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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자정을 넘겨 새벽대로 향하는 시간. 모두가 잠에 빠져들 시간대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선생 납치라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강렬한 각성제가 되어버렸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소녀들은 깨어있었다.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지 않은가. 얼마나 깨어있든 간에 상관도 없었다.
근데 방금 전에 들려온 이 대사는 차라리 그냥 수면제 우겨넣고 잠이나 자는 게 나았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어버리는 아야네였다.
'겨, 겨우 넘어갔나 싶었는데... 왜, 왜 지금!'
"...무사할 거라고 믿고는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수가 없, 없을 것만 같아서.. 저, 저는 사장님도, 흥신소도 믿지만..."
-아파.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눈 앞에서 게헨나의 학생회장이 히나한테 터져나가는 걸 본 하루카였다. 특기전력의 발광 현상을 두 번씩이나 겪은 그녀 입장에선,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결코 무사할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아루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생판 다른 사람이 받고... 쓰러져있었다 했고.."
"네, 그래서 게헨나 본교 쪽 응급의학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그렇게 들었어요, 카요코 씨로부터."
아야네는 입이 바싹 말라오는 것만 같았다. 진실을 숨겨야 한다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만약 큰 문제가 있다면, 분명 연락이 다시 돌아올 거에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이미 큰 문제가 뻥뻥 터졌다. 아루는 폭주하는 히나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다 죽기 직전까지 몰렸었고, 지금도 의식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살아만 있을 뿐, 말 그대로 만신창이인 상태이다.
이구사 하루카가 리쿠하치마 아루를 향해 품는 감정은 단순한 존경을 넘어선 광적인 믿음이란 것을, 그런데 그 아루가, 히나에 의해 사경을 헤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가 과연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게헨나 본교 쪽으로 가면 분명히 만날 수 있을 테지만 하루카 씨는 지금 당장 게헨나 쪽으로 가기엔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서... 죄송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흥신소 분들하고는 못 만난다고 해야.. 될 거 같네요."
분명 터진다. 제대로 터져버릴 것이었다. 선생도 없는 지금 이를 원만하게 중재할 이도 없다. 물론 물리적 충돌을 막아낼 물리력은 있지만, 감정의 골은 두 번 다시 메울 수 없을 것이었다.
이미 두 번씩이나 상황이 벌어졌다. 세 번은 안 된다. 안 그래도 분위기가 끔찍하고, 다들 지치고 날카로워져 있는데, 또 한 번 이런 일이 벌어졌다간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아루 씨가 다시 깨어나기 전까진.. 이 사실은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해!'
"무츠키 씨도 카요코 씨도 다들 괜찮다고 하니까, 나중에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요.."
'침착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여겨. 자연스럽게 넘겨...'
웃는 것도, 그렇다고 심각한 표정도 아닌 그 어딘가의 선을 찾아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이구사 하루카는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아니다. 처음에 확실히 한다면 분명..
"정말 아루님 괜찮으신 거 맞죠?"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네, 무츠키 씨하고 카요코 씨하고 치료받고 있으니..."
"혹시 뭔가 숨기시고 있는 건 아니죠?"
"네?"
소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다. 하지만 침착해라, 아야네. 동요하는 순간 그대로 의심은 확신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제가 하루카 씨에게 뭘 숨기겠어요? 하하..."
눈빛이 역시도 왠지 살짝 찌푸려진 것이, 좀처럼 소녀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듯했다.
"...과장님과 실장님은 무사하시죠?"
"그, 그럼요."
"혹시 지금 제가 연락이 가능할까요?"
"네?"
'침착, 침착, 침착, 침착.'
지금은 안 된다. 만약 카요코하고 말을 맞춘다고 한들 아루의 목소리가 지금 당장 들려오지 않는다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루 님이라면 분명 제일 먼저 우리들에게 소식을 알렸을텐데... 너무 조용해서.. 무, 물론 이게 실례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하루카가 연락을 요구한다. 선택지는 무엇이 있는가?
1. 연락하게 해준다.
2. 무례한 요구라며 화를 낸다.
3. 얼버무린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별로 좋은 선택지는 아닐 거 같은데...'
1번을 선택하면 아루를 요구하는 순간부터 다 끝이다. 2번을 선택하면 그냥 싸우자는 거나 다름없다. 그럼 결론은 3번인데, 어떻게 얼버무릴 수 있을까.
