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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핫산) 히나가 미카와 샬레에서 마주쳐 버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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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준 17,268자

원본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8633874

모음집

* 에덴조약 편 종결 이후 약간의 시간이 흐른 시점

히나가 미카와 샬레에서 마주쳐 버린 이야기

연방수사부 '샬레'의 집무실은 평온한 오후의 햇살에 감싸여 있었다.

평소라면 각 학원에서 온 서류나 결재를 기다리는 전자 파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끊임없이 울리는 단말기 알림 소리에 쫓기는 전장 같은 공간이지만, 오늘은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살랑, 하고. 양지바른 곳 같은, 어딘지 모르게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향기가 감돈다. 내 맞은편 소파에는 게헨나 학원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가 앉아 있었다.

"……응. 이 자료 체크는 이걸로 끝. ……선생님, 그쪽에 넣어 둬."

"고마워, 히나. 정말 큰 도움이 돼. 히나가 당번인 날은 업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마무리되네."

"……별로. 난 사무 처리의 연장으로 하고 있을 뿐이야. 선생님의 업무 요령이 너무 안 좋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을 뿐이고."

히나는 외면하며 조금 빠른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머리에 있는, 왕관처럼 뒤틀린 칠흑 같은 뿔이 작게 흔들린다.

말과는 반대로, 그 보랏빛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웠고, 희미한 안도의 빛을 띠고 있었다.

게헨나 학원이라는 혼돈의 도가니에서 홀로 치안 유지의 중책을 짊어진 그녀에게, 이 샬레에서의 당번 업무는 묘한 이야기지만 일종의 '휴식'이 되고 있다.

만마전의 불합리한 괴롭힘도 없고, 온천개발부나 미식연구회의 폭발음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내 옆에서 서류를 훑어보는 것뿐인 조용한 시간은, 그녀의 닳아버린 신경을 치유하는 몇 안 되는 수단인 것이다.

"일단 오늘 급한 건 끝났으니까 조금 쉴까? 커피 내릴게."

"……응. 부탁해."

히나는 작게 숨을 내뱉고 펜을 내려놓으며 서류를 겹친다. 평소의 팽팽하게 긴장된 자세가 풀리고, 나잇대에 맞는 소녀다운 무방비한 모습이 된다. 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내 앞에서뿐이다.

내가 커피메이커를 세팅하고 있자, 히나가 툭 하고 중얼거렸다.

"……조용하네. 여기."

"그러게. 오늘은 다른 손님도 없고 느긋하게 있을 수 있어. ……미안해. 당번인 날 정도는 푹 쉬게 해주고 싶은데 말이야."

내가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말을 건네자, 히나는 커피메이커에서 풍기는 향기에 눈을 가늘게 뜨며 그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하면 금방 끝나. 게다가……"

소파에서 아주 조금 상체를 일으킨 히나가 이쪽을 향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왕관 같은 거대하고 칠흑 같은 헤일로가 약간 흔들린다.

"게헨나의 집무실에서 만마전 녀석들이 일으킨 시시한 사건 보고서를 읽어야 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작업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 ……게다가 여기라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히나는 그렇게 말하고 내가 내린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듯 쥐었다. 컵 가장자리에 입을 대고 아주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맛있어. 아코가 내리는 커피와는 딴판이야."

"히나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다. 맞다, 다과도 있으니까 같이 먹자."

내가 책상 서랍에서 어제 선물로 받은 쿠키 상자를 꺼내자 히나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녀는 '키보토스 최강의 일각'으로 두려움의 대상인 존재지만, 내 앞에서 보여주는 이런 민낯은 나잇대에 맞는 17세 소녀 그 자체였다.

"……응,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선생님이랑 같이 쉬는 건…… 싫어하지 않으니까."

히나가 쿠키로 손을 뻗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철컥!

노크 소리도 없이 집무실의 중후한 문이 활기차고 난폭하게 열렸다.

"안녕 선생님, 근처에 왔다가 들렀어! 간식으로 가져온 롤케이크도…… 어라?"

쾌활하고 화사하며, 그리고 조금은 막무가내인 목소리.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은 트리니티 종합학원 '티파티'의 미소노 미카였다.

분홍색 머리카락에 별을 흩뿌린 듯한 눈동자. 등에는 순백의 천사 날개.

미카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지만, 그 시선이 소파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손님'을 포착한 순간.

――찌릿.

글자 그대로 공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났다.

미카의 얼굴에서 표정이란 표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동공이 슥 수축하고, 별의 광채를 머금고 있던 눈동자가 심해처럼 어둡고 차가운 색으로 가라앉는다.

미카의 시선 끝. 히나 또한 손에 들고 있던 커피컵을 받침대에 내려놓고 천천히 미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히나의 표정에는 놀람도 분노도 없다. 그저 지극히 사무적인, 혹은 무관심하다고도 볼 수 있는 잔잔한 눈으로 미카를 마주 보고 있다.

