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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가 어디선가 종이 봉투 하나를 가지고 와 코유키에게 건넸다.
안에는 그녀가 준비한 로봇 장식물이 상자에 포장되어 있다.
“코유키.”
“헉…! 이건…!”
“생일 축하해.”
뭐가 들어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코유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생일, 기억하고 계셨나요!?”
“…후배의 생일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
“…와! 저 오늘 축하받는 거 선배가 처음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리오 회장은 생일 같은 거 신경 안 쓸 줄 알았거든요. 설마 이렇게 축하받게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 말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코유키는 박물관에서 공룡이라도 만난 것처럼 리오 주변을 방방거렸다.
“코유키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진 않을 거 같은데. 요즘은 모모톡 프로필에도 생일 정도는 다 표시되니까.”
“니하하! 그런 기능은 당연히 다 꺼뒀죠! 그러면 재미없잖아요!”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아까 축하받으러 왔다고 그랬구나.”
“…네! 하지만 그…, 이렇게 돼 버렸지만요.”
“안 그래도 일 끝나면 가려고 했는데. 먼저 와 줘서 깜짝 놀랐어.”
“어라? 선생님도 모르고 계셨던 거 아셨나요?”
“난 알고 있었는데?”
“…핫! 정말요? 어째서요?”
“어, 어째서? 어째서냐니…. 그거야 당연히 선생님이니까…. 적어도 만난 적 있는 학생의 생일 정도는 다 외우고 있어.”
“…!! 과연…! 역시 선생님을 찾아온 건 정답이었네요…!”
그제야 평소의 코유키답게 방긋 웃는다.
어딘가 풀이 죽어 있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줄곧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모처럼의 생일인데 별다른 자극 없이 흘러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납득이 갔다.
그는 갑작스럽게 쌓인 당혹감이 기분 좋게 해소된 것을 느꼈다.
“생일 축하해요, 코유키 씨. 마침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려던 참에 리오에게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뭘요. 같은 밀레니엄의 후배인걸요. 이 정도는 당연하답니다. 접근하기 힘든 절벽 위의 꽃이면서도 인자하고 따스한 성품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 저니까요. 후훗….”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봐도 괜찮을까요?”
“아니요?”
히마리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네? 인자하고 따스한 성품을 지녔다면서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희 말을 잘 들어주면 곱게 풀어 줄 수도 있답니다, 하고.”
“네…? 뭐, 뭘 시키시려는 거죠? 니하하…. 뭔~ 가 불안한 건 저만 그런가요? 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은데요…?”
“생일…, 좀 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아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
“노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거 꿈은 아니지?”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연방 수사동아리 샬레의 선생님이 괴한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범인은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1학년 세미나 소속의 학생으로 오후 1시경…」
“네. 후후. 엄연한 현실이랍니다.”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밀레니엄 타워 옥상으로 올라온 두 사람은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크로노스 스쿨의 보도 비행선이 마른하늘에 뜬 것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코― 유― 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어디 게헨나나 백귀야행의 학생도 아니고!”
「발키리 당국은 범인을 추적 중입니다만 범행 시간 동안 도주 경로의 CCTV가 모두 정지되어 있었음을 확인,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발키리 공안국의 오가타 칸나 국장은 이를 범인의 계획범죄로 특정하고 수사망을…」
“이걸로 선생님이 납치되신 게 올해에만 네 번째네요. 그중에서 밀레니엄은 코유키 쨩이 처음…. 정말 자랑스러운 후배이지 않나요?”
“정말!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게 지상에 천지인데 하늘에까지 띄우고! 이번에 붙잡으면 아주…”
「아! 방금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 중이라는 속보가 이어서 전달되었습니다! 바로 보시지요!」
“코유키!? 저 싼티 나는 복면은 또 뭐야!?”
「거짓말이죠? 저 놀리는 거 맞죠? 네? 진짜 송출 중이라구요? 아, 아아. 드, 들리시나요~ 서, 선배, 이거 정말 해요!? 해 버려요!?」
“대체 저런 곳에 뭘 하는…, 선생님!?”
“어머, 눈을 가리고 양손으로 브이 하시면서 웃고 계신걸요?”
