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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종류는 전세계에 걸쳐 약 20만 종이라 알려져 있다.
모양이나 색, 기관 등의 차이부터 천차만별이다.
그 모습 때문에, 꽃은 자주 사람에 비유되곤 한다. 대체로 『모두가 다르고 모두가 좋다』라는 취지가 될 것같지만.
그런 꽃에는, 저마다 특별한 꽃말이 있다는 것같다.
학술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사람들이 그 일에 색을 더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담아 꽃에 의미를 담았다.
그것은 희망을 가진 긍정적인 것부터, 비애를 띠는 부정적인 것까지 가지각색이다.
특별한 자리나 상대에게 건낼 때에는, 특히나 이 꽃말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백합에는 이와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순수. 무구. 위엄.
품격있고 고결한 이미지인 백합에 걸맞는 꽃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꽃말은 종종, 그 색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
빨간색이나 분홍색이라면 『허영심』.
주황색은 『유쾌』, 『화려』.
노란색이라면 『명랑』 등이다.
그리고, 하얀 백합.
결혼식에서 새신부의 부케에도 자주 쓰이는, 순결무구하고 특별한 꽃.
이 꽃말을, 당신은 알고 계신가요?
만약, 알고 있으시다면.
저는────…….
우시오 노아는 물들지 않는다.
"번거롭게 죄송해요, 선생님."
이윽고 날짜가 바뀌려고 하는 시간대의 밀레니엄 기숙사.
그 내 방에, 샬레의 선생님은 와있었다.
이유는 비밀스런 만남……이 아닌, 내가 깜빡한 물건 때문.
내일 밀레니엄에서 열릴 회의 자료를, 샬레에서 당번업무를 보면서 깜빡하고 놓아둔채로 잊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깜빡하고만 것이다. 우연히도.
"별일이네, 노아가 물건을 깜빡하다니."
그 의도를, 아무래도 이 벽창호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내용은 모두 머리에 들어있으니까 『가까운 시일에 가지러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굳이 심야에 내 방까지 전해주러 와주었다.
"눈치채는게 늦어서 서둘러 연락한건데, 아직 일어나 있어서 다행이야. 급히 필요한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정도면, 둔감한게 맞는지 의심스럽다. 일부러 이러는건 아닐까?
그런 호기심을 감추면서, 선생님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모처럼이니, 괜찮으시다면 잠깐 들어왔다 가시겠어요?"
"어?"
최근에는 매일 적은 기록 덕분인지, 선생님의 표정만 보고서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모범답안』으로써 어떤 대답을 할지, 라는 것도.
"노아도 피곤할테니까, 빨리 쉬는게 좋을거야. 늦은 시간인데 미안해."
그래, 그것이 『모범답안』.
당신은 선생님으로서의 입장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평소 둔감할 때가 많지만, 사실은 똑똑한 사람일테지.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견제이기도 하다.
한 번 거절함으로써 거리를 두고, 나에게 그 뜻을 묻고 있는 것이다.
'겉치레는 불필요. 진짜 바라고 있는건 뭐냐?'……하고.
"그런가요, 유감이네요."
라는건, 나의 지나친 생각일까.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고는, 뭐어, 그런 가능성은 있다 정도인가.
유감이에요, 선생님.
그정도로 제가 포기할거라고 여기고 계신다는게.
"최근 저도 유우카쨩도 비슷하게 잠이 부족해서요. 잠드는게 심야 세 시를 넘을 때도 있어요.
그러니까 마침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선생님은 바쁘신 몸이니 억지로 잡아서는 안되겠죠."
"그, 그래?"
"알고 계신 것처럼, 제 방에는 개인물품이랄만한게 거의 없으니까요. 잠들기 전까지 독서를,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한 번 읽은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저에게 있어서는 그것조차도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요."
"어, 그게."
"이대로는 뭔가 소동을 일으킨 뒤에 기록이라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버릴지도 모르겠는걸요."
"아니 그."
"유우카쨩하고는 잠이 오기 전까지 같이 산책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역시 저하고는……."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면 잠깐 들어갈게! 하지만 정말 잠자기 전까지만 이니깐?"
"후훗, 감사합니다. 자, 들어오세요."
살짝 짓궂게 말해버렸지만, 태평하게 사적인 공간에까지 들어온 선생님이 나쁜 것이다.