"…………"

"…………"

무언. 완전한 침묵. 두 사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 0도의 장벽이 세워진 것 같았다.

"아, 그게…… 미카. 왔구나."

나는 서둘러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시도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들리는지 마는지, 미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히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하 게헨나의 선도부장쨩이 왜 샬레에 있는 걸까?"

"……샬레의 당번 업무의 일환. 스케줄에 근거한 정당한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난 오늘의 당번이니까. 너처럼 약속도 없이 마음대로 들어오는 학생과는 달라."

히나는 의자에 앉은 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미카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곁에서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랑 선생님 사이에 약속 같은 딱딱한 게 필요할 리 없잖아. 꼭 당번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을 만나러 올 수도 있는 거 아냐? 나랑 선생님은 그런 세세한 규칙 같은 건 상관없는 '특별한 사이'니까. 그치, 선생님?"

"어, 음, 뭐 샬레는 누가 언제 와도 환영하는 곳이니까. 하하하……"

"그치만 선생님도 힘들겠다. 이렇게 딱딱하고 농담도 안 통할 것 같은 애랑 하루 종일 같이 있다니, 숨이 막히지 않아?"

미카가 내 팔에 꼬옥 매달리며 치켜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미, 미카……?"

"나라면 선생님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을 텐데. 선생님이 지치면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어리광도 받아줄 텐데 말야─ ……그치, 선생님?"

미카의 말마디마다 명확한 '견제'가 섞여 있다. 자신이 선생님과 더 친하다, 자신이 선생님을 더 잘 치유해 줄 수 있다. 그런 서열 정리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히나 쪽을 슥 쳐다봤다.

"…………"

히나의 표정 근육은 미동조차 없다. 그저 그 보랏빛 눈동자가 미카가 매달려 있는 내 팔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다. 그게 오히려 무섭다.

"어, 저기. 둘 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카도 차라도 마실래? 마침 휴식 중이었어."

나는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분위기를 완화해 보려고 농담조로 웃어 보였다.

"봐, 봐봐, 게헨나와 트리니티의 수뇌부가 샬레에서 다과회라니, 역사적인 순간 아니야? 에덴조약의 평화의 상징 같기도 하고……"

""…………""

완벽한 무시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공간 속으로 내 목소리는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훌륭할 정도로 썰렁했다. 농담이 농담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미카는 히나의 대각선에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가져온 롤케이크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선생님, 이거 같이 먹자. 트리니티의 한정 디저트인데, 엄청 줄 서서 샀단 말이야. ……아, 미안? 게헨나 부장쨩 몫은 안 샀네. 설마 여기 있을 줄은 몰랐거든. 게다가 게헨나 사람들은 이런 섬세한 과자보다 더 불량식품 같은 걸 좋아하잖아?"

명백한 도발. 이쯤 되면 히나도 화를 내겠지── 싶어 나는 식은땀을 흘렸지만, 히나는 그저 조용히 눈을 깜빡이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신경 쓰지 마. 난 단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아직 남은 자료 확인이 있어. ……선생님, 거기 펜 좀 줄래?"

"아, 응. 여기."

히나는 미카의 도발을 말 그대로 '완전히 무시'했다. 화를 내는 것도, 반박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자신과는 상관없는 소음'으로 처리하고 나와의 업무를 재개한 것이다.

이 '무관심'한 대응이 미카에게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치명타였다. 미카의 이마에 찌릿, 하고 핏대가 서는 것이 보였다.

미소노 미카는 좋든 싫든 감정의 생물이다. 자신이 내뱉은 감정에는 좋든 싫든 어떠한 반응을 원한다. 그것이 적의든 동정이든 말이다.

하지만 소라사키 히나라는 소녀는 트리니티에 대해서도, 미카 개인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헨나와 트리니티의 갈등 따위, 매일 격무에 쫓기는 그녀에게는 '고려하는 것조차 낭비인 노이즈'에 불과한 것이다.

(……짜증 나.)

미카의 속마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겁을 먹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무시한다. 그 여유 부리는 듯이 미카의 눈에 비치는 태도가 미카의 신경을 긁는다.

"……흐응. 일 욕심이 참 많네, 선도부장님은. 게헨나 치안이 최악인 건 윗사람이 책상 앞에만 앉아 있어서 그런 거 아냐? 좀 더 밖으로 나가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조만간 뿔에 곰팡이 피겠어?"

미카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히나를 내려다보듯 말했다. 히나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만마전의 무능함에 비하면 내 데스크워크가 훨씬 게헨나의 치안 유지에 공헌하고 있어. 그리고 뿔에 곰팡이가 핀다는 생물학적 근거는 없어. ……조금 더 이치에 맞는 비아냥을 해 주지 않을래."

"하아? 이치에 맞게라니…… 나 바보라서 어려운 건 잘 몰라─ 그치만 말야, 게헨나 사람들은 항상 사고만 쳐서 선생님한테 폐를 끼치잖아? 우리 트리니티는 평화와 조화를 사랑하는 학원이라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짓은 안 하는데 말이지."

