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선생님은 사랑해본 적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착한 아이라면 잠에 들었을 이른 밤, 멀리서 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밤에 미카와 선생은 샬레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의 불빛 아래, 어두운 분홍색을 향해 선생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질문은 학생들이 흔히 하는 '선생님, 연애 얘기 해주세요~' 처럼 들렸지만, 선생은 그것과는 제법 다르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미카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선생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사랑, 사랑이라……."
선생이 뜸을 들이자, 지긋이 바라보는 미카의 천진난만한 얼굴에 호기심과 기대감이 가득 찼고, 토파즈 색의 눈동자가 밤하늘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별처럼 빛났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인정하는 빼어난 외모의 소녀가 사랑에 대해 물으니, 선생이라는 직업을 떠나서 가슴이 두근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사랑을 알게 된 지 어언 10년, 그런 두근거림은 풋풋한 사랑보다는 많은 학생에게 베풀어지는 따뜻한 자애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생애 처음 겪는 사랑에 두근거리는 소년이 아닌, 끝없고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어른으로서 대답했다.
"사랑한 적. 있지."
순간 미카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질투보다는 처음의 키스를 가지고 싶어하는 소녀의 마음에 가까운, 그런 감정을 흘릴듯 말듯 했다. 그러나 미카가 먼저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동안, 선생이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항상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농담 같이 들리는 진담이었다. 미카의 조바심이 안도감으로 흘러간 반면, 대신 묘하게 삐진 그녀는 괜시리 입술을 삐죽이다가 보란듯이 뺨을 부풀렸다. 그런 얼굴로 검지 손가락으로 머리 끄트머리를 빙빙 꼬아올리기까지 했다.
"그런 대답은 치사해. 반칙이라구."
누가 봐도 영락없이 토라진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라서, 선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미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미카는 여전히 뺨을 부풀리면서도 머리 위에 닿는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흥……."
돌이켜보면 미카는 주로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입장이었다. 티파티 소속의 후배를, 파테르 분파의 분파원을,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을 칭찬하고 치하해왔다. 그런 그녀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감촉은 낯설면서도 포근했고, 괜시리 가슴이 간질거렸다.
'선생님 손, 생각보다 크네…….'
계속해서 부드러운 손길이 이어지자, 그녀도 삐죽거리던 입술을 예쁘게 눌러 넣었다. 언제까지나 미운 얼굴을-누구도 그렇게 보지는 않지만-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래도 미카는 볼멘소리로 말하는 건 빼놓지 않았다.
"응.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는 거지."
미카는 배려심 많은 성격은 아니다. 그 사실은 그녀 스스로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물론 미카에게도 다른 사람의 평가 같은 건 상관 없었다.
그러나 사랑은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밀어붙인다고 능사가 아니고, 간절히 바란다고 무조건 이루어지지는 않다는 걸 미카도 알고 있었다. 비록 그녀에게 연애 경험은 없지만, 그동안 읽었던 순정 만화와 로맨스 소설은 전부 그랬다.
그래서 미카는 선생님에 대해 조바심이 들 때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부던히 노력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항상 제멋대로였지만.
"아하하……."
그런 미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곤란해지거나 겸연쩍을 때에 나오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 모습을 자주 봤던 미카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검지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주제를 돌렸다.
"오늘도 덥네. 선생님은 어때? 나야 선생님이랑 함께 있어서 좋지만☆"
사랑 고백이었다면, 분명 미카는 새빨개진 얼굴로 망설이며 더듬거렸겠지만. 순수 100%의 '좋아' 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조금? 혹시 미카가 많이 더우면 샬레로 돌아갈까? 안에는 에어컨도 있고."
"으음, 에어컨 바람 쐬면서 있는 것도 좋지만……."
고민에 빠진 미카의 얼굴조차 예뻤지만, 그녀의 머리 속은 수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흘러갔다. 그 중에 어떤 생각은 그녀의 귀를 통해 직접 속삭여지는 듯 했다.
'선생님과 함께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해.'
티타임에 먹는 디저트보다도 달디단 목소리였다. 너무나도 달콤한 나머지, 미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뻔했다. 하지만 바로 멈칫, 하며 망설였다.
'그렇지만……선생님께 폐 끼치는게 아닐까?'
미카는 어둠 속에 있는 무언가에게,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소리 없이 물었다.
'그런 걱정을 왜 해?'
목소리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제서야 미카는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너-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나쁜 아이잖아.'
바로 미카 자신이었다.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다른 이들과 소중한 친구에게 상처 입히던, 미소노 미카였다. 분명 형체도 실체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친구를 죽일 뻔했고, 친구를 해하려하고, 학교를 커다란 위험에 빠지게 했던, 트리니티 3학년생 학생회장, 미소노 미카는.
'그렇지?'
그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고, 지워지지 않을 그녀의 과거였다.
'맞아. 나 같은 애가 어떻게 선생님과…….'
"밤하늘이 보기 좋네."
형형색색의 생각이 뒤섞여 물든 어둠으로 미카가 가라앉던 찰나에, 선생의 다정한 목소리가 미카에게 닿았다. 유스티나 성도회의 미메시스의 앞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선생은 미카를 구하러 왔다.
"혹시 괜찮다면 좀 더 같이 있어줄래? 미카랑 함께 별들을 바라보고 싶어서.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한 미카의 멍한 시선이 닿자, 선생은 겸연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미카가 괜찮다면. 오늘은 특히 별들이 더 빛나잖니. 어……혹시 부담스러우려나? 아하하……."
