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알다시피, 매일같이 사건사고가 셀 수도 없이 터지는 키보토스가 멀쩡히 돌아가는 건 다 제 능력 덕분이에요. 어느 학교였더라? 자칭 전지(全知)라며 천재를 자처하는 학생이 있는데, 고작 교내 방송 해킹해서 엔카 틀고 대중교통 노선으로 장난이나 치면서 천재라고 자칭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진짜 미소녀 초천재는 바로 여기 있는데 말이죠.”
“...그것 역시 흥미로운 주제군요.”
“그러니까 문제는 제가 너무 잘났다는 거에요. 각 학교가 알아서 사소한 문제 정도는 해결하라고 자치권을 줘놨는데, 별 거 아닌 일도 똑바로 처리 못하고 툭하면 총학생회에 공문 보내서 도와달라고 징징대는게 하루이틀이 아니라니까요?”
“하긴, 능력있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는 집단은 없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아무리 완벽초인인 저라고 해도 끝없이 일을 짬처리당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어딘지 모를 곳에서 끝도 없이 한탄을 늘어놓고 있는 긴 파란 생머리 소녀와, 맞은편에 앉아 적당히 맞장구를 치는 검은 양복을 입은 새카만 사내의 모습은 이질적으로 대조적이다.
“완벽한 능력과 인성을 겸비한 저도 이제 질렸어요. 그래서 휴가 좀 다녀오려구요.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에서 마티니 한 잔 하려구요.”
“그럼 키보토스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래서 제가 없어도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초법적 조직을 만들어놨어요. 연방수사동아리 샬레. 이름 어때요? 멋지죠?”
“그 조직은 누가 담당하는 겁니까?”
“아 거 참 성격 급하시네.”
눈썹을 살짝 찡그린 파란머리 소녀의 따가운 시선에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 검은 양복의 사내.
“지금 키보토스가 난리가 났죠? 제가 잠깐 자리 좀 비웠다고 이렇게까지 엉망이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다들 완전 폐급이에요.”
“...오랜만이군요. 그런 표현은..”
“제가 뭐 자리 비우고 놀러간것도 아니고, 면접 보러 전국을 누비고 다녔는데 말이에요.”
“면접?”
“네. 연방수사동아리 샬레의 고문을 맡게 될 ‘선생’을 뽑기 위한 면접이죠.”
“선생이라… 그러고 보니 키보토스에는 찾아보기 힘든 직업이군요. 흥미롭군요.”
문득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듯 생각에 잠긴 검은 양복의 사내에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가는 파란머리 소녀.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키보토스에선 쓸만한 선생을 못 찾겠더라구요. 아니, 다 로봇 아니면 수인이나 동물들인데, 한창 남자에 목마른 여고생들이 그런 선생으로 만족하겠어요?”
“...당신은 선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뭐, 별 거 있어요? 어차피 수업은 BD랑 기술노트로 다 하는데, 그냥 마스코트 노릇 하면서 말동무나 상담 좀 하고, 총학생회에 몰려드는 업무나 짬처리하면 그게 선생의 역할이죠. 아닌가요?”
“...네. 그렇다고 해두죠.”
여기서 상대의 말에 반박하면 대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걸 인생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는 검은 양복의 사내가 적당히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당신을 부른 거에요. 어… 이름이… 에이, 뭐 그냥 시커먼 분이니 한자와 씨※라고 부를께요. 한자와 씨는 키보토스 외부에서 왔죠?”

※범인 한자와 씨: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예비 범인의 검은 실루엣이 주인공인 개그 만화.
“...네. 그렇습니다만.”
“키보토스 외부에서 쌔끈한 선생 한 명 데려와요.”
“뭐라구요?”
한자와, 아니 검은 양복의 사내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묻는다.
“대충 다른 세계 가서 키 크고 잘생기고 인품 좋고 일 잘하고… 아무튼 알파메일 선생 한 명 잡아오라구요. 일단은 선생이니까 최소 2급 중등 정교사 자격증은 필요하고, 가급적이면 발령을 받은 사람이 좋겠네요. 아, 나이도 좀 젊어야 하고…”
이세계를 뭔 옆동네처럼 이야기하는 파란머리 소녀의 요구조건에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검은 양복의 사내.
“이봐요.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지금…”
“한자와 씨. 제 말이 농담처럼 들려요?”
잊으면 안 되는 사실, 지금 검은 양복의 사내 앞에 있는 파란머리 소녀는 키보토스의 최고 권력자이자 이해할 수 없는 권능의 소유자라는 것.
“제가 왜 키보토스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존재들을 다 쓸어버리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다 쓸모가 있어서에요. 당신들 집단… 게마트리아인지 집게리아인지도 마찬가지에요.”
