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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7의외로 선생님의 『비밀』을 알게 된 뒤에도 비서로서의 업무는 계속되었다.
아침 저녁 하루 두 번 샬레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기록을 이어간다. 달라진 점은 두 가지 인데, 하나는 나의 선생님에 대한 평가를 덧붙인 것.
〈선생님은 당일을 끝으로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
아주 조금이지만, 〈얼빠진 부분이 있다.〉 라고 기록했던 걸 후회했다. 하지만 샬레에 온 지금도 선생님은 가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기에 좀처럼 그것을 완전히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노아."
샬레의 집무실, 그 한구석. 한 면에 펼쳐진 하늘을 비추는 스크린이었을 자리에는 열 장 정도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중앙에 〈나는 『선생님』이다.〉 라는 것과, 〈『우시오 노아』는 내 비서다.〉 라는 것. 그 조금 위에 〈중요한 것은 포스트잇에 써서 여기 붙이기!〉 라고 내 글씨로 쓰여진 것도 있다.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한 게 엊그제인데 이미 창문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니 일 년도 안 돼 이 창문은 꽉 차버리겠구나, 라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그중에는 유달리 눈길을 끄는 포스트잇도 있다.
〈샬레 앞 역 건물 안의 카눌레가 맛있어!〉
일기를 다시 읽을 필요도 없다. 어제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이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한 나는 문득 그날의 『커피 타임』을 다채롭게 하고 싶어 역 건물 안에 입점해 있던 빵집의 카눌레를 들고 온 것이다. 카눌레를 먹는 게 처음이었는지 선생님은 그 맛에 대단히 감탄하며 연신 「맛있어, 맛있어.」 를 반복해 5분가량 기록이 진행되지 않았다.
"아, 봐, 노아."
마침 선생님도 그 포스트잇을 눈치챈 것 같다.
"역 건물의 카눌레인가, 엄청 신경 쓰이네."
"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구나』 라고 하셨어요. 제가 나갈 때는 그 포스트잇이 없었으니 선생님이 혼자가 된 후에 살짝 덧붙인 거 같네요. 분명 어제의 선생님은 그걸 잊고 싶지 않으셨던 거겠죠."
"『살~짝』이라고 해도. 오늘의 나에게 들켰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포스트잇을 떼어내고 선을 그은 후 다시 썼다.
〈샬레로 돌아올 때는 역 건물의 맛있는 카눌레를 산다!〉
"이걸로 매일 먹을 수 있겠네."
"어제는 제가 샀습니다만, 다음부터는 선생님이 사주세요♪"
"엑...... 그래도 그건 그런가. 카눌레 값, 경비로 처리되지 않으려나."
"포기하고 자비로 구입해 주세요. 그럼 오늘 업무 내용 확인입니다. 오늘은 아비도스 고등학교의......"
선생님의 기억이 매일 리셋되고 있다는 게 공유하는 비밀이 되었고, 기록력과 기억력을 높이 사서 채용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나에게는 다음 의문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어떻게 일을 해내는 걸까.
아비도스를 폐교 위기에서 구해낸 일은 선생님이 가장 최근에 해결한 큰일일 것이다. 아비도스생에게는 영웅담이라 할 수 있는 그 일을 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내가 소속된 학원에서도 게임개발부가 현재 진행형으로 신세를 지고 있는 듯 하다. 공사 혼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 아래 그를 자신의 사생활에 반영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지만 자신과 가까운 학생이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근질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불안정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연약한 존재――정신적으로 연약하다는 걸 아는 일반 학생은 나 뿐이지만――가 어떻게 총학생회장의 지명을 받았는지, 그리고 비서를 대하는 게 아닌, 『학생』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매우 궁금했다.
선생님과 만난 뒤로 호기심이 멈출 줄을 모른다.
「Curiosity killed the cat」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라는 말은 잘 안다고 할까, 엔지니어부의 고양이가 따끔한 꼴을 당하는 걸 자주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이라는 학원에 속해 있는 자신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그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오늘 업무 내용은 이런 거에요. 그러니."
그래서 나는 그날 학원에 휴가를 신청했다.
"오늘은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잘 부탁해...... 아니 잠깐, 에에!?"
3 / 17"어라, 선생님. 오늘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네."
"그러려나. 나는 항상 이런 느낌 아냐?"
맑게 갠 하늘 아래 공터 중앙. 토관 위에 앉아 있던 소녀가 그 체격의 가벼움을 연상시키는 발걸음으로 뛰어내리며 다가왔다.