"......?"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좋지 못하다. 빨리 적당한 말을 생각해야 하지만 떠오르지 않으니, 머리는 답답하고 속은 다급하다.
'아오.. 어떻게 해야...!'
-똑똑.
"실례합니다."
그리고 지금 둘만 있던 교실에 들어서는 이가 있었으니, 그 타이밍이 매우 좋았다.
"아, 하나코 씨!"
"...아, 아야네 씨하고 하루카 씨? 오밤중에 왜 이 교실만 불이 켜져있나 의아했는데. 두 분이 있었군요."
"어....."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요? 말하지 못할 주제의 걸즈 토크일까요?"
얼굴은 빙긋 웃고 있는 채 하나코는 그리 묻고 있지만 그녀는 눈치 100단. 하루카가 지금 이렇게 혼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으로 이미 유추가 가능했다.
'..그런 가벼운 대화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실은.... 말이죠."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말에, 하루카는 대화의 목적을 바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건, 역시 하나코가 예상한 바였다.
'...아루 씨에 대한 거였군요. 그래, 분명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아루 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하루카가 불안함을 지닌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이는 분노의 불씨만 키우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거짓말로 일관할 수도 없는 일.'
멀쩡하다는 거짓말은 쉽게 들키고 드러날 것이었다. 그렇기에, 하나코는 진실을 조금 숨기기로 하였다.
"저희가 수습했을 땐, 부상이 제법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들 쪽에선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거 같아서 응급의학부에 보냈었죠."
"......."
"카요코 씨로부터 셋 다 잘 치료받고 있다고 이야기를 전해받았습니다. 하루카 씨에게도 이를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선생님 건 때문에 미처 이 부분에 대해 신경쓰지 못했었네요."
"......."
하루카의 얼굴은 침울해져 있었다. 소녀 역시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결국 히나에게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지금 연락을 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이미 새벽 2시 즈음이어서. 지금쯤 전부 잠드셨을 거에요. 그리고 전자기기 사용도 그쪽에서 허락해줘야 할 수 있는 상황이고, 지금 하루카 씨의 상황도 이부키 짱이 엮여있어서 함부로 연락을 취하긴 힘들 거 같아요."
"그, 그런가요...."
고개를 숙여 풀이 죽어버린 듯한 하루카를 향해, 하나코는 위로해주듯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해 볼게요. 아니면, 우리들이 직접 게헨나 본교로 가서 직접 상태를 볼 수도 있고요."
"아, 아, 아니에요... 구, 굳이 제 부탁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어요. 단지, 모두가 걱정됐을 뿐이어서.."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녀는 받아들여야 했다. 모두가 안 좋은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할 수는 없었다. 분명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리 믿어야 했다. 그리고 믿어주어야 했다.
"죄, 죄송해요. 굳이.. 이런 일 때문에."
"아니에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어요."
하루카가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아야네가 손사래를 치면서 받아주었다. 이로써 한숨 돌린 것일까.
"하루카 씨,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죠?"
다만, 하나코 입장에선 아무래도 여기서 어영부영 끝낼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네...? 어떤 건데요..?"
"소라사키 히나를, 원망하십니까? 그 셋을 다치게 해서?"
순간 아야네가 뜨악하고 입을 벌리며 하나코를 쳐다봤지만, 하나코 입장에선 이는 짚고 넘어가야 했다.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러지 말아야 하겠죠... 이 이상.. 또 우리들끼리.. 싸울,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 그러니까.."
"그런 걸 제외하면요?"
"네?"
"내어선 안 된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마음은 어떤가요?"
이성으로는 이제 더이상 자신들끼리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저주와 발광 현상에 휘말린 자는 결코 그 자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화가 나요, 무척.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아, 아루 님이, 그 셋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화가 치밀어올라요... 선생님도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르니까.. 원망을 하게 되어서, 그래서..."
그리고, 하루카는 다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 그렇지만, 전 그럴 자격도 없죠... 서, 선생님도.. 저를 용서..했는데.. 제, 제가 무슨 자격으로 그러겠..어요? 선생님이 겪으신 일에 비하면.. 제가 고민하는 건 정말로 하찮은 이야기죠.."
이미 하루카는 선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릴려 했었다. 자신의 손으로 선생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 그걸 생각하면 할수록, 이 모든 고민은 의미없고, 소녀 자신은 쓰레기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지, 지금 제가 하는 말도 사실 하등 의미없는... 거겠죠. 그, 그러니까.. 노력할게요."
