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액션 #나기사 #토키
원본 by Az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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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5>
<1>
“선생님, 다음은 저쪽 감자칩이 먹고 싶습니다…… 아앙.”
월요일 아침 일찍 찾아온 것은 평소의 포커페이스면서도 어딘가 피로해 보이는 토키였다.
“샤워실 빌리겠습니다.”라고 한마디 남기고 눈앞에서 옷을 벗으려 하기에 황급히 말렸다.
토키의 작은 어깨를 몇 번 흔들자, “아, 실례했습니다.”라며 멍한 건지 허당인지 모를 태도로 샤워실에 향했다.
나온 후에는 평소의 메이드 복 차림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왠지 본 적 없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중앙에 “C&C”라고 쓰여 있는 오버사이즈 T셔츠 한 장에 숏팬츠 차림은 누가 봐도 집에서나 할 법한 복장이다.
아무리 뒹굴뒹굴하는 토키라도 여기에서는 갖춰 입는 편이기에 뭔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탁드립니다, 어제 말도 안 되는 임무 때문에 지쳤으니 응석을 받아주십시오.”
단정한 인사를 하고는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힐끗힐끗 시선을 보낸다.
드물게 얌전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
“알았어, 내가 뭘 하면 될까?”
표정은 변하지 않지만 눈을 반짝이며 생각하는 모습, 역시 피곤했나 보다.
“……그럼, 여기에 앉아주세요.”
팡팡 소파를 두드리기에 거기에 앉자, 무릎 위로 토키가 올라왔다.
샴푸의 복숭아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싶더니 손이 붙잡혀 머리 위로 올려진다.
“그대로 쓰다듬어 주세요.
그리고 위로의 말을 곁들여 주시면 대단히 기쁘겠습니다.
또 과자를 먹여주셨으면 좋겠고, 영화는 화려한 액션 장면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음료는 콜라로…….”
라는 식으로, 요구가 한동안 눈사태처럼 이어진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
“……어째서 늘 완벽한 메이드인 제가 이런 사태에 빠졌는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그렇게 말하며 과자를 탐닉하는 토키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2>
트리니티 종합 학원의 학생회인 티파티 세 사람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전처럼 어딘가 앙금이 있는 대화가 아니라 그저 친한 친구로서 이야기하던 중, 현 호스트인 나기사가 한 가지 상담을 요청했다.
“내일부터 이틀간, 시중드는 분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대리가 필요한데요…… 공교롭게도 다들 바쁘셔서.”
“아~…… 뭐 나기 짱의 시중드는 역할은 꽤 유능하지 않으면 힘들지.”
“특히 홍차 다루는 법이나…… 사적인 자리에서의 처신 등, 요구되는 스킬이 어지간한 사람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아닙니다, 그렇지는…… 확실히 홍차에 대해서는 까다롭게 굴긴 하지만…… 하아…….”
늘 곁에서 지탱해 주는 수행원들이 휴가나 병가 때문에 내일부터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나기사 역시 트리니티의 아가씨이기에 시중이 붙는 것이 당연한 입장이지만, 그보다 업무 보조가 없으면 상당히 힘든 일정이 될 터였다.
지금은 미카와 세이아도 있으니 분담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잠시 휴가를 보내고 싶었던 나기사로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친구를 배려해서인지 세이아가 자신의 연줄을 생각하다가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다.
분명 자네 동아리는 메이드 역할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메이드를 파견하는 일은 하고 있지 않은가.”
“하아? 갑자기 왜 그래. 미안하지만 출장 메이드 서비스 같은 건 없어.”
“그런가…… 네 밑에 있는 메이드라면 유능할 테고 봉급은 두둑하게 쳐 줄 텐데.”
“라고 해도…… 어? 뭐야 아카네…… 세미나에서 우리가 부순 건물의 수리비를 벌어오라고!?”
세이아는 최근 사귄 친구인 C&C의 부장 네루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지만, 사정이 바뀌어서 잘 풀릴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이쪽에서 역으로 부탁해야 할 것 같군. 부르는 대로 보수를 줄 건가?”
“이쪽에서 부탁한 일이니까 그 건은 틀림없이. 네루, 자네가 와 줄 건가?”
“아니, 나는 트리니티에는 안 어울리니까. 다른 애를 그쪽으로 보낼게, 실력은 보장한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쁘네. 자세한 내용은 바로 보내주지. 자네도 시간이 되면 언젠가 와 주게.”
