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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내게 사랑을 가르쳐 줘, 선생." (사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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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紀奈

"내게 사랑을 가르쳐 줘, 선생."

10,970자

이 글은 한섭 기준 시점으로 「에덴조약 완결」 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에어컨 밑에서 시도 때도 없이 아이스크림을 드시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처음 감기 기운이 돌기 시작했을 때, 잔소리하는 유우카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지금 그는 샬레의 휴게실에 있는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 열이 심하게 오르거나 목이 너무 아프거나, 콧물이 나오거나 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꾸만 멍해지고 한기가 드는 무기력증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생겨서 여러 학생에게 휴식을 권고받고 요양 중인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로 인해 학생들이 실외로 나오는 일이 줄어든 덕분인지, 일도 조금 줄었고 당장 몸으로 가야 하는 급한 용무도 없었다. 요컨대, 요양하기에 최적의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지….”

이렇게 특별히 도울 일도 없고 하니, 오늘은 혹시라도 감기에 옮을까 싶어서 당번이었던 학생들도 모두 집에서 쉴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다. 물론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은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병문안을 오겠다며 누군가가 샬레로 들이닥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한 명은 함께 일하던 중 가장 먼저 감기라는 것을 파악해 준 유우카였고, 아마 이쪽은 괜찮다. 먼저 병문안을 왔다 간 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다른 한 명이―

>[지금 그쪽으로 가겠다.]

[옮으니까 오면 안 돼!]<

>[걱정하지 마라, 선생. 오랜 바깥 생활로 그런 것에는 익숙해져 있으니까.]

[아니, 그런 거 익숙해지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미 다 왔다.]

조마에 사오리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설명할 기회를 준다면 시작은 사적인 통화였다. 그녀가 공부하던 중 모르는 부분에 대해 그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다. 근래에는 이런 일이 많았고 그 역시 달갑게 환영하는 일이라 감기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무심코 들떠 버렸다.

말이 길어지다 보니 어지럽기도 했고 코맹맹이 같은 소리가 자꾸만 나오니 통화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츠코가 감기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부정하려 했지만, 때마침 참고 있던 기침이 진탕 튀어나와서 해명할 틈도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미 늦었나 보네.”

그가 알고 있는 선에서 행동력이라면 절대 어디 가서 꿇리지 않을 그녀였고 지금이라도 돌아가 달라고 이야기할까 하다가도 금세 단념한다. 이미 근처까지 온 듯하고 그는 자신을 위해서 고민/도 없이 단걸음에 달려와 준 학생을 내칠 만큼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잠옷의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마중 나가기로 하자, 그보다 먼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 여기 있나?”

빨라!

서둘러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정적이 흐른다.

선생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머릿속으로 이해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위아래로 그녀의 모습을 스캔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아니, 대체 뭐지?

오만가지 추측과 분석, 억측과 상상 그런 것들로 눈이 핑 돌아 버릴 것만 같아지자, 입에서는 기어코 바보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에?”

“그…, 좋은 날이군. 선생.”

사오리는 늘 쓰고 다니는 모자의 챙을 잡고 수줍은 듯 시선을 피하며 들여보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상태가 녹아내린 슬라임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그녀의 복장 때문이다.

흰색의 치맛자락에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고 검은색의 옷감이 잘 어우러진 멋진―

메이드복이었다.

“이상한가…?”

방 안으로 들어온 사오리는 모자를 벗어서 선반 위에 올려두고 주섬주섬 가지고 온 헤드드레서를 머리에 썼다. 그녀의 머리색으로 물들인 듯 너무도 잘 어울리는 리본 한 쌍이 양 끝에 장식되어 있었다.

남은 기력을 전부 쥐어 짜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잘 어울려. 정말 잘 어울리는데…, 대체 어쩌다 메이드복이…?”

“공주가 그러더군. 병문안을 갈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아무런 장치도 없이 빈손으로 방문하게 되면 상대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들었다. 나로서는 대단한 것을 준비할 수 없으니, 이거라면 선생이 기뻐해 줄 거라더군.”

아츠코―

아츠코오오오―!!

…고맙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아츠코가 어떤 표정으로, 말하자면 게슴츠레하게 뜬 눈과 입가에 띤 은은한 미소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이곳에 있었다면 그 조막 같은 손으로 앙증맞게 브이를 그려 보였겠지.

