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

높은 창공에 겨울을 펴낸다.
이 목숨 끝에 누군가에게 남길 말을 받았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흘러가는 시간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상』하기는 쉽지만 극도로 정밀하고 확실한 미래를 『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99%로 적중하는 예상이 있다고 해도, 1%의 편차가 존재하는 시점에서 그것은 예지가 될 수 없다. 거기에, 숫자만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이 세상에 100%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미래를 모른다.
"......"
노아는 혼자 자신의 방에서 책상에 앉아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백지의 설문지. 『진로희망서』라 이름 붙은 그것은 얼마 전 밀레니엄 2학년 학생들에게 배포된 것이다. 이름 그대로 앞으로 노아와 학생들이 걸어갈 미래를 선택하는, 그 사고의 기반이 되는 물건이다.
1 희망부터 3 희망까지의 란이 준비된 그 종이는 노아의 눈에 모종의 미래 설계도처럼 비치고 있었다. 아마도 거기까지 무거운 의의를 지닌 설문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가볍고 단순한 것도 아니다.
기록이란 본래 현재의 의사를 미래에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게 평가한 것은 바로 노아 자신임이 틀림없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가치관의 지침이다,
형체 있는 종이 위에 남긴 주관적인 기록은 지금의 노아가 품고 있는 사적인 감정을 남김없이 미래로 이어갈 것이며, 언젠가는 굳어진 취향이 되어 노아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진로희망서』에 적은 노아의 뜻 자체가 언젠가 미래에서 노아 자신을 얽매게 될 거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종이에 남겨야 하는 건 『미래예상』이라는 모호하고 비정형적인 주관적 기록이다.
본래 누구에게도 예측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퍼져 나가야 할 시간의 흐름을 그 기록은 좁혀버리고 만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에 그 폭을 좁히고 싶지 않다 ―― 마음 어디선가 그렇게 주장하는 바람에 노아는 이 빈칸을 채울 수가 없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그럼, 어떻게 할까요."
톡톡, 잡은 샤프펜슬 끝으로 책상을 두드린다.
제출 기한은 아직 멀었지만 이대로 방치해도 이 빈칸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명확한 해결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게 노아로서는 곤란한 점이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앉은 채로 기지개를 켠다.
찌릿찌릿 등줄기가 당겨지는 감촉으로 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었음을 깨달았다. 힐끗 책상 끝을 보자 탁상시계는 날짜가 바뀌기 직전임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라고 노아는 마음속으로 결론짓는다. 밤샘은 몸에 좋지 않고 내일은 아침부터 샬레 당번이니까. 지각할 수는 없다.
쥐고 있던 펜을 케이스에 넣고 책상 위에 펼쳐진 설문지를 네 번 접어서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메모장에 끼운다.
그러고는 하아, 하고 두 번째 한숨을 내쉬고 메모장을 닫았다.
◆
"잡담 좀 하지 않으시겠어요?"
실온 21.5℃ 습도 58.3% 창밖은 맑고 화창한 겨울 날씨.
샬레의 집무실. 하얀 소파에 걸터앉아 노아는 말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노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선생님이 곤혹스런 목소리를 높인다. 그와 동시에 이제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쌓인 서류의 탑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엇차 안되지, 라며 선생님은 그것을 땅에 닿기 전에 캐치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노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뇨,' 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엄청 피곤해 보이셔서요. 쉬는 김에 어떨까요?"
노아가 샬레를 찾아온 게 오전 8시 43분 18초. 그리고 지금은 오전 11시 34분 52초. 선생님은 그동안 휴식도 취하지 않고 담담하게 서류를 계속 마주 보고 있었다. 연말에 처리할 일이 많아서, 라며 푸념에 가까운 목소리로 웃었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노아에게 돕게 할 내색은 없다.
애초에 선생님의 일에는 각 학원의 내부 사정 같은 대외비인 게 매우 많기에, 노아에게 손을 빌리지 않는 것도 납득되긴 한다. 납득은 되지만 무엇을 위한 『당번』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적어도 밀레니엄 관련된 것만이라도 도와드릴게요, 하고 진언은 해봤지만 괜찮으니 편하게 있어 달라며 은근슬쩍 피했다. 그것이 선생님 나름의 상냥함이라는 건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바쁜 선생님 앞에서 자신이 그저 게으름피우고 있을 뿐이라는 건 조금도 참을 수 없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너무 자신을 돌보지 않으세요.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게 최종적인 효율이 올라가니까요."
친구인 유우카나 선생님처럼, 아무래도 노아의 주변에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그들의 미덕이고 존경받을 만하다고 노아는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그 모습이 순수하게 걱정된다.
무리해서 몸을 망치는 게 가장 좋지 않다.
"으음... 뭐, 그렇지."
선생님은 조금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더니 자못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를 끓여 올게요."
"에, 아니야, 내가 할게."
