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 부임 후. 샬레는 학생들에게 제일 친숙한 관공서가 되었다.
그 여파로 용건도 없으면서 괜히 방문하는 불청객들도 자주 출몰하는 편.
"어서 오십시오. 누추한 곳이지만 부디"
"실례합니다. 가 아니라. 역할이 반대잖아."
오늘의 포문을 연 것은 C&C 소속 아스마 토키.
토키의 과녁판 같은 헤일로 중심부에 73이란 숫자가 적혀있다.
예상보다 높은 숫자라 출장 이후 생긴 피로가 조금 가시기도
"웰컴 드링크를 드릴테니 앉으시지요."
토키는 자신의 옆에 앉아 달라는 듯 빈 종이컵을 손님용 테이블에 올린다.
음. 아무래도 밀레니엄에 방문했을 때 본인을 보러 오지 않아 살짝 속상한 상태 같다.
토키는 항상 무표정이라 감정을 읽기 힘들다. 조금은 귀찮지만 배려 차원에서 함께하자.
"오늘은 몰락귀족 컨셉이니?"
"네. 특별히 사무실을 빈티지 분위기로 스타일링을 진행해봤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그대로인 쓰레기통과 책상 위 서류로 보아하니. 일종의 조크 같다.
"평소랑 똑같은 것 같은데-"
"웰컴 드링크는 스파클링 와인이 정석이지만, 미성년자라 구매가 불가하니 대신 콜라를 드리겠습니다."
누가 봐도 먹다 남긴 김 빠진 콜라를 따라준다.
'벌컥벌컥'
차분히 따르지 않아 병입구에서 공기와 음료가 서로 싸워댄다. 그 결과 테이블에 콜라가 튄다.
"하하......"
"코크 콜라. 26년산입니다."
"신선하긴 하겠네"
예의상 원샷을 때린 뒤, 조심스럽게 토키에게 질문을 한다.
"그래서, 토키양은 왜 굳이 밀레니엄이 아닌 샬레에서 나타난 걸까요?"
"C&C 선배들은 임무 수행 중, 세미나에서도 별다른 지시가 없어 메뉴얼에 맞게 대기했습니다. 덕분에 선생님을 놓쳤죠."
업무에서 배제 당한 것 때문에 소외감을 느꼈나 보다. 토키의 어투에선 C&C와 세미나에 대한 실망감이 담겨있다.
"저런, 다들 토키한테 쌀쌀맞다니까... 선생님이 대신 얘기해줄까?"
"사양하죠. 전 고자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73→75
무덤덤한 척하지만 숫자가 올라간다. 역시 여자에게 공감은 특효 처방전
감정 표현이 학생에게 CA시스템은 완벽한 내비게이션이나 마찬가지다.
"선생님의 바람을 위해 요근래는 취미 찾기에 몰두했습니다. 소정의 성과를 보고하고 싶군요."
"희소식이구나 그건! 어떤 취미니?"
"인터넷 방송 시청, 게임, 만화 감상 등등. 인도어 위주의 취미를 공략 중입니다."
"그렇구나. 선생님이랑 통하네."
좀 더 생산적인 취미였으면 좋겠지만서도, 그래도 쉬었음 모드인 토키에게 시간을 떼울 수 있는 매체가 생겼단 건 다행이다.
"보십시오. 유투브 프리미엄에도 가입하여 원활한 시청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잘했어."
"숏츠나 릴스도 틈틈히 보고 있습니다."
토키는 핸드폰을 스와이프하며 관심 분야를 나열시킨다.
'마이~~ 웨이~~'
'척추 척척추'
익숙한 레파토리 속에서 그나마 개성적인 영상이 나타난다.
'모두 안녕! 소녀인법첩의 미치룻치-'
토키는 신속히 채널 추천 안함 버튼을 누르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앗!"
"왜 그러시죠?"
"아, 아냐... 음. 그래. 킬링타임으론 딱이지"
"게임이란 취미는 비교적 최근에 생겼습니다. 비교적 한적해 보이는 동아리가 있길래 세미나의 지시라는 구실로 견학했죠."
게임개발부 이야기인가. 아이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토키가 잘 매칭이 되지 않지만
같은 1학년에 게임부 아이들은 다들 착하니 문제될 부분은 없겠지.
"선호 하는 플랫폼이랑 하고 있는 게임은? 어떤 건지 알려줄래?"
"모바일 게임 과금 구조는 비효율적이라 여겨 접었습니다. 역시 게임은 패키지 게임이 제일이라고 추천 받았죠."
