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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최종편 및 일섭 여름 토끼 이벤 내용 일부 포함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듣자하니 심인성 실성증이라는 것 같다.
최근에 뭔가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은 없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짐작가는 건 없다.
그렇게 말하자 세리나는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리나에 의하면 아무래도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렸다고 한다.
스스로는 정상이라고 느끼고 있어도 몸이 더 이상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제동을 걸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 뭔가 원인이 없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쌓인 게 단번에 나타난 거라고.
치료하기 위해선 잠시 일을 떠나 푹 쉬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들었다.
세리나의 말에 그만 소리내어 답할 뻔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대답했지만 이것은 익숙해질 때까지는 꽤 힘들지도 모른다.
◇
그 후, 유우카의 도움을 받으며 샬레로 돌아왔다.
샬레의 사무일은 유우카와 린쨩에게 분담해 맡기고 있다.
경리관련은 유우카고, 그 이외가 린쨩이다.
싯딤의 상자는, 아로나에게 「선생님은 보면 일하고 싶어하니까 안돼요!」라며 제한되고 말았다.
일단 급한 안건이 있다면 알려주겠다는 것 같다.
모모톡도 볼 수 있게 해주긴 하겠지만 호출을 포함한 내용이 없는지 아로나와 프라나의 검열이 들어간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휴가는 익숙하지 않았기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모처럼 누구를 만나러 갈까 했지만, 세리나에게 「선생님은 말려들기 쉬우니 학생들과 만나는 건 가급적 최소한으로 해주세요.」라고 주의를 받았다.
한가해......
뭔가 움직이지 않으면 진정되질 않아.
이런 성격이니 마음이 지쳐버린 걸까.
다만, 내 안의 「선생님」이라는 이미지는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이었기에 이제 와서 바꾸라고 해도 곤란하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 있으려니 시간이 느리게 간다.
(......그때의 미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을 쉬려고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
"수고요~ 선생님 있어~?"
"언니, 선생님이 자고 있으면 어떡하려고......!"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눈을 뜬다.
이 목소리는...... 모모이와 미도리?
제법 푹 자고 있었던 듯, 어느새 태양이 높은 위치에 있었다.
소파 위에서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답한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깨워버렸나요?"
"안녕, 선생님! 어라, 선생님. 그 목은 왜 그래?"
심인성이기에 실제로는 상처가 없지만, 시인성을 위해 우선 세리나에게 목에 붕대를 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미안, 오늘은 목소리가 안 나오니까 필담으로 해도 돼?』
준비해 놓은 스케치북을 사용하여 필담으로 모모이에게 대답한다.
이 스케치북은 유우카가 준비해줬다.
「YES」 「NO」 「도와줘」 같은 간단한 말은 몇 개 이미 쓰여 있어 새로 쓰지 않아도 보여주는 것만으로 최소한의 대화는 할 수 있게 돼 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스케치북을 사용해 사정을 설명한다.
미도리는 진지하게 듣고 있었지만 모모이는 재밌어 보였는지 자신도 필담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힘들 때 방해해 드려 죄송해요...... 저희는 돌아갈 테니 푹 쉬세요."
『신경 쓰지 마』
『목소리가 안 나와서 말상대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밖은 더우니까 조금 쉬었다가 가』
"알겠어요. 그럼 말씀대로 조금만 더......"
"그럼 나 선생님 아이스크림 먹어야지~♪"
"잠깐, 언니!"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모모이에게 자신과 미도리 몫의 아이스크림도 가져다 달라고 하고 셋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 후 최근 플레이했던 게임 이야기를 하던 중 미도리의 스마트폰에 유즈의 연락이 와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럼 선생님. 제 게임기를 여기 두고 갈테니 혹시 시간 나시면 써주세요."
"그럼 나는 추천할 만한 소프트웨어를 줄게! 여름에 딱 어울리는 거!"
"언니...... 호러는 목에 안 좋거든......?"
"괜찮아! 유즈의 캐비넷에서 빌려온 수영복 입은 여자아이랑 꽁냥대는 게임이니까!"
『미도리, 유즈에게 「몰수」라고 전해줘』
.......마음은 아니까 기본적으로는 못 본 척 해주고 싶지만 눈앞에 드러나 버리면 어쩔 수 없다.
선생님이라는 입장상 미성년자가 그런 게임을 하는 건 방치할 수 없으니까.
얼마 전 몰수한 코하루와 하나코의 개인 물품과 함께 샬레 창고에 봉인해두자.
"그럼 선생님, 또 봐! 다음에는 아리스도 데리고 올게!"
