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고
18626자
연애

어두컴컴한 검은 돌로 된 회랑
기묘하게 울리는 구두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간다
뚜벅 뚜벅
빙글빙글 돌면서 계단을 내려간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공기가 식어간다 계절은 아직 봄인데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겨울이 다가오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이윽고 무기질의 문과 표정 없이 서 있는 문지기 모습이 보였다
"안녕 오늘 면담 예약했던 샬레의..."
"들어오세요"
작게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답답한 문이 열린다
"쭉 직진해서 맨 안쪽 방입니다"
"그녀는, 잘지내고 있니?"
"..."
답변은 없었다 가보면 안다는 말이겠지
시킨대로 쭉쭉 나아간다
옆을 보면 쇠창살 방이 죽 늘어서 있다
안에는 돌의자와 뭔가를 연결하는 쇠사슬
다행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방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한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안에는 무릎을 안고 고개를 숙인 소녀가 한명
소우주 같은 헤일로, 분홍색 머리카락
"...나에게 용무? 나기쨩... 일리는 없고, 누굴까나"
"미카, 오랜만이야"
"...어?"
소녀는 얼굴을 들었다
"...아하. 선생님...이잖아. 어째서 이런 곳에 온걸까?"
죄수의 이름은 미소노 미카
에덴조약 체결 때 쿠데타를 일으켜 붙잡힌 소녀
"...그래서, 무슨 용무야? 딱히 내가 할 말은 없는데"
여전히 얼굴은 반듯하지만 조금 가늘어지고 수척해 보인다
투옥 전에는 멋에 신경을 썼지만 감옥 안에서 그게 가능할 리 없다
수척해지는 이유는 분명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왠지 시들어가는 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깥 근황 같은 거 궁금하지 않아?"
"별로 관심없을까나. 어차피 에덴조약도 맺어졌을 테고..."
그녀의 말대로 조약은 맺어졌다
그때부터 또 몇 번이나 시련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든 거기에 닿았다
철창 너머로 미카의 눈을 직시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 나는 너를 졸업시키러 왔어"
"...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샬레의 권한으로 너를 좀 더 일찍 석방시키겠어. 타이밍을 조정해서 여기를 나가는 동시에 졸업... 그러면 트리니티도 불평하진 않겠지"
"저기, 무슨 말하고 있는건지 알고있어?"
"말그대로야. 자, 학점은 아마 부족하니까 나머지는 공부. 만약 진학한다면 여름이나 가을에 편입을 결정하고, 지금 3학년부터 조금 늦은 타이밍에 졸업... 그런 플랜이야"
"아하. 재미있는 소릴 하네... 응.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무슨 말하고 있는건지 알아?"
얼굴은 웃고 있지만 미카의 눈에는 어두운 불이 켜져 있다
"솔직히 말하지만, 이젠 전부 아무래도 좋아 이제와서 게헨나를 망칠 방법도 없고, 이제 트리니티... 아니, 키보토스에 있을곳은 없고 아하핫"
"자업자득이야. 네가 지은 죄니까"
"우와~ 가차없네. 하지만 맞아 죄인이고, 내게 미래란 건 없어"
"죄를 지어도 그게 끝이 아니야. 속죄한 끝에 미래는 있어야 해.
다시 시작하자"
"......돌아가줬으면 좋을까나"
고개를 흔들며 미카는 선생님에게 등을 돌렸다
"미카!"
"...왜 내 야망을 무너뜨린 사람 따위와 손을 잡아야 하지?"
"무너뜨렸으니 '네 이제 끝'이라고 멋대로 끝낼 일이 아니야! 그래서 지금 손을 잡으려고"
"손을 잡으려면, 쿠데타를 일으킬 때 잡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미카의 편이기도 해' 였나? ―거짓말쟁이"
그녀의 눈에 켜진 어두운 불길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더 이상 미카는 무슨 말을 걸어도 답해주지 않았다
다음날
"여기, 선물 롤케이크"
"...으응 왜 다시 온걸까?"
선생님은 다시 지하 감옥에 와 있었다
"진로 물어봐도 돼? 취업인가 진학인가에 따라 달라지니까"
"저기 말이야... 아무래도 좋다고 했지?"
"그럼 내가 미카의 진로 마음대로 결정해도 된다는 거지?"
"하아... 맘대로 하세요 맘대로~"
"그럼 레드윈터에서 다시 배우는 거 어때"
"......"
선생님이 태블릿을 만지고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미카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뚜르르르, 벨소리가 잠시 울려 퍼졌고, 힘찬 목소리가 태블릿에서 새어 나왔다
『여보세요, 컴라드인가!』
"아, 여보세요 체리노~? 내년 신입생 억지로 넣어줬으면 좋겠어..."
『좋아! 이몸에게 맡겨두게!』
"이름은, 미소노..."
"네~~에 스톱!! 왜 레드윈터 학생회장과 친한건데!?"
미카가 너무 싫은 표정을 지어서 레드윈터 전화는 끊었다
롤케이크를 우물거리며 미카는 한숨을 쉰다
"...하아~"
"맛없어?"
"아니. 그립고, 익숙한 맛... 일부러?"
"?"
무엇에 대한 질문인지 알 수 없어서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뭐야, 비아냥댄게 아닌거구나. 그럼 됐어"
미카는 먹다 만 롤케이크를 접시에 놓고 시선을 선생님에게 맞춰왔다
"있잖아 선생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일어설 생각이 들지 않는단 말이야"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없어?"
"당연하잖아"
"하지만 미카가 만들 미래에도 희망은 없었던 것 같아"
"...헤에"
"만약 게헨나를 멸망시킨다고 해도, 제2의 아리우스나 제2의 미카가 태어날 뿐, 키보토스의 혼란은 깊어져. 그 밖에도 영향을 끼쳐 결국 입장을 바꿔 같은 일을 반복해 간다... 정말 무의미해"
"...멋대로 말해주네?"
"게다가 아리우스가 정말 너와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아"
트리니티와 게헨나의 문제는 상상 이상으로 뿌리 깊다. 그야말로 선생이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계속 되고 있을 정도, 서로를 미워하는 상태로 오랜 세월 계속 방치해 손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런 정체된 공기를 계속 들이킨 자의 마음은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그 쿠데타는 줄곧 이어져 온 두 학교의 문제의 표면일 뿐이다
그리고 이 감옥의 소녀도 옛사람들이 계속 방치한 외상값을 지불받았을 뿐이다
"미카 주변에는 책임질 어른이 있었어? 거칠어진 마음을 치유해줄 상대는 있었어?"
"글쎄? 관심 없고, 기억도 안 나"
"그래서 길을 잘못 든거야...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 내가―"
"아― 정말이지! 끈질겨!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니까!!"
