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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 시라토리구의 번화가는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일면을 보였다.
그 결전 후의 부흥 사업으로 활기를 되찾은 중심가는, 젖은 노면에 네온사인의 빛이 비치고 어딘가 요사스런 가게들의 빛과 사람들의 떠들썩함이 뒤섞인다.
농담으로도 교사라는 성스런 직업을 가진 내가, 쉬러 왔다고 하기에는 밤놀이가 너무 지나치다 여겨질 이 장소에 왜 있는가 하면.
"……저기, 진벅(Gin Buck)을. 조금, 진하게."
한때의 변덕, 이라는 변명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장소에 혼자서 오는 일은 없다.
잔 바닥에 남은 호박색을 멍하니 흔들면서 작게 한숨을 흘렸다.
문득 제정신을 차리고 보면 뺨에 열기가 돌고 있다. 익숙하지도 않은 술을 마신 것을 벌써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발걸음을 옮길리가 없는 잠들지 않는 거리의 분위기. 알코올이 만들어내는 열이 가슴에 퍼질 때마다, 이성이라는 갑옷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정신이 들었을 때엔, 모모톡으로 송신완료된 메시지가 하나.
나는,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연락을 보내고 말았다. 폐를 끼치는게 아닐까, 그런 당연한 걱정조차 취해버린 머리로는 고민할 수가 없었다.
긴장이 느슨해졌다고는 하나, 학생을 이런 장소에 불러내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도 그녀──오니카타 카요코라면 자리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분명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로 경고를 해주겠지.
그런 죄책감으로 가득한 변명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선생님."
작은 목소리가, 갑자기 귀에 들렸다.
돌아보자 거기에는, 언젠가 보았던 드레스를 입은 카요코가 있었다.
평소에 입는 오버사이즈 파카가 아니라, 밤의 어둠을 그대로 잘라낸 듯한 세련되고 진한 검정 드레스.
밖으로 드러난 흰 어깨의 선과, 검은 리본으로 묶인 머리카락. 칵테일 램프의 빛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이 퇴폐적인 BAR라는 배경 속에 다른 누구보다도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올곧게 꿰뚫어보는 듯한 날카로움과 어딘가 걱정스런 빛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술로 인한 열기와는 다른 느낌으로, 목이 말랐다.
"안녕, 카요코."
손을 흔드는 내 몸짓이, 얼간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녀가 와주었다는 사실 하나에, 가슴 속이 화악 하고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기대해서 부른 게 아니다. 그렇게 변명하면서도, 안심하고 있는 자신이 분명히 있다.
조금 자리가 불편하다는 듯이, 카요코는 드레스 끝을 신경쓰면서 옆 자리에 앉았다.
평소였다면 브레이크를 걸었을 이성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위험하다.
오늘밤 만큼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오니카타 카요코는 유혹당하지 않는다
카요코는 내밀어진 메뉴를 거의 보지도 않고, 바텐더에게 논알콜 칵테일인 신데렐라를 주문했다.
그 능숙한 행동은, 이곳이 어른들의 사교장인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차분했고.
그렇기에 그녀를 이런 장소에 불러내버린 스스로의 유치함이 돋보여, 가슴 속이 지글거리며 타버리는 듯이 아파왔다.
"그래서, 선생님.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주문한 칵테일을 받고는, 마치 독이 있는지 시험하듯 한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 조용한 시선에 짓눌려, 나는 뭐라 말로 형용하지 못할 초조함을 느꼈다.
그녀가 걱정하지 않도록, 그럴듯한 『이유』를 아무 것도 준비해두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이런 자리가 익숙하다고 착각할 정도로 차분한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쥐어짜낸 말에는, 얼음이 녹기 시작한 잔처럼 속이 비어있다.
하지만, 상대는 카요코다. 이상하게 변명한들 금방 들킬테고, 쓸데없이 걱정만 하게 만들 뿐이다.
"화내지 말고, 들어줬으면 하는데."
"화 안내."
그리 말하는 카요코의 눈은 평상시보다 살짝 엄격해 보였다. 그것도 그런가.
갑자기 불러낸 것도 모자라, 예전의 드레스를 입고 와달라고 마음대로 지정까지 해버렸으니까.
나는 마치 참회를 하듯,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경위는 너무나도 한심한 것이었다.
이전부터 사이가 좋았던 상점가 주민한테, 지인이 새롭게 가게를 열었으니까 괜찮으면 와달라는 말을 듣고.
가끔씩은 상관없겠지 하고 방문을 하니, 그곳에 있던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화려한 BAR.
동네 술집 정도일거라는 생각으로 왔던 나에게는 가시방석처럼 느껴졌고, 그렇다고 해서 모처럼 해준 초대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얼버무리듯 술만 마시고 있었더니…….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뭐라 해야하나 취기가 돌아서."
내뱉는 말 곳곳에 배어있는 자기 반성을, 카요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듣고 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까 뭐랄까 괜찮은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몇 명인가한테 추파도 받으니까 몸이 위험하다는 걸 느낌과 동시에,
그……쓸쓸함 같은게 벅차올라서 말이죠……."
말하면서,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뭘 애들마냥 변명을 떠듬떠듬 말하고 있는건지.
나는 부끄러움을 감추듯, 진 칵테일을 목 안으로 흘려보냈다.
"하아, 그래서?"
"그래서, 제일 처음으로 떠오른게 카요코라서."
"……에."
카요코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잔의 림(Lim) 위에서 멈춘다.
