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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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눈앞의 뜨끈한 순대국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집어 넣었다.
"좋다.."
국물의 매운 맛과 고기 향, 따뜻한 느낌, 그리고 그것과 함께 어우러지는 쌀밥의 맛.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와서 한 숟갈 입 속으로 집어넣는 맛은 그 어느 때보다 최고였다.
순대국밥은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민까지 없애주는 건 아니였다. 내일 돌아간다는 걸 애들한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리고 그걸 전한다면 휴가의 마지막 날이 될 오늘 뭘 할 지 이런 것들 말이다.
"아 참. 내일 돌아가려고 하는데."
"네?"
주사위는 던져졌다. 순간 숟가락을 들고 맛있게, 행복한 표정으로 국밥을 입에 집어넣고 있던 셋의 손이 멈추었다.
"분명 12월 31일까지라고 그러지 않으셨나요?"
"원래는 그랬지.."
최근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우연찮게 만난 기자 친구에게 들켜서 기사가 나가게 되었으며, 유우카가 한 번 퍼져 버렸다. 또한 즉흥적으로 나온 여행이다 보니까 다른 애들도 티를 내지는 않아도, 각자 나름대로 한계에 도달해 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말이지. 그리고 내가 키보토스를 너무 오래 비운 것 같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만.."
물론 다들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긴 했다.
"그러니까,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 제대로 즐기고 가는 거야. 알겠지?"
"네에.."
나는 애써 유우카와 노아, 하루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셋은 침울한 표정이었다. 일단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걸 전하긴 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생각이 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아쉽지 않게 재밌게 놀면서 진을 빼 놓는 일이 남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밥을 다 먹은 뒤 식당을 나서, '할 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여기가 마냥 스키나 스노우보드밖에 즐길 게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제 큰일 날 뻔 하긴 했어도 오락실 같은 게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일이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다른 즐길 거리가 있다고는 해도 이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스키였다. 그러나 스키를 타는 게 폭설 때문에 불가능해진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나마 놀 게 있었던 오락실 같은 곳은..
"안 돼요."
"정말이지.. 그런 일을 당하셔놓고도.."
유우카도 그렇고, 노아도 그렇고, 심지어 하루나도, 다들 표정이 무섭다. 알았어. 알았어.
..바로 어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들은 진작에 후보군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결국 놀 게 없었던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물론 즐길 게 아예 없지는 않았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안내판을 보니, 어제 봤을 때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구석 쪽에 '공용 주방'이라는 글자가 오븐 마크 아래에 써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봤을 때 당시에는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갔었지만..
'어?'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열어 보자, 공용 주방의 사용 가치는 순식간에 하늘을 뚫었다. 하루나가 만들어 두었지만, 어느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비프 웰링턴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 게 보였다. 마침 공용 주방의 존재도 확인했겠다. 딱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이보다 더할 나위가 없었다고 생각이 든 나는, 하루나를 불러 물었다.
"하루나?"
"네~ 선생님."
"이거 근데 우리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음.. 그렇긴 한데 말이죠.."
여의치 않은 상황이기는 했어도 음식을 버리게 생긴 상황에 아쉬움을 느낀 하루나에게 나는 구원의 손길과 마수를 동시에 내밀었다.
"여기 공용 주방이 있는 것 같던데. 오븐이 있지 않을까?"
웰링턴 요리 자체는 거의 끝났지만, 하루나의 성격 상 곁들여 먹을 요리를 빼 놓을 리가 없고, 웰링턴의 격에 어울리는 사이드 디쉬를 만들려면 당연히 힘이 들 수 밖에 없다. 요리 하면서 진을 빼 놓고, 피날레로 미식을 즐길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매부 좋고 누이 좋다는 게 아닐까.
"네. 좋아요!"
그리고 하루나와 나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제자들은, 그 떡밥을 보기 좋게 꽈악 물고 말았다.
*
