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by レ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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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5>
<1>
겨울의 해이함이 느껴지는 아주 조금 더운 요즈음.
엊그제 새해를 맞이했건만, 벌써 봄이 코앞까지 다가온 듯하다.
백화요란의 문을 지날 때마다 그 소동도 옛이야기처럼 여겨진다.
“나구사 선배! 저와 단련해 주시어요!”
“응, 좋아. 오늘도 기대할게.”
“오늘이야말로 지지 않겠사와요! 이 몸, 매일 진화하고 있사와요!”
“음…… 벽치기, 이걸로 괜찮은 거야?”
“안 돼, 안 돼! 더 기세 좋게 해야지! 이래선 히로인은 설레지 않는다고!?”
“으, 응. 어렵네, 청춘 활동이란 건……”
“오, 백화요란 분! 지난번엔 고마웠어! 그 녀석들 늘 도망치는 발이 빠르거든!”
“아니야. 백화요란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
“아니, 아니. 당신들이 돌아와 줘서 다행이야! 이거, 우리 집 신상품! 꼭 다 같이 먹어 줘!”
유카리와는 매일 총을 겨루고, 렌게에게는 청춘 활동을 배우며, 거리 사람들과는 미소를 주고받는다.
바쁘지만 온화하고 따뜻한 나날.
백화요란의 이름도 겨우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긴…… 하지만.
가슴속에 단 하나.
도저히 그대로 두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이 있다.
“……키쿄.”
가슴에 걸리는 이름을 무의식중에 입 밖에 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을 내쉰다.
마음 깊은 곳에 남은 작은 가시가 아직 그곳에 박혀 있었다.
“……”
아직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그때의 일에 대해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그 소동 때문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다.
내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말았다.
혼자서 도망쳐 버렸다.
―제대로, 사과해야만 해.
“……으음.”
말로 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늘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어쩌지……”
이제 와서 뭘 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미 물에 흘려보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의 자기 만족적인 사과로 굳이 싫은 일을 떠올리게 하다니…… .
그야말로 본말전도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 것은 그것대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키쿄가 아직 화가 나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음 만났을 때…… 아니, 역시 그래도……”
복도 끝에서 끝으로, 왔다 갔다 벌써 몇 번이나 왕복했는지 모른다.
머릿속에서 말을 늘어놓았다가 부수고, 부쉈다가 다시 늘어놓기를 반복한다.
계절은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전혀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과하는 게 이렇게 어려웠던가…….’
딱히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백화요란 모두와 당고 집에 갔고.
키쿄와 둘이 저녁 식사 재료를 사러 간 적도 있고.
오히려 그때보다 사이가 좋다…… 분명히…… 아마도.
“사과, 해야지…… 으음…… 하지만……”
목소리 없는 중얼거림이 입술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떻게 발을 떼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사과하고 싶은 건지, 사과하고 싶지 않은 건지.
그런 자문자답이 부질없이 이어지고 서 있던 찻잎 줄기가 가라앉을 무렵에야.
귀여운 후배가 돌아왔다.
“……나구사 선배? 뭐 하고 있어?”
“앗! 어, 아, 키쿄……? 무, 무슨 일이야!?”
복도 저편. 익숙한 푸른 하오리가 마침 현관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니…… 순찰 끝났으니까, 돌아온 것뿐.”
혜안이 빛나는 냉정한 표정. 그 눈동자 깊은 곳에 아주 조금 불안의 빛깔이 섞여 있는 듯했다.
……당연한가. 복도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니...
“그, 그랬구나……. 수고했어.”
있는 힘껏 평정을 가장해 보지만, 목소리는 아무래도 떨리고 만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 몸짓은 나와 대조적으로 한없이 자연스러웠다.
이 무음의 공간에서 내 마음만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지금, 말해야 할까?
하지만 순찰을 막 마쳤으니, 피곤할…… 테지.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언제……’
사고가 다시 소용돌이친다.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설임이 목구멍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흔해 빠진 말을 내뱉는 것으로 끝났다.