"매번 제각각이잖아! 지지난번에는 5분 지각이었고, 저번에는 지각하지 않았지만 『더러워져도 괜찮은 옷으로』 라는 걸 깜빡하고 새하얀 셔츠를 입고 왔고!"
"하하, 미안미안. 오늘은 제대로 메모해서 더러워져도 될 옷을 입고 왔어."
"그건 알겠지만, 선생님. 절망적으로 머리띠* 안 어울리네......"
*鉢巻き 머리를 수건 등으로 동여매는 일, 또는 그 천
선생님이 머리띠에 대해 언급하는 건 오늘만 두 번째다. 내가 탈의실에서 나온 선생님에게 「어울려요.」 라고 말했더니, 「정말!? 그럼 매일 두를까」 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하루를 시작할 때 머리띠를 두른다!」 라는 포스트잇을 벽에 붙이고 있는 걸 보고 농담이었지만 이것도 재미있을까 싶어서 내버려두기로 한 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에서 정반대의 평가를 받은 선생님은 노골적으로 풀이 죽어 있었다.
"에에, 그럴수가...... 매일 두를까 생각했는데."
"아니~ 그건 아마 그만두는 편이......"
뺨을 긁으며 겸연쩍은 듯이 눈을 돌리는 그녀는 쿠로미 세리카. 아비도스 폐교대책위원회 소속 1학년생으로 회계를 맡고 있다. 선생님은 어떤 학생의 인물상을 말할 때, 「뭐, 착한 아이야.」 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마지막에 붙이니 자세한 평가는 스스로 고쳐 쓸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착한 아이』인 건 틀림없어 보이지만, 조금 츤데레틱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선생님. 그 아이는?"
왼손을 허리에 짚고 반대쪽 오른손이 나를 향한다. 움직임이 깔끔하다. 빚더미에 앉은 아비도스 고등학교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그녀가 숱하게 해냈을 접객 덕분일까.
"아, 소개가 늦었네. 이쪽은 우시오 노아씨. 평소에는 내 보좌를 맡아주고 있어."
"안녕하세요, 우시오 노아입니다. 노아라고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의 이름을 댈까 조금 고민했지만 선생님이 그걸 의도적으로 덮는 듯 하여 나도 따랐다.
"그렇구나. 그럼 꽤 높으신 분이거나 하는 걸까?"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나를 발밑에서 위로 훑은 뒤 급변해 환한 미소로 이렇게 선언했다.
"뭐 그래도 아르바이트 하는 동안은 높으신 분 같은 건 상관없으니까! 물론 아르바이트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그러니 오늘은 잘 부탁할게, 노아씨!"
"아. 아뇨. 저는 뒤에서 기록만 할게요."
나는 미리 정해놓은 대사를 돌려준다. 오늘은 운동하러 온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평소 행동을 관찰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 모양인데. 오늘은 둘이서만 힘내볼까."
쿠로미씨는 조금 얼굴을 붉히더니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뭐 괜찮지만! 이쪽이 더 익숙한 걸."
"세리카~ 앞으로 얼마나~?"
"아까 그 말 한 지 5분밖에 안 됐다니까! 입보다 손을 움직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태양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동안 선생님은 「앞으로 얼마나」 를 다섯 번, 물 마시러 쉬는 걸 일곱 번, 몸을 좌우로 비트는 운동을 열두 번 하고 있다.
한편 쿠로미씨는 선생님이 쉬는 걸 보면 엉덩이를 걷어찰 정도였고, 그 외의 시간은 묵묵히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체력이 없다.〉 고 쓰면서, 쿠로미씨에 대해서는 〈상당한 노력가.〉 라는 평가를 덧붙였다. 자기 학교의 빚 따위, 말하자면 졸업한 후엔 상관없는 일이 돼버리는데 그걸 분골쇄신하여 갚으려는 모습은 조금 눈부시게 보였다. 일단 도와주는 형태이긴 하지만, 이 정도 열정에 맞추려면 역시 선생님이 좀 더 진지하게 임했으면 좋겠다고 외야이면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런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화가 난 건 아니어서 그녀는 선생님의 태도를 어딘가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자신도 선생님을 놀릴 때, 선생님에게 농담할 때 저런 표정을 하고 있을까. 포커페이스는 대인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라는 것은 자기 평가일 뿐이고,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어쩌면 저렇게 『알기 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한, 그리고 동급생과 이야기하는 한 눈치채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 단지, 이 타이밍에 그런 두려운 생각이 스쳐지나간 것은, 「남의 언행을 보고 제 버릇을 고친다」...... 분명 우연이 아닐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미로운 고찰 대상을 발견한 시점에서 나도 풀 뽑는 걸 돕기로 했다. 관측자로서 있는 것 만으로는 결국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테고 관측자, 즉 비서로서의 내가 아닌, 『학생』 으로서의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쿠로미씨와 같은 곳에 서지 않으면 기록할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
"어라, 노아! 도와주는 거구나."