("아니, 에덴조약 때나 보충수업부 때나…… 아니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태클을 걸었지만, 입을 열었다간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아 침묵을 지켰다.

미카의 '에덴조약'을 모른 척하는 발언. 하지만 그 에덴조약이라는 단어는 이 자리에서 최악의 지뢰였다.

히나는 에덴조약 조인식 회장에서 아리우스의 순항 미사일 공격을 직격으로 받았다. 그리고 선생님인 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감싸주었다.

미카는 미사일 공격의 직접적인 실행범은 아니다. 하지만 아리우스를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그 지옥을 불러일으킨 원인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미카 자신도 그 사실에 깊은 부채감을 느끼고 있을 터다. 그렇기에 그 부채감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마는 것이다.

히나의 손이 딱 멈췄다. 천천히 서류에서 고개를 든다. 그 보랏빛 눈동자가 처음으로 미카의 눈을 똑바로 꿰뚫었다.

"평화와 조화, 라."

히나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선생님이 배에 총을 맞고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날의 일을 '평화와 조화'라고 부른다면, 트리니티의 사전은 참 독특하게 개정되어 있나 보네."

그 순간 미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정곡을 찔렸다. 아니, 정곡 이상의, 절대로 건드려지고 싶지 않은 상처를 히나는 일절 감정을 섞지 않고 그저 '사실'로서 들이댄 것이다.

"윽……! 그, 그건……!"

미카의 입술이 떨린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자신의 어리석음은 미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아프다.

히나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귀찮아."

그 한마디였다. 히나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평소의 입버릇. 다툴 생각도 없고, 더 이상 이 불모한 대화를 이어가는 건 시간 낭비라는 순수한 피로에서 우러나온 한숨.

하지만 지금의 미카에게 그 '귀찮아'라는 말은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경시하고 깔보았다는 결정적인 '선전포고'로 들렸다.

"……하?"

미카의 목소리가 땅밑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변했다.

"……나랑 대화하는 게 귀찮다고 하네. 헤에. 게헨나의 선도부장님은 참 잘나셨나 봐. ……근데 말야, 선생님한테 가장 소중한 건 나 같은 '약한 아이'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미카는 휙 표정을 바꾸고 이번에는 나를 향해 달콤한 목소리를 냈다.

"있지, 선생님? 나 게헨나의 뿔 달린 애들처럼 강해서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는 애가 아니니까…….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망가져 버린단 말이야 선생님도 나 돌봐주는 거 좋아하잖아?"

"어, 아, 응. 미카는 걱정되기도 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하자 미카는 승리했다는 듯이 히나를 슥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나, 선생님한테 '공주님'이라고 불린 적도 있거든. 선생님에게 소중한 공주님. 당신은? 선생님한테 그런 달콤한 말 들어본 적 있어? ……앗, 미안? 당신 같이 딱딱한 애는 그런 달콤한 말 들어본 적 없겠지"

"미, 미카…… 이제 그만 좀……"

"나 게헨나의 뿔 달린 애들이랑 다르게 난폭하지도 않고 약한 애니까. ……매일 선생님이 머리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야 선생님도 나 지켜준다고 말해줬고. 그치, 선생님?"

서열 정리다. 명확한 여자로서의, 그리고 '선생님의 특별한 학생'으로서의 서열 정리와 미카의 혼신을 다한 거만한 표정. 이쯤 되면 히나도 말문이 막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라사키 히나라는 소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 대한 '감정'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히나는 펜을 정중히 내려놓고 일절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오늘의 날씨'를 알리는 듯한 담담한 목소리로 미카를 향해 내뱉었다.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다정하니까. 그런 말도 숨 쉬듯이 할 수 있겠지."

히나는 찰나의 순간 나를 향해 아주 살짝 볼을 붉히더니, 다시 미카를 마주 보았다.

"아하, 질투? 좋아 좋아, 부러우면 그렇게 말하지 그래? 하지만 선생님은 나의──"

"난…… 선생님이랑 같이 잤는데."

"……하?"

미카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했다. 나도 정지했다.

"히, 히나!? 자, 잠깐만!? 말하는 방식이!!"

히나가 하는 말은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말을 저렇게 잘라버리면 그건 너무나 파괴력이 높았다.

"난 과로로 움직일 수 없게 됐을 때…… 선생님이 걱정해서 내 방까지 일부러 찾아와 줬어. 그리고 내 곁에서 계속 함께해 줬어. ……너는?"

히나의 냉철한 팩트 폭격. 그것은 미카의 '공주님'이라는 둥실둥실한 칭호를 압도적인 '사실'이라는 물리 대미지로 분쇄하는 일격이었다.

"가, 같이…… 잤어……? 내 방……!?"

미카의 눈동자에서 완전히 하이라이트가 소멸했다. 그녀의 등 뒤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칠흑 같은 오라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에, 거짓말. 선생님, 이 애랑…… 그런 거. 내 방에 왔을 때는 그런 거 안 해줬으면서……. 나보고 공주님이라고 해줬으면서……"

"선생님이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줘서 정말 안심하고 그대로 잠들었어.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선생님은 내 곁에 있어 줬어. 그게 뭐가 이상해?"

