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화약 냄새를 맡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언제부터였더라. 선생이 된 첫날부터?
어디를 가더라도 코에 남는 이 화약의 향은, 계속해서 짙어지고, 점점 지워지지 않았다.
하루의 하루가 지나고, 수백 날을 지새우고, 어느 날에 어떤 일이 있었대도.
…
-콰앙!!!
포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또’ 소파에서 깨어난다.
싯딤의 상자의 알람 소리냐고? 아니다.
헬멧단의 탱크가 ‘실수’로 D.U. 한복판에서 어느 건물을 향해 발포해버린 탓이다.
현 시각은 오전 8시 30분.
여기 주변은 차가 하도 막히니 답답했겠지.
…라고 되뇌이며 높아진 심박수와 여전히 떨리는 몸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킨다.
4초간 들이쉬고, 7초 참고, 8초 동안 내쉰다.
놀란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 같다.
창문을 열고 잠든 탓일까.
오늘 날씨는 흐림이었음에도 고온다습한 열기와 함께 언제나 맡던 화약냄새가 비강을 통해 들어온다.
키보토스의 여름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청춘과 화약이 매일같이 부딪히느라 열기가 식는 날이 없다.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을 켰다. 전기료는 총학생회가 대부분 부담하니 걱정할 것은 없다.
물론 공기청정기도 화약 냄새를 없애주진 않는다.
이것은 언젠가 내 코의 어딘가에 달라붙어, 더 이상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뒤척이느라 구겨진 셔츠를 정리하고, 넥타이를 고쳐매고 양복을 차려입었다.
어쩌다 이런 꼴로 잔거지? 라고 생각할 틈은 별로 주어지지 않았다.
조금 뒤면 오늘의 당번 학생이 들어온다.
누구였더라. 하고 무심코 생각에 잠기며 노트북을 켠다.
백색의 13인치 마그네슘 바디에 작게 새겨진 밀레니엄 로고, RGB 포트같은 구닥다리 포트부터 USB-C나 SD 카드같은 최신 포트까지 알뜰하게 챙긴 특제 노트북*이다.
맞다, 이거 CD도 2개 들어가더라?
치히로가 알려주기 전까진 몰랐어.
라며 다섯 번째 노트북의 알뜰살뜰함에 감격하는 사이. 위잉, 하는 강화유리제 자동문이 오늘의 당번을 반겨주었다.
“…세요, …님! …은…”
나는 방금 내린 화약향 커피를 한모금 홀짝이며, 카페인이 선사해주는 화학적인 각성감에 감탄하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푸른 하늘과 눈을 마주했다.
“…생님?“
이 시리도록 푸른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직도 화약향이 가시지 않는 이 공간에-
“선생님!”
양어깨에 닿은 갑작스런 온기에 놀라 아래를 쳐다보았다.
기억났다. 오늘의 당번은 트리니티의 백의의 천사, 세리나였지, 그래서 아까 전에 별로 시간이 없다고 한 거였는데.
“어휴…오늘도 다크서클이 잔뜩…또 밤 새신 거죠?”
애써 미소지으며 세리나의 눈을 피해보지만, 그녀는 가공할만한 속도로 내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내 그 고사리같은 두 손이 살포시 내 얼굴에 올려지더니.
“얼버무리려 하셔도 제 눈은 속일 수 없으니까요…!”
세리나의 옷에서 나는 보건실의 향 때문이었을까, 최근들어 계속된 밤샘과 외근으로 옷에 밴 향 때문일까.
코에 남은 화약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
세리나의 반강제(물리)적 보살핌으로 대부분의 일을 그녀에게 부담한 채로 오늘 일을 끝마쳤다.
오늘 온 서류의 6할 이상이 트리니티에서 온 덕분이었고. 정말 중요한 서류는 내가 처리하는 방식이었지만, 세리나는 그마저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건 그렇다 쳐도 직접 밥까지 차려주다니, 이런 지극정성을 받아버리면 나로서는 어떻게 답례해줘야 할지…
“오늘 잘 주무시는지, 전화해서 확인할 거니까요! 꼭 받으셔야 해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세리나는 나에게 오늘 꼭 숙면을 취하라고 신신당부—혹은 경고—하며 샬레에서 힘겹게 발걸음을 떼었다.