"선생님, 몸조리 잘하세요."
『조심해서 들어가』
그렇게 말하고 모모이와 미도리는 밀레니엄으로 돌아갔다.
......멀리서 모모이의 「켁, 유우카......!?」 「아직 딱히 나쁜 짓은 안 했잖아!」라는 소리가 들린 건 듣지 못한 걸로 해 두자.
◇
모모이와 미도리가 돌아간 지 몇 분 후.
샬레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도 돼――」라고 대답하려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게 떠올랐다.
소파에서 일어나 문을 열러 간다.
밖에는 미야코가 서 있었다.
"선생님, 미야코입니다. 모모톡에 답장이 없어서 걱정되서 왔습니다. ......선생님?"
미야코는 목의 붕대를 보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리 써놓은 말을 보여주기 위해 스케치북을 넘긴다.
『미안해』
『목 문제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어』
『필담이라도 괜찮을까?』
매번 설명을 쓰는 건 힘들어서 모모이가 돌아간 뒤로 조금 설명용 문구를 추가해 놨다.
이어서 부족한 말들을 스케치북에 적어 나간다.
『아까까지 자고 있어서 모모톡을 못 봤어』
『미안』
"아뇨, 쓰러지셨거나 유괴 당한 경우도 상정했기에 안심했습니다."
유괴는...... 과거에도 경험이 있으니 부정할 수 없네.
"――그래서, 그 상처는 누구에게?"
미야코에게서 살기가 나오고 있어......
말하는건 평소대로지만 화가 난 게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장난삼아 누군가의 이름을 꺼내볼까 했으나 정말 그 사람을 공격할 것 같은 분위기라 그만둔다.
『이건 부상이 아니고』
『심인성인 거 같으니』
『괜찮아』
"......외상이 아니라 심인성이라면 괜찮다, 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미야코의 살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후우, 위험했어.
듣자하니 미야코는 작전 완료 후 코우사기 공원으로 돌아와 짐을 놓고 일부러 샬레까지 와줬다고 한다.
『밥 먹기 전인데 미안해.』
"아뇨, 선생님을 지키는 게 저희 임무니까요."
『그랬었나?』
RABBIT 소대의 존재 의의가 개인의 해석으로 마음대로 바뀐 거 같지만...... 뭐, 기분 탓인가.
사실 카이저에게 납치됐을 때도 도움을 받았고.
『모처럼 와 줬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서 말상대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뇨...... 그렇다면, 모처럼이니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은 말하시지 않아도 괜찮으니까요."
스케치북을 넘겨 『YES』라고 대답한다.
계속 문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상해 소파로 이동했다.
미야코가 앉을 수 있도록 맞은편 소파를 가리키는데 미야코는 옆에 앉았다.
"선생님도 매번 쓰시기 힘드실 테고, 답장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뭔가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제가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미야코는 책상 위 펜을 자신의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래서는 새로 쓸 수 없을 거 같다.
포기하고 미야코 쪽으로 돌아서자 미야코는 말문을 열었다.
RABBIT소대의 일.
소확행에게 또 트집 잡힐 뻔 했던 일.
어촌에서 다시 와달라고 편지가 온 일.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잔뜩 했다.
나는 스케치북의 정형문과 제스처로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공원에서 키우는 깡총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미야코의 이야기가 갑자기 끊겼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미야코의 얼굴을 본다.
"...... 마, 마음이 지쳤을 때의 대처법으로, 애니멀 테라피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저는 토끼가 아니지만...... 깡총이가 아닌 저라도 선생님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야코는 그렇게 말하고 팔과 팔이 닿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이것은 애니멀 테라피......인가?
아니, 확실히 인간도 동물이긴 해도.
......조금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모처럼의 호의니까 받아두자.
스케치북을 넘기며 『고마워』라고 대답하자 미야코는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모모톡 답장이 없어서,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아뇨, 외로웠다고 하는 편이 옳겠네요."
"토끼가 외롭다고 죽는 건 헛소문 같지만, 저는 토끼가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이 없다는 건, 견딜 수 없어요."
어깨 위에서 미야코가 머리를 부비듯이 움직인다.
미야코의 머리에서는 부드러운 초원과 흙냄새가 났다.
"그러니까, 선생님――"
라고 한 그때.
"――저기, 미야코쨩......"
"......미유?"
샤워실 쪽에서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미유가 나왔다.
미야코는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두었지만 타이밍적으로 이미 늦은 거 같다.
"......언제부터 여기에?"
"으음, 밀레니엄 사람들이 오기 전부터 있었는데....... 나갈 타이밍을 못 잡아서......."