히나가 무표정인 채로 추가타를 날린다.

그녀는 천연으로 그러는 걸까, 아니면 계산하고 그러는 걸까. 평소의 합리주의자인 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미카에 대한 카운터로서 완벽하기 그지없는 '사실의 나열'이었다.

"……헤에. 그렇구나. 그랬구나. 선생님을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게헨나의 이런 여자 방에 혼자 갔구나……"

"……미소노 미카."

히나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 눈동자가 슥 날카롭게 가늘어진다.

"난 네가 선생님에게 소중한 학생이라는 건 이해하고 있어. ……그래서 그날 네가 일으킨 소동에 대해서도 난 선생님 앞에서 책망할 생각은 없었어."

히나의 말에 미카의 어깨가 움찔하고 튀어 올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에덴조약 조인식. 그 테러의 주모자는 아리우스였어. 하지만 그 아리우스를 끌어들인 건 너야."

히나의 목소리는 냉철한 사실 확인 톤이었다. 그날, 히나는 순항 미사일을 직격으로 맞으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 단신으로 아리우스 스쿼드와 싸워 중상을 입었다.

나는 총탄을 맞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미카는 직접 미사일을 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발단을 만든 것은 틀림없이 미카였다.

"난 그때의 상처 따위 아무래도 좋아. 게헨나의 선도부장으로서 싸우다 다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날 선생님은 죽을 뻔했어. 네 말대로 지켜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히나의 보랏빛 눈동자가 미카를 꿰뚫는다. 그것은 원망이나 증오가 아니다. 그저 순수한 '경계선'의 제시였다.

"네가 얼마나 선생님에게 사랑받든 그건 선생님의 자유야. 하지만 내가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그때 얼마나 많은 것을 짊어졌는지. ……네가 그걸 가볍게 비웃을 권리는 없을 텐데."

"…………윽."

미카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뇌리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리라. 사오리를 용서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 미카지만, 히나라는 '직접적인 피해자 중 한 명'에게 사실을 직면하게 되자 대꾸할 말이 없다.

공기가 완전히 고착되었다. 미카는 입술을 깨물며 히나를 노려보고 있지만, 아까와 같은 도발적인 말은 이제 나오지 않는다.

히나 또한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은 커피를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일어섰다.

"둘 다 거기까지만 해줬으면 좋겠어."

내 목소리에 두 사람이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다.

"히나. 미카를 나무라지 마. 그때 일은 이미 끝난 일이고, 미카도 많이 상처받고 반성하며 지금을 살아가려 하고 있어. 히나가 나를 지켜준 것, 정말 감사해. 하지만 그걸로 미카를 상처 입히는 건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야."

"……미안해. 조금 말이 심했어."

히나는 순순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녀도 머리에 피가 올랐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리라.

"미카도. 히나를 도발하는 건 그만둬. 히나는 게헨나의 부장으로서 나기사처럼 매일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어. 오늘 여기 온 것도 내 업무를 도와주기 위해서야. 둘 다 나에게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공주님…… 아니, 소중한 학생이니까."

"……선생님."

미카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봤다. 그녀의 허세가 무너지고 본래의 연약한 부분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 커피 다시 내릴게. 미카도 같이 어때? 트리니티의 홍차는 없지만 맛있는 원두가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미카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윽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으응. 오늘은 갈게. 미안해, 선생님. 이상한 소리 해서."

미카는 히나 쪽을 전혀 보지 않고 홱 등을 돌렸다.

"그럼 안녕, 선생님. 또 올게."

그 말만 남기고 미카는 서둘러 집무실을 나갔다. 탁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한 방에 울려 퍼진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

"……히나. 미안해, 기분 상하게 해서."

"선생님이 사과할 일이 아니야. 내가 어른스럽지 못했어. ……그저 선생님이 그 애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걸 보고 조금…… 화가 났을 뿐이야."

히나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선생님 곁에 있으면 안심돼.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싶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솔직하게 '머리 쓰다듬어 줘'라고는 말 못 하니까."

히나의 말에 나는 아차 싶었다.

미카에 대한 분노의 근저에 있었던 것은 에덴조약 테러뿐만이 아니었다. 미카가 히나는 할 수 없는 '솔직하게 어리광 부리기'를 당당하게 해내는 것에 대한 일종의 질투나 조바심도 있었던 것이다.

"히나……"

나는 살며시 손을 뻗어 히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보랏빛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선, 생님……"

"말로 하지 않아도 난 히나의 마음, 알고 있다고 생각해. 히나는 히나의 방식대로 항상 나를 도와주고 있어. ……정말 고마워."

히나는 한동안 내 손길을 받고 있다가, 이윽고 작게, 정말 작게 등의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었다.

"……응. 조금만 더 이러고 있어 줘."