미카의 노성이 감옥에 부딫쳐 메아리친다
아차, 하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미카는 약간 고개를 숙였다
"이미... 늦었다니까"
"저기. 이렇게 정면으로 화를 쏟아낼 상대는 있었어?"
"...아하. 있었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구"
목마른 웃음을 머금은 미카에게 걸 수 있는 말도 없어 선생님은 천천히 그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시 올게. 교재와 팜플렛은 두고 갈게"
"안 와도 된다니까..."
그 이후에도
"오늘의 기념품, 도시락 싸왔어"
"...돌아가. 만들 상대를 틀렸다구"
"어이. 이거 빨간책"
"엄청 필요하지않아?"
며칠이고 며칠이고. 선생님은 계속 그녀의 감옥에 다녔다
대부분 문전박대 당했지만 서서히 대화하는 시간은 늘어난다.
일주일, 한달, 그리고...
"하아... 또 온거야? 한가한가보네"
소극적인 미소로 그녀는 선생님을 맞이했다
지속은 힘이다. 미카는 조금씩 대화 속에서 미소를 짓게 됐다
최근에는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없어졌다
"안녕. 요즘, 웃어주게 됐네"
"윽!?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필사적으로 찡그린 얼굴로 되돌리려던 미카가 흐뭇해 웃음이 새어나온다
"...정말 선생님이랑 있으면 페이스가 나빠져~"
"좋은 일이 아니네. 미카는 웃는 얼굴이 귀여우니까"
"......! 또 그런 말을 뻔뻔하게"
"얼굴 빨갛지 않아?"
"......"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오늘의 기념품은 이거지만"
"물병...?"
가방에서 컵을 꺼내 물통의 내용물을 붓는다
김이 난다. 코에 닿는 것은 깊이 있는 과실이 섞인 부드러운 냄새
"... 홍차?"
"응. 찻잎, 많이 받아버려서"
"아하핫. 아무리 생각해도 비아냥대는거잖아! 전 티파티에게 홍차라니!"
"우연이라니까, 자 부디"
불평하면서도 미카는 얌전히 컵을 받는다
그대로, 살짝 입을 대고 마셨다
"...와~오. 엄~청 괜찮은 홍차네~"
"아, 맛있었어? 다행이다"
"훗... 아하핫 빈말인게 뻔하잖아, 빈말. 선생님, 홍차 타는거 서툴러"
"어?"
"아무래도 나, 전 티파티니까 차에는 까다롭다구?"
찻잎의 종류를 척하고 알아맞힌 미카는, 그대로 「차를 내리는 방법이 아직 멀었어」라든가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이 맛있다」라고 선생님에게 지적질을 시작한다
즐겁게 떠드는 모습은 그녀가 아직 일을 벌이기 전 같아서...
"...어머, 뭘까?"
흐뭇한 마음으로 보다가 들켰나, 아니면 즐겁게 떠들던 것을 깨달은 탓인가, 가만히 노려본다
"아니. 계속해"
"...그만둘래. 홍차 식어버리고"
"마실거야? 못한건데?"
"잘 못타지만... 맛있네"
또 작게 한모금 넘긴다
미카는 홍차의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컵을 어루만졌다
"으음... 이러쿵저러쿵, 즐거웠어. 티파티에서 보낸 시간. 세이아쨩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내가 장난치고, 나기쨩이 태클하고"
"......"
"뭐, 그 시간도 스스로 망가뜨렸지만"
"시간은 걸리지만 언젠가 되찾을 수 있을 거야"
"또... 말했잖아. 이미 늦었다고"
"...그렇다면 왜 그렇게 괴로운 눈을 하고 있는 거야?"
지적을 받고, 미카의 어깨는 크게 들썩였다
"...그럴, 리가 없잖아. 왜냐면. 내가. 망가뜨렸거든? 직접. 말이야. 세이아쨩을 죽이려고하고 나기쨩의 마음도 상처입혔어"
"원해서 그랬어?"
"물론. 물론, 원해서......"
"미카"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네가 수영장에 왔을 때, 나를 납치할 걸 그랬다고 했지. 근데 그렇게는 하지 않았어. 나는 너를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 ― 다시 물어보겠는데, 정말 원해서 한 짓이야?"
"......원해서! 원해서 한게 아니야...!!"
제방이 무너졌는지 훌쩍훌쩍, 미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어째서...! 왜! 이런것...!"
가느다란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철창과 입장이 두 사람을 사이에 두고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적어도, 하는생각에 창살 틈으로 손을 뻗는다
미카는, 당황하지 않고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작은 손에서 떨림이 전해진다
"흑. 흐으으... 울 자격같은거... 없는데...! 내, 내가 나쁜건데...!"
"있어... 후회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으에에 흐윽, 우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통한 오열이 감옥에 울려 퍼진다
선생님은 그저 조용히 미카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바보같아 어린애처럼 펑펑 울어버리기나 하고"
안정된 미카는 붉게 부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이 맞아. 그러니까... 아직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돼"
"그거 그만둬. 정말로 희망, 갖고싶어지니까. 괴로워"
"가져. 어떻게든 될테니까"
선생님의 말에 미카는 코웃음을 쳤다
"아핫. 근거가 없잖아"
"근거인가... 기억나? 미카가 잡혔을 때 패배의 원인을 나라고 했었지"
"말했을지도 모르지"
"그 원인이 편드는 거야. 어떻게든 되는게 당연하잖아"
"편..."
"지금이야말로 미카 편이 될 거야. 무엇으로부터도 지켜주고, 네가 원하는 걸 도와줄게"
"헤에~ 그럼, 게헨나를 같이 쳐부수자?"
"그건 거절. 지금의 진짜 소원은 그거?"
과연 농담이었는지 히죽히죽 웃고는 진지한 얼굴로 돌아간다
"소원은... 나의. 지금의 소원은..."
"웃지 않을게, 받아줄테니까. 들려줘"
"... 나의 지금 소원은 ―――"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중얼거리던 그녀의 마음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맡겨줘... 여기~! 준비한 그거 부탁해!!"
선생님이 돌아서서 외친다
그러자 잠시 후 정의실현부가 줄줄이 박스를 들여온다
"뭐야 이거...?"
"교재야"
"어?"
"미카가 가고 싶은 대학, 이쪽에서 조사했는데 지금도 바뀌진 않았지?"
조금 생각하는 듯 미카는 고개를 숙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공백도 있으니까 많이 힘들겠지만, 힘내자 ――― 자, 보충수업을 시작할까!"
