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4자
#치히로
원문 伊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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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설정 이상 없음. 백업 작업도 완료."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에서 안정성이 엿보였다.
발소리를 죽이고 그녀가 앉은 의자 뒤로 돌아가 그녀의 왼쪽에서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같은 화면을 들여다봤다. 치히로라는 소녀는 웬만한 일로는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 타입인지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집중력이 없기로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이렇게 치히로가 뭘 하는지 궁금해서 내 일도 내팽개치고 그녀의 책상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으로 가볍게 호기심에 들여다본 것은 좋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녀가 보는 컴퓨터 화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내가 늘 사용하는 컴퓨터지만 "그런 기능이 있었어?" 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만지면 어디가 움직이는지 내가 혼자서 추측하는 동안에도 치히로는 타이핑을 계속했다.
"... 지금 뭐 하는 거야?"
여차하면 잡담이라도 좀 할까?
그런 마음으로 그녀의 책상에 다가간 것은 좋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는 좁아졌지만 대화 없이 시간만 흘렀다. 그것이 괜히 어색함을 자아내는 듯한 불안함에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
"와, 깜짝이야."
질문하자마자 치히로의 손이 멈추고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그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등받이에 기댔다. 그녀가 몸을 쭉 뻗자 은은한 샴푸 향이 풍겼다. 왠지 모르게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대조적으로 내 몸은 굳어졌다.
"미안, 집중하는데 방해했어?"
"아니, 마침 딱 적당히 끝났으니까."
작게 한숨을 쉬며 치히로가 대답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로서는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치히로와 얼굴을 마주보고 다시 한 번 컴퓨터를 힐끗 봐도 이전과의 차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를 신경 써서 그런 대답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할 만큼 그녀는 총명하고 상냥한 소녀였다.
으응, 신음하며 치히로가 마우스 휠을 스크롤했다. 화면은 위에서 아래로, 문자는 아래서 위로 흘러갔다.
"이번에는 별 이상은 없었어. 지난번 본격적으로 보안을 강화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는 치히로는 왠지 자랑스러운 듯 했다. 기억하는 것은 본 적 없는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녀의 모습. 원망하는 말을 끝없이 작게 중얼거리며 밤을 새운 보람은 있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모습이여서 나쁘지 않았지만 그걸 언급하고 놀리면 그녀가 화를 낼 것 같아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외부에서 해킹 흔적은 없고, 방화벽도 문제없이 작동 중이야. 여기서 이상한 주소로 접속한 흔적도 없네."
마지막 문장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으며 치히로가 이쪽을 쳐다봤다. 그 모습은 왠지 모르게 놀리는 듯 했다.
"...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당연하지. 애초에 바이러스에 걸리는 원인도 전송된 파일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고 열어본다던지 하는 게 주 원인이니까...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정기점검 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는지 장시간의 작업 뒤 지친 모습으로도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설교보다는 염불에 가까운 분위기라는 것은 비밀이었다.
그런 염불... 이 아니라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몇번이나 들은 덕분에 스스로 수상한 사이트에 접속하는 일은 적은 수준이 아니라 전무했다. 애초에 수상한 사이트가 범람하는 분야는 한정되어 있고 그걸 사무실의 업무용 컴퓨터로 검색하는 건 위험 관리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해킹하는 쪽이 나쁘지만 선생님도 스스로 보호하는 걸 소홀히 하면 안 돼. 항상 말하지만 제일 중요한 거니까."
"그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너무 건성인 대답이 나와버렸다. 이야기를 못 들은 건 아니지만 치히로의 목소리가 왠지 차가웠다. 잘하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찡그린 표정을 보니 이미 늦은 듯 했다.
"하아... 또 처음부터 보안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겠네."
이제는 입버릇이 된 것 같았다.
벌써 몇 번이나 보는 치히로의 한숨. 조심하라고 부탁만 하기에는 역시 나의 서큐리티 의식은 아직 부족한 걸까.
"컴퓨터 내부는 안전하다고 했지만 보안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하기를 15분, 치히로는 "아아." 소리를 내며 의자를 빼고 일어났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고 생각하는 나를 뒤로하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 사무실 안을 돌아다녔다. 발뒤꿈치를 들고 선반 위, 허리를 숙이고 책상 뒤, 아니면 콘센트 안. 가끔씩 "아." 라거나 "진짜..."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빠르게 돌아다녔다.
"자, 이 정도."