"아뇨. 이 정도는 하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의 저는 아무것도 돕지 못했으니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지만... 뭐, 노아가 그렇게 말한다면 부탁할까?"
"후후. 네, 맡겨주세요."
탕비실로 향해 머그컵 안에 인스턴트 커피 가루를 넣는다. 노아 것을 포함해 두 잔 분량. 노아로서는 홍차나 허브차가 진정 작용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샬레에는 커피만 상비되어 있기에 어쩔 수 없다. 다음번에 들여오자고 생각하면서 전기 주전자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뽀글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주전자를 바라보며 노아는 책상에서 소파로 이동한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은 커피파시죠."
"?"
"항상 마시고 계시는구나, 라고 생각해서."
"...듣고 보니 그럴지도. 그래도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런가요?"
"응. 그러네... 가장 눈 뜨고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커피라서 그러려나."
"...그렇군요."
그건 확실히 선생님답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워커홀릭다움이 느껴지는 그 이유는 맛이나 향을 좋아한다는 것보다 훨씬 『선생님 같은』 이유였다.
노아의 인상에, 본질적으로 선생님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효율 중시 인간이다. 칠칠치 못하고 어린애 같다고 이전 유우카가 이 사람을 평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어느 쪽인가 하면 만들어 붙인 페르소나가 아닐까, 하고 노아는 생각한다. 가면을 뒤집어쓴 가짜 인격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마도 의식적인 구분일 것이다. 그 자리, 그 분위기에 맞춰 선생님은 『어른』과 『아이』를 오간다.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단순한 온오프다. 켜졌을 때 선생님은 성실하고 의지가 되는 어른으로, 오프라면 어딘가 모자라 보여 놀려먹는 보람이 있는 아이 같은 모습이 된다. 그리고 커피가 가져오는 기능적인 면만 보고 그것을 상시 음용한다는 그 사고회로는 온 상태의 선생님에게 잘 어울린다고 노아는 느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기 주전자가 물 끓는 소리를 냈다. 노아는 그 내용물을 천천히 컵에 붓고 두 커피 각각에 스틱 슈가를 한 포씩 녹인다.
선생님은 항상 블랙을 마시지만 휴식이 목적이라면 당분 정도는 있어도 좋겠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요."
두 컵을 테이블 위에 살짝 올려놓고 노아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선생님과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고마워, 하고 선생님은 웃으며 컵에 입을 댄다. 순간 얼굴을 찌푸린 건 커피가 뜨거웠기 때문일 거다. 본인이 말한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이 상당한 고양이혀라는 걸 노아는 매일 하는 『기록』의 부산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잡담이었나?"
몇 초에 걸쳐 커피와 씨름하고 나서 선생님이 말했다.
노아도 자신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그렇습니다, 하고 눈을 내리깐다.
"별로 무리해서 얘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잡담이라는 것도 선생님이 쉬게 하기 위한 구실이었으니까요."
"아, 그런가... 그래도 이왕이면 뭐라도 얘기할까? 모처럼 샬레까지 와줬는데 노아도 따분했을 테니까."
'많이 상대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선생님은 미안한 듯 눈썹을 찌푸리고 여전히 탑처럼 쌓인 책상 위의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노아도 이끌려 시선을 돌리고 '아뇨', 라며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은 결코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샬레의 선생님』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니만큼 노아를 상대해 주지 않는 것이 따분하다고 불평하는 건 선생님에게 무례한 행위일 것이다.
"업무니까 어쩔 수 없죠. 선생님이 제게도 도와달라고 했다면 따분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은 돕게 해 줘도 좋았을 텐데, 라는 것도 본심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노아는 짐짓 놀리는 투로 선생님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듣더라도 진지해지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기주장을 담을 수 있게.
그렇게 노아가 목소리에 숨긴 두 가지 속마음을 읽어냈는지 선생님은 민망한 듯이 뺨을 긁으면서도 미소 지었다.
"아하하, 그거야... 뭐, 내 일이니까 말이지."
대답은 어떻게 보면 상상했던 대로였다.
노아는 가느다란 숨결을 입 밖으로 흘리며 낙담인지 유감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 그대로 커피잔의 가장자리를 바라본다.
이 어른은 이상하게 완고한 면이 있어서 아마도 자신 안에 『넘지 못하게 하는 선』을 정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기준으로 정해진 것인지는 아직 노아도 짐작할 수 없지만 십중팔구 그것이 선생님의 프라이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프라이드라 해도 그것을 악화시킨 끝에 터뜨리는 부류의 자존심이 아니라, 선생님 자신이 가진 어른으로서의 긍지를 말한다. 노아 같은 학생――요컨대 『아이』의 손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든가, 혹은 『아이』에게 일이 아닌 휴식을 주고 싶다든가. 구체적으로 어떤 긍지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런 부류의 내용일 거라고 노아는 예상했다.