"예전에 봤던 그 드레스를 입고 와주면, 이런 자리에도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모모톡을 보낸 뒤여서……."
혼자 있는게 외로웠으니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술자리에서 불안해진 것도 모자라, 이런 시간에 이런 장소에 내가 좋아하는 복장까지 입히고 학생을 불러내다니.
정말 최악이다. 선생 같은건 그만둬야 한다.
"선생님, 나 아직 미성년자인데."
그녀의 당혹스러워 하는 말투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 그렇지, 맞아. 진짜로 잠깐 어떻게 됐나봐. 왜지……부른다치면 카요코말고는 없다고 생각해버려서……."
"……그 초대해줬다는 상점가 주민은?"
"뭔가 바쁜 것같아서,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고 있어."
"흐~응……."
묵직하고 예쁜 잔에 다시 입을 댔다.
그렇게까지 술에는 강하지 않았지만, 체감으로는 이미 완전히 취기가 돌고 있었다.
카요코가 오기까지 꽤나 마셨다는 점도 있지만, 이렇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고 보니 쓸데없이 피가 몸 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카요코는 내 변명을 다 듣더니, 기분나쁜듯이, 혹은 곤란하다는듯이 시선을 돌렸다. 침묵이 나를 더더욱 몰아붙인다.
"진짜 미안해."
"……하아. 나야말로, 이상한 태도를 보여서 미안. 딱히 화가 난 건 아니야. 그저, 뭔가 사건에라도 휘말렸나 싶었으니까…… 안심했을 뿐."
그녀는 조금이지만 흘러내린 어깨끈을 고쳤다.
그 시선은 자애로 가득한 평소의 것으로 돌아와 있다.
그것도 그렇겠지. 평상시의 나하고는 어울리지도 않을 장소에, 갑작스럽게 호출을 당했으니까. 긴장하지 말라고 하는게 더 이상하다.
"와줘서 고마워."
"……뭐, 나도 잠이 안와서 한가했었으니까, 마침 적당했어."
그녀가 둘러댄 다정한 거짓말이, 그 어떤 무거운 술보다도 깊숙히 스며들었다.
"드레스도 입어줬네."
"선생님이 입고 오라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카요코는 걸치고 있던 볼레로를 단정히 하고, 금색으로 반짝이는 잔을 기울였다.
"전에도 말했지만, 선생님이 이걸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 요청에 응해주고 싶어. 나도 원해서 입고 있는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응, 좋아해."
"엣──"
"진짜 잘 어울려. 가게 분위기하고도 맞고."
"……선생님, 취했지."
"안취했어."
"취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말해."
"미안 취했어."
"역시나."
"조금만."
"조금?"
"……조금 많이."
"그래 보이네."
"그래도 취했다고 적당히 말하는게 아니야! 진짜 카요코는 예쁘고,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카운터 의자에 앉은 채로, 무심코 기세좋게 몸을 일으키던 나를 카요코가 손으로 멈춰세웠다.
질림과 곤혹이 뒤섞인 그녀의 표정이, 취해버린 머리로는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비친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지금 나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막 오픈했다는 활기도 있어서인지, BAR라고 하기에 가게 안은 꽤나 소란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떠들썩함이 가림막이 되어서 우리들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드레스 차림으로 어른스러워 보이는 카요코와, 한심하게 취한 나. 지금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대체 어떤 식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혹은, 그렇고 그런 관계로 보일 수도 있을까.
나는 어느샌가 텅 비어버린 잔을 바텐더 쪽으로 밀며, 다음 술을 주문했다.
주문하면서도 옆에서 그만 마시라는 말이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카요코는 자신의 칵테일 잔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선생님이 술을 마시다니 드무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카요코의 평범한 질문에, 다시 한번 심장이 뛰어오른다.
"아~……뭐, 가끔씩은 마셔."
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무의식적으로 잔이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할 잔은 방금 전에 다른 곳으로 보낸 참이다.
허공을 가른 손가락은, 둘 곳을 헤메이다 물수건 위로 빨려들어갔다.
카요코는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
그녀는 예리하다. 내가 이렇게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얼버무리려고 할 때, 그게 『건드리지 않아줬으면 하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꿰뚫어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예감이 들어서 괜히 등에 땀이 찼다.
"업무 중에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다든가?"
"일은 매일 하기 싫은 법이지."
"……누군가한테 차였다든가."
"그런건 아니야."
나는 새롭게 나온 잔을, 도망치듯이 서둘러 받아서 들었다.
카요코가 고집을 부리며 나를 놓치지 않겠다고 하는게 느껴진다. 그녀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의 질문은 당연한 권리겠지.
술김이기는 해도 그녀에게 이래저래 요구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 계속 올라오는 취기와 함께 천천히 퍼졌다.
"선생님이 나서서 술을 마시는 이미지는, 딱히 아니었는데."
"……학생 앞에서는, 안마시려고 하고 있으니까."
"나도 일단은, 학생인데."
그녀의 살짝 튀어나온 입술과, 올곧은 시선.
그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내가 너무 무방비하다고 느껴져서, 나는 더이상 변명을 둘러대는 것을 포기했다.
"응. 그러니까 카요코 뿐이야.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줘."
"…………."
카요코는 아주 잠깐 눈을 크게 뜬 뒤에, 질렸다는 듯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됐어, 내가 졌어."
"어, 미안."
"나 참. 정말로, 이 사람은……."
카요코는 작게, 한탄하듯이 중얼거렸다.
