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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M #순애 #유우카

원본 by 大典太

======================

<1> ~ <4>

<1>

매미 울음소리, 유카타, 캔디 애플, 금붕어 건지기. 그리고 라무네.

줄지어 늘어선 포장마차들을 바라보며 나, 하야세 유우카는 연상을 이어간다.

머릿속에서 여름 축제, 혹은 청춘이라는 단어들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흔해 빠지고, 평범하고, 시시한 것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특별하며, 예컨대 먼 훗날의 인생에서 문득 그리워하거나 잃어버리게 될 법한 것들처럼 여겨졌다.

밀레니엄의 거리가 평소보다 훨씬 북적거리는 것은 오늘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8월, 늦여름, 여름 축제.

말하자면 밀레니엄의 명물 같은 행사라고 할까.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열릴 법한 축제지만, 아무튼 규모 하나만큼은 컸다.

밀레니엄의 기술력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인근 자치구까지 끌어들인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대규모 행사.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축제의 첫날 정오 무렵이니 이토록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었고,

매년 지역 사회의 기대치와 실행위원회의 기합이 경쟁하듯 맞물려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탓인지 거리도 사람들도 어딘가 들떠 있었고,

경비 로봇마저 축제 사양의 화려한 디자인으로 단장해 요컨대 주변 일대가 온통 그런 들뜬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불꽃놀이, 진짜 기대된다~』,

『드론 쇼 같은 것도 한다던데?』,

『헤에, 대단하다. 역시 밀레니엄답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즐겁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다른 학교에서 놀러 온 학생도 이곳 밀레니엄의 학생도,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한없이 주인공이었고 청춘의 당사자였다.

그 거대한 흐름이라고 해야 할지, 물결이라고 해야 할지.

나 혼자만 그 물결에 능숙하게 올라타지 못하는 듯한 공기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소외감을 느끼고 만 것은 아마 그 때문이리라.

나는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다.

사람들이 몰려가는 방향과는 정반대인 그늘진 곳을 향해서.

청춘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와 본래의 목적지로 향한다.

나들이, 유리구슬, 추억, 사랑.

걷는 동안에도 나는 연상을 멈추지 않는다.

꺼내어 든 동경의 조각들을 진열장 안에 나란히 늘어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오늘이라는 하루 동안 일어날 수도 있었던 무수한 가능성들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심통이 난 내 안의 내가 툴툴거리는 것이다.

하필이면 왜 오늘이냐고.

트러블, 압박, 몰이해, 변심.

꼬리를 무는 연상의 끝은 오늘 아침에 터진 사고와 그로 인해 발생한 긴급 업무,

나아가 그 탓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 노아, 코유키와의 약속으로 수렴한다.

요컨대 성가신 비틀림이다.

누군가의 실수가 우연히 간과되는 일도, 치명적인 국면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드러나는 일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예산안 데이터가 누락된 것 역시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사고다.

그 뒷수습의 불똥이 튀어 결국 내게로 짐이 돌아오는 것까지도, 평소라면 전부 예상 범주 안이다.

하지만 왜. 어째서 하필 오늘이냐는 말이다.

몰이해.

그렇다, 이성적으로 털어내지 못하니 몰이해인 것이다.

불안과 초조, 분노와 체념을 차례로 거친 감정은 현재 정상 궤도를 이탈해 처량하게 추락하고 있다.

아무리 예상했던 일이라며 태연한 척해 보았자,

친구들과 놀기로 했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고 꼴도 보기 싫은 업무의 마감 시한은 당장 코앞까지 닥쳐와 있었다.

“하아…….”

한숨.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상상.

지금부터 향할 그 장소의 그 책상.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

바닥을 치던 감정은 일말의 기대를 경유하며 아주 미세하게 회복 곡선을 그린다.

아아, 정말이지 구제 불능이다.

나는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단순한 인간이 되어 버린 걸까.

