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XX월 XX+80일 10:01
선생 치료 시작 80일째, 아비도스 고등학교 대책위원회 부실
"그럼 호시노 선배, 며칠 전 보았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음... 그러니까 아저씨가 본 건 말이지..."
잠시 뜸을 들이는 호시노, 그 모습을 본 선생은 답답할 따름이었으나,
'그런 모습을 보여선 안 돼...'
여유없는 그의 모습을 보인 것은 아비도스에서 아야네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아비도스 교외와 사막의 경계 지점을 순찰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아니 근데 글쎄 거기서 퍼런 빛이 뿜어져나오는거 아니겠어?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아무래도 좀 겁이 많은 성격이랄까~"
"웃기지 마 선배! 겁이 많은 사람이 비나의 레이저를 방패로 막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으헤~ 세리카 쨩 너무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라고~"
"그 빛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선배?"
"음..... 그러니까 뭔가 빛이 뿜어져는 나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심어둔 전구라기보다는 무슨 물길처럼 여기저기로 퍼져있었단 말이지... 처음 보고 나선 사막 괴물의 핏줄이 그대로 드러난 줄 알았다니까?"
"뭐, 뭐야.... 괴, 괴물 같은게 있을 리 없잖아!"
"그치만 세리카 쨩 지금 덜덜 떨고 있네요☆"
"아 진짜! 노노미 선배까지 그러지 말고!"
"아하하...."
잠시 간의 소란이 있고 나서, 호시노의 목격담을 토대로 정리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그 빛은 야간에만 관측이 가능하다.
둘째, 전후관계를 알 수 없으나, 모래로 이뤄진 사막에 기이한 '균열'이 일어났고, 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셋째, 빛의 밝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확신할 수 없으나 약간의 규칙성을 가지고 변광(變光)이 나타나고 있었다.
"....일단 이 정도라는거네. 호시노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도움이 되었어. 어떠한 현상인지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져."
"그렇게 띄워줄 필요는 없다고 선생~"
"하지만."
순간 선생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역시 그 빛은 직접 확인해야할 것 같네. 호시노, 빛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언제야?"
"으음... 그러니까 내가 순찰을 마친 시간이 대략 새벽 5시 어간이었고... 학교로 돌아온게 7시였는데 중간에 들러서 다시 한 번 봤을 때까까지는 확실히 보였달까..."
"그럼 아야네. 오늘 기상예보에서 일출 시각과 일몰시각을 대략적으로 알려줄래?"
"네!... 일출 시각은 6시 48분....일몰은 5시 44분이에요!"
"으음.... 으으음..... 아 안되겠다. 세리카, 혹시 남는 종이 있어? 작은 종이도 되고 이면지도 상관없어."
무언가 고민하던 선생이 별안간 종이를 부탁한다. 아무래도 생각만으로는 정리가 원활하지 않던 모양.
"응? 종이? 아아 일단 알았어! 잠깐만..."
세리카가 종이를 찾으러 간 사이 노노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생에게 질문한다.
"그렇지만 선생님.... 여기서 밤을 새는 건 너무 열악하지 않을까요...? 당장 씻고 주무실 공간도 마땅치 않은데..."
"응, 방법이 있어."
"으헤~ 시로코 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아저씨는 다 알고 있는데 말이지. 그럼 반칙이라고?"
호시노의 뼈있는 제지에 시로코의 양 귀가 축 늘어진다. 그 사이 세리카가 종이를 가져오자, 탁자 위에 놓인 사인펜을 집어들고 계산을 시작하는 선생이었다.
06:48-06:00=BMNT
17:44-16:56=EENT
"선생님...? 그건 무슨...?"
"........오늘 오후 4시 50분에 그 위치로 갈거야."
"응? 그치만 선배가 그걸 목격한건 새벽인데?"
"만일 그 빛이 발생하는 조건이 해가 떨어지고 난 뒤라고 한다면, 그것이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는데. 호시노가 이야기해준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면 대략 오후 4시 50분 어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 50분 어간까지는 그 빛이 보일 가능성이 높아."
"아저씨는 가끔 선생이 무서워.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이 이렇게 가끔씩 날카로워지니까 말이야."
"그치만 선생님. 이 시간대라고 확신할 수 있는 기준이 따로 있으세요?"
"....해상박명초와 해상박명종.*"
"해... 뭐라고....?"
"아! 들어본 적 있어요!"
