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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하나코가 야한 말을 하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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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토스 내의 벚꽂 피어난 자리는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하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피어나겠냐며, 더없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그런 화사한 봄날에 보충수업부는 부활동을 위해 부실에 모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우라와 하나코를 기다리던 와중에, 벚꽃보다 진한 분홍색 머리를 양갈래로 짧게 묶은 소녀인 시모에 코하루가 갑작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하나코 말야. 요즘 이상하지 않아?"

단박에 모두의 시선이 코하루에게 향했다.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은 코하루가 당황하자, 다른 부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코하루 쨩.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하나코 쨩이 여러모로 독특하기는 하지만……."

상냥한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아지타니 히후미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히후미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코하루의 말을 지적했다. 그러자 코하루도 고양이 같은 세로 동공이 되어서는 다급하게 외쳤다.

"무, 무슨 소리야! 그런 뜻이 아니라고!"

"그러면 코하루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부실의 유일한 어른. 연방수사동아리 샬레의 고문이자, 보충수업부의 고문인 선생의 질문에 코하루는 잠깐 머뭇거렸다. 양손의 검지를 맞대고 꼼지락거리며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본론을 말했다.

"실은……하나코, 요즘 야한 농담을 전혀 안 하고 있거든."

이 말에는 선생을 포함한 보충수업부의 모두가 동의했다. 매일 하나코의 농담에 즉각 반응하던 코하루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하나코의 그런 야한 농담과 장난이 줄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아니, 줄어든 수준을 넘어서 최근 하나코는 그런 언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틈만 나면 척수반사적으로 야한 언행을 보이던 그녀를 생각하면, 확실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가 했는데, 벌써 일주일이 넘게 그런 농담이나 장난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그러고보니, 요즘은 하나코가 잠잠하긴 하지."

선생도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걸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히후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녀의 말이야말로 정론이었다. 야한 농담을 하는 게 문제라면 모를까, 하지 않는 쪽이 문제일 수는 없었다. 코하루도 그 말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아니.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은빛이 감도는 백발, 허리부터 자라난 하얀 날개. 작은 체구의 시라스 아즈사는 천사 같은 외모의 소녀다. 그러나 괴로움으로 점철된 과거는 그녀로 하여금 많은 것을 경계하고, 평범한 일상을 알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아즈사는 조금 독특하지만 솔직하고 귀여운 소녀일 뿐이었다.

"지속적으로 하던 일을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는 것도, 습관을 갑자기 바꾸는 것도 좋은 징조는 아냐. 정확한 이유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하나코를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가끔 도를 지나치기는 해도,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는 아즈사 답게 진중한 목소리였다.

"만약 하나코에게 고민이 있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다면……나는 하나코를 괴롭히는 것들을 타도하고 배제하겠어."

아즈사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나아가 세상을 향해 선언한다.

"하나코는 나의 소중한 친구니까."

무뚝뚝한 얼굴에 한없는 자비가 깃들고, 올곧은 시선이 친구를 지켜내겠다는 열망으로 빛난다. 이 순간의 아즈사는 시스터후드도 경탄할 만큼 숭고한 존재였다.

"아즈사 쨩……."

"아즈사……."

"훌륭하게 컸구나. 아즈사……."

따스한 시선이 아즈사에게 쏟아졌다. 히후미는 아즈사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고, 코하루는 곁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아즈사를 열심히 칭찬했다. 정작 아즈사 본인은 영문을 몰라하며 크게 뜬 눈을 깜빡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코 쨩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직접 물어보는게 나으려나요?"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 밝히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니까. 함부로 물어보는 것도 하나코에게 실례이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하는 히후미에게 선생이 한 말에, 오히려 코하루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실례? 그런 말을 하다니, 야한 건 사형이야!"

평범한 단어에 대한 반응치고는 놀랄 정도로 뜬금 없었지만, 선생은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물론 무시하지도 않았다.

"왜 머리를 쓰다듬는 건데?! 하으, 아으으……."

선생이 익숙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자, 코하루의 목소리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만일 하나코가 이 모습을 봤더라면 '역시 선생님의 조련 솜씨는 대단하네요……!' 하고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아, 아무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하나코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하나코 쨩을 믿고 기다려 주는 것도 방법이겠죠.