이렇게 감옥에서의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보충수업부의 적이었던 그녀의 보충수업을 한다는 참으로 기묘한 광경
미카는 남는 시간을 공부에 쏟고 선생님이 감옥에 찾아가 해설한다
마치 가정교사와 학생같은 관계가 시작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계절이 여름이 되었다
감옥의 시원함이 딱 좋을 정도의 더위
그녀와 재회한지 3개월 정도 지났다
"어때? 채점 끝났어?"
"D판정"
"으윽~!? 거기를 어떻게든!!"
"시험관은 편들어 주지 않아요~"
목적이 생긴 탓인지 미카는 예전의 밝음을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조금 가볍고 말이 많은, 예전의 미카처럼
"의외로 미카는 공부를 잘 못하는구나"
"말했잖아! 머리가 안 좋다고! 자주 나기쨩네 집에 뛰어들었고..."
"아직 더 열심히 해야지. 미카라면 할 수 있어"
"이젠 질렸어~ 공부하고 싶지않아!! 무리!!"
"떼쓰지마"
"저기~ 뭔가 포상 같은 거 줘? 모티베이션을..."
말하던 도중 미카는 입을 다물었다
"... 역시 없던걸로. 애당초 이거 나 때문이잖아?"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복에 겨운 것이라는 자각이 있는지 중간에 제멋대로 멈추었다
그 애잔함이 귀여워서 선생님은 그만 입을 뗀다
"좋아. C판정이 되면 들어줄게"
"정말? 에헤헤, 약속 확실히 받았어~?"
대체 무엇을 받을 작정인지 그녀는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구두 소리를 내며 선생님은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간다
차가워진 회랑이 피부의 열을 앗아간다
"이번엔 어때? 오늘은 자신있다구?"
"...C판정"
"와~오! 아싸~~!"
설마 그렇게 금방 성적을 올릴 줄은 몰랐는데
역시 기본두뇌는 좋은편인가
"아, 그러고보니 「C판정이 되면 소원 들어줄 수 있다」고 했지? 응―응―!"
"...윤리적으로 문제없는걸로 부탁합니다"
"아싸~!"
어린아이처럼 들뜬 미카는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럼... 전처럼 내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어"
미카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온다
섬세하고 부드러움을 띤 하얀 팔
"그걸로 괜찮아?"
"...괜찮아. 내 맘이잖아?"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서늘하지만 은은히 열을 지닌 손
"...선생님의 손. 진정되네"
그리고 잠시후 아쉬운 듯 미카는 손을 뗐다
"고마워... 에헤헤"
"이만하면 싸게 치이는 일이지. B판정을 받으면 또 뭔가 들어줄게"
"선생님... 나한테 무르지~? 혹시 날 좋아하기라도 해?"
짓궂게 장난치는 그녀
"물론. 좋아하지 않았다면 편들지도 않았을 거야"
"!? ...아, 아하하~?"
그런 장난도 전혀 효과가 없고 반대로 미카가 주춤하게 됐다
가을. 트리니티의 나무들도 붉게 물들고 여름의 더위는 어디로 간건지
여전히 구두 소리를 내며 선생님은 지하로 찾아간다
"C판정"
"...그런가~"
그녀의 성적은 여름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상승했다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주춤거리고 있다
"하아. 괴롭네"
"미카는 분발하고 있어. 잘 알고 있으니까"
"게헨나만 없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미카. 안 돼 그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한건지, 씁쓸한 얼굴을 하고 미카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렇잖아. 애초에 게헨나가..."
"역시 간단하게 미움을 씻어내긴 힘들겠지"
"...미안해. 머리로는 알겠는데 말야?"
그녀의 마음에 둥지를 튼 독은 트리니티에서의 3년간 조금씩,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일 수도 있으니, 그걸 없애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닐것이다
"별로 말이야. 무리해서 씻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물병을 꺼내 컵에 홍차를 붓는다
최근 몇 달 동안 하스미나 나기사에게 홍차 수행을 받는 바람에 미카로부터 「B판정」을 받을 정도의 솜씨가 되었다
컵에서 김과 향기가 피어오른다
"그 검은 감정과의 교제법을 익히면 되는거야. 잘 다룰수 있게 되면 예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긍정해주는거네"
"감정. 그 부분은 이치가 통할 정도로 쉽지 않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진 문제로,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지. 어려워. 에덴조약은 그런 난제에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
"나에겐 무리야"
"미카는 말야, 자신의 행복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 증오보다 우선할 수 있는 행복을... 자, 이거"
가방에서 감촉이 좋은 봉투를 꺼내 미카에게 건넨다
"이게 뭐야, 편지? 내 앞으로?"
발신인을 보자 미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와. 나기쨩인가"
새하얀 봉투에는 「미소노 미카씨에게」「키리후지 나기사」라고 꼼꼼하게 글씨가 써있다
"이것도 네가 마주해야 할 것들 중 하나야"
"아픈곳을 찌르네 이거. 읽지 않으면 안되려나?"
"읽어봐. 그리고 답장하는거야. 가까이에 있으니까"
하아~~~~ 미카는 쌓인 것을 밀어내는 듯한 한숨을 쉬었다
"뭔가... 공부도 잘 안되고, 나기쨩 편지도 오고, 시들어 버릴거 같아"
"힘들게 느껴지겠지만, 여기가 버틸 때야. 그럼..."
"어? 이제 가버리는거야?"
선생님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샬레의 볼일이야. 그리고, 한동안 못 올것 같아"
"...어?"
"좀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 생겨서.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올게"
잠시 미카는 굳어졌지만 쥐어짜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그렇구나. 조심해? 선생님이 없어지면 나... 아냐, 다녀와"
빠른 걸음으로 떠나는 그의 등
끼긱... 하고 멀리서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드고 나서 미카는 벽에 기댔다
"...아하하, 그렇지. 선생님은 모두의 편이니까...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뭘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일주일동안, 선생님은 감옥에 오지 않았다
계속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탓에 미카 안에서 「버려진 것일 수도」 라는 불안감이 커지게 된다
괜찮아. 학생을 내버려둘 사람이 아니야. 가령 나같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도
그걸 알면서도 그가 오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없이 불안했다
"괜찮아... 괜찮아. 응, 나 참는 건 잘하니까..."
미카는 「버림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무릅쓰고 참고서에 손대다 떼고, 나기사의 편지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한동안 안절부절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또각또각
저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와 미카는 벌떡 일어났다
틀림없이 그 사람이야. 요즘 공부가 잘 안 되는 변명을 어떻게 할까?
...아냐. 그 사람만은 속이고 싶지 않아
설레는 마음으로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미카는 사람의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선생님도!! 나를 잊어... 어?"
