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8자
#키쿄
원문 ななよ廻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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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손바닥을 내밀면 붉게 물든 벚꽃잎 한 장이 떨어진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벚꽃이 만발이다.
"풍류구나."
솔직한 감상이 새어나온다.
보기만 해도 무거웠던 어깨가 풀리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음양부와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샬레의 사무실이 있는 D.U.와 달리 고즈넉한 목조 단층 건물이 즐비하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벚꽃 아래 길을 걸으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시간은 좀 남았나."
배를 쓰다듬는다. 조금 배가 고팠다.
하지만 다음 일정을 생각하면 당장 배를 채우기도 그렇고 어중간한 빈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이다.
어딘가에 얼굴이라도 비출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하늘색의 무언가가 시야 끝에서 『기다리사와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봄바람이라기엔 거칠게 폭풍처럼 지나갔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고개를 돌리지만 그때는 이미 좁쌀처럼 작아지고 이윽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은 것은 보라색의 유카리가 떠오르는 꽃향기 뿐.
한동안 넋을 잃고 굳어 버렸다.
"... 그래. 조정실에 가자."
아무렇지도 않게 목적지를 정하고 무거워진 발을 내딛었다.
■■
낡은 문을 열고 『안녕』이라고 외쳤다. 백화요란이 이용하는 조정실의 부지에 발을 들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러 사정으로 거의 쓰지 않았던 저택은 곳곳이 헐어 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건물의 벽면.
그곳에서 왠지 노후된 것과는 다른 듯한 때린 흔적을 발견한다.
"... 다음에 고쳐야겠네."
누가 그랬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렴풋이 짐작이 가지만 더 생각나지 않도록 추후 작업 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하고 서둘러 저택을 돌아본다.
완연히 물든 벚꽃으로 가득한 정원.
정원이라기엔 곳곳에 총알 자국이 있어 살벌하다.
훈련이라도 했던 걸까.
여러 생각을 하며 누군가 없을까 마당에서 안을 들여다보다가 걸음을 멈췄다.
올라가려던 툇마루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
백화요란의 상징인 하늘색 하오리. 그 위 병적으로 하얀 피부의 소녀가 누워 있었다.
"키쿄?"
쫑긋, 검은 고양이 귀가 움직인다.
다급한 마음에 키쿄에게 달려갔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자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얇은 입술 사이로 평온한 숨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안색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소 보는 키쿄와 다르지 않았다. 저번에 쓰러졌을 때에 비하면 훨씬 낫다.
"그냥 잠들었나."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성실한 것은 좋지만 지나친 경향이 있는 키쿄는 저번에도 상태가 나빠져 쓰러진 적이 있다.
남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에 서툴러 혼자서 떠안고 그대로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인지 눈을 뗄 수 없고 이런 상황을 만나면 내가 더 당황하게 된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머리맡에 둥근 쟁반에 놓인 찻잔이 있었다.
아무래도 휴식 중 그대로 잠든 모양이다. 꽤 오래 잠들었는지 찻잔에 남은 차 위에서 연분홍빛 나룻배가 몇 척 떠다니고 있었다.
그냥 잠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맥이 빠졌다.
"후우..." 힘을 빼듯 숨을 내쉬고 키쿄 옆에 앉는다. 삐걱거리는 소리에 부서질까봐 움찔했지만 툇마루는 내 무게를 견디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불안함에 두근거리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겨우 몸이 안정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린다. 고개를 들면 따스한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떴다.
"일광욕하기 좋은 날씨네."
봄 느낌이 물씬 나는 한산한 분위기다.
그만 잠들어 버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마침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든 키쿄가 있는 툇마루에 햇빛이 들었다.
고양이는 따뜻한 장소를 좋아한다는데 그녀도 마찬가지일까.
숨소리에 맞춰 두 개의 꼬리가 나풀나풀 흔들려서 귀엽다.
긴 속눈썹 위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로 쓰다듬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만진다.
"열은... 없네."
전해진 것은 산 속 옹달샘과 같은 차가움이었다.
체온이 낮다. 이것도 반대로 걱정이지만 몸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확인할 수 있어서 안도했다.
"수고했어."
늘 짓는 단호한 표정을 사라지고 나이대에 걸맞는 소녀의 잠든 얼굴이다.
어린 일면까지 엿볼 수 있어 왠지 기뻤다.
언제까지나 보고싶었지만 잠에서 깨워버리면 미안한 일이다.
봄날씨라고는 해도 바람이 불면 서늘하다.
겉옷을 벗어 키쿄에게 덮어주었다. 그대로 소리없이 떠나려 하는 순간.
"──잠자는 여자의 몸을 함부로 만지다니, 선생님으로서 그래도 되는 거야?"
"?!"
느닷없이 들린 차가운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뒤를 돌아보면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가늘게 뜬 키쿄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깨, 깨어 있었어?"
"방금 일어났어."
사실일까. "후후." 장난스럽게 웃는 키쿄를 봐도 진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아무렴 좋다.
놀라서 굳은 어깨를 푼다. 평소 피로 때문인지 어깨를 만지면 뻣뻣하고 목을 돌리면 삐걱댄다. 나도 나이가 든 걸까.