히후미가 으으음-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기울였다. 선생도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글쎄. 어떻게 할까……."

모두가 턱을 잡고 골똘히 고민에 빠지자, 아즈사가 주목하라는 듯이 오른손을 들었다.

"내게 생각이 있어. 모두 협력해줬으면 한다."

히후미, 코하루, 그리고 선생은 아즈사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였다. 아즈사가 계획을 설명하는 동안 코하루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사형이야, 금지야, 하고 외치거나 히후미가 아하하, 하고 멋쩍은 웃음을 짓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아무튼 아즈사의 계획이 채택 되었다.

부실 문에 등을 기대고 앉은 아즈사가 작은 거울을 꺼내 부실 바깥을 살폈다. 훈련에 의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하나코가 보낸 모모톡에 따르면, 10분 뒤에 도착하는 모양이야."

히후미는 아즈사에게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살짝 굽혔다.

"정말 이런 방법으로 될까요?"

히후미가 뺨을 긁으며 한 말에 아즈사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를 믿어. 가장 완벽한 계획이야."

"아우우우……. 야한 건 안되는데……. 그치만, 하나코를 위해서라면……."

결국 코하루도 어쩔 수 없이 아즈사의 작전에 동참했다. 아즈사는 선생에게 역할을 부여하려 했지만, 코하루가 적극적으로 반대한 덕분에 선생은 하나코의 반응을 살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작전을 시행하기에 앞서, 선생은 하나코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하나코와 자주 만나는 세 사람의 말이니 신빙성이 높았다. 턱에 손가락을 올리고 고민하던 히후미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하나코 쨩. 분위기도 어딘가 달라져 보였어요. 그러니까……청초하다고 해야 할까요."

"청초?! 하지만……그랬던 거 같기도 해. 야한 농담만 안하는데도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어."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분명 좋은 징조는 아니야. 사람은 항상 하던 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니까. 의도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말이지."

아즈사의 말에 선생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하나코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거나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지만, 아무튼 선생으로서 학생의 이상을 알고도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순히 야한 농담을 하냐 안하냐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선생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야기만 들으면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 같지만, 아즈사의 말대로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간 봐왔던 하나코를 생각하면, 야한 언행을 삼가하는 건 사소한 변화가 아니었다. 감았던 눈을 뜬 선생은 이윽고 '하나코 야한 농담 재개시키기' 작전의 최종 허가를 내렸다.

"작전명은 '여명의 눈동자'."

쓸데없이 힘이 들어간 작전명을 듣자, 소녀들의 눈이 임무를 부여 받은 군인처럼 사명감으로 빛났다. 그 밝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소중한 친구를 위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선생은 한 손으로 넥타이를 멋있게 고쳐매며 쓸데없이 폼을 잡으며 말했다.

"작전 개시다. 모두 맡은 임무를 잊지 말도록 해."

개시 명령이 내려지자, 세 사람은 오른 주먹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오-!"

***

부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트리니티의 한 아가씨가 부실 안에 발을 들인다. 그녀의 시선과 표정, 발걸음과 보폭까지 모두 티파티의 깐깐한 3학년생도 인정할 만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안녕하세요. 히후미 쨩. 아즈사 쨩. 코하루 쨩. 선생님. 많이 기다렸나요? 늦어서 미안하답니다."

그녀가 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주위에 벚꽃이 흩날리는 듯하다. 트리니티에서도 손 꼽을 정도로 우아한 아가씨가 바로 우라와 하나코다.

"마리 쨩과 다른 시스터후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늦었네요. 후훗."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는 모습은 선생과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하나코와 현재의 하나코에는 딱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코하루 쨩. 공부는 잘 되고 있었나요? 혹시 모르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아, 어……물론이지! 난 엘리트니까!"

"후훗. 기특해라."

하나코가 머리를 쓰다듬자, 코하루의 표정이 달팽이마냥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다. 하나코를 슬그머니 올려다보는 코하루의 눈빛은 정의실현부의 선망하는 선배인 하네카와 하스미를 보는 것 같았다.

