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0741844
「사람의 기억은 어디에 보존되는 걸까요?」
밀레니엄을 지나는 복도에서 수많은 파일을 들고 옆을 걸으며 노아는 말한다.
「뇌 아냐?」
그리 말하며, 뚱딴지같이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노아를 쳐다본다. 기억이 뇌에 보관되는 것은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 기초하여 증명되었다. 머리가 좋은 노아다, 설마 모를 리는 없을 테고 갑작스럽게 그것을 물어보는 탓에 나는 의구심이 든다.
「확실히 뇌라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이야기 중에는 기억만이 뒤바뀌는 것도 있죠? 만약 뇌에 기억이 보존된다면 뒤바뀌었을 땐 자신의 기억이 아닌 그 사람의 기억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긴 하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상 속 이야기지? 실제로 뒤바뀌지라도 않는 한 모르는 거 아냐?」
「네, 물론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전 그래도 생각하곤 해요」
그리 말하고, 노아는 멈춰서서 껴안은 파일을 보며 미소짓는다.
「기억은 마음 속에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문득 나는 떠올린다. 그때 노아가 말해준 그 기억 얘기를. 공상을 과학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멋없는 일이지만, 밀레니엄은 어느 쪽인가 하면 현실주의적인 곳이라 이곳에서 그런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일종의 농담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런 "농담"을 얘기하는 건 노아의 버릇같은 것이라, 나는 『또네』같은 잠재의식을 끌어냄과 동시에 그럭저럭한 기분으로 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지금, 노아가 말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유우카 쨩......?」
「노아......?」
눈앞에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 내가 있으며 나도 엄청나게 놀랐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도 분명히 자신의 것이 아니며, 양손을 쥐고 폄을 반복하자 나의 시야 앞에 있는 양손도 쥐고 폄을 반복한다. 시야를 아래로 내리자 평소보다 가슴이 커져 아래가 잘 보이지 않고, 오늘 스타킹을 신은 기억도 없는데 스타킹을 신고 있다.
「......그렇군요」
그렇게 혼돈에 빠진 상태에서 눈앞에 있는 상대는 납득한 듯한 태도로 표정을 지었다.
「유우카 쨩, 저희──」
눈앞에 있는 내가 자신을 『유우카 쨩』이라 말하며 조금 소름끼치게 웃는다.
「──뒤바뀌어 버렸어요!」
저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할 것도 아닌데. 평소의 나라면 절대 안 지을 법한 열받는 미소를 짓자 나는 조금 기가 죽었다.
아아......이거 꿈이 아니구나......재밌는지 아닌지는 제쳐두고 이상사태임이 분명하므로 가능하면 꿈이기를 희망했지만, 잠시 눈을 감고 시야를 새로고침해도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은 사라지지 않고, 어깨에 걸쳐진 하얀 머리칼도 연보라색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하아......그래 보이네」
「어째서 뒤바뀐 걸까요? 역시 같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게 원인일까요?」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겠네」
놀람의 정도가 전혀 적지는 않지만서도 일부러 냉정하게 사고하는 나. 아쉽지만 나는 노아처럼 꿈을 좇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런 상황에 닥쳐도 생각나는 것이라면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이다.
누군가에게 얘기해야 할까, 아니 그건 안이하고 오만하다. 리턴에 비해 감당할 리스크가 너무나도 미지수다. 그럼 다시 한번 도서관에 가 볼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스피리츄얼한 문헌이 도서관같은 일반 대중의 눈에 띄는 공공시설에 대놓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있다 해도 그건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신비학이니 신론이니 하는 비과학적인 걸 추구하는 트리니티에서 일어난다면 그럴듯해도, 마법을 부정하고 과학으로 마법을 재현하고자 하는 밀레니엄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주저하며, 그 결론에 다다를 때쯤엔 가렵지도 않은 앞머리를 긁으며 어깨부터 전신으로 스며들듯 힘이 빠져나갔다.
「인격이 뒤바뀌었다는 건 헤일로가 일시적으로 강한 마찰이나 충격을 받으며 교차됐으니까......? 아니면 천문학적인 확률로 일어난 터널 이론의 체현......? 아니, 신비학에 정통한 비밀결사의 음모일지도......?」
「아니 앞에 두 개는 그렇다치고 음모는 아니겠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일어나는 것보다 법칙을 우선하는 것은 밀레니엄 특유의 탐구심이기 때문일까. 바닥에 털썩 앉아 턱에 손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내 모습을 한 노아에게 참견을 했다. 그걸 들은 노아는 내가 절대로 하지 않않을,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네요』라며 속삭였다. 아무래도 참견을 기다리던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떡하지? 해결책을 모르는 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잖아?」
「그렇네요......」
진지하게 말하는 내 표정에 촉발되어 노아도 따라서 눈을 살포시 감고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노는 건 괜찮지만 그것은 해결책을 떠올린 뒤여야 한다. 나는 뒤바뀌었으니 당분간 서로를 흉내내 보자는 답변을 낼 만큼 동화적이고 무대뽀는 아니야.
「......애초에 이 인격의 교환은 일시적인 걸까요? 유우카 쨩의 생각을 들려 주세요」
「대상이 비과학적인 현상이니까 전부 억측이랄까 근거 없는 예상이지만......이 상황이 인위적인 것으로부터 만들어졌다면 일시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노아랑 내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건 명백한 사고고, 그 결과로 인한 것이라면 일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
「흠, 이유는 다르지만 저도 일시적은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해요. 여기는 저희 쪽에서 파문을 일으킬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그리 말하고 일어선 노아에 뒤이어 나도 일어선다. 이상한 말이지만 우리가 굴러떨어진 계단은 인파가 극단적으로 적은 곳이다. 이유가 무엇인고 하면 이 계단의 사용법이 세미나 집무실과 자료실로 가는 것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반 학생 중에선 필요없는 정보를 필요로 하는 학생, 그리고 세미나의 일원만이 이 계단을 왔다갔다 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걸 본 학생은 놀랍게도 0명. 감시 카메라에는 분명히 찍혔을 테지만 그런 걸 확인할 학생은 없을 테니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마이페이스대로 일어나, 마이페이스대로 사고하는 우리를 걱정해 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것은 명명백백 우리끼리의 문제인 것이다.