분명 방문허가를 한건 나지만, 선생님이 오는 것을 알고나서 이후의 시간은 무한하다고 여길만큼 길게 느껴졌다. 무슨 형벌을 받고 있는건가 싶을 정도다.
당사자인 선생님은, 심야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학생의 침실에 들어오는 것에 꽤나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테지.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둘러본 후,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승부는 이제부터라며 문을 닫고 나서 『대체 무슨 승부를 하고 있는걸까』하고, 자조하듯이 웃었다.
"커피라도 드시겠어요?"
"아니, 쓸데없이 잠이 더 깨지 않을까?"
"논카페인이라서, 괜찮아요. 밖은 춥죠?"
"으음, 그러면 염치불구하고 잘마실게."
선생님에게 의자에 앉도록 말하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핫커피를 만들 준비를 하는 사이에, 선생님은 이전에 내가 받은 디퓨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합 향이 난방이 돌고 있는 방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있다.
방 안에 개인물품은 거의 없고, 희고 살풍경인 방에 색을 만들어준, 내 보물.
"덕분에 릴렉스할 수 있었어요."
"다행이야. 그래도 수면 촉진효과는 없었던 모양이네."
부끄럽다는듯이 웃는 선생님.
그것도 그럴 것이다. 잘 수 있을리가 없다.
이 향기를 맡을 때마다, 선생님의 기록을 떠올려버리니까.
비에 젖은채로 피는 백합과도 같은, 달콤하고 다정한 향기.
"선생님은, 그 때──"
말을 하려던 참에, 물이 끓었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내 말을 기다리는 선생님에게서 시선을 돌려, 인스턴트 커피를 컵에 부었다. 방 안에 떠돌고 있던 백합은, 눈이 뜨일 것같은 커피의 향기로 덧씌워졌다.
"드세요."
"고마워."
선생님은 말을 재촉하지않고, 머그컵에 몇 번인가 바람을 불고 나서 마셨다. 흰 김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
"맛있네."
"인스턴트지만, 트리니티에 있는 오래된 가게에서 주문한 것이니까요. 품질은 좋을거라고 생각해요."
"헤에, 그렇구나. 귀중한 거네."
선생님은 몇 번인가 깊이 끄덕인 후, 한 번 더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컵을 기울였다.
혹시나 싶어서 구입한 물건이었지만, 목표였던 대상에게 대접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다. 유우카쨩한테도 내일쯤 줘야겠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똑같이 커피를 마셨다. 가슴 부근에 따스한 온기가 퍼진다.
"뭐랄까, 노아가 파자마를 입은 모습도 익숙해지기 시작하네."
"벌써 질려버리신건가요?"
"그게 아니라, 그."
오히려 나는, 선생님이 방 안에 있는 것이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데.
"전에는 뭐랄까 두근거려서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는데, 이제야 겨우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바라보신 감상은 어떠세요?"
선보이듯이 일부러 손을 벌려서 보여준다. 걸치고 있던 연보라색 스톨이 침대에 떨어지고, 남은건 순백의 룸웨어 뿐.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고, 잠시동안 눈을 이리저리 굴린 뒤에 이렇게 말했다.
"잘 어울려."
"잘 어울리나요?"
"응. 순수할 정도로 비쳐보이는 점이라든가."
"어머, 비치는게 더 좋으신 건가요?"
"그게 아니라……!"
"후후, 농담이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자리가 불편해졌는지, 머그컵에 입을 댄 채로 등을 쭉 폈다. 의자에서 끼익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조금 과하게 괴롭힌걸까. 그의 시선이 아래를 향해버리고, 아무 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컵을 유명 미술관의 그림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너무 신이 나버렸다. 그도 그럴게, 이렇께까지 선생님을 독점할 수 있는 시간도 자주 있는건 아니니까.
"죄송해요. 괜한 부탁을 드려서."
"아니 괜찮아. 그보다,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했었잖아, 뭔가 불안한 거라도 있어?"
"불안하다, 면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굳이 구분하자면,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해야할지……."
여기서 『당신 때문에 잠을 못자는 거에요』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뭐라고 대답할까.