"아즈사 쨩은 어땠나요. 오늘도 평온한 하루였나요?"

"으, 응. 신경 써줘서 고마워."

하나코의 사근사근한 태도에, 아즈사마저도 방금 수립한 작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옆에 서 있던 히후미가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자, 하나코의 마성이 이번에는 그녀에게로 향했다.

"히후미 쨩. 시스터후드에도 페로로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는데, 괜찮다면 소개시켜줄까요?"

"앗, 페로로 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얼마든지요!"

결국 히후미도 하나코의 말에 눈을 빛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히후미는 달려 있지 않은 날개를 퍼덕이는 마냥 기뻐하며 뭇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귀여움을 발산했다.

다음으로 하나코는 선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분수에서 봤던 부드러운 미소가 선생을 맞이하고, 다시금 벚꽃이 피어나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우후훗. 그간 잘 지내셨나요. 선생님."

사실 겉모습만 보면 하나코는 변한 게 없다. 평범한 교복 차림인데도 야살스러움이 느껴지는 우월한 몸매도, 온통 피어난 벚꽃처럼 어여쁜 분홍색 머리도, 동작 하나하나에 깃들어있는 기품도, 모두 다른 점 없는 그대로다. 그러나 야한 단어를 입에 담지 않고, 짓궂은 장난을 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간 가려졌던 그녀의 우아한 자태가 선명히 드러난다.

"뭐, 그렇지. 하나코는 잘 지냈고?"

작전에서 맡은 역할이라고는 하나코의 반응을 살피는게 다인 선생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태연한 척 행동한다.

"네. 요즘에는 시스터후드 분들과 자주 만남을 가진답니다."

세 사람의 증언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으로 선생이 보기에도 지금의 하나코는 트리니티의 여느 아가씨보다도 더욱 완벽한 아가씨 그 자체였다.

"혹시 요즘 특별한 일은 있어? 혹시 상담할 일이 있지는 않고?"

"-아뇨. 그런 일은 없답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선생에게 대답하는 하나코는 아주 약간 망설였다. 그리고 그걸 포착한 이는 선생 뿐이 아니었다.

"하나코."

"네. 아즈사 쨩?"

작전의 선두에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아즈사였다. 그녀는 하나코 앞에 다가서서 숙지해둔 질문을 했다.

"입에 털이 달린 봉을 넣었다 빼면서 하얀 액체를 뱉는 것은 뭐지?"

아즈사가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과거에 하나코가 했던 음담패설을 그대로 그녀에게 하며 반응을 유발한다. 그러나 하나코는 평범한 퀴즈를 들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양치질 아닌가요?"

하나코가 대답하기 무섭게 코하루가 끼어들었다.

"흥분했을 때 몇 배로 커지는 신체기관은?!"

"어……동공이네요. 맞췄죠? 후후."

야한 건 금지, 라고 외치려던 코하루는 하나코의 대답을 듣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꾹 다물린 입술을 오물거렸다.

"요, 요즘 밤마다 DDR을, 어, 그게 그러니까……."

"어머나."

히후미가 더듬거리며 한 말에 하나코가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모두의 이목이 하나코의 입술에 쏠렸다. 그러나 하나코의 대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히후미 쨩도 댄스댄스레볼루션을 즐기시나요?"

"……."

아즈사, 코하루, 히후미, 그리고 선생은 충격에 빠져 말을 잃었다. 작전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음담패설의 음자도 모르는 듯한 하나코가, 심지어 너무나도 순수해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선생은 이런 아가씨에게 실례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당장에라도 사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죄송합니다앗!"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한 선생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서 완벽한 사죄를 선보이자,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하나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오늘 따라 다들 이상하단 말이죠. 아니면……저만 따돌리는 건가요? 흑흑."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하나코가 우는 소리를 내자, 히후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황급하게 외쳤다.

"그, 그게 아니라!"

"네. 히후미 쨩?"

그 즉시 하나코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의 흔적조차 없는 말끔한 얼굴을 마주한 히후미는 하우우, 하고 기묘한 소리를 냈다.