“키, 키쿄!”
“으, 응?”
“……어, 어서 와.”
“……응. 다녀왔어.”
단지 그것뿐인 대화.
하지만 말을 주고받은 직후에 찾아오는 침묵은 유난히 무겁고 불안하다.
‘또…… 타이밍을 놓쳤다…… 으으……’
가슴속에서 말이 시들어 가는 가운데 어색한 공기를 찢듯이 키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안쪽에서 사무 작업을 할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줘.”
“응? 하지만, 오늘은 벌써……”
“이 정도는 괜찮아. 오늘 아침 분이 조금 남았을 뿐이니까.”
애써 담담한 목소리.
어딘가 도망치듯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벗어나는 그녀의 시선이 조금 가슴이 아프다.
……키쿄.
누구보다 냉정하고, 서투를 정도로 타인을 생각하는 우수한 참모.
내가 등을 돌리고 손을 놓아 버린 그 순간부터 백화요란을 지켜준 것은 그녀였다.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겠지……’
감사의 말도, 사과의 말도, 어딘가 빌려온 것 같아서.
그럼에도 전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여기에 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한 자기만족이고, 속임수니 다름없다.
키쿄는 그런 얄팍한 상냥함으로 여기에 서 있었던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도와줘도 될까?”
미사여구나 그럴 듯한 서론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곧바로 말을 전했다.
“금방 끝날 텐데? 선배가 굳이 안 해도……”
키쿄는 아주 조금 시선을 외면한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원래 내가 해야 할 일…… 이니까…… 그…….”
말은 끊어지기 일쑤인 데다가 요령도 나쁘다.
나는 분명 그녀보다 훨씬 서툴다.
선배다운 말도 잘하지 못하고, 넘치는 감사를 형상화하는 것도 서툴다.
돌아온 지금도 도망친 책임과 마주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채로.
―그렇다면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이니까.
“……변했네.”
문득 흘러나온 듯한 그 목소리에 나는 무심코 얼굴을 든다.
작게 내뱉어진 그녀의 말을 한순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응? 지금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자, 도와줄 거지? 그렇다면 얼른 끝내자.”
담담한 말투 속에 희미하게 번지는 부드러움.
기분이 좋을 때 그녀의 평소 목소리.
“……응!”
<2>
나란히 안쪽 방으로 들어가자, 부드러운 종이 냄새와 조용한 공기가 맞이했다.
책상 위에는 정성스럽게 분류된 서류 뭉치가 몇 개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이미 처리된 것으로 보이는 서류 더미.
분명히 혼자서 할 분량이 아니다.
“……꽤 많네.”
“그런가? 평소보다 적은데.”
키쿄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한 장을 집어 든다.
그런 그녀에 대한 감탄을 가슴에 담으며 나도 서류에 손을 뻗었다.
“그럼, 이쪽은 내가 할게.”
“응. 정리해 버리자.”
어느새 서로 말없이 서류에 마주하고 있었다.
서류를 처리하는 소리만이 방의 정적에 부드럽게 섞이고 있었다.
키쿄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망설임 없는 움직임으로 서류를 훑어보고 필요한 곳에 표시를 한 뒤,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고, 흐르는 듯한 그 동작에는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대단해…… 빠르다……’
문득 눈을 돌린 나의 손은 아직 같은 서류 위에 있었다.
음양부로의 비품 신청, 마츠리 운영 관리부와의 회합── 내용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확인하는 손이 멈춰 버린다.
서류 더미가 줄어드는 속도는 비교할 것도 없었다.
‘으으…… 한심해……’
초조한 듯, 부끄러운 듯.
도와주겠다고 말해 놓고 이 꼴사나움은 아무리 봐도 미안하다.
이윽고 펜의 선율이 조용히 멈췄다.
“끝. 도와줘서 고마워.”
“엣, 아, 이쪽이야말로……?”
키쿄의 목소리에 놀라 얼굴을 들자, 그녀는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만족스럽게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키쿄는 역시 대단하네.”
