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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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7411545
원문: 8,561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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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카빰! 아리스와 케이가 샬레에 나타났습니다!」
샬레 집무실의 중후한 문이 힘차게 열림과 동시에, 봄날의 햇살처럼 밝은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게임개발부의 교복을 입은 자그마한 소녀――
텐도 아리스가 양쪽 문을 활짝 열고 기운차게 뛰어 들어왔다.
「……아리스. 선생님을 만나서 기쁜 건 알겠습니다만,
실내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고 조용히 들어가라고
방금 엘리베이터 안에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왜 실행에 옮기지 않는 건가요」
아리스의 등 뒤에서 어휴,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타난 것은
그녀와 판박이인 외모에 순백의 긴 머리를 흔드는 소녀―― 텐도 케이였다.
한때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의 힘을 휘두르기 위한 '열쇠'로서 만들어진 그녀였으나,
지금은 아리스와 같은 밀레니엄 교복을 입고 특이현상수사부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아리스의 '보호자'로서 키보토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하하, 어서 와 아리스, 케이. 오늘은 두 사람의 샬레 당번 날이지. 기다리고 있었어.」
집무 책상 너머에서 서류 업무를 멈춘 선생님이 부드러운 미소로 맞이한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아리스의 눈동자가 파앗 하고 문자 그대로 별처럼 반짝였고,
그녀는 일직선으로 선생님을 향해 달려 나갔다.
「선생님! 아리스는 선생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 HP와 MP가 전부 회복되었습니다! 세이브 포인트인 여관과 같은 효과입니다!」
다다닷,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온 아리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생님이 앉아 있는 의자 옆으로 파고들어, 그대로 선생님의 팔에 꼬박 매달렸다.
「오옷. 아리스는 오늘도 기운차네.」
선생님은 익숙한 손길로 자신에게 매달려오는 아리스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흑발을 쓰다듬어 주자, 아리스는 "에헤헤……" 하며 고양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기쁜 듯이 선생님의 가슴팍에 뺨을 부비부비 문질렀다.
―――하지만. 그 너무나도 무방비하고 밀착도가 지나치게 높은 스킨십을 뒤에서 지켜보던 케이의 미간에는 빡, 하고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아, 아리스! 대체 뭘 하는 겁니까! 선생님은 지금 중요한 퀘스트…… 가 아니라, 서류 업무 중입니다! 그렇게 딱 붙어 있어서는 선생님의 작업 효율이 현저히 저하됩니다! 떨어지세요!」
「무우... 아리스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파티 진형으로서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케이가 당황하며 아리스의 어깨를 잡고 선생님에게서 떼어내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떨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상, 강제로 떼어내기는 어려웠다.
「선생님은 아리스의 옆에 있어야 합니다. 아리스는 용사고 선생님은 마스코트니까요!
파티에 있는 것만으로 아리스의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패시브 스킬입니다!」
「응, 난 아리스의 마스코트니까 말이야. 그걸로 도움이 된다면 뭐든 좋아.」
「서, 선생님도 조금은 싫은 내색을 해주세요!
마스코트 취급받는데 자존심도 없으신 겁니까!?」
케이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스는 선생님의 팔에 매달린 채 싱글벙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게다가 아리스는 선생님 옆이 가장 마음 편합니다.
선생님의 냄새, 선생님의 체온, 선생님의 쓰담쓰담……
모든 것이 아리스를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리스는 선생님이 정말 좋습니다!」
아리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너무나도 순수하고, 직설적이며, 파괴력 발군의 말.
그것은 어떠한 계산이나 밀당도 없는, 순도 100%의 불순물 없는 '호의'라는 이름의 탄환이었다.
「아하하, 나도 아리스를 정말 좋아해. 언제나 솔직하고 착하구나.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네! 아리스도 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응응, 고마워 아리스.」
선생님과 아리스 사이에 오가는, 마치 사이좋은 부녀 같은 훈훈한 대화.
선생님 자신도 아리스의 말을 '부모나 오빠에 대한 가족애'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100점 만점의 미소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케이의 내면에서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경보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둔감 교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겁니까!?)'
케이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논리 회로를 풀가동하고 있었다.
