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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맑은 하늘. 이유 없이 산책을 하며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기분 좋은 맑은 날.
"하늘이 참 파랗네요."
딱딱한 철문을 열고, 복숭아색 머리와 여우 귀를 가진 소녀가 기지개를 켠다.
교복 밑단 사이로 보이는 하얀 피부. 검은 타이츠에 감싸인 가늘고 건강한 다리.
마름모꼴 모양의 궤적을 그리는 군청색 눈동자.
경쾌한 목소리와 표정은 청명한 하늘 아래에 아주 잘 어울린다.
"......"
선생님은 그런 복숭아색 소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시라토리구 교정국'이라고 새겨진 칙칙한 벽에 기대어 우울한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왜 선생님이 여기 계시는거죠?"
복숭아색 소녀─니코는 단 한 번도 선생님을 쳐다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출소일이 오늘이라고 들었어."
"아, 미야코짱에게 들으셨어요?"
니코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웃으며 담담하게 인사하고 그대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왜 혼자서만 출소했어?"
선생님의 물음에 발걸음을 멈추고 소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건... 제가 네 명 중 가장 모범적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칸나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었어."
공안국 국장의 이름을 말하자 소녀의 미소가 금세 싸늘하게 식더니, 그제서야 굳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자신을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다며. 그다음에 세 사람을 석방해달라고."
"...그게 선생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선생님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니코는...'세 사람보다 먼저 편하게 살고 싶다.' 뭐 그런 이유로 빨리 출소하고 싶어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서."
"선생님과 대화했던건 몇 번 안 됐는데...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람의 성격은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잖아. 네 후배들의 말이나 일련의 사건에사 보였던 행동들을 돌아보니 그렇게 느껴졌어."
뭔가 꿰뚫어 본 것 같은 니코는 가느다란 눈썹을 치켜든다.
"아마도 동료를 배려하고, 너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한 후, 선생님은 몸을 숙여 소녀와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었다.
"만약 그렇다면...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어. 혼자보다는 둘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니코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휙, 시선을 돌리며 선생님의 손을 잡지 않는다,
"니코?"
"...왜, 그 사건 때 제가 직접적으로 선생님께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는지 아세요?"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싫기 때문이에요. 유키노 쨩이 말했듯이 선생님 같은 어른이 싫어서요."
적은 짐을 들고 소녀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떠난다.
강한 바람이 불고, 가냘픈 등을 배웅하던 선생님의 시선이 위로 향한다.
거리를 따라 심어진 벚꽃. 그 가지 끝에는 딱딱하게 닫힌 꽃봉오리가 자라고 있었다.
×××××.
며칠 전의 일이다.
"니코만 먼저 출소한다고?"
"네."
일부러 샬레의 집무실까지 찾아온 칸나는 마신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걸 왜 나한테?"
"...교정국에서는 모든 것이 저희의 손 위에 있습니다. 관리도, 통제도 간단하죠. 수감자 중 억울한 사람이 있으면 보호할 수도 있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격리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정국을 나가면 다르다...라는 건가."
"맞습니다. 발키리의 힘만으로는 키보토스의 치안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건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실겁니다."
칸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마주 앉은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먼저 나가는 그 학생을 감시해주실 수 없을까요?"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할거 같은거야?"
옅은 금빛 머리의 국장은 벌레를 물어뜯는 듯이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
다음날.
선생님은 니코가 눈치채지 못할 거리에서 쌍안경과 단팥빵을 손에 들고 소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입에 넣으면 쫀득쫀득한 반죽과 팥소가 입안 가득 퍼진다.
니코는 상점가의 오래된 가게에서 빌린 넝마 수레를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그리고 '유부'라고 적힌 깃발을 세우고, 팩에 포장된 유부초밥 도시락을 열심히 팔기 시작했다.
"으음...꽤 맛있어 보이는 유부초밥이네. 안에 계란말이도 들어있고...꼬르륵..."
옆에 있던 노도카 역시 왜인지 망원경으로 니코를 관찰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애써 무시하며 계속 관찰을 한다. 몇몇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동전을 건네자 니코는 미소를 지으며 팩을 건넨다.
저걸로 번 돈으로 동료들이 돌아왔을 때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많이 팔아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게 많은 양을 만들지 못했는지 두 시간이 지나자 유부초밥의 재고가 없어져 기분이 좋아진 니코는 수레를 끌고 상가로 돌아갔다.