"이대로는 커피를 마실 시간이 없겠다고 느꼈기에. 하나 빚지는 거니까요."
"빚!? 빚이 생겨버린 건가......"
"아, 그럼 노아씨, 이 목장갑 써."
"감사합니다, 쿠로미씨."
"세리카로 괜찮아. 그럼 나머지 반은 기합 넣고 간다."
두 사람은 뿔뿔이 흩어져 풀을 뽑아나간다. 처음에는 끝의 한 줄을 뽑고 끝나면 다음 줄로 이동하던 나도 그걸 따라 무작위로 눈에 띄는 잡초를 뽑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방법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두 시간 동안 이 작업을 계속하는 선생님과 쿠로미씨가 그렇게 한다면 그것이 최적화된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이 된 뒤에도 문득 고개를 드니 선생님이 쉬고 있었고, 「선~생~님~」 하며 불렀더니 쿠로미씨와 딱 겹쳐서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다. 결국 효율이 올랐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채 그대로 작업을 계속했고, 충분한 시간을 남겨둔 채 공터의 잡초는 모두 정리되었다.
"좋~아, 끝났다~! 노아씨, 고생했어."
"네, 세리카씨도 고생 많으셨어요."
바이트가 끝난 축배 대신 페트병의 물을 부딪쳤다.
"어, 내 거는?"
"어라, 계셨군요, 선생님."
"물 잔뜩 마셨잖아! 선생님은 물 금지!"
"그건 좀...... 목이 바짝 말랐다구."
"농담이야, 농담! 자, 이거. 선생님도 수고했어."
병을 기울이며 문득 눈길을 주자 쿠로미씨는 물을 가슴에 안은 채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붉은, 새빨간 눈동자다. 몸을 움직이면서 생긴 체온은 나도 감돌고 있다. 그러나 그 붉은 눈동자에 깃들어 있는 열기는 분명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모르는, 그럼에도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열기라고――그도 그럴 것이 그것 하나만을 제목으로 한 책이 몇 권이나 이 세상에 나왔고, 나는 그 중 일부를 읽었으니까――직감으로 알았다.
심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감정이 솟아나는 곳은 마음의 가장 깊은 부분이라는 걸 직접 그 눈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이럴 때 로맨틱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계속 생각해왔다. 그런 기대를 하며 마음의 뚜껑을 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공포』라는 두 글자였다.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지금 바로 물을 마시고 있는 당신 앞에서 오로지 선생님을 생각하는 소녀가 자신의 심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알기 쉽게 얼굴에 보이던 그 열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에 그걸 눈치챘다고 해도.
내일의 선생님이 그걸 알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나만은 잊지 않으려고 썼다.
〈쿠로미 세리카씨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라고.
4 / 17한 장 한 장 늘어나는 포스트잇을 보고, 창문에 맺힌 물기를 닦아내며 선생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번에 흥신소68에 식량을 보낸다.〉
이것은 26일 전, 사무실 임대료를 지불할 수 없게 된 게헨나 학원의 조직, 흥신소68이 공원에서 노숙하게 됐기에 식량을 보내주자고 얘기했던 일.
〈엔지니어부 부실, 입구 옆에 있는 우산꽂이는 건들지 마!〉
이것은 그저께. 부실에 방문한 선생님이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우산꽂이에 가져온 우산을 꽂았더니 금세 그것이 분쇄기에 넣은 것처럼 박살난 일. 아무래도 우산꽂이형 리사이클기였던 거 같다.
〈곰고기 맛있게 조리하는 법〉
이건, 반년하고 나흘 전. 붉은겨울 특별반에 소속된 학생이 「만약 곰을 잡게 된다면 어떻게 조리하는 게 좋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답변하기 곤란했던 일.
모두 완벽하게 기억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전부를.
하지만 이제는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포스트잇과의 차이 때문에.
창문을 앞에 둔 채 눈꺼풀을 감는다.
