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헨나.
이 곳은 공기부터가 다른 학교들보다 살짝 무거운 기분이다.
"끄응~"
선생의 차에서 내린 이로하는 자신이 받은 특권을 과시하는 듯 느릿하게 기지개를 핀다.
"이로하는 먼저 만마전에 돌아가 있을래? 선도부한테 먼저 인사 좀 하고 올게"
"그러실래요? 그럼 이부키랑 기다리고 있을테니 천천히 오셔요~"
선도부장인 히나에겐 목숨까지 빚진 전력이 있기에 가장 먼저 찾아가는 것이 예의다.
이로하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곱슬머리가 더위를 부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돌아간다.
'선물이라도 싸올 걸 그랬나'
텅텅 빈 복도를 거닐자 요상하게 등 뒤에서 질척거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이런'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맞을 때까지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코 [43]
"어머. 이 시간에 웬일일까요?"
아코다. 아직은 대화 한마디 섞지도 않았지만,
눈과 가깝게 붙은 눈썹과 살짝 보이는 송곳니만 보아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단 걸 파악할 수 있다.
"일 때문에 오셨나요?"
"어어. 그건 아니고... 게헨나 학생들 안부 좀 물으려고"
"헤에~ 어른이란 건 생각보다 한가하네요? 이쪽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인데"
"아하하... 선도부는 언제나 쉴 틈이 없나 보구나... 그럼 이만-"
"잠깐, 마침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제 상담 좀 들어줄래요? 설마 선생이란 사람이 학생의 면담을 거부하진 않겠죠?"
의사와 상관 없이 반강제로 연행되는 선생을 보며
선도부 학생들은 혀를 끌끌 찼다.
"어이쿠... 선생님 잘못 걸렸네"
"왜? 나 없는 사이에 뭔 일 있었어?"
"아침에 만마전 임원이 방문해서 말야. 교정 예산 절감이란 명목으로 감옥에 있던 수감자들을 전부 사면시켰어"
"에!? 급식도 안 먹는 학생이 태반인데 그걸 신경 쓴다냐."
"그런 과정에서... 알잖아. 선임행정관님이 아침에 좀 더 까칠한 거"
게헨나의 공기가 무거운 이유. 연중무휴로 이어지는 두 거대 동아리의 신경전 때문이다.
"제 말 좀 들어보시라고요!"
"듣고 있네요..."
카리스마 빼면 시체인 마코토는 본인과 만마전의 체면을 가장 중시한다.
가장 가성비가 좋은 영업은 선도부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
최강자에 군림하고 있는 히나를 곤란하게 만들수록 마코토에게 반사광이 돌아간다.
"아~주 교활한 너구리들이 따로 없어요. 이딴 식으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어서, 마치 선도부 능력이 부족해 만마전의 지시를 이행 못하는 걸로 둔갑시킨다고요!"
"큰일이네..."
"학교 생활에 관심도 없는 잡배들은 풀려난 친구들을 보고 '와~ 만마전은 자비롭네~' 이러고 앉아 있고!"
"글쿠나..."
"제 신발 보이세요? 슬리퍼로 갈아 신은 거? 글쎄 또 누가 제 부츠에 오물을 넣었다구요! 이건 필히 진상을 밝혀야 하는 음모에요!"
그건 본인 행실 문제 같은데... 마음 약한 선생은 속으로 삭히면서 시계를 수시로 확인한다.
"저기, 아코. 나중에 도와줄테니 이야기는 이쯤 끝낼까?"
"뭔데요. 한가하다면서요?"
"내가 언제... 아니다. 실은 이부키가 날 보고 싶어 하다고 해서 하하... 낮잠 시간 전에 놀아주려고-"
"하아?"
양쪽 눈을 다르게 뜨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출한다.
"제 이야긴 한 귀로 듣고 흘린 거에요?! 지금까지 만마전의 만행에 대해 설파했는데 스스로 너구리 굴로 들어가신다고요?"
"아이는 아무런 죄 없잖니..."
"아. 아아~ 알겠어요 알겠어.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네요."