히나가 살짝 몸을 기울여 내 어깨에 툭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온기와 햇살 같은 부드러운 향기가 전해져 온다.

미소노 미카와 소라사키 히나.

트리니티의 마녀라고까지 불렸던 전 티파티 호스트와, 게헨나의 마왕이라 불리는 선도부장.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날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이지 않는 평행선.

그래도 그녀들이 품고 있는 고독이나 서투름은 어딘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히나와 미카의 샬레 대면 사건으로부터 일주일 후.

샬레 집무실 복도 앞, 트리니티 종합학원 학생인 미소노 미카는 가슴 앞에 귀여운 파스텔 핑크색 종이봉투를 품에 안은 채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오늘은 그녀의 당번 날이 아니다. 하지만 꼭 오늘 선생님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미카가 어젯밤 기숙사 주방을 빌려 악전고투 끝에 완성한 수제 롤케이크. 항상 나기사에게 본의 아니게 입에 처박히는 것과는 다른, 선생님만을 위해 당도를 조절하고 딸기를 듬뿍 사용한 자신작.

(선생님이 기뻐해 주려나……. 요즘 바빠 보였고 단것으로 치유해 줘야지)

"수고했어, 선생님!"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뛰어 들어가는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세 번 되새기고, 미카는 기세 좋게 문을 열어젖혔다.

"안녕! 선·생·님 놀러 왔……"

어…… 하고 미카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집무실의 주인인 선생님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넓은 책상 위에는 서류가 정연하게 쌓여 있어 주인의 부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방은 무인이 아니었다.

"…………"

손님용 가죽 소파. 그 한구석에 조그맣게 앉아 있는 작은 실루엣.

은색의 긴 머리카락. 머리 위에 떠 있는 중압감 있는 검은 왕관 같은 헤일로. 게헨나 학원 선도부 제복을 몸에 걸치고 손안의 두꺼운 보고서에 시선을 떨구고 있는 소녀.

게헨나 학원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다.

문 열리는 소리에 반응해 히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보랏빛 눈동자가 멍하니 서 있는 미카를 조용히 포착한다.

"……또 너구나."

툭 하고 히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낮고 평탄한 목소리가 집무실의 정적을 깼다.

그 한마디에 미카의 뇌리에 며칠 전의 '기억'이 선명하게 플래시백되었다.

일주일 전. 이 똑같은 방에서 미카는 히나와 마주쳤다.

미카는 선생님에 대한 독점욕과 게헨나에 대한 태생적인 혐오감 때문에 히나를 상대로 서열을 잡으려 경박한 도발을 반복했다.

그런 유치한 도발에 대한 히나의 카운터는 미카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냉혹했고, 또 치명적이었다.

(왜…… 왜 또 하필이면 이 애가……윽.)

미카는 종이봉투 손잡이를 꽉 쥐었다. 발길을 돌려 돌아가고 싶다. 그런 충동이 다리 근육에 달린다.

하지만 미카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치면 일주일 전과 똑같다. 선생님을 만나러 왔는데 게헨나 여자애한테 겁먹고 도망친 한심한 공주님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게다가 오늘이야말로 선생님에게 수제 케이크를 전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선생님은 자리에 없나 보네."

미카는 가능한 한 평소처럼 밝고 화사한 목소리를 가장해 말했다.

"방금 총학생회에 불려 가셔서 잠시 자리를 비우셨어. 곧 돌아오실 거야."

히나는 미카를 신경 쓰는 건지 손안의 보고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

"흐응. 그렇구나. 그럼 나도 기다려 볼까나"

"……그래."

미카는 히나가 앉아 있는 소파에서 가장 먼 방 반대편에 있는 원형 의자를 끌어당겨 털썩 앉았다.

히나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저 조용히 종이 뭉치를 계속 넘기고 있다.

"……"

"……"

침묵. 시계 초침이 새기는 소리와 에어컨의 미세한 가동음, 그리고 히나가 종이를 넘기는 바스락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숨이 막힌다. 미카에게 이 침묵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원래 미카는 수다스럽다. 티파티 호스트로서 애교를 부리고 누군가와 대화함으로써 자신의 페이스를 만들어왔다. 그렇기에 상대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 공간은 미카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뭐야 이 애는. 서류 같은 거 읽는 척하면서 분명 나 신경 쓰고 있겠지? ……정말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거야?)

미카는 슬쩍 히나를 관찰했다. 아담한 체구. 미카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작다. 저 가냘픈 몸 어디에 폭력적인 힘이 숨겨져 있는 걸까.

에덴 조약 때 미카는 직접 히나와 교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순항 미사일을 직격으로 맞고 빈사 상태의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괴물 같은 끈기로 아리우스의 습격을 물리치고 선생님을 데리고 퇴각했다는 사실.

미카가 가진 압도적인 피지컬과 파괴력이 '천부적인 재능'이라면, 히나가 가진 강함은 '무궁무진한 정신력과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귀엽지 않아. 정말이지 전혀 귀여운 구석이 없어.)