"깨워서 미안해. 돌아갈게."
"왜?"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셔츠 밑단을 잡아당겨졌다. 그녀의 손 안에 셔츠가 구겨진 채 꽉 잡혀 있었다.
"앉아."
"괜찮아?"
쉬는 중에 괜찮은가 생각했지만 키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옷자락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돌아갈 수 없을 듯 하다.
"괜찮으니까."라는 그녀의 말에 떠나기 어려운 압박을 느껴 다시 앉는다.
"응."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족한 듯 손을 뗐다.
"..."
"..."
무슨 일이 있나 싶었지만 그런 것도 아닌 듯 하다.
얇은 입술을 굳게 닫힌 채다.
양지바른 곳에 누워 뒹굴거리며 일어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그저 옆에 앉아서 비처럼 떨어지는 벚꽃잎을 계속 바라봤다.
"뭔가 이야기라도 해봐."
"어떤 걸?"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도 막막하다.
조용히 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자유분방한 고양이가 이야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이야기... 이야기...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흐른다. 도무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은 음양부에서 업무를 보고 왔어."
업무라기엔 옆길로 새는 경우가 많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넘어진 치세를 껴안은 카호가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끝났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중,
"글러먹은 남자."
왜인지 가시 돋힌 목소리로 한 소리 들었다.
이야기하라고 해서 말한 것 뿐인데.
키쿄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와서 일 얘기를 하는 남편이라니, 아내가 헤어지다고 할 걸."
"그렇구나. 그건 곤란한데."
"곤란하겠지?"
"응."
다행히 아직 아내가 없어 헤어지자는 통보는 받지 않았지만 확실히 곤란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곤란하다.
"언젠가 생길 아내를 위해서라도 재미있는 이야기 한 두 가지는 할 줄 알아야겠네."
"도와줄게."
돕는다 해도 어떻게 해야 할까.
쳐다보면 재촉하는 듯 흑요석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
재촉한다고 해도 뭐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뭐든 좋아."
뭐든 좋다고 하기엔 아까 이미 불만스럽지 않았나.
라고 말할 뻔 했지만 참았다. 말해도 기분이 언짢아지거나 적당히 흘려넘길 뿐이겠지.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심 끝에 떠오른 것은 대화 주제라기보다는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몸은 괜찮아?"
뒹굴거린 채 나를 올려다보던 검은 눈동자가 감긴다. 얼굴을 바닥에 묻고 "응." 이라고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잘 하고 있어?"
"괜찮아."
"곤란한 일은?"
"없어."
"필요하면 언제든지 상담해 줄게."
"알아."
왠지 질의응답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업무 이야기보다는 나은 것 같다.
뒹굴거리며 돌아오는 대답은 시큰둥하다.
그래도 대답은 제대로 해주고 있으니 계속 물어보는 것이 맞는 듯 하다.
"... 응."
몇 번 정도 이런 시덥잖은 대화를 주고받다보니 키쿄의 목소리에서 매가리가 없어져 간다.
곧바로 흩어질 정도의 목소리.
날씨 탓도 있겠지만 역시 피곤해서 그럴 것이다. 졸려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시계를 보면 다음 약속 시간이 가깝다.
딱 좋은 때다.
트리니티로 향하기에도, 키쿄와 헤어지기에도.
일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준다. 시선 끝에서 그녀의 귀가 반응하듯 쫑긋거렸다.
"그럼."
슬슬 돌아갈게.
라고 말하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저기, 키쿄?"
스르륵, 미끄러지듯 키쿄가 무릎 위에 올라온다.
고양이가 안겨오듯 상체를 내 무릎 위에 올리고 아무 말도 없이 움직일 생각도 없다.
"슬슬 가야 하는데."
말해봐도 꼬리가 흔들거리며 내 뺨을 간지럽힐 뿐이다.
제멋대로인 고양이 그 자체다.
"키쿄..."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지만 움직이진 않는다.
어떡하지.
정말 곤란하다.
하지만 나의 당혹감과는 다르게 햇살은 변함없이 따스하게 우리 둘을 비추고 있었다.
■■■■
"선생님, 늦었어."
"미안해."
디저트를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던 카즈사는 트리니티 교문 앞에서 이를 드러내며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하악질을 해올 듯 했다.
양손을 모으고 사과하는 나에게 한동안 뾰루퉁하던 카즈사는 결국 "어쩔 수 없네."라며 용서해 주었... 을 터인데.
"저... 카즈사?"
눈살을 찌푸리고 수상한 낌새를 느낀 듯 코끝을 가까이 한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양손을 들고 저항하지 않았지만 카즈사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양이 냄새."
눈썹을 치켜들고 냄새를 특히나 신경쓰는 카즈사.
"응...? 고양이랑 논 적은 없는데."
코를 킁킁거렸지만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별 일 아닐거라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녀는 꽤나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같이 있는 동안 가끔씩 코를 작게 킁킁거리다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몸에 대고 머리와 귀를 마구 문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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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쿄귀여워




키쿄와 카즈사 너무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