*해상박명초: BMNT(Before of Morning Nautical Twilight), 일출 전 태양이 수평선에서 12도 아래 있을 때의 시간. 이 시기에는 빛의 산란 현상인 박명(Twilight)이 발생하며 이 때의 시간은 48분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해상박명종은 EENT(End of Evening Nautical Twilight), 반대로 일몰 후 태양이 수평선 아래 12도 영역 있을 때의 시간을 의미한다.
아야네가 두 개념을 천천히 설명하자 대부분은 그 내용을 이해하는 모양새였다. 세리카가 다시 손을 들고 질문한다.
"근데! 어쨌든 호시노 선배가 그걸 목격한게 새벽이라면 반대로 저녁 시간대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거 아니야? 어쩌면 그게 자정 넘어서부터라든가 그때부터 보이는거라면...."
"확실히... 세리카 쨩의 말이 맞네요... 아비도스 사막의 밤은 생각보다 추운데..."
"어디까지나 호시노가 목격한 현상이 밤이 되면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세운 계획이야. 때마침 해상박명초 시간대인 6시에도 보였다고 했으니, 박명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관측이 되던 것이 해가 뜨면서 점차 사라지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응,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면 선생님의 추론이 맞을거야."
".......어.....아까 호시노 선배가 했던 말에 나도 동의할래. 선생님은 대체 어디서 이런 걸 배워갖고 온거야?"
머쓱한 듯 웃음을 짓는 선생이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어딘가 모를 허탈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 정도 간단한 계산에도 필기라니... 벌써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안 되는데...'
약을 먹지 않는다면 그를 지켜줄 방패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고, 약을 먹는다면 그의 신체능력 중 적잖은 부분을 포기해야만 했다. 당장 지금의 계산도 과거의 그라면 암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수준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는 주간 시간대를 피한, 저녁 시간대부터 기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을 뿐.
'다음에는 약을 바꿔달라고 해야겠어. 공통적인 문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자자, 그럼 이제 대략적인 논의는 끝난거고, 아저씨는 아침부터 머리를 썼더니 벌써 출출한데 말이지~"
"응응! 그럼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봐요☆"
'일단 이쯤인가...'
부디 괴현상이 그저 광물에 의한 산란이나 오로라 정도로 끝나길 바라고 있던 선생이었다. 물론 극지방도 아닌데 오로라가 발생할리는 없지만, 여기는 키보토스니까.
~~~
20XX년 XX월 XX+80일 11:47
선생 치료 시작 80일째, 게헨나 선도부장실
-사각사각.
-슥슥, 사각, 슥.
-촥. 스걱스걱, 촥.
정적 속 오로지 펜이 오가는 소리,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들리는 한숨소리만이 부장실을 채우고 있었다.
'.....보내는 게 맞는 일이었나 모르겠네.'
일순간 히나가 펜을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무언가 고민이 있거나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는 습관적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히나의 버릇이었다.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파견명령서가 놓여있다. 방금 전까지의 서류와는 퍽 다른 분위기.
[선도부 일반명령 제1557호(파견)]
소속 및 성명: 게헨나 학원 선도부 2학년 시로미 이오리
명: 게헨나 선도부 정보처
보: 블랙마켓 백색요원
20XX년 XX월 XX+80일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 (인)
3학년이 된 히나가 가장 먼저 실시한 일 중 하나는 정보부 외에 게헨나 내부의 정보처를 신설한 것이었다. 정보부가 수집한 각종 정보의 종착지는 거진 선도부였지만, 이와 별개로 만마전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선도부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는 처부를 만들어 정보 수집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정보부와의 중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선도부 내부에서 적잖았지만, 기존 정보부의 인력이 선도부로 합류할 의사를 밝혔다는 점과 함께, 결정적으로 마코토의 무관심이라는 카드가 제시되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후문.
'......일단은 내가 인지하고 있으니까...'
정보처가 신설된 직후 선도부는 명시된 임무 외에도 정보처를 독자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별도의 휴가 명령을 거치지 않고 파견 명령을 내면서 만마전의 각종 태클을 피해가는 용도가 그것이다. 정보활동을 통해 선도부의 작전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명분이라면 항상 선도부의 전투력으로 트집을 잡는 마코토의 입을 다물게 하기는 충분했으니.
'..........흠.'
다만 파견(을 빙자한 휴가)을 보낸 대상자가 아직도 후배의 죽음으로부터 쉬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오리였다.