「가령 저희가 같이 굴러떨어져, 헤일로가 격하게 교차된 걸로 일어난 현상이라 한다면......재현성은 있다고 보나요?」
「응? 재현성이라니......설마......」
얘기의 내용을 듣지 않더라도 『재현성』이라는 말만으로 이 뒤 노아가 뭘 하고 싶은지를 알아챈 내 얼굴은 바짝 굳었다.
「네♪ 다시 한번 같이 떨어져 봐요」
◇
「하아, 안되네」
「네, 안되는 것 같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너덜너덜해진 우리는 바닥에 모여앉아 한숨을 내쉰다.
우리는 총알 몇 발 정도로는 조금 아픈 느낌만 드는지라, 그와 비슷하게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정도로는 크게 다치진 않는다. 그러나 아픈 건 여전하고 옷은 더러워지니까 사실은 이런 건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것도 해결을 위한 부수적인 피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뭐, 의미는 없었지만.
「방금 전 인격이 뒤바뀐 상황은 재현했을 거예요. 그걸 몇 번이고 시도해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네, 거기에 잘 생각해 보면 둘이 같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건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특수한 경우도 아닌 것 같아. 키보토스는 넓으니까 적어도 1년에 몇십 번은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테고, 그런데도 같은 현상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건 이상해」
「확실히 그 말도 맞네요. 그럼......선생님께 상담해 볼까요?」
「선생님이라......」
그리 말하고 우리는 아주 약간 얼굴을 찌푸리며 곧바로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하아......그러네, 그게 제일 낫겠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건 개인적으로는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선생님이라면 연줄이 많을 테고 그 연줄에 기대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도 의미도 불명인데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법, 그리고 당연히 선생님에게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단, 선생님께 상담하는 건 내일로 하지 않을래요?」
「난 괜찮은데......왜?」
「제가 유우카 쨩을 실컷 즐기고 싶어서요♪」
「......」
머릿속이 꽃밭이 되어 하늘하늘 떠다닐 듯한 싱그러운 미소를 보자 도저히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어서 대답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그건 정말로 분명하게 말하자면 이런 상황은 도저히 재현할래야 재현할 수 없는 것이니, 귀중한 체험이라는 뜻에선 매우 유익한 시간이다.
그러나 문제도 여럿 있고, 뒤바뀐 것을 누군가에게 전할 메리트는 딱히 없기에 이것은 비밀로 해 두어야만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선 서로가 서로를 능숙하게 연기해낼 필요가 있고, 그것은 분명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면 전투 스타일이나 업무내용 혹은 교우관계 등, 내가 모르는 것들을 자연스레 아는 듯 재현해야만 한다니 여간 피땀어린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유우카 쨩, 오늘은 어떤 팬티를 입고 왔나요?」
「하, 하아!? 왜 그런 걸 말해야만 하는 거야!」
「후후훗, 딱히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왜냐면 지금의 저는 유우카 쨩이니까요」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자 눈앞에 있는 내 모습을 한 노아가 갑자기 자신의 치마를 들어올리니 서둘러 그것을 막으려 했다.
「와아......밀쳐 넘어뜨리다니 대담하네요♪」
「무슨......! 이건 노아가 내 치마를 들추니까!」
「후후훗, 알고 있어요, 그건 그렇고 유우카 쨩은 의외로 어른스런 속옷을 입고 있네요」
「읏!? 진짜! 나 화낸다!」
노아의 페이스에 휘둘리면서도 머지않아 우리는 그 자리를 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선생님에게 상담할 기회를 미룬 것이 생각나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두뇌명석, 용모단정, 하늘이 두 재능을 내렸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왜인지 노아는 오늘따라 왈가닥이다. 『오늘은 서로를 흉내내며 지내 봐요』같은 말이나 하고 저편으로 달려간 노아의 등──원래는 내 등을 바라보며 오늘은 방에 틀어박혀 있기로 결의한다.
휴대전화 전원을 키자 4자리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뜨지만 어차피 생일이겠지 싶어 노아의 생일을 입력하자 휴대전화의 잠금이 훌륭하게 해제되고, 무심코 『완벽해~』를 입 밖에 내자 얼굴이 붉어진다. 우왕좌왕하며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모모톡을 켜 유우카에게 『이상한 짓은 하면 안돼』라는 메시지만을 보내고 나는 노아의 방으로 직진.
「아, 노아 선배입니다! 안녕하세요!」
──하려고 했으나 예기치 않은 조우에 발이 묶였다. 바로 앞 골목에서 나온 아리스 쨩이 말을 걸어와 노아 행세를 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지만, 내심 내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다고도, 찡그려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하야세 유우카일 텐데 우시오 노아의 행세를 해야만 한다는 힘든 마음, 그것은 그야말로 그곳에 노아가 있는 게 아니라 노아라는 이름의 로봇을 내가 어떻게든 조종하고 있는 듯 불안정했다.
「노아 선배, 오늘은 뭔가 예정이 있나요?」
「아뇨, 딱히 없어요. 그러니 제 방에서 시간을 때우려고요」
그리고, 여기까지 말한 뒤 아리스 쨩이 순진무구하고 반짝이는 눈매를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나는 거짓말을 할 걸 후회했다. 그렇게 쳐다보면 이 뒤 아리스 쨩이 뭘 말할지는 대강 예상이 간다.
「그렇다면 노아 선배! 저희와 같이 게임을 하죠!」
◇
「예이-! 또 아리스의 승리입니다!」
「......」
게임개발부 부실에서 묘하게 들뜬 아리스 쨩의 목소리를 듣고 입을 다무는 나.
