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모르겠다.
난 키보토스에 온 후 학생들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학생들이 부르면 언제고 어디라도 달려갔고,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한 몸 불살랐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키보토스엔 날 싫어하는 학생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오늘의 당번, 하야세 유우카도 마찬가지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땐 이정도까지 까칠하게 날 대하진 않았는데, 아니,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도 꽤나 살가운 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날카로워진 태도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이대로 미움받는 채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유우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와. 하야세 양.”
“...네.”
방금까지 밝았던 유우카의 얼굴이 내가 건넨 인사에 차갑게 바뀐다.
어째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밝은 표정에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했는데?
설마 내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기분나쁜 건가???
“오늘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어딘가 축 늘어진 유우카의 목소리.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의 모든 회계 업무를 책임지는 유우카는 항상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학생들이라면 몰라도, 과중한 학교 업무만으로도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어른이 마땅히 혼자 해야 할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건 잘못된 것 아닐까.
그래서 여기선 어른답게 한 마디.
“하야세 양이 도와줄 일은 없어. 혼자서도 충분해.”
“...네.”
나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한숨을 깊게 내쉬는 유우카.
반응이 왜 이렇지???
혹시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한 건가? 목소리나 어투 문젠가?
아니면 요즘 잠을 통 못 자서 무서운 표정이라도 지은 건가?
다음엔 ‘고맙지만’을 앞에 붙이는 게 나을까???
어떻게 해야 유우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지 고민하는 내 속도 모르고, 유우카는 반대쪽 책상 서랍을 열어젖힌다.
“영수증이 안 보이는데… 혹시 몰래 숨겨두신 건가요?”
텅 빈 서랍을 살펴보더니 날카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유우카.
아. 그런 건가.
하긴, 귀찮은 당번 일에 영수증 정리까지 하려면 기분이 좋을 리 없을 테니.
유우카는 과소비 방지라는 명목으로 영수증을 확인해 지출 내역을 관리한다.
영수증 정리가 끝나면 내가 쓴 돈에 대해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긴 설교의 시간이 끝나면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이런 걸 돕는 건 자신뿐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뭐, 충분히 이해는 간다.
아마 누군가의 지시로 샬레의 선생이 횡령이라도 저지르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이겠지.
누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지출 내역을 자진해서 관리하려고 하겠어?
게다가 그렇게 매일 잔소리를 해도 지출을 줄이지도 않는데.
물론 내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지만, 오늘은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한 번은 내가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고, 그 돈을 쓸 시간이 없어서 물욕을 채운다는 걸 공들여 논리적으로 설명했었지만, 결국은 그거 자체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라는 잔소리로 끝났었다.
결국 날 싫어하는 학생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건, 유우카가 늘상 말하는 합리적인 행동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이번엔 이게 전부야.”
미리 챙겨준 영수증을 건네받아 훑어본 유우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게 뭐죠? 프로… 파워? 뭔가 이상한 이름이…”
영수증에 적힌 처음 보는 이름에 날카로운 눈길로 추궁하는 유우카.
“하야세 양은 게임을 좋아했지?”
“네? 아… 네. 좋아해요.”
“야구도 좋아하지?”
“네. 그런데 그건 왜…”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의아해하는 유우카.
좋아. 여기까진 계획대로다.
“오늘은 이걸 같이 할 거야.”
게임과 야구를 좋아하는 유우카의 호감을 얻기 위한 선택.
바로 어제 갓 발매된 따끈따끈한 인기 야구게임 시리즈의 최신작.
어렵게 구한 타이틀을 서랍에서 꺼내들자, 유우카의 표정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밝아진다.
“그럼 혹시 아까 일이 없다는 것도…”
“게임을 같이 하려고 시간을 비워놨지.”
“...선생님…”
내 손에 들린 타이틀을 바라보는 유우카의 환한 미소를 보니, 오늘을 비우기 위해 며칠간 밤을 새며 업무를 처리하다 쌓인 피로가 녹는 것 같다.
오랜만에 게임기의 전원을 켜고 미리 준비한 패드를 건네며 소파에 앉자, 패드를 받아든 유우카도 내 옆자리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선생님은 비둘기즈 팬이시네요?”
“응. 하야세 양은 고양이즈 팬이었지?”
“...기억하고 계셨네요?”
“당연하지.”
“그럼 여기서는 라이벌이네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고양이즈와 비둘기즈는 숙명의 라이벌이잖아요?”
…뭐? 숙명의 라이벌?? 누가 누구랑 라이벌이라고???
아무리 멋모르고 한 말이라도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하야세 양.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네?”
“우승 횟수, 상대 전적, 인기, 역사와 전통… 그 모든 면에서 비둘기즈는 고양이즈와 비교도 안 되는걸? 당장 비둘기즈가 작년에 가을야구를 할 때 고양이즈는 뭐하고 있었지? 최근만 비교해봐도 서로 격차가 어마무시하게 나오는데,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주장하는 건 그쪽 팬들뿐이잖아? 아무리 꼴지를 많이 해서 유망주를 많이 모았다지만 걔들이 아직 포텐이 터진 것도 아니고… 그리고 비둘기즈 입장에서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팀은 따로 있는데, 이상하게 자꾸 고양이즈 팬들만 우리하고 라이벌 호소를…”
비둘기즈의 진정한 팬으로서 잘못을 바로잡고자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다 문득 정신을 차린 내 눈에 들어온 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유우카였다.
“몰라요! 그렇게 잘난 팀으로 선생님 혼자 재밌게 하세요!”
미처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유우카는 컨트롤러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유우카가 집어던진 컨트롤러는 다행히 무사하다.
텅 빈 사무실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사운드만이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내가 조금 심하게 말했나?
하지만… 사실이잖아… 고양이즈가 어딜 감히…
…아. 아냐. 내가 잘못했구나.
결국 오늘도 논리적으로 학생을 설득하려는 불합리한 행동을 했구나.
내 실수였구나.
학생에게 미움받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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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올렸는데 일반탭에 잘못올려서 추하게 재업함...
공모전 끝나고 너무 오랜만에 올려서 탭 바꾸는거 까먹음
댓글 57
와 센남 지인이랑 똑같이행동해서 좀 화나네 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
개찐따센남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착한찐따 ㅋㅋㅋㅋ
이 악물고 미움받으려고 하네 ㅋㅋㅋㅋ
이래도 화 안낼거야? ㅋㅋㅋㅋ


성으로 부르는게 그렇게 안좋은건가
처음엔 이름으로 불렀다가 성으로 부른다는 설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