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우~"
모두가 잠든 뒤에도 선생이 머무는 개인실엔 불이 켜져 있었다.
학생들의 눈치만 살핀 탓에 일은 완전히 뒷전이었으므로, 심야까지 자신과의 사투를 이어간다.
오랜만에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을 넘겼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어제의 수습이라는 뜻.
그 사실이 지독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평범한 사람들은 노동에 대한 보상 심리로, 무의미한 숏폼 영상이나 툭툭 넘기다 잠에 들 때인데.
목숨을 걸고 마감을 사수한다라... 선생이란 칭호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박살난 주종관계이다.
"끄응......"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도시엔 수탉이 없어도 아침이 참 빠르다.
햇빛에 기력이 회복되긴 커녕 철야의 여파로 천근만근.
전철 손잡이 하나에 몸을 지탱하는 모습은 작두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선생님. 여기 앉아"
친절하게도 백발의 학생이 자리를 양보하였지만 선생은 한사코 거절했다.
"아아. 괜찮아요. 잠깐 졸았던 거니까"
"으응~ 아냐. 어차피 난 여기서 내리니까."
신광장역으로 다다르자 뿔과 꼬리가 있는 학생들이 출입문 주변으로 모인다.
"여기서 G호선으로 환승하면 게헨나로 갈 수 있어."
"게헨나..."
문득 미카가 건넨 경고가 스쳐지나간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속한 학교... 예상 외로 순탄한 인상이었다.
아니, 또 모르는 거지 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으니까.
"선생님... 그... 혹시 말야. 우리 학교가 복구되면, 아니 아니. 선생님이 건강해지면 게헨나로......"
자리를 양보해주었던 학생은 머뭇거리며 말하다가 내릴 타이밍을 놓칠 뻔했다.
"아! 미안! 방금 들은 건 잊어줘-"
게헨나 학생들은 일제히 역에서 내린다.
같은 칸에 있었던 다른 학교 학생들은 혀를 차거나 눈살을 찌푸리며, 게헨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 놓았다.
"에리카."
"흠..."
선생과 짧은 만남을 가졌던 에리카는, 다음에 만나면 할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걷고 있었다.
"에리카?"
"아냐... 그것보단..."
"에리카!"
"으엑!? 아하... 미안 생각 좀 하느라."
"너도 그 문자 보고 출석하는구나?"
"응. 학교회장이 그렇게 애걸복걸하는데 나올 수 밖에 없지."
"전력을 복구했다고 들었는데... 하아~ 보나마나 아수라장이 따로 없겠지?"
"하하... 다 같이 치우면 생각보다 빠를 거야."
"그런데, 에리카."
반짝반짝부 친구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물어왔다. 가볍게 건넬 화제가 아니란 뜻이다.
"혹시 키라라랑 연락 돼?"
"하아~"
벌써 수백번은 받아본 듯한 말에 학교로 가기 전부터 지친다.
"아니... 내가 볼 땐 아무래도 부모님 집으로 간 거 같은데..."
"세상에! 너도 만난 적 없는 거야?"
"그 때 이후론 뭐... 그냥 내버려두자.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으니 충격도 더 할 수 밖에 없잖아."
에리카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눈썹을 구겨도, 아쉬운 마음에 모모톡으로 들어간다.
활동량이 상당해 매주 프사가 바뀌던 키라라의 프로필.
지금은 기본 사진에 배경은 검정색으로 먹칠이 되어 있다.
마치 키라라가 아닌 별개의 인물 같아. 선뜻 톡을 보내기가 꺼려졌다.
***
"하야세양. 어제 밀린 서류 다 끝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철야로 완성한 거군요..."
"이미 끝냈어야 할 일인데요 뭐. 기다리게 해서 오히려 죄송합니다."
여전히 사무적인 선생은 세미나에 드리운 먹구름 같은 존재였고,
다들 침묵을 지키며 본인의 업에만 몰두한다. 학교보단 직장 같은 분위기에 노아는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선생님, 오늘은 이만하죠."
"네?"
"밀린 업무를 모두 해결해서 여유가 생겼습니다. 선생님은 일 대신 다른 활동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노, 노아?"