"―미안하군. 선생님이 아니라서"
백은의 머리카락, 초승달같은 헤일로, 섬세한 장식이 달린 날개,
연보라색 눈동자에 작은 체구
"...시라스 아즈사?"
"음. 나다... 키리후지 나기사로부터의 전언을 가져왔다"
뜻밖의 손님에 미카는 놀라며 아즈사를 재촉했다
"「편지는 읽지 않아도 되지만, 답장은 주세요」라..."
"...아하하. 나기쨩다워. 일부러 이것 때문에 온 거야?"
"용무는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언제나 선생님이 사용하는 파이프 의자에 걸터앉아, 용무를 완수했을 아즈사는 눌러앉을 자세를 보였다
"조금, 미소노 미카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헤에~ 나, 너를 제물로 삼으려던 극도의 악인인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트리니티에 올 수 없었을 거야"
부드럽게 웃던 얼음마녀의 그 표정이 의외라 미카는 눈을 껌뻑인다
"좀 부드러워졌나? 아즈사쨩"
"그럴지도. 여러가지 있었으니까"
"어떄? 학교, 재미있어?"
"음. 히후미도 코하루도 하나코도 있고, 가끔 선생님도 계시고. 너무 충실해"
"그렇구나... 다행이야"
"당신은 나를 제물로 삼을 작정이었다지만, 감사한다.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어"
"변했네~ 좋은 곳이고 재미있지, 트리니티는 어때? 그 뒤로 스쿼드는 왔어?"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눴다
요즘 근황이라든지, 어느 가게가 맛있다고 하거나
바다에 갔다던가, 소꿉친구 옛날이야기라던가
옆에서 보면 그 모습은 그저 사이좋은 선후배로만 보였다
"아즈사쨩은 선생님 좋아해?"
"물론, 존경해.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
쑥스러움 없이 시원하게 대답하는 아즈사를 보며 미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가... 조금 안심"
"? 미소노 미카는 선생님을 좋아하나?"
"어떨, 까나 이런 나 따위를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인걸... 착각할 것 같기도 해"
"무엇을 착각한다는거지?"
"그! 그건~ 아하하, 이런건 아즈사에겐 아직 이른 화제일지도 몰라?"
"잘 모르겠다만, 선생님은 미소노 미카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
뜻밖의 발언에, 미카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마... 으응 그럴리 없어. 나에게 시간을 내주는 건 동정과 자기만족이야. 요즘은 방치되고 있고"
"동정이나 자기만족만으로 시스터후드나 정의실현부에 발품을 팔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어? 뭐야, 그거"
예상치 못한 발언이 아즈사에게서 튀어나와 미카는 말문이 막혔다
"? 못 들은건가. 그러니까"
최근, 선생님은 시스터후드나 정의실현부의 「부탁」을 들어주고 다닌다고 했다
그외에 다른 학원도 여전히 돌보고 있고
너무 치우쳤다고 생각하는지 게헨나나 밀레니엄에서 클레임도 오고 있는 것 같지만 괜찮다고 한다
"어째서... 그런"
"...동정이나 자기만족으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 슬픈 표현은 그만두었으면 해"
"왜... 나 따위를, 위해서"
"후회된다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었다면 불행해지는 학생도 적었다」고"
"...정말, 바보가 아닐까. 그 사람"
"그럴지도. 하지만 미소노 미카에게 품고 있는 친애는 진짜... 그리고 키리후지 나기사도"
"어..."
"아니, 역시 편지를 읽는 편이 빠를 것 같아. 눈치없이 너무 오래 있었군"
슬슬 가겠다, 며 아즈사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데, 미소노 미카의 선생님을 향한 마음은 연모?"
눈치없긴,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미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노... 노 코멘트..."
"그런가. 응원할게"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아즈사는 떠났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선생님이 돌아오셨다
"미안해, 조금 바빠서"
"으응... 큿! 선생님 지금 모습 엄청난 꼴이야"
오랜만에 보는 그의 머리는 부스스하고 눈은 충혈됐고 다크서클이 짙다
하지만 그건 자신을 위해 애써준 증거. 그렇게 생각하니 사랑스러워졌다
"거짓말..."
"정말이야... 에헤헤"
불안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맙다는 말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미카는 다시 펜을 들고 노트를 펼쳤다
겨울. 끝의 계절
뚜벅 뚜벅
두 발자국 소리가 어둡고 조용한 지하에서 올라온다
차가워진 지하에서 더 차가운 지상으로
"―와"
"어때? 오랜만의 밖은"
약간 흐린 하늘.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낮
정의실현부의 허가가 있어 미카는 외출할 수 있었다
거의 1년만에 하늘을 봐서인지 미카는 감탄하듯 올려다본다
"하늘이... 이렇게 파랬었구나"
"자, 가자"
선생님이 내민 손을 미카는 두 손으로 조용히 감쌌다
"내가 가려는 대학 말야 나기쨩이랑 「같이 가자~」고 얘기하려던 참이야"
"그렇구나"
"꽤 대단한 곳인데, 밀레니엄의 우등생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곳... 나 열심히 하고 있지 않아?"
"알아, 미카는 열심히 하고 있어"
"에헤헤"
코트를 입고 둘은 트리니티를 천천히 걷는다
숨은 하얗고 바람은 차갑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따듯했다
"나기쨩이 지금도 약속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대로 관철하려고"
"나기사가 어디 지원하는지 물어볼까?"
"그건... 응. 좋아. 내 소원, 기억하고 있지?"
미카는 결국, 나기사의 편지를 읽지 않았다
읽지 않고 근황이나 최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적어 답장했다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차 한잔 같이 하자」고 마지막을 맺었다
"저기 선생님. 도서관 카페 가고 싶지 않아!? 오랜만에 저기 스콘과 홍차"
"――꽤 건강해 보이네요"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녀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렇게 끝맺었지만, 그것은 먼 미래... 오지 않을지도 모를 정도로 먼 가능성을 두고서였다. 하지만
"...나기, 쨩?"
2명을 불러세운것은 ―― 키리후지 나기사
에덴 조약 체결을 진행시켜 티파티 마지막 한 사람으로서 길을 간 소녀
미소노 미카의 소꿉친구이기도 한...
나기사의 얼굴을 인식하자마자, 미카의 얼굴은 동요로 일그러져 선생님의 그림자로 숨으려한다
"미카!"
그것을 제압하고, 선생님이 어깨를 잡으면서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설마, 선생님...!? 아니... 선생님은 이런 짓 하지 않겠지?"
천천히 그의 손을 어깨에서 내린 미카는 눈을 내리깔며 나기사를 마주한다
"선생님은 믿고 있군요. 맞아요, 제 독단이죠"
깨물듯이 말한 나기사 또한 조용히 결의를 간직한 눈으로 미카를 응시했다
"나기사. 이런건 빨리 말해줬어야지"
"잘도 말씀하시네요. 말했다면 말렸을거면서, 선생님은 잠시 물러나주시겠어요?"
