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M #얀데레 #미요 #리츠
원본 by あおきみど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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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4>
<1>
“저,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해 질 녘의 관람차.
승객은 남녀 두 명이라는 달콤한 상황.
“선생님은 교사잖아요. 아이인 저희가 모르는 걸 가르쳐주는 어른이잖아요.”
“미, 미요……?”
그래, 달콤해야 한다.
그야말로 연애 소설 같은 상황.
그런데 어째서일까.
곤돌라 안은 심상치 않은 냉기로 가득 찬 것만 같고,
『긴급 정지했습니다만, 위험은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은 무언가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탄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선생이란 먼저 태어났다는 뜻이고, 당신도 한 명의 연장자잖아요……. 그러니까─”
미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곤돌라가 흔들린다.
선생은 뒤로 물러나려 하지만, 좁은 곤돌라 안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혹시라도 실수로 튀어 나가 버리지 않도록 미요는 그의 다리 위에 올라타,
양 손목을 조금 부드럽게 억누르며 동요로 떨리는 그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연장자로서 가르쳐주지 않을래요? 사랑이란 어떤 기분인지.”
<2>
─연애란 둥실둥실하고, 달콤하고, 반짝반짝한 것.
자신이 로맨스를 잘 쓰지 못하는 건 분명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거야.
마음 한구석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은?’
타자기의 키가 딱딱하고 무겁게 튀어 오르는 소리가 고요한 방에 울려 퍼진다.
그토록 좋아하건 타건 음이 귀에 거슬리게 느껴져, 와일드헌트 학원 2학년인 사쿠라이 미요는 손을 떼고 타자기가 뱉어낸 종이를 집어 들었다.
“…아니야. 이런 게 아니야.”
자신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소중히 품어왔던 비장의 이야기.
그것을 종이 위에 옮겨 적었는데도 미요의 마음은 전혀 설레지 않는다.
식어버린 도시락을 들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출력된 글자들을 눈으로 좇으며, 소녀는 메이플 옐로 빛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목소리와 모습이 곧장 떠오르는 그 사람.
『안녕 미요. 집필은 순조롭니?』
가끔 이 학원에 찾아오는 하얀 코트의 어른.
둘이 걷고 있으면 평소답지 않게 들떠버리게 만드는 사람.
사소한 망설임이나 깨달음조차 공유하고 밝히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람.
『에이~ 아직 작품은 안 보여주는 거야?』
『다, 다 되면 보여드릴 테니까요……!』
그런데도 중요한 부분은 어째서인지 비밀로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람.
아주 조금.
아주 살짝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 것 같았다.
전보다 훨씬 둥실둥실하고 달콤해서, 침대 위에서 읽다가 발을 동동 구르게 될 만한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째서인지─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이 답장할지 말지로 한 시간 가까이 고민하는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미요는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면…이러지 않을 텐데…….”
─얼마나 가볍고 얕은 호의인가.
자신이 쓴 문장에 대한 자괴감을 미요는 간신히 집어삼켰다.
진심으로 상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동태를 끊임없이 살피게 될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만날 구실을 만들어낼 것이다.
모르는 여자아이와 다정하게 지내고 있으면 가슴 속이 왠지 답답해져서 심술궂은 소리 한마디쯤은 내뱉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곁을 걸으며 자기 새끼손가락과 그의 손가락이 스치는 순간만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적어도 미요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종이 위의 주인공은 추호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지 않다.
움직임도 발언도 마치 사랑이라는 관념 자체에 도취한 듯한 것들뿐.
지금의 내가 틀린 걸까.
아니면 이 이야기를 구상했을 때의 내가 틀렸고…….
진짜 사랑은 지금 그녀의 속마음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숨이 막히고, 탁한 초조함에 가까운 충동일 뿐인 걸까.
사랑의 정체는─범죄 소설과 그 근원이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사랑이란…도대체 뭘까요……?”
돌아오는 것은 정적뿐.
그녀의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작이야? 그거!”
─여야 했는데,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엣.”
“으응~?”
라임색 머리카락.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한 석재 냄새.
동글동글한 진녹색 눈동자.
우스바 리츠.
미요와 같은 특수교역부 소속인 친구가 어느새 곁에 와서 의아한 듯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으와아아아?!?! 어, 저기! 이건 그게, 아니야, 릿짱……!!”
