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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 #L #드라마 #하나코 #사쿠라코

원본 by はる

=============================

<1> ~ <3>

<1>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느 날 밤, 달빛에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확실한 잔향을 남겼다.

넓은 교회 안의 공간에서 크고도 작은 의문이 지금 하나의 성량이 되어 나타났다.

“…어려운 질문을 하시는군요.”

잔향이 사라져갈 무렵, 내 옆에 앉아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쿠라코 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란히 놓인 긴 의자의 구석 중에서도 구석.

광량을 피하듯 자리 잡은 어둠 속에서 우리 사이에 놓인 랜턴 빛을 반사하는 사쿠라코 씨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

나의 질문을 ‘어렵다’라고 받아들이는 의미—

그것은 사쿠라코 씨가 희소하고도, 참으로 [가여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날 우리는 교회 안에서 비밀스러운 여자 모임을 갖고 있었다.

나와 사쿠라코 씨 외에는 아무도 없는 밀회라고도 할 수 있는 모임.

한쪽은 시스터후드의 수장이자 특별한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늦은 밤에도 트리니티 내부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입장이었고,

다른 한쪽인 일반 학생인 나는 통금 시간이라는 규칙을 어기고 비밀리에 교회 안으로 찾아왔다.

그렇다면 본래 문책당해야 마땅하겠지만 사쿠라코 씨는 못 본 척해주고 있었고, 그 영특함과 다정함에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서로 이렇게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이 시간밖에 없다.

나쁜 의미로 유명한 나와 이상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사쿠라코 씨가 눈에 띄는 곳에서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흠집이 추가로 날지 모르니까.

“사쿠라코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우선 어디서 죽느냐가 중요하겠죠.

예를 들어 여기 트리니티에서라면 주변 주민들—즉 학생들 대부분에게 폐가 되겠죠.

그렇다고 아무도 오지 않는 산에서 결행해도 그 땅의 소유주에게는 폐가 됩니다.”

“네, 그렇네요.”

엉뚱한 질문에 생각을 말로 자아내며 더 깊이 고민하는 사쿠라코 씨의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계속 사고에 잠긴 사쿠라코 씨를 보며 나 또한 동감했다.

그렇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다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장기 매매 같은 건 어떨까요?”

“그건…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그렇게 죽을 수 있다면 폐는 끼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의견에 사쿠라코 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하게 고민해 주는 것은 기쁘지만, 애초에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나라면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그런 질문을 한 본인을 걱정하겠지만, 이런 부분에서 사쿠라코 씨는 역시 특이하다.

“트롤리 문제처럼 폐를 끼치는 사람이 적은 죽음을 택하는 건 안 될까요?”

“그 또한 타협이겠지요.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사쿠라코 씨의 그런 특이함에 감사해야 했다.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괜찮으신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곤란한 일이었으니까.

“…머나먼 끝자락, 아무도 없는 땅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요.”

“그렇다면 아비도스 같은 곳이 좋겠네요.

그 사막에서 죽는다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것 같아요.”

“확실히 그렇네요.

하지만 생각해 보니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죽든, 친구나 가족처럼 자신의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는 폐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 바로 그거다.

문무양도—무력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지력조차 나를 앞서는 사쿠라코 씨에게서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동정]하며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설령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빛이 되어 사라지더라도 누군가를 걱정하게 만드는 시점에서 이미 폐를 끼치는 셈이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물을 깊이 생각하며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사쿠라코 씨에게 질문했을 때부터 정답 따위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길이 있다면 세상이 나를 잊어줘야 한다.

세상—세상 그 자체가 나를 잊어주기만 한다면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을 테니까.

<2>

나는 절망했다.

언제? 어디서? 무엇에?

전부다. 항상, 언제나, 모든 것에.

나는 어릴 때부터 대인 감각이 뛰어났다.

남의 기미에 민감한 데다 나 자신이 감수성이 매우 풍부했다.

눈앞에 있는 상대를 걱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비극의 여주인공에게조차 나는 동정하며 마음 깊이 슬퍼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영특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꽤 빨랐다.

나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타인보다 다정한 사람이다.

그런 것을 자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그게 좋지 않았다.

‘다정함’이란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경건한 시스터들은 다정함을 쉬운 듯 설파하지만, 다정하다는 것은 하나의 병이다.

어릴 때부터 다정했던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불행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불쾌한 뉴스를 막연히 싫다고 느낀다.