"하나코 쨩한테……안 좋은 일이나, 고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네?"

하나코는 영문을 몰라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코하루도 두 팔을 흔들며 말을 덧붙였다.

"요즘, 하나코는 야한 말도 안하고, 장난도 안 치잖아. 무, 물론 그게 싫다는 건 아니지만……갑자기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하나코에게 있을지 모를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몄어. ……미안해."

아즈사도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사과하자, 하나코는 뺨에 손을 올리고 웃는 낯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윽한 시선이 히후미부터 아즈사, 코하루, 그리고 선생까지 차례대로 흩었다.

"아뇨. 사과하실 필요는 없는 걸요. 간단한 이미지 체인지였는데……그렇게 보일 줄은 몰랐네요. 말하자면 대성공, 이려나요."

어찌보면 하나코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그리고 하나코는 모두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우후훗. 오랫만에 배를 맞대고, 몸의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언제나처럼 야한 말을 하는 하나코였지만, 이번에는 다들 곤란해하기보다 오히려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다만 코하루는 정의실현부 답게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야한 건 사형이야! 하지만……이번에는 특별히 용서해줄게."

그러고는 후다닥, 하나코의 품에 안겨들었다.

"아무튼 다행이에요……!"

그 다음으로 히후미가 기뻐하며 달려들었고.

"가장 기분 좋은 작전 실패야."

마지막으로 아즈사가 동참했다.

세 사람에게 둘러싸인 하나코가 다음 차례라며 선생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당연하게도 선생은 하나코의 시선을 외면했다. 대신 그녀들이 우정을 나누는 모습들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봄날에 내리쬐는 햇빛만큼이나 따스한 것이, 여기에 있었다.

***

낮은 언덕 위 들판은 벌써부터 새파란 풀잎이 자라 있다. 벚꽃 잎으로 가득한 트리니티와는 달리, 이곳은 벌써부터 여름이 찾아온 것만 같다.

바람이 불자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정장 상의를 한 손에 걸쳐든 선생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누군가가 보낸 모모톡 때문이었다.

"경치가 제법 좋죠?"

선생에게 모모톡을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하나코였다. 그녀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선생은 남몰래 이곳에 와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네. 인적도 드물고."

"후후. 제가 종종 찾아 오는 곳이랍니다. 트리니티와 달리……이곳은 항상 조용하거든요."

교복 치마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탐스러운 머리가 바람에 가볍게 흩날린다.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풍경이다.

"모두의 앞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학교 내부의 온갖 정치적 암투와 가식에 질린 나머지 자퇴를 마음 먹었답니다. 비록 음담패설을 하고, 기행을 벌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는 있었지만……."

해가 저물어가며 온 세상이 서서히 주홍빛으로 물든다. 언덕 아래도, 언덕 위의 두 사람도 석양에 삼켜진다.

"히후미 쨩, 코하루 쨩, 그리고 아즈사 쨩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행복한 학창생활을 보내는 우라와 하나코는 없었을 거에요. 보충수업부의 모두에게도, 선생님에게도 항상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선생은 얌전히 하나코의 말을 들었다. 하나코는 입술을 달싹거리고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미지 체인지라고 했었죠? 네. 맞아요. 그런 의도였어요. 비록 헤어스타일 하나 바꾸지 않았지만……우라와 하나코라는 사람을 아는 이들에게는,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였겠죠."

"어느 쪽이든, 모두 너라고 생각해."

하나코는 뺨을 살짝 붉혔다. 그리고는 못 이기겠다며 살며시 웃었다.

"선생님. 제가 왜, 이미지 체인지를 한 거 같나요?"

하나코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말을 이어간다.

"후훗. 그러고보니…선생님께서는 문제아인 제 언행에 항상 곤란해하셨죠."

선생이 올곧은 표정으로 말했다.

"짓궂은 면모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코는 착한 학생이고, 내게는 소중한 학생이야."

하나코에게는 시릴 정도로 상냥한 말이었다. 그녀는 가슴 시려오는 아픔을 외면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도,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랍니다. 그래도……용서해주시겠죠?"

하나코는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선생을 바라본다. 선생도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다.