치히로는 5분 정도 돌아다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의 탐색에 방해될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앞에 돌아온 치히로의 양손에서 무언가 후두둑 떨어지더니 책상 위에 와르르 굴러다녔다. 하나, 둘, 셋. 내가 손가락으로 세는 사이 그녀는 손가락을 접고 있었다. 그 길쭉한 손가락이 굽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은 왠지 동정심이 들었다.
"도청기가 다섯, 몰래카메라가 셋, 그리고."
부자연스럽게 끊어진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치히로가 말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 대상이 나라는 것은 이 자리에 나와 치히로밖에 없으니 분명하고 시키는 대로 일어섰다. 그녀의 의도도 대충 알 수 있었다.
치히로와 마주 보도록 다가가자 그녀가 양팔을 서서히 뻗었다. 키 차이가 조금 있는 나의 목에 팔을 돌렸다.
내 목덜미를 더듬는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손이 닿을 듯한 거리, 아니 닿은 뒤의 위닝 런 같은 거리감으로 내 시야의 대부분을 치히로의 단아한 얼굴이 차지했다. 꽤나 동요하는 나를 달리 정작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만약 지금 누군가 샬레에 들어온다면 오해를 풀기 어려울 듯 했다. 문에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치히로가 내 목에 손을 감고 있다. 누가 보면 마치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듯한 자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목덜미에서 뭔가 떼는 감각을 느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치히로도 내게 감은 팔을 풀며 멀어졌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떨어져서 왠지 아쉬웠다. 심박을 진정시키는 나를 뒤로하고 그녀는 손가락 사이의 그것을 들어 보였다.
"발신기가 하나... 진짜 몰랐어?"
"응, 전혀."
째려보는 눈빛에 백기 투항이라도 하듯 두 손을 들자 또다시 큰 한숨이 새어나왔다. 전혀 몰랐다면 거짓말이고 짐작가는 상황은 두세 개 있지만 눈치채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능청맞은 나에게 치히로는 다시 한숨을 쉬며 책상 위를 바라봤다.
"우리 애들 건... 세 개 정도인가."
사실 생각보다 줄어들긴 했다. 베리타스 부원들이 설치하는 도청기나 몰래카메라는 치히로가 정기 유지보수를 오면서 반, 반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참고로 그녀의 정기 유지보수는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여기서도 농담을 하면 치히로의 옐로 카드 세 장 째다.
"선생님도 이런 걸 그냥 놔두면 안 돼. 물리적으로도 보안에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새 중요한 프라이버시가 유출될 지도 몰라."
"중요한..."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소리를 냈다. 중요한 프라이버시. 그 말을 머리로 되뇌이며 잠깐 생각했다. 그 시간에 비례해 머릿속에 평소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일이 끝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는 나. 잠깐의 선잠을 자는 나. 잔업으로 골머리를 썩이는 나. 어떻게 생각해도 내일의 업무량이 오늘보다 많아 절망하는 나.
"새어나가면 곤란한 프라이버시는 의외로 없네."
"... 일 중독인 건 알고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안 좋네."
오늘 중 제일 씁쓸한 표정을 짓는 치히로. 당연하지만 그래도 사무실에 뼈를 묻은 건 아니었다. 학생들도 비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다 해도 여기는 일터였다.
"어쨌든 남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쉽게 넘어가는 학생들을 다 받아주는 것도 좋지 않아. 선생님은 물론 학생들도 지켜야 할 선을 착각하게 될 테니까."
"그렇구나."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고 삼키며 대답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 뇌리에는 아까 치히로의 모습이 떠올랐다. 발신기를 찾기 위해 팔을 뻗고 얼굴을 가까이 하는 그녀. 간접적이냐 직접적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그녀도 서슴없이 퍼스널 스페이스를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자각도 없을 듯 했다.
"뭐, 우리 애들한테는 내가 다시 이야기할 거고 그 외 다른 학생들은 선생님이 말해줘."
"응."
"그리고."
치히로가 다시 거리를 좁혔다. 그녀의 오른팔이 내 옆을 지나 목덜미를 감고 손끝이 내 목을 툭 찔렀다. 놀람과 부끄러움으로 이상한 목소리가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자 치히로가 눈썹을 세 번 씰룩였다.
"... 이런 곳을 학생에게 간단히 허락하는 거리감은 시큐리티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치히로는 그렇게 말했다.
업무를 마칠 즈음에는 시계가 간식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엔 너무 늦고 저녁을 먹기엔 너무 이른 시간. 혼자라면 망설이다가 결국 안 먹어도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고 당번 학생에게 꼬르륵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일상이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먹지 않기에는 힘들었다.