사소한 뒷담화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비인도적인 행위 등이 일상다반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데도,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라며 만화 주인공 같은 거창한 생각을 하지만 나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니 마음은 죽음을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적어도 내 주변만은 평화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해도 ‘꾸짖는’ 행위를 한 시점에서 자신도 상대도 상처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내가 취할 행동은 ‘무시’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무시하면 무시하는 대로 정도가 덜할 뿐 마음은 죽어간다.

나라는 인격의 핵심이 이것이다.

나는 정의의 사자가 아니라 그저 다정한 사람일 뿐이다.

내가 상처 입는 것이 싫어서,

꾸짖어서 상대를 상처 입히는 것이 두려워서,

더 나아가 나와 상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도 무서워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 끝은 지옥이다.

뒷담화나 괴롭힘 같은 인간의 추악함을 타고난 대인 감각으로 누구보다 민감하게 포착하며 누구보다 그것들을 두려워한다.

짜증 나, 기분 나빠, 죽어버려.

그런 단어들이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세상은 항상 다툼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세상 어디에도 평온 따위는 없음을 나이를 먹을 때마다 깨닫는다.

하나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 그에 대한 반론, 그리고 반박.

그 과정에서 손이 나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며 매일 매초가 이것의 반복이고,

나는 그것을 죽은 눈으로 지켜보는 것만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절망의 무한 루프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반전되었다.

—그래,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처음 본 더러움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검게 물든 세상에서 선생님의 주변만은 항상 깨끗해 보였다.

그래서 선생님과 많이 엮였다.

그때 겨우 나는 소녀심이라는 것을 자각한 모양인지, 이성을 만나는 이유가 ‘그저 보고 싶어서’라는 것만으로는 부끄러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없으면 억지로 만들어서,

학업에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상황은 제쳐두고 학생이라는 점을 이용해 ‘공부를 가르쳐달라’는 카드를 아끼지 않고 선생님과 관계를 맺어왔다.

선생님과 있으면 세상이 항상 빛나 보였다.

선생님은 나처럼 병적으로 다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뜻을 품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샬레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마음을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나이기에 선생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컸고,

그 과정에서 나는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깨끗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역시 마리 짱과 사쿠라코 씨, 그리고 히나타 씨다.

그 세 사람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선생님 다음으로 투명했다.

순수하면서도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상냥했다.

그래서 나는 시스터후드의 영역에 발걸음이 잦아졌다.

한때 내가 시스터후드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건 이 때문이다.

멋대로 기대받고 멋대로 실망하는 것에 진저리가 나서,

신들이 본다면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저속한 행위들을 연발하여 결국 그 이야기는 나 자신이 부정의 화신이 되는 것으로 사라졌다.

다만 이를 지켜보던 사쿠라코 씨 일행은 쓴웃음을 지었을 뿐, 그 이후로도 세 사람이 나를 보는 눈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나의 대인 감각이 그것을 증언한다.

아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토록 갈구하던 가뭄 끝의 단비.

세상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세계에 한 줄기 빛이 비친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 세상도 아직 살 만하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나의 편이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아직 살아갈 수 있다고 강하게 믿었다.

“…….”

하지만 지금, 나는 다시 절망하고 있다.

이 세상은 역시 어둡고 숨이 막혔다.

선생님을 필두로 나의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존재들을 만나 이 세상에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나는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선생님이나 사쿠라코 씨 일행이 곁에 있는 이 일상에—유일하게 남겨진 안전지대에 있는 현실에.

설령 선생님이 나의 세계를 밝게 해준다 해도, 세상 그 자체가 어둡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처음에는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희망을 깨달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뿐이었다.

선생님과 만난 지 꽤 되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나는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괴물들에게 도태되는 일상에서 아군을 찾아 기뻐했다—

하지만 그 미래라고 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세상은 여전히 괴물들에게 도태되고 있었다.

다만 내가 있는 곳은 안전했고, 그 안전함을 만끽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선생님이나 사쿠라코 씨 일행이 곁에 있음에도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더욱 절망했다.

유일하게 찾아낸 한 줄기 빛이 내 인생의 연명 치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사람의 추악한 면 따위 보고 싶지 않은데, 듣고 싶지 않은데, 알고 싶지 않은데도 어떻게 해도 나는 알게 된다, 나는 깨닫고 만다.

“이제, 무리네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한계까지 내몰린 정신은 결국 어제, 사쿠라코 씨에게 좋은 죽음이 없느냐고 묻기에 이르렀다.

열심히 살아가자? 같은 조언을 듣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나인 것이다.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겠지, 하지만 그 좋은 일조차 이제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인생이 되어버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행히도 넌지시 던진 말에 사쿠라코 씨는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지만,

사쿠라코 씨에게서 내가 생각하던 답이 나온 것에 탄식하며 동정했다.

