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0자
#노아 #유우카
원문 つ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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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학원이 모여있는 학원도시연방 ‘키보토스’. 그 도시의 유일하다시피 한 초법적 기관 ‘연방수사부 샬레’에 근무하는 나는 매일매일 방대한 일과 서류 확인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음, 평화롭네."
어느 날 오후 샬레의 사무실에 혼잣말이 울린다. 오늘은 평소보다 업무량도 적고, 새로 들어오는 일도 적어서 간만에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일만 하며 보냈기 때문인지 일이 없으면 무엇을 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뭔가 해야만 안정을 느끼게 된 것일까.
"바깥 구경이나 할까..."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아 일단 바깥 경치를 보며 심신의 안정을 찾기로 했다. 사무실 한 쪽에 펼쳐진 유리벽. 중간중간 기둥이 있긴 하지만 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키보토스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경치가 참 좋네."
"고소공포증은 극복하신 건가요?"
"음, 극복한 건 아니지만 여기서 보는 건 괜찮아. 그나저나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전혀 몰랐어."
"1시 23분 40초,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실 때 부터요."
혼자인 줄 알았던 방에 울리는 또다른 목소리, 우시오 노아다.
"그, 그래... 제대로 기록하고 있구나."
"네, 기록은 제 본업이니까요♪"
"그나저나 오늘은 당번이 없을 텐데... 무슨 일이야?"
"당번이 아니면 오면 안되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은 나도 일이 별로 없어. 세미나는 안 바빠?"
"오늘은 일이 적어서 평소보다 빨리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문제 없죠?"
"노아도 학생인데 친구들과 놀러 다닌다거나 하진 않아?"
"그런 얘기였나요? 그치만 그렇게 치면 저는 이미 놀러 온 거에요♪"
"...여기로 놀러 온다니 노아도 참 별나네."
"그런가요?"
"그러고보니 궁금한 게, 여기서 보는 건 괜찮은 이유가 있나요?"
"응? 아아. 키보토스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결국 샬레로 모이잖아? 그리고 대부분은 내가 처리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 경치는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 같거든."
"그런가요... 선생님은 정말 사람 좋네요."
"그런가? 일이고 평범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키보토스에선 자주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온다. 그것들을 잘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보는 활기찬 키보토스의 경치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일은 힘들지만 이런 보람도 있는 것이다.
"자, 나는 조금 이따가 남은 서류들을 정리할 건데 노아는 어쩔래?"
"글쎄요. 그러면 저는 그 동안 이걸 쓰도록 할까요♪"
그렇게 말하며 노아가 꺼낸 것은 ‘선생님 기록’이라고 적힌 수첩 같았다.
"선생님... 기록...?"
"네♪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것, 곤란할 때의 행동이나 말버릇, 거짓말할 때의 반응 등 전부 여기에 적어놓았습니다♪"
"그건 거의 사용설명서 아니야...?"
"후훗, 어떨까요? 그럼 선생님 일 시작하셔야죠♪"
노아가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별 생각 없었지만, 설마 나도 모르는 버릇이나 행동까지 들킬 줄은 몰랐다. 그 메모장이 다른 학생의 손에 들어간다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노아라면 가능할지도..."
"네? 부르셨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어디 보자…"
아무리 남은 일거리가 적다고 해도 방심하면 본말전도다. 정신 바싹 차리고 일을 시작한다.
"음? 이건..."
"밀레니엄에서 온 보고서네."
보고서를 보니 아무래도 수리비 청구에 대한 내용으로 보였다.
"새로운 동력원의 연구를 하던 중 오조작에 의한 기계 폭발... 청구 금액은..."
"그... 뭐랄까...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그렇지만 이런 청구액은 처음 보는데... 대체 뭘 부순 걸까..."
대저택 몇 채를 지을 수준의 금액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아파온다. 노아가 소속된 밀레니엄의 보고서이기 때문인지, 노아 본인이 한 일은 아니지만 조금 죄책감이 있는 듯 했다.
"다음은..."
"선생님? 왜 그러시나요?"
"아, 이거 말이야."
"이건 탄환 청구서네요.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니, 이거 좀 귀찮거든. 노아는 탄환 값이 얼만지 기억해?"
"탄환 가격은... 본 적이 없네요. 세미나에서 담당하는 부분은 아니라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 그러면 아래층으로 갈까?"
탄환 청구서. 같은 탄환이라고 해도 형상이나 모델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 어느정도 기억하지만 정확해야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료실에 들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료실... 저도 들어가도 되나요?"
"음, 안된다는 규칙도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 말투는 조금 불안한데요."
"뭐 여차하면 내 권한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선생님의 권한은 이럴 때 쓰는 용도인가요?"
"뭐 나도 잘 모르겠지만 별로 쓰지도 않고... 우왓!"
덜컹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나가려는 순간 유우카가 나타나 순간적으로 옆으로 피했지만 균형을 잃고 노아쪽으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잠...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 어... 난 괜찮아..."
"후훗, 선생님은 의외로 대담하시네요?"
다치진 않았지만 노아 쪽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노아를 밀어 넘어뜨리는 듯한 형태로 넘어지고 말았다.
