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루... 네루!..."
"어엉...... 어! 왜?"
급하게 흘러나온 침을 닦았지만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줬단 사실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왜가 아니라. 수업 중이잖니."
"아아~ 역시 지루하다고 문과쪽은"
미카모 네루는 아슬아슬한 출결 때문에 성취도 재평가가 실시된다.
그것에 대비해 선생이 친히 교습을 진행 중인데 졸다니.
아무래도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한 소소한 익사이팅이 필요해보인다.
"안되겠어.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경제의 실용성을 보여주마."
"돈은 원래 잘 벌어서 영 흥미가 안생긴다고"
"관점이 너무 미시적인 걸... 경제를 배우면 말야 사회 현상부터 인간에 대해서도 알 수 있거든. 그러니, 자."
선생은 셔츠 주머니에 걸어 놨던 펜 하나를 건네준다. 어느 문방구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볼펜이다.
"네루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자. 이 펜을 나한테 팔아보렴"
"내 거 아닌데?"
"네 거라 가정하고, 선생님한테 장사를 하는 거야. 만약 내 마음을 움직인다면 어떤 가격을 부르든 기꺼이 구매하마"
호오. 종이 없는 백지수표라. 조금은 의욕이 생긴 네루는 책상에서 일어나 볼펜을 유심히 관찰한다.
바보털이 몇 번 흔들리다가 느낌표처럼 위로 치솟는다.
"...좋았어. 어이! 선생!"
"왜 그러지?"
"이 펜 사라. 1000엔에"
"엄청 폭리잖아?! 문방구에서 100엔에 살 수 있는데?"
"안 사면 팔을 비튼다!"
"그건 거래가 아니라 협박이란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흔한 펜을 어떻게 팔아치우라고"
"실마리를 알려면 경제를 배울 수 밖에. 자 책을 피려무나"
"다른 애들한테 물어볼 테니깐 딱 기다려!"
"네루!"
간과해버렸다. 승부욕의 화신인 네루는 펜을 파는 것에 매몰되어
자신이 보충 수업을 받고 있단 사실까지 망각해버린 것이다.
"마침 잘 만났다. 아카네."
"네~ 부르셨나요. 부장님?"
"이 펜을 나한테 팔아봐."
"네?"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아카네. 평소처럼 부장의 행동을 교정해주기 위해 미소짓는다.
"그나저나. 보충수업은 잘 듣고 있죠?"
"말 돌리지 말고!... 이건 선생이 준 과제니까 나 좀 도와줘."
"흐음... 알겠어요. 이 펜을 팔라는 거죠..."
"금액은 네 맘대로 해. 상대가 구매할 맘만 생기면 장땡이야."
"그렇군요 후훗"
쉽다는 듯 가방에서 막대 수류탄 하나를 꺼낸다.
"1000엔에 볼펜을 사시면 사은품으로 수류탄을 드릴게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그보다, 수류탄 없는 학생이 어디 있다고."
"볼펜을 안 사시면 여기서 터뜨릴 거에요."
"선생이 그런 건 협박이라고 안된데"
"어렵네요~"
네루는 한숨을 쉬며 돌아간다. 안경 때문에 이지적으로 보일 뿐. 아카네 역시 C&C소속이라 제법 폭력적인 성정을 가졌다.
"어이 후배."
"뭐죠? 바쁜데"
"선배가 부르면 일단 '네'라고 하는 거야 무개념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실에서 굴러다니던 토키를 불러 펜을 쥐어준다.
"이 펜을 나한테 팔아봐라."
"호오. 영화에서 본 적 있어요."
"그래? 그럼 잘 알겠네. 해봐."
"하지만 네루 선배가 과연 펜을 살까 의문이네요.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얕보지 마! 혼자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거거든?"
"그럼, 제가 내는 문제도 맞출 수 있나요?"
"당연하지. 애초에 공부 못했으면 밀레니엄에 들어올 수나 있겠냐고"
토키는 마치 비웃는 듯 피식 한숨을 쉬며 종이에 문제를 적기 시작한다.
"그럼 이 문제를 풀어보세요."
"잠깐만...... 아아! 암기론 무리야... 식을 적어야겠어."
"펜 필요하시나요?"
"어."
"1만엔"
토키는 네루에게 받은 펜을 그대로 건네었다.
심지어 손잡이 부분이 아니라 펜촉 부분으로 건네어 네루를 화를 더더욱 돋군다.
"칫."
머리에 혹이 난 토키를 내버려두고 네루는 부실에서 떠난다.
"너희들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다! 하여간 무식한 것들"
"그거 누워서 침뱉기입니다 리더."
"시끄러"
결국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똑똑한 사람에게 가기 위해 세미나로 향한다.
"문 좀 열어보라고 회장요."
"무슨 용건이야? 현재 맡길만한 의뢰는 없는데"
"별 다른 건 아니고 풀고 싶은 문제가 있어."