반년 전 기숙사에서 데스 바퀴벌레 ‘리키 블루’와 조우했을 때와 맞먹는 성량으로 미요는 절규하며 원고를 숨겼다.
귓가에 큰소리가 울렸는데도 리츠는 태연한 얼굴로 미요를 올려다보았다.
“보고 싶다~ 미요 짱의 글!”
등 뒤로 원고를 숨기며 구겨버린다.
리츠는 몇 안 되는 미요의 문장을 칭찬하고 즐겨주는 상대다.
평소라면 조금 두근거리면서도 그녀에게 초고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아니, 지금이기 때문에 망설여진다.
우스바 리츠라는 친구는 순수하고 거짓이 없으며 직관이 뛰어나다.
만약 지금처럼 어중간한 망설임을 품은 상태로 쓴 것을 보여준다면…….
그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런 미요의 망설임을 감지한 걸까, 리츠가 눈을 조금 가늘게 떴다.
“……? 기운이 없네?”
“아니야…그런 거.”
웃음이 경직된다.
그녀와는 길고 깊은 사이다.
어설픈 얼버무림이 통할 관계가 아니다.
후유를 상대했다면 적당히 넘겨버렸겠지만, 리츠에게는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취해야 할 최선의 행동은─
이럴 때만 일말의 막힘도 없이 너무나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사고 회로를 저주하며, 미요는 솔직하게 고민을 토로했다.
“실은. 좀 곤란해하고 있어.
조금…사랑이라고 할까, ‘좋아한다’는 기분을 잘 모르게 돼버려서……”
“어~ 그래?”
“응. 그렇다니까……. 하아~~~~~”
요점만 추렸을 뿐이지만 마음속의 안개를 뱉어낸 덕분인지 가슴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미요는 의자에 다시 앉아 책상에 몸을 맡기고 타자기를 끌어안았다.
“난 미요 짱의 글, 좋아해! 폭신폭신해서 행복한 기분이 드니까!”
“고마워, 릿짱…….”
맞다.
연애 소설은 좀 더 둥실둥실하고 달콤하고 반짝거려야 한다.
그러니 실제 연정도 그래야 한다.
좀 더 달콤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기분이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마음을 추하게 녹여버리는 이 감정의 정체는…….
더 이상의 생각은 피하며 미요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으음~ 미요 짱이 모른다면 나도 모를지도.”
의자를 가볍게 끌어당겨 옆에 앉은 리츠는 어쩐지 너무나 하얗고 깨끗해 보였다.
“후후…그렇지 않아. 릿짱은…분명 알 거야. 하지만 나는……”
─나는 릿짱과 달리, 나쁜 아이니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면 모든 게 끝일 것만 같아 미요는 입을 막으며 생각을 묻었다─그런데.
“으음~ 그럼 선생님은?”
“에엑!?!?”
센치함에 젖어있던 미요는 리츠의 말에 깜짝 놀라 튀어 올랐다.
“따, 딱히 선생님은 아, 아무렇지도……!”
“?”
리츠가 곤란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고 아차 싶었던 미요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지레짐작이었던 모양이다.
후유가 이 자리에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뼈저리게 느끼며, 미요는 리츠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입에 담았다.
“저기…릿짱이 말하는 건 ‘선생님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뜻, 맞지?”
“응!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알고 있을 거야~”
그녀의 말에 호응하듯, 자신의 검고 차가운 사고가 소곤소곤 속삭여온다.
“그래…물어보면 되잖아요. 그 사람에게”라고.
그 사람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는 거니까, 그 사람에게 물어봐도 되잖아, 하고.
이상한 건 지금의 나인지, 아니면 예전의 나인지.
물어볼 거라면 원인 제공자인 선생님에게 물어봐야지, 하고.
“……”
“미요 짱?”
타자기로 시선을 돌린다.
‘…이런 검고 끈적거리는 충동이 사랑일 리…없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같은 정신 상태로 제대로 된 연애 소설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역시 어떻든 간에 쓰고 싶은 것이다.
그 둥실둥실하고 반짝거리고, 달콤하고 간질거리는 다정한 세계를.
미요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딱 선생이 와일드헌트에 와 있을 타이밍이다.
하지만 자신을 만나러 올 기색은 없다.
요즘 항상 이렇다.