갑작스런 선언에 당황한 건 유우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의 소동 속에서 쌓인 업무가 고작 하루 만에 처리될 리 없다. 똑똑한 노아라면 다 알고 있을 텐데.
노아는 생각을 읽은 듯 유우카에게 윙크를 건네곤 선생을 바깥으로 안내한다.
"트레이너... 아니,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명명하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연륜이 느껴지는 중사 선글라스를, 건물 내부에서도 고집하고 있는 모습.
첫인상만으로 피로감을 느낀 선생은 팔꿈치를 감싸며 여리함을 뽐낸다.
"트레이닝부의 오토하나 스미레라 합니다. 선생님의 빠른 재활을 위해, 제가 일일 트레이너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신경 써주는 건 감사합니다만... 전 혼자 운동하는 게 좋아서"
"아닙니다. 같이 운동을 하는 동반자가 있다면 동기부여에 플러스가 됩니다. 적당한 백색 소음과 적당한 눈치... 카페에서 집중이 잘되는 이유와 일맥상통."
역시나 저 선글라스를 쓰는 사람들은 불통만 모아둔 것 같다.
"자!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입니다. 피트니스 센터까지 걸어가죠."
그래 다른 운동은 몰라도 유산소는 틈틈히 해주는 편이 낫겠다.
총탄을 피해야 할 상황이 언제 들이닥칠지 미지수니까.
'터벅 터벅 터벅 터벅'
"히익!"
허나 걸어간다는 말과 달리 뒤에서 페이스 조절을 도와주던 스미레의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속도를 늦추면 금방이라도 닿을 만한 거리에서, 무언의 압박을 주었기에 경보로 전환했다.
"잘 수행하셨습니다. 다리를 풀었으니 이번엔 팔 차례죠."
"저기. 미안하지만 수술 이후 후유증으로 오십견이 찾아와서 그런 동작은-"
스미레는 냉혹하게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하으앙~!"
꼴사나운 신음을 내지르며 선생은 녹아내리듯 쓰러진다.
"사용하지 않는 부위는 더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억지로 힘을 짜내야 합니다"
"더는 무리......"
"아, 마침 좋은 파트너분이 오셨군요."
둘만의 피트니스 센터에 휠체어가 조심스럽게 굴러 들어왔다.
"......"
마지막 잎새를 남겨둔 것처럼 가냘프면서도 잃지 않는 나긋한 미소란...
못 다 핀 백합꽃 한송이처럼 사람을 저도 모르게 숙연하게 만든다.
"실례합니다. 스미레씨."
"오랜만에 진행하는 재활이군요. 파이팅입니다. 히마리씨."
오늘의 히마리는 평소 타던 하이테크 휠체어 대신 손으로 미는 수동 휠체어를 타고 왔다.
초천재병약미소녀라며 자화자찬 하지도 않는다.
선생의 긴장을 완화 시키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훗. 오늘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아... ㅇ,예."
이렇게 연약한 소녀도 재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데, 앓는 소리 내뱉을 상황이 아니다.
"자, 시작 전에 근육 이완을 위해 마사지를 시작하죠."
훈련생인 선생과 히마리는 바닥에 앉아 서로의 사지를 보살폈다.
"음..."
앙상하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뼈가 느껴지는 다리이다.
감상에 젖어 있을 동안 히마리는 수줍어하며 입을 가렸다.
"에헤에... 이미 충분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아, 죄송합니다. 절대 그런 의도는-"
"우후후. 알고 있어요. 선생님이 그럴 분이 아니란 것 정도는"
"......"
예상은 했건만, 이 아이 역시 기억을 잃기 전 인연이구나.
천천히 러닝머신을 밟을 동안 히마리는 평행봉을 짚으며 일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후욱. 후욱."
시간이 늘어날 수록 숨이 차올라 사고가 제한되지만, 자꾸만 그녀의 애달픈 표정이 아른거린다.
잠시 시선을 돌리자 스미레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히마리가 보인다.
"저 아케보시 히마리는,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이지만... 누우면 그냥 잡초에요옷~!"
"벌써 컨셉이 풀린 걸까요. 쓰지 않는 신체는 더더욱 퇴행하기 마련입니다. 이 악무세요!"
처음이다. 학생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니, 병실에서 무력감에 의미 없이 보낸 나날들이 기억난다.