미카는 마음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선생님은 저런 무뚝뚝한 로봇 같은 애의 어디가 좋은 걸까. 선생님이 내린 커피를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며 그저 조용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수수하고 지루한 여자.

나라면 선생님을 더 웃게 해줄 수 있는데. 더 선생님한테 어리광 부리고 선생님을 두근거리게 해줄 수 있는데.

"……저기."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미카 쪽이었다.

"게헨나의 선도부장이나 되는 사람이 참 한가한가 보네. 선생님이 없는 방에서 얌전하게 집 지키기? 마치 충견 같아."

비아냥을 듬뿍 담은 말. 히나는 넘기려던 보고서에서 손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난 선생님에게 이 서류의 더블 체크를 부탁받았을 뿐이야. 선생님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합리적인 대기 시간. 갑자기 들이닥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너랑 같이 취급하지 마."

히나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없다. 그저 미카의 말에 담긴 '논리적인 모순'을 지적했을 뿐이라는 지극히 평탄한 대응. 그것이 미카에게는 견딜 수 없이 짜증 난다.

"……흐응. 고생이 많네. 게헨나는 치안도 최악인데 다른 학원의 선생님 수발까지 들어야 한다니. 네 밑에 있는 애들도 참 힘들겠다."

"아코 일행은 우수하니까 내가 몇 시간 자리를 비웠다고 선도위원회가 붕괴하는 일은 없어. 게다가 선생님 서포트는 나에게……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니까."

"업무, 라. 선생님 도와주는 걸 '업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너랑 선생님의 거리감을 알 것 같달까."

미카는 다리를 꼬고 살며시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말야, 선생님이랑 일 얘기 같은 거 안 해. 선생님이 쉴 수 있게 즐거운 이야기 하고, 같이 놀러 가고…… 그런 '프라이빗'한 시간을 공유하러 오는 거야. 너처럼 미간 찌푸리고 어려운 서류 같은 거 보고 있으면 선생님도 숨이 막혀버릴걸?"

서열 싸움. 일주일 전과 완전히 똑같은 구도다. 하지만 미카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이야말로 이 가증스러운 게헨나 여자의 페이스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히나는 가만히 미카를 응시했다. 그 보랏빛 눈동자가 미카의 말 뒤에 숨겨진 '조바심'을 분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히는지 어떤지는 선생님이 결정할 일이야."

히나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쉬고 있어'라고 말해주셨어. 내가 너무 무리하고 있으니까 쉬라고 하셨어. ……선생님은 나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해 주고 계셔.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윽……"

미카의 미소가 일그러진다.

히나의 말에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은 '나는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식의 들뜬 자신감이 아니다. '나는 선생님을 이해하고 있고, 선생님도 나를 이해해 주고 있다'는 정적이고 견고한 신뢰 관계에 근거한 자신감이다.

그것이 미카의 가슴을 콕콕 찌른다.

"……착한 척하기는."

미카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꾸며냈던 공주님의 미소가 벗겨지고, 삼백안 기미의 차갑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히나를 노려본다.

"선생님을 위해, 선생님의 업무를 위해…… 그런 거 다 핑계잖아? 사실은 너도 선생님 관심을 끌고 싶은 거 아냐?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싶어서 '착한 아이'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잖아."

"……"

"'선생님과 같이 잤다'느니 일부러 나 도발하려고 그런 소리 한 것도 그래. 네가 선생님을 독차지하고 싶으니까 나를 멀리하게 하려고 한 거지? ……결국 너도 나랑 똑같잖아. 선생님 관심 끌고 싶어서 안달 난 주제에."

미카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집무실의 공기를 갈랐다.

그것은 자신이 품고 있는 추악한 감정을 히나에게 투영한 화풀이에 불과했다. 미카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 터져 나온 감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히나는 손안의 보고서를 천천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똑바로 미카를 직시했다.

"……부정하지는 않아."

"에?"

히나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말에 미카는 허를 찔렸다.

"내가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어 한다는 것. 선생님이 나를 챙겨주길 바란다는 것. ……그건 사실이니까."

히나는 자신의 약함을 숨기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도 평범한 학생이니까. 귀찮은 일만 떠맡고 매일 세 시간밖에 못 자고……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그럴 때 선생님이 다정하게 대해주면 어리광 부리고 싶어져. 선생님을 독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어."

히나의 눈동자가 아주 약간 흔들렸다. 그것은 평소 '마왕'이라 불리는 선도부장의 얼굴이 아니라, 제 나이대의 지쳐버린 한 소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히나는 다시 시선을 날카롭게 세우며 미카를 꿰뚫었다.

"난 선생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야."

"……무슨 뜻이야?"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의 것.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고 누구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야. 키보토스의 모든 학생을 위해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 그게 우리의 '선생님'이니까."

히나의 말에는 확실한 열기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 존재 방식을 존중하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난…… 선생님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을 뿐이야. 선생님이 무거운 짐을 너무 많이 짊어지지 않도록 내가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고 싶어. 선생님이 지쳤을 때 그저 조용히 기댈 수 있는 존재이고 싶어. ……그뿐이야."

