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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농담이니까! 진정해, 히마리! 이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아, 아무튼. 그리고 손에 든 내 속옷은 좀 놓고 얘기하자!?”
“뭔가 소란스러운데…. 선생, 나를 부르지 않았어?”
“잠…, 리오? 안방에 있던 거 아니었어?”
“…히마리?”
혹시 리오의 정체는 메두사였던 걸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히마리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돌처럼 굳어 버렸다. 툭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바스러져 먼지가 될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거 놓고 있었으면 문제 될 일도 없었잖아!”
히마리가 원래대로 돌아온 건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제 딴에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는지 한참이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솜주먹으로 아무런 말 없이 그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지금은 없었던 일로 치부하려는 건지 모르쇠로 일관하며 일언반구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리오는 의외로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다. 이미 그런 그녀의 취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모양인지.
“밥이나 먹을까.”
“어머, 벌써 이런 시간인가요.”
“좋아, 이래저래 도움을 받아버렸으니까. 내가 뭐라도 만들어 줄…, 윽.”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하려던 찰나, 잠시 잊고 있던 어지러움이 다시 엄습했다. 뇌가 울리는 것 같은 감각에 비틀거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괜찮으니까 당신은 앉아있어. 요리는 내가 할 테니까.”
리오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미안….”
“후훗. 미안할 게 어딨나요? 이럴 때 필요한 메이드가 있는데. 리오? 이참에 저랑 승부해요. 어느 쪽의 요리가 선생님의 입맛에 더 합격점인지로요. 어떤가요?”
“그래. 나는 상관없어.”
“생각보다 자신만만하네요.”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혼자 지낸 지 꽤 됐으니까. 밀레니엄의 학식처럼 대단한 건 아니지만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어.”
“뭐, 걱정 마세요. 저도 할 수 있는 건 최근에 요리 잡지를 보고 배운 오므라이스 정도랍니다.”
‘어쩐지…, 감개무량하네.’
어딜 보아도 눈이 부신 두 소녀가 자택의 소박한 부엌에서 티격태격 요리를 하고 있다.
그것도 단 한 사람을 위해서.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실책에 대해 후회밖에 없었는데, 이런 심금을 울리는 절경을 보고 있자니 도리어 바쁜 근황의 묵은 피로를 단번에 씻어 내리는 신의 한 수가 되지 않았나 하고 속으로 갈채했다.
공복을 자극하는 향이 점차 방안을 가득 채우고 이내 며칠째 제 기능을 못 하던 위장이 격렬하게 꿀렁이고 바짝 마른 입안이 순식간에 군침으로 흥건해졌다.
“다 됐어.”
“부디 드셔 주세요, 선생님. 오므라이스…, 아니요. 요리의 경지마저 섭렵한 미목수려의 재녀가 만든 특제 초미식오므라이스랍니다.”
윤택이 흐르고 파슬리와 파프리카 파우더가 데코 되어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크림 파스타와 케첩으로 히마리의 얼굴이 그려진 푹신푹신한 오므라이스가 테이블에 놓였다.
“어라? 베이컨은 있었던 거 같은데 우리 집에 파스타 소스도 있었던가?”
“아니. 이건 우유로 만든 거야.”
“우유만으로? 언뜻 봐선 식당에서 파는 거라 해도 믿겠는걸….”
“우유랑 치즈, 그리고 버터 정도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어. 요리법 정도는 검색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그게 말이 쉽지…. 대단한데. 히마리도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진짜 메이드 카페는 아닐 거고….”
“후후, 저한테는 이쪽으로 특출난 후배가 한 명 있으니까요. 시안을 부탁해서 모작했습니다. 자, 그럼 부디.”
“아, 응. 잘 먹겠습니다.”
그는 수저를 집어 들었다. 어느 걸 먼저 먹어야 할지 일생일대의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의 손짓을 따라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럼 파스타부터….”
예쁘게 플레이팅 된 면의 봉긋 솟은 부분을 젓가락으로 들쑤시자 속에 품고 있던 뜨거운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
다소곳이 정좌로 마주 앉은 리오의 눈동자가 은하수처럼 반짝인다. 저런 순진무구한 표정, 난생처음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귀여워 죽겠네.’
좀 전에는 대단한 건 아니라며 무심히 말했지만 내심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맛있어. 아니, 진짜 맛있는데?”
