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M #순애 #린
원본 by タグ付き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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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7>
<1>
봄 잠, 새벽이 온 줄도 모를지니.
격무를 마친 나는 몽롱한 의식 그대로 어떻게든 수면실에 도착해, 진흙탕에 가라앉듯 잠을 탐닉했다.
1초를 다투는 긴급한 용무는 끝냈고, 성벽처럼 솟아있던 서류 더미는 무너뜨렸으며, 예측 불허의 사태도 모두 제압했다.
이쯤 되면 나도 쉬어도 된다.
쉴 권리는 분명히 있다.
수석행정관의 직책을 맡아 업무에 모든 것을 바치는 나지만, 사흘 밤낮의 무휴 노동을 당연하게 여길 만큼 기본 인권을 포기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
『─…짱. 린…….』
누군가가 나에게서 이 안녕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인수인계도 마쳤으며 부재중일 때의 긴급 매뉴얼도 정해두었다.
어떤 사태이든 적어도 앞으로 3시간…아니 4시간은 쉴 시간이 있을 터이며, 누구도 그것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
그나저나, 수면실 설비는 언제 이렇게 교체된 걸까.
나는 지고의 졸음에 흔들리며 묘하게 안기는 느낌이 좋은 다키마쿠라에 얼굴을 묻는다.
심호흡하면 좋은 향기가 가득 퍼져 거칠어진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분 좋은 잠으로 유혹해 준다.
좋은 물건이다.
비품 담당이 일을 잘했군.
어디서 들여온 것인지 다음에 슬쩍 물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꿈결에 생각하고 있자니, 다시─…
『으음…곤란한데…린……!』
방해꾼이 끼어든다.
대체 뭘까.
나에게는 휴식을 취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항의하기 위해 나른하게 고개를 들자…….
“아, 여어 린 짱. 안녕.”
사고가 정지했다.
“그게…우선 한마디 해도 될까?”
상상보다 몇 단계는 가깝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 거리에 선생님의 얼굴이 있다.
백지상태의 사고 그대로 천천히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다.
양팔은 단단히 선생님을 껴안고, 그 가슴에 얼굴을 묻은 상태.
넉넉한 파자마 너머로 몸의 감촉, 체온까지도 확실히 전해져 온다.
당연하다.
밀착해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이만큼 감촉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필연적으로 상대에게도…….
“저기, 왠지 미안해?”
“~~~~~~~~~~~윽!!!!!??”
설마 이런 목소리가 내 목구멍에서 출력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수많은 초현상을 목격하며 이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가까운 곳에 신비가 넘쳐나는 법이다.
<2>
“…그래서, 변명을 들어볼까요.”
“…저기, 린 짱. 화났어?”
“네.”
“…아, 아하하.”
추태를 즉시 수습한 나는 지금 선생님과 마주하고 있다.
압박에 굴복한 것인지 상대는 자연스럽게 바닥에 정좌한 자세.
나는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완벽한 심문 체제다.
“…여러 학생에게 손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들려왔습니다만, 설마 진실이었을 줄이야.”
“잠, 잠깐만! 나한테 켕기는 구석 같은 건 없어! 맹세코 무죄야!!”
“열흘 전, 밤의 공원에서 목줄을 든 선생님의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만,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
그 꼿꼿한 모습에 나는 두통을 가라앉히듯 눈시울을 누른다.
“…하아,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선생님께 예전처럼 직무를 맡길 수는 없겠네요.”
“윽! 오해야 린 짱! 내가 학생에게 손을 대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저와 침대에서 자고 있었을 때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어라? 왠지 너무 좋은 향기가 난다 싶었더니 린 짱이 있더라고?
음, 방금 샤워를 마친 뒤라 그런지 과연 샴푸 향기구나, 같은 샬레 비치용 샴푸를 쓰고 있을 텐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이게 젊음이라는 걸까?
좋겠다─나도 다시 태어나면 젊은 애가 되고 싶네─그보다 머리카락이 찰랑찰랑한데, 정말 찰랑찰랑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 머리카락 뒤로 엿보이는 푸른 메쉬 헤어가 마치 밤하늘을 헤엄치는 혜성 같아서 계속 보게 된단 말이지.