눈꺼풀을 감아도 여전히 나는 창문 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 창문에는 집무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내가 선생님의 비밀을 알아버린 그날, 내가 선생님에게 가르쳐준 것은 『나의 비밀』이나 다름없었다.
이 기록법이라는 것은 사실 나 그 자체였다.
벽으로 다가가면 포스트잇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저는 선생님의 비서입니다.〉 〈『선생님』은 조금 얼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비서로서의 일은 아무래도 지루하지 않을 듯 합니다.〉 ......
그 포스트잇을 떼어내 손에 쥐면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내가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그날 연방수사본부 13층, 복도보다 더 어두운 부실, 안락의자, 그리고, 환상적인 죽음의 연출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까지.
눈꺼풀을 떴다.
〈문의 5보 뒤, 2보 오른쪽은 넘어지기 쉬우니 주의!〉 라는 포스트잇을 떼낸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넘어지기를 반복하길 닷새째, 내가 그 장소를 기록할 것을 제안했을 때 선생님의 묘한 미소, 바닥에 표시를 하기 위해 비품실에서 꺼낸 테이프, 그리고 그것을 잘랐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가위.
〈이번에 흥신소68에 식량을 보낸다.〉 라는 포스트잇을 떼낸다.
이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야말로 이것이 선생님이 보고 있는 세계였다. 흥신소68의 누군가와 이야기했을 때 느낀 공기 온도. 나눈 시선과 언어화되지 않은 만큼 나타난 표정의 재빠른 변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소리. 그런 무대를 수놓는 계절의 향기.
그 모든 것을 깨닫고 미래에 전하고자 포스트잇 속에 15자로 한껏 마음을 담았던 26일 전, 선생님은 이미 죽었다. 15자로는 전하지 못했던 포스트잇 밖으로 크게 튀어나간 기억들을 전부 길동무로 삼아 죽었다.
반년하고 사흘 전의 선생님도 죽었다. 그저께의 선생님도 죽었다. 어제의 선생님도 죽었고,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았던 선생님도 내일이면 죽고 만다.
그런 선생님의 『최선을 다해 살았다』 라는 증거를, 선생님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하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안에서, 내 안에서 살아 있었어야 할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 안에서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걸 선생님에게 전해도 오늘의 선생님은 이제 몇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 내일이면 나는 또 그저 비서인 우시오 노아로 취급되겠지.
그런 생각의 끝에서 한 가지, 굉장히 사소한, 그러면서도 가장 큰 의문이 떠올랐다.
"노아."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선생님이 정장을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서있었다. 갑자기 깨어난 청각으로부터 천천히 후각이 돌아왔고, 미각이 그 뒤를 이었다. 쉬익하고 물이 끓는 기분 좋은 소리만이 방에 울리고 있다. 커피 냄새가 어렴풋이 풍기고 그 향기를 맡은 조건반사인지 침이 달다.
"뭔가 고민하고 있던 거 같은데, 괜찮아?"
"네, 괜찮아요. 선생님."
선생님은 「그런가」 라고만 말하고, 부엌으로 갔다.
"있지, 오늘은 내가 저녁에 커피를 내려도 될까?"
『오늘은』 ? 지금 선생님은 분명히 『오늘은』 이라고 했다. 마치 매일 밤 내가 커피를 끓이고 있다는 걸 아는 듯한 말투였다. 우리 사이에서 오직 그것만이 암묵적인 양해로 창문의 포스트잇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매일 변함없이 계속되던 습관.
"선생님, 제가 매일 밤마다 커피를 내리는 걸 기억하시나요?"
그 말은 들은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가슴 주머니에서 손에 들어가는 크기의 장부를 꺼냈다. 그것은 선생님의 침실 엔드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건이었다.
"특별히 중요한 건 여기 쓰고 있어."
특별. 선생님 안에서 내가 내리는 커피는, 혹은 커피를 내리는 나는, 일몰과 함께 죽어버리는 기억이 아닌 계속 살아가는 기억으로서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것이구나. 그 특별하다는 말을 듣고 왠지 나는 느껴보지 못한 설렘을, 느낄 리 없는 설렘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 외의 모든 것――그 장부에 적혀있지 않은 모든 것은 사라져도 되는 기억인 것이다. 그런 냉혹한 사실을 너무나도 쉽고 명확하게 마주치게 되었다.
"됐어, 노아. 카눌레도 말이야, 자."
어제의 내가 맛있다고 하며 먹었던 그것이, 오늘의 나에게는 아무래도 매력적이지 않은 모양이라 뛰기 시작한 마음의 웅성거림에 맡기고 몸을 움직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억이 펼쳐진 창가로. 뒤에서 선생님이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무시하면서 한 장의 포스트잇을 집어들었다.