분명 지금의 아리스가 선생님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품는 무조건적인 친애나,
굳게 신뢰하는 파티 멤버를 향한 'Like'에 가까울 것이다.
아리스 스스로도 그 말이 의미하는 '무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케이는 알고 있다.
아리스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학습 능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못 했던 그녀가 똥겜…… 아니,
'테일즈 사가 크로니클' 같은 RPG를 통해 이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정서'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그녀가 만약.
이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따뜻한 감정'의 정체가 가족애나 동료 의식 같은 게 아니라,
한 명의 여성으로서 한 명의 남성에게 향하는 'Love'라고 자각해 버린다면.
'(아리스의 사고는 기본적으로 '용사'라는 역할극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용사는 목표를 향해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나아가죠…….
즉, 만약 그녀가 '선생님의 히로인'이라는 직업으로 클래스 체인지 해버린다면……)'
케이의 뇌내에서 끔찍한 시뮬레이션 영상이 재생된다.
'빰빠카빰! 아리스는 선생님의 정실 부인으로 전직했습니다!'
'다른 학생 여러분? 아쉽지만 선생님의 옆자리는 아리스의 고정 슬롯입니다! 방해한다면 빛의 검으로 쓸어버리겠습니다!'
'선생님의 스케줄, 식사, 수면, 그리고 호적까지! 전부 아리스가 관리하겠습니다!'
'(――아,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키보토스 전역을 휘말리게 할 피비린내 나는 정실 전쟁이 발발하고 맙니다!!
아리스가 마음만 먹으면 선생님을 샬레에서 납치해 폐허 깊숙한 곳에 감금하는 것조차 식은 죽 먹기니까요!!)'
케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최악의 배드 엔딩을 떨쳐냈다.
아리스는 무구하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한없이 무구하기에,
선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녀가 진심으로 '선생님을 독점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가 과연 키보토스에 몇 명이나 있을까.
「……아, 아리스! 아무튼 떨어지세요! 선생님의 팔에 피가 안 통하지 않습니까!」
「무우... 케이는 잔소리 많은 NPC 같습니다. 선생님, 아리스 무겁습니까? 방해되나요?」
「아니, 그렇지 않아. 아리스는 깃털처럼 가벼우니까. 하지만 슬슬 당번 업무도 도와줄래?」
「네! 아리스는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합니다! 당번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에는 순순히 따르며, 아리스는 파앗 하고 얌전히 팔에서 떨어졌다.
그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합니다'라는 대사조차 케이의 위벽을 찌릿찌릿 갉아먹기엔 충분했다.
'('뭐든지 합니다'…… 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가요. 만약 선생님이
게마트리아 같은 나쁜 어른이라서 아리스에게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지금의 아리스라면 웃으며 실행할지도 모릅니다……
뭐, 선생님에 한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천지가 개벽해도 없겠지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자신의 터무니없는 망상에 케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도 선생님 책상 반대편에 서서 처리되지 않은 서류 더미를 끌어당겼다.
「……선생님. 아리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너무 그녀를 응석받이로 만들지 마세요.
아리스는 아직 인간 사회의 '거리감'이라는 개념 학습이 불완전하니까요.」
「그럴까? 난 아리스의 그런 솔직한 점이 참 좋던데. 물론 케이의 성실하고 꼼꼼한 점도 늘 의지하고 있어.」
「윽……! 무, 무슨……」
기습적으로 날아온 '의지하고 있다'는 말과 다정하게 미소 짓는 선생님의 얼굴.
그 순간, 케이의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살짝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저, 저는 QA 담당으로서 샬레의 업무 진행에 버그가 없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을 뿐입니다!
선생님 개인을 응석받이로 만들 의도는 단 1비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하하, 알고 있어. 그래도 언제나 고마워, 케이. 늘 감사하고 있어.」
「아, 알고 계신다면 됐습니다…… 자, 어서 서류 확인이나 진행하세요!」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케이는 엄청난 속도로 서류 분류를 시작했다.
―――아리스의 무자각한 호의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케이지만,
사실 케이 자신도 선생님에 대해 상당한 '무거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리스가 선생님에게 딱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보호자로서의 걱정과는 별개로 가슴 깊은 곳이 콕콕 쑤시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질투'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본인은 절대 부정하겠지만.