평소에는 날카로운 눈매가 잘 때는 풀려서 평소와의 갭이 굿, 선생님은 그런 것도 싫어하지 않아.
아, 하지만 허리가 너무 가느다란 거 아냐?
제대로 먹고 있어?
린 짱이 체형에 신경 쓰고 있는 건 알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좀 더 이렇게 건강하게 살집이 있는 편이 여러모로 안심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리고─”
“…….”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그대로 평생 입을 다물고 계셔 주시겠습니까?”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눈앞의 대형 폐기물을 내려다본다.
용케도 남에 대해 이만큼이나 떠들어줬다.
그리고 체형이나 건강에 관해서는 격무로 허구한 날 수척해지는 선생님에게 듣고 싶지 않다.
“최악이네요. 실망했습니다.
무단으로 제 수면실에 침입하고, 그것도 모자라 같은 침대에 기어들어 욕망을 발산하려 들다니 언어도단입니다.”
“…윽! 기다려 린 짱!”
“아니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당신 같은 최악의 범죄자를 잠시라도 신용한 제가 잘못이었습니다.
추후 처분을 내릴 테니 어서 제 방에서 나가─”
분노.
실망.
수치심에 어깨를 떠는 나를 가로막듯 선생님이 말했다.
“오해야! 왜냐면, 여기는 내 수면실인걸!!”
그 말에 탁 하고 기세가 꺾여 다시 한번 방 안을 잘 관찰해 본다.
기본적인 구조는 같다.
책상에 나열된 영양 드링크도 같지만, 자세히 보니 방 여기저기에 다양한 소품이 놓여 있다.
아마 학생들에게 받은 선물이겠지.
대량으로 있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깨끗하게 정리해 둔 광경은 이 방의 주인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으며,
또한 사랑받기에 마땅한 심성을 가진 소유자인지를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즉─아무리 봐도 내 방이 아니었다.
“…….”
“아─…저기, 잠시 쉬고 있는데 린 짱이 침대에 들어왔거든?
말을 걸어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대신 나가려고 하니까 팔로 꽉 홀드 당해버려서…….”
선생님의 거북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눈앞에서 말하고 있을 텐데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머리로 쏠렸던 혈액이 천천히 하강하여 뺨 근처로 이동하는 것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그게, 괜찮아…린 짱?”
“죄송합니다. 나가야 하는 것은 저인 모양이군요. 그럼 실례.”
“앗, 잠깐! 린 짱! 린 짱─!!”
배후에서 무어라 들렸지만, 나는 일절 무시하고 복도를 서두르지 않고, 뛰지 않고, 침착하게 걷는다.
그렇게 100미터를 5초 플랫의 페이스로 한참 걷다가 인기척이 없는 곳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흐느적거리며 한심하게 주저앉았다.
“저, 저질렀다…….”
정말로, 이제부터 어떤 얼굴로 마주 봐야 한단 말인가.
<3>
“선생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충분히 고민한 나의 결론.
평범하게 마주하기로 했다.
착각으로 선생님의 휴식을 방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폭언을 퍼붓고 말았다.
무엇보다 우선 그 사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휴식 시간이 끝난 타이밍에 곧바로 선생님에게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니, 신경 쓰지 마. 나도 당황해서 금방 설명하지 못했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해 때문이라곤 하지만, 상당히 심한 말을 해버렸습니다.”
“아하하, 괜찮아 괜찮아 그 정도쯤이야.
[익명 희망 게헨나 A양]이나 [밀레니엄 재중 게임개발부 K양]에 비하면 봄바람 같은 느낌이었어!”
“그러니까…선생님은 정말로 경애받고 계시는 거죠?”
선생님의 태도는 평소처럼 다정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
예상은 했지만 이래서는 이쪽의 마음이 갈 곳이 없다.
차라리 실컷 꾸짖어 주는 편이 이쪽도 마음이 편하겠건만.
“하지만 제 부주의로 근거 없는 매도를 퍼부은 것은 사실입니다.