정말로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초조함 속에서 억지로 배운 것을 그녀는 노력으로 자연스럽게 제대로 익히고 있다.
나이도 어리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지금은 나 따위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고, 정중하고───
“……그거, 나구사 선배가 할 말?”
뜻밖의 반문에 사고가 멈춘다.
키쿄는 시선을 떨구면서 어딘가 토라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백 기간도 있는데, 나랑 거의 같은 속도로…… 빈말이라면 필요 없어.”
“빈, 빈말 같은 거 아냐……!”
반사적으로 부정한다.
키쿄는 미소를 띠고, 아주 조금 입술을 삐죽였다.
“……농담이야. 선배가 그런 사람인 거 알고 있으니까.”
목소리와는 달리 그 옆모습은 어딘가 기쁜 듯했다.
자세히 보니 멋진 두 갈래 꼬리가 흔들흔들 무궤도를 그리고 있으며, 귀도 한쪽이 축 처져 있다.
이것도 기분이 좋을 때의 몸짓이다.
“음…… 고마워……?”
“나야말로. 덕분에 빨리 끝났어.”
말이 통하는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한 감각이 든다.
왠지 홀린 기분이다. 물론 그녀는 여우가 아니라 고양이지만.
……뭐, 그래도──
“딱 좋은 시간이네. 차라도 타서 잠깐 쉬죠.”
“……응!”
기분이 좋다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3>
“좋은 거 받았어. 이거, 신작 당고야.”
꾸러미를 꺼내자, 키쿄의 귀가 쫑긋하고 흔들렸다.
“헤에……”
“대로의 당고집 아저씨가, 지난번 일 고맙다고.”
“과연. 그럼, 감사히 먹자.”
드물게 감정이 그대로 말에 실린 듯한 목소리였다.
늘 어딘가 담담하던 그녀가 살짝 눈을 빛내고 있다.
그것이 기뻐서 나는 기세 좋게 일어섰다.
“그럼, 당장 차라도 끓여서──”
“잠깐.”
딱, 하고 가로막힌다.
살짝 놀라 눈을 돌리자, 키쿄는 어딘가 어이없다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 손으로는 무리잖아. 내가 할 테니, 선배는 여기서 앉아 있어.”
반사적으로 일어나려던 기세가 어중간하게 헛돌아 황급히 제동을 건다.
“그, 그릇 정도는…… 옮길 수 있어……?”
기운 없는 반론.
그것은 당연하게 추궁을 받았다.
“그릇 정도를 몇 번이나 떨어뜨릴 뻔했는지 기억해?”
“그건…… 그렇긴 한데……”
반론의 여지가 없어 무심코 입을 다문다.
적어도 한 손으로 셀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모처럼 받은 거잖아. 그럼 잘 타 올게. 차 취향은 안 변했지?”
“응, 응.”
확인하는 듯한 시선을 받고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다.
키쿄가 끓여준 차는 매우 맛있다.
“그럼, 기다려.”
꾸러미를 안은 채 성큼성큼 방을 나가는 키쿄.
그 뒷모습은 여전히 든든하고, 어딘가 어른스러워 보이려는 듯도 하다.
방문이 조용히 닫힌다.
나는 살며시 허리를 내렸다.
“……후우.”
안도인지 피로인지 모를 한숨이 새어 나온다.
책상 위에는 더 이상 서류가 없다.
그저 가지런히 놓인 펜과 오후 세 시의 햇볕만이 남겨진 것처럼 그곳에 있었다.
창문에서 비치는 빛은 부드럽고 조금 눈부시다.
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수국 향이 어딘가 간지럽다.
평온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고요함이었다.
‘……이젠, 화 안 났겠지.’
말의 끝자락마다 스며 있던 그 상냥함.
나에게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그 배려.
직접 맞닿은 그녀의 감정.
그녀는 나를 용서해 주고 있다.
내가 부재했던 그 시간을 분명 전부 삼키고서.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아직……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
무례한 나의 존재가 이 온화한 시간 속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손을 무릎 위에 얹고, 가만히 손끝을 응시한다.