현재, 8전 0승 0패. 아리스 쨩의 반짝이는 눈과 이미 내가 동행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 듯 기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면 거절할 수도 없어 내심 우울해지면서도 아리스 쨩──다시, 게임개발부 부원들과 게임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게임에 관해선 문외한이니 어떤 게임을 할지는 전부 맡긴 결과, 다양한 캐릭터들이 서로 얼키고설키며 대난투를 하는 대전액션게임을 하게 되어 아리스 쨩, 모모이, 미도리와 각자 일대일 대결을 하게 됐으나, 결과는 모두가 참패.
당연히 초보자인 내가 매일 게임을 하는 얘네들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지는 건 싫고 분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노아로서 그곳이 있기에, 노아가 졌다고 『아-진짜!』같은 말을 할 리는 없으니, 노아답게 최대한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행동을 배제한 결과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데다, 지금의 난 긴장이 쌓여 있는지라 도저히 온화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 아리스 쨩......노아 선배는 초보자니까 조금은 봐 주는 게......」
「아니 그건 그렇지만 그걸 말하면 안되지 유즈......!」
「에, 아......아으......」
결과창에서 굳어 있자 계속 뒤에서 지켜보던 유즈와 평소라면 나를 놀려대는 건방진 모모이도 지금은 노아가 상대니 조금은 떨고 있고, 미도리는 이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굳은 듯 눈을 연신 굴려대니 최악이다......이런 반응을 보자니 노아는 꽤 두려움을 받는 존재인 것도 같다.
「후, 후후훗, 역시 다들 강하네요」
「네! 하지만 유즈는 더욱 강합니다! 유즈도 한 판 어떻습니까?」
「에, 엣!? 저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대화의 흐름을 만들자 곧바로 양심의 덩어리인 아리스 쨩이 동조해 주지만, 너무나 둔감한 나머지 폭탄을 유즈에게 돌리고 말아 또다시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다같이 하는 건 어떨까요? 이 게임은 일대일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할 수도 있었죠?」
「......! 네, 다같이 할 수도 있어요」
「그, 그렇지! 일대일만 하면 재미없지! 다같이 하자!」
「네! 그럼 이번엔 다섯이서 하죠!」
내 안에 존재하는 노아가 어떻게든 제안해, 그것을 미도리와 모모이가 받아들여준 덕에 무사히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치만 노아 미안~.......이상한 짓은 하지 말라 했지만 오히려 내가 해 버렸을 지도 모른다. 노아와 관련 없는 게임개발부에 노아의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단 것과 무섭다는 인상을 길러버렸단 느낌이 든다.
아직 노아와 뒤바뀌고서 첫날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태면 앞길이 막막하다. 한순간의 파인플레이로 웃음이 만개한 모두를 보며 나는 온화하게 정신이 깎여나가는 것을 느꼈다.
「으.......?」
여기는 어딜까, 나는 누굴까.
물 속에 있는 듯한 포근한 환청을 들으며 허공을 휘적거리는 건 나일까. 가벼운 위화감을 느끼며 중력에 살포시 몸을 맡기는 것은 나일까.
지금 있는 이곳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이라고 인식할 수 있고 그 자신이 어디 있는지 너무나 막연하다는 것만을 나는 자각한다.
어딘가 거울은 없을까. 어딘가 휴대전화는 없을까.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무언가 길을 안내해줄 것은 없을까.
「.............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 귀에는 분명히 목소리가 들린다.
「....ㅅ......배」
「......아?」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답을 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곤혹에 빠진다. 입을 열었을 텐데도 소리가 나오지 않아, 몇 번이고 무언가를 말하려 하나 막힌 듯한 목소리를 낼 뿐이다.
「노.........배」
「아으」
「노....선.....배」
「으으아......!」
점차 가까워지는 목소리와 말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나는 열받아 소리를 지르려 한다.
너는 누구냐며, 뭘 말하고 싶은 거냐며, 그런 걸 말하고 싶어 나는 분기한다. 모든 것이 몽롱한 세계, 그곳에서 명확하게 뭔가를 하려 하는 의사가 내게 깃들어 지금──시야가 생겨난다. 경청한다.
「노아 선배!!」
그 끝에 『나』는 눈을 떴다.
명확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상황을 확인한다. 자물쇠가 잠긴 문 너머로 지금도 세차게 노크를 하며 나를 부르는 코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인 전화는 진동과 함께 착신음이 울린다.
「코유키......? 무슨 일이야?」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에요 노아 선배! 유우카 선배가......유우카 선배가......!」
비몽사몽한 터라 노아를 연기하는 걸 잊고 유우카의 말투가 됐지만 다급해진 코유키는 그런 건 아랑곳않은 것처럼, 눈물을 그렁그렁 맺으며 목도 메인 듯했다.
「......아무튼 빨리 절 따라오세요!」
「에, 와아!?」
주저하던 코유키는 생각을 포기하고 내 손을 잡아끌고 질주. 거기에 따라 나도 코유키를 따라가지만, 무슨 일일까, 이 안 좋은 예감은. 뛰면 뛸수록, 코유키가 향하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고동이 빨라지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생각하는 데에 주력한다면 발이 멈추고 만다, 그러니 나는 일부러 코유키에게 그저 끌려다니는 노아로 있는다.
「말도 안돼......」
목적지에 도착한 코유키는 그리 말했다.
눈앞에 이상할 정도로 흐트러진 코유키가 있는 탓인지, 내 안에선 혼란보다 냉정이 우선했다. 보건실에 들어가자마자 옆에 멈춰선 코유키를 지나, 그 앞,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어두운 표정의 모두조차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정면에서 고개숙인 선생님과 그 옆의 하야세 유우카-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걷는다.
「노아......」
내게 말을 건 선생님에게만 눈을 맞추고 옆으로 간다. 선생님 옆에서 누워 있는 유우카 쨩과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현실을 이해한다.
나를 바라보는 공허한 시선. 옷도 피부도 엉망진창에 가슴은 거의 다 보일 정도인데도 수치심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너무해」
나는 말한다.
「어째서?」
다음으로 질문을 던진다.
「거짓말이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뒤늦은 공포에 몸서리친다.