나기사의 눈에 찬 의지를 느끼고 선생님은 몇 걸음 물러섰다
"아하하... 오랜만이야, 그렇지"
"글쎄요, 미카씨"
해가 기울기 시작해 붉음을 띤 하늘 아래 두 사람은 마주 보았다
먼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기사는 미카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눈에 빨려들어 구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 요즘 어떻게 지내? 건강해?"
실없이 웃던 미카의 얼굴을 보고 나기사의 눈썹이 모인다. 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저기... 앗. 편지, 미안해?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허둥지둥 허공을 오가는 미카의 손을 보며 나기사는 주먹을 움켜쥔다 걸음이 더 빨라졌다
"저기.. 나기쨔――"
"――미카씨!!!!"
둘의 거리가 0이 되었을때 나기사가 손을 들어 ――짜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침묵이 그 자리를 지배한다
맞은 미카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붉어진 뺨을 누르며 실없이 웃었다
"...아프네에"
"무엇을... 무엇을!! 하고있는건가요!? 당신은!!"
미카의 멱살을 잡고 나기사는 다시 한 번 팔을 내리쳤다 다시 메마른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진다
"나기사!?"
"선생님 오면 안돼!!"
달려가려던 선생님을 보고 미카가 외친다
"...우리, 문제니까. 거기서 보고있어?"
떨리는 목소리, 촉촉한 눈으로 윙크한 미카는 붙잡은 나기사 쪽으로 돌아선다
"나기쨩은 따귀를 잘 못하네. 손, 빨개지고 있어"
"인생에서... 처음으로 했으니까...!"
"그렇게 화가 난 것 치고는 면회를 와 주지 않았지"
"만날 수 있을리... 없잖아요. 어떤 얼굴을 해야 좋을지..."
"나도 말야. 지금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비통함이 가득한 미카의 미소를 보며 나기사는 손을 뗀다
"읏... 왜 그런 짓을, 한건가요?"
"게헨나가 미웠어.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것 뿐이야"
"어째서... 제게 상담해주지 않았나요! 고민이 있었다면 제가..."
"아하하핫. 무리야 무리! 나기쨩은 내 마음을 몰라주잖아!"
우스워서 참을수 없다는 듯이 그런 조소를 짓는 미카에게 나기사는 반 걸음 뒷걸음질친다
"무....ㅅ!?"
"나기쨩은 너무 평등하고 냉정해. 사람의 열정도 증오도 둘 다 뒷전이잖아. 마치 철의 여인이야"
"하지만! 당신의 진실된 고민이라면, 저는 반드시 힘이 ――!"
호소하는 듯한, 나기사의 절실한 말
그 말을 듣자, 미카의 눈에 어두운 불빛이 떠오른다
"...실은 단 한번. 나기쨩에게 마음속 깊이 털어놓은 적 있는데?"
"네?"
"「게헨나는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나기쨩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기억하고 있을까"
"...그, 그건"
나기사는 말이 막힌다. 미카는, 메마른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주먹을 쥔다
"기억나지 않겠지. 나기쨩은 이때 뭐라고 했을 것 같아?"
"......"
"「그런 감정적인 발언 용납할 수 없어요. 사랑이 부족해요」" 였나. 뭐어, 기억이 안나겠지... 기억이 안나는데"
주먹을 천천히 들어
"기억이 안나는데... 기억이 안나는데...!! 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네?!!"
나기사처럼 뺨을 향해 손을 휘두른다
짜악, 하는 메마른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기사 얼굴에도 붉은 빛이 돌았다
"사랑이 부족한건 나기쨩이겠지!! 친구 푸념 하나쯤 들어줬어도 괜찮았잖아!?"
"읏...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 회화. 하지만 저는 티파티로서의 역할을..."
"맞아, 나기쨩은 티파티인걸!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아지타니 히후미도 퇴학시키려고 했지!?"
짜악! 다시 메마른 소리가 난다
"저의 비루한 점을 말해주셨군요...!"
"자각은 있구나!? 나기쨩은 사적 감정을 일에 넣지 못하는 겁쟁이야!"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지 못한 주제에! 티파티의 성립이 되지 않는걸 알고 하는 말인가요!!"
하늘이 어두워진다
낮과 밤의 경계가 뚜렷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하늘에 별이 깜박이기 시작한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겠지!?"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씀하시네요!!"
옆에서 보면 너무 서투른 싸움이었다
서로 머리채를 잡고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이 고집쟁이!!"
서투르다... 너무 서투른 감정의 부딪침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올라타서 때리고
박치기를 억지로 넣는다
"미카씨는 바보오오오오!!"
"나기쨩은 멍청이이이이!!"
울면서 상대방의 뺨을 후려친다
마치 다섯 살짜리 아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뒤늦게야 비로소 모든 것을 부딪친다... 너무 서툴고 어설프다
과거 트리니티의 전권을 쥐고 있던 2명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겠지
"......말리지 않으실 겁니까?"
"아. 하스미... 타인의 일은 함부로 할 수 없잖아"
두 사람을 지켜보던 선생님은 어느새 옆에 서 있던 하스미와 말을 나눈다
"저런것도 필요... 할까요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면"
"그것 때문에 키보토스의 학생들은 튼튼하게 태어나서 총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슬슬 그만둘까요?"
"그렇네. 어―이! 둘다 거기까지!"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눈은 그쳤다
"후우 후욱... 미카씨는 둔탱이...!"
"히그윽... 우욱! 나기쨩은 반편이...!"
억눌린 뒤에도, 둘은 쉰 목소리로 매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에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고 둘다 속으로 「어째서 몰라주는건데」라고 외치는 듯 했다
"돌아가겠습니다 나기사님 다친 곳은... 괜찮은 것 같은데 일단 구호기사단에 들릴까요"
"미카도 돌아갈게 내가 간단히 처치할 테니까"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 두 사람은 정반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카도 눈을 문지르며 얌전히 선생님을 따라온다
"당장 치료하자. 어땠어? 싸움"
"다시 생각해봐도, 나기쨩과는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걸으며 미카는 조용히 투덜댄다
"하지만?"
"하지만――응. 뭔가 개운하다. 진작에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있잖아 선생님"
미카는 선생님의 코트 자락을 잡고 멈춰선다
"역시... 내가 틀렸지?"
확인하듯 물어온다
지금 그녀가 원하는 말은――
"그렇지. 생각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행실은 여지없이 틀렸어"
꼭,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한 것을 말하자 미카는 만족스러운 듯, 하지만 애달픈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말이야"
"미카씨-잇!!"