자초지종을 들은 리오는 사색에 빠진 듯 턱을 짚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난제네. 중고품인 이상 가치가 하락하는데, 원가격까지 낮으니 정상적인 방법으로 매매하긴 힘들어. 잉크를 얼마나 소비했냐에 따라 폐품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그니깐 회장한테까지 온 거 아니겠냐 잘난 머리 좀 굴려봐 리오"
"구매자는 선생님 한 명으로 특정되니. 니즈를 그에 맞추면 쉽겠지."
본인은 개입할 생각이 없다는 듯 펜을 도로 돌려준다.
"미안하지만 영업은 내 분야가 아니라서... 좋은 답을 내놓진 못해."
"아 좀!"
"흠. 만약 나라면. 엔지니어부에 의뢰를 맡길 듯해. 볼펜에 더 좋은 기능을 탑재한다면 구매욕이 생길 지도 모르지"
"엔지니어부라..."
총을 타바스코 분사기로 만든 건 때문에 한 번 깽판을 친 전적이 있지만...
뭐 잊어버렸겠지 믿으며 얼굴에 철판을 깔아본다.
"좋은 선택이야 네루 선배. 시연하고 싶었던 프로토타입 기능이 있었거든"
히비키는 고글을 내리고 작업실로 향하더니 금방 개조를 끝마쳤다.
"자."
"오오~ 까리한데? 뭘 어떻게 바꾼 거냐?"
"소재를 티타늄으로 개조해서 가볍고, 내구도가 강해."
"게다가! 오래 된 볼을 새 걸로 갈아 끼워 필기감도 개선했습니다! 펜촉과의 마찰도 생각해 크기는 0.6mm로-"
"각설하고, 뭔가 재밌는 기능을 하나 넣은 거 같은데. 지금 빨리 말해라."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뭔가 함정이 있는 것이다.
특수부대 생활로 날카로워진 직감. 네루는 히비키가 흔드는 꼬리를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사용자의 지문을 등록할 수 있어. 배터리는 태양광으로 충전 가능해."
"잠깐. 만약 등록된 지문하고 다르면 어떻게 되는데? 펜을 못 쓰나?"
"자폭해"
"아앙!? 장난 까냐 펜이 왜 자폭해야 하는데?"
"유용하지 않을까? 절도범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잖아."
"맞아. 특수 제작된 티타늄 바디는 폭발과 함께라면 좋은 파편 역할을 할 거야."
"...이 자식들. 지금 멕이는 거지? 저번 일 때문에"
"에? 아닌데... 정말 멋진 펜 아니야?"
결국 무기가 되어버린 펜은 양도하고, 적당히 비슷한 걸 건네받아 엔지니어부와 헤어진다.
"어머. 마침 잘됐군요. 네루"
"여어. 히마리"
웬일로 복도를 배회중인 히마리와 만났다.
그녀라면 리오와 함께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브레인이니 한 번 도움을 구해볼까
"도움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저도 껴도 될까요?"
"뭐? 누구한테 들은 거야?"
네루는 발이 넓은 인싸라 그새 학교에 소문이 퍼진 듯하다.
"힘을 합쳐 펜을 강매하는데 성공하면 사례금으로 1만엔 맞죠?"
"아니. 어떤 놈이 부풀린 거야... 그냥 아무 펜이나 선생이 사도록 유도하면 돼. 금액은 상관없고"
"후후... 그렇다면 밀레니엄의 전지. 저 초천재병약미소녀 아케보시 히마리에게 맡겨주시죠."
느긋하게 초현상특무부로 향하더니 깜찍하게 생긴 삼색볼펜을 꺼낸다.
"뭐야 이건?"
"평범한 볼펜이 아니랍니다? 여기 장식한 미니어쳐 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힘이 있거든요!"
"......"
"그날 그날 운세에 따라 행운의 색깔도 달라지기에 볼펜 내부에 LED를 달아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죠."
"그래서 얼마?"
"흐음~ 시중에 판매하는 볼펜보다는 비싸죠. 거기다, 미소녀 해커의 잔흔이 남아있는 희귀품이니... 낮게 잡아도 5천엔?"
"누가 사냐 그걸! 결국 좀 화려한 삼색 볼펜이잖냐"
"후후... 비약이 심하군요. 유명인이 썼던 물건은 경매가 열리는 건 아시죠? 상품에서 중요한 건 실용성이 아니라 희소성입니다. 사람이란 생각보다 합리적으로 지출하는 경우가 적어요."
"헤에~ 그렇구나."
결과물에 비해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네루는 소심하게 복수하듯 삼색볼펜을 뺏어 들었다.
"앗. 네루가 구매하시는- 잠깐! 무슨 짓이에요?!"
네루는 삼색 볼펜에서 빨간색을 골라 슬라이드를 밀었다.