〈노아에게 빚진 게 하나 있다.〉
〈선생님에게 받을 빚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은 분명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선생님은 저에게 한 가지 빚이 있어요."
"선생님, 대답해주세요. 선생님은 어째서 『선생님』 을 선택하셨나요?"
이런 기록을 남기게 한다면.
이런 기억을 심어준다면.
학생의 얼굴도, 이름도, 매일 서류를 다시 봐야 인식할 수 있다면.
나에게 『특별』이란 말로 저주를 내릴 정도라면.
어째서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셨나요?
선생님은, 심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조금은, 아주 조금이지만 이 질문을 한 걸 후회하게 되는 고요한 회색의 슬픔이었다.
그리고 멀리. 구름 너머 하늘 저편, 저기 떠 있는 헤일로보다 위를 내다보는 듯한 푸르고 애틋한 눈을 차가운 창문으로 향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는 건 말이지."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키보토스 밖에 있을 때 버릇이야. 그래서 하루도 거른 적이 없어."
가슴에 넣어뒀던 손바닥만한 장부를 펼치며 선생님은 계속한다.
"여기서부터는 이 장부에 적혀 있는 내용이야. 나는 이제 선생님이 된 이유 같은 건 기억나지 않고, 그때 안고 있었을 적극적인 열기를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아. 지금 내게 있는 건 소극적인 삶과 언젠가 죽은 내가 남긴 저주 뿐."
"키보토스에 오기 전부터 내 기억은 이랬어. 계속 병동에 누운 채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가는 듯한 나날을 타성에 젖어 살았지."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감정 변화에는 상응하는 설득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매일 필사적으로 미래의 나에게 오늘 살아있는 증거를 맡기려고 노력했던 나조차 눈물 젖은 베개에서 깨어나 그것이 어째서 젖어있는 지를 일체의 감정조차 전달되지 못하는 장부 기록으로 가르쳐야 했던 그런 날들이 십 년 동안 계속됐으니, 그건 이미 타성에 젖어 살게 될 이유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지."
"그래서 자신도 놀랐지. 10년에 걸쳐 정성스레 얻어맞으며 축 처져버린 감정을 만들어낸 성격 나쁜 신의 노력이 한순간에 불쑥 망가지는, 그런 우연한 계기가 있다는 사실에."
선생님은 메모지를 새로 한 장 뽑아서 거기에 적어 넣었다.
〈누군가의 엔드롤에 실리고 싶어〉
"무슨 책에서 읽었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고 메모조차 남아 있지 않아. 단 한 문장으로 나는 진심으로 살고 싶었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 누군가의 엔드롤에 자신의 이름이 실려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증거나 다름없으니까. 이미 죽어버린 어제의 나도 분명 누군가의 마음이 기억해 주고 있고,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온 내 조각들이 이어지든 아니든, 그 결과 지금을 살고 있는 나, 혹은 그 밖의 누구라도 좋아. 누군가의 앞에 아련한 신기루로 내 상이 떠오른다면."
"난 그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선생님은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된 거야."
그건 분명 저 장부에 적혀 있는 내용일 테고.
〈선생님은 오만합니다〉
지금의 선생님은 그런 동기 같은 건 기억 못하시겠지만.
〈제멋대로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특별함을 해석했을 뿐인데.
〈자신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특별하다고 간단히 말합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오늘의 선생님은 앞으로 몇 시간 뒤에 죽으니까.
"아, 커피. 미지근해졌네. 다시 데울까......"
"어차피 잊어버릴 텐데."
"노아......?"
이 목소리를.
이 눈을.
이 얼굴을.
이 온도를.
이 냄새를.
이 눈물을.
기껏해야 내일의 당신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어차피 잊어버릴 텐데. 특별하다고 쉽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5 / 17"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우시오 노아씨, 좋은 아침."
"『노아』면 돼요. 선생님. 오늘은 샬레 내 업무입니다."
"고마워, 그럼 밤에 봐!"
"네, 다녀오겠습니다."
"선생님, 방금 돌아왔습니다. 빵집이 조금 붐벼서..... 주무시고 계시네요."
"선생님, 커피를 타왔어요."
"선생님, 조금 식었으니 이제 마시기 좋을 때에요."
"선생님, 선생님."
"으응...... 아......"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선생님. 이미 커피도 다 식었고..."
