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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저기, 유우카."
"네, 뭔가요."
서로에게 익숙한 상투적 대사. 대화의 도입부로 수없이 이 대화를 반복해 왔다.
처음 만난 날로부터 반년쯤 지났을까. 생각해보면 유우카를 만나지 않은 날이 더 적은 느낌도 든다.
요컨대, 그 정도면 나와 유우카의 관계는 그리 얕지 않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유우카는 말이야. 장래에 결혼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 있어?"
그러므로 조금은 발을 들여놓아도 용서받을 수 있을 터.
장소에 따라서는 성희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녀가 그런 일로 일일이 소란을 피우는 소녀가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의 짧지 않은 만남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뭔가요. 갑작스럽게. 장소에 따라서는 성희롱인데요."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아직 숨겨진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대단히 심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응. 뭐어, 단적으로 말하자면 부모님이 시끄럽다는 거지. 좋은 사람 없냐고."
"그렇군요,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응? 응, 뭐어. 우리 부모님도 연세가 있으시고 슬슬 손자 얼굴을 보고 싶으신가봐."
대화에 약간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기분 탓이겠지.
"뭐, 선생님이 마음에 드는 쪽을 선택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은 칠칠치 못하니까 착실한 사람을 추천해요. 가계부 관리를 해주는 사람이라든가."
"그래도 요즘 시대는 좀 여러모로 어렵지 않아? 결혼이라든가, 아이라든가. 비교적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니까, 사적으로는 결혼 같은 건 그다지~ 라고 생각하는 거지."
"――과연. 간과할 수 없는 문제네요. 신속히 검토해야겠어요."
갑자기 유우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역시 어른이 이렇게까지 당사자 의식이 낮은건 문제겠지. 그래도 내 문제인데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준다. 역시 유우카는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사소한 의식 조사 겸 물어본 거야."
그러면서 유우카쪽을 보자, 그녀는 수중의 종이에 엄청난 속도로 이것저것 적고 있다.
착실한 그녀다. 구체적인 인생 설계가 있을 것이다.
유우카를 향한 감탄이 깊어지고 있는데, 그녀가 서서히 일어선다.
화이트보드를 잡아당겨서 내가 볼 수 있게한다.
"제 결혼에 대한 얘기입니다만, 구체적인 플랜은 이렇습니다."
"혹시 길어?"
"우선, 현재 16살인데, 18살까지는 교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비교적 빠르네."
"거기서부터 4년 정도 대학을 나올때까지는 교제를 계속합니다.
거기서부터 대학 졸업 직전에 결혼할 수 있으면 최고겠네요."
"뭐, 에너지가 있는 동안이 한창때긴 하지."
"하지만 그렇게 잘 안 되는 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기 위해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취업 후 몇 년 지나서 결혼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앞선 방안을 플랜A라고 하면 그 사이에 직장 내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확보해 육아휴직 후 빠른 복귀를 하는 게 플랜 B입니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내용을 능숙하게 화이트보드에 그림으로 그려냈다. 역시 미래 전망은 물론이고 그려진 그림도 이해하기 쉽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제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면 플랜B가 타당하겠죠."
"견실한 아이디어네. 유우카의 그런 점이 좋아."
"하지만, 이 안은 지금 필요 없어졌습니다."
"왜?"
"아무튼요. 저도 어느 정도 저축은 하고 있고."
아무튼이란다. 뭐, 육아는 상당히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모양이니 본인이 그것을 원한다면 아이를 낳는 게 빠를 수도 있다.
"그 뒤로는, 육아네요. 아이는 두 명 정도가 괜찮을까요."
"그 부분은 엄청 모호하네."
"저는 몇 명이라도 괜찮지만요."
"왜 이쪽을 보고 얘기해?"
왠지 눈이 무서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몇 명이라도 괜찮다는 그녀의 바이탈리티에는 놀라울 따름.
세미나와 샬레에서 격무를 해낼 만큼은 있다.
무엇보다 그녀라면 좋은 엄마가 되겠지. 신기하게도 그런 확신이 있다.
"육아에 관해서는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러니 육아가 끝났을 때를 생각해 보죠."
"결혼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뭐 들어볼까."