코유키에게 끌려온 보건실의 제일 안쪽,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노아가 말한 의외로 어른스러운 속옷을 입은──
「나는......?」
───하야세 유우카-노아-의 시신이었다.
「......」
페트리코. 그것은 비극의 냄새.
하야세 유우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 다음날 아침,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현관 밖에 있는 절 옆에서 나는 흑백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키보토스에선 드물면서도 의외로 평범한, 그럼에도 역시 주변에서 일어난 적은 그다지 없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 탓에 뒤에서 열리는 현관을 걸어가자 지금도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코유키도 모모이도 평소엔 저렇게 달려들 정도로 기운찬데, 막상 죽게 된 나를 앞에 두니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내 죽음을 슬퍼해 주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많은 사람이 슬퍼해 주기를 바란 적은 있지만, 그것을 관측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노아......」
───"살아남은 것"은, 하야세 유우카와 우시오 노아의 융합체.
『일어나』라며 간원하는 나의 지인의 등을 보고 있자니 『나는 여기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거기 있는 것은 분명히 하야세 유우카지만, 내가 아니다.
죽은 것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우시오 노아인 것이다.
「어째서......?」
어젯밤, 물건을 사러 나간 노아는 도로에서 불량아와 조우했다. 그곳에서 사소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은 목격정보로 확인이 끝난 뒤였고, 거기서 패배한 노아의 모습이 그거다. 샌드백이라도 된 것마냥 멍이 몸 이곳저곳에 들었고, 능욕이라도 당한 듯 의복이 거의 없다. 패배하고서 눈을 감는 것조차 용서받지 못할 만큼 괴로워했던 듯, 눈이 감기지 못한 역겨운 사체가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근처 도로에서 쓰레기마냥 굴러가던 것이니 정말로 총기가 있는 사회는 무섭다.
무엇이 그렇게까지 불량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원래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행위가 강한 의문의 대상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죽음에 이를 만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문을 제기해야만 한다. 그렇게나 나는 누군가의 원한을 사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나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좋은 것일까. 나를 죽인 범인도 모르고 진상을 모르는 채, 나의 죽음은 연일 뉴스 1면을 장식하게 된다.
세간의 반응이라면 무서워서 볼 수 없지만, 유비쿼터스 사회가 당연한 현대에서 이러한 일이 보편적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유비쿼터스가 아니라고 한다면, 하야세 유우카는 우연히 운 나쁘게 죽은 것이 된다.
──그런 질나쁜 우연이 있어도 되는 것일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운명에게 나와 노아가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이상해질 것만 같다. 지금도 부글부글 끓는 이 더럽혀진 가슴속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려면, 어차피 희생될 거라면 내가 모르는 인물이었으면 했다.
지금은 그러니까──몽상에 골몰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하아......」
허나, 그럼에도. 이런 참상을 눈앞에 두고서도 놀랄 정도로 나는 의외로 냉정했다.
......아니, 냉정함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사체를 눈앞에 두었을 때도 그랬지만, 역시 주변에서 흐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로하려는 마음이 동하거나, 나는 울어야 하냐며 반골정신같은 것이 목소리를 높이거나, 혹은 전부를 포함한 참극에서 슬픔을 넘어 한 바퀴 돌아 숙연해지는 것 말고는 없지만, 실제로는 어느 것이 작용했는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울며 흐느끼거나 한 자리에 굳어 있는 사태는 일어나진 않았다.
거기에 무엇보다 나는 "남겨졌다는" 사실에 공연히, 위연히*, 그리고 해연*했다.
(*위연하다: 한숨을 쉬는 모양이 서글프다 / *해연하다: 몹시 이상스러워 놀랍다)
뒤바뀌었던 어제의 오늘,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그 세계, 그곳에서 본 것은 칼레이도*가 된 하야세 유우카.
(*칼레이도: 아름다운 형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남겨진 나는 이제부터 우시오 노아로써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 몸에 깃든 인격은 하야세 유우카다. 이 뒤죽박죽에 언제까지 난 당황해야만 하는 걸까, 자기모순이라는 말을 완벽히 체현한 존재. 우시오 노아의 생일은 4월 13일, 세미나 소속 서기. 취미는 독서에 애총의 이름은 『서기의 결단』 등등 대외적인 노아의 프로필과 행동같은 건 계속 함께 있었으니 대강은 알고 있다.
하지만 무얼 말하랴, 예컨대 내가 우시오 노아라 해도 마음-기억-은 하야세 유우카-나-이다.
「돌아가자......」
안에 있어도 결국 한숨만 내쉴 뿐, 참으로 우울한 결말이다. 인격이 뒤바뀌었을 때에 있던 것을 정리한 논문이라도 쓴다면 의학의 혁신을 이뤄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어리석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우시오 노아인 내가 하야세 유우카의 이름을 댈 것인가? 그런 짓을 한다면 모두 슬픔을 거두고 화를 낼 것이다. 만약 내가 당사자라면 한 방 때릴 자신도 있고 애초에 그런 걸 말해도 믿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으로 해명할 수 없는 초현상을 개인의 힘만으로 어떻게든 할 수는 없으니, 즉 나는 이 상황에선 무력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조력을 원치도 않고 구할 수도 없는 나는 앞으로도 계속 무력하다. 그러니 나는 발걸음을 돌린다.
「......?」
하야세 유우카는 죽었지만, 밀레니엄의 모든 학생이 하야세 유우카의 죽음을 슬퍼할 리도 없고 밀레니엄의 교정 안은 의외로 평소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런 떠들썩한 교정의 안쪽, 세미나의 집무실 문 앞에서 나는 발을 멈추고, 그 안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물음표를 띄웠다.
「유우카......」
하야세 유우카-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문 너머, 사람이 거의 들어올 일 없는 세미나의 집무실에는 사실 아직 하야세 유우카의 사체가 놓여 있다. 원래라면 발키리가 관리해야 하지만, 갑작스런 하야세 유우카의 죽음에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어, 그 서운함으로 인해 밀레니엄은 아직 나의 사체를 건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밀레니엄에 사체안치실같은 뒤숭숭한 장소는 없어, 지금은 완전히 기능이 정지한 세미나의 집무실이 그 장소를 대신하는 상태다.