"꽤 뜨거웠네~...... 쿠히히."
미유가 들고 있던 통신기에서 모에의 목소리도 들렸다.
목소리에선 아무래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야코가 굳어 있는 동안 소파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업무 책상에서 다른 펜을 가져와 스케치북에 적어간다.
『미안』
『눈치챘지만, 미야코가 펜을 가져가서』
『전할 수단이 없었어』
그렇게 말하자 미야코는 머리를 싸맸다.
표정은 그다지 보이지 않지만 귀가 빨개졌다.
중얼거리며 「부끄러워...... 이제 미유와 모에를 지우는 수밖에......」라는 흉흉한 말이 들린 것 같다.
『미유도, 말 걸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뇨, 잊혀지는 데는 익숙하니까요......"
사실 모모이가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간 사이 미유가 샤워실을 빌리러 온 게 보였다.
미도리와의 대화 중 갑자기 일어서는 것도 미안해 미유에게는 써도 된다며 가볍게 인사만 했었다.
......미야코가 와서 그대로 잊어버린 건 비밀이지만.
"미유가 어떻게 해야할지 상의하길래 통화를 켜 놓은 채로 대기하라고 했단 말이지~"
아무래도 미유는 샤워실에 나온 후에 나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마침 모모이가 나갈 때와 겹쳐버려서 일단 샤워실로 돌아간 것 같다.
그 후 시간을 두고 다시 나와 보니 이번에는 미야코가 내 옆에 앉아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에와 상의하고 있었다고 한다.
"으윽, 제발 사키에게는 비밀로......"
"그럼 도시락 먼저 골라도 돼?"
".......3일만이라면."
"음~ 일주일."
"......5일이면 어떤가요."
"오케이, 협상 성립이네."
모에가 저장한 음성 데이터는 5일치 도시락 선택권과 트레이드가 이뤄진 걸로 보인다.
"자자, 모처럼이니까. 미유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버려."
"어, 으음....... 그럼, 자기 전에 나도 깡총이를 안아봤으면 좋겠는데......."
"에~ 그런 걸로 괜찮아? 좀더 『깡총이를 먹게 해줘~』 정도는 해보는 게 어때?"
"......모에? 말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역시 아까 발언은 없던 걸로. 통신기 너머로 미야코의 살기가 전해졌어."
"하아...... 미유, 그 정도는 말만하면 언제든지 하게 해줄게요."
"고, 고마워......."
"쿠히히, 잘 됐네. 미유."
아무래도 미유도 깡총이 덕분에 진정되는 모양이다.
경사로세 경사로세
이후 미유가 샤워 후에 조금 더워 보여 두 사람에게도 아이스크림을 줬다.
모에에게 「불공평해」라는 불평을 들어서 몰래 미유에게 2인분의 아이스크림 값을 건네주었다.
......미야코에게 주면 「이런건 받을 수 없습니다.」라며 거절 당할 거 같고.
".......죄송합니다. 소란을 피웠습니다. 오늘은 이만 실례할게요. 괜찮으시다면 또 깡총이를 만나러 와주세요."
"아, 선생님...... 또 올게요......"
『조심해서 들어가.』
◇
오후부터 쉴 예정인 날이라든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날이라든가.
......그런 날에 한해 손님이 많은 법이다.
"으헤~ 스트레스 때문에 목소리가 안 나온다니, 선생도 큰일이네~"
『다들 신경 써주니까 그렇지도 않아』
모모이와 미도리, RABBIT 소대(사키 제외)에 이어 이번에는 호시노가 샬레에 와 있었다.
호시노는 다른 4명과 달리 원래 샬레에 올 예정이었다.
이었지만...... 예정이 오늘이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선생도 아저씨처럼 너무 짊어지지 않는 게 좋다구~?"
『호시노도 혼자 꽤 짊어지는 편이지 않아?』
"아냐아냐~ 선생에겐 못 당하지~"
호시노는 이전, 대책위원회를 구하기 위해 모두에게 비밀로 검은 양복과의 거래에 응하려 한 적이 있다.
노노미에게서 「아비도스의 학생회장을 혼자서 계속 찾고 있었다.」라고 들은 적도 있기에, 나 이상으로 혼자서 짊어지는 타입...... 이라고 생각한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너무 어두운 것만 생각하면 세리나에게 「심인성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고칠 생각은 없으신가요?」라고 혼나 버리니까.
호시노는 품에서 봉투를 한 장 꺼냈다.
"자, 이거. 시로코쨩이 부탁했던 거. 그리고 이건 덤으로, 세리카쨩이 준 시바세키 라멘 쿠폰."