"……"

미카는 할 말을 잃었다. 히나의 애정은 자기희생적이고, 정적이며, 깊었다.

'내가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어' '내가 선생님의 공주님이 되고 싶어'라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만 생각하던 미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못 이겨.)

미카의 마음 깊은 곳에서 그런 나약한 소리가 울렸다.

전투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선생님에 대한 '애정의 깊이'에 있어서 자신은 이 작은 소녀를 이길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어찌할 도리 없는 열등감.

"……일주일 전의 일 말인데."

침묵을 깬 것은 히나 쪽이었다.

"에덴조약 일을 꺼내서 널 몰아세운 것. ……그건 내 실언이었어. 사과할게."

"응……?"

갑작스러운 사과에 미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자신의 행동에 얼마나 괴로워하고 후회하고 있는지 선생님께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선도부장으로서 있을 수 없는, 사심에 찌든 추악한 화풀이였어. ……미안해."

히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너무나 성실한 태도에 미카는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뭐, 뭐야 그게…… 갑자기 사과받아도 난……윽. ……애초에 네가 사과할 의리 같은 거 없잖아.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선생님이랑 나기쨩 일행을 속이고 트리니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선생님을 죽게 할 뻔했으니까……!"

미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계속 가슴 깊은 곳에 가둬두었던 죄책감이 히나의 사과로 인해 끌려 나오고 말았다.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건 당연해. 네가 나를 비난하는 건 당연한 거란 말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선뜻 사과하는 건데……! 치사해. 너만 어른 같고…… 나만 애 같잖아……!"

미카는 무릎에 놓인 종이봉투를 꽉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툭, 하고 바닥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런 그녀를 히나는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히나는 타인의 감정에 깊이 파고드는 타입이 아니다. 번거로운 일은 딱 질색이고 게헨나 학생도 아닌 미카의 케어까지 할 의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미카는 과거 히나가 개인실에서 엉망이 되어 울었을 때의 자신과 어딘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미소노 미카. 난 네 죄를 심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야."

히나는 조용히 말했다.

"너를 심판하는 건 트리니티와 네 자신의 마음이야. ……하지만 선생님은 너를 용서했어. 너를 '소중한 학생'이라고 부르며 손을 내밀었어. 선생님이 너를 믿고 있다면 난 그것을 부정하지 않아."

"……"

"선생님이 너를 걱정하며 마음을 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네가 선생님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도. ……그러니까 난 너를 방해하지 않아. 네가 선생님과 보내는 시간을 부정할 생각도 없어."

그것은 히나 나름대로의 '경계선' 다시 긋기였다.

서로 선생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간섭하지 않고, 부정하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선생님 곁에 있는 것을 허용한다.

"……정말 재미없어, 너."

미카는 팔로 난폭하게 눈가를 닦으며 코를 훌쩍였다.

"정론만 늘어놓고. 빈틈없고 성실하고…… 뭐든 혼자서 다 해내 버리고 말이야. 전혀 귀엽지 않아."

"……귀여운 구석이 없다는 자각은 있어. 그리고 너무 과대평가야."

"에?"

"내가 강하다고?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다고? ……전부 과대평가야. 착각도 유분수지."

히나의 보랏빛 눈동자가 미카를 똑바로 포착했다.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어딘가 지칠 대로 지친, 제 나이대 소녀의 체념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난 강하지 않아."

"무, 무슨 소리야…… 게헨나 최강이라고 불리면서. 그때도 미사일을 맞고도 계속 싸웠으면서……"

"그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을 뿐이야. ……난 그저 겁쟁이일 뿐."

히나는 자조하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선생님이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걸 봤을 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무서워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게 아니야. 그저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정신없이 총을 쐈을 뿐이야."

"…………"

"그 후 방에 틀어박혔어. 이제 전부 싫어져서 선도부장도 그만두겠다고 도망치려 했어. ……거기에 선생님이 와주셨어."

히나의 목소리가 아주 약간 떨리고 있었다.

미카는 히나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에 경악하고 있었다. 무표정하고 감정 없는 마왕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가 마치 길 잃은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 내 방에 와서 다정하게 대해주셨어. '이제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셨어. ……난 거기에 매달렸어. 선생님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하고 칭찬받고 싶다고 떼를 쓰고……"

히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미카를 보았다.

"……너랑 아무것도 다르지 않아. 나도 선생님에게 의존하고 선생님의 다정함에 어리광 부리고 있을 뿐인 평범한 약한 아이야. ……방식이 너만큼 능숙하지 않을 뿐이지."

미카는 할 말을 잃었다. 게헨나의 정점.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냉혹하게 일을 처리하며 제압하는 소녀.

그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너무나도 볼품없고 인간미 넘치는, 그리고── 자신과 닮은 '약함'이었다.

"……뭐야 그게."