"또 뭔데-"
"이게 다~ 선생님 탓이에요! 생각 없이 만마전을 두둔하니까 그것들이 기고만장해진 거 아니겠어요?"
"딱히... 난 만마전이 아니라 이부키를 만나러 가는 거라니깐?"
"그게 그거에요!"
보기만 해도 기빨리는 앙다문 입술.
'어쩌면 아코가 달고 있는 카우벨은... 고양이 목에 건 방울처럼 누군가가 아코를 피하기 위해 달아준 것일지도'
"이봐요~! 듣고 있어요? 다 선생님 잘못이라고요! 책임지세요."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프라나가 전선에 참가한다.
이대로 선생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아마우 아코양. 여전한 히스테리군요."
"뾰족한 수라도 없을까나 프라나쨩?"
"간단하죠."
곧바로 선택지를 대령한다.
1. 미안해. 오늘은 만마전에 가지 않을테니까. - 이부키↓ 이로하↓
2. 또 귀찮게 하네. ↗
"응? 프라나쨩 이게 맞아?"
여태까지의 선택지와는 달리 오히려 도발적인 선택지가 호감도를 올린다.
"네. 절 믿으세요."
"일단, 시뮬레이션을..."
영상으로 확인해봐도 그 강구책은 확실하게 유효해보였다.
"목줄을 가지고 논 적은 있지만 설마 이 정도일줄은..."
"자. 솔직하지 못한 아코양을 개변시키는 것입니다."
마음 속 대화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다.
"입이 뚫려 있으면 변명이라도 해보시라고요. 네? 역시 부정 못하겠죠? 하여간"
"하아~"
대놓고 들으라는 듯 길게 한숨을 늘어 놓는다.
아코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머리 끝까지 울화가 치민 듯 눈을 부라린다.
"ㅁ,뭐,뭐에요? 한숨이라니 이 쪽이 더 답답하거든요?"
"또 귀찮게 구네..."
"말 다했어요!?"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온 몸으로 화를 표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난 황소 위에서 버티는 로데오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선생의 등줄기로 흐른다.
"쯧."
다 마신 캔을 찌그러뜨린 다음 쓰레기통을 향해 사납게 던진다.
선생답지 못한 언행에 날뛰던 아코도 살짝은 쫄아버린 것 같다.
아코 43→47
정말이다... 다른 학생들이었다면 점수가 까일 비호감 행동인데 아코는 오히려 오른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다. 역시 아코는... 마조히스트가 확실하다.
'이러면 이야기가 쉽지.'
선도부 내에서도 히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
자기보다 강력한 타인에게 의탁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는 건 대표적인 M성향 행동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슬슬 짜증난다 너."
"뭐, 뭔데요 대체... 더위라도 먹었나요?..."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저번 같은 방식으로 승부를 볼까."
"저번 방식이라면 설마 그 내기를 또 하자구요...?"
"그래. 지는 쪽은 개가 되는 걸로"
"하... 하하! 그러고도 교육자인가요? 학생을 개로 만들겠다니... 각오해두세요.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없으니까."
"내기 종목은 뭐 아코 마음대로 정해봐."
"그렇다면... 눈싸움으로 하죠. 흥!"
눈싸움이라. 저번 코인 토스는 운에 의존하는 부분이 컸다 이건가.
"자... 하나 둘... 셋!"
무표정인 상태로 응시한다. 평소에 인식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눈을 감는 행동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었다.
서서히 눈이 따가워질 때 쯤 아로나가 등장한다.
"선생님! 이건 불리한 게임이에요! 평소 컴퓨터 업무가 많아서 안구건조증을 달고 사시잖아요."
"그치만 이제와서 무를 수가 없는 걸!"
"하는 수 없네요. 여기선 제가 서포트하겠습니다!"
"대놓고 편법인가... 아코한테 미안한 걸"
"괜찮습니다! 아코양은 마조니까요. 패배하는 걸 원할 지도 모릅니다."
총알도 빗겨나가게 만드는 현실 조작 능력으로
아코의 눈에서 습기를 조금 가져간다.
"크흑...!"