변명이 되겠지만 그때의 저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정말로, 그때의 나는 냉정하지 못했다.
자다 깨서 머리 회전이 둔해진 것도 그렇지만,
믿었던 어른이 나…학생에게 손을 대려 했다고 생각했을 때 느꼈던 실망, 멸시, 그리고 아주 조금의 고양감.
잠깐, 고양감?
…아무튼 다양한 감정이 탁류처럼 소용돌이치며, 사태를 냉정하게 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뭐, 깜짝 놀라겠지. 응응, 어쩔 수 없어. 린 짱도 한창때니까.”
“…….”
…나는 매사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복잡미묘한 나의 마음을 ‘한창때’라는 한마디로 효율적으로 정리당하니, 왠지 모르게 무척이나 화가 났다.
“어쨌든, 그것만으로는 제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다. 뭔가…보상을 하게 해주신다면…….”
“음, 정말 괜찮은데……. 좋아, 그럼.”
선생님이 뭔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튕긴다.
“시내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생겼거든. 다음에 거기서 내가 대접하게 해 줘.”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깜빡인다.
“대접……? 하시겠다고요?”
“응응, 멋진 곳이라 혼자 들어가기엔 꽤 용기가 필요하거든.”
“하지만…사죄인데, 그런 것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야. 제발! 나를 돕는 셈 치고!!”
“고, 고개를 들어주세요!”
뭐랄까, 교묘하게 구슬려진 느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사죄 상대가 고개까지 숙이니 이쪽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른의 협상술이라는 것일까.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알, 알겠습니다! 갈게요! 갈 테니까 어서 고개를……!”
“정말? 다행이다. 그럼 괜찮은 날을 알게 되면 가르쳐줘. 예약해 둘 테니까.”
기분이 들떠서 의성어가 들리는 듯한 활기찬 어조로 말하는 선생님에게 나는…….
“하, 하아…잘…부탁…드립니다……?”
간신히 납득가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는 것이 고작이었다.
왜…이렇게 된 거지?
<4>
그리고 어느덧 약속한 날.
업무를 처리한 나는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이거면 될까…아니, 하지만…….”
거울 앞에서 다양한 드레스와 예복을 대보기도 하고, 바꿔 입어 보기도 하고,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기도 하고.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하며 차례차례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다.
『단순한 식사다. 교복이면 충분하겠지』라고 머릿속의 냉정한 부분이 발언하고 있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상대는 선생님, 평소 상대하는 상류층이나 권력자와의 회담이 아니다.
좀 더 캐주얼한 자리다.
그렇게 엄격한 드레스 코드를 요구받을 만한 가게는 확실히 아니다.
있을 수 없다. 그 사람의 금전 사정으로 봐도.
하지만, 하지만 그래, 만에 하나 필요했을 경우. 나는 선생님을 창피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안 된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 과오를 짊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덧칠할 우려가 있는 행위 따위, 연방학생회 수석행정관으로서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지 않을까.
그래, 그렇다.
그러니까 옷장 안쪽까지 다 뒤져서 가장 잘 어울려 보이는 드레스를 고르고 있는 것은…당연한 행위라고 할 수 있으리라.
“…뭘 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쌓아 올린 옷더미의 높이가 내 키를 넘겼을 때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일어날 리 없는 가능성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인가.
전혀 나답지 않다.
요 근래 도무지 나답지 않다.
“윽! 벌써 시간이 이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꽤 여유 있게 잡아두었던 약속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제 옷을 고를 여유는 없다.
그보다 처음부터 교복이면 좋았던 것이다.
왜 이토록 기합을 넣으려 했던 것일까.
선생님도 학생을 상처 입히지 않으려고 이번 식사를 제안했을 뿐이다.
나의 멋 부린 모습 따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서둘러 입고 있던 교복을 가다듬으며 황급히 방을 뛰어나가려다─
“…….”
─뛰어나가기 전, 책상 서랍을 열어 작은 상자를 살며시 꺼냈다.
리본이 감긴 세련된 상자.