“그래?”
“어. 적어도 내가 먹어본 것 중엔 영순위야. 면이 익은 정도부터 소스의 농도, 간도 절묘하고 식재료들의 비율까지 완벽한데. 깜짝 놀랐어.”
기분 탓일까, 리오의 입가에 미소가 반짝 개화했다가 눈 깜짝할 새 원래대로 돌아온 거 같았다.
그는 곧장 이어서 숟가락으로 오므라이스를 퍼 올렸다.
“아니, 오므라이스도…. 뭐지? 히마리, 정말 최근에 배운 게 맞아? 야채들도 너무 좋은 크기로 썰었고 볶음밥도 고슬고슬하니 너무 내 취향인걸. 소스도 산미가 있어서 맛있고. 두 사람 다 나한테 너무 겸손한 거 아니야?”
이 내숭쟁이들! 야유하고 싶은 심경이 굴뚝같던 찰나, 히마리의 손가락 끝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가 턱 하고 급제동을 걸었다.
“후훗…. 이 정도는 저에겐 별것 아닌 일이니까요.”
그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역시 상대방의 성과를 일차원적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다. 내숭이라니, 잘 만든 요리이든 부족한 요리이든 훌륭한 것에는 그만한 노력이 따른다.
리오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맛보고 단언컨대, 차분하고 정적인 그녀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무척이나 상냥하고 따스한 그 맛은 허투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과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선생님? 무언가 불편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그럴 리가.”
그는 잠시 수저를 내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눈앞에 있는 달과 별이 끔찍이도 사랑스럽게 빛나고 있잖아.”
이런 말, 이런 행동. 평상시라면 절대 꺼내지 않았을 텐데. 표현이 서툰 성미답지 않게 이런 일을 해 버리고 마는 건 분명 독버섯의 영향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신기하지. 밤하늘은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텐데, 어쩐지 오늘은 닿을 것만 같아서….”
복 많은 그 손으로 멀뚱멀뚱 바라보는 두 사람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고마워.”
무르익은 감정과는 별개로 고장 났던 식욕이 급발진해 게걸스럽게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를 두 사람이 붙잡았다.
“그래서, 어느 쪽인가요?”
“솔직하게 대답해 줘.”
식은땀이 난다.
사실 다 먹어 갈 때쯤부터 눈치가 살살 보였다. 마지막 숟갈을 뜨는 그 순간까지 부담스럽게 보고 있는데, 잽싸게 도망갈 타이밍을 물색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손바닥 안이지 않은가.
더는 이 시련을 미룰 수 없었다.
“그, 그러니까…. 음….”
이러한 유형의 문제는 절대, 절대 답해선 안 된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구를 선택하든 그 앞은 파멸뿐, 리오가 되었든 히마리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상심한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치켜세우면 치켜세웠지, 아무렴. 여기에 위아래를 두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 이 여자와 초천재미소녀요리사, 저, 아케보시 히마리. 둘 중에 누구인가요!?”
“뒷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는 결과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
‘…절대 못 믿겠어!’
여기선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갈 필요가 있다.
“…두 사람 다 앉아.”
“네?”
“지금부터 왜 우열을 가릴 수 없는지 설명할 테니까.”
“세상에 답이 없는 문제는 없어. 그건 아직…”
“앉아.”
“응….”
그는 두 사람을 앉혀 놓고 각자의 요리가 어떻게 자신의 심금을 울렸는지 한 시간에 걸쳐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뭐가 뭔지도 모르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던 중 승부욕이 누그러져 이번 대결은 흐지부지되었다.
***
“미안…. 갑자기 어지럼이 좀 심해져서….”
“괜찮으니까 잠깐 쉬도록 해. 청소는 이쪽에서 마무리할 테니까. 기껏 병상을 지킬 사용인이 왔는데 고용주가 잡일을 거들다 쓰러지는 건 합리적이지 않아.”
“리오도 참. 사용인이니 고용주니…, 고지식하기는. 기왕이면 애정을 담아서 주인님이라고 불러보는 게 어떤가요?”
“그런 말을 쉽게 할…. 좋아. 히마리, 네가 먼저 한다면 따르도록 할게.”
“후훗…. 단순히 말하는 것쯤이야. 간단한 일이죠. 간단한…?”
“왜 그래?”
