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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9자
최종편 엔딩까지의 스포일러
일상
"아! 선생님 안경 쓰고 있어!"
게임개발부 부실에 들어가자마자 모모이가 내 얼굴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마침 렌즈가 다 떨어져서......"
일하는 동안 항상 콘택트렌즈를 끼는데 요즘은 바빠서 남은 갯수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렌즈를 끼려고 할 때 남은 게 한쪽 눈 분량밖에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 남은 게 1회분이 아니라 한쪽 눈 분량뿐인가.
그것은....... 전에 렌즈를 끼려다 그대로 떨어뜨렸으니까.
흐릿한 시야로 렌즈를 끼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딱히 렌즈여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오늘은 안경을 끼고 일하기로 했다.
"선생님, 시력이 안 좋으셨군요."
"자랑은 아니지만 이걸 벗으면 모모이와 미도리의 차이를 모를 정도로 안 좋다고 할까..."
"그건...... 상당한 수준이네요......"
"괜찮아, 선생님! 만약 안 보이면 나랑 미도리가 도와줄게!"
모모이는 가슴을 펴고 그렇게 선언했다.
......안이하게 플래그를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스페어 안경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에, 남은 건 이것 하나 뿐이다.
이게 망가져 버리면 렌즈를 끼는건 고사하고 안경을 사러 갈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린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안경을 닦고 있는데,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던 아리스가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아리스도 안경을 쓰고 싶습니다!"
"......괜찮긴 한데, 그거 하나밖에 없으니까 절대 망가뜨리진 말아줘? 절대로야?"
"아리스에게 맡겨주세요!"
"설마, 아무리 힘이 센 아리스라고 해도 안경을 망가뜨린다니 그런 일은――"
모모이가 친절하게 플래그를 세우는 걸 무시한 채로, 아리스에게 안경을 건네자,
――빠각.
내 손을 떠난 순간 뭔가 불길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안경을 벗고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앗."
"아리스, 지금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어...... 선생님......."
아리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걸 알아차린 모모이가 가로막듯이 사이로 들어왔다.
"괘, 괜찮아 선생님! 귀에 거는 부분이 살짝 휘어진 거 뿐이니까!"
"하지만...... 아리스, 선생님의 소중한 것을......"
"아리스도 진정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고칠테니――"
모모이는 아리스를 위로하며 안경을 받았다.
......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으니까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순간.
――파삭
하고,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앗."
"모모이?"
"언니......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 거야?"
"나 아무것도 안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부서졌는걸!"
미도리와 모모이의 반응으로 볼때 수리 불가능한 수준으로 부서져 버린 것 같다.
어느 쪽이 미도리고 어느 쪽이 모모이인지 모르겠지만, 건네주는 게 희미하게 보인다.
아리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곤란해 하는 것 같다.
......뭐, 망가져 버린 건 어쩔 수 없지.
책상에 놓아둔 싯딤의 상자를 집어들었다.
화면이 보이지 않기에 아로나에게 목소리로 지시를 내린다.
"아로나, 화면이 안 보이니까 대신 콘택트렌즈를 주문해 줄래?"
『선생님, 그건 싯딤의 상자가 아니라 아리스씨의 게임기예요! 저는 이쪽이니까요!』
.......실례, 이건 싯딤의 상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싯딤의 상자로 바꿔 다시 아로나에게 주문을 부탁한다.
『평소 쓰는 콘택트렌즈를 주문했습니다만...... 재료 부족 때문에 배송은 빨라도 1주일 후라고 해요.』
"아아...... 렌즈, 부족해지기 쉬우니까 말이지......"
렌즈를 찾아 여러 번 같은 장소의 임무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렌즈...... 그야 품절 되겠지......
『선생님. 병행해서 다른 가게도 찾아보겠지만 근처 편의점에 팔지 않는지 알아보는 게 빠를지도 모릅니다.』
"프라나도 고마워."
화면은 잘 안보이지만 프라나도 협력해서 재고를 찾아주는 모양이다.
나도 내 쪽에서 가까운 가게를 찾아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편의점까지 어떻게 간다......)
수십 센티미터 앞도 흐릿하게 보이는 이 시야로는 편의점에 도착하기 전에 부상을 입고 말거야.
안전하게 가려면....... 그래.
선언한 대로, 모모이에게 도움을 부탁하기로 하자.