~~~
"이오리."
"ㅇ, 응? 아, 맞다. 오늘 부탁한 게 있었지? 조금만 기다려줘 금방 끝나."
".......내가 오늘 뭔가 부탁한 일은 없었는데...?"
"응? 어....아! 그래 내 정신좀 봐? 그건 어제였네? 아하하... 근데 무슨 일이야?"
~~~
히나가 아는 이오리는 적어도 날짜를 착각할 정도로 여유가 없는 삶을 살진 않았다. 물론 이런 일이 가끔 있는 일이라면 전날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가끔 하는 착각 정도가 아니라,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가끔 남들 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일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히나 본인과, 아코의 보고를 통해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바.
지금의 선도부에는 이오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학생의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언젠가는 선도부장을 맡아주어야 할 이오리였기에.
".....하. 모쪼록 귀양보낸걸로 생각하지만 않아줬으면 좋겠는데..."
혼잣말과 함께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의 점심은 샌드위치. 요즘 맛들인 커스텀 샌드위치 가게에서 히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걸작품'이었다.
'나중에 선생님과 한 번 같이 가볼까...?'
선생. 그녀에게 있어서 고된 일과 중 수면과 함께 거의 유이한 활력소. 고민과 업무에 치인 오늘의 히나에게 무의식 속 나타난 선생의 이미지는 히나로 하여금 절로 미소짓게 하였다.
-똑똑똑.
".....들어와."
-끼이이익...
"히나 부장님. 아코입니....앗! 엣! 읏! 식사중이셨군요! 조, 조금 있다 다시 찾아뵙겠습ㅡ"
"아니 괜찮아. 아코는 점심 먹었어?"
"네? 아 네! 저는 방금 먹고 왔죠!"
들어오자마자 페이스를 잃어버린 채 안절부절 못하는 아코를 보며 히나는 그저 피식하고 웃는다.
"후훗. 그래 잘 했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아코?"
"아 네네! 다름이 아니라 정보처에서 보고한 특별 정보 보고가 들어왔어요. 아마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 건'에 대한 결과 보고 같은데..."
"......일단 읽어볼까."
샌드위치를 잠시 내려놓고, 아코가 준 파일철을 받아 펼쳐본다. 복잡한 미사여구를 본능적으로 배제한 채 글을 읽던 히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다시 아코에게 건네준다.
".....그러니까 밤마다 지표면의 갈라진 틈 사이에서 발생하는 푸른 빛이 지속되고 있다는 거고. 확신은 못하지만 어떠한 고에너지 반응의 일종으로 확인된다는 이야기네."
".....정보부에서 오늘 메모보고로 보내준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어요."
밑줄친 부분을 빠르게 읽어나간 아코가 답한다.
"우리 정보처와 정보부가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면 바로 조사에 나서는 게 맞을 것 같네. 오후에.... 2개 분대 정도 준비해줘."
"네! 믿음직한 부원들로 보내겠습니다!"
"아니. 내가 직접 갈거야."
"네네 알겠ㅡ......네?!"
"...왜 그래?"
"아, 아, 아니 그것이... 일단 고에너지 반응이라고 한다면 부장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럼 더더욱 내가 가야지."
"아......."
잠깐의 정적. 아코가 다시 입을 연다.
"......제가 말리더라도 가실거죠?"
"응."
"......오후에는 상황실도 대기시켜놓을거에요."
아코의 눈빛을 본 히나는 이것마저 거절하면 정말로 아코 본인이 직접 따라나서겠다는 강수를 둘 것임을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었다.
"......알았어. 같이 가는 부원들은 혹시 모르니 개인 보호장구를 든든히 갖추고 나오라고 지시해주고. 그리고 지표면의 균열이잖아? 온천개발부가 날뛸 수 있으니 작전 지역은 현시간부로 접근통제야."
~~~
20XX년 XX월 XX+80일 13:50
선생 치료 시작 80일째, 트리니티 티파티 테라스
"나기사 님. 오늘 오후에는 일정을 비워두라고 하셨는데, 혹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저희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
"마음만 받을게요 행정관. 이번 건은 제가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기타 예정된 업무에 집중하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오늘은 정시에 모두 퇴근하세요. 경우에 따라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를 보좌하는 행정관의 배웅을 받고 테라스를 벗어나 회랑을 걷기 시작한다.
~~~
"........정면돌파입니다."