첫눈에 마음에 들어 구입했지만 단 한 번도 착용한 적이 없던 안경이 들어있다.
드레스니 정장이니 거창하다만,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늘 쓰던 안경을 갈무리하고, 상자에서 소중하게 꺼낸 안경을 쓴 뒤, 이번에야말로 방을 나섰다.
<5>
“여어, 린 짱. 오늘 잘 부탁해.”
어떻게든 제시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를 선생님이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로 맞이했다.
기다리게 한 걸까.
준비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 후회된다.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산뜻하게 전형적인 대사를 내뱉는 선생님.
왠지 익숙한 기색이 느껴진다.
“…? 왜 그래?”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자 선생님이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안 되지 안 돼, 이번 식사는 어디까지나 사죄의 일환이다.
선생님이 누군가와의 만남에 익숙하다 해도, 문제 있는 상대만 아니라면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음, 그럼 갈까?”
“네.”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지고 대신 지상이 빛나기 시작하는 시간대, 나와 선생님은 나란히 서서 거리 풍경 속을 걷는다.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시간에 이렇게 선생님과 걷고 있다고 의식하니, 가슴 속에서 간질거리는 것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결코 그것을 들키지 않도록 애쓰며 선생님과 시시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키보토스 곳곳을 직접 발로 뛰는 선생님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서류상으로만 키보토스를 파악하는 나에게 새로운 놀라움과 발견을 안겨주었고, 무척 유익하고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마주한 이후로 줄곧, 바꾼 안경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점에 관해서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기적인 불만이라는 건 안다.
바꾸기 전이나 후나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비슷한 디자인이다.
어지간히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 이상 눈치챌 수 있는 건 아유무나 모모카, 아오이 정도겠지.
그리고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선생님이 나를 관찰하는 것은…그래,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알아차려 주지 않았으면 하는 수치심.
상반되는 이 두 마음을 능숙하게 다뤄주길 바라는 것은 갑질에 해당할까.
하지만 여기서는 선생님 표현을 빌려 ‘한창때’라는 것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문득, 옆을 걷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표정을 수시로 바꾸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평소의 선생님이다.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
“…앗.”
“응? 왜 그래, 린 양?”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늘 입던 정장, 늘 보던 깃 언저리에 평소와는 다른 낯선 물건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재킷 깃의 단추 구멍에 꽂힌, 만개한 꽃 모양의 실버 라펠 핀.
이것은 평소 선생님이 착용하지 않던 물건이다.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착용한 걸까.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니 멈추지 않는다.
만나기 전에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다?
아니, 이번 달 선생님은 재정이 어렵다고 했다.
은으로 된 질 좋은 액세서리를 살 여유는 없을 터.
이전에 샀던 것을 발견해서 무심코 달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
선생님은 그 자리의 분위기와 즉흥적인 생각으로 행동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반짝이는 은빛은 세심하게 관리된 기색이 역력하다.
결코 서랍 구석에 잊혀 있던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면…소중하게 관리하며 넣어두었던 액세서리를 오늘 일부러 꺼내서 착용한 걸까?
나와의…식사를 위해서?
“저기… 린 짱, 정말 괜찮아?”
“하윽?!”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면…”
“아, 아니요! 괜찮…네, 아주 멀쩡합니다! 아무 문제 없어요! 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생님을 곁눈질하며 마음속으로 땀을 닦는 나.
하필 내가 결론에 도달한 타이밍에 말을 걸다니, 심장에 너무 나쁘다.
하지만 선생님도 선생님이다.
이런 사소한 포인트의 멋은 평소부터 선생님을 유심히 보아온 내가 아니면 누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흥흥.”
‘린 짱, 즐거워 보이네─’
작게 승리감을 맛보며 가슴을 펴고 걷는 나를, 선생님이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끝내 눈치채지 못한 나였다.
<6>
“도착. 여기야, 린 짱.”
그러는 사이 목적지인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큰길의 소란함에서 숨겨지듯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가게.
과연, 내가 평소라면 가지 않을 타입의 가게다.