조금은 진정된 시선으로 소파 옆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그녀의 차림새를 다시 한번 훑어본다. 몇 번을 보아도 감탄이 나오는 스타일이다. 노출도가 없다시피 한 양식의 메이드복이지만,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볼륨감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 뒤통수에 대고 망치로 강하게 후려친 듯, 얼얼한 충격이었다. 평소에 택티컬한 복장을 즐겨 입는 그녀였기에 이런 옷이 이리도 잘 어울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여파다.

빤히 바라보니 시선이 영 부담스러웠는지 사오리가 뺨을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저기 선생. 그렇게까지 쳐다보면 아무래도 조금…. 부끄럽다만.”

“아. 그. 저, 미안. 너무 이뻐서 나도 모르게….”

“이쁘…! 크, 크흠. 흠흠…. 아니, 그런가. 내게 이런 화려하고 귀여운 의상이 어울린다고 말해 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감사하지,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어.”

“아마 사오리는 표정만 조금 풀면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 옷은 어디서 난 거야? 꽤 본격적인데.”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카페에서 이벤트 행사에 썼던 의상이다. 당시에 장사가 성행했던 덕인지 점장이 이벤트가 끝난 뒤에 내게 선물이라며 주었다. 한창때의 여자아이라면 언젠가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더군.”

어디서 일하고 계시는지 모르는 어느 카페의 점장님, 감사합니다. 이런 복에 겨운 이벤트를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신 하카리 아츠코님,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지? 메이드복을 입었다면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이 도리라고 들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 얘기도 설마?”

“공주다.”

“역시….”

도대체 그런 지식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아리우스에 있을 적 그런 판타지 소설 속의 시츄에이션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 거라고는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데. 히요리의 소행인가?

선생은 그녀에게 몇 번이나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했다. 대신 날이 더우니 잠깐 쉬고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전했지만, 드물게도 뜻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피워대기에 결국 포기하고 밀려있는 빨랫감과 청소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고난이었다. 청소기와 세탁기의 사용법을 몰라서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느라 막상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사용법을 완전히 숙지한 후에는 일사천리로 집안일들을 하나하나 꺾어나갔고 그 모습은 완벽한 메이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순식간이었네.”

“이 정도는 준비운동보다도 쉬운 일이다.”

“그래도 대단해. 알려주자마자 그렇게 척척 해내다니. 몇 번이고 생각하지만, 엄청난 습득력이야.”

“…그럴 수밖에. 내게는…. 강해지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무엇 하나 지킬 수도, 가르칠 수도 없었으니.”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성 같은 걸까. 아까와 비교해 다소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이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사오리.”

“왜 그러지?”

“할 일도 다 했고 나랑 조금 놀다가 갈래?”

“…논다고?”

“응.”

“뭘 얘기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

“괜찮아. 그냥 같이 영화 보는 것뿐이니까. 사오리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

“아니, 본 적 없군. 그런 것은 훈련 때 보았던 기술 영상 정도다.”

“음…. 그렇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참에 봐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학문의 길을 공부하고 있는 입장이니 모르는 게 있어서는 안 되겠지. 이야기를 들어 버린 이상 이대로 돌아가도 다시 선생에게 자문을 구하게 될 테니.”

“좋아.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 봐. 금방 재미있어 보이는 걸 찾아볼게.”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까. 티비를 켜고 OTT 프로그램을 뒤적거리며 목록을 싹 훑어보았다. 무난하게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판타지? 아니면 폭발적인 CG가 인상적인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 장르? 가슴 쫄깃해지는 스릴러?

혼자였다면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보았을 터였지만, 그녀의 취향을 잘 알지 못해 선택이 쉽지 않았다. 간략한 줄거리를 하나씩 읽으며 목록을 내리고 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지 그녀가 말했다.

“저건….”

“왜? 이거?”

처음 보는 로맨스 영화였다. 얼핏 보기에도 이쪽 장르에서 왕도에 가까운 이미지, 비운의 히로인을 주인공이 구해내고 사랑을 쟁취하는 판타지 로맨스. 그 줄거리가 신경 쓰였는지 그녀는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로 볼까?”

사오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인걸.

벌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그녀와 알고 지냈다. 내외로 충격이었던 첫 만남부터 그녀가 교육자를 꿈꾸게 된 일이나, 함께 계곡으로 여행을 다녀온 일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처음 보는 영화로 선택한 것이 로맨스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소 엉뚱한 면이 있어도 매사에 진지하고 세간의 흥미나 취미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이런 감성적인 것들에게도 말이다.