그렇게 되어 그 하야세 유우카-나-의 사체가 놓인 세미나의 집무실에 어떻게 된 일인지 선생님이 있단 것에 내심 놀랐다.
「유우카, 사실은 네가 밀레니엄을 졸업하고 나서 말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늦은 것 같아」
그리 말하고 선생님은 구두 속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며 꺼냈다.
「유우카, 나와───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줘」
「......!?」
문 저편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와 절로 양손으로 입을 막는다.
그것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키보토스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꿈꾸던 지위. 그것을 선생님은 "죽은" 유우카에게 부여한 것이다.
「훨씬 전부터 좋아했어. 하지만 유우카의 나이로는 세간의 시선도 있었으니까......그러니까 적어도 유우카가 밀레니엄을 졸업할 나이까지 기다리려고 했어. 하지만 마음이 그때까진 기다리지 못해서......그러니까, 자기만족 때문일지라도 극비로 하고 반지를 주문했었어」
듣고 있자니 눈물이 솟구친다. 나도 훨씬 전부터 좋아했다, 하나가 되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어디선가 아주 살짝 선생님을 포기한 부분도 있었다.
선생님 주변엔 예쁜 학생들이 매우 많고, 애초에 선생님은 박애주의자같은 면이 있다. 나만을 특별히 봐 주리라고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의 나쁜 예상을 크게 크게 크게 크게 돌고 돌아서 내가 꿈꾸던 광경이 "문 저편"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우카가 죽은 이상 이 반지는 이제 필요없겠네」
「......!」
「이건 유우카를 위한 거야. 유우카의 왼손 약지에 끼우기 위해 태어난 반지지만, 이제 그것도 이룰 수 없겠네. 그러니까 이건 버릴 거야. 이제와선 슬픈 추억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아」
───그 반지를 버리지 말아 줘.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우시오 노아-나-가 외치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선생님의 상대는 하야세 유우카이고, 지금의 나는 우시오 노아. 그 사실이 나를 운명과 완강하게 묶어놓는다.
「......! 거기 누구 있어?」
「아......저기......」
가녀린 목소리와 함께 한 발 물러섰을 때 낸 발소리로 선생님도 나의 존재를 알아챈 듯 말을 걸었고, 나는 관념한 듯 문을 천천히 열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한다.
「노아......」
「죄, 죄송해요. 엿들을 생각은 없었어요......」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엿듣게 된데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죄송스런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어쩌면 이 뒤 혼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움을 살 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에 두려움에 떨며 조금 눈물을 짓고 만다.
「......아냐 괜찮아, 오히려 들었던 게 노아라 안심했어. 그치만 미안, 이건」
「──물론 비밀로 할게요」
「응, 고마워. 그런데 노아도 유우카한테 볼일이 있어서 온 거야?」
「아 아뇨───」
그저 죽은 하야세 유우카-노아-와 만나러 왔을 뿐이지만, 방금까지의 선생님의 말이 신경쓰여 말문이 막힌다.
──사실은, 내가 하야세 유우카라고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무신경한 것을 지금 여기서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걸 입 밖에 내기만 해도, 선생님은 정색할 테고 모든 게 끝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나는 여기에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하야세 유우카라면 이곳에 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야세 유우카는 죽은 것이다.
선생님에게 진실을 전할 수 없다는 분노를 주먹에 실어 손이 빨개질 때까지 몇 초간 쥐고, 조금 냉정을 되찾은 나는 주먹에 들어간 힘을 슬며시 뺀 뒤 선생님에게 웃음지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막 지어낸 미소로는 얼버무릴 수 없을 것이다. 세게 쥔 주먹도 보여졌고 선생님은 조금 곤란한 듯한 웃음을 띄우며, 엿들은 것을 포함해 죄책감에 휩싸인다. 선생님도 내심 평온하진 않을 테고, 한눈에 보기에도 당황해 보이는 나라는 존재를 앞에 두고 어느 정도 평온한 척을 해야 한다니 너무나도 괴롭다.
「......죄송해요, 실례했습니다」
그러니 서로를 위해, 나는 곧바로 최선의 안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냐, 내가 나갈게. 내 볼일은 이제 끝났으니까」
그리 말하고 책상 위에 놓은 신발과 상자에 든 반지를 들고 이 방을 뒤로 한 선생님. 나도 복도로 나가 그 등을 바라본 지 몇 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금 큰 소리로 외친다.
「선생님!」
「응, 왜 그래?」
「......그 반지는 버리지 말아 주세요」
『유우카 쨩도 그런 건 버라지 않을 거예요』, 라고 조금 더하여 나는 최대한의 저항을 보인다. 어디까지나 노아로써의 의견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야세 유우카의 진심에서 나온 말을.
「......그러네, 유우카라면」
「──울면서 기뻐할 거예요, 후후훗」
장난꾸러기같은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의 말에 댑한다. 혹시 선생님에게 프러포즈라도 받으면 그날은 계속 울기만 할 자신이 있다. 그러니 그 말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고마워 노아, 조금은 기운이 나네」
「......그럼 다행이에요」
분명 그때, 서로가 덧없이 웃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살며시 만져도 부서질 듯한 섬세한 마음이 된 우리는 아직 완벽히 뒤돌아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게」
「네, 알겠어요」
그리 말하고 선생님은 자리를 뜬다.
사실은 뒤쫓아가고 싶은 그 등을 필사적으로 참아가며, 나는 천천히 세미나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노아......」
임시로 놓인 들것에 위를 보며 뉘인 하야세 유우카-노아-를 보자 눈물이 솟구친다.
「노아......미안......!」
어제와 오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심각할 정도로 정보가 과다하게 들어온다. 한순간에 죽음으로 제정신을 잃나 싶더니 이번엔 에둘러서 선생님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거기까지 와서 그제야 나는 결여된 감정을 되찾았다. 그것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바가 없을 정도로 커다란 슬픔과 괴로움이었다.