"우우...저도 먹고 싶었는데..."
쌍안경을 벗고 노도카를 보니 침을 꿀꺽 삼키며 아쉬운 듯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일 먹어볼까?"
"응, 응, 응!"
한동안 그런 날이 계속되었다.
니코는 기분 좋게 아침에 유부를 팔고, 노도카는 선생님의 돈으로 그것을 사들고, 선생님은 유부초밥을 한 손에 들고 감시를 계속한다. 밤에는 어딘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지만 평범한 음식점이라 깊게 캐묻지 않고 계속 지켜보았다.
칸나가 말하는 그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봄이 오는 것 같았다.
몇 주가 지났을 무렵.
그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최악의 여우!' 전 총학생회 회장 대행 시라누이 카야의 쿠데타 실행범은 FOX 소대였다!]
아마도 기자가 몇 시간 동안 머리를 굴려서 '재액의 여우'와 비슷한 수식어를 붙였을 것이다. 그 재미없고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은 그저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뉴스 동영상을 우연히 본 선생님은 샬레의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FOX 소대 네 사람의 이미지가 일그러져 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모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칸나의 예견은 바로 이것이었다.
밖은 비가 내릴 것 같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택시를 잡아타고 올라탔다.
"아기여우 공원으로!"
택시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걱정이 기우라면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예상대로라면 어떻게 될까.
"아기여우 공원이라고 하면 손님. 들으셨나요? FOX 소대 뉴스"
"......"
"손님?"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잊고 있었어요."
로봇 머리의 운전기사는 하하하 웃으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린다.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역시 SRT를 해체한 총학생회가 옳았네요. 이런 흉악한 아이들이 정의의 편을 자처하고 있었다니..."
"...흉악하다..."
"그쵸. 게다가 재액의 여우를 잡았다는 건 그것보다도 더 강하다는 거잖아요. 게다가 뭐였더라...토끼 소대?도 농성 사건을 일으켰었죠. 정의가 믿기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네요."
"얼른 샬레의 선생님이 퇴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운전기사는 남의 일처럼 웃으며 유쾌한 목소리가 차내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손님, 거기는 무슨 일로?"
그는 방금 전에 자신이 말한 샬레의 선생님이 뒤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욱 그렇다.
그 아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총을 들었고 그 소란의 배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얀 코트를 단단히 움켜쥐고 선생님은 목이 마른 침을 삼켰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관리 일을 하려고요. 학생들의 편이죠."
택시에서 내릴 때쯤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운전기사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그녀가 유부초밥을 팔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금세 양말에 물이 스며들어 바지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을 텐데 한 걸음 한 걸음이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우타하에게 달리기 편한 가죽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할 걸 그랬나, 지금과는 상관없는 생각만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오늘은 비 예보가 있었으니까 안 왔을 거야....안 왔어야만해...'
니코라는 소녀는 주변을 잘 살피고 비합리적인 행동은 피하는 타입일 것이다.
오늘은 비가 오니까 가게를 여는 것을 포기하고, 뉴스를 보곤 사람이 적은 곳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라며 달리는데 빗소리 속에 소란스런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의 베일이 짙게 드리워져 시야가 좋지 않다.
하지만 안개 낀 세상에서도 벚꽃색 머리의 소녀가 쓰러져 있는 것이 잘 보였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불량배들이 여러 명 있는 것도 선명하게 보였다.
선생님은 망설임 없이 달려가서 쓰러져 있는 소녀와 불량배들 사이로 들어가 팔을 벌렸다.
"뭐야, 너는!"
"그만 좀 해줄래?"
소녀의 분노의 외침은 몇 번이나 쏟아져 나왔다. 겁먹지 않고 상황을 관찰한다.
불량배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총이 아니라 쇠파이프나 방망이...이 비에 제대로 된 총기류는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에 젖은 아스팔트에는 나무조각과 엉망진창이 된 팩, 그리고 유부초밥이 흩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발자국 모양으로 뭉개진 플라스틱 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런..."
"야, 이 사람. 샬레의 선생님이야."
"어? 뭐야, 왜 여기 있는 거지?"
"선...생님...?"
뒤에서 소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나중으로 미루자. 이 상황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부탁이니까. 오늘은 돌아가줘."
"선생님, 너 범죄자 편을 드는 거냐!"