'(……나도 사실은…… 선생님 옆에서 저렇게……. 아니요! 저는 왕녀의 시녀이자 게임개발부의 프로듀서! ……저런 어린애 같은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자신의 사고 회로에 혼입된 노이즈를 필사적으로 차단하며, 케이는 무심하게 서류에 인감을 쾅쾅 찍어 눌렀다.
◇◇◇◇◇◇
몇 시간 후.
아리스와 케이의 경이로운 작업 효율 덕분에, 산더미 같던 서류 업무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후우, 끝났다! 둘 다 정말 고마워. 큰 도움이 됐어.
아, 맞다. 선물 받은 조각 케이크가 있는데 먹을래?」
「빰빠카빰! 퀘스트 클리어입니다! 보상으로 경험치와 디저트를 획득했습니다!」
「……네. 상상했던 것보다 32% 정도 빨리 끝났군요.
이걸로 조금은 쉴 시간을 낼 수 있을 겁니다. 휴게실에서 최소 2시간의 수면을 권장할게요.」
「응, 그렇게 하도록 할까. ……아, 그래도 그전에 두 사람한테 차라도 한 잔 타 줄게.
찬장에 나기사한테 받은 고급 홍차가 있었을 테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 쪽으로 향했다.
집무실에 남겨진 것은 아리스와 케이 두 사람뿐이었다.
아리스는 집무 책상 옆에 있는 손님용 소파에 다이브하듯 푹 파묻혔다.
그리고 천장의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케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아리스.」
케이는 선생님의 책상 주변에 굴러다니는 종이 뭉치나 에너지 드링크 빈 캔을 치우며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사실 최근 아리스의 시스템에 무언가 버그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버그…… 말입니까?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건가요?」
「아니요,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이 큥, 하고 울립니다.」
「……네?」
케이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선생님이 아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정말 좋아해'라고 말해주면……
가슴 속이 무척 뜨거워집니다.」
「…………」
「게다가 선생님이 다른 학생…… 예를 들어 유우카나 노아 선배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왠지 이렇게 몽클거리고…… 콕콕 쑤십니다.
HP가 줄어든 것도 아닌데 마치 디버프에 걸린 것처럼 괴로워집니다.」
아리스는 가슴팍에 조심스레 손을 얹으며 정말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이는 아리스보다 똑똑하니까 알고 있을 겁니다. 이 '따끈따끈'하고 가끔 '콕콕' 쑤시는 버그는 대체 무슨 이름의 상태 이상입니까?」
―――스윽.
케이의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어, 어쩌면 좋죠……)'
케이의 뇌내 경보가 최대 음량으로 울려 퍼진다.
틀림없다. 이것은 아까 우려했던 '무자각한 호의'가 드디어 '명확한 감정'으로서 언어화되려는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아리스가 품고 있는 그 몽클한 감정.
그것은 명백한 '독점욕'이자 '질투'이며――― 그리고 '사랑'이다.
아리스는 지금 케이라는 사전을 빌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 하고 있다.
만약 여기서 케이가 "그건 '사랑'이라는 감정이에요, 아리스"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면.
'(아,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돼요! 지금의 아리스에게 '사랑'이라는 확실한 개념을 부여해 버린다면,
그녀는 특유의 행동력과 압도적인 피지컬로 즉시 선생님을 함락하러 들 겁니다!!
선생님을 향한 어프로치가 게임 RTA 같은 엄청난 속도와 물리력으로 전개되고 말 거예요!)'
선생님의 걷잡을 수 없는 정조 위기. 키보토스의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
케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선생님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는 은밀하고도 소중한 마음이,
아리스라는 최강의 라이벌에 의해 산산조각 분쇄되어 버린다.
「케이? 왜 그러십니까? 프리징되었습니다!」
「핫!? 아, 아니요! 프리징 같은 거 아니에요! 연산에 리소스를 조금 할당했을 뿐입니다!」
케이는 쾅! 하고 괜히 큰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 아리스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아, 아리스! 당신의 그 증상의 정체에 대해 제 데이터베이스가 완벽한 해답을 내놓았습니다!」
「역시 케이입니다! 아리스의 상태 이상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리스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케이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격렬한 동요를 숨기고 극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새빨간 거짓말인 엉터리 이론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 그것은…… 바로! '용사로서의 공명 반응'입니다!!」
「……공명, 반응……?」
「그, 그렇습니다! 아리스는 용사죠?