차가워진 것은 아닌데 어딘가 어색하고 불안하다.
봄에 마음을 맡기듯이 나는 눈을 감았다.
‘……말하자.’
마주해야 한다.
지나간 시간에도, 그녀에게도.
문이 조용히 열리고 기분 좋은 김과 달콤한 향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정성껏 늘어놓은 당고,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따스한 김.
하얀 김 너머로 키쿄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따뜻할 때 먹어. 식으면 양념이 굳어버리니.”
키쿄는 내 앞에 살짝 찻잔을 놓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우리 둘 사이를 부드럽게 잇고 있다.
“고마워, 키쿄.”
눈을 마주하고 감사를 전한다.
긴장도 초조함도, 신기하게도 없었다.
그저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향 좋지. 이것도 상점가 분에게 받은 거야.”
기쁜 듯이 말하며 키쿄는 당고 꼬치를 하나 손에 들었다.
그녀의 행동을 따라 하듯 꼬치에 손을 뻗는다.
한 입 먹고, 차를 홀짝였다.
“……응, 맛있네. 왠지, 엄청 사치 부리는 기분이야.”
만족스럽게 웃으며, 키쿄가 당고를 또 한입 베어 문다.
그 표정이 너무나 온화해서 덩달아 나의 입가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
“키쿄…….”
“그러고 보니 유카리가…… 아, 미안.”
목소리가 겹쳤다.
그 직후 뻘쭘한 듯 말을 끊은 키쿄의 눈이 이쪽을 향한다.
“무슨 말 하려고 했어?”
“에, 엣!? 아, 아무것도 아니야앗……!?”
황급히 손을 저어 얼버무린다.
심장이 유난히 강하게 뛰었다.
키쿄는 작게 눈을 깜빡이더니 아주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이상은 추궁하지 않았다.
“……유카리가 다음 단련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나 봐.
백화요란 안에서 대항전 같은 걸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대, 대항전인가…… 응,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나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얼버무리듯 당고를 다시 입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아까보다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으으으…… 왜 이렇게 타이밍이……’
단 한 마디.
정말 한 마디다.
어째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렌게도 기대하고 있어. 청춘 활동의 연장이라고 들떠 있던데.”
“렌게도…… 그렇구나. 응, 기대되네.”
어떻게든 말을 되돌려주지만, 역시 마음은 여기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어지고 나면 이제 와서 말을 꺼낼 타이밍도 점점 멀어진다.
게다가 사고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지금……은, 차 마시고 있으니까…… 다 마시고 나면……
큰일이다, 나 전혀 안 먹고 있잖아.
이러면 키쿄에게 실례잖아? 한 입 정도 먹……
아니 애초에 잡담 같은 흐름으로 슬쩍 말하는 게……’
머릿속이 빙글빙글 돈다.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내용도, 순서도, 최악의 경우 발음이 씹히더라도 전하는 것만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첫걸음을 도저히 뗄 수가 없다.
‘그보다 이렇게 고민할 바엔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은 거 아닌가……
애초에 화 안 난 상대에게 사과해도 무슨 일인가 싶지 않을까……?’
제자리걸음을 선택하려던 생각들이 현실의 목소리에 싹둑 잘렸다.
“나구사 선배?”
“헉!”
갑작스럽게 불려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 얼굴을 들자, 의아해하는 키쿄가 거기에 있었다.
……왠지 지금, 이상한 목소리가 난 것 같다.
“미안한데…… 오늘 계속 이상해.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조용한 목소리.
그러나 그 눈동자는 꾹 하고 마음속 깊은 곳을 꿰뚫는 듯한 올곧음이었다.
마치 도망갈 길을 막듯이 책상 너머로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아, 아니…… 그게…… 별거 아니야…….”
습관처럼 변명이 솟아오른다.
그것이 실언임을 깨달은 것은, 그녀의 작전에 걸려든 뒤였다.
“부정하지 않는다는 건, 고민거리는 있다는 거네.”
“엣, 앗…….”