“오우! 그렇게 할게.”
무사히 교섭이 성공하고 전화를 끊자 나머지 두 사람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세이아를 바라보았다.
“와~오, 세이아 짱한테 정말 친구가 있었네.”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군요.”
“모처럼 친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는데 그게 무슨 말투인가.”
자신의 악습이 그런 인상을 준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어딘가 납득하지 못하는 세이아였다.
“그런 이유로, 임무 기간은 이틀간 숙식 포함이다. 누가 갈래?”
네루는 전화를 끊자마자 부원들을 모아 누가 트리니티로 갈지 정하려고 했다.
“나는 패스. 아르바이트도 있고 공부도 해야 해서 이틀 내내는……”
“아스나도 이틀은 좀 힘들 것 같아. 중간에 쓰러질 것 같고.”
“나도 티파티의 현 호스트 메이드를 할 만큼 고상하지는 않으니까. 그럼 아카네밖에 없나.”
“그렇게 되겠지만, 저는 임무가 있어서 이틀이나 구속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대뜸 수락했지만 정작 다들 사정이나 일정이 있어 어려웠다.
최악의 경우 아카네의 일정을 세미나 쪽으로 미루도록 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 네루 뒤에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 다섯 번째 멤버가 있었다.
“그럼 그 임무, 제가 맡겠습니다. 피스.”
토키였다. 잠시 자리에 없었기에 따로 설명하려고 했지만 이미 들었던 모양이다.
“괜찮겠어? 일단 티파티의 호스트인데?”
“저도 오랫동안 리오 님 밑에서 메이드를 했으므로, 홍차 다루는 법부터 신변 정리까지 완벽하다고 자부합니다.”
“리더, 토키 짱으로 문제없을 것 같은데. 홍차 타는 솜씨도 일류야.”
“좋아, 그럼 결정이다. 제대로 해.”
“물론입니다.”
토키라면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담담하게 일을 처리하고, 시원스러운 얼굴로 보조하는 모습은 분명 트리니티의 아가씨들에게도 호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3>
출장 메이드 서비스 (가칭) 첫날,
토키는 지정된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나중에 합류했다는 입장도 있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임무라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그것이 지금의 토키였다.
변함없는 멸사봉공의 자세지만 아스나를 중심으로 선배들이 잘 쉬게 해주고 있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토키를 바로 트리니티로 보낸 것도 어느 정도 편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에서 온 아스마 토키입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무사히 도착하여 이번 주인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받은 장소.
긴 테이블에 겨우 몇 좌석만 있는 이례적인 광경이었지만 위화감은 없는 분위기.
처음 눈이 마주친 것은 금발과 여우 귀가 특징인…… 네루의 친구 세이아였다.
“자네가 네루의 소개로 와 준 아스마 토키로군.
친구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수고를 끼쳐 미안하네, 자리에 앉게.”
메이드가 주인과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은 거부감이 있었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에 따르라―그 말에 기대어 앉으니 의뢰주 나기사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아스마 토키 씨,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티파티의 호스트로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머리 숙여 사과하실 일은……”
송구한 마음에 토키도 감사를 표하려 하자 옆의 미카가 밝은 목소리로 제지했다.
“됐어 됐어! 이번엔 완전히 우리가 폐를 끼치는 거니까, 지금만이라도 대접받았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우선은 잠시 차를 마십시다. 세이아 씨가 밀레니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거든요.”
“그것은 내가 상세히 말했을 텐데?”
“세이아 짱은 어렵게 말하니까 수상해. 여기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어야지!”
바로 일에 들어갈까 싶었는데 눈앞에는 향이 좋은 홍차와 보석처럼 아름다운 롤케이크가 놓여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느긋한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금세 적응했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세이아 짱 친구인 네루 짱 있잖아, 정말 강해?”
“전에도 말했을 텐데, 자네와 같은 수준의 실력일세. 그 외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그거 혹시 머리 이야기 하는 거야?”
“말했잖나, ‘그것’ 외라고.”
“아핫! ……근데 몸매는 지지 않을 것 같아, 세이아 짱이랑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네루 선배는 키를 제외하고 완벽한 메이드입니다.”
“선배인데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거 아닌지요……”
“네루 선배의 실력은 가까이서 여러 번 봤지만…… 미카 님에게서도 같은 품격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선배와는 또 다른 무서운 무언가가 잠재되어 있다.
