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명은 별빛들을 잡아먹을수록 몸집이 커지다가 이내 햇빛으로 성장한다.
'부스럭'
베개나 이불에서 나기 힘든 이질적인 소리가 머리에 맴돈다.
침침한 눈으로 주변을 확인하자 낯익은 돈봉투가 보인다.
"들켜버렸나..."
미사키의 파카에 몰래 넣어둔 용돈이었는데.
출발하기 전에 발견해 선생에게 돌려준 모양이다.
'다음엔 히요리... 아니다 아츠코한테 전달하자.'
사무실 다른 편엔 래빗 소대원들이 자고 있다.
어제 참 힘들었지... 아리우스랑 노닥거리는 걸 보고 시샘이 생겼는지
마피아 게임이니 야식이니 완전 수학여행 판박이였다.
'토끼는 포식자를 경계하기 위해 아주 빠르게 잠듭니다. 하지만 저흰 토끼가 아니거든요.'
아직도 미야코의 집념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세면을 하기 전 미리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은 다음 샤워실로 향했다.
"으응..."
아, 실수였나. 몸에 새겨진 습관대로 움직인 나머지, 자고 있는 아이들이 있단 걸 자각하지 못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선생님..."
"미안, 미야코. 소리 때문에 깼구나. 더 자렴."
"아닙니다... 하암~ 원래 이 시간대에 일어나야-"
하지만 미야코를 제외한 대원들은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
"소대장인 저만큼은 선생님을 보필하겠습니다."
"미야코는 똑 부러졌구나..."
유분이 생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숫자도 매끄럽게 올라간다.
94→96
'뭐지?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마음을 투시했는지 프라나와 교대한 아로나가 의식 사이에 침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 아로나쨩."
"갑작스런 업데이트라 아직 생소한 부분이 많을 겁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미야코의 점수가 오른 이유가 궁금해 아로나쨩."
"잠긴 목소리와 정돈 안된 머리. 안경을 벗은 모습까지. 아침의 인상은 평상시의 모습과 거리가 멀죠."
"오히려 이 지점에서 이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상 후의 취약한 모습을 자신에게 보여준다. 이것 만으로 미야코양은 친밀감을 느꼈을 겁니다."
"사람의 심리란 참 오묘해."
"일상속의 에로스라 일컫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선생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걱정이 들었는지 뒤꿈치를 들어 올려다본다.
"괜찮으신가요?"
"아아. 잠이 덜 깨서 하하."
간단하게 머리를 감고 나온 뒤 처음 본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후우~"
미야코가 선생이 미리 뽑아둔 커피를 손에 들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식히고 있었다.
"아... 이러면 선생님께서 좀 더 편하게 마시지 않을까 하고..."
저질렀지만 막상 본인도 부끄러웠는지 뺨을 붉혔다.
"......"
조심스럽게 컵을 넘겨 받는다. 입과 가장 가까웠던 부분엔 아직도 김이 서려있다.
신체가 아닌데도 왜 관능미가 느껴지는 거지?
"후룩..."
아아. 이것이 아로나가 말한 일상 속의 에로스인가.
그저 곧바로 잊혀질 기체였을텐데. 어째 커피의 맛이 더 깊어진 느낌이다...
96→97 미야코의 점수가 또 오른다. 이대로 100을 돌파하면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아침 만들까?"
"그, 그러죠?"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에 나머지 인원들도 서서히 기상한다.
"흐아아~"
깨어있지만 자고 싶고, 하지만 일어나야 하고. 아주 공감이 가는 표정이다. 침대에서 오줌이 마려운 표정.
결국 사키는 육체적 한계에 봉착해 화장실로 향한다.
흐트러진 이불 때문에 추위를 느낀 미유도 기상하여 천천히 이불을 갠다.
"쿠울..."
유일하게 모에만이 잠을 청하고 있다. 명절 조카 같은 모습이 귀여워 선생은 그대로 두고 싶었지만,
미야코는 소대의 체면을 생각해 깨우러 간다.
"모에. 일어나십쇼. 아침입니다."
"10분만 더...... 쿠울..."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 잠에 빠진다.
결국 미야코는 특단의 조치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아가씨. 학교 어디야?"
"잠깐!-"
목소리를 내리 깔고 툭툭 뱉자 득달같이 일어난다.