싯딤의 상자를 놓고 쌍둥이 쪽으로 돌아선다.
거리감을 잡기 어려워 손으로 벽을 짚고 걸었다.
모모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부탁한다.
"모모이, 편의점까지 안내해 줄래?"
"......선생님. 저는 언니가 아니라 미도리예요."
"......"
그 후 미도리에게 사과하고 두 사람+아리스를 따라가게 되었다.
자신 때문이라고 우울해하는 아리스를 위로하며 캐비넷 안의 유즈에게 말을 건다.
"아, 그래. 유즈, 미안한데 부실 좀 부탁해."
"선생님, 그쪽은 청소도구함이에요......"
◇
편의점에 도착할 때까지만 참자.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어, 여기도 재고가 없나요?"
"원래 입하수도 적었으니까요......."
밀레니엄 편의점 몇 군데를 돌아봤지만, 어디도 렌즈는 품절이거나 애초에 취급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점원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밀레니엄 학생들은 렌즈보다 안경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렌즈는 월 1회밖에 입고되지 않아요."
"......그렇다는 건?"
"다음에 들어오는 건 일주일 뒤네요. 다른 학군도 안경이 더 많으니까 어느 편의점이나 비슷할걸요?"
"그럴수가......"
――이렇게 해서 나의 「렌즈 없는 1주일간 생활」이 시작됐다.
◇
"선생님, 경비 신청 서류 미비가 있어서 확인을...... 뭐, 뭔가요, 이 인파는!?"
"아, 유우카. 그 근처에 놔둬 줄래?"
안경이 망가진 뒤 단골 안경점에 가기 전에 일단 샬레로 돌아가기로 했다.
안경 도수 같은 게 적힌 메모와 안경점 회원카드를 가지러 가기 위해서다.
게임개발부에 부탁해서 어떻게든 샬레까지 에스코트 받았지만...... 편의점을 찾아 걷는 동안 소문이 퍼진 거 같아 샬레에 다수의 학생들이 몰려왔다.
걱정 20% 흥미 80%라는 느낌으로, 어느 쪽인가 하면 재미있는 상태의 선생님을 봐두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은 거 같다.
다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으니 누가 왔는지는 목소리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유우카는 자주 와주기에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부류지만, 흥미 탓에 온 학생은 학군에서 한두번 이야기한 정도의 아이도 있어서 꽤 어렵다.
......미치루나 메루는 특이하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었지만.
"재무실에 재출 기한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즉시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응...... 알았어. 바로 보러 갈게."
라고 말하며 일어섰지만.......
...... 안좋아.
시야가 흐릿해서 어느 게 유우카인지 모르겠어.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있는 건 틀림없지만, 대략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네......
일단 방금 왔으니까 아직 입구 근처에 있겠지.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걸으며 입구에 가까운 학생들을 확인해 나가기로 했다.
"이 긴 머리와 큰 무기는....... 아리스?"
"네, 아리스는 아리스입니다!"
다행이다, 정답이야.
눈에 띄는 실루엣이어서 잠깐 얼굴을 가까이 대면 금방 알 수 있었다.
기운차게 대답한 아리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음 학생을 본다.
"이건 나기사인가 히마리인가....... 나기사인가?"
"정답입니다만...... 선생님은 저를 의자로 인식하고 계시는 걸까요......?"
곤혹스러워하는 나기사에게 다음에 티파티에 놀러가기로 약속했다.
그럼, 다음 학생은.......
(이건 누구지.......? 얼굴을 잘 모르겠는데.......)
아리스 때와는 달리 다가가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기사처럼 큰 특징이 있었으면 했는데 검은 옷이라는 것밖에는 알 수 없었다.
더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대고 살펴본다.
미간에 주름도 잡혀 있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학생을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머리 위의 튀어나온 부분은...... 귀인가?
눈 주위에는 붉은 아이라인(?)이 그어져 있고, 콧날에도 똑같이 선이 그어져 있다.
피부가 유난히 하얗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혹시나......
"뭔가..... 탈을 쓰고 있어? 혹시, 와카――"
"시, 실례했습니다~~!!!"
......역시 와카모가 와 있었던 것 같다.
얼굴이 너무 가까웠는지 금방 가버렸지만.
그 후 몇명인가 확인했지만 좀처럼 유우카를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할까, 분명히 입구 근처에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거 같아.