비정상적으로 뚜렷한 온오프 전환도 어쩌면 그런 사고 끝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중 켜졌을 때는 학생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도록 완벽한 모습을 만들고, 그 외 오프때는 친근한 거리감으로 가까운 모습을 만든다. 그 모든 것은 샬레를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안녕과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그래서 선생님은 당번 학생의 도움을 최소한으로만 받는 거고, 그것은 이제 일방적인 봉사 행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냥함을 주는 것일 거다.
그것은 도저히 합리와는 거리가 먼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선생님의 매력으로 연결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단순하고 간결한, 효율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사고에 사로잡혀 휘둘리며 그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찾아간다. 그것은 극도로 인간미 있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것을 누구보다도 강하게 구현하고 있는 게 선생님이었다. 그렇기에 분명 이 어른은 『아이덴티티 확립』을 명제로 내세운 채 사춘기를 조용히 죽이고 있는 노아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에게는 눈부시고 강한 동경의 대상으로 비치고 있다.
그래서 노아는 그런 선생님의 『선』이라는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 솔직히 안타까웠다. 그도 그럴 게 선생님에게 노아가 아직 어린아이로 보인다는 증명이 되어버리니까. 자신이 어른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른스럽다, 라고 하는 것에는 다소 닿아 있다는 자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스럽다』일뿐이고, 도저히 어른 그 자체와는 거리가 멀다 ―― 그것을 이해해 버리기에, 속이 탄다.
"노아?"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 채 고요한 사고의 소용돌이에 잠겨 있던 노아에게 선생님이 의아한 듯 말을 걸었다.
별것 아니라며 노아는 고개를 흔들고 바라보던 컵에 입을 댄다. 설탕의 단맛이 희미하게 섞인 카페인과 원두의 풍미. 자신의 것만이라도 블랙으로 할 걸,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 것은 블랙커피 = 어른의 음료라는 스테레오 타입의 도식 탓이다. 사실 블랙을 마신다고 어른이 될 리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생각해버린다.
너무 생각이 많아졌나, 하고 눈을 내리뜬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어른이니 아이니 하는 모호하고 기록하기 어려운 철학의 회랑에 생각이 사로잡혀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
『진로희망서』의 탓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결론짓는다.
미래에 대해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어른이 된다』라는 팩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어떤 정의로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평가하는가. 그것은 유사 이래 회답이 존재할 수 없는 문답이라고 노아는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생명이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이나 과정이 존재할 것이고, 혹은 어쩌면 그것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하던 진로를 찾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내는 행위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가까운 것 같았다.
가까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 오늘의 노아는 그 어느 때보다 선생님과 노아의 차이――어른과 아이의 차이를 생각하는 행위에 의식이 끌리고 있을 터다.
가장 가까운 어른을 생각함으로써 조금이라도 계기를 얻으려고 한다는 것.
그렇다면 차라리 정면에서 물어보는 게 나을까. 일련의 자기 분석 끝에 노아는 그렇게 결정하고 손에 든 커피잔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소파에 걸터앉은 자세를 바로잡고 작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입을 연다.
"...선생님, 이건 잡담입니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휴식을 취하자고 권유해 둔 입장에 "상담이 있습니다"라고 신청하는 것은 조금 이기적이기에, 노아는 어디까지나 잡담의 일환이라는 입장에서 말을 꺼냈다.
"?"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이 시선을 향한다. 그 검은 눈동자가 노아의 자색을 띤 검푸른 눈동자와 마주친다.
"얼마 전, 밀레니엄 2학년 학생들에게 『진로희망서』가 배포되었습니다."
"그렇다더라."
"어머, 알고 계셨나요?"
"응. 저번에 유우카도 말했었어."
"......아, 그렇군요."
확실히 유우카라면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것 같았다. 납득과 함께 노아는 맞장구친다.
그렇다면 혹여나 지금부터 노아가 하려는 상담도 유우카가 이미 했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생각하며 노아는 교복 주머니로 손을 뻗는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메모장을 꺼내 안에 끼워두었던 한 장의 프린트물을 컵 옆에 늘어놓았다.
1 희망부터 3 희망까지가 배정된 설문지. 우시오 노아라는 이름 외에는 완전히 백지인 그것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노아는 한숨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크기의 흔들리는 호흡을 지그시 흘렸다.
"결정하지 못하겠어?"
"...어떠려나요."
대답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결정할 수 없다는 건 또 다른 얘기인 것 같다. 노아는 선택지를 헤매고 있는 게 아니라, 애초에 시작부터 이 종이와 마주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었다.
"선택지가 많다는 건 이해하고 있어요."
"응. 그렇지. 노아는 아직 선택할 권리가 많이 있어."
"네. 하지만..."
말문이 막혔다.
이 마음속에 깃든 감정을 제대로 언어화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쓰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주하고 싶지 않다. 생각나는 말이 몇 가지 있지만, 그것은 모두 노아의 마음과는 크든 작든 어긋나있는 듯하다.
"어렵지. 진로라든가, 장래라든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니까 말이야."