『미안해』
『일부러 고마워.』
"괜찮아괜찮아. 아저씨에겐 느긋하게 땡땡이 칠 구실이 됐으니까."
어째서 호시노가 굳이 시로코의 물건을 전하러 왔는가 하니.
예전, 시로코에게 「언제든지 샬레에 와도 돼」라고 말했더니 거의 매일 오게 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대책위원회 지각이 늘어나는 사태가 벌어지자 샬레 가는 건 주 1회까지. 급한 일이 있을 때는 대책위원회의 다른 멤버가 대리로 간다」라는 규칙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호시노가 대리할 차례.
얼마 전, 시로코가 샬레에 왔을 때 실수로 샬레 집무실의 여벌 열쇠를 가지고 돌아가 버린 적이 있다.
다른 거라면 다음 주라도 괜찮지만 대책위원회 모두의 의견으로 「시로코는 여벌 열쇠 복제를 할 수도 있다」라는 결론이 내려져 급히 가져오게 됐다.
『......그런데 열쇠에 점토가 묻어 있는데.』
"아이구야~ ......돌아가면 아저씨가 시로코쨩의 바디 체크를 해둘게."
그 후, 모처럼이니 호시노에게도 아이스크림을 주었다.
호시노는 「정말 아저씨가 받아도 괜찮아?」라며 조금 사양하는 느낌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아무런 대책 없이 돌아가는 건 위험하기에 억지로 건네 놓았다.
"그럼 가볼게, 선생. 아야네쨩에게 쇼핑도 부탁 받았고. 슬슬 가야겠어. 시로코쨩도 보고 싶어했으니까. 또 시간 날 때 놀러 와 주면 아저씨도 기쁠 거야."
『다음 주에라도 시간 내서 가볼게』
『조심해서 들어가』
"아 맞다. 잠이 안 오면 모처럼 시간도 있으니 도서관에서 책 같은 거 빌려오면 괜찮지 않을까?"
『고마워』
『그렇게 해볼게』
◇
모처럼 책을 빌린다면 평소 잘 가지 않는 고서관에 가서 우이에게 얼굴을 내밀어 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트리니티 학군을 걷고 있었다.
(생각보다 스케치북 소비가 빠른 걸......)
돌아가는 길에 여분의 스케치북을 사 두는 편이 좋을지 몰라.
지금까지 뭘 썼을까...... 하고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며 걷는다.
그러던 중,
"어머어머......♡ 보세요, 코하루쨩."
"뭐야....... 아앗, 서, 선생님!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네!"
스케치북에서 고개를 들자 코하루가 이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하나코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선생님, 이런 시간부터 『YES』라니 꽤 열정적이시네요."
『아니, 오해야』
"변명할 필요 없어! 대낮부터 그런 걸 보여주면서 걷다니...... 사형 결정인 게 당연하잖아!"
......정말로 오해다.
오해지만, 코하루는 이야기를 들어줄 거 같지 않다.
......왠지 사쿠라코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사쿠라코, 미안...... 다음부턴 더 상냥하게 대해줄게......
있어보이려고 『YES』 『NO』 따위로 하지 말고 무난하게 『응』 『아니』 로 해둘걸......
아무튼 어떻게든 해명을 해야 해.
스케치북에 답장을 써내려간다.
코하루 재판장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을 고려해서 부디 정상참작의 여지를......
.......근데, 어라? 정상참작이 어떤 한자였더라.
읽을 수는 있는데 쓸 수가 없네.
"뭐, 뭐라고 말이라도 해!"
한자를 까먹어서 생각하고 있는데, 무시 당한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코하루의 다그침이 심해졌다.
"코하루쨩, 선생님이 곤란해 하잖아요?"
"그치만......!"
"......아무래도 선생님은 목소리를 내실 수 없는 거 같으니까, 천천히 기다려 주지 않으면 불쌍해요. 그렇죠, 선생님?"
『미안』
『목 문제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어』
"어...... 아...... 미, 미안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아무래도 하나코 덕분에 오해는 풀린 것 같다.
......오해가 시작된 원인은 하나코에게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자작극 같기도 하지만.
"코하루쨩. 정의실현부의 엘리트라면 너무 힐난하듯이 몰아붙이면 안 된다구요? 『말 안해』 왜 『말 못해』는 다르니까요."
"으으...... 미안해......"
"――재갈을 한 사람에게 싫으면 소리를 내라고 해도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어째서 너는 야한 방향으로만 말하는 거야......!? 역시 사형이야, 사형!"
