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
돈지루(豚汁) - 일본식 돼지고기 된장국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폐공장.
창문이 덜컹덜컹 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낡은 천에 포근히 싸여 있었다.
여긴 요즘 바람이 많이 부니까.
「추, 춥네요... 불도 꺼지고, 남의 눈에 띄지도 않고 우리 이대로 얼어 죽는거네요...」
「히요리, 시끄러워....」
나를 사이에 두고 미사키와 히요리가 떨고 있다. 그럴 만도 한것이, 오늘은 유난히 춥다.
하지만 방한복도 난방기구도 없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린 손을 비비면서, 희미한 저항을 한다.
확실히 춥긴 하지만, 나는 조금 즐겁다. 사오리나 아즈사, 모두가 함께 있었을 때......
말 그대로 모여서 하룻밤을 보냈을 떄의 일이다. 그때도 추웠지만, 즐거웠다.
옛날을 떠올리며, 하얀 숨을 내쉰다. 가슴 속이 살짝 따듯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춥다.
그러자 폐공장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히요리는 나를 감싸 안듯이 안아주고, 미사키는 총을 들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겨눈다.
「아츠코~ 히요리~ 미사키~ 여기에 있는거야~!?」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 선생님이다.
미사키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목소리 톤을 주변 온도만큼이나 차갑게 만든다.
「근처에 누가 있어?」
「어? 음, 없는 것 같은데.」
「......들어와.」
잠시나마 내 집으로 초대받은 선생님은 특이하게도 뭔가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야 힘들었어, 여기저기 쓰이지 않는 폐공장들을 돌아다녔으니까.」
「그래서 선생님, 오늘은 무슨 일이야?」
미사키가 팔짱을 끼고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추위 때문인지 평소보다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는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일회용 손난로라도 하나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헤헤헤...」
히요리는 입가를 느슨하게 하고, 선생님에게 조르고 있다. 좋겠네, 조르기까지 하고.
선생님은 코웃음을 치고 우리를 바라본다.
「후후, 손난로보다 훨씬 좋은 거야.」
짐을 뒤적거리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우리에게 보이도록 물건을 들어 보였다.
「짜잔.」
냄비와 봉지에 담긴 식재료. 그리고 물과 기름, 가스레인지.
무슨 일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니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알려주신다.
「지금부터 따뜻한 걸 만들 거야!」
「와아.」
선생님이 뭔가를 만들어 줄 것 같다. 그래서 두 손을 들고 기뻐했다.
근데 반응을 하긴 했지만, 무엇을 만들어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따뜻한 음식이라... 무슨 요리야?」
「돈지루야. 추운 날에는 역시 이거니까.」
돈지루이라. 먹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선생님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 선생님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미사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 어떻게 우리를 찾은거야?」
「아, 확실히... 우리 모두 스마트폰 충전이 안 돼서 연락은 못드렸네요...」
그건 나도 궁금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선생님께도 말하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아무 힌트도 없이 선생님은 여기에 오셨다. 무언가 신기하다.
「아하하, 뭐 좀 그렇지.」
작업을 하면서도 볼을 긁는 제스처. 무언가 하셨겠지. 속임수에는 서툰 선생님이니까.
「슬슬 먹을수 있겠네~」
종이 그릇과 나무 젓가락을 나눠주는 선생님과. 받는 우리들.
그리고 그 그릇에 붓는 돈지루라는 이름의 좋은 향기가 나는 수프.
잔잔하게 종이 그릇에서 전해지는 요리의 열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해준다.
「예이, 돈지루 나왔습니다.」
김이 내 얼굴에 닿는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부드러운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젓가락을 들고 열의 중심부로 향한다.
얼굴을 내민 것은... 무. 김을 내면서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입으로 옮긴다. 꼭꼭 잘 씹어서, 무를 잘게 부순후 먹는다.
잘 씹어서 먹어야 한다고 사오리도 그랬으니까.
씹어갈 때마다 서서히 내 입안에 퍼진다, 이건....
맛있다. 정말로 맛있다.
고기, 당근, 버섯, 국물 모두 정말로 맛있다.
이 쫄깃쫄깃한 식감은 뭘까. 가만히 쳐다봐도, 잘 모르겠다.
「그건 우엉이야.」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것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다.
「그렇구나.」
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기쁨과 함께 씹는다.
오랜만에 먹는 식사라서 그런지, 정신없이 먹어 치운다.
마지막 남은 따뜻한 국물이 내 몸을 천천히 따뜻하게 데워주며 힐링을 해준다.
비워진 용기를 내려놓고, 문득 한숨. 버릇없다고 혼날 수 있지만.