취한 머리로는 스스로의 발언이 그녀를 얼마나 흔들어대고 있는건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다.
그로부터 잠시 동안, 그녀와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갑자기, 가게 안에 울려퍼진 누군가의 기침 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손 안의 잔에는 이름도 모르는 호박색 액체가 있고.
그것을 목 안으로 흘려넘기자, 열을 띠고 있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겼다.
"그 술, 센거 아니야?"
카요코가, 내가 들고 있는 잔을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 모르겠는데…… 그 정돈 아니었다고 생각해."
"…………."
"아, 카요코는 아직 마시면 안돼. 미성년자니까."
그녀가 품은 흥미를 감지하고, 나는 못을 박듯 말했다. 어른으로서, 당연한 소리를.
그 말을 입으로 내뱉은 순간, 카요코의 표정이 약간이지만 굳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당연한 소리가, 어쩌면 지금 그녀에게는 『나는 어른이고, 너는 아직 애다』라는 냉정한 경계선처럼 느껴지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카요코도, 마실 수 있게 되면 알 날이 올거야. 그 때는──"
"딱히, 지금도 마실 수 있어."
"엣……앗!"
카요코는 내 손에서, 아직 반 이상 남아있던 잔을 휙하고 빼앗았다. 내가 선을 그어버린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그대로, 반짝이는 액체를 단숨에 들이키려고──
"카요코!"
나는 황급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취한 상태라는건 무섭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잔을 다시 빼앗으면 될텐데, 나는 갑자기 그녀의 작은 입가를 손으로 덮듯이 막아버렸다.
손바닥에 닿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입술의 느낌.
"……응."
손바닥 안쪽에,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흘러나온다.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모양새가 되어, 카요코는 술을 마셨다고 착각할 정도로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내 손을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찔렀다.
손에 들려있던 잔은, 그녀에 의해 얌전히 카운터 위로 돌아가 있다.
나는 슬쩍 손을 떼어냈다.
"농담이야. 이제와서 술을 마시려는 생각은 안해."
"뭐, 뭐야……놀랐잖아."
"그것보다, 손."
"손?"
카요코에게 지적을 받아,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주 약간이지만 묻어버린 연한 립스틱 자국이.
그래. 그녀는 나를 위해서 화장까지 하고 와준 거였지.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온 나하고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준비가 있었을 것이다.
그걸, 이제 자기만 하면 될 시간에 끌어내 버린거고. 손바닥에 찍힌 입술 자국이, 내가 얼마나 제멋대로인지를 증명하고 있는 듯이 느껴져서, 몇번째인지 모를 죄책감이 가슴을 찌른다.
"그, 그렇게 보지 말고. 빨리 지워."
그렇게 말하면서 카요코는 내 손을 잡고는, 물수건으로 꾹꾹 누르듯이 닦기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는 것 같은 손놀림. 하지만, 잡혀있는 내 손목에 닿아있는 그녀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어서…… 그제서야 겨우, 내가 무슨 짓을 한건지 정확하게 인식했다.
"미안, 갑자기 만져서."
"……아니. 나도, 이상한 농담을 했으니까."
손을 쥔채로, 카요코는 움직임을 멈췄다.
알코올 때문에 열을 띠고 있는 내 손가락에, 그녀의 차갑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빨려들어가듯이 얽혔다.
……아아, 이대로.
그런 주정꾼의 사치스런 소망은, 눈치없는 목소리에 의해 갈가리 찢겨나갔다.
"어라, 누나 이쁘시네. 요 근처에선 뵌 적 없는데…… 어디에서 오신 VIP 분이신지?"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에, 튕겨나가듯 확하고 손을 떼어낸다.
뒤로 돌아보니 그곳에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상당히 취한 것으로 보이는 손님이 휘청휘청 서있었다.
"어라, 돌아본 모습도 정말 예쁘신걸. 흰 피부에 검은 드레스가, 진짜 잘 어울리시네!"
"저기……."
손님은 카요코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잔을 한 손에 들고서 거리를 좁힌다.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남자보다, 어때요? 뒤에, 저랑 같이……."
상대의 거친 손가락이, 카요코의 가녀린 어깨에 닿는 것보다도 빠르게.
나는 반사적으로 그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속도였다.
"내──"
그렇게 말하려고 하다가, 문득 떠올린다.
이런 장소에서 "학생"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카요코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놀란 눈치인 손님을 힐끗 본 뒤,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골랐다.
"──제 소중한 사람에게, 함부로 만지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만?"
나 자신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갑자기 덤벼들기라도 하면 멋없어 보이겠지, 가게에도 폐를 끼치겠네……. 그런 생각을 냉정하게 하고 있었는데,
상대방은 얌전해보였던 내가 의외로 험악한 태도로 나온 것에 압도된 건지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 어이쿠, 이거 실례했습니다. 선약이 있으셨을 줄은. ……후에 질리시면, 언제든 불러주시길."
마지막까지 무례한 대사를 내뱉고 사라지는 뒷모습. 나는 어린 아이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아드레날린 탓인지, 뒤늦게 심장이 난리를 피운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시비걸리는건 익숙하지만, 학생을 휘말리게 만드냐 아니냐라는 긴박감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
뭐, 카요코라면 저런 상대는 손쉽게 물리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상태를 살피니, 그곳엔 멍하니 서있을 뿐인 어린 소녀가 있었다.
"괜찮아? 미안, 내가 이런 곳에 불러내서."
"……딱히 상관없어. 저런 상대는 익숙하니까."