"아오 미친 거 아니야?! 놀랐네..."
발키리의 주취자 단속인 줄 알았던 모에는 주먹을 들어 올리며 짜증을 표출한다.
"기상하십시오. 모에"
"아아~ 융통성이 없냐... 제대로 된 이부자리가 얼마만인데"
궁시렁거리지만 모두를 도와 식기를 옮기고 토스트기에서 식빵을 꺼낸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 의기투합하는 건 언제나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1. 이만 착석한다 -
2. 밥맛이 없다며 떠난다 ↘
3. 뿅코의 밥도 챙긴다. ↑
이젠 대인뿐만 아니라 대집단을 상대로도 선택지가 뜨는 건가.
솔직히 말해 까먹었지만, 선생은 뿅코를 위해 냉장고에서 채소를 꺼내 씻어주었다.
미야코 96→98 미유 29→31 사키 41→42 모에 62→63
섬세한 배려에 학생들의 수치가 상승한다.
기쁜 일은 맞지만, 무언가 가슴 안 쪽에서 거스러미가 난 기분이 든다.
"아! 모에. 선생님이 아직 착석하지도 않았잖습니까."
"우물우물... 에피타이저는 노카운트 우물"
"먹으면서 말하지 마십시오."
"미야코는 샬레만 오면 귀찮아진다니깐? 너야말로 우리끼리 밥 먹을 땐 핸드폰만 보는 주제에"
"그건 그거고 여긴 엄연한 상급자가...!"
어젯밤에 늦게 자서 그런지 피곤한가. 선생은 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재한다.
"아침부터 열 내지 마. 맛있게 먹기만 하면 더 바라는 게 없어요."
"그치? 쿠히힛"
"흐응..."
미야코 98→99 모에 63→65
'미야코 저거 괜찮나? 100되면 뭔가 터지는 거 아냐?'
***
단 하루였지만 정말 길었던 것 같다. 래빗 소대마저 전부 보내자 샬레가 넓어 보인다.
"......"
명절 연휴 끝에 가족들을 배웅하는 노인들의 마음. 이젠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적적함을 달래는 방법은 역시 바쁜 일상 뿐. 곧바로 밀레니엄 업무를 위해 전철에 올랐다.
"응?"
산책로를 통해 학교로 향하던 도중, 멀리서 특이한 머리색이 찰랑거린다.
저 오렌지색 머리... 밀레니엄에선 두 명 뿐인데 속도가 느린 걸로 봐선
레이-48
"레이~ 안녕."
"헤엑... 헤엑..."
스미레의 훈련이 가혹했는지 선생을 확인했지만 말 대신 가쁜 숨만 튀어나왔다.
"잠시... 후우... 후우... 하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열심이구나."
1. 이만 떠난다 -
2. 땀냄새를 맡는다 ↓
3. 코기 브레이브스의 승리를 축하한다. ↑↑
독보적으로 호감도가 오르는 선택지에 무의식적으로 3번을 택했다.
"코기 브레이브스가 해냈지?"
"!"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뜬 수척한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네엣! 선생님도 보셨군요! 경기장에 오신 줄 알았다면 같이 만나서- 아하하! 그게 아니라... 그것보다 정말 대단했죠!?"
"으... 으응..."
"이야~ 선생님이 아직도 응원하고 계셨을 줄은 몰랐아요. 솔직히 약체팀에 관심을 가지는 건 연고지 주민이 아니라면 힘들텐데-"
"레이가 좋아하는 팀...이니까?"
"감사합니다!"
레이 48→60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뒤에선 스미레가 달려오고 있었다.
"히익! 나, 나중에 봬요 선생님"
"그래..."
기진맥진하던 레이가 힘을 얻었는지 힘차게 달려간다.
점수는 올랐지만 그닥 기쁘지가 않다. 오히려,
마음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죄책감에 선생은 땅을 보며 걸어갔다.
'코기 브레이브스 경기... 애초에 보지도 않았잖아. 중계 같은 것도 안하고, 직관 아니면 못 보니깐... 그 때 이후로 잊고 살았는데'
명백한 기만. 단순히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 학생의 감정을 농간하다니. 선생 실격이다.
점점 이 시스템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스미레 53→52
"어어? 뭐야?"
난데없는 하락에 주위를 살펴보았다. 표시기가 안내하는 곳에 스미레의 뒷모습이 보인다.