두 사람 분의 샌드위치와 디저트로 에클레어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 문을 열자 소파에 편하게 기댄 치히로에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긴장이 풀린 듯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문을 여는 소리에 반응해 치히로가 나를 보고 일어섰다. 내 모습을 보자마자 일부러 일어나 맞이하는 부분에서 상냥한 그녀의 일면이 엿보였다.
"고마워, 선생님. 내 것까지 사게 해서 미안해."
"괜찮아. 그냥 앉아 있어. 내친 김에 커피도 타 올게."
내민 손에 비닐봉지를 건네고 그대로 부엌으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사양하고 자기가 하겠다며 실랑이를 벌였을 텐데 시키는 대로 소파에 앉은 모습을 보아 꽤나 피곤한 듯 했다. 그 솔직한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블랙으로 괜찮지? 아니면 설탕 줄까?"
"아니, 괜찮아. 고마워, 선생님."
머그잔에 커피를 담고 치히로에게 돌아가자 텔레비전에서는 한 기업의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한 잔을 건네고 치히로의 왼쪽 옆에 앉았다. 소파에 풀썩 앉으면 생기를 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텔레비전에 의하면 보안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 뒤 실적이 크게 올랐다고 하는데 인터뷰에 응하는 사장은 만면에 기쁨이 가득한 채 대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단순히 기쁘다기엔 너무 과장되어서 오히려 수상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나오는 소리를 흘려듣고 있는데 기업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그 기업의 이름은 왠지 익숙한 이름이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예전에 치히로가 맡았던 기업의 이름인 듯 했다.
"어라, 저 기업 혹시 치히로가 보안을 담당하는 곳이야?"
"응."
질문을 던져보자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시 말해 보안 측면의 재검토를 치히로에게 맡겼음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보안과 실적이 무슨 연관인지 일반인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사장 본인이 말하는 것이니 분명 뭔가 있는 듯 했다. 아무튼 이것이 치히로와 관련이 있는 것도 틀림 없었다.
"굉장하네, 뭘 한 거야?"
"딱히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어. 기껏해야 정기 유지보수와 약간의 어드바이스 정도."
치히로의 대답에서 약간의 겸손도 느껴졌지만 그 말대로 특별한 일은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았다. 꾸준함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일까.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였지?"
"응.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은 상태. 기억했구나."
"그렇지."
과장스럽게 가슴을 펴자 치히로가 킥킥 웃었다.
"... 그때처럼 나쁜 짓은 없었고?"
이야기의 흐름에서 언젠가 치히로가 대응했던 고객의 개인정보를 빼돌리던 기업이 떠올랐다. 선의의 화이트 해커인 치히로로서는 괴로운 듯 변명하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
"그 뒤로는 뭐 괜찮아. 뭐 그 정도로 대놓고 하는 경우도 드무니까. 그나저나 지금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혹시 걱정을 끼쳤을까?"
머그잔을 돌리며 치히로가 말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 이상으로 그녀에게는 쓰라린 기억이었고 어쩌면 내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후후후. 이상한 질문이네. 혹시 시험하는 거야?"
그 말이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애초에 신뢰를 잃었다면 샬레의 보안을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것이 선의인 것도 확실하고, 그 정도로 신뢰가 무너지기엔 그녀가 쌓아올린 탑이 너무 튼튼하다.
"제대로 하기로 내 입으로 말했으니까."
약속이라고 하기엔 조금 느슨한 형식이었던 것 같지만.
"물론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고 항상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치히로는 그걸 잘 알고 있으니 괜찮을거라 생각해."
텔레비전을 보면 어느새 내용이 바뀌어 귀여운 강아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잠시 강아지를 보며 치유를 하다 보니 치히로의 대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치히로?"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 치히로의 손바닥이 보였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자 나와 마찬가지로 오른쪽을 보는 치히로의 뒷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나도 잘 알 수 있었다.
"아니, 지금은 얼굴 보지 마. 엄청 붉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보고 싶어지는 게 본능인데."
손가락 사이로 치히로의 얼굴이 보이도록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아무래도 그 말은 사실인지 그녀의 얼굴을 가린 오른손 사이로 붉게 물든 뺨이 보였다.
그런 공방을 반복하는 동안 치히로는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소파에 다시 고쳐 앉고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들이켰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항상 왼쪽에 앉지."
"그래?"
"응. 지금도 그렇잖아. 오른쪽이 더 넓은데도."