그리고 이내, 소녀는 허리를 90도로 한 번 굽히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연거푸 숙이면서 뒷걸음질쳤다.
"죄, 죄송해요.. 시간 잡아먹어서! 시, 실례했습니다..!"
"어, 잠깐만..."
하나코가 마저 부르기도 전에, 하루카는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하루카가 떠나가는 걸 보며, 하나코는 나지막이 말했다.
"소중한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에 화를 내는 건.. 당연한 마음일 거에요, 하루카 씨."
하나코 역시도 그랬다. 미소노 미카가 보충수업부에게 무언가 하려고 할 때, 그녀는 순간적으로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아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가.
'미안해요, 하루카 씨. 속이고 싶진 않지만.. 아루 씨에 대해서 이렇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네요.'
남을 속여넘기는 건 하기 싫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에 그게 더 싫었다.
"아야네 씨."
"네, 네?"
그리고 하나코는 다시 아야네를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줄인 채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가 만약 하루카 씨와 똑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면, 지금 저희들의 행동은 어떻게 보일까요...?"
만약 아비도스의 모두가 히나한테 처참한 꼴이 되었다는 사실을 저들이 숨기고 있다면? 잠시 상상했을 뿐인 아야네였지만, 좋지 않은 감각이 그녀를 감쌌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코하루 짱이나 히후미 짱, 그리고 아즈사 짱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숨겼다면, 그 사실을 제가 안다면.. 저는.. 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겠죠."
당위적이고, 쉬이 이해할 수 있는 분노. 그렇지만.. 나와선 안 될 증오. 그렇기에 둘은 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었다.
"카요코 씨하고 최대한 입을 맞춰서, 아루 씨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시간을 좀 벌어봐야겠네요. 이게 그나마 나은 선택지라는 게, 참 야속하죠."
"그렇네요..."
그렇기에, 지금 한 사람이 절실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 여기에 오지 못 한다.
"선생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무언가 답을 찾으실 수 있었을까요? 저는 깜깜하기만 하네요."
"...그러게요."
아야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선생은 늘 소녀들에게 도움만 받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있었지만, 선생이란 존재는 단순히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구심정이 되어주고, 갈등을 막아주는 존재였다.
'선생님... 대체 어떻게 되신 건가요..'
끝내 그의 위치를 찾을 단서를 찾지 못한 지금의 상황이 야속했다.
".......졸립지가 않네요."
그리고 이런 상황 자체가, 소녀들로 하여금 잠에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
심장이 뜨거워. 타버릴 것만 같아. 누군가 안에 불을 질러버린 것만 같아서, 너무 아파.
-저벅, 저벅, 저벅...
내가 잘못된 걸까. 이러는 게 잘못 된 걸까?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갈까.
-털썩.
아냐, 그렇지 않아. 나는 정당해. 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죽게 하려 했어, 그런데 가만히 있으라고? 이걸 웃어 넘기라고? 그건 있을 수 없어. 나한테 그랬다면 용서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꽉,,,!
아루 짱은 아니야. 화조차 내지 못한다면, 그건 아루 짱에 대한 예의가 아냐. 친구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도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면, 그딴 혀는 처음부터 뽑아버려야지.
-저벅... 저벅...
분명 아비도스에 있겠지. 소라사키 히나, 그 개같은 년. 가야 해, 난 지금 가야만 해. 분명 모두가 하지 말라 하겠지만, 나는 가야 해.
-저벅.. 저벅.. 저벅..!
그래, 이게 하드보일드잖아? 동료의 복수는 제대로 해 줘야지.
-저벅..! 저벅..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주르륵...
난 용서할 수 없어. 그래야만 한다면, 다 엿이나 먹으라지. 그러니...
-철컥.
소라사키 히나, 아사기 무츠키가 간다. 절대로 이를 묵과할 수는 없을 거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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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량이 짧아서 죄송합니다! 배탈 때문에 컨디션이 최악이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댓글 16

헉 무츠키
아비도스쪽은 진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하나 감도 안 잡히네
삭제된 댓글이에요
오우...설마 해주 후 발광도 나타나려나
다시 정주행 하고 있는데, 한 70화 부근에서 헤일로 색 구분하는 묘사나 형태를 인지하는 것 같은 묘사가 있는데 이건 그냥 무시하고 색만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예스
어어 무츠키야 그러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