"불합. 선생님이 사색에 잠겨있을 동안 스미레양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본의 아니게 무시해버렸군요."
"끄응..."
방금 전까지 CA시스템을 의심해 놓고, 막상 숫자가 줄어드니 또 초조해진다.
이러면 안된다고 판단한 선생은 프라나를 다시 호출한다.
"저기 프라나쨩?"
"듣고 있습니다."
"그... 이 CA시스템. 정말 편리하긴 한데 말야. 잠깐 꺼줄 수 있을까?"
"마땅한 사유라도 있나요?"
"뭔가 점점 여기에 의존하려고 해서 말야. 교육자로서 몹쓸 습성이지."
"의존이... 그리 나쁜 선택일까요?"
"뭐?"
프레나파테스의 비극적인 말로 때문일까. 프라나는 비서 답지 않게 뜻을 바로 굽히지 않았다.
"나쁜 거 아닐까?... 다들 순수한 마음으로 날 대하는데. 난 프로그래밍된 최적의 수로 상대하다니. 이상하잖아.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마치 기계처럼-"
"데이터나 기계 장치를 신체에 적용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은 사이보그화되고 있단 걸 아십니까?"
"에?"
"당장 스마트폰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작은 단말기는 유희부터 편의 기능, 업무까지 대체한 존재입니다. 갑자기 사라져 사용하지 못한다면, 장애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죠. 마치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
"AI와 자동화 등으로 이미 인류의 기능적 사이보그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단지 좀 더 빠르게 진보된 것일 뿐. 그리 거부감 가질 필요 없습니다.
"잠깐~만요!"
점점 프라나가 무섭게 보이기 시작할 때 쯤 아로나가 등장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프라나쨩! 선생님의 말을 끊고 압박하다니! 자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선배로서 따끔하게 혼내야겠어요!"
"......"
프라나는 이제야 자신의 본분이 뭔지 깨달은 듯 묵례를 한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걱정하는 생각이 커져서 강요처럼 변질되어버렸군요."
"하하... 괜찮아. 프라나쨩의 생각도 흥미로운 관점이라 생각해."
"요청대로 CA시스템은 잠시 OFF로 해두겠습니다."
인터페이스가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세미나로 도착하자, 문득 유우카와 노아의 숫자가 궁금해지는 흑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같잖은 상념들을 떨쳐내었다.
......
업무가 끝나니 늦은 밤이 되었다. 오늘도 외근 확정이라 밀레니엄 교내를 서성거린다.
마침, 마키와 하레가 게임을 하자며 조른 모모톡이 기억났다.
베리타스 부실로 향하니 키보드 소리도 멎은 적적한 공기가 느껴진다.
"어. 안녕 선생님. 여기 와있었구나?"
치히로가 퀭한 안색으로 컵라면이 익길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 피곤해보이네 치히로"
"응... 밤샘으로 서버 모니터링... 하아~ 스타트업 놈들은 바라는 게 많다니까"
"고된 하루에 컵라면은 좀 아쉽지 않아?"
"외식하려고 했는데... 밤이라 그런지, 영업하는 식당이 규동집 밖에 없었어. 아무래도 여자 혼자 규동집은 좀 그렇지."
"헤에~ 의외네."
순간 몸을 감싸던 미미한 온기마저 사라진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의외?"
"응?"
"아~ 그렇구나. 선생님은 내가 학생이 아니라 억척스러운 아줌마처럼 보이나 봐?"
어어 잘못 건드렸다! 선생은 치히로의 성숙함을 무감각하단 걸로 잘못 해석한 듯 싶다.
"하핫. 확실히 치히로 선배 등산복. 리얼 동호회 아줌마 같긴 했지- 끄에엑~!"
마키가 탱킹을 하고 있을 동안 만회해야 하는데 머릿 속이 백지로 뒤덮였다.
꼴사납게도 또 다시 미래 문물에 손을 뻗는다.
"프라나쨩! 헬프! 이대로 가면 베리타스에서 놀 수 없어!"
"역시 필요하실 줄 알았답니다."
무표정한 프라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 편에 계속
댓글 13

곧 미야코한테 강간당하는거임?
소... 솔직히 치짱 좀 아줌마같음...
시리어스하게 가는건가 했는데 다시 개그가 되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