◇
하나코, 코하루와 헤어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고서관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그 후 화해의 표시로 아이스크림을 사주려고 했지만, 코하루에게는 「먹이고 야한 망상을 할 생각이지! 변태!」라며 좀처럼 받아주지 않고, 하나코는 하나코대로 녹이면서 먹으려고 해 엉망이었다.
최대한 그늘을 걸었지만, 오늘은 햇볕이 강해 고서관에 도착할 무렵엔 온통 땀으로 젖어 버렸다.
고서관 문을 열자 명암차로 순간 시야가 캄캄해졌다.
밖은 찌는 듯한 더위였지만 고서관 안은 냉방이 잘 되어 시원하다.
......평소 같으면 문 열리는 소리에 반응해 우이가 말을 걸어오는데 오늘은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우이는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우이의 본거지가 되어가는 고서관이지만 원래는 개방돼 있어야 할 시설이기에 이상한 일만 아니라면 마음대로 책을 보고 있어도 문제는 없을 거 같다.
고서관 안쪽, 비교적 튼튼한 책이 놓여 있는 구획에서 적당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다.
.......만에 하나, 허물어질 것 같은 책에 마지막 일격을 가해버리면 안 되니까.
◇
"어라...... 선생님은 아직 안 오셨나요......?"
서서 책을 읽으며 조금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입구에서 우이의 목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샬레를 나올 때 아로나에게 부탁해 「지금부터 갈게」라고만 연락했으니 내가 없는 게 의아한 모양이다.
우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기 자리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사실 바로 나가려 했지만 우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 장난기가 발동했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레 우이에게 다가간다.
우이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책 관리 작업으로 돌아간 거 같다.
작업용 원형 안경을 쓰고 집중 모드에 들어가 있다.
"으에....... 이 아이, 페이지가 접혀있어....... 이 페이지에는 얼룩이....... 시미코에게 부탁해 그 사람은 출입금지해 달라고 할까요......."
우이는 밖에서는 안경을 잘 쓰지 않는 데다 사람이 있으면 산만해지는지 작업을 멈춰버린다.
그래서 원형 안경을 쓴 작업 중인 우이는 사실 드문 모습이기도 하다.
들키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다가가 우이의 얼굴이 보이는 위치에 앉았다.
작업에 집중해서인지 나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고서관은 조용했고 잉크 냄새와 펜을 사각거리는 소리만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커피, 커피......"
우이는 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더듬어 컵을 찾고 있다.
손에 딱 닿는 위치를 노려 오는 길에 사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
"......?"
우이는 의아한 듯 손에 불쑥 나타난 커피를 바라보고 있다.
나직이 「사왔었나......?」하고 말했기에, 뭔가 위화감은 있는 거 같지만, 아직 나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그대로 고서 해독 작업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으음, 이 부분은 아마 그 사전에......"
아마 그거라고 생각되는 사전에 「여기요」라는 포스트잇을 붙여 우이에게 건넨다.
"아, 감사합니다......."
"......"
".......?"
"――으헤악!?"
『수고가 많아.』
"선생님......!? 어, 언제부터 거기에......!?"
◇
그 후, 우이에게 혼나면서 몇 권 간단해 보이는 책을 적당히 고른 뒤 샬레로 돌아왔다.
마침 해질녘이라 더위도 조금 누그러졌다.
"선생님, 어서오세요."
『세리나, 언제부터 여기에?』
"방금 전이에요."
샬레의 집무실 문을 열자 안에서 세리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단속은 했을 텐데.
"목 상태는 어떠세요?"
『괜찮아』
"혹시 모르니, 조금 진찰하게 해주세요."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으니 얌전히 세리나의 진찰을 받는다.
목 상태를 확인한 뒤에, 세리나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뭔가 좋은 일 있으셨나요?"
『아마도』
『여러 학생을 만나서 그런 걸까』
"그런가요."
세리나는 진찰 도구를 놓더니 이쪽으로 돌아섰다.
조금 전의 놀란 얼굴은 사라지고 안심한 듯한 얼굴이다.
"좋은 추세예요. 생각보다 회복이 빠를 거 같아요. 학생과의 접촉이 부담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학생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신 거 같네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선생님이니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피폐해져 버린 건지...... 저는 모르겠어요. 학생들과 만나는 건 괜찮지만,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은 없는지, 그것만은 주의해주세요?"
『고마워』
『그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카이텐저 프라모델 사도 돼?』
"안되겠네요......."
소설모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2463136
댓글 13

세이아병 에반데
이것도 신선하긴해
호오 이것도 재밌네
길거리에서 "YES"가 적힌 스케치북을 든 상태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센남 ㄷ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