아담한 가게 내부는 오렌지색 조명에 비쳐 비밀기지나 은신처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잊고 지냈던 모험심을 자극했다.
“헤헤헤, 오늘 사냥감은 어느 걸로 하시겠소, 두목.”
“누가 두목입니까. 무슨 캐릭터 설정인가요.”
“뭐, 가게 분위기에 맞춘 거지. 오, 이 비프스튜 같은 거 맛있어 보이는데요, 대장님.”
“그러니까 왜 아까부터 도적풍인 건가요.
타락할 거면 혼자서 해주세요. 그럼 그 스튜로 하죠.”
“그럽죠! 역시 보스, 안목이 높으십니다!”
“…뭐, 도적 보스로서 당연한 감식안이죠.”
“갑자기 무슨 소리야, 린 짱. 아, 나는 이 햄버그로 해야지.”
“가진 거 전부 털어버릴 겁니다.”
평소 오지 않을 법한 가게에서, 평소 함께하지 않을 사람과,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즐긴다.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린다.
“음─…….”
“뭘 그렇게 빤히 보시나요. 성희롱인가요.”
“아니야?! 아니, 비프스튜도 맛있어 보여서…”
“흠, 제가 소처럼 맛있어 보인다고…틀림없는 성희롱이군요.”
“린 짱…왠지 나처럼 되어가고 있지 않아?”
“…….”
“아니, 그렇게 절망에 가득 찬 표정을 짓지 않아도…”
“부탁입니다……. 죽여…주세요……”
“그렇게 싫어?! 아니 아니 괜찮대도, 그런 린 짱도 귀엽고 나는 ‘키보토스 교사 총선거(샬레 조사)’ 부동의 1위인 인기남이니까!”
“저는…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린 짱 마음속의 나에 대해서, 한 번 진지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겠네.”
어깨의 힘이 빠지고 마음이 붕 뜬다.
선생님과의 식사는 무척 맛있었고, 정말 즐거웠다.
입장도 책임도 없이 오가는 사소한 대화는 편안했고, 가능하다면 영원히 이대로 있고 싶다는 그런 마음의 방황을 일으킬 뻔했다.
“어라…….”
“왜 그래?”
“아니요, 바게트에 신경 쓰다가 스튜에 스푼을 빠뜨려 버렸습니다.”
“새 거 가져다줄까?”
“아니요, 직접 갈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큭,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라!”
“이번에는 무슨 설정인가요?!”
가슴 속에 떠오른 감정은 이름도 모른 채 마음속에서 뱅글뱅글 춤을 춘다.
즐거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비워진 그릇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만족스럽게 숨을 내뱉었다.
나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똑바로 선생님을 마주했다.
“선생님, 다시 한번 지난번 일은 죄송했─”
“으와아! 큰일 났다!”
“어…꺅.”
갑자기 선생님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책상 위의 컵을 쓰러뜨렸고, 안의 물이 테이블 위로 번져나갔다.
“으와, 정말 미안! 린 짱, 괜찮아?”
“네, 네. 내용물이 별로 없어서 물방울이 좀 튄 정도입니다만…”
“아아! 이럴 수가! 내가 초대한 식사 자리를 마지막에 이런 실수로 망쳐버리다니!”
“그렇게 큰일은 아닙니다만…….”
마치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탄식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당혹스러워진다.
“아름다운 공주님이여, 부디 한 번만 더 이 어리석은 기사에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에 또 식사 초대해도 될까?”
표정만큼은 진지하게 굳히고 있지만,
걱정스러운 듯 이쪽을 살피는 점원을 눈짓으로 제지하며 필사적으로 냅킨으로 물을 닦아내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광대였다.
나는 우스워져서 작게 미소 지었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이군요.”
“선생님이니까.”
“당신은, 치사한 사람이군요.”
“어른이니까.”
그리고 지독한 사람이다.
사죄할 틈도 주지 않고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기쁨을 억누르고 숙연하게 수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번에는 생선이 먹고 싶네요.”
“맡겨줘! 또 끝내주는 가게를 소개해 줄게!”
기쁜 듯 꾸밈없는 미소를 짓는 선생님. 나도 덩달아 웃음이 터져버린다.