"음, 그러니까."
"너, 누구였더라?"
"아, 우시오 노아씨!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로...... 오셨...... 나요..."
"나나가미 린 행정관을 만나게 해주세요."
"힉...... 어, 어어, 그, 그럼 이쪽으로 와주세요......"
"어, 그러니까, 13층입니다, 좋은 시간 되시길......"
"행정관, 알고 있었나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우시오 노아 비서."
"선생님 기억의 지속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을."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럼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어째서 제가 비서로 뽑혔죠?"
"후보가 될 수 있는 모든 학생 중......"
"진짜 이유는?"
"......당신의 뛰어난 기억력으로 선생님이라는 존재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당신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선생님을 뇌에서 추출해 본뜨면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선생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우시오 노아씨, 당신의 『있는 그대로』 를 기록할 수 있는 뇌라면 그게 가능하니까요."
〈저는 선생님의 비서입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지금을 사는 선생님을 기록합니다.〉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우시오 노아씨, 좋은 아침."
"『노아』면 돼요. 선생님. 오늘 날씨도 좋은데 산책이나 하죠."
"산책? 너에게는 업무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다...... 라는 모양인데, 그게 업무 내용이야?"
"네, 제가 오늘 정했습니다."
6 / 17"선생님, 이게 역 건물의 카눌레고, 이것은 주문한 냉동 카눌레에요."
"이게 그? 뭐라고 할까, 전혀 모양이 다르지 않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듯이 카눌레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돼요. 저는 이쪽 준비를 할 테니 선생님은 커피를 내려주세요."
"맡겨줘. 내가 밤에 커피를 내리는 건 처음 아냐?"
"그렇지 않아요. 오늘이 두번째예요."
좀 더.
7 / 17"우와아......! 크네......!"
"여기는 3년 전에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를 지향하기 위해 만든 인공연못인 거 같아요. 수질까지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수영_도 할 수 있답니다."
"헤에......! 노아, 수영해 볼래?"
"아뇨,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선생님이야말로 뛰어들어 보시는 건 어떤가 하는데요."
"......"
"선생님, 의외로 수영할 줄 아시네요."
좀 더.
8 / 17좀 더.
9 / 17좀 더.
10 / 17"저기, 노아."
어제와 마찬가지로, 엊그제와 마찬가지로. 변함없는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리던 내 손을 멈춘 것은 너무도 연약한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어느 날, 업무가 끝나고 헤어진 뒤, 혼자가 된 선생님이 어렴풋이 중얼거리던 말을 나는 마음 한가운데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나는 언젠가,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걸까〉
어째서인지 지금, 그 말이 떠올랐다.
주전자에서 뿜어져나오는 증기가 높게, 슈욱 하고 높게 뻗어 나간다.
아아, 오늘이구나. 그때부터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는 선생님에게, 마침내 오늘 그 무너짐이 따라잡혔다는 걸 목소리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또한 그걸 깨달은 듯 했다. 『오늘의 선생님』은 본래 모를 것이다. 자신을 잊어버린다는 공포를 안고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조차 잊고 지금을 살아가는 등 뒤에서 절벽이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 사이에 선생님 안쪽에 있던 본래의 적극적인 삶에 대한 집착이 그걸 직감하게 한 듯했다.
"무슨 일이세요, 선생님?"
"오늘은 이제 자려고."
"커피는."
"오늘은, 됐어."
"그렇다면 선생님이 주무실 때까지 곁에 있겠습니다."
"......고마워."
11 / 17"있잖아, 노아."
"왜 그러세요, 선생님?"
"사실 부끄러워서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서워. 계속, 무서웠어."
12 / 17"노아, 무서워. 내 손톱 끝에 붙은 아주 조금의 차가움이 손끝으로 옮겨오고 그런 조금의 어두움이 언젠가는 몸 전체까지 퍼져나가 이 마음까지 닿아버리는 게."
"괜찮아요. 곁에 있을게요."
"포스트잇 보는 게 두려워. 말로 표현하려고 하면 전부 사라져 버렸어. 그 뒤에 있었을 네 온기가. 이런 『온기』라는 말도 내 망상일 뿐이고, 사실은 거기에 온기조차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드는 내가 두려워. 상상으로 채우는 열기로는 손끝에서 퍼지는 차가움을 이길 수 없었어.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게, 계속 두려웠어. 이런 몸의 떨림도. 떨면서 계속 키워온 너에게 전해야 할 말들도. 잊혀지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두려워."
"그럼, 적어도."