혹시 학생 맞추기 퀴즈라고 생각하고 다들 줄 서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혹을 품으면서도 이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차례차례 학생의 얼굴을 응시하며 유우카를 찾는다.
"그럼, 다음 아이는――이런."
얼굴 쪽에 집중하며 걷고 있었는데, 발밑의 골판지 상자를 눈치채지 못하고 걸려버렸다.
넘어질 뻔했지만 벽에 양손을 대고 어떻게든 버틴다.
후우, 위험했어......
벽가에 학생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부딪히지 않고 끝난 것 같다.
뜻밖에 얼굴이 가까이 왔으니 그대로 누구인지 확인하기로 했다.
파란 머리에 밀레니엄 교복.
아, 이 학생은――
"서, 선생님...... 괜찮으세요......?"
"......다행이다, 이번에야말로 유우카야."
넘어진 곳의 벽가에 있던 게, 마침 유우카였다.
안심하고 생긋 웃자 유우카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동시에 주변 학생들도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벼, 벼벼벼......벽치기......!?』
『특종이야, 크로노스에 보내면 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머어머...... 선생님, 대담하시네요♡』
『......어, 어수선한 틈을 타서 야한 짓을 하려고 했지! 사형이야, 사형!』
그런 웅성거림은 SNS를 통해 곧바로 퍼졌고, 키보토스 전역에 「눈이 나쁜 상태의 선생님은 거리감이 버그나 있어 위험하다.」라는 정보가 확산됐다.
그리고 짠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안경점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나의 「렌즈 없는 1주일간 생활」 아니, 「맨눈으로 1주일간 생활」의 시작이다.
◇
"역시 안되는건가......."
맨눈 생활, 2일째.
혹시나 해서 엔지니어부에 안경을 만들 수 없는지 물었지만, 「아무래도 렌즈의 가공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은걸......」 라며 거절당하고 말았다.
외부 카메라를 통해 아로나와 프라나에게 앞을 보게 하고 샬레까지 가는 길을 걷는다.
싯딤의 상자를 몸 앞에 내밀고 걷는 모습은 마치 강시인가 뭔가 같았다.
"어머, 선생님. 기우로군요. ......괜찮으신가요?"
"음.......?"
그런 모습을 보다 못했는지,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들어본 목소리인데...... 누구였더라......
아마, 게헨나......?
조금 다가가서 복장을 보니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코는 알기 쉬워서 안심이네......"
"선생님, 지금 어디를 보고 저라고 판단하신 거죠?"
따, 딱히 옆가슴을 보고 판단한건 아닌데?
순간적으로 눈을 돌리는 바람에 들킨 거 같기도 하지만 신경쓰지 않고 화제를 바꾼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이렇게 밀레니엄 근처에 온 거야?"
"......어제, 정학중인 우리 학생이 습격 사건을 일으킨 것 같아서...... 그 대처 때문에."
아코의 옆에 있던 히나는――푹신푹신한 흰색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지긋지긋하다는 목소리로 가르쳐 주었다.
어제 사건이라고 하면, 아마 안경점 습격 사건일까.
게헨나에서 꽤 먼 거 같기도 하지만,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사건이 일어났구나, 하고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오늘도 히나는 힘내고 있고, 훌륭하네."
그렇게 말하며 히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푹신푹신한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에 전해져 왔다.
".......선생님?"
"미안미안. 잘 보이지 않으니 이렇게 손으로 확인하고 만지는 버릇이 생겨서 말이야."
"그래...... 딱히 상관없지만......"
히나는 조금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기쁜 거 같아서 그대로 한동안 쓰다듬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코에게서 원한이 담긴 시선이 느껴진다.
덧붙여, 이 광경은 몰래 사진을 찍던 크로노스 보도부에 의해, 『도깨비 선도부장, 드디어 함락인가!? 학생에게 선생님의 마수가 다가온다.』라는 제목으로 히나의 조금 붉어진 얼굴과 함께 확산되고 있었다.
......이후 들은 바로는, 이 타이밍에 안경점 습격 사건에 이어, 근소하게 남아 있던 콘택트렌즈의 사재기도 발생했다고 한다. 유감.
◇
맨눈 생활, 3일째.
아로나의 도움을 받아 걷는 것도 조금 익숙해져, 안경이 망가지기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붉은겨울로 가서, 227호 특별반 교사로 향한다.