“주…, 주…. 읏…?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민망한 듯한….”
“간단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어?
“주…, 주인…. 아, 으. 그, 서, 선생님!? 이쪽은 저희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른 쉬시는 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응, 고마워.”
그가 비틀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가자 히마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리오. 당신도 꽤 짓궂은 말을 할 줄 알게 됐네요.”
“…그건…, 누구한테 옮은 것뿐이야.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아니요. 그런 건 아니랍니다. 차라리 이쪽이 낫네요. 사람 냄새가 나서. 자, 가요. 청소나 마무리하도록 하죠.”
“…그래.”
식사를 마치고 일시 갑작스러운 어지럼을 호소한 그가 안방의 침대에서 쉬는 사이, 먼지떨이를 들고 작은 서재로 향한 리오는 너덜너덜한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해어진 가죽 커버에는 ‘지울 수 없는 추억’이라는 표제가 쓰여 있었다.
“이건….”
조글조글한 종잇장들이 파도를 만들어 본래 제 부피보다도 부풀어 있었다. 추억이라, 부임하기 전의 과거라도 적혀 있는 걸까.
그렇다면 저 수첩은 그의 바다다. 높은 빌딩 사이에 파묻혀 삐걱대긴 해도 청춘을 보내는 이가 가벼운 마음으로 들여다보아선 안 될 심연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애써 시선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환기를 위해 열어 두었던 창문으로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와 수첩에 파문을 일으켰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페이지에는 낙서 같은 그림들과 빼곡한 글자들이 들어차 있었다.
“….”
「백귀야행의 축제에서 닌자를 만났다. 충성심이 훌륭. 그리고―」
「카이저에 대해 조사해 볼 것. 아비도스 사막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 고마워, 히나. 그리고―」
「밀레니엄의 게임개발부로 출장 가기 전. 기대된다. 나도 게임 좋아하는데. 그리고―」
「붉은겨울의 학생회장은 수염이 귀엽다. 푸딩 좋아하는 듯. 그리고―」
.
.
.
「보충수업부의 고문을 부탁받았다. 히후미와 다시 만났다. 아즈사는 미소가 무척 천사 같은 학생. 코하루는 어쩐지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하나코는 조금 무섭다. 왜지? 그리고―」
「코우사기 공원에서 기운찬 학생들과 만났다. 미유는 존재감이 옅다고 한다. 잘 모르겠지만 신경 쓰는 편이 좋을지도. 그리고―」
.
.
「무사히 키보토스에 돌아왔다. 다행이다. 힘들었지만 그보다도 이 수첩의 다음 장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프라나와 조금 친해진 것 같다. 은근히 단 걸 좋아하는 듯.
맡겨 둬. 부탁받은 건 절대 저버리지 않아.
그 카드를 넣어둔 장식장의 자물쇠를 잠갔다. 하마터면 사고 칠 뻔했다. 보고 있냐! 절대 안 쓸 거니까!」
.
「히마리 덕에 자취를 감췄던 리오와 만났다.
민망한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잘 지내는 것 같아 안심.
언젠가 다시 밀레니엄으로 돌아올까?
네 명 모두가 모인 세미나를 보고 싶다.
분명 시끌벅적하겠지.」
“선생님의 수기네요.”
어느새 다가온 히마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수백 명에 이르는 학생들의 사소한 특징 하나하나, 함께한 기억의 편린들, 파란만장했던 추억의 향수. 그 모든 게 서투른 손글씨로 빼곡히 새겨진 사랑의 기록.
바람결을 따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각양각색의 감정을 전해 온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너덜너덜하지 않았는데. 이젠 남은 페이지 쪽이 더 적네요. 정말 대단하시다니까요.”
“그래. 선생은 어떤 때에도, 상대가 누가 되었든 똑바로 마주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어.”
“막상 제 몸은 안중에 없으시다는 게 문제지만요.”
“나에게 결여된 건 바로 이런 부분들이겠지. 난 모두에게 폐를 끼치고 말았어. 선생에게도, 너에게도, 그 밖에도…. 그런 내가 이런 옷을 입고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리오….”
“미안해, 히마리. 내가 조금만 더 선생과 같이 어른스러웠다면, 그랬다면 널 컴컴한 감옥에 가두는 일은 없었을 거야. 이 죄의식의 상념들은 합리성에만 의존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외면한 나의 업보인 셈이지.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역시 나에게 이럴, 돌아갈 자격 같은 건….”