"도와드리죠."
"어...어멋!"
만지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보드라운 섬섬옥수다.
용기를 내어 손을 가로챈 다음 일어나기 쉽도록 천천히 다리를 핀다.
"아하...하. 선생님께 폐를 끼칠 심산을 없었는데"
천천히 코스를 이동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떨리는 다리가 앞으로 넘어지려 할 때마다 몸을 밀착 시켜 막아주었다.
그럴 때마다 꿰매고 남은 환부에서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 아이 앞에서 만큼은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무리하게 평행봉을 따라 끝에 도달하자. 선생 역시 체력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털썩'
"끼야앗!"
넘어지는 과정에서 히마리 아래로 선생이 깔린다. 얼마나 놀랐는지 뾰족한 귀가 위아래로 여러 번 왕복한다.
"죄, 죄송합니다!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서 의도치 않게-"
"하하. 괜찮아요. 아케보시양은 가벼우니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히마리는 천천히 자세를 엎드려 선생의 턱 밑까지 몸을 안착 시킨다.
다리가 불편해 굴러서 내려오는구나 싶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녀는 시간이 흘러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 낯뜨거운 구도를 고집한다.
"......"
압박의 면적이 늘어나 솜털 같았던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지만
향긋한 냄새가 진해져서 싫은 감각은 아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 소리가 공명하며 커지자, 환상 속에서 벗어난 히마리는 하찮게 굴러 떨어진다.
"아니잇~! 참! 또 이런, 이런... 결례를 하하... 입이 몇 개라도 모자라겠네요."
옆으로 몸을 기우려 눈을 맞춘다.
눈꽃처럼 하얀 피부에 홍조가 떠오른 모습이 빙수 같아서 자꾸만 눈이 간다.
"항상 휠체어에 의존하는 나머지. 이렇게 동등한 위치에서 타인과 마주하면 뭐랄까... 감희가 새로워서 저도 모르게..."
"그렇군요. 원한다면야... 얼마나 보든 상관없습니다."
"서, 선생님......"
둘이서 로맨스를 찍고 있을 동안 인내심이 바닥난 스미레는 개간지 선글라스를 벗어버리고 호통을 친다.
"휴식은! 세트당! 2분 이하가! 적절합니다!"
"히익! 죄송합니다!"
다시 시작된 지긋지긋한 재활 운동. 허나 감정의 고양 때문일까 전보다 몸에 힘이 더 잘들어가는 기분이다.
각자의 루틴을 진행 중임에도 곁에 있는 듯한 온도감.
히마리는 감정이 앞서버려, 계획보다 이르게 선생에게 제안을 건넨다.
"재활.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훗. 아케보시양에 비하면 별 거 아니죠. 정말 강인하시군요."
"과, 과찬이십니다 하하... 저, 선생님. 이렇게 함께한 것도 인연인데 제가 속한 동아리에 방문해 보시는 거 어떤가요?"
"동아리요?"
분명 히마리처럼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소속된 특수 학급 정도로 이해했다.
그래서 선생은 선뜻 제의에 승낙한다. 속물 같은 말이지만 거기선 신변에 위협이 갈 일이 적을테니...
"본관 3층 끝자락에 베리타스 동아리실이 있습니다. 제가 그 곳의 부장이죠."
"부장이라니. 역시 범상치 않으시군요?"
"꺄하핫. 네! 전 외유내강 타입의 초천재- 아, 아뇨. 그냥 3학년이라서 얼떨결에 음음."
"샤워를 마치는 대로 갈게요."
"네. 전 씻는데 시간이 소요되니 먼저 부원들과 만나 보세요. 다들 선량한 분들이랍니다?"
선량하다라. 분명 팔은 안 쪽으로 굽기 마련이지.
비인가 동아리로서 학생회와 대척점에 있다는 점만으로 얼마나 괴상한 집단인데.
히마리는 친구들에게 너무 관대했다.
"여기인가?"
선생은 베리타스로 도착해 노크를 해보았다.
아무런 답이 없자 조심히 문을 제쳐서 안을 확인한다. 굴러다니는 캔과 말라 비틀어진 스낵들로 보아 버려진 곳은 아니다.