"그래. 카요코는 예쁘니까 추파를 받는 일도 많기야 하겠지만, 조심해. 아, 내가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한가."
또렷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말하고 이는 나를, 카요코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열이 담긴 것처럼 보이는 눈동자로 보고 있었다.
역시 피곤하게 해버린걸까.
"슬슬 돌아갈까. 오늘은 어울려줘서 고마워."
계산을 마치려고 하는 내 손을, 카요코가 막는다. 그녀는 본인의 작은 손가방에서, 세련된 지갑을 꺼냈다.
"내가 마신 건 내가 낼게. 선생님, 꽤 마셨으니까."
"괜찮아. 불러낸건 나니까. 그리고, 학생한테 돈을 내게 할 수는 없지."
"그치만……."
"괜찮다니까. 이정도는 내가 내게 해줘."
나는 반쯤 억지로, 카드를 점원에게 건넸다.
카요코는 미안하다는 듯이 있었지만, 죗값으로 이 정도는 여전히 싼 편이다.
가게를 나오자 밤의 눅눅한 공기가 열기로 뜨거워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한걸음 내딛은 순간, 지면이 꿀렁하고 일그러진다. 알코올, 그리고 방금 전까지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끊어진 탓일까.
"……엇차."
"이것 봐, 많이 마셨잖아……여기, 어깨."
카요코가 내 팔을 끌어서 자신의 어깨로 부축해준다.
드레스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체온과, 밤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희미한 향수 냄새.
머리속은 이미,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고마워, 카요코."
"바래다주는건 샬레면 돼?"
"아니, 카요코를 먼저 바래다주고 갈게."
"선생님."
"……샬레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녀를 불렀기에 취해버린건지, 이미 취해 있었기에 그녀를 부른건지,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알 수 없다.
그래도, 카요코가 곁에 있어주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취할 수 있었던 거라는 안심감이 있었다.
거리의 네온사인이 그녀의 옆모습을 신비롭게, 그리고 부드럽게 비추고 있다.
카요코라면 자리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분명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로 경고를 해주겠지.
그런 죄책감으로 가득한 변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신감과 함께,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으로 사라졌다.
★★★★★★★★★★★★★★★★★
선생님한테 연락이 왔을 때, 나답지 않게 놀라서 단말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목적지인 BAR의 위치와 함께 온 것은, 『그 검은 드레스를 입고 와줬으면 해. 만나고 싶어』라는, 너무나도 직접적이면서 무방비한 메시지.
……평소였다면 무슨 함정인가, 혹은 최악의 사태를 의심했을 참이었다.
본인에게 그럴 생각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에는, 화가 나는 것을 넘어서 질려버리고 말았다.
"읏차차……어라. 이상한데, 땅이 흔들려."
"선생님, 정신차려. 괜찮아?"
"하나도 안취했어!"
"그렇게 말하는거, 오늘 몇번째라고 생각해?"
불안정한 발걸음으로 휘청휘청 걸어나가는 그를 지지하기 위해서, 어깨를 빌려줬다.
원래, 우리들을 이끌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으로서의 등줄기가, 지금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사라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내 어깨에 지워진 그의 무게가 점점 늘어난다.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게 아닐까.
신체적인 위험은 물론, 그 이상으로 그를 이렇게까지 초췌하게 만들고 자제심을 잃게 만든 『무언가』가, 내 마음을 소란스럽게 했다.
올려다본 선생님의 옆얼굴은 그저 새빨갈 뿐이고, 칠칠치 못하게 풀어져있다.
그 속뜻을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어깨로 느껴지는 무게만이, 지금 그의 진실이었다.
선생님 한 사람 정도 안는 것은 문제없다. 하지만 샬레까지 떠안고 돌아가는건 너무 멀고,
그렇다고 지금 그를 택시에 태워보내자니 차 안에서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라는건 눈에 선했다.
"우으……."
귓가에 흘러나온 괴롭다는 듯한 신음소리. 한시라도 빨리 그를 눕힐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선생님, 일단 어딘가에서……."
그렇게 말을 하며 고개를 들자, 눈에 들어온 것은 핑크빛 간판들 뿐.
깜빡했다. 이곳은 환락가. 휴식을 위해 들어갈만한 장소 같은건, 『그렇고 그런 곳』말고는 없다.
"…………어쩔 수 없지. 잠깐, 좀 쉴까."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말하는 말이, 습기찬 밤바람에 사라져간다.
선생님이 이런 상태라면, 틀림없이 『그렇고 그런 일』로 변하지는 않겠지. 아마도.
"……일단."
준비는 하고 왔지만, 이라는 어떤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변명이 혼잣말처럼 튀어나올뻔 했다.
잘 알지 못하는 무인 접수를 끝내고, 선생님을 어깨에 걸친 채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거울로 둘러진 엘리베이터에 비치는 건, 검은 드레스 차림의 자신과, 그 어깨에 얼굴을 묻은 취한 선생님.
……누군가한테 보이기라도 하면, 변명할 여지도 없다.
아니, 뭐, 딱히.
선생님을 간호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설령 누구한테 어떤 오해를 당한다 하더라도 사실로서 아무 일도 없다면, 상관없을테니까.
"……하아. 정말, 전부 선생님이 나쁜거야."
"으으."
괴로워보이는 목소리와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울렸다.
