져.”
세나는 선생의 말 하나하나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을 바라보던 시선이 방금 전까지 흔들리고 있었다가 점차 올곧게 변했고, 어느 단계에 이르자 이윽고 열기를 띤 눈빛으로 변했다.
“...아.”
선생은 이를 눈치채고 다급하게 변명해 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하, 학생으로서 말이야! 세나! 세나!?”
마음이 녹아내린 뒤, 깊은 곳에 있던 감정이 표출된 것이다.
“저도.”
“사모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거예요.”
세나와 대화를 나눈 다음 날, 세나가 일단 게헨나로 돌아가겠다는 말에 교회에 남을까 고민했지만 혼자서는 손쓸 도리도 없고, 혹시라도 이 교회가 다시 전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나와 동행하기로 했다.
그러기로 마음을 먹었더니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세나가 탄 채 기다리는 차의 조수석에 앉자 세나는 여느 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선생에게 인사를 한 뒤 지극히 사무적으로 운전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선생도 차츰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럼 이번에 돌아가는 목적은 정보 수집 겸 보고구나.”
“네. 그러니 만마전 본부와 트리니티 구호기사단 본부에 가려 합니다. 이동에 시간이 걸리니 어디서 하루 묵도록 하죠.”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샬레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저희 집으로 가도 되겠지만 아침 일찍 합류해야 일정에 맞출 수 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선생님을 그쪽에 내려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만.”
“안 갈 거야.”
세나의 그 제안에 대해서만 선생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 더 확인할 사항이 있는데요.”
“오늘 게헨나 방문 말씀입니다만, 비교적 짧은 시간 내로 끝낼 예정입니다. 그럼 오늘 오후에 시간이 비게 됩니다. 곧장 샬레로 가도 되겠지만 기왕에 시간이 나니까요.”
“데이트하시지 않을래요, 선생님.”
데이트 약속을 잡고 게헨나에 도착하자마자 선생과 헤어져, 마코토가 없는 만마전 본부에 적당히 보고를 끝낸 세나는 먼저 응급의학부 부실로 걸음을 옮겨 부재 중인 학생들에 대한 보고와 지시를 꼼꼼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그 다음 그대로 혼자 선도부에 방문했다.
“흐음, 그래서 굳이 내가 있는 곳까지 수다 떨러 왔구나.”
“네.”
“미안한 척이라도 해 봐. 나도 한가하지는 않으니까.”
바쁘게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인상을 받은 세나도 그 말대로 선도부원들이 게헨나 전역에 파견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도부장은 땡땡이 치느라 바쁜가 보네요.”
“오해 살 만한 소리 하지 마, 세나. 아리우스랑 전쟁하는 걸 트리니티랑 전쟁을 한다고 착각한 애들이 찬성이든 반대든간에 얼마나 난동을 부리는지, 넌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 요즘은 아코랑 치나츠가 곧잘 처리해 주니까, 나는 이오리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 불려나갈 뿐이야. 그리고 나머지는 정치적인 일들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선도부장. 저는 이제 선생님과 데이트를 하려고요.”
“시비 걸러 왔어?”
서류에서 시선을 들어 세나를 빤히 쳐다보는 히나.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일촉즉발의 전장보다도 더 무서운 그 분위기에 기절할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그 자리에는 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둘의 유쾌하고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죄송합니다, 히나. 제가 선생님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아냐, 그 사람은 그야말로 죽여도 못 막을 사람이니까.”
“...정말 그 말씀대로네요.”
“선생님한테도 분별력은 있고, 세나 옆에 있어 준다면 어느 정도는 마음이 놓여. 최전선에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
“급양부가 동행하는 걸 막은 사람이 히나 아니었나요?”
“우시마키 주리랑 같이 갈 줄 알았어.”
“아, 그 1학년 말이죠. 그녀라면 히나가 움직일 수 없는 지금 최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전력으로서, 샬레가 아니라 게헨나로서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해답이겠네요.”
“미식연구회를 통제하는 건 우리에게는 불가능해. 하지만 급양부가 없는 이상 그녀들의 동기에 전쟁은 포함되지 않고, 쿠로다테 하루나는 계산적인 여자라서 설령 선생님이 부탁했다 해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최전방으로 갈 안내인 역할은 맡지 않을 것 같았어.”