“괜찮아, 딱히. 내가 신용할 수 없다는 것뿐이겠지.”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비난하는 듯한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사실처럼 중얼거린다.
죄책감이 가장 아픈 것이라는 것을 키쿄는 잘 알고 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럼, 나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겠네.”
감정이라기보다는 논리의 축적.
선배-후배의 상하 관계가 아닌 대등한 입장.
키쿄의 방식은 언제나 이치에 맞았다.
말을 고르는 데 실패한 나는 순식간에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선배의 고민, 내가 해결해 줄게. 괜찮아, 겉보기와 달리 입은 무거운 편이니까.”
의기양양하게 내뱉는 그녀에게는, 확실한 긍지와 각오가 있었다.
꼿꼿이 선 고양이 귀가 이쪽의 대응을 지금이나 하고 기다리고 있다.
궁지에 몰아넣고 싶어서 몰아넣는 것이 아닌데, 그 상냥함이 오히려 괴롭다.
나의 마음은 이제 한계였다.
“……읏.”
위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불안.
도망칠 곳이 없음을 자각한 초조함.
목이 타는 듯이 괴롭고,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삐걱거린다.
“미…….”
“미……?”
하고 싶은 말인지, 하도록 강요당하는 말인지, 그것조차 더 이상 나는 알 수 없었다.
머리는 새하얗지만 열기만은 가득했다.
사고도 감정도 전부 뒤죽박죽으로,
순서도 싹둑 잘라 버리고.
엉망진창인 채로, 난장판인 채로.
그럼에도, 참을 수 없어서──
“……정, 정말 죄송했어요옷!!”
“……뭐?”
<4>
“……하아.”
처음으로 되돌아온 말은 망연자실한 한숨.
사정을 전부 설명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0분.
“……결국. 복도를 서성거린 것도, 서류 작업을 자청한 것도, 아까 유난히 조용했던 것도……”
“전부…… 사과할 타이밍을 찾고 있어서…….”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는 키쿄와, 민망함에 의자 위에서 얌전히 쪼그라든 나.
선배의 위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괜찮아. 대충 파악했어.”
손가락 끝으로 찻잔의 테두리를 쓰다듬듯이 문지르며, 그녀는 어딘가 불안한 듯이 말을 찾는다.
그리고 살며시 내뱉듯이 나직이 고했다.
“하나. 용서한 건 아니지만 화나진 않았어.”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얼굴을 든다.
토라진 듯 시선을 피하면서도, 키쿄는 어딘가 쑥스러운 울림을 두른 말을 이어간다.
“둘. 선배가 사과할 필요 같은 건 없어.”
팔랑팔랑 떨어지는 말의 잎새.
고요함에 녹아들어 가는 듯한 그것은 어깨에 쌓인 눈을 정성껏 털어 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 사과하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
“……미안해요.”
살며시 시선이 마주친다.
이끌리듯이 목소리를 짜낸다.
“나도…… 제멋대로 굴어서, 미안해…….”
용서를 비는 말이 아니라.
단지, 다시 한번── 제대로 옆에 서기 위해서.
가라앉았던 독을 빼낸 침묵이 살며시 방을 감싸안는다.
겨우, 전해졌다.
겨우, 되돌려주었다.
그런 안도감으로 가득 찼을 때──
“아~~~~! 두 분 너무 치사해요오!!”
요란한 목소리와 함께 장지문이 쾅 하고 열렸다.
정서도 여운도 무엇이든 전부 내팽개치고, 기운 넘치는 목소리가 실내로 뛰어든다.
“다녀왔습니다아…… 앗, 오늘은 당고네!”
“오늘 간식이 당고라니 듣지 못했사와요! 키쿄 선배, 저에게도 한 꼬치 정도는…….”
키쿄는 쓱 하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제대로 남겨뒀어. 차도 추가로 끓일 테니, 둘 다 손 씻고 와.”
노골적으로 섞여 있는 한숨과 함께 귀가 쫑긋 흔들린다.
유카리와 렌게가 왁자지껄 복도로 달려 나갔다.