접수대에서 나온 카드키를 넣어 방안에 들어가서는, 갈수록 무거워지는 선생님을 끌고 중앙에 놓여있는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흰 시트가 깔려있는 킹사이즈 침대는, 흥신소 멤버 모두가 드러누워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커다래서 어딘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방 구석에서, 미세하게 가습기의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간접조명이 벽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요사하게 강조하고,
바깥의 소란을 완전히 차단한 정적이 우리들의 고동소리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냉장고를 살펴보니, 무료로 보이는 페트병에 담긴 물이 2개 들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안고 천천히 일으켜 세워서, 조금씩 물을 마시게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믿음직스러운 선생님이, 지금은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다.
"으~음…… 고마워, 카요코……."
"됐으니까. 당분간은 편히 쉬어. 토할 거같으면 여기 봉지 있으니까."
다시 누운 선생님의 넥타이를 풀고, 셔츠의 단추를 몇 개인가 풀어 주었다.
드러난 그의 쇄골과, 규칙적이고 커다란 호흡.
선생님과의 사이에 흐르는 이 농밀한 침묵은, 이상하게도 마음 편했다.
"카요코……."
"왜?"
"카요코~"
"정말이지, 왜? ……여기 있다니까."
훌쩍이듯이 내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
걱정보다도, 사랑스럽다는 감정이 벅차오른다.
이렇게 아이처럼, 무방비한 그를 보는 것은 처음일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나를 놀리면서, 지금은 그런 여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서. 장소가 장소인만큼 최저한의 자연스러운 화장과,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해서, 바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이 술을 마시고 있다』는 모습을 봤을 때의 충격.
선생님이 감주 외의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처음 봤다. 심지어 취한 모습 같은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이기 이전에, 이 사람은 어른이다. 술 역시 마실테고, 밤거리 또한 다니기도 할테지.
그것이, 성인군자처럼 느껴지는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진짜 사적인 모습을 엿본 느낌이어서, 나답지 않게 들떠버리고 말았다.
기뻤다.
과정이 어찌됐건, 처음으로 떠올린 것이 나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술 때문이라고 해도, 나쁜 느낌은 아니다.
나쁜 느낌은 아니지만,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곤란하다.
그대로 잘 수 있도록, 나는 방의 메인 스위치를 내려 조명을 껐다.
침대 맡에 있는 테이블 램프가, 호박색 빛으로 선생님의 윤곽을 두르고 있다.
어둠 속에 떠오로는 선생님의 얼굴, 하나로 겹쳐지는 두 그림자.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를, 오감 전부가 깨닫게 해준다.
뺨이, 완전히 뜨거워졌다.
술은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드레스 차림을 칭찬받고, 그런 일까지 당했으니까. ……이렇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몸을 식히기 위해, 걸치고 있던 니트 볼레로를 벗었다. 밖으로 드러난 어깨에 차가운 공기가 닿아, 살짝 몸을 떤다.
선생님이 자는 데에 불편하지 않도록, 그 볼레로를 개서 그의 머리 밑에 깔아주었다.
"……카요코 냄새가 나."
갑자기 흘러나온 목소리에, 심장이 뛰었다.
선생님은, 내 옷에 얼굴을 파묻으며, 깊게,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있다.
"그런 말, 부끄러우니까 하지마."
"안심이 돼……."
"하아…… 아직도 취했어?"
"이젠, 좀 나아졌어. 고마워."
선생님은 눈을 감은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조금씩 그의 호흡이 깊고, 평온한 것으로 변해간다. 램프의 빛에 비춰진 그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끊기고, 납 처럼 무거운 피로감이 전신을 덮쳤다.
익숙하지 않은 힐을 신고, 자기보다 무거운 어른을 부축한 채로 걸었다. 발 끝은 진작에 감각이 사라져 있었고, 지끈거리며 욱신거린다.
너무 넓은, 새하얀 침대.
혼자서 쓰기에는 너무나도 사치스럽고, 지금 우리들의 거리를 재기에는 너무나도 잔혹한 공간.
화려한 내부 장식과는 반대로, 두꺼운 커튼이 거리의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이 방은, 귀가 아파올 정도로 조용했다.
"……옆에, 괜찮지? ……지쳤어."
누구한테 허락을 구하고 있는건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로, 나는 빨려들어가 듯이 침대의 비어있는 공간으로 몸을 눕혔다.
쓰러진 반동으로 침대가 삐걱거린다. 흐트러진 옷을 고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드러운 매트리스가 가라앉고, 시트의 차가운 감촉이 달아오른 몸에 딱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옆에서 느껴지는 선생님의 체온이, 차가움을 단숨에 덮어버린다.
이렇게나 넓은 침대니까, 떨어져서 누우면 됐을텐데. 그런 머리속의 냉정함이 단호하게 말하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회복하기 시작한 선생님의 눈동자가, 갑자기 천천히 뜨였다.
거기엔, 방금 전까지의 술에 취해 몽롱한 눈빛이 아닌, 평소의…… 아니, 평소보다도 한참 더 열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램프의 호박색 빛이 그의 눈동자를 젖어있는 것처럼 반사시키고 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거리.
하지만, 손을 뻗지 않으면 닿지 않을 거리.
이 거리가, 오늘만큼 애가 타게 느껴진 날은 없을 것이다.
"……카요코."
"……왜."
"오늘은 정말 미안해."
"……너무 무리는 하지마. 걱정하니까."
"응……."
이 밀실에서, 사이를 가로막는 것 하나 없는 거리에서 속삭이는 그 목소리는, 마치 흉기처럼 내 심장을 깊게 찔렀다.