"그래서입니다. 그 어떠한 정치적 수사도 없이, 오로지 정공법으로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 진정 바라는 모습은 그런 모습일테니까요."
".....알아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법은 되려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죠. 선생님께서 이 일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미카 씨에게 지금 이 소식이 들어갔다는 것은 아직 소문이 많이 퍼지지 않았다는 뜻일겁니다. 어쩌면 저희 티파티가 유일한 목격자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해요."
~~~
삼두정의 동료들 앞에서는 나름 자신있게 피력한 정공법이었으나 막상 그 뒤로 선생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고민만이 앞서던 나기사였다.
세이아가 말했듯,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의 접근 역시 그녀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결론이었기 때문.
'대뜸 상태를 묻는 것부터가 난관이군요...'
선생의 상태는 보수적으로 잡는다면 티파티 3인, 기준을 넓혀도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알고 있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다만,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오히려 선생의 상태를 묻는 것이 상당한 수준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을 터.
'미카 씨가 알아차릴 정도라면 증상이 가볍지는 않을텐데...'
특히나 그녀의 추측으로는 이미 선생의 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는 학생들이 매우 적다는 것은...
'아마 의도적으로 숨긴거겠죠.'
그렇다면 그녀의 추측에 따라, 자신의 상태 악화를 모두에게 숨기려고 노력하는 선생의 상태에 대해 묻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어디서 알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또 어떻게 이야기하죠... 미카 씨를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신은 정보를 꼭 얻어야 하는 입장, 상대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감추는 입장에 있다면 둘 중 하나는 큰 '양보'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양보가 서로의 감정을 상할 정도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자칫 걱정이 아니라 압박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 모든 걱정의 근원은 '지금 선생의 상태는 어떠한가?'라는 하나의 큰 질문이 해소되지 않은 까닭에 있다.
이미 그녀의 측근을 통해 연방 권역 의료 센터 쪽으로 연락을 넣어놨으나,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학생의 수가 유의미하게 늘고 있다는 신문 보도를 대변하듯 환자가 급증하는 센터의 여건 상 이를 확인하는 것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모쪼록 큰 일은 아니어야 할텐데요.'
고민을 하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발걸음은 트리니티 종합학원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본래 외부 업무는 나갈 때에는 관용차를 이용하기도 하는 나기사였지만, 오늘의 일정이 언제 마무리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운전담당관을 고생시키고 싶진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목격자가 하나 더 생길 수도 있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벤치에 앉아 택시를 기다리기로 한다. 티파티의 호스트를 대행하고 있는 그녀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리 없다는 편견 때문인지 가끔 지나치는 학생들은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어? 나기사 님?"
"히, 히후미 씨?"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난 두 사람
'설마 제 동선이 노출당한건가요? 대체 어디서부터?'
'아우우... 전 그저 신규 페로로 님 굿즈를 '확보'하러 가고 있던 길이었는데.... 큰일났어요...'
두 사람의 동상이몽은 이 침묵이 몇 초 더 길어지게 만들었다.
"나...기사 님은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
선빵필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히후미의 선공으로 아슬아슬한 대화가 시작된다.
"그, 저, 저는 잠시 외근을 나갈 일이 있다보니..."
'.....첫 단추부터 망했군요. 티파티의 호스트가 직접 외근을 나간다니 누가 믿....'
"아! 그렇군요! 그럼 곧 차량이 준비되겠네요?"
'....네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자신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끼는 나기사였다.
"아, 오늘은 조금 길어질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가려고 합니다. 저 하나 때문에 많은 비서진과 행정관들이 퇴근하지 못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흔히 말하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그래도 나기사 님은 모두에게 친절하시니까 다들 이해하지 않을까요? 아하하..."
"게흛!"
"나, 나기사 님?"
"켈록... 켈록켈록...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켈록."
나기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서 수영복만 입고 돌아다니고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생각보다 흥미로운 작업일지 모른다.
"그...건 그렇고 히후미 씨는 여기에 어쩐 일인가요?"
"아? 아! 그, 저는 보충수업부 친구들하고.... 음..... 그러니까....."
'큰일났어요... 나기사 님이 갑자기 기침을 하셔서 준비한 변명이.... 아우우....'
"음....알 것 같네요."
"ㄴ, ㄴ, ㄴ, ㄴ, 네?!"
'.....앞으로는 파우스트로 살아야 하는 걸까요...'