발걸음의 보폭이 조금 넓어진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외로움이나 허무함이 가슴속에서 아우성치면 언제나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만다.

뇌리에 낙인처럼 새겨질 만큼 수없이 반복된 그 증상은 분명 사랑 따위로 분류되는 병이건만, 조금도 아련하거나 달콤하거나 푸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어설프게 아픔만큼은 선명하니 참으로 질 나쁜 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걷는다.

복잡하게 날을 세운 마음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걷는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매미 소리는 그칠 줄을 모른다.

저물어 가는 여름을 향해 사람들이 물결처럼 흘러간다.

환락으로 가득 찬 거리 위로 축제다운 흥겨운 음악 소리와 누군가 신나게 떠드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것들 역시 가까우면서도 아득히 멀어서 내게는 닿지 않는다.

그 푸르고 격렬한 소음의 탁류 속에서 나는 녹아들지 못한 채 홀로 남는다.

이 거리가 품은 청춘의 흐름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말하자면 그것이 내 여름방학의 한 페이지였다.

<2>

소다를 단숨에 들이켜자 선생님이 “탄산음료라니, 웬일이야?”라고 묻기에, “뭐, 가끔은요.” 하고 대꾸했다.

직후 목구멍을 타고 톡톡 쏘는 자극이 달콤함과 함께 번져 나가며 따가운 통증에 미소가 살짝 일그러졌다.

샬레, 집무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축제 회장 한구석에 있던 자판기에서 뽑아 온 소다 캔이었다.

빈손으로 찾아가기엔 어쩐지 쓸쓸하다고 할까, 조금 심란해서 사 온 물건이었다.

“라무네가 아니네.”

“아…… 그렇, 네요.”

라무네를 고르지 않은 것은 어떤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스스로도 선뜻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이었다.

“라무네는 딸 때 은근히 힘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적당한 이유를 즉석에서 지어낸다.

“그렇긴 하지.”

“그보다 죄송해요, 이런 날에.”

“아니야, 전혀 신경 쓰지 마. 평소에는 내가 늘 도움을 받고 있잖아.”

“그래도 역시─”

“평소에 진 빚이 지금 얼마나 불어났을지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서 당장이라도 갚아 나가고 싶은 심정이야.”

“……정말. 그게 뭐예요.”

후후,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농담을 하기 때문이지 결코 그가 사랑스러워서 따위가 아니다.

……사실 정말로 남의 손을 빌려야만 할 만큼 벅찬 작업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째서인지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 낼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선생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성가신 심리의 실타래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한바탕 웃고 나서 속으로 다시 한번 조용히 사과한다.

귀찮은 성격이라 죄송하다고.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자리에 앉으며 선생님이 말한다.

“네.”

뒤를 따라가 평소처럼 맞은편이 아닌 그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가까이 있고 싶어지는 것은 순전히 묘한 인력 탓이다.

사랑이 아니라, 기묘한 역학 작용 탓.

궤변이라는 것쯤은 알지만, 실제로 몸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그것은 역설적인 사실이었다.

있다고 우기면 있는 것이고, 실제로 내 마음속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법칙이다.

의자를 살짝 더 바짝 끌어당기며,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게 오늘 수정해야 할 자료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네요.

여기 데이터가 통째로 잘못 입력되어 있어서, 하나씩 대조하며 전부 고쳐야 해요. 대략 삼백 장 분량입니다.”

파일을 공유한다.

의자 위치는 그대로 둔 채, 아니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붙여서 그의 어깨너머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할 만하시겠어요?”

“응, 확인했어.”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일단 여기부터…… 여기까지 맡을게요.

이 범위 안에서 수정할 테니 최종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응, 알겠어.”

“그럼 시작하죠.”

그로부터 네 시간.

도중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일도 없이 작업은 착착 진행되었다.