후우, 후우, 하고 커피에 입김을 불면서 선생님은 말했다. 아무래도 그냥 마시기에는 너무 뜨거워 포기한 모양이다.
"나도 옛날에는 잘 알지 못했어. 딱 노아 정도 됐을 때 나도 썼거든. 진로희망서."
"선생님도요?"
"응. 뭐어, 나도 노아처럼 젊었을 때가 있었으니까... 아니, 지금도 아직 젊다는 생각은 있지만 말이야. 일단은."
먼 과거를 그리워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선생님은 커피에 입을 댄다. 앗뜨거, 하고 직후 날카롭게 투덜거리더니 다시 한번 컵으로 숨을 불었다.
노아는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며 그 『젊었을 때』를 떠올린다. 이 사람은 어떤 아이였을까.
의외로 유우카와 같은 학생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지식하고 효율적이며, 간혹 얼빠진 부분도 있는 ――― 선생님과 유우카에게는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계산기를 한 손에 들고 「칸페키~」라며 미소 짓는 어린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노아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아, 웃었지! 뭐 확실히 노아의 시선에서 보면 난 더 이상 젊지 않겠지만..."
그런 노아의 모습에 선생님은 아무래도 착각하는 눈치였다.
호들갑스럽게 충격받은 내색을 보이는 선생님에게 노아는 약간 허둥대며 고개를 흔든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선생님은 어떤 아이였는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네."
노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은 신기한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아이라... 으음... 딱히 별거 아닌 평범한 학생이었어. 아침에 일어나서 졸리다고 생각하며 등교하고, 수업 듣다 가끔 졸기도 하고, 방과 후가 되면 친구들과 교실에서 떠들다가 집에 오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그러니까 정말 아무것도 쓸 게 없었지, 진로는."
그런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책상 위의 종이로 시선을 옮겨 작게 숨을 들이쉰다.
"노아는 말이야, 총명한 아이니까... 옛날의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렇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만..."
"아니, 그럴 수 있어. 노아만큼 똑똑하다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보이고 선택지 끝에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는지, 반대로 그걸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그런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말이야, 아마... 그렇게 상상할 수 있으니까 고민할 것도 많겠지."
슬슬 괜찮으려나, 하고 컵을 바라보다가 선생님은 그 가장자리에 입술을 갖다 댄다. 컵 속의 검은 액체를 조심스레 입에 머금고 괜찮을 것 같다며 그대로 들이켰다.
다음부터는 얼음을 넣어둬야하나, 하고 노아가 생각하는 사이에 선생님은 이야기를 재개한다.
"뭔가를 선택하는 것은 뭔가를 선택하지 않는 것과 같지. 예를 들어 문과와 이과라든가."
선생님의 말에 수긍한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이 장소에 펼쳐진 무수한 선택지 중에서 단 한 가지를 선택했다면 선택된 그 이외의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선택되지 못한 것들은 노아의 마음속에서 분리되고 지워진 뒤 어느새 풍화되어 선택지 중 하나였던 것조차 잊히고 말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가능성의 손실로, 미래의 폭을 좁히는 것과 다름없다.
"노아는 분명 그 고르지 않는다는 것이 싫은 게 아닐까.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에 몇 년 후나 몇십 년 후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아닌가? 하고 선생님은 부드럽게 노아에게 물었다.
노아는 잠시 선생님의 말을 음미하고 나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이 종이에 남긴 기록이 제 안에 강한 편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하, 그러네. 하긴 여기에 쓴 『되고 싶은』 것에 아무래도 생각이 끌려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네. 여기에 미래를 예상한다는 게 자신의 미래를 좁혀버릴까 봐 두려웠어요."
마음은 알아, 라고 선생님이 말한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지금의 자신이 본 미래는 그보다 더 미래의 자신이 보면 과거가 돼. 그리고 사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먼 미래에서 후회했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없지. 지금의 노아가 『되고 싶다』며 그 종이에 그린 미래가 앞으로의 노아에게도 똑같이 『되고 싶은』 미래인지는 모르겠지."
선생님의 말에 몇 번 고개를 끄덕인다.
노아 자신조차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마음속을 선생님은 무너뜨리고 풀면서 언어화해 나간다.
"이 종이는 어떻게 보면 제일 첫 번째 선택이지. 여기에 무엇을 그리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노아는 크게 달라지게 된다. 그러니까 희망진로를 쓰는 게 싫다고 느껴지는... 아니 싫다는 건 좀 과한가. 으음... 쓰기 어렵다고 할까, 사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사양인가요?"
"그래. 노아에게 여기는 큰 갈림길이 될 테니까.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 신중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하고 선생님은 계속했다.
노아는 잠자코 그 뒤를 기다린다.
"아마 노아는 선택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야. 혹은 선택하기 위해 생각하는 방법을."
"......?"