방금까지 창백했던 선생님의 안색은 사라지고, 혈색이 좋아진 상태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다른 『위험』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카요코가 옆에 있어주면, 안심이 돼."
그래. 설마 이 사람이 이런(여자를 꼬시는) 식의 술주정을 부릴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선생님의 호흡이 고르게 변할수록, 술냄새에 섞여 그 자신의 체온 냄새가 콧구멍을 간지럽힌다.
"물 더 마실래?"
"아니, 그보다……."
"뭔데?"
"옆에 있어줘."
위험하다.
진짜, 이 사람은. 진짜로.
내 약점을 알고서 놀리려는게 아닌가 싶을 때가 최근들어 잦다. 좀 참아줬으면 한다.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
언젠가 진심으로 착각해버리면 어쩔 생각인건지.
선생님의 자각없는 어리광이, 내 이성을 지글지글 태워버린다.
"……옆에 있기만 하면 돼?"
"있기만 하면."
"옆에서…… 뭘 해줬으면 하는데?"
"있기만 하면 돼."
"진짜로?"
"진짜."
즐기듯이 눈을 감고 미소짓는 선생님.
이렇게 사람을 유혹해놓고, 자기가 먼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건 정말로 비겁하다. 마치 나만 원하고 있는 것 같다.
교활한 어른의 여유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라면 용서해줄거라는 응석일까.
진짜 옆에 있기만 하면 돼?
다시 그렇게 묻듯이 나는 몸을 선생님 쪽으로 휙 옮겼다. 앞으로 몇 센티미터만 더 움직이면, 코 끝이 닿아버릴 거리.
"선생님."
"응?"
"……술냄새 나."
"미안."
"땀냄새도."
"미안."
"……선생님 냄새 나네."
"냄새 얘기하는건 그만하자."
"아까 전의 복수야."
"냄새 심하면 미안."
"심하지는 않아. 어느 쪽인가 하면……."
"하면?"
"……계속 맡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
말로 내뱉을 때마다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평소라면 말하지 못했을 것까지 전해버린 상황은 뭐랄까 기분 좋았다.
두근두근 거리고, 심장을 꽉 움켜쥔 것 마냥 괴롭기도 하고, 달콤하고 편안한 감각이 쭉 이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취할 때까지 술 마신거야?"
"으응~?"
"대충 넘기는건 금지. 만약 사실대로 얘기해주지 않으면……."
"않으면?"
"아마 진짜로 화낼거야."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이 멈추지 않았다.
그 마음에 닿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검은 드레스의 슬릿에서 슬쩍 보이는 다리와, 선생님의 다리가 시트 밑에서 맞닿았다. 수트 너머로도 느껴지는 선생님의 열기에, 머리속이 하얗게 물들어버릴 것만 같다.
"진짜로 화난 카요코도 보고 싶긴 하네."
"선생님."
"미안 농담이야."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닌데, 라며 가볍게 말을 꺼내고 나서 그는 본심을 드러냈다.
"가끔씩 말야…… 불안해지거든."
"불안?"
"응. 난…… 너희들에게 제대로 도움이 되고 있는걸까 싶어서……."
꿈과 현실 사이에 있는듯한, 포근한 음색으로 말을 이어나가는 선생님.
그것이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은 진심이라는 사실은, 가슴팍에 손을 대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건, 다 알고 있다. 당신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학생이 바로 지금 이곳에 있으니까. 이 이상으로 무슨 증명이 더 필요할까.
"지금까지의 선택은, 정말 올바른 것이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있는 사이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힘들어하고 있는게 아닐까…… 라고 말이지."
"……선생님은, 후회하는거야?"
"…………."
"그러면, 나하고 지금 여기서 이렇게 있는 것도, 잘못된거야?"
"그렇지는……."
"선생님. 나는, 만약 그 길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선생님 옆을 걷고 싶다고 생각해. 둘이서라면, 잘못된 길을 되돌아가는 것도 간단하잖아?"
"……."
"그러니까 만약 앞으로, 잘못되더라도, 되돌리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 손을 잡아.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잡아당겨 줄테니까. 반드시. 놓지 않을테니까."
나는 선생님의 손을 쥐고 깍지를 꼈다.
손가락 끝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고독을 조금이라도 빨아들여 버리고 싶었다.
"……카요코."
"아아, 둘은 아니지. 분명 사장하고 다른 애들도 도와줄테니까. 선생님 옆에는, 의지할만한 애들이 잔뜩 있잖아? ……그 애들까지 믿지 못하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아."
"후훗, 지금건 조금 장난이 심했으려나."
선생님은 안심했다는 듯이 숨을 내쉬고, 조금이지만 손가락의 힘을 강하게 쥐었다. 그 약간의 반응이, 나에게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게 할 용기를 주고 만다.
"있지, 선생님."
"응?"
"내가 여기 온 의미, 알고 있어?"
"의미?"
"확실히 선생님을 간호하는게 먼저긴 했지만…… 난, 그럴 생각으로 온거야."
"카요코."
"네, 네."
"카요코는…… 착한 애야."
"……헤?"
"착하지만, 착한 채로 있을 필요는 없어. 흥신소에 있는 다른 애들을 보살피거나,
질색하면서도 나하고 같이 어울려준다거나, 길고양이를 귀여워하거나, 음악을 즐기거나……."
"……."
"……그런 카요코를, 모두가 다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카요코는 있는 그대로 있으면 돼. 나도…… 아~, 뭐라 해야하지……
하하, 무슨 소리를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게 되버렸네."