“일부러 저러시는 거야. 더러 있는 일이지만 선생님을 걱정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하여간. 따끔하게 혼내셔도 되는데. 사람이 너무 물러도 문제라고 늘 말씀드려도 저렇게 웃기만 하시고.”
「네!? 벌써 50만명이 보고 있다고요!? 크, 크흠…. 알겠어요! 곰곰~ 히 생각해 보니 나쁜 건 제가 아니잖아요? 니하하하하―!! 선생님은 제가 납치했습니다! 선생님을 되찾고 싶다면…, 당장―」
“유우카 쨩, 방금 그 목소리는….”
“응. 나도 방금 들었어. 분명 히마리 선배의 목소리야. 어째서 코유키와 같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의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알겠어.”
“분명 얼마 전에 선생님의 자택 근처에서 자주 목격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죠?”
“맞아. 수상한 인물 한명이 동행한다는 이유로 현재 요주의 상태야. 아무래도 선생님한테서 특별한 보고가 있었거나 일개 학생도 아니고 히마리 선배이다 보니 적극적인 조사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잠깐. 저 녀석 설마 금품을 요구하는 건 아니겠지!? 이전의 채권 위조로 만족하지 못해서 이런 일을…!?”
「따봉 코유키야 생일 축하해를 외쳐 주세요―!! 그리고 SNS 트렌드에도 올려 주세요!」
“에?”
“후훗. 역시 그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네요.”
“노아!? 뭔가 알고 있었던 거야?”
“네♪ 어렴풋이지만요.”
“어째서 얘기해 주지 않은 거야!?”
“후후. 가끔은 이런 것도 즐겁지 않나요? 사람은 여유가 없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자신의 주변도 신경 쓰지 못하게 되죠. 하지만 오히려 일이 겹치고 겹쳐 이런 무아지경의 상태에 놓이면 신기하게도 평소보다 냉정해지기도 한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발렌타인은~ 제가 선생님을 독점할 테니까요~
뭐~ 야. 막상 해 보니까 별거 아니었네요? 니히힛.
보자…, 라이브챗이…. ‘웃기지 말고 얼른 선생님을 풀어 주라구요?’
왜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선생님은 제가 납치했잖아요.
뭐어~ 문자로만 봐도 부러워서 이를 가는 게 보이네요~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비로소 인생은 재미있는 법.
꼬우시면…, 아시죠?」
라이브가 켜진 직후만 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이제는 보는 이들의 머리끝까지 기어올라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여느 때보다 풀이 죽은 느낌이다 싶더라니. 그래서 선생님께 그걸 전해 달라고 부탁한 건데! 뭐…,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으니까…. 아, 정말! 노아! 얼른 저 바보를 데리러 가자!”
“좋아요♪ 저대로 두면 세미나를 키보토스 공공의 적으로 만들 것 같아서 걱정이기도 하고요.”
***
“이걸로 괜찮겠어? 아까 그런 건 재미없다고 그랬었잖아.”
“네? 음…, 그치만 이건 재밌는데요?”
“그래?”
“…음. 그러네요. 왜일까요?”
코유키는 잠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50만명한테 축하받을지도 모르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런 알량한 자존심이 중요할까요?’ 하고 얼버무렸다.
‘그건 그래.’ 하고 그가 맞장구를 쳤다.
사실 리오는 지금 이 상황이 조금 불편했다.
사무실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히마리와 함께 선생님에게 초콜릿은 건네러 간다.
딱 그 정도의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막막했던 상황에 히마리가 묘수를 발견했다고 말했을 때는 아무래도 일말의 불안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설마 이런 일이 될 거라곤 상상은커녕 죽어도 몰랐다.
“리오, 표정이 조금 안 좋은데…. 괜찮아?”
히마리와 코유키는 이 혼란하고 혼란한 상황이 마냥 즐거운지 ‘어때요, 조금은 후련해지지 않았나요?’, ‘…네! 과연…, 히마리 선배네요!’.
아주 죽이 찰떡같다.
“응. 단지…,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뿐이야….”
다른 학교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밀레니엄에도 유별난 학생이 많은 만큼 이런 해프닝은 이따금 일어나고는 했다.
