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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 #S #드라마 #이오리

원본 by 伊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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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

확 몸을 뒤로 뺐다.

목소리에 놀랐다기보다는 거의 조건반사에 가까웠다.

잠에서 깨어났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떨어지지 마.”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붉은색이었나. 아니, 다른 색이었다.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테트라포드 틈새에 빠지면 못 올라와.

조류가 복잡하게 얽혀 있거든.

기분 내던 학생들이 발을 헛디디는 일은 꽤 흔하니까.”

옆을 돌아보자 가장 먼저 실가닥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은빛 가닥이 빛을 반사하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낚싯줄인가 싶었던 건 아주 잠깐이었고, 곧바로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머리카락이었다.

긴 머리카락.

주인은 말할 것도 없이.

“미안.”

“사과할 일은 아니잖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자, 시야가 단숨에 넓어졌다.

돌이켜보면 망원경을 들여다볼 때처럼, 보고 있는 것만 선명하고 그 외의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밀려드는 파도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너편 기슭, 그리고 넓은 하늘이 들어왔다.

─이오리의 얼굴도.

아주 잘 보였다.

작정하고 찾아온 장소는 아니었다.

내가 운전석, 이오리가 조수석.

그렇게 적당히 가속 페달을 밟았다 뗐다 하며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샌가 도착해 있었을 뿐.

차에서 내려 바다를 찌를 듯 툭 튀어나온 방파제를 따라 한동안 걸어온 곳에 우리는 서 있었다.

“별일이네.”

장마가 끝났다는 뉴스를 들은 게 바로 어제 일이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어디까지가 구름이고 어디서부터가 하늘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날씨가 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경계선은 명료해져 있었다.

윤곽이 뚜렷한 구름을 보니 여름이 왔음을 실감한다.

밖은 햇살이 강렬했지만, 바닷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기온만큼 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가?”

“선생님이 먼저 이렇게 불러내는 거.”

“그런가.”

“응.”

조용한 대화였음에도 신기하게 파도 소리에 섞이지 않고 귓가에 닿았다.

마치 소음의 틈새를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 둘만이 이 대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 될까.

아니, 그렇지는 않겠지.

“이제 완연히 여름이네.”

“그러게.”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화제가 없다.

‘요즘 어때?’라고 묻기엔 적당히 얼굴을 마주치고 있고, 그런 문답은 거리감을 잘못 짚은 것처럼 오해를 살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눈앞의 소녀는 분명히 보이는데, 머릿속은 두드려 털어내는 먼지처럼 흩어졌다 쌓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전부 내 탓이지만.

휘익, 바람이 불어 나는 비틀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바람이 거셌다.

자칫 방심했다간 정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기우뚱하던 몸이 강한 힘에 이끌려 홱 당겨졌다.

반대 방향으로 중심을 잃으려는 찰나, 이번엔 등에 손이 닿으며 몸을 바로 세워주었다.

꼭 마네킹 인형이 된 기분이다.

똑바로 서자, 그렇게 만든 이오리가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으로 가자, 선생님. 여기 있다간 날아가 버리겠어.”

자, 하며 다시 한번 소매를 잡아당겼다 놓더니 이오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다가는 금세 뒤를 돌아보고,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조금 더 여기 있고 싶었지만, 아까보다 강한 바람이 불어 포기했다.

왔던 길을 다 돌아 나와, 이번엔 파도치는 해변을 따라 걸어갔다.

어디까지 갈지는 전적으로 앞서 걷는 그녀에게 달렸지만, 이대로 가봤자 세워둔 차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니 그리 멀리 가지는 않을 것이다.

모래사장에 푹푹 빠지는 발과 가끔 발등을 적시는 바닷물의 감촉에 익숙해질 무렵, 시야가 주변으로 넓어졌다.

근처에 사람은 없었다.

숨겨진 명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곳은 그리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아니다.

해는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사이에 꽤 오래 머물렀던 모양이다.

유달리 맑은 날씨였기에 시간의 흐름을 더욱 느끼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앞의 그녀는 가끔 나처럼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언가 느낀 듯 가만히 응시하곤 했다.

그 1초, 1초마다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 깃든 감수성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듯했다.

문득 시야를 은빛이 가로질렀다.

그녀는 손등으로 그것을 누르려 했지만, 머리카락은 바람이 흐르는 대로 깃털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

이오리의 머리카락은 길다.

조금만 흔들려도 바다에 닿을 것 같을 정도로.

그게 걱정되어 살며시, 묶인 머리카락 한쪽을 손으로 받쳐 들었다.

가까이서 본 그것은 실이라기보다 집어 든 진검에 가까운 서늘한 광채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느껴지는 건, 내가 그녀의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일까.

“왜?”

“…아니, 젖을 것 같아서.”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오리는 대답 없이 다시 뒤돌아 걷는다.

나는 머리카락을 받친 채 뒤를 따라 걸었다.

미묘한 감각이 전해지는 듯했다.

아주 조금 속도를 높이거나 늦추는 것.

찰나의 순간 멈추려 하는 것.

시선이 움직이는 것.

모든 것이 미세한 진동이 되어 전해졌다.

마치 실전화기 같았다.

그 진동 하나하나가 목소리처럼 무언가를 전해오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나 안타깝고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놓으면 젖어버릴 것만 같아서.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의 망가진 열차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로.