촉에서 나오는 빨간색 잉크로 아케보시 히마리의 이름을 정자로 기입한다.
"히익!~~ 무슨 짓이에요!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부정 탄다구욧!"
"나약한 놈들이나 행운에 의지하는 거라구. 에잇!"
"히익!!! 하지 마세요! 사람이 죽는다고요!!! 에이미!~ 토키!~ 아무나 와주세요!"
휠체어에서 떨어지려 할 정도로 난리법석을 피우자 소음을 들은 누군가가 찾아온다.
"네루!"
"엇. 선생."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까지 온 거야? 땡땡이 그만 치고 제대로 보충 수업 받으렴"
"땡땡이라니. 숙제 때문에 탐문 중이었다고"
"숙제...? 설마 펜을 팔라고 해서 그런 거야?"
집중을 위해 던진 질문인데 이 정도로 몰입해서야...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겠다.
"휴~ 그래서. 좋은 답은 찾았어?"
"펜이 없어지는 마술 보여줄까?"
"좋아. 보여줘."
"내 펜으로 하긴 아까우니까 하나 사야 해."
"됐어. 왠지 불길하고..."
"크흠! 선생님께 천재병약미소녀의 해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만..."
덫에 걸린 짐승처럼 발악하던 히마리는 어느덧 평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히마리까지 참여하는 거야? 재밌네."
"후후후. 제 상품을 보여드리죠. 길운을 가져다 주는 특제 삼색 볼펜입니다!"
"귀엽워~ 가격은?"
"원래 가격은 5000엔이지만, 교직원 할인으로 특별가 3000엔 어떠신지요."
"이야~ 히마리가 썼던 볼펜이라 분명 좋은 물건은 확실해 보이는데......"
"그쵸? 절대 후회는 없을 것이라 자신하죠 후후훗"
"하지만 비싸다."
"엑-"
리오에 이어 히마리까지... 밀레니엄의 수재들이 무릎 꿇었다.
역시 이 문제에 답 따위는 없는 걸까 좌절하던 중. 의외의 구원투수가 등판하였다.
"오랜만에 부실이 붐비네."
"에이미 오셨군요..."
"왜 그래 부장. 에어컨 리모컨을 뺏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굴해 보여."
네루와 선생에게서 난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펜을 팔아보라니...... 굳이 새 펜이 아니라 쓰던 걸 살 사람이 있을까"
말은 비관적이지만 필통에서 볼펜 하나를 꺼낸다.
"평범한 플라스틱 볼펜을 비싸게 팔려면 연금술이라도 써야 할 걸"
"그치?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흐음..."
에이미 역시 물건은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보다 순간에 이끌려 덥석 산다는 걸 알고 있다.
희소성...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겐 없고, 자신에게 있는 요소란 무엇일까?
답이 근접해지자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러면 어때?"
"!!!"
일동은 차마 대답할 수도 없었다.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기행에 정신이 팔린다.
'출렁'
가슴 사이에 볼펜을 꽂은 뒤 밀어 넣는다. 더위를 잘 타는 습성 덕분에 가슴 안 쪽 땀이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짠."
기계에서 생산한 듯 부드럽게 가슴 아래로 펜이 미끄러져 나온다.
표면에는 유분기가 묻어 빛을 받을 때마다 묘한 흔적이 보인다.
"어때? 보기 힘든 볼펜이지? 1000엔에 팔게"
"정답이다! 연금술사!"
"선생님!?"
"아앙?!"
인간은 가지지 못한 것에 분노하는 법. 네루와 히마리는 득달같이 항의한다.
"가슴 한 번 닿았다고 가격 10배 뻥튀기라니 말이 돼? 그럼 어떤 여자가 일하고 세금 내냐!"
"맞아요! 냉정히 보자면 저 볼펜은 오염된 것입니다. 통풍이 안되는 저 지방덩어리 사이엔 세균이 있을 지도 몰라요! 제 가슴 정도의 크기가 기품이 느껴지는 적정 사이즈죠!"
아무리 말을 해봤자 선생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결과를 번복 시키기 위해 선배들은 조금 치사한 수단을 동원하였다.
"유, 유우카?"
"그 볼펜... 얼마라고요?"
"이, 이건 엄연히 교육이야.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랄까... 에이미 특제 펜은 대체제가 없으니 돈을 비싸게 받아도 되겠지?"
"헤에~ 시장에 개입이 필요한 순간도 알려주시다니. 대단한 선생님이네요."
"제발-"
"돈 아껴 쓰라고요!!!"
이 펜을 나에게 팔아보시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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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요
리오가 할줄 알았는데 에이미가 하네ㅋㅋㅋ
에이미즙 범벅볼펜이 1000엔? 지갑 꺼내
저기 사이에 넣고 5000엔에 직접 꺼내가실수 있습니다 했어도
히마리 귀여워
어흐 저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