그건 세미나 주변도 마찬가지였으니, 당연히 그녀 역시 이런 상황을 당면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그랬다.
그녀는 이런 웃음꽃 활짝 피는 꽃밭에서 늘 방황하는 허수아비였다.
스스로가 그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단지 어울리는 게 서투를 뿐, 속으로는 그사이에 끼고 싶기도 했다.
‘가만히 있는 게 돕는 일이다.’
이건 유우카가 코유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었고 또는 코유키 자신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리오는 그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자신이라 여겼다.
때로는 화기애애한 꽃밭에 푸석푸석한 지푸라기를 달싹거리며 나름대로 말을 끼워 보기도 했다.
평소의 고압적인 태도가 문제였던 걸까.
말을 붙이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문제였던 걸까.
딱딱하게 일 얘기만 하는 성미가 문제였던 걸까.
꺼낸 말들은 도로 퉁겨져 나왔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고 모두 인색한 웃음을 지으며 맡은 일로 돌아가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나마 세미나의 후배들과는 사사로운 대화를 일부 나누긴 했지만, 표면상의 교류일 뿐, 지금 보는 것처럼 본격적인 감정의 교류와는 거리가 있었다.
요컨대 친구라기엔 어딘가 멀게 느껴지고 직장 동료라기엔 어딘가 애매모호한 관계.
당시엔 그것이 그녀가 가진 것의 전부였다.
“아…. 그럴 때 있지.”
“당신도?”
“모두가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여유….”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가 이런 생각들을 가지게 된 것은 그와의, 그리고 히마리와의 재회 이후부터.
아니, 엄밀히 따지면 그보다 좀 더 전부터일까.
그건 분명 막다른 길에 가로막힌 그녀에게 어느 용사가 선뜻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부터.
강박과도 같던 신념의 설풍에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주변인들의 열기에 의해 조금씩 녹기 시작해 드러난 공간은 ‘여유’라고 말할 만했다.
“난…. 아직 쫓기고 있는 걸까.”
“하하.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어째서 그렇게 호언장담할 수 있는 거야?”
“자, 리오. 날 봐.”
그가 그녀의 앞에 똑바로 서서 양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정한 미소를 띠며 또렷하게 내려다본다.
“내 눈 봐 봐. 어때, 네가 보여?”
“…그래.”
“이 눈은 말이야. 기억의 거울이야.”
“…거울?”
“너는 자신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 눈은 리오. 너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의 너를 모두 기억하고 있어.”
마주친 눈동자에는 선명하게 그녀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업무 중의 그 완벽한 기백, 날카로운 눈썰미 대신 불안감이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의 광채와 아플 만치 꽉 쥔 왼쪽 팔뚝의 눌린 자국.
“지금 보고 있는 너의 약한 모습. 그 손끝에 담긴 걱정과 불안. 너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마치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그때의 난 철석같이 믿었을 거야.”
“….”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그때보다 지금의 리오가 더 여유로운 것처럼 보여. 조금 아이러니하려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막연히 알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얘길 듣고 있으면 굳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그곳에 다른 걸 채워 넣으려 하거든. 사색에 잠기거나, 운동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뭐, 그 밖에도 각자 제 나름의 무언가로.”
“그럼 난…. 뭐로 채우려는 거야?”
“그걸 나한테 묻는 거야?”
“…잘 모르겠어. 나는….”
“음. 아마…, 잃어버렸던 것들이 아닐까?”
리오가 쉴 틈 없이 무턱대고 앞서 나가느라 미처 붙잡지 못한 것들.
자신에 대한 것이라든지, 주변에 대한 것이라든지.
대관절 텅 비어 있던 푸르른 청춘의 아카이브 말이다.
“그러니 그 고민은 그 과정의 성장통이야. 마음껏 고민하고 마음껏 망설이도록 해. 힘들면 언제든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는 다행히 표정이 누그러진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앞머리가 눌려 눈을 찌르니 반쯤 뜬 눈으로 리오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까치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몇 번이나 입을 뻥긋거렸다.
“왜 그래?”