애초에 그가 만나러 와주었다면,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진흙탕처럼 탁하지 않았을 텐데.
“…….”
만약 오늘 마주친다면, ‘온화한’ 방법으로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 상담해 보자.
미요는 그렇게 마음먹고 타자기를 낑낑대며 들어 올렸다.
“릿짱 말대로, 다음에 선생님께 여쭤보려고 해. 그러니까 오늘은 돌아가자.”
“응!”
일단 기분을 전환하고 미요는 방을 나섰지만─결국 그날, 선생은 만나러 오기는커녕 연락 한 통 주지 않았다.
<3>
─캄캄한 방 안, 스마트폰 불빛만이 반사된다.
식어버린 마음으로 미요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잊으신 건 아니겠죠, 선생님…저에게 악인의 소질이 있다는 걸…….”
검은 자아가 ‘플롯’을 가르쳐준다.
이전에는 억눌렀지만, 이번만큼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그야─오늘도, 엊그제도, 그저께도.
지난주도,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그전에도, 그전에도, 그전에도, 그전에도…….
나를 만나러 와주지 않은 선생님이 나쁜 거니까.
별로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외출 자체는 선생만 있다면 간단히 할 수 있고, 선생은 분명 미요의 행동을 읽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노후화가 진행되어 자주 멈추곤 하는 관람차가 있다는 유원지 소식을 들었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고 무대와 로케이션이 갖춰져 있다면, 상황은 소녀의 손바닥 안에서 손쉽게 굴러간다.
취재하러 가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미요를 데리고 와일드헌트 밖으로 나섰다.
유원지가 무대이니 필요할 거라며 티켓을 내밀어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어트랙션 대기 시간에 잠시 자리를 비워 안전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관람차를 조작하는 것도 간단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왠지 단둘이 낡은 관람차라니, 연애 소설 같네요……?”
“확실히 그럴지도.”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그와 나란히 앉아 탔던 회전 컵이나 롤러코스터 쪽보다 관람차의 조작 쪽에서 더 안정감을 느꼈던 것.
‘후후…….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을 때보다 범죄에 가까운 짓을 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다니…….
역시 저, 이상한 애잖아요…….’
역시 마음은 둥실둥실, 두근두근, 반짝반짝하고 달콤하기는커녕, 고요하고 끈적거리며 번뜩이는 숨가쁨 그대로였다.
그렇게 플롯대로 관람차는 멈췄고, 미요는 퇴로 없는 하늘 위 상자 속에서 선생을 몰아넣었다.
‘요즘 과식하지는 않았나, 무겁지는 않을까.’
그런 뜬금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가운 마음으로 선생의 동태를 살피며, 질척이는 충동에 몸을 맡긴 채 그의 몸을 구속한다.
“좋네요, 관람차……. 연애 소설의 무대로 딱 맞아요.
전망도 좋고, 단둘이 있을 수 있고…… 밀실이라 도망칠 수도 없으니까요.”
“그 말투만 들으면 밀실 살인 사건 로케이션 같네.”
처음엔 동요하던 선생은 의외로 금방 안정을 되찾고 지그시 소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미요가 멈춘 거야?”
“글쎄요…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시 냉랭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흐른다.
하지만 이제 멈출 수 없다.
고작 몇 센티미터만 더 몸을 밀착하면 심장과 심장이 겹칠 거리에 선생님이 있으니까.
“만약, 혹시라도요. 제가 관람차를 멈춘 거라면…그건 선생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최근 계속 만나러 와주지도 않고, 메시지도 안 보내주시고…….”
“그건, 바빠서.”
그의 변명에 손목을 쥔 힘을 아주 조금 더 강하게 준다.
“윽.”
“…선생님은 바쁘다는 이유로 학생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 있는 분이군요.
조금 환멸감이 느껴지네요.”
‘환멸당해야 할 쪽은 나일 텐데’라고 속으로 자조하며 소녀는 그를 빤히 바라본다.
하지만 미요가 보기에 그의 눈에는 겁도, 분노도, 실망도 비치지 않는 듯했다.
“…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감정, 미요는 분야상 잘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선생님과 만나고, 친해지면서…사랑이나 좋아한다는 기분을 잘 모르게 됐어요.
둥실둥실하고, 달콤하고, 반짝반짝한 게 사랑일 텐데…그런데…….”
말문이 막힌다.