그리고 선생님은 이 키보토스에서 많은 학생을 이끌고 평화를 지키는 위대한 '인도자'입니다!
즉, 아리스의 코어가 뜨거워지는 것은 선생님이라는 거대한 선의 에너지에
용사의 영혼이 격렬하게 공명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오오……!! 과연!!」
「그리고 선생님이 다른 학생과 이야기할 때 콕콕 쑤시는 것은…… 그게, 그것은!
'자신 이외의 파티 멤버에게 경험치가 분배되는 것에 대한 경고 알림 메시지' 입니다!!」
케이 스스로도 내뱉으면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IT 용어와 게임 용어를 엉망진창으로 이어 붙인 것뿐인 지리멸렬한 궤변이다.
보통 학생이라면 "하? 장난해?" 하고 코웃음 치며 끝날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세계를 게임의 문법으로 이해하는' 텐도 아리스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케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앞뒤가 맞습니다!」
「그, 그렇겠죠!? 그러니까 아리스, 당신은 지금까지처럼 훌륭한 '용사'로서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서포트하면 되는 겁니다!
이상하게 이성으로 의식하거나 과도한 어프로치를 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네! 아리스,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용사의 사명을 다하라는 증거였군요!」
아리스는 파앗 하고 표정을 밝게 하며 당당하게 승리 포즈를 취했다.
케이는 안도한 나머지 푹 주저앉을 뻔한 무릎을 덜덜 떨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어떻게든 최악의 클래스 체인지――― 얀데레화는 막았다.
이걸로 남모르게 키보토스의 얄팍한 평화는 지켜진 것이다.
「……오래 기다렸지. 케이크랑 차 가져왔어~」
절묘한 타이밍에 선생님이 쟁반에 찻잔과 조각 케이크를 얹고 돌아왔다.
향긋하고 따뜻한 홍차 향이 집무실에 퍼진다.
「와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리스, 차를 마시고 MP를 회복하겠습니다!」
「하하하, 많이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마셔. 케이도 수고했어.」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소파에 앉은 아리스 옆에 선생님이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리스는 찻잔을 들고 곧장 "후우, 후우" 입김을 불어 홍차를 식히며 기쁜 듯이 홀짝거리고 있다.
그 평화로운 옆얼굴은 조금 전의 '사랑'의 예감 따위는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평소의 천진난만한 아리스 그 자체였다.
'(……이걸로 일단 한시름 놨군요. ……하지만)'
케이는 자신의 찻잔을 손에 든 채, 문득 옆에서 아리스에게 다정하게 미소 짓는 선생님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밤샘 업무의 피로가 짙게 배어 있지만, 학생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한없이 다정하고 끝없이 달콤하다.
늘 저런 얼굴을 마주하고, 저렇게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아리스 같은 순백의 무구한 존재가 언제까지나 '가족애'나 '용사의 공명'이라는
허술한 변명으로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제 얄팍한 속임수 따위, 그저 임시방편적인 패치 수정에 불과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아리스는 자신의 감정에 새겨진 '진정한 이름'을 깨닫는 날이 오겠죠…….
그때 저렇게 너무나도 둔감한 어른은 대체 어떻게 되어버릴까요……)'
상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아리스가 진심을 내면 선생님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절대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
「응? 왜 그래, 케이 쨩?」
케이는 선생님의 반대쪽 옆―― 아리스가 앉아 있지 않은 쪽 빈자리에 살며시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찻잔을 양손으로 꼭 든 채 조금 고개를 숙이고 중얼중얼 읊조렸다.
「케이 쨩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정말, 너무 무방비합니다.
아리스의 말을 그저 어린애의 실없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곧이곧대로 듣다가는,
언젠가 단단히 큰코다칠 겁니다.」
「엣? 아리스가 뭐 위험한 거라도 만졌어?」
「……아니요. 딱히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하지만……」
케이는 슬쩍 옆에서 게임기를 꺼내 들고 신나게 놀기 시작한 아리스를 곁눈질했다.
