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카츠키 리오는 외로움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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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츠키 리오 시리즈는「최종장 완결」이후를 다루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안 봐도 되지만 가급적 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군데군데 유리창이 깨어진 스산한 빌딩 어딘가, 아이러니하게 생활감이 생생한 사무실에서 은은한 모니터 불빛들이 그녀를 비추었다.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어디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글쎄. 처진 어깨라든지, 힘이 빠진 입꼬리라든지, 근심 어린 눈빛이라든지.
본디 표면상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니 언뜻 보기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야기엔 분명 어폐가 있었다.
그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혹자는 눈을 돌리지 않고 그녀를 반듯이 바라봐 주는 사람이라면 그 미묘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설명하자면, ‘전 밀레니엄 학생회장’이자 ‘빅 시스터’라는 이명의 소녀― 츠카츠키 리오는 때때로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복잡미묘한 분위기를 풍기고는 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의 홀로 남은 나뭇가지, 그 끝에 매달린 마지막 이파리.
쓸쓸함.
그것만이 유일하게 잘 숨기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쉴 틈 없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던 손이 멈추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모니터 속 전자시계였다.
리오는 미리 내려 두었던 따뜻한 커피 두 잔 중, 아직 입을 대지 않은 쪽의 머그잔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미적지근한 온기가 남아있긴 했지만, 그가 올 시간에 맞추어 갓 내렸을 적의 모락모락 나던 김은 기대를 거둔 마음처럼 이제 없었다.
덧없는 한숨을 소리 없이 쉬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어째서 자꾸만 한숨이 나올까.
애써 모르는 체하려고 했지만, 그 이유까지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가 찾아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모모톡으로 듣게 된 사정은 연말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다 보니 일정이 너무 바빠서 철야도 불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대번에 납득했다. 뭐,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샬레의 선생님’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더군다나 일 처리에 서툰 면이 있는 그라면 예상보다 훨씬 더 수고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으로부터 도망쳤던 그날’ 이후 마음속의 공허함을 채워 주었던 그의 존재감이 절절히 느껴졌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빠지는 날 없이 꼬박꼬박 없는 잡무도 만들어서 찾아와 주던 사람이 없어지니 그가 마음속에 채워준 ‘따스함’이 애달픔으로 변모해 이처럼 흘러넘쳐 버리는 것이다.
태연한 척 이어서 밀레니엄 각지의 보안 체계를 점검하던 그녀는 목덜미를 가볍게 주무르며 스트레칭했다. 숨을 돌릴 겸, 필요한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던 마우스 포인터가 어떤 커뮤니티 게시글 위에 멈춰 섰다.
「이거 썸남이 나한테 정떨어진 거 맞지? 조회 13,773 | 추천 111」
드넓은 인터넷 세계에는 수많은 유혹이 존재한다. 이도 그중 하나였다. ‘간과할 수 없는 제목’. 이를테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마법 같은 광역 어그로.
“….”
예전의 리오였다면 눈길도 주지 않고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을, 아무래도 좋은 남의 연애사.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게시글의 제목을 클릭했다.
「원래 모모톡도 먼저 걸어주고 바빠도 칼답해 주고 그랬는데, 요샌 점심때나 돼야 연락 옴.
힘들어도 일 끝나면 꼭 데리러 와 줬는데 이제 물어봐야 해줄까 말까임.
맨날 바쁘다고만 하고 데이트하자는 얘기도 안 꺼냄. 이거 마음 뜬 거 맞지?
놓치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베플 ㅇㅇ
진짜 바빠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좀만 참고 기다려 봐」
「베플 ㅇㅇ
일 진짜 바쁘면 다른 데 신경 쓸 여유도 없음.. 진지하게 얘기해 보던가」
「베플 ㅇㅇ
뭔가 감정표현 같은 거 잘 안 하는 성격 같은데 썸타는 기간 너무 길어져서 식은 걸 수도... 고백받으려고 자존심 같은 거 세우지 말고 먼저 표현해 보셈. 곧 크리스마스니까 이벤트 같은 거 해 보는 것도 좋고.」
「찬반대결 ㅇㅇ
말하는 꼬라지 보니까 윗댓 말대로 상대가 해 주는 대로 처 받기만 한 거 같은데 ㅋㅋ 그런 거면 그냥 헤어지셈 ㅇㅇ 그렇게 눈치 없이 받기만 하는 사람 진짜 피곤함」
댓글까지 모두 읽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몇몇 문장들이 신경 쓰였다.