「미안, 미, 안......!」
모두 하야세 유우카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지만, 나만은 진실-노아의 죽음-을 알고 있다. 어제 그렇게나 들떴던 노아가 지금은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어제 전투에서 나의 애총을 제대로 조작할 수 있었을지, 제대로 Q.E.D를 사용할 수 있었을지. 권총을 쓰는 노아에게 기관단총의 반동은 제대로 제어할 수 있었을까. 내 오리지널 시스템으로 만든 Q.E.D를 조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더 간단한 총을 썼더라면. 내가 Q.E.D를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시스템으로 만들었더라면. 그런 의미없는 상상으로 스스로를 책망한다. 어쩌면 있었을 지도 모르는 노아가 살아있는 세계는 아름다움을 너무나 추구한 나의 쓸데없는 고집으로 더럽혀졌다.
「미, 안, 해......」
진실을 알아도 모두 상냥하니 나를 원망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합리하게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다.
노아가 죽은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니, 내가 모두의 몫만큼 하야세 유우카-노아-의 죽음을 슬퍼했다. 어차피 죽는다면 내가 죽는 게 나았다, 이렇게 된 뒤 선생님에게 프러포즈를 받을 바에야 노아와 선생님이 맺어졌으면 했다.
선생님과 서로 마음이 통한 것은 기쁘다. 하지만 노아가 죽어버린 것이 슬프다. 그러니 그런 최대한의 기쁨과 최대한의 슬픔이 서로 섞여 나의 감정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속에 쌓이고 쌓인 슬픔이 터져나와 나는 끝없이 절규했다.
하야세 유우카-노아-가 실린 들것에 얼굴을 파묻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말로 나는 스스로를, 세상을 저주했다.
지금도 『유우카 쨩』이라고 따스하게 웃어주며 나를 부르는 노아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새카만 심해에 가라앉고 만 나의 시야에 비친 그것은, 내가 토해낸 거품으로 사라져버릴 정도로 물거품이 된 너-노아-였다.
돌아와 줘. 내게로 돌아와 줘. 지금이라면 화내지 않을 테니까 몰래카메라 대성공이라며 플래카드와 함께 웃으며 일어나 줘.
「으으아아아......!」
그런 소망이 이뤄질 리도 없다. 나는 슬픔의 바다로 다시금 가라앉을 뿐이었다.
「선생님......조금 야위셨나요?」
「에, 그, 그런가......」
「네, 일주일 전에 비하면 아주 조금」
딱히 말이 오가지 않는 샬레의 오피스, 격무에 피로를 느끼고 있을 선생님이 커피를 컵에 따르기 위해 일어나려 하자 나는 떠올린다.
「......오늘, 제가 오고 나서 천장을 올려다본 횟수는 21번, 창문 밖을 애수가 흐르는 눈으로 보던 횟수는 14번. 13초 이상 키보드에서 손을 뗀 횟수는 38번이에요. 선생님, 혹시.........」
「역시 노아의 눈은 속일 수 없구나. 부끄러운 말이지만, 아직도 유우카의 죽음을 벗어나오지 못해서 말야,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았을까 계속 후회하고 있어」
딱히 선생님을 관찰하던 건 아니다, 딱히 선생님의 행동을 기록하던 건 아니다. 노아의 몸이 되고 나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지만, 기억은 나의 것이어도 몸 그 자체는 노아의 것이라, 그러니 그 경이로운 기억력도 건재하며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본』 것만으로 나는 모든 것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희소한 기억력으로 선생님의 행동을 미루어 살피니, 선생님은 아직도 상심중인 것 같았다.
「......」
거기서 난 어떡하는 게 좋았던 걸까.
동정하는 것은 간단하다. 위로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특수한 입장과 처지에 놓인 나는 아무래도 정답을 알 수가 없어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금 어두운 창문 바깥을 바라보는 선생님에게 뻗은 손을 한번 물리고, 조금 생각한 뒤 바로 걸어간다.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만은 없었다.
「......노아?」
「......」
당신이 사랑한 하야세 유우카로부터, 진심어린 사랑을 담아 껴안는다.
약해진 선생님을 보고서, 이도저도 못하게 된 나는 선생님을 껴안는다. 나는 여기에 있다, 하야세 유우카라면 여기에 있다. 그것을 직접 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안심했으면 좋겠다. 내가 있는 시간만이라도......선생님이 편해진다면 그만한 것은 없다.
「노아......미안해......」
나는 그에 답하듯 더욱 세게 껴안았다.
뒤바뀌었다 해도, 죽는다 해도 타이밍이라는 것은 있었으리라. 선생님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노아는 잘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농인지, 뒤바뀐 것도 죽은 것도 프러포즈받은 것도 전부 인과가 엮인 관계라는 것에 나는 심히 화가 났다. 인생사 편치 않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운명에 희롱당하는 것이 인생인 걸까. 그 탓에 내가, 노아가, 선생님이, 계속 괴로운 기억 속에 살아야만 하는데.
「선생님......!」
나는 조용히 흐느끼고, 선생님은 그 뒤로 아무 말도 없다.
이런 때, 노아라면 어떻게 했을까. 노아라면 뭘 생각했을까.
그런 의미없는 상상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나를 옥죄는 것이다.
◇
「유우카 쨩, 운명이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어, 운명?」
밀레니엄의 복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밖을 유리창 너머로 올려다보며 노아는 돌연 내게 묻는다.