"확실히 알겠어요."
'하긴.... 처음에 말을 더듬은 것도 나기사 님 정도의 통찰력이면 모르...'
"친구들이랑 내기를 해서 진 모양이군요? 택시를 기다리는 건 먼 곳까지 가야 한다는 의미. 즉, 그 내기가 시내에 있는 디저트 카페에서의 간식을 걸고 했던 것이고요."
'....시네요?'
"아....아! 네! 맞아요! 하필이면 오늘은 운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 같아요.... 아우우..."
당장 기숙사에서 짐을 빼고 아비도스의 사막을 거니는 운명을 상상했던 히후미의 머릿속이 깔끔해졌다.
"과연 그렇군요. 그런 날이 있기야 하죠. 혹시 필요하다면 티파티에 연락해서 괜찮은 디저트를 공수해드릴까요? 친구로서의 호의이니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정말로요? 그, 그럼 저야 너무 감사한데.. 하지만 저는 나기사 님께 한번도 보은을 한 적도 없고."
이대로 완벽히 히후미와 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나기사였다.
'이걸로 체크메이트에요. 히후미 씨.'
-덥석.
"??????"
"보은이라뇨. 당치도 않아요. 친구 사이에 보은이라니. 있을 수 없죠. 그저 나중에 히후미 씨와 하루 같이 시간을 비우고 한가롭게 하루를 보내는 것 정도면 충분합니다. 행정관에게 말해놓을게요. 어서 가보세요."
"가....감...감사합니다! 나기사 님! 돌아오시고 꼭 연락주셔요!"
그녀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가득 들어찬 히후미의 눈빛에 미소를 지으며 작별인사를 건네는 나기사의 마음은 어딘가 불편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제 자신을 꽤 많이 부정하지 않았던가요....? 진심이지만... 상당히 정치적이지 않았나요 저...?'
~~~
'너는 구제불능의 의심암귀다.'
~~~
순간 그녀의 기억을 스치는 '존재하는' 기억.
"으아아아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앗."
그녀의 유쾌하지 않은 흑역사는 당분간 오래 남아있을 예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의 택시가 정류장 앞에 도착한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닌 한 자리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과 눈이 계속 마주치고 있자면 열에 아홉은 이내 그녀가 티파티의 호스트임을 알아차리곤 했다.
그렇기에 비공식적이고 비밀이 담보되어야 하는 오늘의 일정은 당연하지만 택시가 적격이었다. 출발도 전에 진이 다 빠진 느낌이 들지만, 일단 나기사는 택시에 탑승한다.
"어서오세요 손님. 어디로 갈까요?"
".....샬레로 갑시다."
~~~
아슬아슬하게 터치다운입니다. 오늘 안에는 무조건 업로드를 완료해서 주말까지와의 텀을 적당히 두고 싶었는데 일단 성공했습니다. 오늘 반가운 사람과 저녁식사가 있다보니 즐거운 와중에도 걱정되었는데 모쪼록 다행입니다. 글쟁이의 변(辯)에서 혹여 술김에 오타가 나지 않을지 조금은 걱정이네요.
일단 당분간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각종 전개들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일단 선생의 증상이 극단으로 향하는 지점도 이들 전개들이 하나로 연하는 지점에서 발생할 것이기에, 이들 전개는 필수적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동시에 많은 전개가 이뤄지다보니 아무래도 전반적인 전개의 속도가 다소 감소할 수 있는데, 이 점은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히나의 샌드위치는 써브웨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제 추천 조합은 이탈리안 BMT / 파마산 오레가노 / 슈레드 치즈 / 오이 피망 빼고 / 사우스웨스트치폴레 후추 입니다.
다음 화는 주말 중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슬슬 저의 지옥주가 다시금 시작되려 하네요. 현생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법은 이제 어느 정도 터득했으니, 모쪼록 주 2회 연재의 루틴을 잘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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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2
알림 왜 일안함 그리고 명령 번호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아? 의도된 번호가 아닙니다(진짜임)
키보토스 연방수사동아리 긴급명령 제99688호...


오늘도 잘 봐씀다 다음부턴 수능 끝나고 봐야겠네.... 님도 현생 화이팅
뭐뭐뭣 수험생이었다니.... 수능 박살내고 오십셔 응원합니다:)

어라 명령번호가..?
곧 억울해질 글쟁이입니다
아~ 왜 이렇게 짧게 끝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