선생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만화를 방불케하는 광경이 우스울 만도 했지만, 미카의 눈에는 그 누구보다 빛나보였다.
선생이 미카의 마음 속을 들여다 봤을리는 만무하다. 아무리 선생이라고 해도 학생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미카는 선생의 배려를, 마치 그 때 선생에게서 받았던 구원을, 잠시나마 다시 느낀 기분이었다. 멍하니 선생을 바라보던 미카는 환하게 웃었다.
"응. 선생님! 그렇게 할래☆"
그녀의 미소는, 금성보다도 찬란하게 빛났다.
***
하늘을 바라봐도 별에는 닿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에 닿을 것처럼,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올려다 보고는 한다. 선생과 미카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별들을 찾았다.
"선생님. 저기에 있는 별들, 보이지?"
밤하늘의 별을 가리키는 미카의 손가락을 따라서 선생의 고개도 움직였다.
"저게 데네브. 저게 알타이르. 그리고 저게 베가야."
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생은 머리 속에 무언가 불현듯 떠오른 것을 말했다.
"여름의 대삼각형이구나."
"응. 정답☆"
미카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서서히 서늘해지는 밤공기 사이로 쾌활한 목소리가 꽃을 피웠다. 선생은 미카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흥미로워 했고, 미카가 별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거 같아."
선생의 칭찬에 미카는 손사레를 쳤다.
"아, 아냐. 예전에 관심이 있었거든. 이 정도는 검색만 해도 알 수 있기도 하고……."
"그래도 대단한 걸."
내밀어진 손이 아가씨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천진난만한 아가씨는 손길을 받아들였다. 정성들여 세팅한 머리카락이 망가지지 않게 하려는 듯이, 사랑과 상냥함을 담은 조심스러운 손길이 이어졌다.
"아니, 뭐. 별거 아닌데……."
오늘만 두 번째인 선생의 손길에 기쁜 얼굴을 하던 미카는, 계속해서 선생의 손길이 이어지자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확실히 익숙해지기 힘든, 좋으면서도 낯선 감각이었다.
'……좋아.'
미카가 만족스러워 하는 동안 선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생은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선생님? 저기, 그……무, 물론 기분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언제까지 쓰다듬으려는 걸까……아하하."
미카의 당황스러워 하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무아지경에 빠져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하게도 미카는 힘으로 선생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선생님……?"
첫번째 이유로, 미카는 선생에게 힘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예시일 뿐이지만 만일 선생이 나쁜 짓을 한다고 해도 그녀는 힘으로 제지하지 못할터였다.
"하으, 으으……."
두번째 이유로는, 선생의 머리 쓰다듬기 스킬은 가공할만한 위력을 자랑했다. 여러 학생들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은 덕분에, 선생은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랬다.
"미안해, 미카. 머리를 쓰다듬다가 잠깐 멍때리고 있었네."
겨우 정신을 차린 선생은 미카를 찾았다. 그러나 미카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는 선생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괴고, 가장 편한 자세로 머리를 쓰다듬어진 것이다.
"선생님, 정말 대단해……☆"
황홀경 가득한 시선은 머나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은하수 너머로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미카……? 미카?!"
선생은 에덴에 발을 들이려는 미카를 애타게 불렀다. 물론 현실의 미카는 여전히 선생의 무릎을 베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나기 쨩. 에덴은, 있었어."
"미카-!!"
야음을 울리는 애절한 목소리에 이어서,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중 하나가 반짝, 빛나다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
선생님의 손길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기분 좋았다. 물론 바로 의식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과장하면 그럴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렇게나 기분 좋게 쓰다듬어줬겠지?'
비록 다른 학생들보다 나를 더 봐줬으면 하고, 다른 학생들보다 나를 더 소중히 여겼으면 하고, 다른 학생들보다 나를 더 사랑해줬으면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지.'
그는 모든 학생을 끝없고 한없는 사랑으로 따뜻하게 감싸안는 어른이었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나라도, 그런 걸 모르지는 않았다.
"곤히 자고 있으니 깨우지 말아야겠네."
선생님의 목소리가 어슴프레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물론 자는 척을 하지도 않았다. 드문드문 느껴지는 선생님의 손길이 너무 좋았고, 선생님의 무릎 베개를 벨 수 있다는 행복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미안, 선생님. 조금만 더 자고 있을게.'
선생님의 무릎은 어떤 베개보다 편안했다. 뺨을 부빗이면 어딘가 좋은 기분이 들었다. 현재 지내고 있는 허름한 기숙사 침대는 물론, 티파티의 학생회장 시절의 쾌적한 방보다도 더욱 좋았다.
'만약 선생님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끝에 얼마나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나의 소중한 것을, 내 손으로 송두리째 없앨 뻔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괴롭고 후회스러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있어서 다행이야.
선생님은 나라는 마녀에게서 모두를 지키려 했으니까.
선생님은 나처럼 나쁜 아이에게 다가와줬으니까.
선생님은 나처럼 바보같은 공주님도 구원해줬으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행복이라는 색을 되찾아줬으니까.
그래서 나는 선생님에게 반했다. 나로서는 선생님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의 왕자님이 아니어도 좋아.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아.
이렇게나 제멋대로인 사랑이지만……결말까지 간직할테니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선생님."
오랫만에? 왔습니다. 미카 픽업 날이 오늘이라서 후다닥 썼읍...
항상 그렇듯 잘 읽어주셨다면 매우매우 감사합니다.
그럼, 몇 시간 뒤의 가챠 건승을 빌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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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달아



아레가 데네브 아르타이르 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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