「운명......으-음,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있지 않을까? 가능세계론이라든가 인과율이라든가 그런 걸로 증명할 수......있겠지? 예를 들자면 나랑 노아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닌 거잖아? 왜냐면 우리는 태어난 곳도 다르지만 똑같이 수학과 화학을 즐겼으니까 밀레니엄에서 만난 것 자체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랑 노아는 수학과 화학에 흥미를 가진 때부터 만남이 정해졌던 거지. 이건 운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의견이네요. 그러고 보니 분명 운명은 있을지도 몰라요」
「노아는 다른 생각이야?」
「네, 저는 운명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뒷짐을 지며 돌아보는 노아는 조금 쓸쓸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인생이라는 건 즉흥극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그때그때 상황도 등장인물도, 모든 것이 다른 극이 시작하고, 그것이 끝나자마자 다른 극이 시작되는. 누구나가 애드리브를 하며 지내는 나날에 운명같은 건 없고, 즉흥극을 반복한 결과 초자연적으로 저와 유우카 쨩이 만났다. 그뿐이라고 생각해요」
「......미안, 잘 모르겠어」
「몰라도 괜찮아요. 단지 전 운명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그걸 전하고 싶었어요」
「그건......어째서야?」
정기적으로 잘 모르는 말을 하는 노아지만, 오늘의 노아는 조금 진지한 표정이라 나는 조금 긴장한다.
「──운명을 긍정한다면, 자신에게 미래를 바꿀 힘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에요」
◇
「......하」
책상 옆에 놓인 휴대전화의 알람이 들려, 눈을 뜬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정기적으로 노아가 내게 걸어오는 철학적인 말. 딱히 흥미가 없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 있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한 장면.
「운명......이라」
운명이라는 말은 좋은 뉘앙스에도 나쁜 뉘앙스에도 쓰인다. 나와 노아가 뒤바뀌어, 노아가 죽고, 내가 프러포즈를 받는 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분명히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만다면, 나는 그 앞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기억은 마음에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노아의 말은 묘하게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뭐 그저, 이런 때 알아챌 거라면 난 알아채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주인님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서~」
「선생님은 어딘가 상태이상에~」
「그치만 전에 갔을 땐~」
「역시 유우카 씨가~」
─────알고 있다.
밀레니엄 안은 꽤 넓을 텐데, 길을 걷자 금세 아는 얼굴들과 만난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만날 때마다 모두 선생님의 얘기를 꺼낸다. 당연한가. 선생님, 매일매일 수척해져 가니까.
「......」
하야세 유우카-노아-가 죽은 지 41일째. 오늘도 키보토스는 변함없이 태양과 총구가 눈부신 일상을 펼치고 있다. 유일하게 처음부터 선생님을 알던 나는 거의 매일 샬레에 방문해 선생님을 위로하는 헌신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열심이어도 선생님의 상태는 가속도적으로 악화해갈 뿐.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지금, 그제야 다른 학생들도 이를 알게 될 정도가 되었다.
「알고 있어」
다시 한번, 이번엔 입 밖으로 꺼내 말한다.
밀레니엄의 입구, 사람들이 지나는 한가운데 멈춰서서 무기질적인 천장을 응시한다.
선생님은 지금, 괴로워하고 있다.
「──알고 있어」
이변을 눈치챈 학생들이 무언가 행동한대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알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나, 아아──그렇다, 나의 모든 것을 바친대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생님은 수척해져 간다.
그것은 그야말로 우시오 노아-나-로는 선생님의 힘이 될 수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
눈을 감고, 이 가슴에서 폭발할 듯한 슬픔과 분노를 어떻게든 억누른다.
아아, 외치고 싶다. 목이 쉴 정도로 커다란 소리로 외치고 싶다. 그러나 외친대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 우시오 노아의 뇌는 냉정히 분석했다.
성가시게도 우시오 노아의 몸은 하야세 유우카의 그것보다도 대단히 이성적이라, 내 생각대로는 되지 않았다.
「......가야겠어」
아무리 의미가 없대도 우시오 노아는 멈추지 않는다.
우시오 노아-나-로는 하야세 유우카를 대신할 순 없대도, 내가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오늘도 선생님의 지지대가 되기 위해 나는 샬레로 가야만 해.
「선생님, 계신가요?」
샬레 오피스에 들어와 나는 평소처럼 말을 건다. 선생님도 내가 매일 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대체로 이 시간에는 커피를 준비해 둘 텐데, 오늘은 커피가 없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 어디에......선생님!?」
일단 오피스를 한 바퀴 돌듯 걷자 책상 위에 쓰러진 선생님을 보고서 서둘러 달려갔다.
「......열?」
맥은 있었지만, 선생님의 이마가 뜨겁고 숨이 불규칙적인데다 체온이 높다. 의료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정말 열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선생님을 샬레 거주구의 침대까지 옮겨가 얼음과 물을 준비하랴 동분서주한다. 이럴 때 의료에 자세한 학생이나, 자세하지 않더라도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는 학생이 곁에 있었다면 더 나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할 수 있는 걸 전부 한 뒤에는 의자에 앉아 선생님을 쭉 지켜보았다.
「응......」
빈 시간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얼음을 갈았고, 드디어 선생님이 천천히 눈을 뜨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신이 좀 드시나요?」
「응, 노아......미안, 또 폐를 끼쳤네」
「......그렇네요」
『신경쓰지 마세요』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나날이 야위어가, 나는 거기에 마음이 아팠고, 그럼에도 향한 샬레에 쓰러져 있었으니 얼만큼 심려를 끼칠 생각이냐며, 본심을 말하자면 그리 말하고 싶다.
「......조금 쉬시는 게 어떨까요? 지금의 선생님은 솔직히 말해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어요」
「아니......그럴 순 없어. 샬레의 업무는 대체할 수 없으니까. 물론 쉬긴 하겠지만 그건 지금이 아냐」
「......」
선생님의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내가 얼마만큼 헌신적이라 해도, 선생님에겐 내 말을 닿지 않고 내 생각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저로는, 안되나요?」
「......응?」
───인생은 즉흥극의 반복.
과연, 분명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운명을 긍정하지 않는다면, 일어나는 사상(事象)은 전부 비운명이다. 비운명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손이 가해진 사상이다.
해삼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내장을 토해낸다고 한다. 즉 나와 같다. 나는 지금 내장을 토해내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을 말해 버린다면 끝이다. 이것을 토해낸다면 마지막이다.