갑자기 닥쳐온 한계에 눈꺼풀이 내려간다.
패배를 직감했는지 입을 벌리고 조용한 비명을 지른다.
"내가 이겼네?"
"크으......"
들어올 때와는 정반대로 조용히 휴게실에서 나간다.
'포기한 건가? 휴. 다행이다.'
허나 선생의 기대와는 달리 잠시 후 아코가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그 빨간색 개목줄이 들려 있었다.
'이 녀석... 끝까지 가겠단 거냐'
"후우~"
아코는 심호흡을 한 번 내뱉고 목줄을 착용한다.
"자. 됐죠? 반성하고 있으니까 봐주시죠?"
대결에서 진 주제에 오히려 당당하다. 이미 당해본 형벌이라 그건가.
확실히 이대로 산책 같은 야외 플레이는 선생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이다.
"이제 엎드리면 되는 거죠? 하아~ 엄청난 악취미군요. 제가 아닌 다른 학생이었다면 큰일 났을 거라고요?"
고착화된 상황. 또 다시 선택지가 등장한다.
1. 이쯤에서 봐준다. ↘
2. 더 강하게 나간다. ↑
'그래... 어른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거야.'
아코의 대화 시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턱을 괴고 바라만 본다.
"뭐, 뭔데요?! 그 쪽이 내기하자고 해놓고선. 왜 막상 하려니까 겁나요? 한심하네요!"
"장난하냐?"
"ㄴ... 넷?"
"혼자서 목줄을 메는 개가 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바보야"
"뭐, 뭔데요 그 말투는! 전 바보가..."
행동으로 보여준다. 의자에서 일어나 휴게실 문을 잠궈버린다.
"히끅...! 도,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고"
당황한 아코에게 그저 손바닥을 보여준다. 어떤 건지 이해한 그녀는 목줄을 풀고 천천히 다가온다.
"개가 이족보행이던가?"
"흐응!..."
입술을 깨물고 자세를 낮춘다. 목줄에 먼지가 묻는다면 그대로 목이 더러워지니 손 대신 입으로 목줄을 운반한다.
"에흐에..."
불만 섞인 신음으로 선생의 손에 목줄을 떨군다. 침이 묻은 빨간 목줄은 와인색으로 살짝 물들었다.
"헤에~ 산책이라도 가고 싶은 거니? 직접 목줄을 가져오다니"
"그마안! 즐길만큼 즐겼죠? 이제 그만하라구요 이딴 상황극은!"
무시한 채 목줄을 단단히 멘다.
"잠깐, 숨!... 숨 막히잖아요!"
"이건 다름 아닌 너가 바란 거 아니야 아코?"
"에에?"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목줄... 분명 아코를 선도부장의 개라며 욕보이기 위해 누군가가 준비한 거잖아. 그런데 이런 굴욕적인 걸 아직도 소장 중이라니... 기분 나빠."
"아, 아니거든요! 그건- 케헥!"
시험 삼아 목줄을 당긴다.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자 아코는 저항할 생각도 못하는 멍청이가 되어버린다.
"서, 선생니임...!"
"개가 사람 말을 하네"
"히끅...!"
47→61
'우와. 엄청난 널뛰기네'
'역시. 제 예상대로 아코양은 개변태 마조가 맞았습니다.'
'프라나쨩. 아무리 그래도 학생한테 그런 표현은 좀 그래'
'목줄이나 놓고 말씀하시죠?'
"아코~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보이네?"
"히잉... 이잉... 으응......"
결국 단념한 듯 아코는 이 촌극에 몸을 던졌다.
"머멍... 멍...!"
드디어 들려오는 개의 울음소리. 팽팽하게 당긴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옳지. 착하다~"
"끼잉..."
61→65
겉보기엔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아코는 확실하게 즐기고 있다.
선임행정관으로서 격무에 시달리며 교내에선 미움털이 박혀 따돌림까지 받는 처지...
가축으로의 격하는 그동안의 책임과 의무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시간은 치욕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그나마 자유로운... 지옥 속의 낙원
"아코."
"...멍!"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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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나 말뽄새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