“대비가 미흡했다, 그런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러니까 선생님을 너한테 빼앗겼지.”
다시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또 다시 웃음소리. 그곳에 있는 것은 혼돈의 게헨나 학원에 어떻게든 질서를 가져오려는 악마의 화신과, 전장의 광기를 더욱 큰 광기로 억누르련느 귀신이 아니라 어른을 동경하는, 나이에 걸맞는 소녀들이었다.
“고백은?”
“사랑스럽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때만큼은 웃고 있던 히나의 표정도 뻣뻣하게 굳었다.
“단 그건 학생으로서, 라고 하시네요.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다 보면 겨우 조금 알 수 있게 된다고.”
히나는 심호흡을 한 뒤에 대답한다.
“놀라게 하지 마. 그럼 아직은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네. 후후, 나도 포기한 건 아냐. 하지만 응원할게.”
돌아가려던 세나에게 히나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세나, 설마 그 교복 입고 데이트하러 가려는 건 아니지?”
“달리 입을 옷이 없어서요.”
“기다려. 빌려줄게. 잠시 있어 봐. 선생님이 조금 기다려주면 되니까.”
히나의 제안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세나.
“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이즈가 맞지 않는데요.”
“그런 건 말 안 해도 알아! 아코 거!”
화가 난 듯한 말투로, 즐거운 듯이 휴대전화를 꺼내 아코에게 연락을 하는 히나였다.
***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히나와 함께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 세나가 선생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자, 벤치에 앉아 SNS를 보며 시간을 때우던 선생이 고개를 들더니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화려하지 않나요?”
“아니야. 잘 어울려.”
히나를 통해 아코에게 빌린 옷은 흰색 민소매 니트와 검은색 롱 스커트였다. 검은색 레이스 숄은 세나 본인의 취향이 아니라서 고집을 부리려 했는데 히나가 굳이 입으라 하지는 않았고, 결과적으로 살짝 비치는 어깨부터 팔뚝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선생의 눈에 좀 더 색기 있게 비치는 데 성공했다.
“선생님?”
“아아, 미안미안.”
“참고로 이건 히나 부장이 꼭 보고하라고 했는데요.”
“어떤 거?”
“아마우 아코가 가진 속옷들 중에 설명하기 좀 그런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선생님 취향인지? 그런 내용이었어요.”
“잘 모르겠는데!?”
“아무리 저라도 그걸 입기는 좀 꺼려져서, 오늘 제가 입은 속옷은 상식적이고 평범한 속옷입니다.”
“그것도 보고해야 하니…?”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 잡념을 떨쳐버리려는 듯 선생은 눈앞에 있는 세나와 오늘 데이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럼 잠시 걷지 않으시겠어요?”
그런 세나의 권유에 두 사람은 게헨나의 자연이 남아있는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걷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세나의 옷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게헨나스러운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트리니티에는 있을 리가 없는 게헨나스러운 가게에서 쇼핑을 즐기는 두 사람이었다.
“선생님.”
둘만의 시간을 즐긴 뒤, 신발을 갈아신은 세나 대신에 선생이 운전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수석에 앉은 세나가 마음에 드는 색 매니큐어가 담긴 종이봉투를 소중히 안은 채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즐거웠어요.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도 재밌었어.”
“다음에 또 언제든, 몇 번이고, 데이트해요.”
“응,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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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선생님은 이해하기 힘드네... 벌벌떠는 학생이 눈앞에 있는데 편애하지 않는다 같은 정론으로 방치하기보다는 감정론 이상론 밀어붙이면서 막무가내로 일단 마음가는대로 하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만들어내는게 선생님의 강점이자 블루아카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게마트리아도 그런 말도안되는 주인공보정을 눈여겨보는거기도 하고
나도 동감함
이정도면 선생이 그냥 마음갈때만 행동하는 방관주의자인데;;
캐붕
과연 선생은 세나와 사지 멀쩡하게 다음 데이트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 선생이 크게 다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