불량배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소녀가 쇠파이프를 선생님의 뒤통수를 겨눈다.
"저 녀석, 정의의 편인 척 하면서 뒤에서 악랄한 짓을 하고 있었어! 우리 같은 불량배를 악당으로 취급하면서! 우리는 좀 시끄럽게 떠들거나 좀도둑질 정도밖에 안 했어. 하지만 저 녀석들은 마을을 통째로 날려버리려고 했잖아!"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그 여우를 심판하는 거야!"라고 외치면서 불량배는 쇠파이프로 나무조각을 마구 때렸다.
"이미 심판이 끝난 후야. 이미 죄를 다 갚았어. 게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고."
"사정이 있으면 마을을 날려버려도 되는 거냐고~~!"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정국에 들어간거야. 판결은 받았어. 이미."
그래서 다시 한 번 돌아가 달라고 불량배들에게 말하지만 그들은 방금 전보다 더 격앙된 표정이다.
"우리 아지트도, 열심히 모았던 무기들도 다 이 녀석들 때문에! 이 녀석들과 카야 때문에 전부 몰수당해 버렸어! 완성 직전의 호네호O사우루스까지 빼앗겨 버렸다고! 복수할 권리가 있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뒤로 시선을 보낸다.
팔을 잡고 있던 니코와 시선이 마주쳤다. 찢어진 검은색 타이츠 사이로 상처가 보이고, 교복은 진흙으로 얼룩져 있고, 얼굴과 목에는 맞은 흔적이 있다.
그 푸른 눈동자는 슬픔과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선생님은 마침내 이전에 느꼈던 기시감을 깨달았다.
처음 만난 미야코가, 토끼 소대가 그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무릎을 꿇고 불량학생의 눈을 바라보았다.
"복수를 원한다면...내가 받아줄게. 벌은 내가 짊어지겠어."
"뭐, 뭐야?!"
"어른은 아이의 행동에 대신 책임을 져야 하니까."
"어이, 장난하냐고!"
분노의 외침이 빗속에 울려 퍼졌지만, 우두머리 학생이 가만히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철제 파이프로 아스팔트에 흩어져 있는 진흙탕을 가리켰다.
"그럼 이걸 먹어. 애초에 저 녀석한테 먹일 생각이었어."
"대신 해주는거지? 선새앵~?"
선생님은 마스크에 가려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아, 안 돼! 선생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한 채 선생님은 물과 진흙으로 뒤덮여 부서진 유부초밥을 집어 들고 잠시 숨을 고른 후 한 입에 쏙 집어넣었다.
"야, 정말 먹어 버렸어!"라는 소리가 들린다. 입안에 진흙탕 맛이 퍼지면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씹히지 않는 자갈과 쫀득쫀득한 쌀의 식감을 견디며 겨우 삼켰다.
"...의외로 먹을만 하네."
웃고 있던 불량배의 우두머리가 노골적으로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발밑에 있던 팩을 세 번 밟고 선생님을 향해 발로 차버렸다.
"그럼, 리필도 해줄게. 맛있지?"
선생님은 약간의 쌀맛과 진흙탕 물맛이 섞인 그것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몇 번이나 토할 것 같으면서 씹고 삼켰다. 기침을 하면서도 쌀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뱃속으로 삼켰다.
"우욱...리필은?"
"말 잘했다...! 그럼..."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입안의 진흙을 닦고 메스꺼움을 참으며 불량배의 우두머리를 보니, 아쉽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며 동료들에게 눈짓을 보낸다.
"쳇, 또 괴롭히러 와주지. 가자!"
불량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를 기다렸다가 선생님은 일어서서 뒤에 있는 소녀를 돌아보았다.
"......"
니코는 길쭉한 여우 귀를 늘어뜨리며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며 그녀의 손에 무기가 없는지 찾아보지만 총도, 물건도 없다.
"설마...저항하지 않은 거야?"
니코에게 달려가 몸에 난 상처를 확인하고 확신한다. 썩어도 SRT의 엘리트다. 아마추어 불량배에게 정면으로 맞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저항이 아니라면 말이다.
"선생님은 상관없어요."
"샬레에서 치료해줄게. 걸을 수 있겠어?"
"괜찮습니다...으윽."
소녀가 고통에 신음한다. 더 이상 비를 맞으면 체력이 더 떨어진다.
선생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니코를 업고 걷기 시작했다.