배도 몸도 따끈따끈해질 수 있었으니까 좋다.
「으,으헤헤...... 이렇게 따뜻한 음식을 먹어도 되는 걸까요...!」
히요리는 평소처럼 울먹이며 돈지루을 엄청나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며칠 만에 먹는 밥으로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으니까.
선생님은 그런 우리에게 화내지 않고, 다 먹는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아츠코도 히요리도 리필 되니까.」
「어차피 또 추위에 얼어 죽는다면 여기서 배불리 먹은 다음에 죽을래요~!」
선생님에게 그릇을 내밀며 리필을 요청하는 히요리.
선생님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화내는 기색 없이 받아서 새로운 재료들을 부어준다.
이 사람은 착하다.
우리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꾸짖은 후에는 다정하게 받아준다.
우리가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달려와서, 구해준다.
돈지루을 다시 먹지 않았는데도 가슴 속이 따뜻해진다.
「아츠코도. 리필할래?」
「응, 잘 먹겠습니다.」
새로 부어준 돈지루을 후후 불어가며 맛본다. 이번에는 천천히, 천천히,
오랜만에 먹는 고기를 조금식 씹어먹는다.
「미사카는 어때? 입맛에 맞으면 좋겠는데...」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의 선생님. 미사키는 정신없이 먹던 손을 수줍은 듯이 멈춘다.
「뭐어, 으응.... 맛있어...」
그 대답에 선생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미사키는 아쉬운듯이 돈지루을 떠먹는다.
「하지만 선생님, 요리할 수 있었구나.」
「그렇지.」
가슴을 치켜세우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줄 알았는데, 몸을 웅크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뺨을 긁적거린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재료를 손질해준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어.」
「친절한 사람도 있었구나.」
미사키의 반응에 선생님의 몸은 경직되고 기름이 다 떨어진 로봇처럼 움직인다.
「아-.... 응, 그렇지.」
갑자기 삐걱거리는 동작 앞에서, 우리는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만다.
한참을 굳어 있다가, 조급하다는 듯이 선생님이 입을 연다.
「게헨나의 아이가, 해준거지만.」
순간이지만 따뜻하던 공기가 차가워진다. 금기어를 입에 담았을 때의 그 느낌.
미사키도, 히요리도, 나도 선생님을 쳐다본다. 선생님은 어색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헤에.」
「우에에에.... 그, 그렇군요.」
「아, 아니, 정말 착한 아이라서 배고프다고 했더니 바로 준비해준거니까...!」
선생님은 조바심을 내며 손짓 발짓으로 무언가를 말한다.
......아, 그렇구나.
왜 황급히 변명같은 말을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선생님, 우리는 싫어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고마운걸.」
「허무한 세상에도 좋은 사람이 있구나... 감동했어요....」
「그래,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우리들의 말에 안도하는 표정으로 안도감을 감추지 않는 선생님.
「그렇구나...!」
알기 쉬우면서도, 안심하는 미소.
나도 덩달아 볼이 풀린다.
선생님은 친절하니까 아리우스의 과거라든지, 가르침이라던지 여러가지로 신경 써주신거구나.
우리를 생각하는 행동에 감사할 뿐이지, 화를 낼리가 없는데 말이다.
「그러면, 방한 용품과 밥과 물. 여기에 두고 갈게.」
언제든지 샬레와 와도 괜찮아! 라고 말하며 선생님은 짐을 등지고 돌아갈 준비를 한다.
정정스럽게 남겨둔 식료품들. 이것들이라면 당분간은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
「무슨 일이야? 아츠코.」
샬레로 돌아가려는 선생님에게 말을 건다.
뒤돌아보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탁한다.
「오늘 도와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응!」
돌아가는 길에 이번에 도움을 준 조력자에게 사후 연락.
「후우카, 오늘은 고마웠어. 갑자기 들이닥쳐서.」
『아니에요! 선생님이 부탁하신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요리로 곤란한 일이 생긴다면 역시 후우카. 그녀가 바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게다가 배고픈 아이가 있는데도 모른 척한다는 건 급식부의 명성에 걸맞지 않으니까요.』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후우카는 정말 착하다.
역시나 데리고 가는 건 문제가 더 많았기 때문에 사전준비만 부탁했다.
다들 착하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해서.
「후우카는 착하네.」
『후후,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훨씬 더 친절하신걸요.』
길을 걸어가면서 차가운 바람이 다리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학생을 찾으러 다니면서... 정말로.』
「하하,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가 있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아.」
순을 문지르며 웃는다. 춥지만 결코 힘들지는 않다.