분명 『밤에는 혼자 생각에 빠지기 쉬우니까, 나로 괜찮다면 언제라도 연락해.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학생의 고민을 도와주는게 선생님의 일이니까』라며 대답을 하겠지.
이미 알고 있는 답의 풀이과정을 도출할 때만큼, 지루한건 없다.
"뭔가 말하기 힘든거라든가?"
"뭐, 그렇긴 하네요."
선생님이 쓸쓸하다는 듯이 미소 짓는 이유를 알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을 얼버무리는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겠지. 하지만 그 진짜 의미까지는 분명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이 둔감씨는 모른다.
내가 최근에 잠들지 못하게 된 이유도. 이런 시간에 방으로 불러들인 이유도. 일부러 새로운 속옷으로 갈아입은 이유도.
아니.
이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 걸까?
정말로?
"사소한 거에요. 정말로. 막연한 불안함이라고 해야할까요, 자주 있는 일이에요."
"……그래."
선생님은 어디까지 깊숙히 발을 내딛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킬 기세로 커피를 마신 뒤, 막 생각난 듯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러고보니, 이거. 전에 주지 못했던 건데."
"……이건 뭔가요?"
건네받은 것은 책갈피였다.
압화로 만들어진 흰 꽃이다.
"노아는 책을 자주 읽고 있으니까, 선물로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만들어봤어."
"선생님께서 손수 만드신건가요?"
"응. 요전에 노아의 방을 꾸며보려고 이것저것 찾고 있었을 때에, 가게 점원한테 추천받았거든. 잘만든건 아니지만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써주면 기쁠거 같아."
선생님이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쭉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뒀는지, 작은 책갈피에서는 약하지만 온기를 느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왜 저한테 선물 같은걸?"
"아~, 그, 평소에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뭔가 답례라도 하는게 좋겠다 싶어서."
이건 아마도, 거짓말.
선생님은 발언을 거짓으로 덮으려고 할 때, 자주 왼쪽 아래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 버릇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람은 모른다.
그 거짓말을 추궁하는 건 쉽다.
하지만, 선생님이 별 의미도 없이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분명, 나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이상 파고 들지 않는다.
그 거리를, 파고 들 수 없다.
"그런, 가요……. 저야말로 신세를 지고 있는데, 이런건."
"……미안!"
갑자기 사과를 해서, 무슨 일인지 이해를 못한 나는 반응을 하는 것이 늦어지고 말았다.
선생님은 잘못을 했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실은, 그, 깊은 의미가 있는건 전혀 아닌데."
"ㄴ, 네."
"……노아 같다고 생각했거든."
조명이 한순간 점멸했다.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나는 동요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록으로부터 추측되는 발언, 그것을 선생님은 가볍게 뛰어넘는 것이다.
"그 책갈피, 흰 백합꽃을 압화로 만든거야. 그 꽃을 봤을 때, 하얗고 예쁘다는 점이 노아 같네, 라고 생각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만들고 있었어."
어색하게 웃는 선생님을 보며, 심장이 조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뻤다.
나를 생각해서 만들어주신 것도.
자신이 부끄러운걸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도.
"……정말 감사드려요. 소중히 여길게요."
『선생님』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그것을 이 사람은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다. 때로는 장난치고,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기까지. 마치 피에로다.
그리고 그건, 건방지다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어딘가 닮아있다.
단지 뭔가를 기록하기 위한 존재.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배제하고, 극한까지 그 색을 흐릿하게 만든 무색투명.
그리고 선생님은, 그저 우리들에게 있어 『선생님』으로 남기 위해 그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
책임도, 보호도, 인도(引導)도, 지지(支持)도. 모두 『선생님』이기 위한 뜻의 표현. 거기에 자기자신은 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욕구는 단 하나.
"선생님은, 이 흰 백합의 꽃말을 알고 계신가요?"
"그러니까."
그건 안된다.
그래서는, 언젠가 부서지고 만다.
이 사람도 한 사람의 인간일 터.
그리고 나도,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곳에 마음이 있는 이상, 스스로를 억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다니, 그런건──
"더는, 기록만으로는 만족할 수 있을 것같지 않네요."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조명이 전부 꺼진 모양이다.
문에 달린 비상등만이 어렴풋이 주황색 불빛을 내고 있다.
"……정전, 인가?"
"그런 것 같네요."