사쿠라코 씨가 만약 죽음을 원한다면, 분명 가장 먼저 나와 똑같은 생각에 이를 것이다.

‘폐를 끼치지 않는 죽음의 방법은 없을까.’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기에 도달하는 결론.

다정한 사람이기에 도달하는 결론.

그래서 사쿠라코 씨는…참 [가여운] 사람이다.

자, 아무튼 나는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모로 고민한 결과, 아비도스 사막 한복판에서 약을 먹고 죽기로 했다.

블랙 마켓의 심층부라고 할 수 있는 중심지에 변덕스럽게 약을 판매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더니, 운 좋게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일반적인 학생이 지불하기에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가격의 약을 주저 없이 샀고, 판매자인 상대는 기쁜 듯이 말했다.

‘그렇게나 죽이고 싶은 상대가 있는 거야?’

상대가 너무나도 즐겁게 말하기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해 버렸다.

‘네, 아주 오래전부터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자 상대는 신나게 떠들어댔다.

내가 산 약은 무엇보다 치사성이 매우 높아서 고통스러워할 겨를도, 살아날 가망도 없이 죽는다고 한다.

각오가 진작에 끝났기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통받으며 죽는 것보다 순식간에 죽는 편이 편해서 다행이었다.

아비도스 사막 한복판—나는 발견되지 않고 행방불명 처리가 되겠지.

하지만 그걸로 됐다.

나는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딱히 공포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다.

그보다 나는 이 절망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었고, 바꿔 말하면 빨리 죽고 싶었다.

“선생님, 잠시…괜찮을까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못다 한 일이 있다.

본래라면 좀 더 신중하게 용기를 내서 해야 할 일이지만, 어차피 이다음에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가볍게 행할 수 있다.

“선생님, 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주시겠어요?”

나는 선생님을 이성으로서 좋아했다.

당연한 일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준 사람이니까.

나의 태양이라 부르기에 마땅한 사람—서로를 깊이 알게 된 지금도 선생님의 추악함은 일절 느껴지지 않고 끌리는 점밖에 없다.

그런 멋진 상대를 만나서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건 무리였다.

다정하고 정의감이 강하며 나와 같은 뜻을 품은 선생님은 그야말로 운명의 상대였다.

다만 선생님에게 끌리는 사람은 적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을 정도다.

선생님만큼 인간으로서 매력적인 인물도 좀처럼 없을 것이다.

그런 상대에게 출신 따위는 그저 장식에 불과했고, 누구나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도 선생님의 연인이 되겠다는 건 너무나도 오만한 행위였다.

선생님도 박애주의적인 면이 있고 라이벌은 별의 수만큼 많기에 선생님의 연인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다음에 죽는다면.

—마지막으로 이 마음을 전해도 문제는 없겠지.

처음부터 거절당할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전하지 않고 죽는 건 괴로웠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사람—나의 소중한 사람만은 나를 잊지 말아 주었으면 했다.

나름의 이기심—이게 마지막이니까, 라는 면죄부를 내걸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발악하는 심정으로 나는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깊어가는 밤, 다른 학생이 아무도 없을 시간의 샬레에서 나는 고백을 했다.

뒷짐을 지고 조금 부끄러운 듯이, 하지만 시선은 피하지 않고 요염하게 미소 지었다.

이다음의 전개는 이미 알고 있다.

이다음의 대답이 어떻든 고백을 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응, 기꺼이.”

“…네?”

—정말로, 이 전개는 내가 상상하던 전개인가요?

<3>

“…….”

살아버렸다.

내 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본래 이 시간이라면 이미 죽어 있어야 마땅한데 나는 멀쩡히 살아 있다.

내일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 사실에 아직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그 후, 실감이 나지 않는 채로 ‘이제 늦었으니까’라며 선생님이 역까지 배웅해 주었고, 멍한 상태로 지금까지 이르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솔직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라는 생각에 선생님에게 고백했다.

그랬더니 웬일인지 내 사랑이 이루어져서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의미를 모르겠다.

선생님이 학생의 고백에 응할 리가 없는데, 어째서?

어째서 나 같은 애의 고백을 받아준 거지?

이해 불가능이라 선생님과 사귀게 된 기쁨 따위는 조금도 없고, 오히려 죽으려던 계획을 저지당한 기분이 들어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래서는 죽을 수가 없잖아요…….

선생님과 사귀게 된 마당에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으면 책임이고 뭐고 다 없어지고 끝이라지만, 그래도 나는 의리를 지키고 싶다.