“잠깐만요. 뭘 혼자서 그렇게 왈칵 쏟아내시나요? 선생님의 서재가 고해성사실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이편이 당신답다고 해야 할 참일까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는데 멋대로 튕겨 나가는 총탄 같은 점이.”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알아요. 하지만 그게 그런 메이드복을 입고 앙증맞은 먼지떨이를 들고 할 소린가요. 이런 상황에 얼렁뚱땅 당신의 서사를 뭉뚱그려서 그렇게 얘기하는 부분에서 당신답다는 이야기랍니다.”
“….”
“후훗. 확실히 당신한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일일이 언급해선 제 목만 아플 정도로 있지만 실은 그런 부분, 저는 그리 싫지 않답니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건 질색이니까요. 차라리 이렇게 당신에게 가벼이 쓴소리할 수 있는 상황이 백번 낫죠.”
히마리는 책상 위에 있던 티슈 두어 장을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런 소릴 할 거면 아까부터 경우를 모르고 뚝뚝 흘리는 눈물은 좀 닦고 해요. 당신답지 않게. 정작 사과받는 제 기분이 더 묘해지잖아요? 정말이지.”
“….”
“네, 뭐. 인제 와서는 새삼스럽네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 훨씬 오래전부터요.”
“그럼….”
치미는 자기혐오에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문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아.
이 세상이 나를 악으로 규정해도 상관없어.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걸 행할 뿐이야.
모든 게 끝나고 나면…, 히마리, 너도.
그리고 샬레의 선생, 당신도.
이 마음을 알아줄 거야.
그리 생각했다.
수기에 적힌 문장이 떠오른다.
「언젠가 다시 밀레니엄으로 돌아올까?」
하지만 이제 그곳에 그녀의 자리는 없다.
꼴사납지 않은가.
다른 길이 없는 일방통행이라 여기고 나아가기 위해 주변 사람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자 했던 친구들을, 후배들을 아이러니하게 배반하고 대적하기까지 했는데.
끝에 도착했을 때, 그 길은 잘못된 길이었더라. 꽉 막힌,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 돌아갈 수도 없이 제 스스로 만들어 온 파멸의 인도.
의지와 상관없이 그 인도에 휘말려 버린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종말을 맞이할 운명에 처한다.
하물며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동아줄을 던져 끌어 올려 준 것은 짊어져야 하는 업보의 희생자들이었다.
모순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는 모순만이 가득할 뿐, 늘 그녀가 찾는 합리와 이성은 빛이 바랬다. 옳다고 믿었던 일의 결과가 이거다.
신념이 가진 것의 전부라 믿었던, 이윽고 자신을 잃은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자기혐오와 도망친 현실에 안주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도 사과할게요, 리오.”
“그게, 무슨….”
깜짝 놀라 머리를 들자, 이번에는 히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 사죄의 의미로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고 할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심술궂게 감정에 휘둘려 당신을 판단해 외면하려 했던 건 제 잘못이에요. 소중한 은사에게서, 그리고 귀여운 후배에게서 그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흠흠….”
히마리의 뽀얀 두 뺨에 은근한 홍조가 떠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한두 차례 헛기침을 한 뒤, 수줍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쌤쌤이로 해요. 물론 당신의 업보가 훨씬 큽니다만…, 음음. 초천재미소녀해커의 드넓은 아량으로 제가 조금 더 양보해 드리는 걸로 하죠. 아, 당연히 이건 저와 당신에 한한 이야기니까요. 다른 분들께는 직접 전하도록 하세요.”
그럴 리가 없어. 아니, 그런 건가.
그녀는 이 이야기가 초장부터 잘못되어 있었음을 인지했다.
히마리의 손끝에 자기에게 손을 내밀었던 수많은 사람의 손이 보였다. 못 본 척, 무심코 눈을 돌려 버렸던 손.
처음부터 그녀는 이해받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이해해 주려 하는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이었다.
세상은 처음부터 그녀를 악으로 규정하려 한 적이 없었다. 분명 누군가는 그녀의 행동에 질타 보다도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이해받지 못함을 단정짓고 외면한 채, 누구보다도 자신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제 가슴 속에 있었다.
가장 그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건 리오, 바로 자신이었다.