화약의 냄새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고. 일반 학생들은 모두 하교했을 18시의 일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
곧 개학을 앞둔 8월의 한가운데라 그런가, 요즘은 사건이 줄어 일이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오늘같은 날에 굳이 밤샘을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언제나처럼 엔젤 24에서 사둔 도시락을 대충 먹고, 언젠가 선물받은 달달한 과자를 꺼내고 커피 머신을 준비시킨다.
핸드폰은 잠시 무음으로 돌려두고, 싯딤의 상자에 있는 귀여운 아이들에게도 ‘오늘은 쉰다.’고 일러두었다.
뭘 할 거냐고?
말 그대로 밤샘이다.
오전 1시.
준비한 것들을 모두 챙기고 샬레의 옥상으로 향했다.
이 건물의 옥상에는 벤치라던가, 모노블럭* 의자같은 요소는 준비되지 않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헬리패드와, 추락 방지용 난간만이 있을 뿐.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사내는 헬리패드의 ‘H’의 가운데 부분에 에 컵과 과자를 내려놓고, 그대로 대자로 누워버렸다.
키보토스를 상징하는 빛의 기둥과 고리가 보이지 않게, 도시의 별들이 저 하늘의 별들을 가리지 않게.
사내는 그대로 몸을 돌려 약간 시점을 바꿨다.
시점을 바꾼 사내의 눈에는 그리운 곳의 하늘이 제법 겹쳐보이곤 했는데, 별들이 보이는 밤하늘을 도화지 삼아 돌아갈 수 없는, 돌아오지 않는 여름날의 잔상들이 아롱아롱 떠오르곤 했다.
사내의 눈은 점점 비어가고, 뜬눈으로 꿈을 꾸는 그 사내의 비강에 화약의 향 대신 상쾌한 오전 두 시의 공기가 들어오던 때.
땅을 차면 달까지 따라와줄 것 같은 구두는 이미 밑창이 닳아 낡고 헤졌으며.
적당히 소매를 걷어올린 흰 셔츠는 여전히 구겨지다 못해 헬리패드의 먼지를 머금고 있으며.
자기주장이 심해 부스스한 머리는 땅에 이끌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내가 키가 훨씬 작았을 때는, 비 오는 날의 땅 내음이나, 노는 토요일에 놀이터에 모인 또래들의 소음이라던가, 이름 모를 군것질거리의 향들이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토록 사랑스럽고 다채로웠는데.
이 청춘의 세계에서는 어째서 자신만 무채색이 되어 그저 몸을 뉘일 곳이 아닌, 집을 애타게 그리워하는걸까.
꿈이 끝나려 할 때마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달달한 과자 대신 새벽 공기를 한번이라도 더 머금으며 옥상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던 때.
한 소녀가 사내의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사내가 다음 꿈을 눈동자에 머금으려 다시 미지근한 보온병에 손을 뻗을 즈음—
“여기요, 선생님.”
아침에 느꼈던 온기가 따듯한 차와 함께 찾아왔다.
“아, 고마워…”
아차. 하고 몸을 일으켜 차가 담긴 보온병을 잡자. 세리나의 자그마한 양손이 내 손을 감쌌다.
“후후…이러면 조금 더 따듯할까요…?”
“…그러네.”
말없이 카모마일 차를 뚜껑에 따라마시며, 나는 여전히 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려면 꽤 힘들었을 텐데.”
“그야 선생님이 전화를 안 받으시니까 그런 거죠.”
세리나의 지적에 아차하며 오피스에 두고 온 핸드폰을 떠올렸다.
그녀에게서 도착한 모모톡이나 부재중 전화가 얼마나 쌓였을지 생각하니, 약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건 그렇고, 오는 길에 선생님의 책상을 좀 봤어요.”
“…봤구나, 일이 좀 적었지?”
“네…다른 학원들에서 온 메일이라던가, 총학생회에서 온 서류도 일절 없었는걸요.”