밀리터리 장르나 군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고르는 건 아니겠지 했던 건 기우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동안의 여러 가지 변화들이 조금이나마 그녀를 바꾸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흐뭇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흔쾌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선생은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내용이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의 환상처럼 지금 보기에는 유치한 구석이 있었고 무엇보다 눈을 크게 뜨고 비가 갠 날의 하늘처럼 맑은 눈동자로 영화에 집중하는 메이드 복장의 사오리가 너무 귀여운 탓이었다.

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고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물도 마시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사오리와 이런 사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처음이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마침내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 포로로 붙잡혀 있던 히로인을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어 구해내고 사랑을 고백한다. 달콤한 스킨쉽과 기름 같은 대사들이 오가고 막이 내린다.

“후….”

사오리는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정도로 재밌던 모양이다.

“재밌었어?”

“아마도….”

“아마도?”

“선생.”

“응?”

“사랑이란 뭐지?”

때마침 갈증을 달래려 물을 마시려던 선생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그것을 그대로 뱉을 뻔하다 간신히 손으로 틀어막았다.

“어째서 저 남자는 여자에게 그렇게까지 모질게 당하고도 목숨을 바쳐 구하러 간 것이지? 그리고 여자는 어째서 그랬으면서 마지막엔 그의 고백을 받아 준 거지?”

“그게 사랑이니까.”

“잘 모르겠군.”

“여주인공은 그가 자신에게 관여해서 다치지 않길 바랐던 거야. 두 사람이 이어지기엔 너무나도 힘든 조건이었으니까. 하지만,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았지. 그만큼 좋아해서.”

“저 여자에게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건가?”

“가치…. 가치라고 해야 할까, 실질적으로 그건 그녀에게 있었다기보다는 그의 마음에 있었다고 해야겠지. 가시밭길을 건너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여정의 고통과 희생보다도 그녀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니까, 그만큼 사랑했고 그 뜨거운 감정이 역경을 이겨낸 거야.”

“소중한…. 가족애 같은 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조금 다르지만…, 비교하기에는 좋은 예시야. 사오리가 스쿼드의 다른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일종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저 영화 속의 사랑과는 결이 다른 거야.”

“음….”

“사오리는 타인에 대한 설렘을 느껴본 적이 있어?”

“없다.”

“즉답이구나…. 그러면 아직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좀 더 추상적으로 설명하자면 두근거림이나 설렘. 마음이 생긴 대상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감정.”

“어렵군…. 히요리의 잡지에서 몇 번인가 그런 기사들을 본 적은 있다. 하지만, 나는 여태 그런 걸 느껴 본 적이 없군.”

ron-ro의 특집 기사에는 이성에게 설레는 행동 랭킹이라던가, 연인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킨쉽 하는 방법이라던가, 또래의 소녀들이 읽고는 꺅꺅댈 만큼 설레는 내용들이 자주 실려있었다. 평범한 연인들의 이야기지만, 그녀에게는 인연이 없는 것들이었다.

“아마, 내게 그런 것들을 느낄 자격 따위는 없던 거겠지.”

“그럴 리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고함치고 말았다. 사오리가 조금 놀란 듯하여 사과하고 말을 이었다.

“그냥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야. 어쩌면 이미 느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사랑인지 몰랐을 수도 있는 거고.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잖아. 너희들에게 자격이 없을 리가 없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건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니까.”

그래, 족쇄를 풀고 나온 이 17세 소녀의 앞날에 사랑이 없을 거라고 누가 단정 짓는단 말인가. 가로막는 이가 있거든, 걸리기만 해봐라.

“그렇다면….”

그가 씩씩대고 물을 마시며 분을 삭이려 하자, 사오리가 무심한 듯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게 사랑을 가르쳐 줘, 선생.”

“케헥!”

그러고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사레들렸다. 한참이나 목이 따끔거려 연신 기침을 해댄 뒤,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더 이상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있고 싶지 않아.”

사실 조금 전의 부탁은 아츠코에게도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계곡에서의 밤하늘 아래의 그때에는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네. 그럼, 사오리에게 연애 세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볼까.”

“연애 세포…? 잘 모르겠지만, 그…, 부탁하지.”

화제를 돌려 회피해야 하나 하다가, 그녀의 대답을 듣고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감을 잡을 수 있길 바라며 도와주기로 했다.

“…나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좋아. 우선 1단계.”