이렇게 되기 전에 그 사실에 닿을 수 있었다면 조금은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그 손을 내가 잡아도 될까…?”
“그럼요. 아니면 누가 잡는다는 말인가요? 그 아방…, 아방…, 가리가리군? 한테 대신 잡게 만들기라도 할 생각인가요?”
피식. 리오가 입가에 작은 웃음을 만들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방가르드군이야.”
“그런 외견으로 아방가르드요?”
“…생긴 것과는 상관없어.”
***
“가끔씩…, 학생들이 버럭 화를 낼 때가 있어.”
침대에 걸터앉은 그가 말했다.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그럭저럭 안색이 돌아와 있었다.
“음…. 갑자기 말인가요?”
그와 마주 앉은 히마리는 수수한 찻잔을 기울여 진홍색의 히비스커스 티를 홀짝인 뒤, 의아함을 표했다. 마찬가지로 찻잔을 들고 서 있던 리오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응. 지난번에 밀레니엄에 업무차 들렸을 때도…”
“저, 선생님…?”
“오. 유우카! 아까 잠깐 보러 갔더니 엄청 바쁜 것 같아서 그냥 내려왔는데, 급한 일은 전부 끝난 거야?”
“네? 아, 네…. 그…, 선생님께서 저를 보러 오셨다고 들어서…. 최대한 빨리 끝내고 왔는데….”
“어디 아픈 거야? 땀도 엄청나고 숨도 가빠 보이는걸. 여기, 얼굴에 머리카락 붙었어.”
“아…. 고맙습니다. 아픈 건 아니에요. 세미나로 들어오는 동아리 관련 중요한 서류들에 오차가 너무 커서…, 빠른 해결을 위해 직접 뛰어다녔거든요.”
“그렇구나. 그런 일은 얼른 해결하는 게 좋지. 나중에 뒤섞여서 꼬이면 골치 아프니까.”
“그, 그렇죠. 그런데, 선생님…. 혹시 식사는 벌써 하셨나요?”
“아니, 아직인데?”
“그…! 그…, 그럼 같이 식사하러 가시지 않을래요? 저, 오후까진 스케줄 괜찮거든요….”
“완전 좋은데? 가자.”
“정말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제 계산은 완벽하다니까요! 후후. 그럼! 제가 좋은 식당을 조사해 두었으니 안내할게요!”
“아, 기왕이면 노아랑 코유키도 부르는 게 어때? 다들 점심 아직일 거 같은데.”
“네? 갑자기 여기서 그 두 사람을요?”
“왜? 시끌벅적해서 좋지 않을까?”
“우웃…, 모처럼 전력으로 끝내고 왔는데! 흥, 됐어요. 선생님은 혼자 드세요! 노아랑 코유키는 제가 데리고 갈 테니까요!”
“아니, 먼저 먹자고 한 건 유우카잖아!”
“―라는 일이 있었거든. 그러고 등짝 한 대 시원하게 맞았어. 그 뒤로도 모모톡으로 연락해 봤는데 뭐 때문에 삐졌는지 뾰로통해서 말이야.”
그가 멋쩍게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남 일 같지 않네.”
“정말이요.”
이야기를 모두 들은 두 사람은 미간 주름 하나 없이, 여전히 평화로운 표정으로 차를 마셨다.
“저기, 리오? 제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그래.”
“선생님께 ‘아이고, 이 화상아.’ 라고 하면, 아무래도 안 되겠죠?”
“아니, 나도 동감이야.”
“다 들리잖아….”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무구의 철부지 남자아이도 아니고. 이리도 답안이 투명한 문제에 표정은 뻔뻔한 백지다. 히마리는 ‘딴지를 걸 기운도 없네요.’ 중얼거리며 앙증맞은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식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건 나도 알지. 그래서 다른 애들도 불러서….”
“아니요, 유우카는…. 음…, 이걸 제 입으로 설명하는 건 가엾은 그 아이에게 미안하네요. 선생님?”
“왜 그래? 어…?”
그녀가 찻잔을 서랍장에 내려 두고 그에게 한발짝 다가갔다.
“여기, 여기예요. 제 눈.”
“응?”
“봐주세요. 지긋이.”
히마리는 허벅다리에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들어 그에게 눈을 맞추었다. 그 역시 그녀의 바람대로 해 주었다.