폐를 끼치지 않는 죽음을 고민했을 정도다.

일방적으로 선생님을 휘두르고 끝내버리고 싶지는 않다.

“…….”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과의 모모톡 대화방을 연다.

최근 들어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대화를 한 기억은 없지만, 이제부터 늘어가는 걸까 하고 몽상에 잠긴다.

본래라면 그것은 아주 아주 행복한 일이어야만 하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행복인지 잘 모르겠다.

선생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건 행복하지만, 그렇다고 내 세계가 풍요로워지는 건 아니다.

선생님과 사귀는 건 행복하지만, 나 자신은 변할 수 없다.

선생님과 결혼하는 건 행복하지만, 대인 감각이 뛰어난 채로는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앞으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을 때, 선생님이 싫어지게 되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미래가 우울해진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는데, 내일이 오는 것에 눈살을 찌푸리는 나는 사치 그 자체일 것이다.

나의 내일 따위 얼마든지 누구에게라도 줄 텐데.

우라와 하나코의 일생은 우라와 하나코 안에서만 완결될 수 있는 법이라, 최대급의 불행을 최대급의 행복으로 상쇄해 버린 내일이 그저 두려웠다.

“…에잇.”

밀려오는 불안에 몸 둘 바를 몰라 도망칠 곳을 찾다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현재 23시.

갑자기 전화를 걸기에는 몰상식하다고 할 수 있는 시간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선생님의 연인이다.

그렇다면 허락되는 게 아닐까요.

학생과 선생님이 이런 시간에 전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건전하다 해도, 연인이 대화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보통의 일이 아닐까요.

연인이라는 입장에 기대어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일을 시도해 본다.

어차피 선택을 틀리든 틀리지 않든 다음 막은 죽음뿐이다.

그런 자포자기 심정으로 나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응, 여보세요. 하나코?”

“…여보세요, 이런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전화를 건 건 나였고 받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막상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닿자 마음이 다급해져 다음 순간에는 일어나 침대맡에 걸터앉았다.

긴 대화를 나눌 태세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행동에 쑥스러움을 느끼며 뺨을 붉게 물들였다.

“괜찮아. 그보다 무슨 일이야?”

“…선생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폐가 되었나요?”

“아니, 전혀. 그럼 조금 이야기할까?”

내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온 진심.

자신을 드러내는 듯한 부끄러움과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용건으로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거는 윤리적 관점에서의 불안이 뒤섞여 목소리가 아주 많이 떨리고 있다는 게 자각되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목소리는 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선생님에게는 울고 있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네, 부탁드려요.”

나약한 목소리를 내는 나를 일부러 모른 척해주는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그때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대화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최근에 일어난 일, 요즘 유행하는 것, 오늘 업무가 바빴던 것 등 사소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말하자면 황홀한 시간이었다.

도중에 선생님이 힐링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는—

“제가 힐링해 드리는 건…안 될까요?”

—라고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려서, 곧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심이 온몸을 휘감아 얼굴이 엄청나게 붉어진 것을 싫어도 이해하게 되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아니라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긴 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건 실책이었다.

나의 내일에 의미가 생겨버렸다.

본래의 나라면 결코 입에 담지 않았을 그 말은, 이래저래 내가 선생님의 여자친구라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한 것에서 기인했다.

지금까지 발을 들이지 못했던 부분도 선생님의 여자친구라는 입장이 된 덕분에 용기를 내면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 의미는 지금의 나에게 있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마음속 깊이 선생님을 치유해 주고 싶다고 생각한 내가 있었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다는 것의 의미—

그것은 나에게 내일 이후가 있다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있어 주고, 내가 선생님의 여자친구이고, 내가 선생님을 치유해 주고 싶다고 생각에 비로소 나의 내일이 완성되었다.

나는 선생님 덕분에 지금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거야.

그것은 일종의 의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는 시급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했고, 그것이 선생님이라면 스스로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역시 나, 행복한 걸지도.

이쯤 오니 겨우 행복에 대한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학생들 중 선생님의 연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게 행복하지 않을 리가 없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운석이 직격할 확률보다, 생명이 탄생할 확률보다 될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입장을 이제야 절감한다.

나는 지금 선생님의 연인이다.

단순하게 기뻤다.

행복의 절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에 가까운 행복.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선생님, 어째서 제 고백을 받아주신 건가요?”

선생님과의 전화도 무르익었을 무렵, 즐거운 대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드디어 핵심을 건드렸다.

내가 고백해 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학생의 고백을 받는 선생님은 솔직히 내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내 마음이 정리되었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나를 받아준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채였다.