그는 소파 양 끝에 떨어져 앉아있던 사오리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조금만 움직여도 서로가 맞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물었다.

“이러면 어때,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어디선가.

어디선가 맡아본 향기가 풍겨 온다. 사오리는 그것에 대해 떠올렸고 그것이 카페에서 일하며 맡았던 카페모카 향기라는 것을 알았다.

“잘 모르겠군….”

왠지 모르게 몸이 경직되고 바로 옆에 딱 붙어있다고 생각하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면 2단계. 사오리, 손 줘 볼래?”

“…이렇게 말인가?”

사오리는 그의 허벅지 위로 허공에 뻗어 오른손을 건넸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을 곧장 잡아 꼭 쥐었다.

뜨거운 온기가 느껴진다. 평소에 아무리 추운 날씨여도, 아무리 차가운 마음이어도, 마감 후에 점장이 건넨 핫초코를 마셨을 때처럼, 포근하게 따스해진다.

“어때?”

“어, 그. 잘 모르…, 겠군….”

자기 손이 그의 온도로 물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감각에 집중하다, 무심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미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조금…, 부끄러운데. 지금부터 사오리를 안을 테니까,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해.”

“안…? 뭐라고? 잠깐.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부탁하지.”

그녀는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서 거절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안기는 것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역시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3단계네.”

뻣뻣하게 굳어있는 몸을 그가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까지 따스할 수 있다니, 마치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을 데울 때처럼 경직되어 있던 근육들이 녹아내리며 풀어졌다. 힘이 빠져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그의 상냥함에 스스로를 맡겼다.

방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서로의 고동소리만이 울리고 그 소리가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처럼 째깍댔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녀는 지금 흐르는 시간이 점점 늘려지는 것 같았다. 일순간에 보고 듣고 느끼는 그런 평범한 감각이 무너진 것이다.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불시의 기습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평소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무너져 그저 눈앞에 있는 한 사람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어깨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귓가에서 맴돌았다. 1분 1초가 억만년과 같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지고 그 시간에 갇힌 듯, 그를 느꼈다.

점점 손끝이 떨리고 숨이 거칠어지며, 몸과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거친 운동을 한 것처럼 심장이 뛴다.

“어때?”

정적을 깨고 그가 물었다.

이때, 사오리는 이 변질된 감각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이 주체할 수 없이 자신을 감싸며 피어나는 것들이 바로 그가 얘기한 것들일까?

당신이 어떠냐고 묻는 지금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여전히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러고 싶다는 앙큼한 욕망, 이것 또한?

“잘…, 모르겠다고 하면….”

“으음…. 쉽지 않은걸.”

약 기운 때문인 걸까, 혹은 분위기에 취해버린 걸까. 놀란 듯, 두 팔을 뒤로 짚고 몸을 내뺀 채 안겨 상기된 얼굴로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홀려 버린 걸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모르겠다는 그녀에게 사소한 짜증 내지 도전 욕구가 샘솟았다.

“그럼, 정말 마지막…. 사오리. 눈…, 감아볼래?”

그 말을 듣고 흠칫하고 놀랐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여주인공을 구해낸 뒤,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석양 아래에서 그녀에게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기도 모르게 상상해 버린다.

지금부터 그에게―

그리고 그럴수록 심박수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 현재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 연주했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현기증이 왔나 싶을 정도의 어지러움과 눈부신 광휘로 이미 모든 것이 뒤죽박죽, 백지의 상태다.

마침내 그 픽션이 현실에 도달하려 할 때, 사오리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나에게는 그럴 가치가 없다고 몇 번이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젓지 못하고 물 흐르듯이, 이 쇼콜라 쇼트케이크 같은 분위기를 한입 베어 문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구경할 뿐이었던 그 달콤해 보이는 디저트를 말이다.

그리고― 상상했던 곳과는 다른, 뜬금없이 이마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거리며 이쪽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른 곳에 시선을 흘린 채로 안절부절하고 있는 선생이 있었다.

“그…, 역시 아무리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려나. 하하…. 미안해, 이 정도로도 특별히 느껴지는 게 없다면 그건 아마 내가 매력이 없어서 그런 걸 거야.”

“아, 아니…. 그렇진…. 미안하다, 선생. 잠깐…, 화장실을….”

그러고 도망치듯이 방을 빠져나왔다. 사오리는 벌벌 떨리는 다리를 꽉 잡아서 진정시키려 했지만, 금세 주저앉아 버렸다. 벽에 기대어 불덩이처럼 후끈거리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추었다.