예전에 시구레가 「가끔은 노도카를 만나러 와줘.」라고 말해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마침 그 일정과 1주일간의 맨눈 생활이 겹쳐져 있었다.
시구레에게서 「힘들 거 같으면 노도카에겐 대신 사과할 테니 다른 날이라도 괜찮아.」라고 했지만 샬레에 있어도 서류 일이 전혀 진행되지 않아 예정대로 놀러가기로 했다.
227호 교사로 들어서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노도카가 달려온다.
조금 뒤에 시구레도 따라온다.
두 사람을 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니 미간에 주름이 잡혀 무서운 얼굴이 돼버렸지만, 노도카는 「그 눈빛도 멋있어요!」라며 어딘가 만족스러워했다.
노도카에게 이끌려 모닥불 근처로 향한다.
눈길에 차가워진 손발이 따스해지면서 살짝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숨 돌리자 노도카가 주머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낸다.
"선생님, 혹시 몰라서 이걸 만들어뒀어요!"
"자, 선생님. 손을 내밀어."
시구레의 지시에 따라 양손을 앞으로 내민다.
손바닥 위에 가벼운 무언가가 놓여졌다.
가는 막대 같은 플라스틱에 타원형이 무언가가 붙어있다.
양 끝의 막대는 『ㄷ』자 모양으로 펼칠 수 있고......
"이건...... 혹시 안경?"
"네, 선생님이 쓰시던 거랑 똑같은 모양이에요!"
"고마워...... 정말로 살았어......."
"선생님을 언제든지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노도카에게 받은 안경을 바로 써본다.
아아...... 귀와 콧등에 가해지는 무게가 반가워......
프레임 재질부터 코받침 각도까지 완벽하게 이전 안경과 같은 사양이다.
.......응?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서운데.
개인적인 일에만 사용했었는데, 언제 조사한걸까.......
......뭐, 그건 내버려두고.
안경을 써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걸 깨달았다.
".......이거 혹시 도수 없는거야?"
"......"
"......"
"저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수 없는 「패션안경」으로 만들어뒀던 걸 깜빡했어요......」
내가 지적한 순간 노도카는 무릎부터 무너져 내렸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는지 거의 무릎을 꿇은 모습이다.
"으으...... 선생님을 지켜보는 역할, 실격이에요......"
"노도카, 진정하자!? 애초에 지켜보는 역할이라는 게 뭐야!?"
침울해진 노도카를 위로하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묘하게 거리감을 가늠하기 어렵다.
굳이 아로나에게 지시를 받는 것도 모양새가 안좋기 때문에 더듬으며 노도카 쪽으로 다가간다.
떨어져서 보면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방바닥에 엎드려 있는 기묘한 광경으로 보였겠지.
그런 식으로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시구레가 어디선가 보틀을 3개 정도 가져왔다.
"자자, 진정하고, 노도카. 여기 물이라도 마시자?"
"시구레쨩, 고마워......"
"선생님도."
"고마워."
"괜찮아, 괜찮아. 자. 쭉쭉 들이켜."
시구레에게 건네받은 보틀을 기울인다.
삼키자마자 목에 타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코에서 독특한 냄새가 빠져나간다.
"케흑 케흑...... 이거....... 술......"
"진짜 안 보이는 구나. 라벨이 붙은 보틀을 줬는데."
"시구레쨩!?"
"어차피 오늘은 일 못하니까 술 정도는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말하고 시구레는 즐거운 듯이 깔깔 웃었다.
......설마 시구레도 마신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시구레 옆 보틀을 주워 냄새를 맡아봤지만 딱히 알코올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내 보틀만 술이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어때. 모처럼이니 오늘은 술 마시는 날로 하고 이제 여기서 자고 가지 않을래?"
"......미안해. 내일도 아침부터 약속이 있으니까 오늘은 저녁에 돌아가야 돼."
"뭐야~ 유감이네."
시구레는 아쉽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별다른 물고 늘어지는 기색 없이 이내 포기했다.
내가 남긴 술을 마시려는 실루엣이 보였기에 보틀을 집어든다.
제대로 뚜껑을 덮고 뺏기지 않도록 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
그러는 사이 노도카가 안경을 치우러 가고 시구레와 단둘이 남게 됐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왼쪽 옆에 앉은 시구레에게 말을 건넨다.
"일단 확인하겠는데, 노도카한테는 먹이지 않았지?"