나는 근처에 놓아두었던 단말을 손으로 집어들고, 정보를 확인했다. 아무래도 밀레니엄 타워에서 쓰이고 있는 절전 드론 『전기양』의 영향이라는 듯하다.
야간 절전을 위해 전자기기 제어드론이, 센서를 회피하며 우연히 이 근처까지 와버린 걸테지. 기숙사 전체가 정전이 된건지, 멀리서 허둥지둥 소란스러운 목소리도 들렸다.
"차단기를 보고 올까."
"아뇨, 이미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원인은 전기양 때문이니까, 철거를 마치면 바로 불이 들어올거에요. 아, 전기양이라는 건……."
"전에 유우카한테 들은적 있어."
"그런가요."
반쯤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침대의 공간을 조금 비웠다.
그리고 내 옆자리의 빈 공간을, 손으로 툭툭 가볍게 두드린다.
"선생님. 어두우니까 이쪽에 오세요."
"……."
선생님은 다시 반복된 내 재촉에 포기한건지, '어두우니까'라는 무슨 소린지 모를 이유를 내뱉는 내 옆자리로, 얌전히 앉아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체중에, 침대가 끼익하고 소리를 낸다.
"……저, 꽤 겁이 많답니다."
"그래?"
"네."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의외신가요?"
"의외야. 물론 이상한 의미는 아니지만."
"어떤 의미로 의외라고 느끼셨나요?"
"노아한테 ,무서운건 없는 줄 알았지."
"충분히 이상한 의미라구요."
"아니아니, 뭐라해야할까, 노아는 언제나 냉정침착해서 믿음직스러우니까……."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희미한 비상등이 비추는 뿌연 윤곽과 그림자가, 선생님을 보다 더 가깝게 느끼게 만들었다.
저는 무섭답니다, 선생님.
전기양이 무사히 회수되어서 조명설비가 복구되면서, 언젠가 이 시간이 끝나버릴 거라고 생각하면, 무섭고, 외로워서,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아요.
하지만.
이 이상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고, 내 성질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저 주어지고 있을 뿐.
나는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을 기록할 뿐.
그것만이, 내가 나로 남을 존재이유.
그런데, 이 사람은.
"노아?"
"읏, 네."
"괜찮아?"
"……어."
이 사람은, 내 마음에 맨발로 성큼성큼 들어온다.
필사적으로 한걸음 멀리 떨어지려하는 나에게 다가와서, 시야 한가득 가득 채운다.
그런데 내가 반걸음 다가가려고 하면, 당신은 반걸음 거리를 둔다.
정말, 불공평한 이야기 아닌가요?
『괜찮니』라는 질문을 듣고, 평소처럼 『괜찮아』라는 가면을 바로 쓸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선생님이 방에 있다고 하는 환경 탓인지, 정전이라는 사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내 심경의 변화 때문인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지금 단 하나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 호기심이라는 기묘한 고통이 동반하는, 공포가 뒤섞인 욕망.
"선생님."
"응?"
"잠시,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요?"
선생님과의 거리를 반걸음, 다가섰다.
이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 걸까?
정말로?
일부러 물건을 깜빡하고, 계속 인연을 이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여자의 꿍꿍이에.
일부러 침실에 불러들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우매한 여자의 독점욕에.
나의, 말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는 마음에.
"괜찮아."
나는 왼손을, 선생님의 오른손에 얹었다.
커다랗고, 따뜻하고, 안심이 되는 손.
주저하듯이 잡은 손은, 이윽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손가락을 하나 하나 얽고 있었다. 밀착감이 높아지고, 서로의 온도가 뒤엉킨다.
"……사실은, 눈치채고 계셨죠."
내가 흰색을 선호해서 입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물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서기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객관성을 유지하고 어떤 색에도 맞추고, 더럽혀지더라도 금방 눈치챌 수 있도록.
열을 띠지 않고 온도를 낮게 유지하며, 계속 무색투명하게 있기 위해서.
"저는, 그렇게 알기 힘든가요?"
왼손에 힘을 강하게 줬다.
다른 한 손에 쥐어진 책갈피가, 나에게 반걸음 내딛을 용기를 주었다.
빙 둘러서 표현하더라도, 사람은 그 속뜻을 서로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사실은 눈치채고 있을 것이었다.