긁힌 방울같은 외침이 들리고 미카와 선생님은 돌아본다. 그곳에는 나기사가 쥐어짜듯 외치고 있었다
"제, 제가 가고 싶은 대학!!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는 고백을 듣고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한다
"그래도, 미카. 틀린 걸 인정하면 이렇게 마주해 줄 상대도 있어"
"그럴...까?"
"그래 왜냐면 지금도 마주보고 있잖아"
그리고 잠시 웃음을 터뜨리며, 미카는 대답하듯 소리쳤다
"나기쨔~~앙!! 다음에 또 만나~~~~!!"
이리하여 외출 첫회부터 현 트리니티 최고 권력자와 시비를 벌인 초우량 죄수 미소노 미카
당연하지만 출소까지의 일정이 조금 길어지게 됐다
"으... 모처럼의 외출인데"
"운동은 됐잖아. 그리고 폭력은 좋지 않아"
"그런 얘기가 아니고, 말리지 않았잖아!... 아야야야야!"
"그치만 우리 문제라고 하니까"
간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카는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았다
미카가 무릎베개를 받으며 그에게 붙어 있어서 인지 간수의 표정은 무척 미묘한 것이었다
"저기... 선생님. 고마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출소할 수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 이번엔 내가 무릎베개 해줄게?"
"와―아"
"국어책 읽기냐고~ 나,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데?"
"기쁘구나~"
"더 심해졌잖아"
"죄수번호 340. 그 면회인. 감옥에서 꽁냥대지마"
"네~에" "꽁냥대지 않았어"
그 사건 이후, 나기사는 가끔 면회를 오게 됐다
"나기쨩~ 여기 모르겠는데"
"정말... 어쩔 수 없네요... 그건 말이죠"
내용은 오로지 공부에 관한 것
거의 그 화제밖에 안 하는데 두 사람은 예전처럼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수능이 몇 주 남지 않았다
나기사의 가르침이 능숙했던 탓일까, 아니면 마음에 품을 앙금이 없어진 탓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미카의 성적은 합격권 안까지 한 걸음 남았다
그리고 수능 당일
특례로써 감옥에서 수험하게 되어, 선생님의 감독 밑에서 미카는 펜을 놀리고 있다
그녀가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은 며칠 전에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
―
"이야~ 긴 것 같으면서 짧았네!"
"그거 시험 끝나고 하는 대사네. 네 C판정"
"어, 어라~ ...?"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나눴다
"출소라든가 수속절차는 B판정 정도니까 안심하고 수험해"
"아하하, A가 아니구나. 있잖아 선생님"
미카가 부르며 얼굴을 든다
그 표정은, 연행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근심을 띤 것이었다
"――곧 있으면, 헤어지겠구나"
"미카?"
"그렇잖아? 지금까지 나와 선생님이 함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석방 시켜주기 위해서잖아. 그게 끝나면 이 관계도 끝이겠지
"... 그렇지 않아. 졸업해도, 샬레에는 놀러와"
"갈 리가 없잖아. 나 전과자라구? 주변 아이들이 그걸 용서할 것 같지 않아"
"모두 이해해준다고는 확실히 말하기 어렵네"
"아즈사쨩에게 들었는데 이거 평판이 좋지 않은 거지? 그러니까 내가 트리니티를 나오면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래, 그런가"
"아하하, 선생님이 왜 우울해해~"
선생님이 어두운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미카는 황급히 말을 쏟아낸다
"좋은 일이잖아. 어둡고 눅눅한 감옥과도, 나같은거 하고도, 귀찮은 일하고도 안녕인거니까"
"'나같은거'라거나 '귀찮은일'같은 말 하지 말아줘"
미카의 경솔한 발언에 선생님은 눈살을 찌푸렸다
"...읏. 정말~ 선생님 화난 얼굴 무서우니까 그만하자? 미안해? 이상한 말 해서. 하지만 정말 그만두는게 좋을 것 같아. 좋을 일 없으니까"
"다시 쿠데타 미수 저지를 수도 있고 내가 지켜봐야지"
"여기까지 보살핌 받아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선생님은 좀 더 마음대로 사는게 좋을 것 같아. 어른 역할은 좀 잊고 자유롭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
――
"지금도 충분히 제멋대로 살고 있는데 말이지..."
그만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미카가 "무슨 일이야?" 하는 시선을 보내오지만 이내 시험지로 시선을 돌렸다
펜의 움직임을 보면 좋은 상황인 것 같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팔짱을 끼고 다리도 꼬고 선생님은 생각을 계속한다
일년 내내 그녀를 지탱했다
기뻐하는 얼굴도, 화내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웃는 얼굴도 다 봐왔다
그게 사랑스러워서, 파란 하늘 아래서 더 그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증오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인생을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 이 관계는 끝을 알리려 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휴식시간 중 티파티에 고용됐던 테라스에 방문했다
휴식이라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면 집중이 끈길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장소의 초이스는... 무의식적일 것이다
『헤에~ 선생님이란 건 이렇게 생겼구나. 별로 우리랑 다르지도 않은데?』
생각해면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날 선생님은 에덴조약과 트리니티에 얽힌 소동에 연루되게 되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누구의 편이야?』
『게헨나가 미워... 그것 뿐이야』
단 혼자서 세계를 적으로 돌린 소녀와 싸우고
『......바이바이』
한 번은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어서
『소원은... 나의. 지금의 소원은...』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생각해보면 길고 먼 길이었다
2인 3각으로 산과 계곡을 넘어왔다
그 길도 슬슬 끝나가고 있다
끝나면 미카와의 2인 3각도 해소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
난처한 듯한 미소도 떠올랐다
"나는... 그 아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걸까. 미카는 어떠려나?"
"어머? 선생님 아니신가요?"
말을 걸어와 돌아서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기사가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기사..."
"오늘은 확실히, 미카씨의 수험일인데. 감독하셨던 것 아닌가요?"
"잘 알고 있네. 고마워"
"......당연하죠. 소중한 친구의, 소중한 날이니까"
부드럽고, 꾸밈없는 미소를 나기사는 띄운다
"그런데 왜 이곳에? 시간이 여유로우신 것 같은데요"
"...사실은 고민이 있어서. 괜찮다면 들어줄래?"
가능한 짧게 지금의 심경이나 미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동안 나기사는 턱에 손을 얹고 조금 궁리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미카는 뭘 원하는 걸까"
일방적인 이야기를 다 듣자 나기사는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그건――"
――
―
"거기까지!! 필기구를 내려놓도록!!"