13 / 17"손을."
"손을 잡고 있으니까요."
"지금 살아계신 선생님은 진짜예요. 사라져버린 감정 따윈 이제 잊어주세요. 지금 저의 이런 온기만은, 그것을 느끼는 선생님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짜니까요.
"게다가, 『분명 마음이 기억해주니까』. 이것은 이미 죽어버린 언젠가의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예요."
"그런.... 가."
14 / 17"사실은 말이지."
"사실은 커피가 마시고 싶었어."
"네가 내리는 특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어."
"원하신다면 가져다 드릴게요."
"부탁할 수 있을까?"
"네."
15 / 17"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선생님은 고양이 혀니까 조금 식히는 게 좋겠죠."
"선생님."
"선생님."
그날, 허망하게도 내 비서로서의 일은 끝을 고했다.
"아, 우시오씨! 오늘도 오셨네요!"
병원 자동문을 빠져나가자 쾌활한 목소리가 나를 맞이한다.
"네, 지나가는 길이라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면회를 허락해 달라고 평소처럼 말한다.
"매일 병문안 오시네요. 음, 혹시 특별한 분이라거나 그런 건가요?"
그렇게 말한 후 자신의 발언을 눈치챘는지 그 사람은 당황하면서,
"앗, 죄, 죄송해요! 깊이 질문하는 건 룰 위반이죠." 라고 말을 이었다. 특별한 분.... 인가.
"――아뇨."
"아뇨. 그저 아는 사이예요."
내가 찾는 병실은 3층 맨 안쪽에 있다. 어린 아이끼리 쫓아다니는 복도를 지나 막다른 골목에 있는 방을 두 번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소독약과, 은은하게 풍기는 새 붕대 냄새. 창문으로 흘러오는 잔잔한 바람이 방에 누워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든다.
"당신은, 매일 와주시는 거 같네요."
"네, 과거에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혹시 우시오 노아씨, 인가요."
이 사람을 찾아온 횟수를 기억하는 것은 두 자릿수를 넘어서고 그만두었다. 그런 지금에야 내 이름이 나온 것에 허를 찔린다. 뭐라고 대답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침구에 몸을 맡기고 있던 남성은 상체를 일으켜 비치된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장부를 집어들었다.
"변덕스럽게――정말 변덕스럽게도 오늘 아침 저는 이 노트를 읽었습니다. 새빨간 타인의 자서전..... 이라고 할까 일기일 뿐입니다만, 몇 번이고 『우시오 노아』 당신의 이름이 나오더군요."
「이것을」 이라며 그는 그 낡은 장부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젠 제가 갖고 있어도 소용없는 물건이니까요. 우시오 노아씨, 당신이 가지고 계세요. 제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선생님』이라고 불린 사람 같은 무언가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간단히 끝내고, 나는 그 손때묻은 표지를 열었다.
〈나는 기억이 매일 사라져 버려.〉
〈특별한 것은 여기 기록하는 것.〉
〈7월 2일. 신록이 푸르다. 분명 내일은 더 선명하겠지!〉
〈7월 3일. 바람이 상쾌하다. 문병 온 사람에게서 꽃을 받았다. 엄청 예쁘다.〉
〈7월 4일. 물을 갈아주는 걸 기억해 둔다. 어제의 나는 땡땡이 친 거 같아.〉
〈7월 5일. 오늘은 밥이 조금 단단했다.〉
〈8월 20일. 꽃이 시들었다.〉
〈9월, 둘 줄었다.〉
〈1월 1일. 또 새로운 해가 온다.〉
〈특별한 것 따위는, 하나도 없다.〉
〈언제 죽을 수 있을까. 이런 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엔드롤에 실리고 싶어』 ! 이거다! 이거라고!〉
〈살고 싶어! 어쨌든 살고 싶다고 지금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어! 3월 13일, 오늘 이 날이 혁명의 날이야.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되는 거야!〉
〈선생님이야. 선생님이 되어 제자의 기억에 남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무슨 노력이든 하겠어. 이 열기만은 잊지 않기를. 누군가에게 받은 꽃 향기라든가, 이미 베여버린 바깥 나무라든가, 점점 줄어드는 병실 동료라든가, 그런 것들이 있었던 거 같아. 지금의 나는 과거의 그 광경을 전혀 상상할 수 없어. 하지만 그런 사소한 건 아무래도 좋아. 기억이 안 나도 상관없어! 이것만. 이것만은 부디 잊지 말아달라고, 내일의 나에게 전하고 싶어.〉