이 이상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당신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 호의를 전한다 해도 분명 미요의 마음은─.
‘─그걸 알고서 멈출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짓은 하지 않았어요.’
소녀는 실소하며 멈추려던 입술을 움직였다.
이미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멈추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런데. 선생님을 생각하는 저는, 그런 꿈결 같은 기분이 아니라…마음은 보글보글 끓고, 괴롭고…가시 돋쳐 있어서.
당신이 나만 보지 않으면, 싫단 말이에요.”
관람차 안을 조금 전과는 다른 종류의 정적이 가득 채웠다.
심장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있다.
손목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맥박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조금 분하다.
역시 그는 알고 있다.
올바른 ‘좋아함’이라는 감정과, 올바른 ‘사랑’의 형태를. 그렇기에 이토록 차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이런 추악한 마음, 제가 동경했던 연애 소설과는 달라요.
그건커녕 범죄 소설과 다를 바 없다고요. 가르쳐주세요.
이게 정말 사랑인가요? 제가 이상한 것뿐인가요……?”
“미요. 진정해.”
“진정하고 있어요……!
들리지 않으시나요. 제 심장이…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소리가……!”
귀가 타버릴 듯 뜨겁다.
사고는 그 어느 때보다 겉돌고 있는데 입은 술술 움직인다.
대체 선생님은 어떤 대답을 해줄까.
훈계일까.
아니면 차갑게 밀쳐낼 것인가.
그것만큼은 지금까지 연애로서의 호의를 받아본 적 없는 미요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미요는. 연애는 좀 더 달콤한 꿈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
“네.”
“지금 미요가 품고 있는 기분은 그렇지 않으니까…그게 싫은 거야?”
“당연하죠.”
“자신이 소위 ‘평범한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아서…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야?”
“…….”
대답하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미요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노을빛 하늘에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슬퍼질 정도로 덧없었다.
자신의 마음도 저것처럼 맑으면 좋을 텐데.
그 소망과는 반대로 지금의 미요는─
이렇게 낡은 관람차에서 꼴사납게 좋아하는 상대를 저항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갈 곳 없는 마음을 억지로 떠넘기고 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이 싫어진다.
“미요. 나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손을 놓아줄래?”
“…선생님이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시면, 놓을게요.”
“대답하기 위해서는 손이 자유로워야 하거든.”
“……?”
책임을 회피하거나 도망치기 위해 핑계를 대는 느낌은 아니다─미요의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손을 놓아버린다면.
밀쳐지고, 거절당한다면.
이렇게까지 해서 바랐던 답을 얻지 못한다면.
“…….”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 선생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그럼 조건 하나.
내 몸이 미요에게 닿아 있는 상태는 반드시 유지할게.
조건을 어기면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어……. 어때?”
“…뭐든지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미요가 나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무서운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이야.”
“무서……?! 아, 아니요. 이 상황에선…부정할 수, 없겠네요…….”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어쩔 수 없이 미요는 이다음에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 몇 가지 패턴을 읽고, 머릿속으로 플롯을 짠 뒤에 조심스럽게 손을 놓았다.
“이걸로…됐나요.”
“고마워. 미요는 역시…이성적이네.”
“비꼬시는 건가요?”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지만, 선생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항상 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어떻게 하면 효율이 좋아질지,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그런 걸 무의식중에 파악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
“…알고 있어요. 제가…나쁜 아이라는 것쯤은.”
“그렇지도 않아.
정말 나쁜 아이라면…미요는 나에게 패를 다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패, 말인가요?”
“자, 모모톡으로……. 내가 어떤 경로로 와일드헌트에 왔는지 다 파악하고 있었잖아.”
조금 전의 실수를 들춰내자, 미요의 작은 귀가 다시 확 달아오른다.
“그, 그것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 그런 사실을 나에게 알리지 않았겠지. 침묵하는 편이 유리하니까.”
“…윽.”
이 사람은 정말 나를 좋은 쪽으로만 봐준다.
그게 기쁘고, 그런 사람이기에 끌렸다─하지만.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상황은…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폭주?”
“…두둔해 주셔야 하는 타이밍 아니었나요? 방금.”
“아하하.”
샐쭉하게 선생님을 노려본다.
후유가 있었다면 “이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딱 이 상황이네요~ 부장님~”이라며 놀려댔을 것이다.