토키는 갑자기 어디선가 컨트롤러를 꺼내더니, 홈버튼을 눌러 슬립 모드를 해제시킨다.
"잠깐, 그거 선생님 물건 아니야?"
"네. 샬레에 있는 물건이니 공공재 아닌가요?"
"하하..."
TV화면이 켜진다. 로딩이 끝나고 난 뒤 익숙한 배경이 펼쳐진다.
"이야~ 우연이네 마침 선생님이 플레이 중인 게임이랑 똑같아."
"흔치 않는 우연이군요."
"...캐릭터 직업이랑 장비도 똑같고."
"오. 역시 저와 선생님은 통하나 봅니다."
"이거 내 세이브 파일이지?"
"그렇습니다."
이마를 짚었다. 항상 일이 많아 툭하면 스토리랑 진행이 끊기는데
급기야 누군가가 마음대로 육성하다니. 몰입에 초를 치는 심각한 행위다.
"어디까지 진행한 거야?"
"걱정 붙들어 매세요. 서브 컨텐츠 위주로 즐겼습니다."
"메인 스토리는 그대로 맞지?"
"주인공이 생이별한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가 가정부의 공작에 실패한 뒤, 전작 주인공의 도움으로 다시 재기하는 부분까지만 진행하고 선생님을 위해 남겨두었죠."
"대형 스포일러잖아!!!"
상실감에 구두를 신은 채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관심을 갈구하기 위해 종종 기행을 펼치는 건 알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이런 사고가 터져버렸다.
"나한테 왜 이래..."
"..."
선생의 텐션이 죽은 걸 확인하자. 그제서야 조금 잘못되었다는 자각이 생긴 듯하다.
1. 토키의 게임을 플레이 할 동안 함께한다.↑
2. 거부감을 표출하고 오늘은 돌려보낸다. ↓
이런 경우도 생기는 구나. 호감도가 내려가는 선택지가 정답인 경우.
토키 입장에선 서운하겠지만 사회 적응을 위해서 따끔하게 말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한마디 해주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던 찰나. 프라나가 개입한다.
"정말로 2번 선택지를 고르실 건가요?"
"당연하지 프라나쨩. 단순히 귀찮아서가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도 생각한 결정이야."
"숫자가 내려간답니다?"
"아냐. 아예 0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하면 안돼."
"......혹시 몰라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드리죠."
"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시뮬레이션 영상입니다."
곧바로 인터페이스가 나타나 멈추어진 사무실 풍경을 잡아먹는다.
***
"후우... 그만두자 이제."
입을 열지 않았지만 선생의 육성이 나온다. 1인칭으로 시점으로 진행되는 AI영상은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생동감 넘쳤다.
"무슨 말씀이시죠?"
"널 도와주고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네 태도는 날 놀리는 것만 같아."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경직된 얼굴로 쳐다본다. 여전히 표정은 없지만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하지만 선생은 토키의 눈을 마주 보지 않는다. 마치 신경을 끄겠다는 선포처럼
"항상 이런 식이잖아. 의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선, 곤경에나 처하게 하고...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감도 안 잡혀.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야."
"오해... 오해입니다."
"취미랍시고 소개한 것들도 결국 나랑 주변인의 것들을 모방한 거잖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아니에요! 전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취미를 가지라는 선생님의 충고를 임시방편으로 대충 메꾼 것이 아니라-"
"그런데 왜 한번도 웃질 않니?"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에 토키는 벙어리가 되었다.
같은 인간이 아닌 이물을 바라보는 듯한 적대적인 눈에 그녀는 사지로 내몰린다.
"도저히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지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서 기분 나쁘다고."
"......"
"난 널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거야... 그러니 이제 제발 좀 내 눈 앞에서 사라져."
토키는 사죄하듯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샬레에서 도망쳤다.
C&C 부실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그녀를 위한 보금자리는 없었다.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한 부원들은 익숙한 서로끼리만 축배를 들었고, 토키는 그대로 방치해두었다.
'쏴아~'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화장실에서 반복적으로 세수를 하였다.
아무리 물로 정화를 해도 굳어버린 상판은 녹지 않는다.
문듯 자신의 얼굴이 인형처럼 부자연스럽단 걸 깨달은 그녀는 입에 손을 넣고 양옆으로 벌려 본다.
'부들부들'
손이 떨릴 정도로 힘을 줘봐도 그건 미소따위가 아닌 하관에 생긴 균열일 뿐.
여전히 가증스러워 보이는 낯짝이다.