「인기 게시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이용해 소원해진 남자 친구 마음 돌리는 법」
그와 동시에 마치 누군가가 갈등하는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상단에 떠 있는 다른 게시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사람의 마음은 그리 쉽게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화면으로부터 도망치는 시선과는 다르게 마우스 포인터는 망설임 없이 게시글을 클릭했다.
글 내용을 요약하자면, 지난 크리스마스 때 권태기가 왔던 남자 친구를 위해 야한 산타걸 복장을 입고 놀래켜 주는 이벤트를 했다가 그대로 결혼까지 성공했다는 어떤 이의 경험담이었다.
마지막에는 친절하게 직접 찾아보고 옷을 구매했다는 코스프레 의상 전문 쇼핑몰의 주소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좀처럼 찾아와 주지 않는 것은 일이 하루가 멀다고 바빠서.
직접 백 번을 생각해 보아도 그가 오지 않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일이지 않은가. 방금 보았던 게시글처럼 그가 자기에게 질렸다던가, 정이 떨어졌다던가. 그런 것은 결단코 아닐 터였다.
그러니 이런 일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기뻐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자기한테 어울리는 일도 아니고.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쉽사리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책상에 올려 두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그에게서 온 모모톡 알람이었다. 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라도 챈 걸까.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서 조금이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나 좀 살려줘, 리오.]
>[크리스마스만큼은 쉬고 싶어.]
[무슨 얘기야?]<
>[숨을 곳이 필요해.]
>[이모티콘]
귀여운 곰 인형이 울상을 짓고 간절하게 부탁하는 이모티콘이 그를 빼닮아 피식했다.
―
오늘은 하늘/이 다가오는 ‘특별한 날’을 축복하는 것인지 함박눈이 내렸다.
게헨나, 트리니티, 밀레니엄과 같은 대형 학원들은 물론이고 그 밖의 수많은 학원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사람들은 일 년 중 정말 잠시뿐인 이 시즌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번화가의 상점은 어디를 가더라도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렸고 광장은 노랫소리와 사랑으로 넘쳤다.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 누군가는 친구들과, 누군가는 가족들과,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열심히 준비한 ‘소중한 마음’을 오손도손 나눌 것이다.
당연히 크리스마스에는 연방 수사동아리 샬레(S.C.H.A.L.E)도 책임과 임무를 잠깐 내려 두고 문을 닫는다.
“드디어 내일인가….”
당번이었던 학생이 돌아가고, 큼지막한 일들을 마무리 지은 그는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다.
처음에는 그래, 학생들을 초대해 샬레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다던가.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한다던가. 좋은 음식점을 예약하거나 빌려서 술은 안 되고 콜라 잔이라도 기울일까 같은, 그런 무른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다르다. 현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여느 때에는 조용하고 아늑한 샬레의 건물도 내일이 되면 지옥으로 변한다. 이미 다양한 기념일을 통해서 경험한 바가 있었다.
마음은 이해한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좋은 날에 좋은 시간을 보낼 거야―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한둘이면 고민도 안 할 문제였다. 손가락으로 세어도 양손을 초과하는 이들이 샬레로 들이닥친다.
들뜬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그들은 호시탐탐 그를 노렸다. 상황에 따라서는 총격전도 발생했고 잠시 숨을 돌린 틈에 납치될 뻔한 일도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이미 회차를 거듭하며 학생들은 분쟁에 익숙해져 그 수법들이 많이 발달했다. 미리 준비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이토록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크리스마스가 순식간에 피로 얼룩진 산타가 전장을 지배하는 서바이벌로 타락할 것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몸을 숨길 곳을 찾아서 얼른 샬레를 나서야 한다.
꼬마 아이들이 하나의 인형을 서로 가지겠다고 잡아당기다 찢어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멍하니 있다가 자칫 발각되기라도 하면 딱 그 꼴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만화 속의 유능한 닌자가 아니었다. 다중 그림자 분신술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수십 등분으로 넋이 찢어질지도 모른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의 등을 껐다. 순식간에 사방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창밖에서 들어오는 은은한 불빛만이 눈앞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밝혔다.
차근차근 짐을 싸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 아직 이른 시간 같지만,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무사히 도망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우선 입 밖으로 내일 계획에 대해 일절 말을 꺼내면 안 된다. 어차피 아직 아무런 계획은 없었고 최근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편하게 쉬고 싶을 뿐이지만, 아무튼 안 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듣고 있을지 모른다.
샬레에서는 이미 자기에게 프라이버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보자, 내일은…. 오전에는 밀레니엄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오후에는 트리니티에….”