선생이 말을 잇는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건 사람마다 다르니까…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미요 안에는 ‘아름다운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요.”
“그럼 확인해 볼까.”
“……?”
상정하지 못한, 그리고 플롯에도 없는 대사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선생은 자유로워진 손으로─미요의 등을 감싸 안더니, 이내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 소녀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선생님……? 저기…무엇을…….”
“…….”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미요를 안는 힘을 조금 더 주었다.
‘나, 선생님한테…꼬옥, 안겨서…안겨서!?!?!?!’
겨우 머리가 사태를 따라잡자, 미요는 반사적으로 선생의 가슴팍을 민다.
“저, 저기요. 기쁘긴 하지만…그게……!!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요?!”
“…….”
“뭐라고 대답 좀 해보세요?!”
“…….”
선생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한 채 다정하게 미요를 껴안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진정하라고 말하는 것 같아, 어쩔 줄 몰라 미요는 순순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두근, 두근, 자신의 박동보다 조금 더 큰 심장의 박동이 들려왔다.
아마 자신의 고동도 전달되고 있을 터─그렇게 자각한 순간 너무나 부끄럽고 한심해져서 미요는 꽉 선생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 윽…정말로…뭐라고…말 좀 해주세요.
부끄러워서…두근거려서 죽을 것 같으니까요…….
좋은 냄새가 나네, 라든가.
아니, 감상 말고…아아──,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지난주부터 피부 관리에 더 신경 썼을 거고 미용실도 갔을 거며 액세서리도 새 걸로 사 왔을 것이다.
샴푸도 아껴 쓰던 한정판을 썼을 텐데…….
후회와 수치심, 그리고 그것을 압도하는 환희로 마음이 어지럽다.
“지금. 미요는 어떻게 느껴? 자신의 감정이 추하다고 느껴져?”
“예……?”
“미요의 마음속은 부글부글 녹아내리고, 괴롭고, 가시 돋쳐 있어?”
“…….”
그 질문에 겨우 조금 냉정해진 미요는 그의 가슴에 체중을 맡기고 눈을 감으며 온기를 느낀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들을 느끼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때?”
“…죄송해요. 잘 모르겠어요.”
‘역시 난 나쁜 아이일지도’라며, 미요는 거짓말을 마음속에 감춘다.
사실은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입 밖으로 내면 이 시간이 끝나버릴 테니까.
“…모르겠으니까, 제가 알 때까지…계속 안아주세요. 얌전히, 있을 테니까…….”
“알았어.”
“…그리고. 괜찮으시면…머리, 쓰다듬어 주셨으면 해요. 안심되니까…….”
“응.”
『점검이 끝났습니다. 잠시 후 관람차가 움직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멀리서 안내 방송이 들린 듯하다.
하지만 못 들은 척하며 미요는 그의 품에 쏙 들어간 상태로 눈을 감았다.
─평소와 다르게 다정하지만, 괴로움도 섞인 이 감정에 몸을 내맡긴 채.
<4>
어느덧 해는 완전히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저기…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죄송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지만……. 미요가 그렇게 느꼈다면 사실이 그랬다는 뜻일 테니까.”
폐장 시간이 올 때까지 미요가 모르는 척을 계속한 탓에, 두 사람은 몇 바퀴나 관람차를 계속 탔다.
밖은 이미 캄캄하다.
덕분에 뺨이 붉어진 것을 들키지 않아도 된다며 미요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민은 좀 풀렸니?”
“네……. 아주 조금…이지만요.
지금의 저도, 예전의 저도…전부 틀린 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대답을 듣자, 선생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요는 부분적으로 나쁜 아이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분적일 뿐이라고 봐.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나쁜 부분을 가지고 있어.
완전히 깨끗하고 하얀 사람은 세상에 없단다.”
“그 말투대로라면…선생님도 해당하지 않나요?”
“물론이지.”
어른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긍정한다.
“왜냐면…남의 눈이 없다는 걸 빌미로 학생을 계속 껴안고 있었고, 그 시간이 싫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 저, 저기…표현이……!!”
“자, 돌아가자. 와일드헌트까지 데려다줄게.”
유원지에 왔을 때와는 정반대로 상쾌해진 기분으로 미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앞을 걸어가는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제 탁하지 않다.