"육아가 끝날 때쯤이면 저는 대충 5, 60세 겠죠. 그 무렵까지 어느 정도 저축을 쌓아놓고 여생은 느긋하게 보내고 싶네요. 해외로 이주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어요."
"이상적인 노후네."
"뭐, 대충 이렇네요. 참고가 되셨나요?"
매직펜 뚜껑을 닫고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그녀다운, 멀리까지 내다보고 세운 착실한 인생 설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보드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보며 하나의 의문을 제기한다.
"참고가 됐긴 한데, 유우카."
"네."
"가장 중요한 상대는 어디서 구해?"
침묵. 조금 전까지의 달변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의 고요였다.
가을 해질녘 특유의 시원함도 어우러져 한 구절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볼펜을 빙글빙글 돌린다.
열 번쯤 돌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건...... 때가 되면......."
얼굴을 귀까지 붉히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우물거리며 말한다.
구체적인 인생 설계를 생각할 정도로 강단있으면서 이럴 때는 나이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묻는 것도 멋없는 짓이겠지.
"어쨌든, 여성 시점은 참고가 되네. 당사자 의식이 조금은 생겼을지도 몰라. 고마워."
"...선생님은."
슬슬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해 감사인사를 하고 말을 마치려 하는데 유우카가 다시 입을 연다.
"선생님은, 어떤가요? 신경쓰이는 사람이라든가."
"응? 그러네..... 딱히 희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행복하려나? 아, 하지만 유우카 말대로 착실한 사람이 좋을지도."
"그렇죠!!!!!!"
"목소리 커."
감정 기복이 심한 아이구나.
그게 그녀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고, 선생님."
"네, 뭔가요."
몇 번이고 되풀이한 대화. 이것을 하나씩 쌓아나가면 그녀의 새로운 면모를 한 가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를 알 수 있다.
"평소의 감사한 마음을 선물로 표현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건 확실히 그렇네."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당번 학생들의 노력에 큰 도움을 받고 있죠."
"틀림없이."
"그러니 당번 학생에게 뭔가 보상이 있어도 좋을 거 같아요."
"그러네...... 아, 그러고 보니."
솔직히 명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평소에도 감사를 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지만, 학생 측에서 다시 제안하면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데스크 서랍에서 두 장의 티켓을 꺼낸다.
"여기 두 장의 티켓이 있습니다."
"네."
"이건 거래처에서 양도받은 플라네타리움 티켓입니다."
"좋네요. 로맨틱해요."
"이거, 유우카에게 줄게. 평소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같이 가고 싶은 사람하고 다녀와."
티켓을 한 손에 한 장씩 받아든 유우카는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 고민하고 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마음을 굳힌 듯 "좋아." 하고 중얼거리더니 왼손에 든 티켓을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앗다.
"노아하고 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날 그녀는 바쁜 거 같아서요."
"지금 스마트폰 같은 거 확인 안 했지?"
"...바쁜 거 같아서요."
"네."
"다른 누군가와 가려고 해도 지금부터 사정이 될지도 모르겠고, 딱히 감도 안오고..."
말이 분명치 못하고 머뭇거린다. 뭐,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게 어른의 일이다.
"...그러니 선생님이 책임지고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티켓에 적힌 이 장소가 어딘지 잘 모르겠으니까."
조사하면 되지 않겠느냐 라는 건 세련되지 않은 짓이겠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삼키고 대신 괜찮다는 말을 내뱉는다.
꽃이 피어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약속이니까요."
단 한마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한참 후.
오늘의 업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유우카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샬레의 현관까지 나왔다.
유난히 기분 좋은 그녀를 보고 있으면 이쪽도 기뻐진다.
그녀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하겠지.
"그러고 보니, 유우카."
"네, 뭔가요."
반복되는 믿음의 콜&리스폰스. 이것을 쌓아가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신뢰하고 그녀도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건대, 그녀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그리고 이 대화가 가능한 한 오래 지속되기를.
"아까의 플랜A 성공 확률이 얼마나 돼?"
숫자에 강한 그녀이니 이런 질문은 식은 죽 먹기겠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유우카. 이윽고.
"현재 진행형이고, 상승 중이에요!"
생각했던 대답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
소설모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2463136
댓글 24
아된다
플로우가 물흐르는듯하다
넘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