마음에 닿으려고 했던 내 입술은, 그의 『선생님』으로서의 다정함에 막혀버렸다. 그렇게나 열을 띠고 있었을 말도, 지금은 나를 튕겨내기 위한 방벽으로 변해있다.
"선생님."
"왜?"
"만약,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학생이 생기면 어떡할거야?"
무심코 말이 튀어나오는 입을 막으려 했지만, 서혜부가 욱신거렸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으음~, 그러면……."
선생님은 조금 생각한 뒤에, 눈을 감고 웃었다.
"만약 미움받게 되더라도, 웃으면서 얼버무리려나."
이건 최근에야 눈치챈 점이지만, 선생님은 말을 일부러 돌릴 때 하는 버릇이 있다.
장난스럽게 말을 돌릴 때는, 내 눈을 보면서 웃는다.
그리고 정말로 더 건드리지 않았으면 싶을 때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채 웃는다.
이번엔 후자인 듯하다.
"그건…… 왜?"
안돼. 마음속 깊이 스스로가 미워진다.
그렇게나, 적어도 나만큼은 선생님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선생님을 도울 수 있도록,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었는데.
지금 선생님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건, 분명 나다.
이런걸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잘 알고 있다.
"내가──선생님, 이니까."
그 말에, 가슴 언저리가 따끔하고 아파왔다.
대단한건 아니다, 선생님은 그저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니까.
다만 그게 『나는 어른이고, 너는 아직 애야』라는, 안좋은 쪽으로 들리고 만다.
곤란하다는 듯이 웃는 선생님.
부탁이니까, 그 표정을 짓지마.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처럼 느껴지니까.
선생님에게, 이런 감정을 품는 내가 잘못된거고. 이 성인(聖人)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으니까.
뭐, 실제로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이상 선생님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도록, 그의 팔에 안기듯이 그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카요코…… 안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럼에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얇은 몸을 비비듯이 껴안았다.
화상을 입을 것처럼 몸이 뜨겁다. 날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선생님 쪽에서도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떼어내려고 하는 그의 손이, 끈이 흐트러진 내 어깨에 닿는다. 하지만 서로 껴안고 있는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밀어내는 힘은 약했다.
선생님의 손 끝이 내 피부를 훑을 때마다, 머리 속의 심부가 마비되는 듯한 쾌감을 느낀다.
아아, 지금 이 사람은 분명 나처럼,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구나.
선생님이라는 모양새를 유지하려고,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카요코."
그리고 분명,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 이상은 그만해 달라고.
내가 나로 남아있을 동안에 도망가라고.
그런 흔들리는 생각이, 옅은 호흡으로 전해졌다.
선생님의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강하고,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고동. 그게 지금 나의 유일한 이정표였다.
전부 말하지 않더라도, 나라면 의도를 눈치채고 떨어져 주겠지. 그런 신뢰로부터 나오는 말없는 부탁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는, 나와 선생님만의 특별한 연결고리가 있다.
그것을 이용할지 말지는, 나에게 달려있었다.
어쩔까.
이대로, 하나가 되어버릴까.
『선생님』 같은 무거운 옷은 벗겨버리고.
『학생』 같은 느슨한 목줄은 던져버리고.
그 어떤 속박도 없는 모습으로, 어디부터가 선생님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열기를 나누며 녹아버린다면.
나의 첫 경험을, 모두 이 사람한테 바칠 수 있다면.
아아, 그건 괜찮다.
그렇게 하자.
선생님도 분명, 그것을 바라고 있다.
분명 용서해줄 것이다.
────그럴리가.
"……그게 가능했다면, 좋았을텐데."
선생님의 셔츠를 꾸깃하고 쥔 채로 뭘 하려고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선생님도 그 이상 거절하는 것을 그만둔 것처럼 보였다.
내 머리를 슥하고 빗어준 뒤, 아무 말도 하지않고 선생님 자신의 팔을 내 머리 밑에 놓아줬다.
그리고 다른 한쪽 팔로 이불을 당겨서는, 그대로 같이 덮었다. 이불 속의 좁은 세계에서, 선생님 팔의 무게가 나를 부드럽게 가둔다.
이 마음은 진실이다.
좋고 나쁨 같은건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도 분명, 진실일 것이다.
안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나 끊임없이 넘쳐흐르는 감정이, 거짓일리가 없다.
어른의 좋은 이해자가 되고자 발돋움을 하고 있던 소녀는, 이윽고 날개를 잃고, 땅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래도, 나는 조금이라도 더 태양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싶은 것도,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
외톨이는 쓸쓸하니까.
그저,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그래서 일까. 오늘만큼은, 조금 더 곤란하게 해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분명 술 때문이다.
분명 선생님은 들리지 않는다.
분명 선생님은 기억하지 않는다.
분명 선생님은, 답해주지 않는다.
그 편안한 구속구가, 나를 앞으로 떠밀었다.
"────선생님, 사랑해."
울고 있는건가 착각해서 놀랄 정도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 사실에, 스스로가 이상해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말로 뱉은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만큼 크게 뛰었다. 열이 몸 안을 뛰어다니고, 뿌옇게 변한 시야로는 눈 앞에 있을 그의 윤곽조차도 흐리게 만든다.
처음으로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말했다.
그것도 『좋아한다』보다도 강한 말로.
말로 꺼냄으로써 해방될거라 여겼던 가슴이, 더욱 조여들어서 고통스럽다. 어쩌면 호흡하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나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보았다.
"…………."
그곳에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후훗."