그녀는 끝끝내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확연히 후련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잃어버린 것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나는 그동안 강박과 같이 내 계산에만 의존해 보이지 않는 멸망이 초래하는 걸 막기 위해 모든 걸 동원했어.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다고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하겠지.”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무식하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소중한 것을 지키려 했던 일념만큼은 완강하고 올곧은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마음은 지금보다 그때가 더 편했어.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했으니까. 하지만 당신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이나 히마리에게 휘둘리는 요즘이 더 냉정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해지고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모든 게 명확하게 보이고 자기도 모르게 자만하는 순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이지.”
“그래. 당신에게서 그걸 배웠어. 아리스와…, 히마리에게서도.”
그건 그렇고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거야?
그가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입을 벌리자, 리오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슬쩍 미소 지으며 검지 손가락 하나로 그의 입술을 봉했다.
“말을 하려던 건 아니야. 그건 감사 인사와 함께, 조금 있다가.”
그러고는 획 돌아선다.
이제는 완전히 평상시의 리오로 돌아와 있었다.
업무의 실태를 지적할 때와 같은 그 앙칼진 눈매가 만들어 낸 실바람에 자칫 베일 뻔했다.
“이야기는 전부 끝났나요?”
끼어들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히마리가 다가와 능글맞게 물었다.
“응. 왜 그래?”
“아뇨, 후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그럼 돌아갈까요? 마침 성공적으로 트렌드에 입성한 참이랍니다.”
“선생님, 선생님! 이거 봐요―!! 보이시죠!? 포스트 24만개로 압도적 1위! 예상보다는 조~ 금 못 미치지만, 이 정도로 축하받았으니 올해는 엄청나게 운이 좋겠죠~? 그렇지 않으면 곤란해요!”
코유키가 팔을 왕왕 휘두르며 스마트폰 화면을 강조했다.
확실히 트렌드 상위권에 올라와 있긴 했으나, 험담도 만만치 않게 보이는 듯했다.
“하하….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으니…. 비슷…, 하지 않을까? 일단 본인은 개의치 않는 거 같으니 못 본 걸로 하자….”
그가 멋쩍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핫! 맞다! 선생님! 유우카 선배가 이거 선생님한테 전해 달라고 부탁했었어요.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니하핫!”
코유키가 안주머니에서 귀여운 편지 봉투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잠깐. 코유키…, 이거 뭔지 알아?”
“네? 아뇨? 모르는데요?”
“…직접 봐 봐.”
“세미나 주최 디너 파티 초대장…. 세미나 소속 쿠로사키 코유키 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소규모 디너 파티가 오늘 저녁 8시 밀레니엄 타워 공용 강당에서…. 초대장을 받으신 분은 누구든 참가하실 수 있으며 특별한 초콜릿케이크도 준비되어 있으니 모쪼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어라, 그 초대장. 사실 저도 받았답니다.”
히마리가 품 안에서 주섬주섬 똑같은 편지 봉투를 꺼내 흔들었다.
“오. 구겨진다, 구겨져.”
방금까지 그리도 해맑던 얼굴이 서서히 종잇장처럼 구겨져 익숙한 빛날 경(冏) 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으야아아아아―!! 이게 뭐예요. 이게 뭐냐구요오오―!! 선배가 부탁한 게 제 생일 파티 초대장이었다구요?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면 제가 지금 벌여 놓은 일은 다 어떻게 되는 건데요! 저 이번에 잡히면 진짜 끝장이란 말이에요―!!”
“하하! 믿음이 부족했구나!”
“이, 이럴 때가 아니에요! 얼른 도망가지 않으면…!! 저도 선생님도 이대로 끝이라구요!”
“나는 왜!”
“그거언~ 니, 니하하…. 선생님이 시키신 거라고 하면~ 조~ 금은 덜 혼나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나오겠다고?”
“선생님! 선생니임―!! 선생님만이 도와주실 수 있는 일이에요! 설마 이대로 절 버리시거나…, 하진 않으시겠죠!?”
코유키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간곡히 자비를 구하는 동안 리오는 히마리에게 가서 물었다.
“알고 있었던 거야?”
“후훗. 글쎄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너의 그 악취미는 변하지 않는구나.”