숨길 생각 자체도 없어 보이지만…….
결코 화나게 해서는 안 될 사람이 트리니티에도 한 명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이~, 빈말이 심하네. 그 정도 아니야.”
“네루 선배는 키를 놀리면 바로 싸움으로 번지니 혹시 싸우고 싶으시다면 꼭 시도해 보세요.”
“기억해 둘게☆.”
“농담이시겠죠……?”
“네루는 호전적이라 쓸데없는 짓 안 해도 싸움이 붙을 것 같긴 하네.”
‘세이아 짱이 그런 말을 하다니…….’ 라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내는 미카.
그런 와중에 문 위에 크게 놓인 시계를 보고 나기사의 태도가 바뀐다.
나기사가 손뼉을 치자 티파티 간부가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확실히 고양이나 메이드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의 서류 더미가 쌓여 있었다.
“먼저 이쪽 일부터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완벽한 보좌를 약속드립니다.”
리오의 밑에서 학생회 업무를 여러 번 처리했기 때문인지, 같은 요령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트리니티의 기밀 사항에 관한 것은 세 사람에게 맡기고, 그 외의 것을 토키가 담당하는 형태였다.
때때로 미카가 불평을 늘어놓으면 세이아가 농담으로 받아치고, 나기사가 수습하는……
그런 훈훈한 교류를 거치면서 무사히 업무가 종료되었다.
“―여유 있게 업무가 끝났네요. 실례지만 조금 놀랐습니다.”
나기사가 기쁜 얼굴로 홍차를 우리고 있다.
세이아의 소개이기에 어느 정도는 기대했지만 상상 이상이었기에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을 것이다.
이대로 전속 메이드로 삼고 싶을 정도의 들뜬 표정이라는 것이 두 사람에게도 전달되고 있을 정도다.
“역시랄까, 네루가 보증한 만큼 유능한 메이드가 아닌가.”
“응 응! 인형처럼 귀엽고 나기 짱의 메이드로는 아까울 정도야!”
세 사람에게 칭찬을 들어도 전혀 변하지 않는 포커페이스.
하지만 그 분위기가 오히려 세 사람의 호감도를 더욱 높이고 있었다.
실제로는 얼굴에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남들만큼의 기쁨을 곱씹고 있지만.
“칭찬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하지만 본업은 지금부터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기사에게 시선을 옮기니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기쁜 듯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렇군요, 앞으로 토키 씨께 폐를 끼치겠지만 의지하겠습니다. 내일은 오랜만의 휴일이니까요.”
그 말을 들은 미카와 세이아는 커피를 마신 듯 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겠지…… 여러모로 폐를 끼칠지도 모르겠네, 아하하…….”
“원래는 네루에게 부탁할 예정이었지만, 미안하게 생각한다. 자네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세이아가 토키의 어깨에 손을 얹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거겠지,
초부호의 헤아릴 수 없는 스케일에 압도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리오도 가끔 터무니없는 돈 씀씀이를 보여주었던 만큼,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겠지만.
“안심하십시오, 저도 C&C의 메이드,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분부하십시오.”
“그 말을 들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군. 내일 잘 부탁하네.”
“네, 그럼 가볼까요. 미카 씨, 세이아 씨, 실례하겠습니다.”
세이프 하우스 위치는 이미 공유되어 있기에 토키는 나기사를 에스코트하며 자리를 떠났다.
주인보다 5cm는 더 컸기에 공주를 성에서 데리고 나가는 기사 같은 풍모였다.
“괜찮을까, 언젠가 나기 짱의 수행원 짱이 몸이 안 좋았을 때도…….”
“하지만, 나기사도 쌓인 것을 발산하지 않으면 또다시 찻잎에 머리를 처박고 나기 차가 되고 말 게야.”
“뭐…… 확실히. 그래도 걱정이야…….”
사실 미카도 같이 쉬고 싶었지만, 나기사의 빈자리를 세이아 혼자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마 전 일처럼 나기사는 확 터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자네가 알던 시절처럼.”
“……그건 직감?”
“아니, 신뢰라는 것이다.”
세이아는 나기사가 타준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일에 대해 비관적이면서도 또 어떤 재미있는 정보가 흘러나올지 어딘가 긍정하는 자신도 있는 것이었다.
<4>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바로 불러주십시오.”
토키는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나기사를 향해 그렇게 고하고 방을 나섰다.