그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수첩을 펼치고 되는대로 없는 말을 말했다.
블러핑.
어둠 속에서 암약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보의 혼선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미리 챙겨 온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한 안경이나 목도리, 모자까지 완벽하다고 확신했다. 가방에는 만일을 대비한 다른 복장도 준비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력자를 구해 두었다.
츠카츠키 리오.
그녀라면 이 사방이 꽉 막힌 전장에서 자기를 꺼내 줄 것이라고, 그리고 이 몇 안 되는 휴일에 걱정 없이 쉴 수 있게 해줄 거라고,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샬레를 빠져나왔다.
―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왔다.
“빨리 받아줘, 제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선생님인데, 언제부터 액션 영화 배우가 된 거지?
모르겠다.
그런 건 모르겠고, 얼른 이 통화가 연결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여보세요!? 리오! 준비된 곳까지 거의 다 왔어!”
「거기서 곧장 3번 플랫폼으로 이동해. 열차는 준비해 뒀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가서 꼭 보답할게….”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가히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 속의 스턴트맨이었다. 준비한 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내일의 계획이 어쩌고저쩌고는 무슨, 이미 블러핑인 것을 전부 눈치채고 그가 도망칠 거라는 것까지 학생들은 눈치챘다.
샬레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막이 오른 것이다. 굳이 크리스마스 당일에 나설 필요가 있는가? 먼저 선점하는 쪽이 승자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변장을 준비한 것이지만, 속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거추장스럽기만 해서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때 눈치챈 것은 변장을 위해 준비한 의상에도 도청기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복면 쓰고 ‘으헤, 우리는 안 잡아먹어. 자암깐만 같이 가주면 된다구.’ 같은 소리를 하며 총구를 들이미는 무장 강도단부터―
어디에 숨어도 신출귀몰하게 나타나서 말을 거는, 인법연구부의 학생들에게 꼭 소개해 주고 싶은 닌자 간호사―
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희귀종 칠면조로 만든 요리를 대접하겠다며 차까지 끌고 온 미식의 악마와 이제는 기본 옵션이 되어버린 제물 소녀까지, 그 밖에도 정말 많은 학생들이 그의 뒤를 밟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스마트폰 속의 리오가 준비해 준 도주 루트만을 이정표로 삼아 미친 듯이 뛰었다. 격무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는 체력 단련의 효과를 여기서 톡톡히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목적으로 선생을 찾아왔던 학생 중 일부가 그의 고충을 이해하고 같은 편에 서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여기는 저희가 막을 테니 얼른 도망치세요!’ 아직도 그 감격스럽게 고마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꼭 맛있는 거라도 잔뜩 사서 공원에 보답하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적진에 숨어든 첩보 요원처럼 건물 구조물에 몸을 숨기며 3번 플랫폼으로 향했다.
“하아…, 하아….”
준비되어 있던 물류 수송용 무인 열차에 탑승하자, 열차는 지체 없이 출발했다. 그 순간까지도 어떻게 알고 쫓아왔는지 눈앞에서 놓치고 씩씩대는 학생들에게 ‘얘들아, 제발 선생님도 좀 쉬자!’ 하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도착한 곳은 밀레니엄 자치구 외곽이었다.
“어라?”
리오가 실시간으로 도주 루트를 수정하고 안내해 주던 애플리케이션의 인터넷 연결이 끊어졌다.
의아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이 주변은 몇 차례 방문해 보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대로 큰 도롯가를 따라서 나아가면 그녀가 은거하고 있는 폐빌딩이 나온다.
괜히 불안해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인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 어느새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이대로 오늘과 내일을 무사히 버텨내면 이번 크리스마스도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웃어댔다.
그때, 건너편 도로의 무너진 자재들 사이에서 익숙한 밀레니엄제 드론 하나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음? 리오가 준비한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드론이 점차 가까워짐에 따라서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얼핏 보면 평범한 밀레니엄의 경비 드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AMAS 마크가 있어야 할 곳이 검은색 매직으로 마구 덧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그것은 밀레니엄 동아리관에 있는 ‘그녀’의 아지트로 안내해 주는 드론이었다.
“세상에, 설마….”
“예. 바로 그 세상에, 설마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설마 했던 그녀가 있었다.
“설마,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도망쳐 오실 줄은….”
“히마리!”
“네, 저랍니다. 하지만, 으음…. 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네요.”
“어떻게 여기를….”
“후후. 하마터면 놓쳐버릴 뻔했습니다만, 이 정도 변수. 훌쩍. 그래요, 이렇게 티슈로 흐르는 콧물을 닦는 것보다 손쉽게 대응할 수 있답니다. 훌쩍.”