그들을 배웅한 뒤 훅 공기가 느슨해졌다.
갑자기 홀로 남겨진 듯한 고요함이 실내로 돌아온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김과 은은하게 향긋한 당고 냄새.
나는 맞은편에 앉은 키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부족했던 말.
전하고 싶었던 이어지는 이야기.
이번에야말로 말로 하려고 입술을 열려는 그 순간.
“……저기, 키쿄──.”
착, 하고.
키쿄의 손가락이 나의 입술에 닿았다.
살며시 검지를 갖다 대듯이.
“……”
그것은 '침묵은 금'이라는 의미기도 하고.
그리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의미이기도 해서.
말이 아닌 표정과 몸짓으로 전해진 그 의도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구사 선배도 차 더 마실 거지?”
어딘가 부드럽고 다정한 울림.
꾸밈없는 순수한 친절.
지금은 후배에게 응석 부리기로 하자.
어차피 나로선 찻통을 떨어뜨리고 말 테니.
“……응. 특별히 맛있는 거로 부탁해!”
<5>
등롱의 불빛이 띄엄띄엄 길을 비출 무렵.
순찰 준비를 마치고 외투의 깃을 가볍게 정돈하자, 등 뒤에서 조용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구사 선배?”
뒤돌아 보자 복도 그림자에서 키쿄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불빛에 비친 두 갈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응, 키쿄. 무슨 일이야?”
“내가 할 말이야. 또 순찰?”
“응, 큰길 옆길을 한 바퀴. 두 시간 정도면 돌아올 거야.”
“……자주 도네. 이 시간에 문제가 생긴 적은 거의 없는데.”
어이없어하는 어조지만,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그곳에 있었다.
키쿄가 살짝 문고리에 손을 댄다.
“열게.”
“고마워.”
미닫이문이 삐걱거리며 천천히 바깥의 냉기가 흘러 들어온다.
밤기운이 뺨을 어루만지며 깃 사이로 서늘하게 피부에 스며드는 듯했다.
“……읏, 추워…….”
키쿄는 어깨를 감싸안듯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나는 한 걸음 내디딜 준비를 한다.
“손난로 가져갈래?”
“괜찮아. 추위에는 강하니까.”
대화는 숨결과 함께 하얗게 녹아내렸다.
공기에 섞인 희미한 서리 냄새가 겨울의 기분을 몸에 배게 한다.
“그럼, 다녀올게.”
“응, 조심히.”
문밖으로 발을 내디딘다.
짚신이 삐걱거리는 소리만이 귓가에 남았다.
올려다보니, 보름달이 조용히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은 옅게 밝고, 구름 한 점 없다.
―등 너머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녀오세요.”
그 말만이 겨울밤의 고요함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단순한 인사말이고 흔해 빠진 말.
하지만 나에게 있어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되돌려준다.
―다녀올게.
차가운 밤바람이 피부를 어루만진다.
애총의 감촉이 손에 익숙하고, 밤거리가 나의 발소리를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왠지 모르게 세상이 멀게 느껴졌다.
거리 풍경도, 나무들의 흔들림도 단편적으로 귀에 닿았다가 물거품처럼 조용히 사라진다.
대로에는 인적이 없고, 두 마리의 토끼만이 나를 지켜볼 뿐.
“……후훗.”
무심코 혼잣말을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녀오세요.
다녀올게.
분명히 주고받은 당연하면서 당연하지 않은 말.
나는 알고 있다.
이 말에는, 확실한 앤서 송(Answer Song)이 있다는 것을.
“빨리 돌아가자……!”
물론, 오늘 아침에 말했을 뿐이지만.
입장이 반대라면 몇 번이라도 말해도 좋다.
그런 말이다.
깊은 눈이 흩날리는 큰길을 눈꽃이 달린다.
단 네 글자의 서툰 선물.
다과로 삼기엔 조금 짧을까.
Fin.
댓글 5
선개추
이런거 너무 좋아.. 번역 고마워
우마이
좋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