그다지 그 말의 진의를 읽지 못하고 노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선생님은 그런 노아의 모습에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지, 하고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후우, 하고 뭔가 결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그러네... 응. 내 얘기를 할까?"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은 소파에 앉은 자세를 바로잡는다. 잔잔한 그 눈동자가 노아를 꿰뚫고, 그 시선의 곧음에 숨을 삼킨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노아를 보는 듯하면서 그렇지 않은 듯한. 아니면 노아 너머로 어딘가 먼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신기한 눈동자.
노아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선생님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선생님은 잠시 말을 찾듯 굳어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생은 기나긴 자살이야."
그렇게 전해진 말의 무거움에, 노아는 측두부를 강타당한 듯한 충격을 받았다.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정도의 눈 깜빡임을 반복한다. 선생님이 말한 그것은 너무나 뜻밖인 소리의 울림이었고, 그 내용을 다 삼키지 못해 노아의 사고는 굳어 있었다.
선생님은 조용한 미소를 잃지 않고 그런 노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커피에 고전하던 선생님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모종의 경외감마저 느낄 정도의 냉정함을 그 표정에 담고 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선생님 자신과 이 대화의 내용, 그리고 이 방 자체를 둘러싼 분위기가 급격히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화제가 될 것이다. 노아는 자기 안에서 그렇게 결론짓고 소파에 앉은 자세를 다시 바로잡는다.
그러고는 『기록』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 같은 사고가 뇌 한가운데서 주장을 시작했다. 컵 옆에 둔 메모장을 들고 백지인 페이지를 손에서 편다.
"별로, 네거티브한 발언은 아니야. 노아가 앞으로 선택지를 정하는데 그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저에게, 인가요?"
"응. 나에게도 이건 중요한 말이었어."
그리워하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노아는 메모장에 『인생은 기나긴 자살이다』라는 문자열을 적는다.
선생님은 노아가 메모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그 뒤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마침 지금의 노아와 비슷한 시기에 나도 진로를 고민했어. 뭐, 나 같은 경우는 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네, 쓸게 없네, 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소중한 사람이 그 말을 해줬어."
"소중한 사람이요?"
"맞아. 당시의 담임선생님이지만 말이야."
슬픈 듯 부끄러워하면서 선생님은 말했다. 자애로운 듯하면서 쓰라린 듯한 쓸쓸한 미소.
지금껏 본 적도 없었던 그 표정에서 노아는 『소중한 사람』의 의미를 짐작한다. 그저 조용히 그 뒤의 말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진급하는 것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어."
양손 끝을 깍지 끼며 선생님은 말을 이어간다.
"신기한 사람이었어.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항상 우는 것처럼 웃었지. 손대면 무너질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그런 점이 좋았던 거야."
기억을 더듬으며 선생님은 중얼거린다.
말과 함께 흔들리며 흘러나오는 호흡의 색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닮았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탈선했네, 미안. 선생님이 자학하듯 흘린 말에 노아는 고개를 흔든다.
무심코 화제가 탈선해 버릴 정도로 깊은, 선생님의 근본적인 부분을 듣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맞장구 하나 치지 않고 그저 조용한 청중으로서의 태도를 관철한다.
"『인생은 기나긴 자살이야. 우리는 숨 쉴 때마다 조금씩 끝으로 다가가며 쇠퇴해가지. 하지만 우리는 결코 죽기 위해 살고 있지 않아.』"
그리고, 평소의 목소리보다 평탄하게, 담담하게 선생님은 말을 자아냈다. 그 톤으로 보아 그것이 『받은 말』의 내용임을 노아는 파악하고 조용히 메모장에 기록을 남긴다.
동화 낭독이라도 하듯 차분한 목소리로 눈을 내리깐 채 말은 계속됐다.
"『죽기 위해, 끝나기 위해 사는 삶에 가치 따위는 없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 이 순간까지 호흡을 이어온 의미가 가치 없는 것일 리가 없잖아』."
――우리는 끝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어.
내리깔던 시선을 노아에게 돌려, 단언하듯 선생님은 말했다.
"『중요한 건 사는 거야. 언젠가 다가올 마지막에 겁먹으면서 끊임없이 고동치는 거지. 메멘토 모리 ―― 죽음을 잊지 마. 이 삶의 끝에 기다리는 것이 손쓸 수 없는 죽음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힘껏 살아갈 수 있어.』"
메모한다. 한 글자의 누락도 없게,
형성되는 하나하나의 음색에 분명 노아가 원하는 결론이 담겨 있을 테니까.
"『사는 거야. 언젠가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거야. 아무리 촌스럽고, 몇억 번 후회해도 상관없어. 단 한 가지, 그 여정의 끝에 기다리는 것이 손쓸 수 없는 끝이라는 것만 가슴에 새기고 언젠가 다가올 그날까지 남은 시간을 최대한으로 살아야 해.』"
선생님이 잠시 말을 끊는다.
몇 초간의 정적을 사이에 두고 선생님은 대장편의 서사시를 마무리 짓듯 모아놓은 말을 형태로 만들어 간다.
