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기구를 강하게 틀어 약간 으슬으슬한 느낌이 드는 여름날에도. 온열 기구를 강하게 틀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겨울날에도.
“저기, 저 위에 거.”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거 바로 왼쪽 거.”
“이거요?”
“그래. 그거야.”
“네. 여기 있어요.”
직접 손이 닿지 못하는 담배 진열대에서 본인이 원하는 단 하나의 담배를 고르기 위해 카운터의 사장 혹은 아르바이트생과 교감하는 흡연자들의 모습은 1년 365일 편의점에서 바리에이션까지 외우도록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광경이다.
그 교감을 원만하게 풀어나가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인물과 그렇지 못해 기어코 불미스러운 결말에 이르고야 마는 인물. 두 부류로 나뉘기는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의 이 맥락 속에서, 손님이 구매하려고 하는 물건이 담배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카운터 뒤’라는 상징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쓰디쓴 일상의 회색빛 동반자’가 아닌 ‘은색 재킷의 치명적인 동반자’인 이곳은,
키보토스 연방수사동아리 부설 편의점, ‘엔젤 24’이다.
원래대로라면 달콤한 캐러멜이 안에 들어있을 법한 종이 포장 상자로 한 번. 그 위에 무엇보다 신뢰성이 중요한 ‘탄알’의 신뢰성 보장을 위한 지나치게 위생적이고 믿음직한, 그러면서도 급한 상황에서 손톱으로 한번 그으면 곧바로 개봉할 수 있을 법한 비닐 포장으로 다시 한번.
본인의 청춘이라는 도화지에 연분홍빛 파스텔로 스케치해 내려가고 있는 한 어린 날의 소녀는, 손에 탄알 상자를 한 아름 안고 아무렇지 않은 듯 활짝 웃으며 편의점을 나섰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어서려다, 그 소녀가 양팔에 짐을 한 아름 안은 모습을 보고 문을 당겨 열어 작은 배려를 베푸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 누군가는 소녀가 편의점을 완전히 나선 후에도 곧장 들어서지 않고 문을 열어둔 채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누군가가 하는 것이라고는 본인 시야에서 그 소녀가 사라질 때까지 지긋이 응시할 뿐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그의 외양과 행동을 보았다면 그가 음흉한 생각을 품고 이런 호의를 베풀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그는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착해빠진 사람이었다.
저 아이가 편의점의 얼룩 없는 투명한 유리문을 나서 본인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돌부리에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물건을 다 흘리지 않을까- 하는 불필요한 노파심에 본인이 안심될 때까지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그 누군가는, 전기세 내 줄 거냐는 아르바이트생의 일갈에 “아”라는 단말마와 함께 헤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신기한 세상이야.”
시야에서 사라진 ‘학생’을 뒤로한 채 편의점에 들어서는 그가 남기는 방금 상황의 짤막한 감상평이었다.
그는 편의점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것만을 원했다는 듯 곧바로 카운터로 몸을 돌렸다.
“항상 태우는 걸로 부탁해.”
키보토스의 모두에게 모범과 삶의 귀감이 되는 존재가 편의점에 와서 제일 먼저 찾는 물건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물건. 그러나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존재들이라면 그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물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마음의 다리를 걷고 있는 그에게 항상 필요한 쓰디쓴 일상의 회색빛 동반자.
그의 주문에, 아르바이트생은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듯 그에게 자격의 증표를 요구하고,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속에서 자격의 증표를 내놓는다.
곧 카운터 밑에서 조그마한 회색빛 금고가 튀어나왔다. 금고의 인식 장치에 자격의 증표, 신분증을 읽힌 아르바이트생은 벽에 걸려있던 열쇠로 금고를 개봉하였다.
그의 세계의 룰대로라면 원래 탄알 대신 편의점의 카운터 뒤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어야 할 물건들이 금고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작은 금고에서 담뱃갑 하나를 꺼낸 뒤, 곧바로 금고를 다시 봉인해 카운터 밑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값을 지불하기 위해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부드럽게 내밀었다. 유효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꾸준히 갱신해 주지만 곧바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느라 색이 바래고 마는 노란색 신용카드였다.
카드가 포스기에 물렸다가, 빠져나온다. 동시에, 그의 시간이 약간 깎여나갔다. 아주 약간 깎여나갔다. 지금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깎여나갔다.
“오늘도 수고해.”
항상 자리를 지키며, 찾아오는 모두를 천사의 환한 미소로 응대하는 작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는, 웃으며 담뱃갑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편의점을 나섰다.
실내를 나서자 빌어먹을 폭염이 내리쬐고 있고, 개와 고양이가 혀를 내밀고 바닥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그의 셔츠도 이미 땀으로 젖어 색이 바뀐 지 오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지금의 그에게 ‘실내’는 질색이었다.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곳에서 활자와 청색광에 치여 죽는 것 보다는, 암만 덥더라도 잠시 답답한 공간을 박차고 나와 숨을 돌리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담뱃갑의 포장을 뜯는 그였다.
그러나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진동은 그에게 짤막한 5분의 휴식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진동을 무시할까도 잠시 생각해 보았던 그였지만 차마 그런 당돌한 일을 저지르기엔 너무나도 착해빠졌던 그는 진동을 외면하지 못하고, 휴식은 글렀다는 듯 담뱃갑을 개봉하던 손을 멈춘 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인을 확인했다.
그는 침을 꿀떡 삼킨 뒤, 휴대전화 액정 위의 수신 버튼을 짧게 터치하고 그대로 휴대전화를 귀로 가져갔다.
수신 버튼을 누르고 전화가 연결되기 전 찰나의 순간 동안 짧은 한숨을 내뱉는 그였다. 그러나 한숨이 부담감의 징조, 혹은 발휘 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본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의지를 다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여보세요.”
“선생님, 지금- 적이..!”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숨찬 다급한 목소리와 총성은 그의 얼굴을 순식간에 창백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는 태블릿 PC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얼마 멀지 않은 야외 주차장이었다.
작은 은색 승용차에 올라타 곧바로 시동을 걸고, 엔진이 허락하는 안에서 최고 속력으로 악셀을 밟는다.
“제발.. 제발.. 도착할 때까지만..”
한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려가는 모습에서 능숙한 드라이버의 연륜이 느껴지지만 이와는 대비되게 미친 듯이 뜯겨나가고 있는 나머지 한 손의 손톱은 남아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전혀 그러지 않는 그의, ‘패닉’의 시그널.
그의 입에서 무어라고 흘러나오는 소리는, 어느새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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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 아닙니다 저 선생 눈 애꾸되고 팔 꺾이고 어깨 관통당하고 그런거 아예 못써요
한 10화 안팎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거 쓰는동안 휴가소설은 잠시 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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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리어스에 눈을 떴구나 흐흐흐
일상물만 쓰던 놈이 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