"그건 물론이지. 노도카는 미성년자니까."
".......일단 시구레도 미성년자인데?"
"그렇게 딱딱한 건 신경 안 써."
"하아....... 술은 안 마셨으면 하지만, 마신다면 적어도 내 눈이 닿는 범위에서 해줘."
"네~ 선처할게."
"그런데 이야기를 바꿔서, 시구레는 말야......"
"뭐?"
"......혹시나 하는거지만, 내가 오기 전부터 『렌즈에 도수가 없다』는 거, 눈치채고 있었지?"
"글쎄...... 어떠려나?"
시구레는 그렇게 말하고 즐거운 듯이 웃었다.
◇
맨눈 생활, 4일째.
트리니티에서 용무를 마친 뒤, 샬레로 돌아가려다 미식연구회에 유괴되고 말았다.
하루나가 말하길,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라면, 다른 오감이 날카로워져 있을 터. 보다 미각이 예민해진 상태야말로 미식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라는 얘기였다.
그대로 여러 포장마차에 끌려다니다가 샬레로 돌아올 무렵에는 해가 저물어 버렸다.
지친 몸으로 샬레 휴게실 문을 연다.
즐거웠지만, 잘 보이지 않는 다는 건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쌓이는구나.
오늘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하니까, 잠깐 소파에서 잠이라도 잘까.......
그렇게 생각하고 소파 쪽으로 무거운 몸을 끌고 갔더니 그곳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하아, 이제야 돌아오셨나요."
".......이로하지?"
"저 외에 다른 사람에게 휴게실 열쇠를 주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지 않을까요?"
이로하에게는, 게헨나의 비밀 휴식공간을 알려준 대신 샬레 휴게실의 스페어 키를 건네줬었다.
집무실 열쇠는 일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도 줬지만 휴게실 열쇠는 따로 줄 이유도 없어 주지 않고 있다.
......뭐, 어떻게든 들어오고 싶은 학생은 지붕 밑을 지나거나 해킹하거나 해서 억지로 들어오기도 하니까.
와카모라든가, 미야코라든가, 코타마라든가.
"많이 피곤하신 거 같은데....... 무릎베개라도 하시겠어요?"
"괜찮아!?"
".......농담할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죠. 잊고 있었어요."
이로하는 이런이런, 하는 모습으로 책을 덮더니 무릎 위를 가볍게 정리했다.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제가 한 말이니 오늘만큼은 특별히 오셔도 괜찮아요."
살짝 망설였지만, 차려진 밥상을 먹지 않으면 어쩌고라면서, 마음을 다잡고 무릎 위에 머리를 얹었다.
이로하의 다리는 냉방으로 차가워져 조금 서늘했다.
이로하의 작은 손이 재우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노노미와는 또 다른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모습이 왠지 긴장하게 된다.
긴장을 풀기 위해 무릎베개를 했는데도 오히려 눈이 떠져 잠을 잘 수 없을 거 같았다.
어딘가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느끼며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데, 이로하에게도 그게 전해졌는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잠이 안 올 거 같으면 눈을 감고 누워 주시겠어요?"
"낙서 같은 건 하지 마?"
"......하아, 저를 몇 살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농담을 하려고 했는데, 어이없다는 시선을 하게 만들어버렸다.
얌전히 눈을 감고 반듯이 눕는다.
이로하의 허벅지를 뒤통수로 느꼈다.
그대로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는데, 옷이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 모양이다.
그리고,
――찰칵
갑작스러운 셔터 소리에 눈을 뜨니 이로하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의 무릎에서 자고 있는 사진...... 만마전이 선생님을 구슬린 증거로 충분하도 생각하시지 않나요?"
"......이로하?"
"......"
"......"
"......뭐, 농담입니다. 무릎을 베고 있으니 이 정도 장난은 봐 주세요."
이로하는 화면을 이쪽에 보여줬지만 당연히 흐려서 보이지 않는다.
지우라고 했지만, 「내키면 지울게요.」 라며 회피해 버렸다.
무릎베개 자체는 아비도스에서도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 딱히 드문 건 아니지만......
쓸데없는 말을 하면 귀찮을 거 같아서 이로하에게는 조용히 하기로 했다.
모처럼 드물게 이로하 쪽에서 무릎을 베개 해줬으니, 찬물을 끼얹는 말은 가능한 한 하고 싶지 않다.