"저, 우라와 하나코는 선생님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혹여나 닿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하나코는 다시 한 번 사랑을 말한다.

"사랑해요, 선생님."

바람이 다시금 들판을 흩었다. 선생의 대답은 바람 소리에 묻혀 멀리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코에게만은 틀림 없이 전해졌다. 그녀는 아랫 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지었다.

"아니에요. 미안해 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니까……."

하나코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의 목소리도 눈물로 젖어들었다.

"학생의 고백을 함부로 받을 수 없고, 그리고……저같은 문제아에게는, 선생님의 곁은……어울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선생은 하나코에게 품에 안기는 것은 허락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성에 대한 애정이 아닌, 학생에 대한 자애만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하나코는 선생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하염 없이 흐느꼈다.

"흑. 윽, 흐윽……."

트리니티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도, 트리니티의 상층부에서 앞다투어 영입하려 하는 우수한 인재도, 스스로의 감정에는 이기지 못했다.

하나코의 봄은 슬프게 진다.

***

비록 고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하나코와 선생은 예전과 다르지 않게 서로를 대했다. 선생은 일부러라도 어색하지 않게 행동했고, 하나코는 하나코대로 예전처럼 짓궂은 말과 장난으로 선생을 비롯한 다른 이들을 곤란하게 했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이다.

평온한 트리니티의 길가를 거닐던 하나코는 문득 생각했다.

'앞으로 2년……조금 안 남았네요.'

하나코는 어른이 된 뒤에 다시 선생에게 마음을 고백할 생각이었다. 선생은 학생인 하나코의 고백을 거절했지만, 하나코라는 사람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분명 선생은 그 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하나코는 선생을 믿기로 했다.

'어릴 적 이후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입을 가리고 웃는 하나코의 모습은 누가 봐도 교양 있는 아가씨였다.

벚꽃잎 하나가 하나코의 눈 앞에 하늘하늘 떨어졌다. 하나코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펼쳐 꽃잎을 받았다. 그리고 꽃잎을 손 안에 살며시 쥐었다가는, 손바닥을 펼쳐 그대로 떨어트렸다.

"벚꽃이……예쁘게 피었네요."

거리는 온통 벚꽃으로 가득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비처럼 흩날리고, 벚꽃을 닮은 머리카락이 예쁘게 휘날린다.

"벚꽃을 옷 삼아 산책이라도 할까요. 후훗."

하나코는 모두의 반응을 기대하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결국 야한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녀가 싫어하는 트리니티의 음습함을 그대로 지닌 하나코도, 시도 때도 없이 치녀처럼 구는 하나코도, 모두 우라와 하나코다. 결코 변하지 않을 사실을, 그녀는 인정하기로 했다.

하나코는 분홍빛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올해의 봄은 머지 않아 떠나간다. 그러나 봄은 다음에도 찾아올 것이고, 그 다음에도 어김 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녀가 찾은 행복은 봄처럼 향기로웠다. 그리고 그녀가 찾을 행복도, 더욱 향기로울 것이다.

하나코는 닿지 않을 말을 속삭였다.

"앞으로 여러가지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나코는 벚꽃잎 깔린 길을 사뿐히 걷는다. 꽃을 닮은 소녀는 피어날 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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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3.04.20창작

[소설] 하나코가 야한 말을 하지 않는 이야기

#우라와 하나코#소설
좋아요 0댓글 45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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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DC
붕붕차차작가
게시물 25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3.04.20 10:35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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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5

나
ㅇDC
ㅇㅇ123.04.20

코하루가귀여워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4.20
ㅇDC
ㅇㅇ23.04.20

정성추

ㅇDC
ㅇㅇ23.04.20

맛있다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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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DC
ㅇㅇ223.04.20

하나코 캐릭터 살리기 은근 어려웠을텐데 묘사 되게 신경썼구나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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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DC
ㅇㅇ323.04.20
디시콘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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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DC
ㅇㅇ323.04.20

이제 하나코가 센남 발로 괴롭히는거 하는거지?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4.20
ㅇDC
ㅇㅇ3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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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DC
ㅇㅇ423.04.20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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