대화 주제를 바꾸기 위해서인지 치히로가 질문을 던졌다. 말 그대로 치히로의 오른쪽은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인 반명 왼쪽은 두 명만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보통 넓은 쪽에 앉는 것이 당연한데도.
"... 예를 들어 내가 회심의 개그를 쳤다고 생각해 봐."
"어, 뭐라고?"
"계속 들어봐. 그게 치히로의 코드랑 딱 맞아서 치히로가 배꼽 빠지게 웃어.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웃어."
배를 부여잡고 웃는 치히로. 잘 상상이 가는 모습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치히로의 오른쪽에 앉아 있어. 그리고 깜짝 놀라. 귀중한 치히로의 웃는 얼굴이 옆에서 보면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안 보여."
"... 요컨대?"
"치히로의 헤어스타일이 비대칭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그녀는 왼쪽 머리카락만 귀에 걸고 있다. 다시 한 번 보니 푹신한 곱슬머리가 그녀의 견실한 성격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서 왼쪽에서 치히로의 얼굴이 더 잘보인다는 거지."
빙 돌려 미사여구를 붙이긴 했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치히로의 얼굴을 보고 싶으니까. 예전에 그녀의 오른쪽에서 걸으며 왠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안절부절 못했던 것은 비밀이다.
정작 치히로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고 왠지 모를 장난기가 느껴졌다. 좋은 흐름이니 지금이라면 조금 놀려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치히로의 오른쪽 머리를 쓸어올렸다.
"내가 얼굴을 보고 싶을 때마다 치히로의 머리를 만져도 된다면 오른쪽이여도 괜찮은데?"
만지면 잘 관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보드라운 머릿결. 밤샘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지만 그만큼 신경을 쓰는 걸까. 어쨌든 생각보다 촉감이 좋았다.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는 듯한 치유를 받으며 치히로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눈이 마주쳤다.
"... 선생님이라면 괜찮은데."
치히로가 내 손을 잡고 그대로 약하게 잡아당겼다.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온몸으로 치히로와 마주보는 상태가 되었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보고 그녀의 뺨이 엄청나게 붉게 물든 모습도 시각 정보로 확실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분위기란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다수결에 의거하거나 한 명의 리더의 영감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 좋은 것은 대개 앞에 『뭐든』이나 『상관없는』이라는 말이 붙는 종류의 것으로 요컨대 많은 사람들이 고조되면 분위기가 좋아지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뭔가 할 말 없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와 치히로 둘 뿐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합의가 형성되면 돌이킬 수 없는 분위기가 된다. 덧붙여 치히로가 마음만 먹으면 내가 뭔가 해보기도 전에 과반수가 된다.
"... 선생님은 말이야,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보안에 정통한 학생은 지키는 건 물론 반대로 그 약점도 잘 알고 있다고."
"그렇네. 약점을 잘 알고 있으니 지킬 수도 있는 거구나."
"사무실은 넓으니까 찾지 못한 도청기나 몰래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휴게실은 그렇게 넓지 않아서 찾는데 애를 먹지 않거든."
치히로가 주머니에서 책상으로 작은 기기 세 개 정도를 늘어세웠다. 모두 박스 테이프로 빙글빙글 감겨 있어 치밀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 지금 이 휴게실은 밀실이고 감시도 없어. 선생님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해도 외부로 유출되지 않아."
"유출에 대한 가장 좋은 대책은 유출되면 안 되는 일을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시끄러워."
붙잡힌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나머지 치히로의 왼손이 내 목덜미로 향했다. 과연 나의 시큐리티 의식을 이렇게까지 지적하고 싶은 모양이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두 개의 머그잔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가 미지근해지겠네, 설탕 하나도 넣지 않은 전혀 달지 않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절대로 카가미 치히로는 무르지 않다.
그녀 자신의 보안은 물론 여기서 나를 놓칠 만큼 방심하지도 않는다. 일을 벌이는 후배들의 응석을 받아주지도 않고 그녀 자신의 나태함에 응석부리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커피도 블랙이다.
입안에 쓴맛이 퍼졌다. 내 취향은 달달한 쪽이 좋지만 그녀가 그것을 허락할 만큼 무를 리 없었다.
역주: '달다'와 '무르다' 둘 다 일본어로 甘い
역시 하나도 달지 않다.
영거리에서 그녀의 얼굴 왼쪽, 붉게 물든 뺨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댓글 7
캬ㅋㅋㅋㅋ

폭력적인 수준의 무의식적 수컷행동
쿠즈노하도 기함할 미친꼬리치기
이정도면 강간당해도 무죄인 수준의 무브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