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S #드라마 #사나에
원본 by mint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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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미 사건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디세이아 해양학교의 기함, 올림포스 호의 의무실.
방의 주인인 후나모리 사나에는 손때 묻은 스테인리스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어제 진료한 환자의 차트를 훑어보고 있었다.
D.U. 지구 항구에 정박한 이후로 의료 소모품 보충 관리부터 교대로 정박하는 선박들의 위생 감사 참관까지,
평소 진료에 더해진 업무들로 최근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의료 부문 책임자라는 직함이 있다고 하나 소녀의 몸으로 감당하기엔 조금 벅찬 일정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의무실에 감도는 정적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다.
“…조용하네요.”
창밖으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바닷새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진정한 블루 스카이.
오디세이아의 학생이라면 분명 누군가는 이를 두고 ‘폭풍전야’라고 말할 것이다.
오랫동안 이 배에서 생활해 온 사나에 자신도 그런 선원들의 미신 같은 것이 머릿속 한구석에 깊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비과학적인 오컬트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되는 법이며, 특히 의무실에서 미신을 믿었다가는 환자에게 해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모처럼 찾아온 평화로운 시간이다.
가끔은 느긋하게 만끽한다고 해서 벌을 받지는 않으리라.
사나에는 차트를 책상에 내려놓고, 작은 즐거움이 담긴 서랍으로 손을 뻗었다─.
콰앙!!
“…플래그를 세우지 말 걸 그랬네요.”
사나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리가 들려온 거리로 보아, 아마 400미터 정도 떨어진 제3 창고 부근일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6, 7분 정도 걸리려나요.”
예상대로 6분 뒤, 의무실의 미닫이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을음투성이가 된 검은색 세일러복 차림의 소녀 둘이 서로 어깨를 빌려주며─라기보다는 서로 투덕거리며 굴러 들어왔다.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의무실 단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얻은 트라이던트의 1학년 콤비였다.
“또 당신들인가요. …꽤 요란한 소리가 들리던데,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죠?”
어이없어하며 경위를 묻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나에 선배,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이 녀석이 ‘충격 엄금’이라고 적힌 상자를 홀라당 뒤집어엎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라고요!”
“애초에 네가 갑자기 시비를 거니까 그렇지!”
“배 위에서 휘파람을 불면 폭풍이 온다느니, 요즘 세상에 그런 걸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어딨어!”
“전통적인 예절로서 주의를 준 것뿐인데…아야야야!”
내용인즉슨 한 명은 복도에서 휘파람을 불었고,
다른 한 명은 선원들의 오래된 미신을 들먹이며 주의를 주다가 말다툼 끝에 몸싸움으로 번져 운반 중이던 상자를 폭발시켰다는 모양이다.
미신을 진심으로 두려워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이 불러온 자폭.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멍청이 같은 상황은 잘 이해했습니다.”
사나에는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일단 거기 침대에 앉으세요. 여기저기 긁혔잖아요.
…저번에도 똑같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아, 아니, 이건 이 녀석 때문에─아얏!”
“네, 네, 변명은 나중에. 움직이지 마세요.”
침대 옆으로 스테인리스 카트를 끌어당겨 능숙한 동작으로 도구를 꺼낸다.
세척, 소독, 드레싱.
지금까지 수천 번은 반복했을 정해진 순서를 사나에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묵묵히 해 나갔다.
두 사람의 처치가 끝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 끝났습니다.
…그나저나 그렇게 요란한 소리가 났으니, 현장이 멀쩡할 리는 없겠네요.
경위서는 누가 쓸 건가요?”
사나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두 사람은 멋쩍은 듯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둘이 각자 쓸게요…….”
“그, 그럼요. 서로 떠넘기거나 하지 않을 거에요. 응, 응.”
“좋습니다.
종이랑 펜은 늘 두던 곳에서 꺼내세요. 오늘은 테이블도 비어 있으니 거기서 쓰면 됩니다.”
부상자가 이곳으로 달려올 때는 대개 시말서 제출이 세트로 따라온다.
그래서 작년이었나, 결국 서류와 펜을 의무실에 상비해 두게 되었다.
의무실은 반성실이 아니라고 처음엔 딱 잘라 거절했지만, 결국 떠넘기기에 당하고 만 셈이다.
종이와 펜을 챙긴 두 사람이 축 처진 어깨로 테이블의 둥근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조금 전까지 기운차게 재잘거렸으면서 서로 얼굴조차 마주 보려 하지 않는다.
사나에는 시선을 돌려 책상으로 돌아갔다.
철컥, 열쇠를 돌려 서랍을 연다.
장기 항해용 보급품과는 별개로 사비로 모아둔 과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맨 위에서 소중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정박 이틀째, D.U.의 가게에서 줄을 서서 간신히 손에 넣은 한정판 파운드 케이크.
말린 과일이 듬뿍 들어간 배 위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일품이었다.
사실은 혼자서 아껴 먹을 생각이었다.
“두 사람, 배고프지 않나요?”
“어, 사나에 선배…그건…….”
“…유통기한이 오늘까지거든요.
스미카 씨 일행에게는 비밀로 하세요. 이건 그냥 후배들에게 주는 덤이니까요.”
소독한 가위로 케이크를 삼등분했다.
남은 멸균지에 케이크를 담아 건네자, 두 사람은 미안한 기색을 보이다가도 이내 눈을 반짝였다.
“사나에 선배~~! 평생 따를게요!”
“이거 먹고 최고의 경위서를 써 올게요!”
“평생 따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경위서는 쓸 일이 없는 편이 제일인데요.”
사나에도 자신의 몫을 입에 넣었다.
버터의 풍미와 말린 과일의 새콤달콤함이 퍼지며 쌓였던 피로가 조금은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후배들은 케이크를 입안 가득 머금고 조금 전의 싸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머리를 맞대며 경위서 내용을 상의하고 있었다.
사나에는 그 모습을 곁눈질하며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하아. 정말이지.”
창밖은 여전히 구름 한 점 없는 블루 스카이.
폭풍은 아무래도 실내에만 불어닥쳤던 모양이다.
오붓하게 즐기려던 티타임은 물 건너갔지만,
왁자지껄하게 먹는 케이크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사나에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 채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