알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더더욱 『선생님』으로서 선을 긋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자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방금 전의 언동을 통해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제 욕구는, 그저 그것을 기록하고 싶다는 것이에요. 완벽하게, 완전하게, 철저하게 순수한 기록을.
물 건
그를 위해서 마치 이 방처럼 쓸데없는 스스로를 버려왔어요. 아뇨, 처음부터 제 안에 그런건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에 후회는 없다. 괴로움도 불만도 없다. 그것이야말로 『우시오 노아』라는 내 성질이니까.
"하지만 최근들어, 거기에 얼룩이 하나 생겼어요."
"얼룩?"
"네. 형태는 없지만, 분명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에요."
흰 옷에 한줄기, 추억으로서 남는 얼룩.
그 빛깔은, 당신이 준 것.
당신이 나에게, 색을 주었다.
"저는 당신의 모든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요, 선생님."
선생님의 모든 것을, 내 모든 것을 걸고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내 안에서 솟아난 욕구.
거만하고 지저분한, 내 얼룩.
그것을 본 당신은, 뭐라고 하실까요.
"…………."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철저히 감춰두었던 선생님을 향한 감정에.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선생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눈치채고 만 것이다.
당신 속에도, 자기자신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를, 누군가에게 새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선생님."
빙 둘러 표현해버리는 것이, 내 나쁜 버릇.
얼룩
"저에게 추억을 새겨주시겠어요?"
그 근원에 있던 것은, 단순한 마음.
저
"이 흰색을, 새빨간 추억으로 물들여주세요."
저는 저의 처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일 얼룩을.
당신이 물들여주셨으면 해요, 선생님.
어둠 속에 희미한 선생님의 눈동자가, 살짝 떨리고 있다.
그 두 눈에서, 나는 시선을 떼지 않는다.
그저,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영겁이라고도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다.
정신이 들어보면 주변에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나와 같다고 말해준 꽃의 향기.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부드러운 향기는, 당신 자신을 떠올리게하는 향기랍니다.
서로의 호흡이 얕아진다.
심장 소리만이, 방 안에 울릴 정도로 박동하고 있었다.
쥐고 있는 손이 뜨겁다.
흰색으로 완화할 수 없을 정도로, 몸 안이 뜨겁다.
시야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가득 찬다.
상대방의 열에 데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
앞으로 조금.
조금만 더 있으면, 이 열은 분명히.
"노아. 나는────"
번쩍.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심한 눈부심을 느끼고 무심고 눈을 가늘게 뜬다.
선생님도 똑같이, 작게 목소리를 내면서 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조명이 복구된 모양이다.
"어……그러니까."
"……후훗, 아무래도 시간이 다 된 것 같네요."
무심코 웃어버린 나에게, 선생님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처음 보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가 『우시오 노아』의 한계인 모양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살짝 씁쓸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카페인 같은건 들어있지 않은데도 눈이 확 뜨이는 것 같았다.
밝아진 방 안에, 다시 난방이 돌기 시작한다.
그 때,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그건 본인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것을 기록하는 방법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대응을 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어째서인지 안심을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밤은 이렇게나,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나를 『우시오 노아』로 되돌려준다.
그러니까 나도, 이 사람을 『선생님』으로 되돌려주자.
그것이, 우리들의 거리이니까.
☆☆☆☆☆☆☆☆☆☆☆☆☆☆☆☆☆
"늦게까지 제 억지에 어울려주셔서, 감사했어요."
"상관없어. 나도 좋은 기분전환이 됐으니까."
기숙사 현관까지 따라 가려고 하는 나를 말리며, 선생님은 방의 출구로 향했다.
"오늘밤은 잘 수 있을거 같아?"
"……네. 선생님 덕분에, 멋진 꿈을 꿀 수 있을거 같아요."
열이 식기 시작한 몸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연보라색 스톨을 몸에 두른다.
"저는 괜찮아요."
이건 진심이다.
"그럼 다행이야.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해."
이 말에도, 거짓은 없다.
잘자, 하고 발걸음을 돌려 방을 나가려고 한 선생님의 커다란 등.
무의식 중에 뻗어진 내 손에는, 흰 책갈피가 쥐어져 있었다.
괜찮아. 이 추억이 있으면, 나는 분명──
"노아."