진척도는 놀라울 만큼 순조로워서 기분 상태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일을 쳐내는 나 자신이 대견한 건지,

아니면 서글픈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멀리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뒤늦게 자각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축제 장터의 흥겨운 풍악 소리였다.

이 먼 곳까지 소리가 들리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면서 가슴 한구석이 살짝 쓸쓸해진다.

나는 저 멀리 있는 청춘을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문득 선생님이 신경 쓰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쩐지 그냥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어째서 이런 축제 날에 군말 없이 내 일을 도와주는 걸까, 나 따위는 무시하고 축제에 놀러 가면 좋았을 텐데,

같은 차마 입 밖으로 물어볼 수 없는 의문들을 속으로나마 헤아려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들키지 않도록 살며시, 시야 끝자락에 선생님의 모습을 담는다.

옆얼굴.

깊이 집중하고 있어서 길게 뻗은 속눈썹 위에는 무감정이 내려앉아 있다.

살짝 우수에 잠겨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른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대개 이런 표정을 짓기 마련 아닐까.

특별할 것도 없는, 지극히 흔해 빠진 표정 중 하나에 불과하다.

불과할, 터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눈을 뗄 수가 없는 걸까.

어째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이토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까.

그야, 그거다. 휴일에 일을 시켜서 미안하니까, 뭐 그런 이유다.

나는 스스로에게 답을 내린다.

그렇게 누구에게 들려줄 것도 아닌 변명을 머릿속으로 줄줄이 읊어 댄다.

그리고 그 변명은 도중에 강제로 중단되었다.

그가 내 시선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유우카?”

초점이 맞물리고,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머릿속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열기가 오히려 서늘한 한기를 띠며 사고를 하얗게 표백시킨다.

“앗, 에, 네, 넷!”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그는 기지개를 쭉 켜더니, 맞다, 하고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한다.

“슬슬 잠깐 쉬었다 할까.”

<3>

저 멀리서 축제 음악 소리가 아련하게 울려 오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샬레 내부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용하고 한산하고 선선해서, 그 정적이 더없이 기분 좋았다.

거기에 쓸쓸함이 덧붙여지지 않는 것은 “평화롭네.”라며 머그잔에 커피를 따르는 그가 곁에 있기 때문이리라.

“선생님은 평소에 뭐 하고 지내세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머그잔의 검은 수면 위에 흔들리며 비치는 천장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난한 스몰 토크 같지만 실은 꽤 깊숙이 파고드는 질문이었구나 싶어 말을 내뱉고 나서야 아차 했다.

그렇다고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그대로 이어간다.

“평소에 말이지…….”

“오늘 같은 날 말이에요. 축제, 누구랑 같이 가거나 하지 않으세요?”

“그야 나는 선생님이니까.”

“누군가한테 같이 가자고 연락받으셨던 거 아니에요?”

모두가 그를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을 리가 없다.

축제를 핑계 삼아 여기저기서 손짓이 왔을 터였다.

내 목소리에 조금 감정이 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으음……. 글쎄, 축제 같은 데는 원래 그다지 안 가는 편이라서.”

“역시 권유는 받으셨군요.”

“유우카한테서도 연락이 왔었고 말이야.”

“……그건, 죄송해요.”

“하지만 실은 유우카 연락이 아니었더라도 전부 거절할 생각이었어.”

“그것도 선생님이니까, 라는 이유인가요?”

“뭐, 아마 내 성격상 이쪽이 훨씬 잘 맞아서겠지.”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단언한다.

“인파 속에 섞여 함께 즐기는 것보다는,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머물러 있는 편이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아.”

물론 그게 올바른 태도인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는 그렇게 덧붙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드문 일이다, 라는 인상이 가장 먼저 스쳤다.

선생님이 저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행동의 이유로 본인의 감정을 드는 것도.

평소처럼 부드럽게 화제를 돌리지 않고, 선생이라는 직함도 어른이라는 가면도 내려놓은 채 ‘그 자신’으로서 이야기해 주는 것.