"『인생은 기나긴 자살이야.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해. 우리는 1초마다 죽어가. 죽어가기 때문에 눈을 돌리지 말고 마주 보는 거야. 언젠가는 사라질 이 심장이 아직 따뜻할 때 실컷 살아야 해. 우리는 오직 살기 위해서 이 삶이라는 이름의 길고 긴 자살을 하고 있는 거니까.』―――이것이, 내가 받은 그 사람의 소중한 말이야."
어려운 이야기였지, 라고 선생님이 말한다.
노아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멋진 얘기였어요."
싫어질 정도의 인간 찬가였다고 노아는 생각한다.
혹시 이 말을 선생님께 남긴 『그 사람』은 남은 시간이 짧았던 건 아닐까 ―― 그런 의심이 마음속에 있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헤아린 인간이 남겨지는 누군가에게 남긴 유언처럼 들렸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당시의 선생님도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낭독처럼 담담한 어조 속에 섞여 있던 감출 수 없는 비관의 소리를 노아는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사라져 버렸다고 선생님이 표현한 그 사람의 행방은 노아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상상할 수 있기에 이 말은 지독하게 무겁다.
메모장에 남긴 말들을 펜촉으로 더듬어가며 노아는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한 말의 의미를 소리로 만든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신가요? 뭔가를 선택하고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 같아요."
"응. 그러네...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들었을 당시에는 말이야, 잘 몰랐어.
반쯤 내용물이 줄어든 커피를 마시며 선생님은 웃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왠지 알 수 있어. 그때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나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그러니까 말이야...여기서는 우선 나로부터의 말로 전할게."
지금부터가 노아에 대한 조언. 커피잔을 책상에 되돌려 놓고 선생님은 말한다.
노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메모장을 젖히고 새하얀 페이지를 준비한다.
"선택하는 법을 모른다, 생각하는 법을 모른다 ―― 나는 노아에게 그렇게 말했지."
"네."
"그걸 알려줄게. 어디까지나 내 체험담이지만 말이야."
발설금지로 말이야, 하고 선생님은 속삭인다.
그러고 나서, 그러네, 하고 고개를 돌려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어른이 된다는 게 어떤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던진 질문에 노아는 눈을 어렴풋이 뜬다.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와의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노아는 의아함을 느끼며 머리를 회전시켰다.
"그렇네요..."
중얼거리며 떠올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입을 타고 나온 것은 선생님에게 품는 어른의 이미지였다.
"...전환이 가능한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가지는 것."
온오프의 전환, 자신의 안에 강한 심지를 지닌 의지.
일이 능숙한 멋진 모습에 친해지기 쉬운 붙임성 있는 모습, 스스로 정한 어른으로서의 선을 절대 깨지 않겠다는 강한 긍지.
노아가 선생님에게서 느끼는 『어른』은 그런 것이지만 아마 선생님이 원하는 모범답안은 이게 아닐 것이다.
"그렇구나. 확실히 그것도 어른스러울지 모르지만..."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노아의 답변을 긍정하면서도 부인했다.
노아는 특별히 나빠질 것도 뭣도 없이 선생님이 이어 나갈 답을 기다린다.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을 꾸는 거야."
그리고 가르침 받은 대답에 노아는 오늘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물음표를 띄운다.
그것은 너무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노아를 선생님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바라본다.
"아하하, 의외였을까?"
"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답이었어요."
"그렇겠지. 애당초 어른과 꿈의 두 가지는 그다지 이퀄로 맺어지지 않는 법이고."
선생님의 말에 수긍한다.
일반적으로 꿈은 아이들이 꾸는 것이다. 뭐가 되고 싶다, 뭐가 하고 싶다. 어른이 된 자신에 대한 희망이 장래의 꿈이고, 그것은 막상 어른이 되면서 잃어간다는 인식이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고 있다.
"어른도 됐고 나이도 많고 언제까지 꿈을 꾸냐, 더 현실을 보고 살아라 ―― 아마도 어른과 꿈이라고 하면 이런 이미지가 세상 대부분일 거야."
"그러네요. 저도 비슷한 인상이긴 했어요."
"그렇지? 하지만 사실은 아니야. 사실 어른이야말로 꿈을 꾸고 살아야 해."
과장되게 팔을 벌리면서 선생님은 계속한다.
"되고 싶은 걸 쫓아가야 한다. 되고 싶은 게 되어야 한다. 노아. 인생은 한 번뿐이고, 기나긴 자살이야. 그저 숨쉬기만 해도 우리는 죽어가. 하지만 그렇기에 꿈을 버리면 안 돼. 되고 싶은 것, 원하는 미래를 그리는 것을 절대 그만두면 안 돼."
선생님의 말을 기록해간다.
글자 하나 구절 하나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기 위해서.
"후회해도 상관없어. 선택받지 못하는 게 있어도 상관없어. 애초에 모든 것을 선택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때의 감정대로 선택한 길은 절대 실수가 될 수 없으니까."