〈전해줘. 부탁이야. 선명하게 켜진 이 불꽃을, 이 열기를. 이 달리고 싶은 감정을! 지금까지 감정은 조금도 문자에 실리지 않았어. 하지만, 이 열기만은! 제발.〉
〈부디, 전해지길.〉
〈언젠가의 나에게. 열기는 보상 받았어.〉
〈제자가 종종 꽃을 전해주러 와. 한때 창문에 놓여있던 꽃이 이제는 없듯이 이 꽃도 언젠가는 시들어 버리겠지. 하지만, 내가 자랑하는 학생의 마음은. 그 마음속에서는, 꽃도 나도, 반드시 계속 살아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샬레라는 기관에 배속되는 거 같아. 이곳에서도 『선생님』으로 불려. 익숙해.〉
〈환영받는다면 레드 카펫을 걸어보고 싶어. 밑져야 본전이니 말해보자.〉
〈『우시오 노아』씨가 내 비서를 맡아준다는 모양이야. 든든해.〉
〈우시오 노아씨는, 굉장히 기억력이 좋아. 착한 아이야.〉
〈그녀에게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걸 들켰어. 이제 숨길 필요는 없어.〉
〈여기에 쓰는 건 줄어들지도 몰라. 푸른 하늘이 새 장부니까.〉
〈카눌레는 엄청 맛있어! 역 앞 빌딩에서 파는 물건. 포스트잇에도 썼으니까 또 먹을 수 있어.〉
〈내일은 꼭 넘어지지 않을거야.〉
〈검증 : 우시오 노아는 귀가하는 시간에 딱 맞춰 커피를 내리고 있을지도. 내일의 나, 부탁해.〉
〈정말 딱 맞았어. 대단해!〉
〈그녀에게 미움을 샀을지도 몰라〉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을까.〉
〈어쩌면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호감을 전한 적이 있을지도 몰라〉
〈아아, 알고 싶다.〉
〈하지만 이제 다른 사람이야. 오늘 미움 받은 나도, 이제 앞으로 몇 분만 있으면 죽어서 내일은 없겠지.〉
〈마음을 창으로 삼을 수 없을까.〉
〈얼음이 얼어붙은 것처럼 단단해.〉
〈조금씩 깎아주겠어.〉
〈『커피를 매일 아침 내린다.』 고 새겨져 있어. 그 아득한 옛날의 기억은 마음에 기록되어 있어.〉
〈그러니 같은 방법으로, 마음을 깎아가면, 또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안 되는 거 같아.〉
〈희망이 없어.〉
〈자신이 사라져 가.〉
〈뒤에서 이미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져.〉
〈우시오 노아씨에게
적어도 이 장부를 읽고 있는 한, 나는 너를 사랑한 적이 있었어.
이렇게 전달할 수 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네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은 저주를 내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 이런 어리석은 자를 제발 용서해주길 바라.
너를 사랑했던 언젠가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야.
새빨간 타인으로서 밖에, 너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이것만은 꼭 전해야겠지.
너를 만나서, 네가 비서로 있어줘서, 곁에 있어줘서, 나는 정말 행복했어. 지금까지 고마워.〉
"우시오 노아씨."
"내가 커피를 잘 내리는 모양이야."
"모처럼이니 한 잔 마시고 가지 않을래?"
그 향도,
커피 그라인더를 돌리는 조용한 모습도,
컵에 따르는 몸짓도,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김_도,
애수를 자아내는 쓴맛도,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신맛도,
그 모든 것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선생님이었다.
기록은, 상처를 동반한다.
기억은, 아픔을 동반한다.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남긴 상처를, 나는 전하고 싶다.
그렇게 바랐다.
16 / 17"선생님."
"무슨 일이죠?"
"선생님은 어째서 선생님이 된 거야?"
"후훗, 얘기하면 길어지는데요."
"또 그렇게 넘긴다니까."
"당신이 만약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 가르쳐 줄게요."
"에~ 그럼 아직 됐어."
"그때는 이 노트를 보여줄테니까."
"시시해. 아. 커피 나도 마실래."
"네. 여기."
"선생님의 커피, 매일 맛이 변하지 않네. 요렁 같은 거 있어?"
"요령인가요......"
"그것도 비밀이에요. 하지만, 언젠가."
"언젠가, 알려줄게요."
나의 기억을. 『선생님』의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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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개미쳤네... 너무좋다

돈을 받고 팔려면 이정도는 해야겠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