아무래도 이 추억은, 나만의 것이 될 것 같다.
"잘자, 선생님."
그는 정말 꿈 속일지 어떨지, 확인해볼 수단도 이유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말이 닿아 있더라도 닿지 않았더라도, 분명 내일이 되면 없었던 일이 될테지.
그걸 알고 있으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응석을 부려준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선생님 옆에 있을 수 있다.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런 대담한 짓을 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래도, 어쩌면 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제멋대로 실망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싫증이 난다.
선생님은 얄밉다.
그래도, 나는 더 얄미운 여자다.
술의 힘에 편승해서, 약해진 선생님을 이용해서, 취한 상태라면 기억도 못할거라며 간사하게 들러붙는.
교활하고, 비겁하고, 욕심 많은 여자.
그런 여자를 열중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선생님도 운이 없었네.
아이처럼 잠든 얼굴을 드러낸 선생님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데.
이렇게나 가까운데, 이렇게나 쓸쓸하다.
시트의 흰색과, 내 드레스의 검정. 그 너무나도 선명한 경계선이, 우리들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이 붉게 물드는 일은 없었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은 적은 많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며 아이 같은 소망을 가졌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어른에 가까워지지 않았더라면, 이 절망적인 거리를 이해하지 못한채로 있을 수 있었을까.
이럴거면 아예, 아무 생각도 하지않고 이대로 자빠뜨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그런, 상상해본 적도 없는 생각조차 잇달아 머리속을 멤돌아,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성인이 되더라도, 음주는 피하는게 좋을지도 모른다.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눈 앞의 어른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한쪽 밖에 없는 내 날개는, 여기에서 녹아 떨어져 내렸다.
그의 햇살같은 따스함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으로 불타서.
☆☆☆☆☆☆☆☆☆☆☆☆☆☆☆☆☆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린 순간,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본 적없는 호화로운 천장의 문양이었다.
욱신욱신 지끈거리는 두통. 사막처럼 메말라버린 목.
그리고, 옆에서 미약하게 들리는, 천이 스치는 소리.
"……아."
나는 뛰어오르듯이 침대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곳은, 밤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조용해진 호텔의 방안.
아침 햇빛을 받으며 거울 앞에 서있던 것은, 어제밤 내가 억지를 부려 불러낸 카요코였다.
크녀는 아이보리색 볼레로를 걸치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있다.
"저기, 카요코씨…… 정말,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깊이 머리를 숙였다. 시트를 쥔 손 끝이, 스스로의 한심함에 떨린다.
"그보다도, 이제 몸은 괜찮아? 좀 더 잘래?"
"아뇨 그, 눈은 확실하게 떠졌습니다…… 숙취 정도라……."
카요코는 돌아보지도 않고, 쌀쌀맞았다. 그 담백한 반응이, 내 죄책감을 부추긴다.
"어제밤, 상당히 폐를 끼진거 같은데…… 그, 한심하지만, 대부분 기억이 안나서."
"……기억 안나?"
그녀가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거울 너머로 나를 바라본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빛이, 분노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인지, 지금 나로서는 읽어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무 것도?"
"……바에 불러내고 부터,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라……."
"진짜로?"
"송구스럽습니다……."
나는 이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작아져, 사라질 것같은 목소리로 사죄를 반복했다.
"그, 간호받아 놓고서 말하는 것도 뭐합니다만…… 아무 일도 없었……지?"
"……하아."
카요코는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한, 엄청나게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깨가 살짝 위아래로 흔들리며, 그녀는 뭔가를 떨쳐내듯이, 거울 속의 스스로를 다시 바라봤다.
"아무 일도 없었어. 유감스럽게도."
"정말, 죄송했습니다……."
"……뭐, 피차일반이니까."
"응?"
얼굴을 들어보니, 카요코는 이미 몸단장을 끝마치고 평소의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피차일반』이라는 말의 의미를 물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느샌가 풀려있던 내 넥타이를 내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자, 일 안가도 돼? ……이번에야말로, 샬레까지 바래다줄게."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비추는 그녀의 드레스 차림은 어제밤의 요염함과는 어딘가 다른, 평소의 당당한 힘을 띠고 있었다.
사뿐히 다가온 그녀에게서 풍기는건, 긴장하고 있던 마음을 속부터 풀어주는 것 같은, 편안해지는 향기였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어제밤의 열기를 완전히 빼앗아간다.
어제밤의 꿈을 정말로 잊어버린건지. 아니면, 잊은 척을 하고 있을 뿐인건지.
그녀에게 답할 자격을, 지금의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젠가 내가 이 『선생님』이라고 하는 무거운 겉옷을 벗어던지고, 그녀와 대등하게 마주 볼 날이 온다면.
그 때의, 카요코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어떤지.
그 "대답"을 하는건────
"선생님, 아직도 휘청거리잖아…… 자, 여기 손."
────먼 미래의 일이다.
"그러고보니, 바에서 나한테 말 건 사람, 아는 사람 아니야? 괜찮아?"
"아예 모르는 사람이니까 괜찮아. 그 때는 미안, 무서웠지."
"……선생님, 전부 기억안난다고 하지 않았어?"
"앗, 아야야야야야 머리가, 숙취인가~ 아~ 머리가, 아야야야야…… 아파아파아파! 진짜 아파 카요코! 팔 꼬집지 마 아야야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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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번역 모음
26년 첫 핫산
댓글 10
음~ 매우 미식이구만
맛있네~
으흐흐흐흐
어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