첫째 날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마무리.
자주 사용되지 않는 세이프 하우스였기에 간단한 청소만으로 충분했고, 신변 정리도 문제없었다.
기껏해야 날개 솔질 정도였을까. 처음이라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그뿐이었다.
여러 세이프 하우스를 전전하는 모습이 진정한 아가씨라는 느낌도 들었다.
“자, 2시간 정도 가볍게 눈을 붙일까요. 그 후에는 집안일과 호위를 동시에 해내죠.”
자는 동안의 경비는 드론에게 맡기고, 일어난 후에는 나기사가 기상할 때까지 호위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얼마나 가혹한 임무일까 했더니 여유롭네요, 피스 피스.
오전 7시, 햇살이 피부를 강하게 찌를 무렵 나기사가 기상했다.
거실에서 토키가 아침 식사와 목욕 준비를 하고 있자 졸린 듯 의자에 앉는다.
“토키 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먼저 세수를 하시는 건 어떨까요, 식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네에…….”
눈을 가늘게 뜨고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세면대에서 돌아온 나기사에게 홍차를 건네자 잠시 냄새를 맡고서 입을 댔다.
세수해서인지 홍차를 마셔서인지, 평소의 아름다운 얼굴로 돌아와 찻잎의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뭐…… 합격점 정도일까요.”
“……죄송합니다.”
“저의 합격점은 칭찬하는 것입니다. 제가 잘하는 것뿐이에요.”
“아닙니다, 정진하여 다음에는 반드시.”
“그냥 트리니티식 농담입니다. 아주 맛있어요.”
……마치 다른 사람 같은 분위기. 어제와 성격이 변한 듯한…… 이것이 본모습일까.
“그럼, 오늘 일정은.”
“글쎄요…… 사실은 전처럼 선생님과 낚시라도 하고 싶었는데, 바쁘신 것 같아서요.”
“필요하다면 선생님을 구속해서 이리로 모셔오겠습니다만.”
“어머, 유능하시네요. 하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기분입니다.”
“알겠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나기사는 이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홍색 베레모를 쓴 나기사는 마치 와일드헌트의 학생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진지하게 캔버스와 마주하고 있다.
토키가 용무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몇 가지 색이 뒤섞인 물감이 팔레트 위에 마련되어 있었다.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그리시는 겁니까? 피사체도 아무것도 없는데요.”
“롤케이크입니다.”
“롤케이크, 말입니까.”
……트리니티에서는 서양 과자를 그리는 것이 숙녀의 교양일까.
그러고 보니 트리니티의 사육제에서 그런 전시회가 있었다고 네루 선배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럼 바로 롤케이크를……”
“아닙니다. 마음속의 롤케이크가 있으니.”
“마음속의……?”
“미(美)는 세부에 깃든다고 합니다. 제 안의 아폴론이 그렇게 외치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기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듣기로 나기사의 그림은 그 분야 사람들에게도 호평이라고 하니, 토키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문외한의 눈으로 그림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안 되겠네요, 아폴론 따위 없어요.”
다섯 번째, 찢어진 도화지는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멋대로 신을 강림시키고, 신을 부정하는 엉망진창의 발언에 당황하고 있을 때 나기사가 베레모를 벗었다.
“역시 외출합시다. 모처럼이니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어디든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영장으로 가죠.”
그렇게 나기사가 내키는 대로 소유하고 있는 수영장 중 하나에 도착했다.
개인 사용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넓이로 일종의 레저 시설처럼 분수나 워터 슬라이드도 있다.
이전에 선생님과 놀았던 장소와는 또 다른 곳이며, 더욱 넓다.
나기사는 수영복을 입고 있지만 토키는 평소의 메이드 복장이다.
수영복으로는 만전의 호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완벽한 메이드의 귀를 의심케 하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전에 수영장에 물고기를 풀어 낚시를 즐겼는데…… 또 해보고 싶네요.”
“……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 아니요……”
“맞아요! 저 유수 풀에 물고기를 넣고 낚시를 합시다. 분명 자극적인 낚시가 될 거예요.”
토키가 너무 놀라 멍하니 있는데 어느새 업자들이 와서 물고기를 풀에 던져 넣고 있다.
수많은 물고기가 첨벙첨벙 튀어 오르는 모습은 시원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토키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낚시에 부적합한 커다란 상어나 가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네요, 이건 뭐가 낚일지 몰라서 두근거려요.”