그것이 진귀하게 느껴져서 은근히 기뻤다.

“그럼, 오늘 내내 샬레에 계실 생각이셨군요.”

“아마 그랬을 거야.”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이 샬레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샬레라는 공간과 선생님이 늘 이콜로 묶이곤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문득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선생님이 홀로 늘 앉던 의자에 앉아 있는 풍경을.

맞은편에 나는 없고, 옆자리 역시 텅 비어 있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축제 음악 소리, 창문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여름 햇살, 방에 길게 드리워진 하늘빛 그림자를 상상한다.

그 풍경 속에 홀로 있는 그를 상상한다.

“……그거, 외롭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동정이나 공감 따위가 아니라, 그가 고독을 느끼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몹시 이기적인 바람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적적해한다면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어도 된다는 명분이 생기니까.

쓸쓸하신가요,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제가 옆에 있어 드릴게요, 라는 식으로.

그런 어둡고 축축한 부분만이 물도 빛도 없이 무성하게 자라 버렸으니 구제할 길이 없다.

이 연심이 조금 더 상쾌하고 아련하고 달콤하고 푸른, 예컨대 소다수에 사르르 녹아드는 그런 마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고 보니 소다 캔은 한 모금 마신 뒤 그대로 방치해 두어 미지근해진 상태였다.

별생각 없이 그 캔을 손에 쥐었을 때였다.

“모두의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거든.

아이들의 청춘과 어른의 개입은 한자리에 공존할 수 없는 법이야.”

선생님이 말한다.

내 질문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듯하면서도 그 말은 은연중에 내 추측을 인정하고 있었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나는 외로워도 상관없어』라고.

그가 가진 자기희생론의 가장 어둡고 깊은 밑바닥이었다.

내가 가장 매섭게 화를 내야만 하는 대목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하고.

그의 그 오만한 착각을 따끔하게 바로잡아 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포개어지고 말았다.

나의 어두운 구석과 그의 어두운 구석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게.

“……그럼 제가 옆에 있어 드릴게요.”

나는 그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며 속삭인다.

“어쩔 수 없으니까요. 선생님 곁에.”

“……그 말은 기쁘지만, 그래도 역시 유우카는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는 편이 좋아.

노아라든가, 코유키랑 말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걸요.

미리 약속했어도 워낙 갑작스럽게 터진 트러블이니까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그렇게 온갖 가정과 핑계를 겹겹이 쌓아 올려 지금 이 순간에, 이 현실에 간신히 착지한다.

……그랬건만, 선생님은 여전히 허황된 이상론을 덧씌웠다.

“바로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어른이야.

골치 아픈 트러블은 어른한테 몽땅 떠넘기는 게 원래 세상의 이치란다.

키보토스에서는 좀처럼 통용되지 않는 말이지만.”

나는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린다.

정신을 차려 보니 우리는 정면으로 마주 앉아 설전을 벌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평소에도 사사건건 부딪치기 일쑤인 우리지만, 오늘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저보고 제 일을 팽개치고 놀러 가라는 뜻인가요?”

“그렇게 말하진 않았어.

다만 하루쯤은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의지해도 용서받지 않을까 하는 거지.”

“제가 가 버리면 선생님이 외로워하시잖아요!”

“음, 딱히 그렇지 않은데. 어른이니까!”

달아오르는 설전.

서로 한 고집 하는 성격이라 대개는 쉽게 결판이 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누가 더 끝까지 말을 쏟아 내느냐,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지구전으로 돌입한다.

한마디로 소모전이다.

다만 그것은 내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제가 놀러 가는 김에 선생님도 끌어낼 수밖에 없겠네요.”

“응?”

“지금 당장 노아한테 이렇게 연락할 거예요.

몇 번이나 같이 가자고 졸라도 선생님이 요지부동이라고,

평소엔 그렇게나 열심히 도와드렸는데 정작 선생님은 제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들으면 노아가 과연 어떻게 나올까요?