"흐음......."
호기심에 동아리 이 곳 저 곳을 둘러본다.
몸이 불편한 친구들 치고 알뜰하게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게임기에 여러 학습 자료. 코인 채굴기 등등. 명문 학교는 다르구나.
"오."
묘하게 땀내 나는 부실에서 드디어 여성스러운 장식물을 발견한다.
전선 몇 개가 휘감겨 있는 곰인형이다.
'누르면 소리가 나오는 종류구나.'
선생은 곧바로 손바닥과 배를 눌러보았다.
"좋은 아침이야 코타마"
다신 듣고 싶지 않은 불편한 목소리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다. 뼈가 아닌 고막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울림.
"!"
놀라서 뒷걸음질 친다. 이 목소리는 자신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였지만
선생은 등허리에서 느껴지는 끈적한 불길함에 그 자리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대체 뭐지?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된 곰인형이라니. 무슨 악취미인가.
"후우~"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힌다. 분명 과제 같은 걸로 제출했던 작품일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간 것도 합의 하에 넣은 거겠지. 괴팍할 순 있어도 학생 다운 발칙한 창의력이다.
"어라어라! 이게 누구야!?"
"끅!"
마키의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베리타스 부원들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다들 복귀한 선생이 방문한 사실에 들떠 보였으나, 최대한 본인을 억제하고 있다.
"안녕... 돌아와서 천만다행이야. 그런데 여기엔 무슨 용무로?"
"앗! 설마! 기억이 조금 돌아왔다는 클리셰?! 진짜면 나 울어버릴 지도!"
"아하하... 그게 아니라, 아케보시양이 권유해서요. 여기가 베리타스 맞습니까?"
"아케...보시... 양?"
"존댓말은 왜-"
"아, 아아! 히마리 부장 말이구나. 요즘엔 거의 초현상특무부로만 활동해서 헷갈린다니까. 그치?"
"으응..."
치히로가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고 선생을 손님용 좌석으로 인도한다.
'부스럭'
두 손 한가득 책상 위에 있던 과자 봉투들을 모아 쓰레기통으로 던진다.
"좀 치우라고 했지?"
"에헤헤... 그건 하레 선배가 먹은 거야. 확실해."
"아니거든? 난 요괴MAX만 마셨어."
"결국 둘 다 안 치웠잖아!"
살가운 부실 분위기다. 아무래도 특수 학급이란 예상은 단단한 착각이었나 보다.
"......"
한편으론 살짝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이 미친 키보토스에 평범한 학생이란 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니까.
특히 방금 조작했던 자신의 육성이 담긴 곰인형.
만약 합의로 만든 게 아니라 멋대로 목소리를 추출한 거라면...
이런 상상력이 사람을 비겁하게 만들었다.
"잠시만요..."
특히 지금 냉장고 문을 연 학생... 옆구리에 끼고 있는 음향기기가 너무나 수상하다.
"죄송합니다만, 마실 게 이것 밖에 없군요. 입에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
코타마는 한참 동안 고민한 듯 안경에 냉기가 끼어 있었다.
살짝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선생은 잠시 긴장을 내려놓고 에너지 드링크를 받았다.
'찰칵'
그 순간 셔츠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벌레가 붙은 듯한 간지러운 불쾌감에 선생은 곧바로 손을 올려 뒷목 주변을 확인한다.
"엇. 선생님?"
"뭐야 이게...... 허?"
코타마가 설치한 도청기가 걸려 들었다.
기계를 보자마자 정색하는 선생의 모습에 코타마는 중요한 진실을 하나 깨달아버렸다.
선생님은 평소에 도청 당하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기호를 위해 모른 척 눈감아주었단 사실을.
"어... 어어...!"
비틀거리면서 차려준 자리에서 일어난다.
도청 정도야 키보토스에선 장난스러운 일이다.
기껏 해야 화장실에 있는 비아그라 광고 수준의 불법이지만,
과거의 선생이 속해 있었던 곳에선 꽤나 중대한 사건이다.
"선생님? 갑자기 왜 그래-"
"미안한데. 나갈게요. 나가야..."
"에엥~ 벌써 가기야? 일 때문에? 우리가 도와줄 테니깐 더 있자~"
마키는 천연덕스럽게 다가왔지만, 이미 그의 눈엔 귀여운 학생이 아닌 범죄자 일당이었다.