「유우카 쨩이 아니라......저로는 안되나요......?」
우시오 노아-나-가 하야세 유우카-나-를 뛰어넘으려는 모순. 원래대로라면──이곳에는 하야세 유우카-나-가 있을 텐데, 이곳에는 우시오 노아-나-가 있다.
「유우카 짱을, 떨쳐내지 못한대도 좋아요. 하지만 확실히 말할게요」
나는 아주 잠깐 눈을 감고 각오를 다진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유우카 쨩-은 이제──없어요」
내가 나의 끝을 고한다.
이것은 하나의 즉흥극. 나라는 주역과 선생님이라는 또 하나의 주역 사이에 있는 하야세 유우카라는 존재에 종지부를 찍고, 우시오 노아라는 내가 고백을 하는,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그러니까......」
가속하는 심장박동이 시끄러워 사고가 흐려진다.
『이것』을 말하면 여러 의미로 끝이다. 단지 『이것』을 지금 말하지 않으면 언제 말할 것인가. 우시오 노아-나-에게 남겨진 기회는 있어도 언제쯤일지 모를 것이다.
그러니 새기는 것이다. 이것이 좋아도 나빠도 기억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것』을 새기는 것이다.
「우시오 노아-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주세요!!」
적당히 넓은 방안에, 메아리가 칠 정도의 고백을 전한다.
선생님의 그이-유우카-가 아닌 나는 고백받는 쪽이 아닌, 고백하는 쪽. 그러나 내가 나인 이상,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말할 것이다. 그저, 그 답변을 지금 원했을 뿐.
선생님이 점점 쇠약해지던 중 내가 고백을 하고, 그 끝에 돌아온 그 대답이 나에게 있어서 전부가 될 거라 생각했다.
「......노아」
그리고 선생님은 답할 것이다.
내가 원했던 것이니, 원했던 그 너머에서 붙잡은 『그것』을 천천히 확인한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유우카한테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어른이라 미안해. 노아의 말이 맞아. 유우카는 이제 없어......그걸 나도 슬슬 자각해야 할 때인가 봐」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이윽고 고양되어 일어난 나와 시선을 맞추듯 선생님도 말을 꺼내며 침대를 내려와 천천히 일어나 나를 본다.
「잘 생각하지 않아도 노아는 헌신적이고 휠씬 전부터 날 여러모로 돌봐 줬지. 유우카가 죽은 뒤에도 노아가 나를 제일 신경써 줬어, 그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선생님......」
「그렇기에 나는 답하고 싶어, 보답하고 싶어. 그러니까 노아──」
선생님은 조금 덧없는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사귀어 줄래?」
「......네, 부탁할게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차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이제서야──내가 바랬던 그 말을 듣게 돼 기쁜 나머지 선생님에게 안았다. 아플 정도로, 끌어안은 그 몸을 절대로 놓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은 나는 울었다. 조용히 울었다.
「노아......?」
「부탁해요......지금은 이대로......」
아아, 나는 행복하다. 정말로 행복하다.
평소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특수한 곤란을 뛰어넘어,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의 약혼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로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아하, 하......」
────"슬펐다"
지금도 흐르는 이 눈물이 『행복의 눈물』이 아니란 것은 분명 나만이 알 것이다. 강하게 끌어안은 그 힘이 마음의 고통에 견디기 위한 힘이라는 것은 분명 나만이 알 것이다.
다시금 말해 두자.
"살아남은 것"은 하야세 유우카와 우시오 노아의 융합체.
이곳에서 진행되는 즉흥극은──제일 원했던 사랑을 손에 넣었을 터인 소녀가 읊조리는 이상하고 신기한 비극의 즉흥극.
──그렇게나 원하던 선생님의 약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두 번째다. 앞으로의 미래에선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하야세 유우카와 자신을 겹쳐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분명히 나는 선생님의 약혼자, 하지만 선생님이 맨 처음 사랑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내가 우시오 노아로써 살아가는 이상, 두 번째, 재탕, 2등, 그리고 대용품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거기에, 노아 본인은 어떻게 될까?? 이 사랑이 성립한다면, 누구도 진짜 우시오 노아의 행방을 모르는 채 세상은 돌아간다. 총과 장치의 사용법도 모르는 채 그저 일방적으로 죽게 된 노아의 고통은 누구의 마음도 울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의 마음-기억- 속에서만 살아있고, 살아가게 된다. 선생님과 약혼한 사이가 된 이 앞에 어떤 일이 생겨도 자신의 정체가 하야세 유우카라고 말한다면, 그 시점에서 이 사랑은 죽은 노아처럼 물거품과 같이 사라진다.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 없다.
이 사랑은 전부 나의 것이다. 그럼 노아는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가고, 그리고 죽을 뿐.
예를 들면 데이트를 했을 때, 예를 들면 전투를 했을 때, 예를 들면 지금 이렇게 서로 껴안고 있을 때.
나도 선생님도 하야세 유우카라는 인물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을 순 없다. 이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바란 것이다. 이 이상 없을 행복을 체감한데다, 이 이상 없을 행복을 바라고 만 것이다.
「아아......」
───부디, 누구든.
「선생님...........」
─────이 『악몽』을 끝내 줘.
「유우카 쨩, 테세우스의 배가 뭔지 아세요?」
「응? 아아, 알고 있어. 배의 부품을 전부 바꿔 버린다면 그건 부품을 바꾸기 전의 배랑 같은 배인지 말할 수 있느냐는 철학적인 문제지?」
「네, 정답이에요. 이 문제에는 다양한 대답이 나왔고 이미 대답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도 여럿 있어요. 하지만, 이 역설에 대해 그다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왜냐면 대답은 단순하니까요」
「그건......무슨 말이야?」
기억 속 노아는 말한다.
「그 배의 선원이 기억해 준다면, 그건 같은 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모습을 하든, 기억해 준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선 같은 배잖아요?』. 그렇게 덧붙이며, 노아는 쓸쓸하게──웃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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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너무 빡세
ㄹㅇ
어질어질하다
아니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