"...후우"
시험 전과목이 끝났다. 미카는 해낸 듯한 얼굴로 펜을 책상에 굴린다
"어땠어?"
"...모르겠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그런가, 수고했어"
답안을 회수하여 간수에게 넘긴다
앞으로는 어떻게든 될것이다
"선생님, 이거 떨어지면 나 어떻게 될까?"
"다시 1년 감옥이네"
"와―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저기 미카. 부탁이 있는데"
"뭐~?"
호박색의 눈이 「무슨 일이야」하고 향해온다
"미카가 만약 시험에 합격한다면, 한가지 내 부탁을 들어줬으면 좋겠어"
"어~? 그거 보통 거꾸로잖아 내가 말하는 거야"
"나도 한해 열심히 했고, 내 마음대로 하라고 미카도 말했었잖아"
자신의 말을 꺼내자 미카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우으... 부, 부탁이란게 뭘까? 그... 내용에 따라서는 내 각오가 있다고나 할까...?"
"당일에 기대해"
"에~!? 가르쳐줘도 되잖아!"
그리고
봄이 조금 왔다 추위에 지지 않고 벚꽃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뚜벅거리는 소리와 또각거리는 소리가 나란히 걷는다
"위험해... 엄청 긴장돼. 번호 있을까..."
"쿠데타 때 하고 비교하면 어느 쪽이 긴장돼?"
오늘은 드디어 합격 여부 발표날
짖궃은 농담의 답례라는 듯 미카는 선생님의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정말~ 상냥함이 없네"
"기억나? 미카가 합격한다면..."
"알고있다니까― 이상한 부탁은 그만둬?"
사람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 있다. 이미 번호는 붙어 있는 것 같다
"갈까?"
"기다려, 선생님!"
걸음을 옮기려던 그의 손을 미카는 잡아당겼다
"뭐?"
"결과를 알기 전에, 전할 말이 있어"
앞으로 뛰쳐나온 미카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인다
"1년간... 신세를 졌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은 나의 은인이야. 정말로, 고마워요"
"아니, 천만의 말씀"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환했다"
"하지만 말이야 ―― 여기서부터는 이제... 혼자서도 괜찮아"
그것은 합격 여부 확인의 말일까. 아니면, 앞으로 미래의 일인가
아니... 둘 다 겠지
"이제 혼자 걸어갈 수 있으니까... 어느 쪽이든 오늘이 이별이야"
"......"
"외롭지만 말이야, 서로를 위해서 그게 좋은 것 같아"
"...결과. 보고와"
"...응"
미카는 몇 번 뒤돌아보고 달려갔다
인파에 섞여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선생님. 그건―― 사랑이라는 거잖아요"
수험날 나기사는 선생님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사랑..."
"속된 말로 하면, 연애감정이라고 할 수 있죠"
"설마, 교사가 학생하고..."
"적어도 미카씨는 당신을 매우 아끼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을 떠나려고 해요"
"무슨 소리야?"
미카가 트리니티나 게헨나를 무너뜨리려 했던 악인이라는 이야기는 키보토스 대부분에 알려져 있다
그런 그녀와 키보토스 제1의 권력을 가진 선생님이 계속 곁에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틀림없이 선생님은 악담을 듣겠죠, 많은 오해도 낳을 거에요. 그것은 그녀에게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행복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 행복의 정체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이 더럽혀져... 하물며 나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 그렇다면 떨어져 지켜보는 것이 행복은 지켜진다, 그래요. 미카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선생님은 그녀에게 존귀하고 둘도 없는 상대에요"
"...이렇게 서투른"
"그렇네요. 뭐어... 저도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나기사의 말에 분명 거짓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한번 세계를 뒤집었으니, 한 번 더 뒤집어도 좋을 텐데요. 선생님"
나기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을 마주했다
"혹시 그 아이에게 마음이 있다면, 조금 손을 잡아주시겠어요? 그리고―― 세계의 적이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
반짝이는 소우주의 헤일로가 멀리 보인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로 이쪽으로 왔다
미카가 인파를 빠져나온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이쪽으로 달려온다. 점점 시야에서 커진다. 표정은... 지금 당장 울 것 같은 얼굴
"결과는!?"
"......읏!!"
대답도 하지 않고 감속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대로 선생님 품으로 쿵, 하고 뛰어들어왔다
"미카!!"
"――해냈어. 합격, 하고있었어...!"
깨물듯이 미카는 중얼거렸다
"선생님, 나 열심히 했지!? 잘해냈지!?"
흥분한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선생님은 다정하게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그래 잘했어"
"선생니임~~~!!"
"축하드립니다 미카씨"
잘 알고있는, 기품있는 목소리가 들려 돌아본다
그곳에는 나기사와 ―― 휠체어를 탄 세이아의 모습이 있었다
"나기쨩하고... 세이아,쨩?"
"여어 미카, 오랜만이네. 그리고, 축하해"
"에... 으응!? 아, 아하하"
여기서 세이아를 만날 줄은 전혀 몰랐는지 난처한 듯 웃는다
"사과하고 싶었지? 좋은 타이밍 아니야?"
"선생님!? 아니 그래도, 이렇게... 타이밍이!!"
"미카의 소원이야. 지금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허둥지둥하던 미카지만 그 한마디를 듣고 눈을 번쩍 떴다
"『내 소원은 다시 티파티 두 명과 평범하게 차를 마시고 싶다』죠?"
"...응. 그래... 그랬지"
고맙다, 고 속삭이며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서 나기사와 세이아를 마주한다
"사과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정말 미안해!!"
힘차게 고개를 숙였다. 자세히 보면 쥔 주먹도 무릎도 떨리고 있다
나기사와 세이아는 얼굴을 마주보고, 어깨를 들썩였다
"저는 이전 일로 알고 있으니까요. 세이아씨 부디"
"아아, 확실히 주먹으로 이야기를 나눴었던가"
"세, 세이아쨩!? 좀 더 할 얘기같은거 없나요?"
"후후... 그렇군. 미카, 제안이 있네만"
세이아의 부름을 받고 미카는 얼굴을 든다
"괜찮다면 지금부터 셋이서 차를 마시지 않겠나?"
"어...그, 그러니까"
"나는 말이지, 좀더 서로를 마주봤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지금도 무엇이 자네를 흉행에 몰아넣었는지 모른다... 나도 자네도 나기사도 서로가 보이지 않았어"
휠체어를 타고 미카쪽으로 다가가 멀리 설치되어 있는 둥근 테이블을 가리킨다
"저 아담한 테이블 같은 건 어떨까? 생각해보면 티파티 테이블은 ―― 서로의 얼굴을 보기엔 너무 멀어"
"세이아, 쨩"
"용서한다고는 하지 않았어. 그건 이제부터 네 얘기를 듣고나서. 괜찮을까 선생님?"