제 단짝 친구가 은근히 무섭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요.”

“아니, 거기서 노아를 파는 건 좀 반칙이지.”

“글쎄요? 모르겠네요.

상대가 궤변만 늘어놓는 어른이니, 저도 쓸 수 있는 패는 전부 써야죠.”

선생님은 망설이다가 무언가 반박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이내 꾹 다문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들이 ‘노아’라는 압박 앞에서 분해되어 가는 것이 눈에 선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졌어.”

결국 선생님은 백기를 들고 패배를 인정했다.

“이해해 주셨다면 됐어요.”

한참 전부터 마음속에 준비해 두었던 대사를 마침내 입 밖으로 내뱉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남은 분량도 얼마 안 되니까 서두르죠.”

“찬성. 일만 끝나 버리면 결국 지금까지의 실랑이도 다 상관없어지는 거니까.”

선생님도 마음을 굳힌 듯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요, 상관없지 않아요.”

“응?”

“일 다 끝나면 선생님은 저랑 같이 축제에 가시는 거예요. 알고 계시죠?”

“……그래. 같이 가자, 축제.”

“무조건이에요, 무르기 없기예요.”

“네, 네.”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방 안은 다시금 고요함을 되찾는다.

창밖의 여름 햇살은 어느새 비스듬히 기울기 시작했고, 하늘빛이었던 그림자는 서서히 주황빛 기운을 머금어 가고 있었다.

<4>

“이게 마지막 장이에요.”

“응, 확인했어.”

무슨 일이든 막판에 조금 남았을 때부터가 가장 길게 느껴지는 법이고, 이번 작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데이터 수정이 끝났을 무렵에는 해가 거의 다 저물어 있었지만,

아직 미세하게 빛을 남겨 둔 하늘이 거리 위로 낮과 밤의 교차점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른바 골든 아워였다.

“간신히 밤이 되기 전에 끝났네요.”

“일곱 시가 넘었으면 이미 어엿한 밤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소한 건 넘어가요. 자, 얼른 나갈 준비 하세요.”

선생님은 구시렁거리면서도 탈의실로 들어가더니 십 분이 지난 뒤에야 근사한 하카마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아니,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즐길 준비시네요.”

방금까지 샬레에 틀어박혀 이틀간을 허무하게 날려 버리려 했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기왕 가는 거니까 말이야.”

“벌써 일곱 시 반이 다 되어 가는데요.”

“그거 큰일이네. 서둘러야겠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겠어.”

“드론 쇼도 한다니까 그쪽을 구경해도 괜찮아요.”

“그게 뭐야. 엄청 밀레니엄답네.”

낮에 길거리에서 스치듯 들었던 것과 똑같은 감상평에 나는 후후,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이 사람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샬레 건물을 나서자 거리는 짙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분명 이 노을빛이 완전히 스러지고 나면 불꽃놀이가 시작될 것이고,

이어서 몇 가지 행사가 더 진행된 뒤 그대로 축제의 첫날이 막을 내리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와, 경치 한번 끝내주네.”

언덕길을 내려가며 선생님이 감탄한다.

늘 보던 익숙한 거리 풍경이 태양의 각도 하나로 이렇게나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 근처는 참 조용하네요.”

“샬레 주변은 의외로 아무것도 없거든.”

“확실히 조금만 걸어 나와도 온통 주택가뿐이네요.”

“맞아, 맞아.”

노을 진 거리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연상을 시작한다.

그늘, 샬레, 언덕길, 늦여름. 그리고 소다.

흔해 빠지고, 평범하고, 시시한 것들.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것들.

당신을 향해 남몰래 품은 이 연심.

주황빛이 서서히 페이드아웃된다.

밤의 장막이 내려앉는다.

적어도, 이 여름이 완전히 끝나 버리기 전에.

“선생님!”