"만지지 마세요!"
"엇."
뒤로 밀려난 마키는 충격에 빠진 듯 선배들을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 왜 그러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치히로가 손을 붙잡는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구토를 할 듯이 안색이 어두워진다.
명백하게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직감한 치히로는 결국 손을 놓아주었다.
"진정하고 선생님... 천천히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말해줘. 바로 수습할게"
"왜... 왜! 도청을 하는 거죠?!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아무것도 모르는데..."
도청이란 말에 치히로의 표정이 급변한다.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범인에게 겨눈다.
"......"
코타마의 얼굴에서 땀이 눈물마냥 진득하게 흘러 나오고 있다.
고작 한 명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부장 히마리의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셈.
"선생님. 내가 부부장으로서 사과할게. 도청을 시도한 놈은 바로 격리 시킬 테니까 조금만 진정해줘."
이 사실이 그대로 전해지면 어떤 후폭풍이 일어날까 두려웠던 치히로는 최대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상대는 모든 의사소통을 거부하고 있었다.
"비켜!... 아무도, 아무도 못 믿겠으니깐. 으으...!"
출구를 막고 있던 하레와 치히로 사이를 비집어 들어간다.
돌발행동에 당황한 탓에 충돌에 대비하지 못했다.
"꺄악! 괜찮아?!"
곧 셋이 어지럽게 뒤엉켜 넘어진다. 하레의 무릎에 가슴을 타격 당하자.
실밥이 남은 환부에서 진물이 튀어나와 셔츠를 적신다.
숨이 안 쉬어질 정도의 격통이 다가왔으나 선생은 필사적으로 베리타스에서 탈출한다.
"선생님!"
때마침 복도에서 히마리와 재회한다. 정식으로 인사하기 위해 자동 휠체어로 바꾼 모양이지만,
선생의 관점에선 그 모습 역시 더한 불신을 지필 뿐이었다.
"......"
사냥 당하는 동물처럼 처량한 눈빛을 본 히마리는 잠자코, 멀어져 가는 선생을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히, 히마리 선배..."
"......"
가끔은 말보단 침묵이 더 많은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텅 빈 눈동자로 부원들을 올려다 보자. 다들 저절로 간격을 넓혀 코타마가 보이도록 길을 터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란인가요. 치히로?"
"어어. 그게... 실은 코타마가 또 선생님을 도청 하려다가 발각돼서..."
"아. 그렇군요."
"죄, 죄송합니다... 그치만! 절대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선생님이 위험에 처했을 때 즉각 대응하기 위하여 도청으로 모니터링-"
"듣기 싫으니 좀 닥치세요."
"...꿀꺽."
"코타마를 제외하고 전부 부실에서 나가주세요."
"으...응? 히마리 선배?"
"나가라고요. 귀는 장식인가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건지. 한 쪽 눈이 파르르 떨린다.
파충류 같은 이질적인 표정에 마키는 잔뜩 겁을 먹어 움츠려든다.
"네, 넵!"
황급히 도망친 뒤. 코너에서 치히로가 나타나자 의지하기 위해 안겼다..
"어떡해 치히로 선배?! 나 히마리 선배가 화난 거 난생 처음 봐!"
"하아~ 코타마 그 바보 자식이... 평소에도 주의를 줬는데도 씨이."
"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히마리가 전력을 다하면... 코타마는 앞으로 전자기기를 다루지 못할 지도"
"와아... 그 정도야?"
다들 코타마의 처분에만 궁금했지만, 자극에 눈이 멀어 정작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겁을 먹어버린 선생님의 선택 말이다.
"하아... 하아... 하아..."
날씨가 풀렸음에도 땀을 한 바가지 쏟은 선생에게 시선이 꽂힌다.
"에?"
업무 시간임에도 총학생회로 멋대로 복귀했지만.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세상과의 단절을 원하는 듯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다.
이윽고 선생은 결심한다.
지금의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교사란 직함을 포기하기로.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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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매워지네 여긴
개씹피폐네......키보토스 되는거 아님?

설마 히마리가 떡상하는건가 했는데 그런건 없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