“그, 이 급물살에서는 낚일 것도 못 낚일 것 같은데요.”
금붕어 건지기의 빅 스케일이라고 해야 할까.
온갖 것을 던져 넣어 이제는 수영장이 아니라 수족관 같다.
“괜찮습니다. 저도 남만큼의 힘은 있으니까요.”
나기사는 휘익, 하고 기세 좋게 낚싯대를 던졌다.
휘두를 때 낚싯줄이 뒤에 있던 토키에게 걸리는 것을 화려하게 피하자마자 물고기가 걸린 듯하다.
“낚을 때 팔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입질이 강해서 즐겁습니다!”
아아, 멋진 미소인데 지금부터 일어날 위험을 생각하면 장대한 복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낚싯줄을 풀에 드리우자 또다시 바로 입질이 왔다.
“엇, 이, 이건 상당히 힘이…… 쎄다아아아아아아아아!!!!”
“나, 나기사 님―!?”
의자에 앉은 채 낚시를 하던 나기사는 순식간에 풀로 끌려 들어가 버렸다.
아마 상어 입에 낚싯줄이 걸린 것일 것이다.
토키는 곧바로 아비 에슈흐 장착 시 입는 이너 슈트로 갈아입고 풀에 뛰어들어 구출을 시도했다.
“죄송합니다…… 살았습니다.”
“하아…… 헉…… 아, 아닙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힘들었다.
상어에게 끌려가는 나기사를 쫓아갔는데 따라잡기는 금방이었지만, 그녀가 낚싯대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상어의 배를 힘껏 걷어차서야 겨우 구출할 수 있었다.
숨이 차서 오랜만에 죽음을 각오했다.
“나기사 님께서 다치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자칫하면 메이드를 은퇴할 뻔 했어요.”
“후우…… 하지만 상어에게 끌려가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 좋은 자극이었어요♪”
왠지 나기사가 즐거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위험하니 다른 일을 하시죠.”
“알겠습니다.”
만약 이 ‘낚시’를 계속했다면 피로로 쓰러졌을 테니 다행이다. 약한 소리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군요, 이전에 미카 씨 일행과 견학했던 산해경 가게에라도…… 저 스위치는 무엇일까요?”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둥근 모양의 빨간 스위치가 있었다.
“아마 방범용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누르면 모종의 방어 시스템이 발동……”
“에잇!”
“네?”
나기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스위치를 눌렀다.
너무나 거침없는 행동에 놀라고 있을 때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이 이 장소를 감쌌다.
“아, 생각났습니다.
원래는 배신자를 제거하기 위한 시설이었기에 버튼 하나로 잿더미로 만드는 시스템이 남아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그러고 보니 그런 기능도 있었지,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멋대로 자폭 장치를 다는 엔지니어부 같은 대사를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네, 여기는 이제 안 되겠네요. 어서 도망치죠, 토키 씨.”
“…………아비 에슈흐, 기동.”
머리가 의문과 혼란으로 가득 찼지만 전투 태세에 들어간 덕분에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포격으로부터 나기사를 보호하며 어떻게든 안전한 장소까지 피난했다.
토키가 깨달은 것은 나기사가 이 도피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어딘가 평소의 고름을 빼내는 듯한 느낌으로.
트리니티는 소란스러워졌지만 티파티가 훈련의 일환으로 포격을 실시했다고 설명하여 사태는 무마되었다.
연락했을 때 미카와 세이아가 질렸다는 듯이 대응했는데, 전에도 이런 사태가 일어났던 걸까―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토키 씨는 저런 변형 기체도 다룰 수 있군요. 조금 흥미가 생깁니다.”
“아비 에슈흐는 전용기이므로 시승은 불가능합니다.”
“흐음…… 그렇습니까.”
흥미를 보이는 나기사를 달래며 홍차를 건넨다.
현재는 다른 세이프 하우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토키는 이해했다―이 아가씨는 호스트로서의 중책을 벗어던짐과 동시에 호기심에 몸을 맡기게 된다는 것을.
아직도 개운치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고 짐작되었기에 모든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늘은 푹 쉬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느긋하게 지내는 것도 숙녀의 교양 중 하나입니다.”
“……그렇군요. 또 세이아 씨 일행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나기사는 훈육당한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져 있었다.
그녀 역시 아무에게나 폐를 끼칠 만큼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기사가 아직 조금은 들뜨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찻잔을 집어 들려는 찰나.