그리고 자신과 선생님의 어깨가 겨우 몇 센티미터 닿을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몰래 몸을 바짝 붙였다.
「……아리스뿐만이 아닙니다. 저도 선생님 옆의 '슬롯'을 그렇게 쉽게 누구에게 내어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케, 케이?」
「선생님은 본인의 위기관리 능력이 절망적으로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옆에서 엄격하게 스케줄과…… 그, 보안을 계속 밀착 관리해야만 하는 겁니다.」
얼굴을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붉히며 부끄러운 듯 시선을 회피하면서도.
그래도 선생님의 옷 소매 끝자락을 작은 손가락으로 꽉 쥐었다.
「……알겠습니까. 제가 '열쇠'로서 선생님이라는 가장 중요한 리소스를 철저히 보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절대 제 관리하에서 도망치지 마세요.」
그것은 아리스의 무자각한 무게와는 결이 달랐다.
명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계산했음에도, 끝내 억누르지 못하고 새어 나와 버린 케이 나름의 지독한 '독점욕'이었다.
「……아하하. 케이는 정말 듬직한 엄마 같네. 게임개발부의 군기반장 엄마였던 걸까?」
「윽……! 어, 엄마가 아닙니다!! 저는, 저는 선생님이……!!」
「아! 선생님, 케이! 이 레이드 보스 공략 좀 도와주십쇼! 파티 총력전입니다!」
「윽~!! 아 정말, 아리스! 지금 무척 중요한 타이밍이었는데! 이리 내보세요!」
「그럼 나도 한숨 푹 자기 전에 오랜만에 같이 놀아볼까…… 후훗.」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빛의 용사, 왼쪽에 순백의 열쇠.
시끌벅적하면서도 따뜻한 시간이 평화롭게 흘러간다.
무자각한 용사의 브레이크 없는 어택과, 자각한 열쇠의 고요하지만 치열한 견제.
게임개발부에서 온 이 사랑스러운 자객들에게 끼인 선생님의 평온한 나날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단 하나 확실한 것은, 텐도 케이의 남모를 고민은 앞으로도 꺾임 없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점뿐이다.
「하아…… 언제부터 제가 아리스와 선생님의 뒤치다꺼리 담당이 된 걸까요……」
「아하하, 케이는 정말 든든하네. 아리스 말대로 마치 내 전용 사기 장비 같아.」
「서, 선생님까지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이 카오스한 상황을 합리적으로 수습했을 뿐이라……!」
「응응, 다 알고 있어. 언제나 고마워, 케이.」
선생님의 다정한 미소와 함께 머리로 부드러운 손바닥이 내려앉았다.
쓰다듬어지는 따스한 감촉에 케이의 뾰족했던 눈매가 사르르 미세하게 처진다.
'(……정말이지. 이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폭.탄의 안전핀을 무방비하게 뽑고 다니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요.)'
무자각하게 무거운 사랑을 끝없이 퍼붓는 빛의 용사와, 그 애정에 한없이 무방비하게 응하는 둔감한 어른.
이 두 사람의 관계성이 언젠가 한계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을 때, 과연 자신은 그것을 온전히 막아낼 수 있을까.
아니―――.
'(……만약 정말로 그때가 오면, 제가 먼저 선생님을 빼돌려 키보토스의 끝까지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군요.
네, 그게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겠네요. 사랑의 도피로 선생님과 단둘이……
그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습니다. 만약을 위해 도주용 짐을 미리 챙겨둘까요.)'
「……케이? 멍하니 왜 그래?」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쓰다듬는 손이 멈췄어요, 선생님.」
「어, 아, 응…… 오늘 케이, 왠지 평소보다 엄청 솔직하네……?」
―――아리스의 얀데레화를 누구보다 우려하고 있었으나, 어느덧 자기 자신이 가장 무겁고 치밀한 '독점'의 최적해를 도출해 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 귀여운 모순을 케이 본인만은 아직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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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짤도 소설도 다 케이강점기인듯
딴 애들 맛있는게 업서

댓글 21
온 세상이 케이구나

시발 둘이 같이 선생 먹으면 되잖아
뭐합니까 케이
아리스의 얀데레화 진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