"앗, 이거는 그러니까 오해가!"
"선생님,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다고요...?"
"부끄러워하는게 아니라, 오해 살 만한 말은 하지 말아줄래?!"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얼른 일어나시죠?"
"아, 그, 그래."
"후훗, 장난이야 유우카♪ 놀리고 싶어서. 선생님도 죄송해요♪"
"노아...! 진짜! 전 몰라요!"
"잠... 유우카!!"
노아가 놀린 것을 알게 된 유우카는 부끄러움때문인지 분노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 화를 내며 가버렸다.
"하아... 이건 나중에 제대로 사과를 해야겠네..."
"후훗, 그래야겠네요. 저도 동행할게요."
정신을 차린 뒤 자료실에서 탄환 가격의 자료를 가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노아와 잡담하며 작업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이대로는 모처럼 시간을 내주는 노아에게 미안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끝내 노아와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럼 집중 좀 할게 노아.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노력하겠지만 때문에 반응을 제대로 못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억지로 나한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아니요. 이왕 온 김에, 끝까지 관찰하겠습니다."
"그, 그래."
그리고 나는 노아와의 시간을 위해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노아의 시점 ---
일할 때의 성실한 선생님의 옆모습이 좋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리고 지금 선생님의 얼굴이 딱 그 얼굴이다. 이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내가 이상한 걸까. 그렇다고 일에 집중하는 선생님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나는 방을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주위를 빙글빙글 둘러보니 얼마전까지 없던 것이 생긴 것을 깨달았다. 벽에 무언가 걸려있다. 자세히 보면 황륜대제 때 찍은 사진이었다. 유우카와의 투샷. 조금 전의 내가 봤다면 유우카를 놀릴 재료를 발견했다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 안에서 검은 무언가가 내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유우카와 둘이서는 찍었는데 나랑은 찍지 않았다. 왜? 아마 내가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불합리한 짜증은 가라앉질 않았다. 다시 한 번 선생님 쪽으로 돌아가 뒷모습을 바라본다. 만약 지금 내가 선생님의 일을 방해한다면 화낼까? 그보다도, 내가 있는데 왜 일을 우선시하는 걸까. 역시 내겐 매력이 없는 걸까. 그런 의미없는 생각을 빙빙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선생님 바로 뒤까지 와 있었다. 지금 뒤에서 껴안으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기뻐할까. 아니면 화낼까. 하지만 이미 내 몸은 내 생각보다도 빠르게 움직여 선생님의 목을 뒤에서 손으로 감고 있었다.
"노아?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그것보다 계속 일하셔야죠?"
"으음..."
선생님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역시 껴안는 건 아니었나. 불안한 감정이 커져간다.
"그래, 결정했어. 노아, 뒤돌아보게 잠시만 떨어져줄래?"
"뒤돌아보라니요?"
"기다려봐!"
"아, 네, 알겠습니다...?"
"좋아. 노아, 머리 좀 내밀어 볼래?"
"이, 이렇게요... 엣?"
내가 생각해도 얼빠진 목소리다. 그치만 어쩔 수 없어. 왜냐면 선생님이 지금 내 머리를 쓰다듬고 계시거든.
"어, 저기, 선생님?"
"응? 왜 그래?"
"아니요... 그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런 일을 하시는 건 본 적이 없어서 놀랐어요... 기록한 적도 없고요."
"그렇겠지. 이렇게 응석을 받아주는 건 처음이니까."
‘처음’이라는 단어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께 응석부리는 건 내가 처음이고, 여기엔 나밖에 없고, 유우카에게는 하지 않은... 그런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 넘쳐난다.
"괜찮아요? 저만 특별취급하셔도."
"괜찮지 않아? 노아는 특별하잖아."
"어... 에? 그, 그래요?"
특별. 다른 평범한 것들과는 다른, 일정한 선을 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 그 너머에 내가 있다는 것이 기뻤다. 조금 전의 검은 무언가는 선생님의 쓰다듬과 함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희미해지고 사라져간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는데.
"거기다 아까부터 쓸쓸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잖아."
"그, 그랬나요?"
"오, 노아의 눈이 흔들리는 걸 보다니 귀한 경험이네. 아무튼 학생을 제쳐놓고 일하는 것도 미안하고, 좀 더 얘기할까?"
"그치만 선생님 일이 남아있지 않나요?"
일은 언제나 남아있는거고, 지금은 눈 앞에 노아가 있으니까.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 따위보단 노아와 어울려주고 싶은 생각이야.
"..."
부끄러운 나머지 고개를 조금 숙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부끄러운 말을 술술 할 수 있는 걸까. 정말 교활한 사람이다. 나쁜 어른이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아니, 말하는 거다. 그치만 지금은 이 나쁜 어른에게 속고 싶어. 그냥 어리광 부리고 싶어.
"그럼 말씀하신대로 조금만 더 응석부려도 될까요?"
"아, 그런데 아까 엘리베이터에서의 일의 변명도 생각해야 하는데..."
"글쎄요... 어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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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샬레는 평소보다 시끌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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