“저기요. 누구 입에서 나온 말인가요? 그리고 악취미가 아니라 천재병약미소녀해커의 우아한 취미라고 해주시겠어요? 오늘의 운세는 ‘망설이는 이들을 도와라. 그러면 바라던 바를 이루게 될 것이다.’ 모처럼의 이벤트니, 이번에는 제가 직접 실증 실험을 해본 것뿐이랍니다.”
“그래. 그런 걸로 해두도록 하겠어. 그리고…, 히마리?”
“왜 그러시죠?”
“…고마워. 신경 써 줘서.”
살짝 열린 컨태이너 문밖에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 유― 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코유키 쨩~ 데리러 왔답니다~”
“흐아아앙―!!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구요!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니―!!”
“받아들이면 편해.”
리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히마리가 이런 일을 기획한 이유를 눈치챘다.
이유는 세 가지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그래.
츠카츠키 리오와 발렌타인과 하얀 토끼의 우울.
“후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집무실에서 쉽사리 나오시지 못하는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아직 초콜릿을 전하지 못한 다른 분들에겐 죄송한 일이지만…. 저, 아케보시 히마리의 자그마한 심술이랍니다♪”
“아. 히마리! 일이 일단락되면 1시간 정도 조금 진지한 설교가 있을 테니까! 딱 기다려!”
“…흐으음.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요…. 과정은 달라도 또 이렇게 피할 수 없는…. 과연…, 점괘란 정말 심오한 세계로군요….”
“그런 것치곤 기뻐 보이는 표정이네.”
“설마요. 기분 탓이랍니다♪”
어쩌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나와! 코유키…, 에?”
“어머.”
그렇게 닫혀 있던 컨태이너의 문이 활짝 열리고 리오는 잠시 멀어져 있었던 두 명의 후배와 마주쳤다.
그 뒤는 조금 파란만장.
아니지, 어쩌면 오늘 하루 선생이 겪은 일 전부 보다도 더욱 파란만장한 사건의 경과.
고된 노동으로 울분에 찬 유우카가 리오에게 매달려 힘들었던 일들을 하소연하고.
그걸 또 토닥거려 주던 노아가 몰래 도망가려던 코유키를 붙잡아 잠시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며 부두 앞으로 끌고 가고.
울음을 그친 유우카가 리오와 히마리를 앉혀 놓고 도깨비보다 무서운 기세로 불같이 화를 내고 벌였던 일이나, 벌인 일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
잠시 후 혼이 빠진 채 돌아온 코유키와 노아, 그리고 히마리와 리오, 유우카까지 다섯명이 선생에게 석고대죄하며 용서를 구하고.
마지막으로― 서로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갈 때쯤.
“…내가 정말 다시 돌아가도 괜찮을까?”
“말이라고 해요? 회장이 횡령한 금액이 얼마인데요. 전~ 부 갚을 때까지 이제 아무 데도 못 갈 줄 아세요! 노아? 금액, 전부 기록해 뒀지?”
“물론이죠. 후후. 리오 회장? 저도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기에…. 급한 일이 끝나면 꼭 동행해 주세요♪”
“으, 으응….”
“그리고…, 역시 밀레니엄의 회장은 리오 선배가 아니면 안 돼요.”
“….”
“유우카 쨩이 회장이 안 계신 동안 얼마나 찾았는지 아세요? 어제만 해도 21시간 47분 19초 전에…”
“잠―!! 노아! 하지 마!”
“후훗. 알겠습니다. 그러므로 리오 회장? 궁금하셔도 참아 주세요♪
“저기…. 유우카, 노아? 코, 코유키가 드러누워서 꼼짝도 안 하는데?”
“…으으. 살아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리고 이제 시작이니까요! 제가 미리 연락하긴 했지만, 발키리에도 찾아가서 사과해야 하고 라이브 스트림으로 티배깅한 것도 사과해야 하니까요.”
쪼그려 앉아 정신을 잃은 코유키의 뺨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고 있는 그를 보며 히마리가 리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슬슬…, 어떨까요?”
“…그래.”
두 사람은 각자 준비한 초콜릿을 꺼내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 상황에 이렇게 발렌타인 선물을 받게 될 거라곤 아무래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면서도 두 사람을 보며 활짝 웃어 주었다.