“......”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건 부탁이 아니에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이죠.”
파란머리 소녀의 활짝 웃는 표정과 대조되는 협박에 한숨을 푹 내쉬는 검은 양복의 사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네. 그럼 다차원 이동을 하실 테니 시간은 별 의미가 없고… 1분 뒤에 볼까요?”
“6초 후에 보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검은 양복의 사내.
정확히 6초 후, 방금보다 많이 수척해진 얼굴의 검은 양복의 사내가 어깨에 포대를 짊어지고 공간을 넘어 다시 나타난다.
“오랜만이군요.”
“시간이 얼마나 걸렸길래 그래요?”
“...당신이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온 우주에 몇 명이나 되겠어요?”
앞에 위치한 테이블에 포대를 내려놓는 검은 양복의 사내.
“잘생기고, 키 크고, 구김살없이 잘 자라 성격도 좋고, ROTC 출신으로 총기도 잘 다루고 전술 교육도 수료했고, 올해 첫 발령받은 학교에서도 학생부터 교직원 모두에게 인기 만점인 알파메일 선생. 거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는 인품까지.”
“그 인품은 어떻게 확인했죠?”
“사람을 이세계에 데려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트럭에 치일 뻔한 아이를 몸을 던져 구하고 대신 차에 치였다는 얘기에 파란머리 소녀의 얼굴이 살짝 흐려진다.
“트럭에 치였으면 얼굴 망가진 거 아니에요?”
“...걱정 마시길. 이세계 수송용 트럭은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니까.”
쌀포대를 살짝 열어본 파란머리 소녀의 얼굴이 다시 활짝 펴진다.
“캬아…”
“솔직한 반응이군요.”
“혹시 한자와 씨의 취향도 고려한 얼굴인가요?”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검은 양복의 사내.
“이정도 선생이면 키보토스 학생 모두가 좋아하겠어요. 수고했어요. 한자와 씨. 당신들의 연구에 필요한 소재를 보내뒀으니 돌아가서 확인… 아, 확인할 필요는 없겠군요.”
“무슨 말입니까?”
“그야 당신은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요.”
파란머리 소녀의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검은 양복의 사내가 급히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미 그의 다리는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검은 양복의 사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지긋이 눈을 응시하며 마치 주문을 외듯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파란머리 소녀.
“자, 당신은 저와 만난 적이 없고, 제가 지시한 일을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일어난 모든 일은 잊어버리세요. 아시겠죠?”
“...네.”
“이제 가보세요. 당신은 본거지에 도착하면 정신을 차릴 겁니다.”
파란머리 소녀의 말에 초점없는 눈으로 방문을 향해 기계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 검은 양복의 사내.
검은 양복의 사내가 문을 열고 나가는 걸 확인한 파란머리 소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방금까지 어두운 방이었던 공간이 어딘가를 달리는 전철로 바뀐다.
“이제… 선생 기억 소거하고, 총 맞은 것처럼 옷에 가짜 피 좀 묻히고, 싯딤의 상자 가동에 필요한 패스워드는 선생 머릿속에 넣어 놓고…”
들뜬 마음으로 휴가를 위한 준비 작업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꼼꼼히 진행하는 파란머리 소녀.
“마지막으로 선생이 깨어나면 들려줄 대충 의미있어보이는 대사 체크까지.”
모든 준비를 끝낸 파란머리 소녀가 선생과 맞은편 전철에 앉는다.
“이렇게 잘생긴 선생님과 직접 노닥거리지 못해서 아쉽지만, 싯딤의 상자가 있으니까요.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맞은편의 선생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천천히 뜨고, 파란머리 소녀는 입을 연다.
“......제 실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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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모전 준비한다고 글 안올리고 있는데
아마 다들 공모전 준비하느라 글 안올리는건 비슷하겠지
옴니버스 형식이 좋을지 스토리를 전개하는 게 좋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공모전 양식이 나와야 좀 감이 올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뽑힐 거라는 기대는 크게 없지만
좋은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고 준비중이니 관심 좀...
댓글 32
개웃기네ㅋㅋㅋ
ㅋㅋㅋㅋㅋㅋ 고마워
똥아로나 이놈!!
이래놓고 파란봉투만 주는 똥아로나 혼나야겠지?
그냥 무친련이잫아..
천재는 범부가 이해할 수 없대...
휴가에 미친년 ㅋㅋㅋㅋ
아 나도 휴가가고싶다!
한자와는 ㅅㅂ 코난에서도 여기서도 걍 존나 구르노ㅋㅋㅋㅋㅋㅋㅋㅋ
검은 실루엣의 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