학생들이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 추위를 날려줄 테니까.
『그러면, 선생님. 또 무슨 일 있으연 연락주세요.』
「응, 고마웠어.」
통화를 끊고 하얀 숨을 내쉬며 찬 하늘 위에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본다.
자, 한 명 더. 고맙다고 말을 전해줘야 할 아이가 한 명 더 남아있으니까.
......오늘은 춥구나.
역의 플랫폼, 다 쓴 총과 함께 등을 웅크린다. 그럼에도 추위를 막을 수는 없다.
쌀쌀함을 느끼면서도 지금의 나는 이에 저항할 방법이 없다.
나는 그저 떨어져가는 체온을 문지르며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견딜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오래 견디기 위한 명상이라도 하면서 휴식을 취하려다가 그만둔다.
내 앞에 선 사람의 그림자.
「사오리. 여기 있었구나.」
「......선생.」
하얀 입김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선생. 나 이상으로 체온이 떨어진 얼굴이다.
「아츠코하고 애들을 무사히 만날 수 있었어.」
「...그렇구나.」
모자를 다시 깊게 눌러 쓴다. 이 사람의 웃는 얼굴을 직시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끄럽다.
선생이 직접적으로, 그것도 위치를 파악해 달라는 부탁. 공주하고 애들을 볼 면족이 없는 내게 말이다.
아마 모두에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래도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돌리고 만다.
내 옆에 주저않아, 나와 같은 눈높이가 된 선생. 플랫폼의 바닥이라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사오리의 추측이 없었다면 지금도 찾고 있었을지도 몰라. 고마워.」
「...그렇게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지만.」
「아냐. 다들 기뻐했으니까. 사오리 덕분이야.」
「...별거 아니다.」
몇 번을 맛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감사의 말과 부드러운 미소는.
직시하기엔 너무 빛나는 미소의 소유자는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숨어있는 루트의 법칙, 거기서 도출할 수 있는 위치. 알려준 사오리에게 감사하다고.
......모두에게 위치를 알려준 것은 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얼굴을 볼 자격도 없는 나의 도움이 있었다는게 알려지면...
결고 좋은 생각은 아니었을거다.
하지만 선생은 내게 먼저 묻고, 의지해 주었다. 힘을 빌려달라고, 너의 힘이 필요하다고.
선생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아주 올곧은 사람이다. 입에 담는 말도, 바라보는 세상도.
「그리고 부탁을 했더라고.」
부탁... 분명 스쿼드의 멤버로부터겠지.
하지만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내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고 했는데...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분노라면, 그렇다면 나도 달게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지만....
「고맙다고 전해달래.」
그러나 그건 빗나간 예상일 뿐이었다.
따뜻한 말. 내 체온에 이끌려 싸늘한 마음을 녹이는 듯한 감사의 마음.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 앞에 있어야 할 선생의 목소리가 아닌 그녀, 즉 아츠코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조금, 가슴의 답답함이 풀렸다. 그런 느낌이다. 후, 하고 깊이 숨을 내쉰다.
무언가 채워진 기분이다.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건 내가 주는 답례야.」
「이것은...」
선생은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컵 모양의 물건과 병을 꺼낸다.
포장을 풀고, 병의 내용물을 붓는다. 컵에서는 김과 함께 은은한 향기가, 낯선 향기가 난다.
그 용기에는 『돈지루』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돈지루, 도대체 무슨 국일까? 돈, 돈...?
머릿속으로 일치하는 단어를 찾아보는 나. 하지만 해당될 만한 조각을 찾지는 못했다.
「역시 나 혼자서 손수 만드는건 어려웠으니까... 편의점 물건이라서 미안해.」
눈앞에 내민 것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돈지루』。
「아니.... 감사하지.」
돌이켜보면 지난 며칠 동안 따뜻한 음식을 먹지 못했다.
선생의 호의에 감사하며, 『돈지루』를 받아들었다.
혀가 데이지 않도록 식힌 후 천천히 입에 넣는다.
적당한 온도가 된 국물을 조심스럽게 마셔보니, 속을 중심으로 서서히 뜨거워진다.
아아, 기분이 좋다.... 진정되는 따뜻함이다.
오랜만의 식사, 무엇보다 동료를 도와주고 감사를 받는다... 나 라는 존재가 채워진다.
「......따뜻하다.」
좋은 것을, 나는 또 한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선생, 이 정체불명의 물체는 뭐지. 검은색인데. 먹어도 괜찮은건가.」
「우엉이라고 해서 영양이 있는 거야.」
「우,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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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아

고침

따흐흐흐흣
따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