옷이 젖은 탓인지 그녀의 체온이 등 뒤로 직접적으로 전해져 온다.
"잠, 잠깐 정말...!"
니코는 한참을 버둥거리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윽고 포기하곤 선생님에게 체중을 맡기며 힘겹게 그의 어깨를 잡았다.
"고마워...고마워요...."
샬레의 취침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잠든 니코. 그 이마에 수건을 얹는 미네에게 선생님은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구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손을 내미는 것이 사명이니까요. 사정도 이해합니다...저항하지 않은것 같더군요."
니코의 상처를 보고 미네도 선생님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전투기술에 정통한 그녀가 고작 아마추어 몇 명에게 이렇게까지 상처를 입을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자부심이 강하군요. 그녀는..."
"자부심?"
"네. SRT의 학생은 어떤 일을 당해도 일반인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의지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미네의 말을 듣고 당황한 선생님은 아쉬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구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고마워 미네."
미네가 떠난 후 선생님은 칸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주변도 시끄럽다. 아마도 뉴스에 대한 기자들이 몰려와서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카야의 쿠데타의 진실을 흘려서 이렇게 된 거구나."
"아마도요. 그리고...'
"그리고?"
"그녀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혼자서 출소를 제안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니코의 진정한 목적은 동료들의 생활기반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밝혀질 진실로 인해 시민들에게서 쏟아질 악의를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와서, 공격을 당해도 저항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만...그 전에 저는 그녀의 의지를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잘못된 길을 들어선 자로서의 죄책감은,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덧붙인 칸나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원래는 제가 따로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저도 한 번 길을 잘못 들어갔고, 세상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요."
"...고마워, 의지해줘서."
취침실에서 소리가 났다. 칸나와의 통화를 끊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니코는 열이 나서 얼굴이 붉어지며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 상태는 어때?"
"...별로 좋지 않네요."
선생님은 그녀의 이마에 덮여 있는 수건을 떼어내고 새 수건을 얹어주었다.
"아까 얘기 들었어?"
니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선생님의 손에 있는 물을 받아 몇 모금 마셨다.
"전 카야 전 대행이 FOX 소대를 하나의 도구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마음만 먹었다면 유키노짱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잠시 후, 니코는 고개를 저었다. 귀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어요....아뇨. 못했다가 정답이겠네요...선생님에게도, 후배들에게도 폐를 끼쳤어요. 그래서..."
"─그래서 혼자 FOX 소대의 죄를 짊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그 속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먼저 나를 쫒아냈던거고."
"결국은 또 폐를 끼치고 말았지만요."
니코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나? 왜?"
"...진흙투성이의 유부초밥을..."
아, 생각이 나자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렸다.
"맛있었어. 공짜로 먹었으니까 다음엔 제대로 사 먹어야지."
니코는 슬픈 듯이 웃으며 이불을 덮고 몸을 움켜쥔다. 소녀의 어깨가 떨리고 조용히 흐느껴 울기 시작하자, 선생님은 작은 하얀 손 위을 감싸 안았다.
"내가 도와줄게. 너희들을 더 빨리 막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나도 공범이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니까."
"네..."
"음..."
바닥이 부드럽다. 자신이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선생님은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니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급격하게 의식이 깨어나 벌떡 일어나서 취침실을 나가자 구수한 된장국 냄새와 어디선가 맡았던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겨왔다.
"엥...설마?"
사무실에 딸린 주방에서 냄새가 풍겨오고 있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부엌을 들여다보니 콧노래를 부르며 국자를 들고 있는 니코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주방과 식재료 좀 빌리겠습니다."
"...뭐 하는 거야?"
"이제 괜찮아요. 어제의 보답으로 밥을 해드리려고요."
더 이상 어제 같은 나약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절박하고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파란 눈동자에는 온화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일."
시간은 사람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카야의 쿠데타의 진실이 밝혀지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교정국.
"그거 봤어?!"
레크리에이션실에서 오토기가 흥분한 표정으로 유키노에게 다가온다.
"출소일? 몇 달 후라고 들었는데?"
"아니야! 이거!"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신문을 열어 작은 제목을 가리킨다.
"무슨 일인데, 너희들...어, 이거 니코 아냐?! 먼저 출소한 줄 알았는데, 뭐하는 거야?!"
가까이 다가온 쿠루미가 신문을 들여다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사를 보곤 유키노는 숨을 죽였다.