지금의 기분이라면… 분명 쓸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름다운 것을 믿는 상태로.
─라고는 끝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사쿠라이 미요라는 소녀.
“그런데, 선생님.”
“응?”
─이 ‘플롯’에는 아직 회수되지 않은 복선이 있다.
아니, 복선이라 부르기엔 거창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노이즈.
미요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거동을 보인 인물이 있다.
그것을 따져 묻지 않으면, 소녀로서도 소설가로서도 납득하고 돌아갈 수 없었다.
“선생님은─왜 저를 안아주신 건가요? 처음부터 지금처럼 말로 설명만 해주셔도 됐잖아요?”
“으겍.”
그럴싸한 분위기를 풍기며, 스태프 롤이라도 올릴 듯한 기세로 이 자리를 떠나려던 선생이 움직임을 멈췄다.
“으겍? 으겍이라니, 뭔가요.”
“아, 아니. 그건…….”
“변명은 됐으니까 들려주지 않으실래요?
글을 쓸 때 참고할 남성 심리로서 들어두고 싶어서요.”
두 사람 사이를 감돌던 간지럽고 따스한 공기가 미요의 압박에 의해 급격히 냉각된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선생을 향해 소녀는 가차 없이 말을 몰아붙였다.
“그, 그런 게 아니라.
미요도 알다시피…진정시키려고, 고민에 답을 내놓을 수 있기를~ 하는 자애로운 마음에서…….”
“흐응. 좋아하지도 않는 연하의 여자아이를 껴안고…달콤한 말을 속삭였다는 건가요?”
“!?!?”
─이겼다.
미요의 안에 묘한 확신이 생긴다.
그와 동시에 슬금슬금 검은 가학심이 소녀의 안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요가 뿜어내는 강력한 프레셔에 완전히 눌려버린 선생은 점점 더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아니 아니, 저기……!!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어째서 그렇게 애매하게 대답하시는 건가요?
저를 좋아하는 건가요?
좋아하지 않는 건가요?
설마…다른 아이한테도 똑같은 짓을 하신 건 아니겠죠?”
역시 달콤하고, 둥실둥실하고, 반짝반짝한 건 무리일지도─미요는 용암처럼 넘쳐흐르는 마음을 덤덤하게 골라내어 화살처럼 선생님을 찔러갔다.
“제…제발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제가 할 소리에요. 저는─좋아하는데. 선생님을.”
“…….”
“…고백…했는데요. 왜…이쪽을 봐주지 않는 건가요…….”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치사하다는 분노가 소녀의 안에서 점점 부풀어 오른다.
사랑은 분명 이런 것이다.
때로는 둥실둥실하고 달콤하고 반짝거리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파괴하거나 상대를 진심으로 상자 속에 가두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마 그걸로 된 거겠지.
미요는 완전히 이해했다─‘확실히 나는 나쁜 아이지만, 이 사람도 만만치 않다.’라고.
악인에게 용서나 자비는 필요 없다.
마음의 정리를 마친 미요는 한 걸음씩 그에게 다가갔다.
“어린애라고 해서…여자아이의 마음을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아요.
진심이 되면…적어도 제가 진심이 되면, 더 같이 있어 주고 꼬옥 안아주지 않으면 만족 못 하니까요.
더, 더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이미 진심인 거 아니신지……?”
“하?”
“죄송합니다…….”
분노가 한계에 도달한 미요는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아 이쪽을 돌아보게 했다.
그러고는 찰나의 순간 주춤하더니─곧바로 그 망설임을 버리고 그의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까치발을 힘껏 들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아주 잠깐 내리눌렀다.
“─레, 레슨비예요. 오늘은…감사, 했습니다…….”
폐장 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똑바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미요는 뾰로통한 얼굴로 화난 척하며, 사실은 그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어 넥타이를 놓아주었다.
선생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
“…왜, 왜 가만히 계시는 건가요.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음…처, 천만에요?”
“그러니까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아아, 정말……!”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것에는 분명 추악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플롯과는 다르게 자신도 상대도 쉽게 제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이해한 사쿠라이 미요가 자신의 마음을 멋지게 글로 옮기거나,
상대에게 기분을 잘 전달하게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웃으며 손을 잡게 되기까지는─아직 시일이 더 필요할 듯 하다.
Fin.
댓글 23

캬

어흐
와 이거 많이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