"자, 다시 눈을 감아주세요. .......이번에는 장난이 아니니까요."
이로하의 말을 믿고 눈을 감는다.
작은 손으로 이마쪽 머리를 쓸어올렸다.
코 주변에 무언가 놓이고 양쪽 귀에 무언가 걸린다.
"......이제 눈 뜨셔도 돼요."
이로하의 목소리에 눈을 뜨니――거기에는 이로하가 있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눈앞에 이로하가 있었던 것이다.
흐릿한 이로하가 아니라 의기양양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이로하가.
"보인다, 어째서......!?"
벽 거울 쪽을 보니 내 얼굴에는 안경이 걸려 있었다.
어제 노도카에게 건네 받은 안경과 같은, 항상 쓰는 타입의 안경이다.
게다가 렌즈까지 딱 맞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전에 휴식 공간에서 낮잠 잤을 때, 그대로 잊어버리셨기 때문에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아, 잊어버린 줄 알았던 스페어 안경!"
"하아...... 역시 까먹고 있었군요."
이로하의 말에 의하면, 비밀 휴식 공간에서 낮잠 잘 때 안경을 창가에 놓고 그대로 갔다고 한다.
확실히 그날은 수리 맡긴 안경을 받고...... 그러고 보니 그 뒤에 휴식 공간에 들렀던 거 같다.
아니, 들렀었지...... 지금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어.
받으러 가는 날은 렌즈였기 때문에, 특별한 위화감도 없이 돌아가 버린 모양이다.
안경을 받으러 갔을 텐데, 휴식이 메인이 되어 본래 목적을 잊어 버리다니.......
"......뭐, 저도 눈치채지 못해서 우연히 이부키가 찾아준 것 뿐입니다만."
"그렇구나. 이부키한테도 고맙다고 해야겠네."
이후, 이로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경을 찾은 안도감도 있어서인지 다시 졸음이 찾아왔다.
무릎베개의 긴장감도 아직 있지만, 그것을 웃돌 정도의 졸음이다.
꾸벅꾸벅 졸면서 반쯤 잠에 빠진 상태로 이로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화제는 아까 사진 얘기가 됐다.
"......그런데 아까 사진 말입니다만."
"응."
"이 사진을 지우는 대신 선생님에게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응....... 어?"
이로하의 얼굴이 다가온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다.
붉고 긴 머리가 내 뺨에 닿았다.
이로하의 숨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귓가에 「대신, 선생님의――」 라고 속삭이던 그때였다.
"니 하 하~! 눈이 안 보여서 한가할 선생님을 위해서 제가 만나러 왔어....... 요?"
문을 열고 아무것도 모르는 코유키가 들어왔다.
자기 위해서 전자식 잠금장치를 해뒀을 텐데...... 뭐, 코유키니까.......
그대로 굳은 채 잠시 말없이 셋이서 바라본다.
"......"
"......"
"......"
"어, 으음..... 저, 키스하는 건 못 봤으니까요, 부디 계속하시길....."
코유키는 눈을 이리저리 헤매더니 그렇게 말하고 슬그머니 뒷걸음질친다.
이로하는 내 머리를 살짝 내려놓더니 일어서서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하아...... 귀찮지만, 보여버렸으니 지우는 수밖에 없네요......"
"우아아아아아아아~~!? 어째서~~~!!?"
그대로 이로하는 코유키를 뒤쫓아 나가버렸다.
복도쪽에서 코유키의 비명소리와 권총 발포음이 들렸다.
나도 오해를 풀기 위해 쫓아가려고 했지만......
오늘은 피곤해서 이제 움직이지 못할 거 같아.
마음속으로 코유키에게 사과하며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소파에서 그대로 자기로 했다.
◇
맨눈 생활 종료 3일 후.
그때부터 쌓였던 서류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오늘은 사야의 연구실에 일――아니, 놀러왔다.
붉은겨울은 겨우 갈 수 있었지만 산해경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걱정이었기에 사야에게 부탁해 예정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어."
"과연, 그런 상태라면 사람이 많은 산해경에 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정이 어긋난 것도 어쩔 수 없지."
"대신 뭐 해줬으면 하는 거 없어?"
"음, 그러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좋아."
"으음...... 아, 맞다! 나님이 만든 『눈이 좋아지는 안약』의 피험체가 되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사양하겠습니다."
"뭐든지 좋다고 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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