"선생님도 그랬나요?"
"물론. 나는 『선생님』이 되는 걸 꿈꿨어. 그 사람이 준 말과 가르침을 누군가에게 남기고, 언젠가 올 마지막까지 힘껏 살아보자는 생각에 선생님이 된 거야."
"후회한 적은 없나요?"
"있지. 몇 번이나 있어. 아무리 간절히 바랐던 것이 되더라도 후회는 반드시 따라와. 그때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요즘도 가끔 그러곤 해."
하지만 선생님은 주먹을 쥐었다.
허공에 떠 있던 가까운 무언가를 움켜쥐듯이.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후회와 그것은 다른 마음이야. 나는 내가 선택한 지금을 틀렸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
힘찬 목소리였다.
생각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 그런것을 극복하고 강하게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설득력이 넘치고 있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어른』이야. 천진난만하게 꿈을 똑바로 좇을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 되는 것 = 꿈을 꾸는 것』이라고 메모장에 펜을 놀린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노아가 뭘 고민하는지는 알아. 이 종이에 미래를 그려나감으로써 있었어야 할 다른 가능성을 빼앗는 걸 두려워 한다 ―― 그건 전혀 잘못된 생각이 아닌데다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정론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선택해야 할 때도 있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선생님은 한숨을 내쉰다.
싫어지겠지, 하고 실감 나는 중얼거림을 떨어뜨렸다.
"어른이 되자, 노아. 이렇게 말하면 싫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걸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전하는 말을 이해해간다.
새하얗던 메모장의 페이지는 받은 말로 검게 물들었고, 그것은 분명 노아의 미래 지도가 될 것이다.
"선택하는 법도, 생각하는 법도 사실 간단해. 그저 하고 싶은 일에 솔직하면 그만이야."
목소리는 타이르듯이, 괜찮다는 듯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노아는 작게 말했다.
"...그렇더라도,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걸까요."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은 이해하고 있다. 인생은 『기나긴 자살이다』라는 말의 의미도.
노아에게는 피할 수 없는 타임 리미트가 존재하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와서 모든 것을 무심하게, 평등하게, 모두의 목숨을 끝내는. 최후가 확정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길에서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 일회성 인생을, 있는 힘껏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 아플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노아는 그게 싫다고 생각해버린다. 선택하기가 두려워,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하지 않는 게 두려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의 미래에서 지금 선택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이야기다. 노아도 마찬가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불안해하는 건 과연 노아의 이기심일까.
시선을 낮추면서, 노아의 말에 선생님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잘못되지 않았어. 그건 옳은 고민이야. 누구라도 무언가 불안을 안고 있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요?
그런 의문을 전하기 전에 선생님이 입을 연다.
"그렇기에 내가 있는 거야. 물론 나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다.
후후, 하고 미소 지으며 괜찮다고 단언했다.
"망설일 때는 누군가와 상의하면 돼. 혼자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
결국 마지막은 남에게 의지하는 게 최고지. 선생님은 쾌활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처럼 말이야, 나한테 말해주면 돼. 원하는 답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함께 고민해 줄 수는 있어. 그러면 적어도 고민하는 머리는 두 배가 되겠지?"
그것은 상당한 난폭한 이론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난폭하기에 느껴지는 신용이 있었다. 실제로 오늘 노아가 가져온 고민은 선생님은 훌륭하게 풀어주고 계시니까.
선생님이 주신 말을 메모장에 옮기고 노아는 살며시 미소 짓는다.
"후후... 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응. 천천히 해도 되니까, 생각해보는 거야. 노아가 뭘 하고 싶은지. 그러다 만약 머리가 아프거나 불안해지면 나한테 와. 그때는 같이 생각하자."
선생님은 책상 위의 커피잔을 들었다. 김은 완전히 식었고, 30% 정도 남은 검은 액체가 애매하게 흔들리고 있다.
선생님은 그것을 단숨에 들이키고 일어섰다. 기지개를 켜고 노아를 내려다보며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노아의 『선생님』이니까. 언제든 어디서든 노아에게 힘이 될 것을 약속할게."
그 모습을 올려다보며 노아 역시 몸을 폈다. 앉은 채로 팔을 천장으로 향하고 등을 쭉 뻗는다.
집중했던 만큼 어깨가 뻐근함을 느끼며 노아는 선생님에게 묻는다.
"...그게 선생님의 꿈인가요?"
그게 마지막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순간 굳어지더니 활짝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응, 그래. 지금은 이게 내 꿈이라고 할까."
자, 진로 상담은 이 정도려나, 하고 선생님이 말한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의 설문지를 집어 들고 다시 메모장에 그것을 끼운다. 이번에는 어딘가 개운하고 상쾌한 마음을 품에 안으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조금씩 생각해보려고 해요."
"응. 분명 노아라면 괜찮을 거야."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선생님의 말에 안심이 된다.