내 컴퓨터의 비밀번호는 어떻게…아, 아직 비밀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안 뗐구나.
나의 부끄러운 면이 (베리타스를 제외한)학생들에게 털리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지금 여기 와 있는 이유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니?”
“그건…잘…”
세리나의 머뭇거리는 모습에 무언가 죄책감이 들어, 그대로 고개를 아래로 내려 불이 꺼진 거리를 내려다봤다.
“별 건 아니야. 그냥 향수병, 미련이지.”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거든.”
조금씩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 어색한듯 머리를 한 번 긁적였다.
역시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여전히 조금 무서워서, 다시 고개를 돌려 세리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여전히 걱정하는 표정, 할 말을 고르느라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신체적인 병이라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줄 그녀였지만, 이런 애매한 마음의 병은 당장 그녀로서도…
“에잇.”
이런저런 생각에 들 틈도 없이, 세리나가 나를 사정없이 끌어당겨 이내 안겨버렸다.
“그런 걸 혼자 끌어안고 계셨던건가요…?”
“…딱히. 끌어안은 적 없었어.”
약간 힘을 주며 다시 일어나보려 했지만, 너무나도 강한 힘에 마지못해 체념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그녀의 품에서 느껴지는 이 느낌은.
“하지만, 그런 고민을 가지고 계셨던 거라면 언제든지 들어드릴 수 있었을—”
“이런 건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인 거니까. 그냥, 갑자기 그리워진거야. 그러니까…”
늘 나를 반겨주던 그 장소, 내가 바라던 그 장소와 같은 포근함에 익숙해지기 전에, 빨리—
“안 돼요.”
나의 작은 저항은, 작은 천사의 한 마디에 저지되었다.
“이 넓은 키보토스에, 선생님이 쉴 곳이 없다니…”
“그건 싫어요…그러면 안 된다고요…”
그녀의 작은 몸이 조금씩 떨려온다.
머리로 떨어지는 따듯한 물방울은 어째서일까.
전에도 미약하게나마 느껴본 적은 있었지만, 이 아이의 거대한 포용력과 온기는 너무나도 소중해서, 계속해서 머무르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괜찮아, 덕분에 쉬고 있으니까.’라던가,
‘조금만 더 있게 해줄래?’같은 말을 하고 싶게 되어버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눈물과 함께 삼켜버리게 되어버린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이끄는 선생으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 거기서 머리를 쓰다듬어버리면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
삼켰던 말이 넘쳐흘러 쏟아지지 않도록, 이를 꽉 다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려보내려 노력했다.
이런 와중에도 ‘몰라뵈어서 정말로 죄송해요.’라던가, ‘앞으로는 저에게도 선생님의 고민을 나눠주세요.’나 ‘어느 때라도 제가 선생님을 안아드릴게요.‘라고 들어버리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버릴 수밖에 없다.
정말로 강하고, 정말로 따듯한 아이다. 이런 아이에게 어떻게 기대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그날은 말없이 감정을 쏟아내며 정신없이 그녀에게 이끌려 휴게실의 간이 침대에 몸을 뉘였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 되어, 화약의 향 대신, 그녀의 잔향과 함께 하루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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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제 노트북:의외로 실제로 존재하는 노트북임. P사의 렛츠노트, CD는 1개만 들어가지만 딱히 갖고 싶진 않음.
*모노블럭:편의점 플라스틱 의자 생각하면 됨. 그거임.
그냥 향수병 걸린 센세 쓰고 싶었는데 어쩌다 세리나에게 의존하는 소설 비슷한거 되어버림. 드아루 뽑다 클리나 나와서 그런건 아니고 진짜 임무분담제 하러가야해서 그냥 이대로 가기로 함…

누가 세리나콘좀 달아다오
댓글 21
저거 노트북 그 파나소닉 그거구나? 엄청 두꺼운 그거 오목교 전자상가에서 봤음
그거맞음! 한번 사볼까 생각했었는데 진짜 일본 특화 놋북이어서 안 샀음
요즘시대에 VGA도 있고 시리얼포트도 있고 온갖게 다있더라 졸라 신기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