“그럼 슬슬 계산할까.”
“네, 그러시죠.”
“음, 계산서가…어라? 계산서가 어디 갔지?”
하지만 여기까지 선생님의 손바닥 위에서 계속 놀아나기만 하는 건 분하기에, 마지막으로 소소한 장치를 해두었다.
“지불은 이미 끝냈습니다. 자, 가시죠 선생님.”
“엣, 거짓말?! 언제?! 앗, 기다려 린 짱!”
아까 스푼을 가지러 갔을 때 몰래 계산서를 들고 가서 계산을 마쳐두었다.
학생의 사소한 변화는 알아차려도, 식탁 위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해서야 선생님도 아직 멀었다.
별빛 아래 도시 불빛이 비치는 귀갓길.
나와 선생님이 나란히 서서 길을 걷는다.
“으으~ 내가 대접하고 싶었는데~ 교사의 위엄이 사라지잖아…….”
“이번에는 제 체면을 세워주세요. 그리고 이제 와서 딱히 변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방금 에둘러서 ‘하하, 원래부터 위엄 따위 없었잖아요’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요, 딱히? 그저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네…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만.”
“재미없네 정말!!”
“진심으로 위엄을 갖추고 싶다면 그렇게 틈만 나면 중의적인 표현을 집어넣으려는 버릇부터 고치는 게 어떠신지?”
곧 역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선생님과는 헤어지게 될 것이다.
이별의 장소가 가까워질수록 적막감이 가슴을 파고든다.
“선생님,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게, 무척 즐거웠어요.”
“…응,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기뻐.”
가슴 설레는 비일상은 끝나고, 늘 보던 일상이 찾아온다.
“그럼 선생님, 저는 여기서 이만. 내일 뵙겠습니다.”
“응. 잘 가, 린 짱. 내일 봐.”
하지만 적어도 날짜가 바뀌기 전까지, 오늘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 들뜬 기분 그대로 있어도 괜찮을까.
“…린 짱!”
등을 돌리고 걸어가려던 나를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본 나에게 선생님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 안경도, 정말 잘 어울려!!”
그 순간, 가슴 속에서 둥둥 떠다니던 이름 없는 감정이 내 안의 어딘가 소중한 부분에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채 주고 있었다.
심장이 고동치고,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자, 이번에야말로 진짜 안녕!”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두고 이번에야말로 떠나가는 선생님.
정말이지…지독하고 치사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내일 어떤 얼굴로 마주 봐야 할까.
<7>
“아유무, 모모카, 좋은 아침입니다.”
“좋, 좋은 아침입니다…행정관님.”
“린 선배 안녕─.”
“오늘 무슨 이상이나 문제 등 보고할 사항이 있습니까?”
“저기, 네, 평소처럼…많습니다…….”
“응, 산더미처럼 잔뜩.”
“그렇습니까. 그럼 평소처럼 우선순위가 높은 안건부터 처리해 나가도록 하죠.”
다시 돌아온 일상.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딱 하나.
“어, 어라? 행정관님, 안경 바꾸셨나요?”
“어라, 진짜네.”
“네, 조금, 기분 전환으로.”
그때 가슴 속에 떨어진 감정은, 곤란하게도 전혀 거기서 움직여주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 나 자신에게 가장 곤란해하고 있다.
“저기, 정말 잘 어울리세요…!”
“갑자기 웬일이야? 응? 선배─.”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어서 업무 시작하세요.”
그 감정에 이름은 아직 없다.
왠지 정체를 짐작하고는 있지만, 지금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척하기로 한다.
나와 선생님은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크다.
그러니 지금은
‘수석행정관과 샬레의 선생님’,
‘학생과 교사’,
‘가끔 같이 식사하는 마음 맞는 사람’,
이 정도의 가벼움이 딱 좋다.
하지만 만약 앞으로 조금이라도 서로의 짐이 가벼워진다면─
그때 다시 한번 이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하자.
“아─ 혹시 사랑이라던가?”
“…하윽?!”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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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흐
달아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