“히마리 초콜릿!”
“후후, 네! 바로 그거랍니다. 이 흘러넘치는 기품과 우아함과 청초함을 가득 담아…, 야심 차게 만든…, 1/8 스케일 피규어 초콜릿. 초천재미소녀초콜릿마크투랍니다! 어떠신가요? 당장에라도 아늑한 안방 한구석 장식장에 넣어 장식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고마워. 먹기 전에 충분히 감상한 뒤에 먹도록 할게.”
“후후후. 이번에는 한층 더 매력적이고 디테일한 묘사를 공들여 표현했으니…, 보실 땐 항상 이…, 이….”
“이?”
“현 초현상특무부의 부장이자…,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형용하는 말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저 아케보시 히마리를 떠올려 주시면…. 시면….”
“면?”
“…감사하겠습…, 니다….”
본체인 히마리가 녹은 초콜릿처럼 되어 버렸기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초콜릿이 그녀의 자태를 대신했다. 그는 흔쾌히 ‘히마리’를 받아서 잠시 내려 두었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두 눈을 마주하는 리오에게 다가갔다.
여느 때보다 후련하고 상쾌해 보이는 입가의 미소.
앞으로는 그녀의 저런 미소를 자주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리오는 준비한 초콜릿을 손에 꼭 쥐고 그에게 한발, 한발 다가간다.
사랑스러운 무언가를 애틋하게 기다리는 표정.
바라보기만 해도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자.
오늘부로 츠카츠키 리오는 밀레니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전, 밀레니엄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었을 때와는 상황이 정말 많이 변했기에.
이미 알고 있는 한 사람은 제외.
어쩌면 마찰을 빚게 될 두 사람과, 언젠가 깨닫고 그 마찰의 행렬에 합류하게 될 수도 있음을 모른 채 쓰러져 있는 한 사람에게.
아까부터 꾹 참고 있었던 것과 초콜릿, 그리고 감사의 말을 그에게 전하는 것으로 선전포고.
리오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목뒤로 팔을 둘러 껴안은 후, 2월 14일, 가슴 두근거리며 준비한 달콤하디달콤한 초콜릿 보다도 더욱 진한 입술을 그에게 선물한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깜짝 놀란 주변과.
그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기나긴 여운을 나눈 리오는 늘어지는 투명한 가교를 거두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고마워. 그리고― ”
드디어 전하는 한마디.
무엇을 그에게 전했을까.
그것은 직접 들은 그와 리오밖에 모를 것이다.
“저어어어어어기―!! 리오!? 누가 그렇게까지…! 누가 그렇게까지 하라고―!! 에, 에잇!”
입이 떡 벌어진 히마리가 뒤늦게 그의 한쪽 옆구리를 차지한다.
“자자자자자자잠깜나요!? 선샌님!? 아니. 큽, 쿨럭! 제가, 제가 방금 뭘 본 거죠? 선생님―!! 리오 회장이랑 히마리 선배랑 도대체 무슨 관계에요―!! 똑바로 설명해 주실 거죠―!?”
“2월14일오후4시65분91초리오회장이선생님께약2분8초동안키스했다.입을뗀회장이선생님의귓가에다른사람은들리지않도록…”
“…핫―!! 여긴! 아직 컨태이너! 반성실은 아니…. 어라? 뭐예요? 무슨 일이에요? 다들 왜 그래요!?”
FIN.
***
발렌타인 데이 때 올리려던 걸 이제 와서 올리는 게 레전드 ㅋㅋ
여동생이 그림 그리는데 이번에 삽화 그려줘서 함께 올렸음
그림만 따로도 올려야겠다
블아 그림 자주 그리진 않았는데 종종 같이 작업해 보기로 함
이번에도 재밌게 봐 주면 좋겠다
원래 리오 공식에서 복귀할 때까지 복귀시킬 생각없었는데
이 시리즈에 맛들려서 좀 더 폭넓은 전개를 위해 이렇게 됐음
그리고 컨ㅌㅔ이너 왜 금지어냐...
댓글 19
진짜 ㅈㄴ맛있다 리오 시리즈 더 안나오냐
계속 쓸 예정임!!


죽음으로 맛있는데
음 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