"'전 FOX 소대 학생, 화재에서 아이 구출'...이네."
붙어 있는 사진 속 니코의 뺨에는 그을음이 묻어있었고, 그녀가 구해낸 아이와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하얀 양복 차림의 남성이 눈에 잘 띄지 않게 찍혀 있다.
잠시 어두운 표정으로 신문을 바라보던 유키노는 조용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우리도 곧 돌아갈게. 니코."
미안하다고 혼잣말을 하는 유키노의 표정은 이전보다 희미하게 맑아졌다.
주변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하늘은 남색과 주황색의 경계가 그려져 있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골목길에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다리셨죠? FOX이츠입니다~"
새로 단장한 수레를 끌고 유부초밥 판매를 마친 니코가 손을 흔들고 있다.
선생님은 겸손하게 손을 흔들며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발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오늘도 매진이야?"
"네. 역시 하루 판매량을 늘리는 게 좋으려나요?"
"괜찮네. 가격 대비 맛이 좋으니까."
"정말요? 그럼 그렇게 해볼까요...매일 드시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 비오는 날 이후 니코는 '할 수만 있다면 남을 돕고 싶다'며 유부초밥 판매와 함께 샬레에 들어오는 잡다한 의뢰를 대행해 주게 되었다.
괴롭힘을 당해도, 비난을 받아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그녀가 해야 할 일, 즉 남을 돕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계속 달려왔다.
"그러고 보니 이거. 니코에게 전해달라 해서."
선생님은 가슴 주머니에서 맡긴 물건을 꺼내어 그녀가 내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종이접기네요. 벚꽃, 인가요?"
"저번에 화재에서 구해준 아이가 전해달라더라."
"귀여워라~!"라고 말하며 니코는 수레를 멈추고 종이로 만든 벚꽃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무언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에게...?"
벚꽃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니코는 종이접기를 펼친다.
거기에는 '구해줘서 고마워요. 언니는 저의 영웅이에요'라는 서툰 메시지와 크레파스로 여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
한동안 편지에 눈을 떼지 못하던 니코는 눈이 촉촉해지는 순간 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는다.
"괜찮아. 솔직하게 기뻐해도."
"...이것으로 저희의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 하지만 그 아이를 구해준 사실도, 그 아이가 고마워하는 사실도 변하지 않잖아?"
촉촉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본 니코는 편지를 소중히 접으며 속삭였다.
"도와줘서...고마워요."
그녀가 가야 할 속죄의 길은 분명 멀다.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길수도 있다.
험난한 길이지만, 그 길만큼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행복을 쌓아갈 수 있다.
그 행복을, 가끔은 나눠주어도 좋을 것 같다.
강한 바람이 불어 선생님이 고개를 들자 거리에 묻혀있던 벚꽃 봉오리가 살짝 열려 있었다.
"...기다리게 했네요. 갈까요?"
"그래."
선생님도 손수레 손잡이를 잡고 두 사람이 함께 밀며 걸어간다.
그 손을 눈치챘는지 니코가 말없이 작은 손을 선생님의 손에 얹었다.
"니코?"
"어, 솔직하게 기쁨을 표현해볼까 하는데...안 될까요?"
가만히, 상냥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선생님은 경직되어 버렸다. 무의식적으로 소녀의 윤기 있는 입술에 시선이 갔다. 그런데 갑자기 니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의 뒤를 가리킨다.
"어라? 저쪽은 벚꽃이 피어있는 건가요?"
"어, 어디!"
뒤를 돌아보지만 주변이 어두워서 찾을 수 없다. 다음 순간 '쪽'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그의 뺨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다.
"니코?!"
"후후, 그래서 말했잖아요? 쉽게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고."
"아니, 그건 그런 얘기가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녀들의 긴 여정을 지켜보는 '공범'인 그도.
가끔은 그녀로부터 행복을 나눠 받아도──
"별로인가요?...전에는 선생님이 먼저 해주셨는데"
"...그 얘기는 여기선 하지 말자. 크로노스 학생애들은 무서우니까."
──좋을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도 새벽은 오는 것처럼, 겨울 역시 언젠가는 봄이 된다. 비가 내린다 해도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것을 가리는 차가운 비바람의 날씨도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하늘로 바뀔 것이다.
댓글 26

니코가 미식이다
유부초밥이 먹고 싶어지는구나
니코니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