물음표.

그저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어째서―, 이런. 죽음을 목전에 둔 위기에서도 떨었던 적이 없는 몸이 제 말을 듣지 않았다. 대체 뭐란 말인가? 이렇게나 안달복달하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바로 조금 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미어져 버릴 것만 같은 이 마음은.

아직 미세한 입김이 남아있는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아쉽다, 홀연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해 버린 것이다. 주제넘은 상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본다.

주인공을 그렇게나 모진 말들로 구박하고도 내심 자신을 구하러 오길 바랐던 여주인공, 그녀는 러닝타임 내내 맹목적으로 그의 사랑이 자신에게 전해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선생은 그런 그녀를 두고 그만큼 주인공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사랑이라…, 사오리는 지금에 와서 그것을 얼핏 알 것만 같으면서도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졌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이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사의한 감정.

그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이 해주었던 말들을 기억하며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도, 모르는 것투성이라 막막하기만 할 때 당신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안심이 되는 것도,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아까 느꼈던 것들 역시 전부 그런 감정들이라면. 닿고 싶어서, 눈부셔서 어쩔 도리가 없는 이 아쉬움 또한 그런 것이라면. 이 마음은 분명 당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겠지.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하니, 더더욱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랑이란 말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고 되는 것일까? 아니, 이마에 남아있는 아쉬움을 통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서는 무엇도 되지 않는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절실히 느끼는 사실이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행동하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쟁취하라. 그것이 팽배한 증오 속에서 배운 생존 방식이었다.

이 기이하고 신비한 감정이 이대로 사그라져 소멸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태풍 속의 파도처럼 더욱 거칠게 몰아치고 기름방울이 떨어진 불길처럼 더욱 거칠게 타올랐으면 했다. 무지했던 자신의 가슴 속에도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강렬하게 새길 수 있도록.

여전히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당당하게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아, 사오리. 미안해. 역시 아까는 내가 너무 제멋대로 굴었던 것 같네.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어…, 사오리?”

그가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녀에게는 한 글자도 들리지 않았다.

귓불까지 뜨거워진 마당에 그녀를 차게 식히려고 어쩌고저쩌고 건네는 것들은 한 방울도 전해지지 못하고 전부 증발해 버린다.

사오리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 옷깃을 휘어잡고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렸다. 깜짝 놀란 선생이 무슨 짓을 하려 하든 개의치 않았다.

그저 직선으로.

올곧게.

단숨에.

그의 입술에 자신의 초콜릿 무스케이크를 처박았다.

기다리는 것이 아닌, 영화 속 그 장면의 쟁취하는 주인공처럼.

부드럽게 감겨오는 초콜릿 무스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와 은은하게 감돌았다. 그것을 아쉬운 듯 조심스럽게 늘어뜨리며 서서히 입술을 뗀다.

그 순간 확신했다. 이 장황하고 복잡한 감정이 바로―,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모르고 살 뻔했던, 한 여름날의 꿈으로 끝날 뻔했던 그것이라는 걸.

사오리는 눈을 뜨고 획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이상 맨정신으로 그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사, 사오리!?”

“그…, 뭐. 지금은 좀 알 것만 같군….”

주저하지 않는 것.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그런 것이겠지.

FIN.

***

가끔은 이런 정직한 순애물도 괜찮겠지

이런 쪽에 내성 없는 사오리가 깨닫고 적극적으로 밀어 붙여 왔으면 좋겠다

최종편 느긋하게 감상하고 가볍게 써봤음

재밌게 봐주면 좋겠다.

아리우스 너무 귀엽게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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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3.07.28창작

소설) "내게 사랑을 가르쳐 줘, 선생." (사오리)

#조마에 사오리#선생#소설
좋아요 0댓글 37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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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DC
타케루토작가
게시물 45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pixiv
게시일2023.07.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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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7

나
ㅇDC
ㅇㅇ123.07.28

달달하네

타DC
타케루토작성자23.07.28
디시콘
ㅇDC
ㅇㅇ223.07.28
ㅇDC
ㅇㅇ323.07.28
ㅇDC
ㅇㅇ423.07.28

초콜릿 무스케이크 너무달다

타DC
타케루토작성자23.07.28
디시콘
ㅇDC
ㅇㅇ523.07.28

ㅈ9밌유ㅓ요

타DC
타케루토작성자23.07.28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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