정신없이 바빴기에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요한, 적어도 중요한 약속을 했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거운 돌덩이 같은 죄책감이 되어 짓누르고 있다.

언제쯤 말해야 약속을 지킨 게 될까.

아니면 이미 어긴 게 된 걸까.

기한 따위는 지나버린 걸까.

기한 없는 약속은 저주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생각이 든다.

“뭐야.”

서늘하게, 단 두 마디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다음에 이어질 말은 분명 나를.

“사과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상관없지만.

그런 말이 바람에 흩어지지 않고 내 가슴을 일직선으로 꿰뚫었다.

이오리가 바닷물을 찼다.

첨벙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른 작은 물방울 속에 분명히 내가 비치고 있었다.

“아, 니…….”

부정하고 싶은 건지,

부정의 부정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변명을 하고 싶은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채로 시간을 벌려는 말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소금물에 녹아 사라졌다.

의아했는지 이오리가 이쪽을 본다.

진홍빛 눈동자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매우 예리해 보였다.

순수하기에 날카로운, 마치 꿰뚫린 내 가슴에서 같은 색의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그런 색.

“흐음.”

꿰뚫어 보였다고 직감했다.

모래사장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가 좌초되어 있었다.

망연자실하다는 건 이런 기분을 말하는 것이리라.

언젠가 보았던, 해변으로 밀려온 물고기가 떠올랐다.

“…결국,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으니까.”

제대로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게 약속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아직 하지 않았으니 약속을 어긴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태만은 독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을 서서히 부식시키고, 이윽고 끊어버린다.

나는 파도치는 곳을 벗어나 모래사장 쪽으로 비껴 섰다.

이오리는 반대로 바다 쪽으로 나아갔다.

발가락부터 발목까지. 내 손안에 있던 긴 머리카락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그것이 바다에 닿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 아래까지 잠길 정도로 나아가더니, 그제야 멈춰 섰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다시 들이마시고.

그러고 나서.

“괜찮아.”

“어?”

나는 비겁하게도 되물었다.

되묻고 말았다.

그녀가 한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믿고 싶어서,

그 말이 진실임을 확인하고 싶어서.

물론 그런 속내까지 다 들키고 말았다.

이오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괜찮다고. 용서할게. 신경 쓰지 마.”

이쪽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모래사장으로 도망친 내 시선에서 본 그녀는 지는 해를 등지고 있었다.

역광 속에서 진홍빛 눈동자가 더욱 도드라졌다.

타오르는 것 같았다.

불이 붙은 도화선 같았다.

긴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햇빛을 반사했다.

철로 만든 실 같은 광택을 띠며 흐트러짐 없이 바람에 나부꼈다.

어찌 보면 흉기 같았다.

시선도, 긴 트윈테일도,

하나하나가 나를 찌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작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는 가시 돋친 구석이 전혀 없었고, 퉁명스러우면서도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두려워했던 그것이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다정한 무언가라는 걸 알았을 때, 안도감보다 큰 기쁨이 가슴을 채웠다.

그렇구나.

그녀는, 이오리는 제대로 화를 내니까.

그래서 나는 용서받고 싶은 거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대충 흐지부지 넘기고,

잘못은 피장파장이라며 변명을 늘어놓고.

다 그런 거 아니겠냐며 어설픈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그렇게 살아왔기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얼버무리는 것도 미지근한 물 같은 다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오리의 그것 또한 분명한 다정함의 형태였고, 그런 건 눈을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화내는 만큼 진심이고,

얼굴을 찌푸리는 만큼 인내하며,

큰소리를 내는 만큼 어떻게든 해보려 애쓴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만큼 너그럽고,

‘용서할게’라고 말하는 만큼 고민했으며,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하는 만큼 다정하다.

목소리를 높여 화내는 것도,

파도 소리에 묻힐 듯한 목소리로 용서하는 것도.

모두 그녀만의 따스한 다정함인 것이다.

내가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고마워.”

“됐어, 별것도 아닌데.”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신기하다,

정말로 신기하다.

이오리는 첨벙첨벙 파도를 헤치며 모래사장으로 돌아온다.

남겨진 그녀의 발자국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샌가 손이 닿을 거리에 와 있다.

긴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그것이 빛을 머금었다가 흩뿌린다.

반짝이는 광채와 동시에 이오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음엔 제대로 해.”

“…노력할게.”

“그럼, 자.”

눈앞에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이 내밀어졌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지만, 새삼스레 이런 아이 같은 방식을 쓰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음.”

주저하고 있자 손가락이 더 앞으로 불쑥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똑같이 손가락을 내밀자, 다가온 손가락이 얽혀 들었다.

바닷바람이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을 앗아갔다.

붉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작은 입술 사이로 예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멜로디일 텐데도 신기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약속을 나누는 기분이었다.

짧은 노래가 끝나고 새끼손가락이 떨어지는 순간, 마치 그것들을 실이 잇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실이 은색이었는지, 붉은색이었는지.

나에게는 너무나 눈부셔서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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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8.06번역

소설 핫산) 은빛 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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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antireal_honpo작가
게시물 15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6.08.06 22:25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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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나
ㅇDC
ㅇㅇ126.08.07

ttt때 말하는건가

ㅇDC
ㅇㅇ226.08.07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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