일단 아침을 먹고 나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은, 놀랍게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집에서 챙겨 온 닌텐도 스위치 덕분이었다.
닌텐도라는 회사의, Wii부터 이어 온 게임에 대한 철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기기는 크게 게임을 파고들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과 즐기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우리는 수많은 게임들을 즐기며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말도 안돼.. 수련회 메타*로 뒤집히다니.."
"우와. 선생님만 한 번도 못 이겼네요?"
"으으.."
*마리오 파티 슈퍼스타즈에서, 우승자를 결정하기 전에 보너스 점수를 주는 시스템의 속어. 게임이 끝난 이후에 운이 크게 작용하는 요소를 통해 우승 결정에 쓰이는 점수를 다량으로 퍼주는 이벤트가 있다. 여기서 우승자가 뒤집히는 경우가 부지기수.
물론 심심하지 않다고 했지 열이 뻗치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다.
"끄아악!"
나는 마지막 게임을 수련회 메타로 인한 대역전패로 마감한 후 머리를 쥐어 뜯고, 프로콘을 집어 던질 뻔 했지만,
"그런데 지금이 몇 시죠?"
노아의 말 덕분에 이성을 잡을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7시가 넘어 있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했지만 그런 고민이 무색했던 것이다. 어느새 창문 밖을 보니 하늘도 노을이 지는 단계를 한참 넘어서서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어라. 벌써 저녁 먹을 때가 됐네."
나는 닌텐도와 TV의 전원을 끄고, 냉장고로 향해 안에 들어있던 재료들을 꺼냈다. 재료들을 보니까 기대감에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자. 그럼 피날레를 장식하러 가 볼까?"
"네!"
모두가 기대했던, 이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하러.
*
스키장에 와서 먹는 웰링턴의 맛은 여행이라는 보정 요소를 빼고 따져 보아도 그 자체로 천상 그 자체였다. 애초에 손이 많이 간다는 점 때문에 나도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을 뿐더러, 웰링턴에 곁들여 먹는 가니쉬는 엄청난 조화를 이루어 마치 파인 다이닝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하루나 씨.. 이런 걸 지금까지 혼자만 드셨어요..?"
배가 불러 노곤노곤해진 유우카가 귀여움과 행복함이 흘러 내리는 표정으로 하루나에게 물었다.
"이걸 먹고 나니까 하루나 씨가 왜 맛없는 식당들을 폭파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유우카 짱. 하루나 씨가 밀레니엄에서 그런 행동을 하고 다녔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엑."
불 옆에 있느라 이마에 땀이 맺혀 있는 하루나는 옆에서 그 대화를 들으면서, 뿌듯하다는 듯이 그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하루나."
"네! 선생님."
"그래도 식당 폭파는 좀 줄이는 게 좋겠어.."
"..."
"듣고 있어?"
하루나는 애써 내 시선을 피했다.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나..?
어쨌든 최고의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 씻고, 자기 전까지 또 게임을 즐기다가 각자 잠자리로 향했다.
침대에 누우려고 했는데, 옆에 놔두었던 휴대폰에서 우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문자를 받을 만 한 일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나는 문자를 열어 보았다.
맞다. 내 차.
문자의 내용은, 대충 '차가 다 고쳐졌으니, 내일 와서 찾아가세요'였다. 딱 예상에 맞춰 끝났고, 정말 다행이었다. 차가 고쳐지는 게 늦어졌다면. 내일 복귀하기로 한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기에.
"다행이다.. 다행이야.."
나는 그렇게 몇 마디 되뇌이면서, 휴대폰을 침대 옆의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잠이 잘 오지는 않았지만, 내일 운전을 해야 했기에 나는 이불을 덮고 잠시 뒤척이다가, 잠에 들..
"으응..?"
려고 하는 순간. 침대 옆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 들었다.
방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추욱 늘어뜨린 꼬리가 다리 사이로 보이는 걸 보니 아마도 하루나일 것이다.
"어.. 왜?"
하루나는 말 없이, 그대로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왜?!"
나는 곧바로 다급해졌다.
거리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가까워진다. 조금은 거칠어진 숨소리와, 무언가 투둑 투둑 떨어져 나가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나는 내 오감들이 전해 준 정보를 종합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올 것이 왔구나.
"어어.. 하루나..?"
"선생님.."
위험한 목소리다. 하루나의 평소와는 사뭇 다른 아련한 목소리에서 색기와 요염함이 느껴진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계속>
오늘 작가의 말은 한 마디로 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디시에 야설 쓰면 썰리나요?"
재밌게 보셨으면 개추 댓글 한번씩만 해주세요
댓글 21

어제 보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구석 쪽에 뷰지 두번들어감 오타인듯!
수정완료

나도 궁금하다 야설 어느정도까지 써도 되는지



야설 써도 안짤리던데?

쫄리면 노피아ㄱ?
있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