나보다 매력적인 여성은 산더미처럼 많을 텐데, 그중에서 굳이 나를 고르다니 별난 취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하나코를 지키고 싶었으니까…는 어떨까.”

“지키고 싶다…고요?”

선생님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선생님으로서 모든 학생을 지켜야만 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나코를 특별하게 여기고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이게 바로 사랑일지도 모르겠네.”

선생님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째서 저를 특별하게 여기신 건가요?”

“하나코의 성격이나 내면을 지켜봐 오면서 가장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제 성격이나 내면을?”

“당연히 알지.

거짓말에 능숙하고 본심을 말하는 데 서툴러.

야한 농담을 자주 하지만 그건 진심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거고, 사실은 부끄럼쟁이지.

너무 상냥한 탓에 혼자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

대답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쑥스러울 법한 말도 당당하게 내뱉는 모습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심뿐이었고,

흔들림 없이 답하는 선생님의 진심 앞에 꽁꽁 숨겨왔던 내면이 속속들이 파헤쳐지는 기분이 들어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본질을 이토록 꿰뚫어 보고 있을 줄이야.

이래서야 발가벗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실례일 수도 있고, 만약 내 착각이라면 정말 미안하지만…

하나코의 고백은 마치 내게 보내는 SOS처럼 느껴졌어.

그래서 하나코의 고백을 받아들인 거야.

하나코를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줄 수 있도록.”

“…….”

SOS—무의식중에 그 고백을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의식적으로는 선생님이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지만, 그곳에서 구원받고 싶어 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준다면 언제든 그 구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괴롭혀 온 고질병 같은 것. 만약 그것을 고쳐줄 존재가 있다면, 그건 선생님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아, 하지만 나랑 하나코가 사귀는 건 모두에게 절대 비밀이야?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선생과 학생이 사귀는 게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내 마음이 향한 사람은 하나코였으니까 그런 하나코가 용기 내서 고백해 줬다면,

한 명의 남자로서 신념을 굽혀서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다시금 목소리가 떨려왔다.

쉰 듯한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잦아들었고, 마치 젖은 나무판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가냘프기 짝이 없는 소리로 겨우 대답하는 게 고작이었다.

듣고 싶었던 선생님의 진심을 들었다.

하지만 그 탓에 내 마음은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만감이 교차했다.

내 마음은 선생님의 마음과 말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선생님을 향한 사랑을 액체에 비유한다면, 내 마음은 표면장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진심을 들으니 안심이 돼서 졸음이 쏟아지네요. 오늘은 이만 마칠까요?”

“…응,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그냥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도 괜찮으니까.”

“네, 그럼 다음에 봬요.”

“응, 잘 자.”

통화를 더 계속했다간 내 감정의 수용량을 넘어버릴 것 같아, 졸리지도 않으면서 서둘러 핑계를 대고 통화를 끊었다.

내 내면을 꿰뚫어 보는 선생님이니, 분명 이것도 거짓말이라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비프음이 메아리칠 즈음, 내 뺨에는 이미 수많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여기가 한계였다.

통화를 끊은 그 순간부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과 통화하는 동안 울지 않았던 건, 최소한의 본심이라도 숨기고 싶었던 자존심 섞인 저항이었다.

이 감정은 기쁨일까?

아니면 감동?

아니면 슬픔? 괴로움?

내 일인데도 내 안에 있는 감정의 이름을 모르겠다.

그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이 풍부했던 어린 시절에 평생 흘릴 눈물을 다 쏟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아직 더 울 수 있는 모양이다.

죽음을 결심하고도 울지 않았는데, 사람의 온기에 닿은 순간 넘쳐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목소리를 죽여 신음하듯 울며 하염없이 눈을 비볐다.

이런 모습은, 설령 사귀고 있는 선생님이라 해도 보여줄 수 없겠지.

가장 신뢰하는 상대에게조차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 있는 나는 인간불신자다.

그러나 마음이 녹아내려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그때가 바로 나의 새벽이 밝아오는 때일 것이다.

행복과 감동을 느끼면서도 아직 여명은 오지 않았음을 자각하며 나는 울면서 남몰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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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9.26번역

소설 핫산) 최종장의 연쇄

#소설#최종편
좋아요 0댓글 4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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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P
はる작가
게시물 10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09.26 00:21
조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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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나
ㅇDC
ㅇㅇ26.09.27

재밌따 담화번역 혹시언제나옴??

고DC
고관위작성자26.09.27

취금

ㅇDC
ㅇㅇ126.09.27

다음편이 있다고? 빨리 가져와!!!

고DC
고관위작성자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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