총탄이 찻잔에 그려진 트리니티 마크를 관통하여 홍차가 테이블로 쏟아진다.
“하핫! 역시 여기 있었군 키리후지 나기사!”
“이 녀석을 인질로 잡으면 칠대까지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 손에 들어올 거다!”
더러운 말을 지껄이며 부지에 침입한 것은 카이저 코퍼레이션 무리였다.
이곳은 트리니티 중심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곽이니 근처에 잠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잇따라 병사들이 밀려들며 둘을 제압하려 한다.
“적습입니까, 제거하겠습니다.”
경계 레벨이 상승했기에 긴 스커트의 기장이 순식간에 짧아진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막 전투가 시작되려 할 때 한 발의 총알이 카이저 병사의 머리를 관통했다.
나기사의 애총 로열 블렌드가 불을 뿜은 것이다.
“……”
“나기사 님……?”
시끄러운 소리가 딱 멈췄다.
정적이 이 공간을 지배했다 싶더니 칙칙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훗, 후훗…… 좋은 배짱이네요.”
나기사는 격노하고 있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티타임을 방해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방에 함부로 침입한 천박한 자들에게.
평소 끊임없이 쏟아지는 트러블이 플래시백되었다.
“―토키 씨, 제가 파고을 테니 백업을 부탁드립니다.”
“……네!?”
말을 마치자마자 나기사가 무언가를 기세 좋게 카이저 병사들에게 던졌다.
쓰러진 자들을 보니 입에 롤케이크가 물려 있었다.
“뭐, 뭐야 저 아가씨!?”
“상관없다! 이쪽에 병사가 몇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차례차례 밀려드는 카이저 병사들,
그 입에 차례차례 밀어 넣어지는 롤케이크.
나기사가 놓친 것을 토키가 쏘아 맞춘다― 의도치 않게 좋은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하핫! 즐거워졌어요!! 토키 씨!”
“네, 네.”
일단 동조하는 토키를 뒤로하고 나기사의 손이 멈춘다.
롤케이크가 다 떨어진 것이다.
그때 한 명의 잠복 병사가 뒤에서 나기사에게 다가가 공격하려 한다.
오른손에는 스턴 건이 쥐어져 있고, 목을 겨냥하는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눈치챈 나기사는 뒤돌아보지 않고 회전 발차기를 턱에 작렬시켰다.
어린 시절 호신술의 일환으로 배운 기술이지만 오랜만에 차서인지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아…… 나쁘지 않은 고양감입니다. 운동하는 건 기분이 좋군요, 안 그래요!”
그대로 미소를 잃지 않고 돌격해 갔다.
토키는 그 모습을 보고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 이상으로 잘 움직인다고 해도 아직 수십 명은 될 군단에 돌격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나, 나기사 님! 적은 저에게 맡기시고 몸을 보호하십시오!”
“후훗……!”
듣지 않는다.
차례차례 밀려드는 카이저 병사들을 발차기나 핸드건으로 쓰러뜨리고 있다.
스트레스 해소구를 찾은 기쁨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넘쳐 멈추지 않는 것일까.
“……어쩔 수 없습니다. 최소한 이 몸을 방패 삼아 지켜드려야겠습니다.”
적의 공격에 나기사 대신 몸을 던지면서 자신의 헌신적인 행동에 찬가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무렵에는 너덜너덜해진 토키가 쓰러져 있었다.
<5>
“뭐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그거 큰일이었네.”
토키는 내 무릎 위에서 뒹굴거리며 사태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제 회복된 것인지 평소의 그녀로 돌아왔지만 당분간 움직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덕분에 세미나에서 마련하라고 했던 금액을 보수로 받았습니다. 끝이 좋으면 만사형통이죠, 피스.”
“그렇게 많이 받았단 말이야.”
“네, 저의 VIP십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톡톡, 하고 노크 소리가 났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너머에서 들려온다.
“선생님,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재빠른 몸놀림으로 움직였다 싶더니 어느새 메이드 복으로 갈아입은 토키의 모습이 있었다.
방금까지 주변에 과자 봉투나 벗어 던진 옷이 있었는데 그것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어머, 토키 씨! 지난번엔 정말 신세 많이 졌어요.”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나기사 님.”
토키가 스커트 양 끝을 잡고 인사하자 나기사는 즐거운 듯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된다.
의외로 여러모로 상성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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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것도 비슷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