이 사람이 말한다면 분명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아, 이 사람은 역시 『어른』이구나 ―― 존경과 동경을 섞은 소감을 품고 노아도 컵에 남은 자신의 커피를 단숨에 들이킨다. 다소 식어버린 커피에서는 유난히 달콤한 카페인 맛이 났다.
그리고 메모장을 주머니에 넣고 소파에서 일어선다.
"점심 먹으러 갈까. 배고파졌어."
그 말을 보고 벽을 보니 걸린 아날로그 시계는 정오를 40분가량 지나고 있었다. 한 시간가량 얘기하고 있었다는 것에 내심 약간 놀라면서, 꼬륵거리며 희미하게 배고픔을 주장하는 아랫배를 건드린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뭐든지 대접해줄게."
"아뇨, 제 몫은 낼 테니까요."
"됐어됐어. 어른스러운 모습 좀 보이게 해줘. 게다가.... 뭐, 입막음비용이라는 걸로 말이야."
"입막음이요?"
고개를 갸우뚱한다. 무슨 얘길까 고민하고 있자니 선생님은 즉시 대답을 주셨다.
조금 부끄러운 듯이 뺨을 긁은 후 선생님은 노아에게 두 손 모아 빌었다.
"내 옛날얘기. 아무한테도 한 적 없어. 이 얘기는."
"그런가요? 분명 유우카쨩에게도 했을거라고..."
유우카도 선생님에게 진로 얘기를 했었다고 하니 그때 얘기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아와는 방향성이 다르겠지만 유우카도 뭔가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설문지가 배부되었을 무렵부터, 몇 번인가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 걸 보고 있었으니까. 유우카가 선생님에게 진로 상담을 했다면 같은 얘기를 했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던 그것은, 아무래도 노아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유우카와도 진로 이야기는 했지만... 뭐, 또 다른 방향성이었으니까. 유우카에게는 또 따로 여러 가지 얘기를 했지."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이라며 선생님은 검지를 입술에 댄다.
물론입니다, 하고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유우카가 둘도 없고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해도, 그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건 아니다. 유우카에게는 유우카의 삶, 노아에게는 노아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지금은 그저 유우카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선생님과 유우카의 대화는 아직 몰라도 괜찮다. 언젠가 유우카와 미래 이야기를 나눌 때가 오면 그때 이야기해도 되겠지.
"뭐, 그런 이유니까 말이야. 노아가 퍼뜨릴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한쪽 눈을 감고 선생님이 말한다.
노아는 알겠다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입막음이라는 건 90% 농담이고 사실은 노아에게 점심을 사주고 싶을 뿐일 거다 ――― 선생님의 진의를 헤아리고는 있지만, 굳이 그것은 말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건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이해했기에 노아는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명 『학생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라는 것도 이 상냥한 어른의 꿈일 테니까.
"그래서 먹고 싶은 건 정했어? 뭐든지 괜찮아."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역 앞에 맛있는 레스토랑이 생겼다고 유우카쨩이 말했었죠."
"오, 좋네. 그럼 거기로 할까?"
선생님은 흥얼거리며 집무실 문을 연다. 조금 전까지의 진지한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완전히 변해 들뜬 기분으로 즐거워하는 그 모습에 노아는 오히려 감탄마저 느끼고 말았다.
빨리 가자며 문 너머에서 재촉하는 미소를 짓는다. 노아는 거기에 대답하고 그 등을 쫓아 집무실 밖으로 나간다.
"...선생님."
그리고 복도를 나온 뒤 노아는 선생님의 등에 호소했다.
"왜 그래, 노아."
돌아서서 선생님이 말한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비친 선생님의 눈동자에 노아는 따스함을 느낀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등을 쭉 펴고, 그 검은색을 향해 말한다. 작은 맹세를 다짐하고, 미약한 기도를 희망하는 것처럼.
"―――저는,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의연한 어조로 단언했다.
이건 분명 노아의 안에서 제일 첫 번째 선택일 것이다.
수많은 선택지 중 노아는, 눈앞의 이 어른으로 확실히 이어지는 길을 쫓고 싶다.
선생님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몇 초간 천천히 노아의 말을 음미하고 나서, 기쁜 듯이 입꼬리를 올린다.
"분명 될 거야. 내가 장담할게."
시선이 마주친다.
괜찮다고, 선생님의 상냥한 시선이 말하고 있다.
노아는 선생님의 그 눈동자를 믿고 마음속으로 되고 싶은 미래를 분명히 그렸다.
언젠가 후회에 잠길 날이 온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이 선택을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정오가 지난, 겨울의 햇살이 비치는 샬레의 복도에서 노아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모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2463136
원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8945212
필로소피아는 철학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임
제목인 희망진로의 원문은 幾望針路인데 幾望를 왜 쓴건지 모르겠어서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의역함
댓글 8
이건 분위기가 다르네

노아 소설 너무 좋아요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