문득 돌아선 선생님을 보고, 황급히 뻗은 손을 회수했다. 이 손이 닿아버린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건 아니고, 선생님은 잠시 뭔가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부탁이 있는데."
"네?"
"뭔가, 걸칠거라도 빌릴 수 있을까?"
선생님은 예상조차 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그 표정에서, 그 속뜻은 보이지 않는다.
"실은 조금 얇은 옷을 입고 와서 말야. 밖은 추울거, 같아서."
선생님은 왼쪽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안되려나?"
나는 그의 거짓말에, 내 거짓말을 덧대었다.
"……괜찮아요. 하지만, 선생님 몸에 맞는건 유감스럽게도."
나는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스톨을 벗어, 선생님의 목에 살포시 둘렀다.
부드럽고 촉감이 좋은 소재로 만들어진, 몸에 감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 스톨을.
"이것 밖에 없네요. 괜찮으실까요?"
"아아, 응. 고마워."
선생님은 따뜻하다는 듯이, 그것에 몸을 맡긴다.
"마치……아니."
"마치, 뭔가요?"
"말하면 화낼거 같으니까."
"안낼게요. 뭔가요?"
"아니, 그, 노아가 옆에 있는 것같아서 안심이 되는 따뜻함이네, 라고 말하려고 했다가 그만뒀어."
"선생님."
"네."
"다 알면서 말하는 거라면 정말 화낼거에요."
"그것 봐."
"그것 봐가 아니에요."
"미안."
이번에야말로 선생님은 기숙사 복도로 나가서, 커피와 스톨에 대한 인사를 다시 해주었다.
그에 대해 나는, 애매한 감사로 답했다.
주어진게 너무 많은 나는, 무엇부터 감사해야 좋을지 이제는 도저히 모를 지경이기 때문이다.
오늘밤은, 그것을 하나하나 헤아리게 되겠지. 양처럼,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스톨."
"네?"
"돌려주러 또 올게."
"나중에 샬레에 찾아뵐테니, 그때라도 주세요."
"아니."
선생님은 살며시 목 근처에 손을 대고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중요한 물건일테니까. 돌려주러 올게, 반드시."
"……네. 그러면, 기다리고 있을게요."
빙 둘러서 표현하더라도, 사람은 그 속뜻을 서로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하니까.
결국, 선생님이 어디까지 눈치채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흰 백합의 꽃말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나와 같다고 말해준건지 어떤지도.
정말, 기록할 보람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선생님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다.
나에게 당신을 새기듯이, 당신에게 나를 새기고 싶다.
이것은 『우시오 노아』의 성질이 아닌, 소망.
당신이 물들인 얼룩으로부터 번지는, 내 마음.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같은 사치스런 말은 하지 않겠어요.
앞으로도 선생님을 계속 기록할 수 있도록, 쭉 그곳..에 있어주세요.
나는, 또 하나 늘어난 잊을 수 없는 보물이 부서지지 않도록 슬며시, 흰 백합으로 만들어진 책갈피를 가슴에 안았다.
마치 내 안의 기록에, 깊숙히 끼워넣듯이.
☆☆☆☆☆☆☆☆☆☆☆☆☆☆☆☆☆
백합에는 이와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순수. 무구. 위엄.
품격있고 고결한 이미지인 백합에 걸맞는 꽃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꽃말은 종종, 그 색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
하얀 백합.
결혼식에서 새신부의 부케에도 자주 쓰이는, 순결무구하고 특별한 꽃.
"어라? 노아, 네가 책갈피라니 신기하네. 평소에는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하고 있다면서, 책끈만 썼는데."
"네, 가끔씩은 괜찮을거 같아서요."
"알았다, 선생님이지?"
"……후훗, 유우카쨩한테는 감출 수 없네요."
"흐흥, 놀림받기만 하지는 않는다고."
"역시네요."
"소중히 여겨야 돼?"
"……네."
그 꽃말은────
────『당신 색으로 물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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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번역 모음
※이 작품에 쓰인 꽃말은 이 작품 안에서 쓰인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쓰이는 꽃말하고 차이가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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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소설은 역시 미식이야
어으 짜릿해
노아를 보면 역시 이 노래가 생각난단 말이지 https://youtu.be/ZIwRHNQ1DN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