미카는 기세가 꺾인 듯 소파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게헨나의 높으신 분께서 그렇게 나약한 소리 해도 돼? 불량배들이 들으면 울겠다?"

"……귀찮아. 하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완벽할 필요 없으니까. 선생님은 그런 거 다 알고 받아주는 사람이니까."

"……흐응."

서로 선생님이라는 '빛'에 구원받고, 선생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서투른 소녀.

그 방향성이 같기에 맹렬하게 반발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뭐, 네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는 건 아주 잘 알았어."

미카는 훗 하고 평소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전 같은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어딘가 후련하고 맑은 미소였다.

"그치만 말야. 아쉽지만 선생님의 '제일'은 나니까. 나 선생님의 공주님이고? 선도부장쨩한테는 절대 안 질 거거든."

명확한 라이벌 선언. 그것을 들은 히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딘가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나도 선생님을 양보할 생각은 없으니까."

"아하하! 역시 딱딱해~! 그런 점이 안 귀엽다니까!"

두 사람 사이에 팽팽했던 실이 끊어진 듯한 완만한 공기가 흘렀다. 결코 '단짝'이 되지는 않는다. 내일 마주치면 다시 비아냥을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철컥.

그때였다. 철컥, 하고 집무실 문이 열렸다.

"다녀왔어─…… 어, 우와앗!?"

돌아온 내가 목격한 것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미카와 히나의 모습이었다.

일주일 전의 지옥 같은 수라장이 플래시백되어 나는 나도 모르게 반 걸음 뒤로 물러났다. 또다시 공기가 지직거리며 팽팽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방의 공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지난번처럼 서로를 찔러 죽일 듯한 날카로운 습도는 사라져 있었다.

비유하자면 분리된 채 조용히 병 안에 담겨 있는 드레싱 같다.

"저기…… 둘 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회의가 길어져서…….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미카가 팟 하고 일어나 평소의 화사한 미소를 보냈다.

"선생님, 어서 와! 전혀 문제없어 ……자, 이거! 오늘 꼭 선생님한테 주고 싶어서 가져왔어!"

미카는 안고 있던 파스텔 핑크색 종이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수제 롤케이크! 선생님을 위해서 딸기를 듬─뿍 넣어서 열심히 만들었단 말이야! 나기쨩의 다과회에서 남은 거 아니니까? 내 특제라고!"

"어, 미카가 만들어 준 거야? 대단하네, 고마워. 정말 맛있어 보여. 나중에 커피랑 같이 먹을게."

"에헤헤…… 선생님이 많이 먹어준다면 또 만들어 올게!"

미카는 기쁜 듯 내 팔에 매달리고는 슬쩍 히나 쪽을 봤다.

"……그럼 안녕 선생님!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 줄게. 내일 또 올게! ……히나쨩도 오늘은 이쯤에서 봐줄게. 바이바이"

미카는 히나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그대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탁 하고 문이 닫힌다.

방에 남겨진 것은 나와 히나 두 사람뿐이 되었다.

"……히나, 괜찮았어? 또 서먹하게 만든 것 같네."

내가 사과하자 히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 뭉치를 내 책상 위에 놓았다.

"……별로. 그냥 시간 때우기였어. 그것보다 선생님, 이 결재 서류. 총학생회에서 독촉이 왔으니까 오늘 중으로 사인해 줘."

"윽…… 아, 알았어. 금방 할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잡았다. 히나는 내 옆에 서서 서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간다. 그 옆모습은 평소의 냉정하고 유능한 선도부장의 그것이었다.

"……히나."

"왜?"

"미카랑 무슨 이야기 했어?"

내가 펜을 움직이며 묻자 히나는 잠시 침묵하더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딱히 아무것도. 그냥 조금…… 시끄러운 폭풍 같은 애였어."

히나의 말에는 가시가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어이없음과 아주 미세한 이해가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구나……"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코 어울릴 일 없는 두 학원의 정점이 아주 조금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문득 히나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응? 왜 그래?"

"나도 그 롤케이크, 조금만 먹어도 될까?"

나는 조금 놀란 뒤 훗 하고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같이 먹자, 히나."

창밖으로는 석양이 천천히 저물어가고 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오늘도 샬레는 평화롭다.

("……언젠가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는 날이 오면 좋겠네.")

그런 소망을 품으며 나는 달콤한 롤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

다음화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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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9.11번역

소설핫산) 히나가 미카와 샬레에서 마주쳐 버린 이야기

#소라사키 히나#미소노 미카#연방수사동아리 샬레#소설
좋아요 0댓글 7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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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Nvx작가
게시물 10개
DDC
debiri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09.11 13:49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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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나
ㅇDC
ㅇㅇ126.09.11

속보) 샬레에 폐색전선 발생

ㅇDC
ㅇㅇ226.09.11
ㅇDC
ㅇㅇ326.09.11
ㅇDC
ㅇㅇ426.09.11

에덴미카는 위험해 ㅅㅂ

ㅇDC
ㅇㅇ526.09.11

미카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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