'지이익-'
균열은 한계까지 늘어지다가 결국 가죽이 찢어지며 지퍼 소리가 났다.
토키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상처에서 나온 선혈이 피눈물처럼 세면대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진정한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하아...... 하아..."
이건 선생의 탓일까? 리오의 탓일까? 아니면 가정이나 유전의 잘못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미 도미노처럼 그녀의 모든 돌이 나자빠져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판단할 겨를이 없다.
그 날 이후로 C&C에서도, 세미나에서도, 초현상특무부에서도
토키를 본 학생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Fin.
***
"아아아악!!!"
프라나가 송출시킨 영상을 시청한 선생은 악을 쓰기 시작했다.
악의가 느껴지는 스토리에 마상이 생긴 듯하다.
"아니! 내가 학생한테 언제 이랬다고!? 너무한 거 아니야 프라나?"
"어디까지나 최악을 상정해 본 것일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실현될 확률은 적으니"
선생이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미래.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마치 보험광고에선 항상 암을 진단 받는 장면이 나오듯. 이건 프라나가 펼친 공포 마케팅이다.
허구의 이야기만으로 선생을 마인드를 조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심호흡 좀 해야겠다. 후우~"
"어떤가요? 이래도 2번을 고르실 건가요?"
"그니까아~ 2번을 택하더라도 멘트는 내가 직접 정하는 거잖아. 저렇게 될 리 없는데... 음......"
고민을 거듭해보지만, 결국 한층 유해진 표정으로 토키를 두둔하기로 결심한다.
"선생님?"
"어?"
프라나가 사라졌다. 현실로 돌아온 모양이다.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제가 플레이를 이어 받은 것이 탐탁지 않으신가요?"
"어어... 아냐. 신경쓰지마."
"훗. 이럴 줄 알고 쿨뷰티S급메이드인 제가 선생님의 세이브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시스템 설정으로 이동하더니 아직 보존되어 있는 1번 세이브 파일을 보여준다. 다행히 눈치가 아예 없진 않았다.
"피스~ 피스~"
손가락으로 브이를 보여주고 윙크까지 날린다.
혼내지 말아다란 애교로 보인다.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쿨뷰티S급메이드라니 뭐야 그게 하하. 히마리한테 말투가 옮긴 거니?"
스포일러는 최악이지만 토키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지켜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봐도 괜찮은 건가요 선생님? 제 플레이는 스포일러가 됩니다만"
"아냐. 요즘 피곤해서 게임 켜기도 힘들고... 스트리밍 방송보단 토키가 게임하는 모습이 더 보고 싶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75→78 숫자가 오르는 걸 보고 안심한다. 이걸로 프라나가 보여준 끔찍한 미래와 점점 멀어지겠지.
"한가지 고민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뭐니?"
"장기간 집중하다보면 입이 심심한데. 과자를 먹으니 기름 때문에 컨트롤러가 더러워집니다."
질문은 연막일 뿐. 탕비실에 있는 간식들을 노리고 있단 의도가 다분하다.
"그럼 선생님이 먹여줄까?"
"아뇨. 그건 무례하죠. 메이드가 주인에게 일을 시키다니."
"주종관계가 있는 자세가 아닌 걸"
토키는 이미 소파 손잡이에 머리를 얹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플레이 중이었다.
"면목 없군요?"
"자~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마. 게임 방송에 나오는 도네라고 생각하고"
탕비실에서 나초칩과 사이다를 꺼내왔다. 다시 자리로 복귀하니 토키의 치마가 짧아졌다.
"그 사이에?!"
"무장을 위한 탈부착형 치마입니다. 아비에슈흐는 정비 중이지만,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해주시죠."
78→81
얼굴 변화는 적은 대신 행동이 터프하구나.
토키의 매력에 넘어간 선생은 과자 봉지를 깐 다음 입에 넣어준다.
"와작와작"
과자를 씹던 도중 선생의 손을 번뜩 붙잡더니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손톱 구석구석까지 핥는 혓놀림에 따뜻한 소름이 끼쳐온다.
"하응~ 무슨 짓이니!?"
"양념 가루가 잔뜩 묻은 손가락이 진국입니다. 놓칠 수 없죠."
"선생님도 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침을 덕지덕지 바르면..."
"메이드 업계에선 포상이라 배웠는데 틀렸나요?"
"...아냐. 하고 싶은 거 다 하렴."
침이 묻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입꼬리가 올라가진 않지만 조금은 눈매가 부드러워진다.
아마도 이게 토키의 미소겠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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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이 분탕충아ㅋㅋ
잼밌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