세이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미카의 등을 민다
"다녀와"
망설이는 듯 했지만 미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과 테이블로 향했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미카의 수험날, 나기사에게 들은 말이 생각난다
어느 쪽이든 선생님과 미카의 관계는 오늘로 끝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까, 아니면 오늘로 이별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러니 이후엔... 어떻게 잘 전할까?
해가 기울어질 시간이 되어 세 사람은 나란히 돌아왔다
"히끅.. 우으... 우우......"
"나기쨩 엄청 울잖아... 흑..."
"후후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 사람 모두 눈을 붉히고 코를 훌쩍거렸다
"어땠어? 세이아"
"그렇네. 일단은... 또 한가할 때 모이자고 얘기가 됐어"
눈이, 녹았다
세사람 사이를 얼리던 차가움은 이제 없는 것 같다
"이쯤에서 우리는 떠나겠네. 이후엔 젊은 두분끼리"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히끅"
그렇게 말하며 세이아와 나기사는 떠났다
"어떻게, 통하게 됐어?"
말을 꺼내자, 코를 훌쩍이며 미카는 수줍어한다
"아? 그건... 티파티의 극비정보니까"
"그래"
손을 내밀고「돌아가자」고 미카에게 눈으로 말을 건넨다
그러나 웃은 채 미카는 손을 잡지 않는다
"왜 그래?"
"...에헤헤, 잡을 수 없어. 왜냐면 오늘로 헤어지고"
"미카"
"이제, 난 괜찮으니까. 다른 곤란한 아이에게 가줬으면 좋겠어"
실없이 웃는 미카에게 약간의 초조감을 느낀다
"도망가는거야?"
"잠ㄲ... 선생님~ 눈이 무서워. 눈이. 도망간다는 게 무슨 얘기?"
"미카랑 같이 있으면 나까지 피해를 입으니까 피하는 거지?"
나기사의 말이 맞았는지 미카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한 말을 한 것은, 나기쨩일까... 그럴지도"
"새삼스럽게, 벌써 1년 가까이 2인 3각 해왔거든... 그러니까"
"그렇지만 이미 골을 해버렸잖아?"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노을 하늘에서 무수한 하얀 입자들이 떨어져 내린다
"내가 싫어?"
"너무한 얘기네. 정말 좋아해, 선생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선생님은 말야. 분명 뭔가 특별한 힘이 있을 거야. 그건 지휘력이나 두뇌같은게 아니라, 뭐라고 할까... 그래, 검은 기운을 씻어내는 힘일까?"
"그런걸까"
"검은색이었던 내가 하는 말이야? 분명 트리니티뿐 아니라 키보토스에는 가득히 나 같은 게 숨어 있을 거야. 선생님은 그런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러면 우리의 지난 한 해는 '틀리지 않았다'고 모두 알아줄 테니까"
"미카는 이제 어떻게 할거야?"
"나느은~ 봐봐? 나기쨩도 붙었으니까 둘이서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를 엔조이! 할테니까 괜찮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여기서 헤어지자, 응?"
또각하는 소리와 함께 미카는 몇 발짝 물러선다
"탈주할 지도 모르지"
"후훗. 그런 거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선생님 얼굴에 먹칠을 할 정도라면 내 헤일로를 쪼갤거라구"
"있잖아 미카, 그러고보니 나보고 내 마음대로 살라고 말했었지, 어른의 역할은 잊으라고"
"어, 아. 으응, 말했을지도"
"그래서, 미카가 합격했으니 나에게 포상주는 약속도 유효하겠지"
"아, 아하하~ 뭔가 굉장히 싫은 예감...!"
뚜벅, 뚜벅 미카가 달아난 만큼의 걸음 수를 채운다
"서, 선생님?"
그녀에게 더 가까워진다
"와, 와~오. 저, 저기, 가깝지 않아?"
이제 몸이 닿는 거리.
선생님은 그녀의 몸을 껴안고, 그리고
"보상으로... 나는 미카를 원해"
"어, 어어!? 으응!?"
껴안고 억지로 입술을 빼앗았다
"......!? ~~~~ !!"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몸부림치던 미카
그러나 사태를 이해하자, 천천히 선생님을 떼어냈다
"...푸하아! 선생님, 뭐 했는지... 이해하고 있어?"
"나는 ―― 강하게 살아가는 네가 좋아"
"윽!!"
숨을 들이쉬던 미카가 놀라 얼굴을 붉힌다
"약점을 파고들어 속인다거나 나이팅게일 같은 마음인 게 아니야 아침노을 속에 씁쓸한 얼굴로 떠난 네 얼굴이 계속 뇌리에 남아 있었어"
"......"
"처음엔 후회인 줄 알았어. 너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었어. 난 그때부터 쭉 너에게 끌렸지"
선생님의 고백을 듣고 미카는 횡설수설 외친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정말 알고 있는거야!? 나 전과자라구? 테러리스트라구??"
"그래도 이제부터는 바르게 살겠지"
"그럴... 생각이지만. 아, 그리고! 응! 나 아마 가볍지 않을거야!? 속박은 절대 무리일거고!?"
"견뎌낼게"
"아, 아우... 게헨나에 대해 또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건 나기사와 세이아와 함께 말린다"
거절하는 이유가 튕겨나갈 때마다 미카의 눈썹은 점점 처지고 얼굴도 더 붉어지고 태도는 시들해져 간다
"... 동정 같은건 아니, 지?"
"처음엔 그랬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네 앞길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
"읏... 반칙이잖아.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선생님은 미카에게 손을 내민다
"너와 함께 하는건 많은 단체와 학생들의 반감을 산다고 생각해. 그러니 내 편을 원해―― 미카, 나와 함께 세계를 적으로 돌리자"
내민 손을 미카는 ―― 잡는다
끌어당겨, 껴안고, 늘어졌다
"배신하면, 용서 못해? 나, 나도 말야. 선생님, 예전부터 계속..."
그로부터 몇 달 후
어두컴컴한 검은 돌로 된 회랑
기묘하게 울리는 힐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올라간다
설레이는 기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진다
올라갈수록 차가워진 공기가 열기를 띤다
묵직한, 커다란 검은 문을 밀어 젖히고...
시야에 펼쳐진 것은 온통 푸른 하늘
그리고 미소지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녀를 매우 좋아하는 사랑하는 아군의 모습.
"에헤헤... 선생님 야호~~~!!"
손을 흔들며 달려간다
분명 이젠 괜찮아. 미움보다, 행복이 더 커져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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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좀 줄 수 있음?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6528327


아이고 잘보겠슴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