“….”
“평범한 학생이라면 목이 꺾일세라 극진히 조심스럽게 우러러보아야 할 「전지全知」이자, 얼어붙은 호수 한 가운데 홀로 핀 밀레니엄의 청초하고 가녀린 꽃. 다름 아닌 저, 아케보시 히마리이니까요. 훌쩍.”
노란색 패딩과 두꺼운 담요로 한파를 대비해 중무장한 그녀가 코를 훌쩍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원래 제 계획대로라면 훨씬 더 일찍 접촉했을 테니까요. 묘하게 마수의 손길이 느껴져서 설마 하긴 했습니다만…. 선생님? 정말로 완벽히 도망치고 싶으셨다면 스마트폰은 샬레에 두고 나오시는 게 정답이었습니다. 훌쩍.”
스마트폰 화면 가운데에는 그녀를 상징하는 꽃잎 그래픽이 장난스럽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물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제 후배 중에도 시도한 사람이 있던 모양이지만, 곳곳에서 달려든 네트워크의 하이에나들은 제가 전부 차단했습니다.”
“어쩐지 아무리 따돌려도 금세 들킨다고 했더니!”
“하지만, 이제 선생님이 여기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건 저와 그 여자뿐이랍니다. 훌쩍. 어때요, 오늘만큼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칭찬해 주고 싶지 않으시는가요? 후훗. 훌쩍.”
“다행이야…. 정말 고마워. 잠깐. 그런데, 히마리.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켕기는 것이 있는지 후후하고 싱그럽게 웃던 히마리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후, 후훗…. 그건…, 그, 그보다 선생님? 오늘은 평소보다 더 춥지 않나요?”
“춥긴 한데….”
“그러니까 둘이 같이 있으면 좀 따뜻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밤에 집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이런 허허벌판 같은 외곽지에서 떠돌다니. 무척 심심하실 거랍니다. 하지만, 저 같은 미목수려한 재녀가 옆에서 있다면 단언컨대 선생님을 심심하지 않게 해드릴 수 있다구요? 훌쩍.”
요컨대, 그녀도 선생님을 노리고 있던 학생 중 한 명이라는 얘기였다. 히마리는 그 뒤로도 에둘러서 한참이나 자신을 어필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제 발로 찾아오신 곳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여자의 아지트라니요. 무슨 술수를 쓴 건가요?”
“응?”
“설마 그 자비 없고 폭력적인 가슴으로 유혹한 건가요? 아니면, 자기한테 오지 않으면 밀레니엄에 독이라도 풀겠다고 협박이라도 하던가요?”
“저기 잠깐, 히마리?”
“차라리 저한테 연락하셨다면 좀 더 신속하고 훌쩍, 퍼펙트하게 안전한 제 아지트로 모셨을 텐데요.”
“네가 생각하는 이상한 일은 없었어. 그냥 음…, 단순히 리오라면 분명 편히 쉬게 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부탁했어. 벌써 며칠째 철야라서 내가 좀비가 됐나 싶을 정도로 피곤해서….”
단순히, 이 이유를 단순히― 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 표정…, 방심했네요. 리오…, 그 소심한 여자가 선생님에게 이렇게나 호감을 사다니…. 분명 선생님을 이곳으로 안내해 드린 건 저였지만, 그건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믿고…. 잠시만요.”
히마리가 코앞까지 다가와서 인상을 쓰고 물었다.
“혹시 제가 없는 곳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요?”
이상한 일? 무슨 일을 말하는 걸까. 이상한 일이라…, 분명 켕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단언― 하려던 찰나, 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빼빼로데이를 떠올렸다.
“선생님? 왜 말씀이….”
“….”
“그, 그렇게 침묵하시면 저 상처 받아요?”
“어…, 음. 선을 넘지는 않았…, 다고 생각해.”
“네? 무슨 선이요? 뭐, 뭔가요! 그 한창때의 소녀도 안 지을 것 같은 교과서처럼 부끄럼 가득한 표정은! 큿.”
눈이 휘둥그레진 히마리가 씩씩거리다 마침내 눈을 감고 해탈한 표정으로 안색을 잃고 기절한 척을 했다.
“잠, 히마리! 정신 차려! 히마리―!”
그 모습이 귀여워서 선생도 다소 오버해서 받아주었다. 물론 ‘저 안 죽었으니 호들갑 떨지 말아주세요.’하고 되려 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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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뭐야 츠카츠키 양인가

굳~

개맛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