비장하게 마음을 다잡고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과,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피어난 순간이 정확히 겹쳤다.

그럼에도 나는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선생님.”

“왜 그래?”

“줄곧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첫 번째 불꽃을 신호탄 삼아 밤하늘에는 무수한 빛과 폭발음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번쩍번쩍 눈부시게, 찌릿찌릿 대기를 흔들며.

“응.”

선생님은 내 다음 말을 기다린다.

마음속으로 무언가 하나의 각오를 굳힌 것처럼, 하지만 겉모습만큼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본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 단순한 호흡조차 온 신경을 집중해서야 간신히 해낼 수 있었다.

오랫동안 소중히 준비해 왔던 말을 전하는 것, 단지 그뿐인 일을 지금에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선생님.”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소리 내어 말한다.

“좋아해요. 저와 교제해 주세요.”

그는 잔잔하게 웃는다.

벌을 달게 받을 준비를 마친 죄인처럼.

“미안해, 유우카.”

온화하게, 하지만 괴로운 듯이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나는 학생과는 그럴 수 없단다.”

“그렇, 겠죠.”

나 역시 마주 웃는다.

가슴이 이렇게나 찢어질 듯이 아픈데, 눈물이 둑 터지듯 차오르는데도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선생님.”

“응.”

“정말 좋아해요.”

“응.”

“진심으로, 너무너무 좋아해요.”

“……응.”

애써 지은 미소가 무너지기 전에, 못난 울음보가 터진 얼굴을 들키기 전에 선생님의 품에 와락 안겨 새어 나오는 오열을 필사적으로 삼켜 낸다.

그 노력이 오히려 목을 더욱 뻣뻣하게 조여 온다.

마음이 아파서 우는 것인지, 울고 있어서 마음이 아픈 것인지 알 수 없다.

당신의 마음에 닿으려 해서, 당신을 온전히 느끼려 욕심내서 이토록 아픈 것인지.

그조차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사랑을 가리켜 청춘이라 부르곤 하지만, 나의 사랑은 청춘 따위에 녹아들지 않는다.

손안에 꼭 쥐고 있던 소다수에도 결코 녹지 않는다.

지금 내 안에 단 하나의 진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선명한 아픔뿐이다.

이 상실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째서 단 한 번도 손에 넣어 본 적조차 없는 것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같이 느끼는 걸까.

“있잖아, 유우카.”

선생님이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불꽃, 정말 예쁘다.”

밤공기가 실어 나르는 여름의 냄새가 당신의 체취와 뒤섞인다.

나를 매몰차게 밀어내며 부정해 주지 않으니까, 이 연심은 꺾이지 않고 계속해서 자라날지도 모른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를지도 모른다.

끝내 녹아 사라지지 않고 앙금처럼 남아 나를 방해할지도 모른다.

아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는다.

오른손, 아스팔트, 소다, 사랑. 그리고 선생님.

더 이상 머릿속으로 연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손을 뻗어 움켜쥐면 당장이라도 닿을 수 있는, 바로 이 거리에 있으니까.

“선생님, 그거 아세요?”

“유우카?”

“저 은근히 골치 아프고 성가신 여자예요. 피곤하고 귀찮은 성격이라고요.”

아시냐고요. 다시 한번 똑똑히 되풀이한다.

“저, 뒤끝이 엄청나게 길고 미련도 많거든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알고 있어.”

선생님이 웃는다.

그답지 않게 능숙하게 웃어 보이니까 오히려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님,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청춘이나 소다수 따위에 예쁘게 녹아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스스로에게 답을 내리고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의 불빛을 살짝 피하듯, 그의 뺨에 조용히 입술을 떨어뜨렸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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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일 전번역

소설 핫산) 소다수에 녹지 않는다

조회 4·좋아요 0·저장 0·댓글 1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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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odenta324작가
게시물 3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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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나
ㅇDC
ㅇㅇ11일 전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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