작은 침실에 정적이 흐른다. 민망하게도 리오는 진중한 눈으로 이 상황을 바라볼 뿐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용태다.
“지금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시겠나요?”
동화 속의 신비한 마법 구슬 같은 히마리의 눈동자가 꿋꿋하게 멈춰 있다가 서서히 진동한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붉은 노을이 지는 것처럼 뺨을 물들여 간다. 어느덧 조막만 한 꽃잎 같던 입술은 지렁이 춤추듯 한다.
유심히 관찰하고 결론을 내리건대―
“모르겠는데….”
“네, 네에…. 아시겠죠? 선생님께선 여심을 전혀 모르세요.”
히마리가 잽싸게 고개를 돌려 심호흡하며 말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알아!”
그가 억울하다며 소소하게 항변했다.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라도 찾아봐야 할까….”
“제가 가르쳐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잠시….”
히마리는 가녀린 손으로 파닥파닥 손부채를 부치며 리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달라 손짓했다. 리오가 땋은 머리를 살며시 옆으로 넘기며 그녀에게 귀를 빌려주었다.
“그…, 읏…, 저는 이처럼 내성이 없어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듯하니…. 내키진 않지만, 당신에게 기회를 넘겨 드리겠어요. 음…, 적당히 의식하게 만들어서 당황케 하면 깨달으시는 게 있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어. 내게 그런 게 가능할까?”
“아까 소파에선 잘만 했잖아요.”
“그…, 그건…. 아니. 해 볼게. 네가…, 믿고 맡겨 줬으니까.”
번뜩 몸을 일으킨 리오의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하는 이상 제대로 할 거야.”
그녀가 평소보다도 날카로운 눈매, 어쩐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기에 그는 바짝 긴장을 삼켰다.
“오, 오우…. 잘 부탁해. 근데…, 뭘?”
“내가 당신을 지켜본 지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당신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혼잣말로 ‘정말 난 눈치가 없는 건가?’ 하고 중얼거리곤 했지. 전에 내가 그리 이야기한 적이 있긴 하지만, 사실 당신은 눈치가 없는 게 아니야.”
“정말?”
“애초에 학생을 그런 눈으로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생각이 미처 닿지 못하는 것일 뿐. 학생을 전적으로 믿기에 탐색하는 것조차 욕심을 내지 않고 상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
“하지만 막상 상대가 기분이 상했거나 속에 어둠을 감추고 있을 땐 등불처럼 발견하고 먼저 손을 내밀지. 당신의 진짜 문제는 호의를 읽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근데 그게 정상이지 않을까? 내 경우엔?”
“…그건 이율배반이야. 선생, 조금 변했으니까. 대화할 때 안 그런 척하면서 그…, 내…, 가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걸 알고 있어.”
“그, 어, 아…, 아니…. 그건…. 그러니까….”
사고 회로가 정지되는 기분이다. 부정할 수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은거하고 있는 빌딩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였을까.
처음에는 그녀를 보는 눈에 망설임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가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호기심, 걱정, 기대. 하지만 어느새 그녀와의 거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리오와의 재회가 그런 형태가 되었던 게 가장 큰 문제긴 하겠으나, 분명 그로 인해 일부 변한 것은 사실이다.
“변명이라면 들어줄게.”
“…없습니다.”
‘어리광이 늘었던 네가 너무 매력적이었다고…, 는 절대 말 못 하겠네….’
“도망치지 말고 똑바로 상대가 하는 말의 의도를 읽을 필요가 있어.”
“후훗. 여자라는 생물은 솔직하지 못해서 상대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존재들이거든요.”
풀이 죽은 그의 모습을 보고 히마리가 방실거렸다.
“어렵네….”
“걱정 마세요, 선생님. 저 여자, 저렇게 당당하게 말했지만 정작 본인이 제일 못하는 일이거든요.”
“으음….”
‘역시 이론만 빠삭한 거구나!’
그 역시 그녀를 꽤 오랫동안 지켜본바, 이런 분야에 능통할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아 마침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필요한 건 선생님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건 연습할 상대도 없고….”
“연습할 상대….”
팔짱을 끼고 오뚜기처럼 몸을 갸우뚱거리는 그를 보고 리오는 잠깐 턱 끝을 손으로 짚은 채 고민에 빠졌다.
“…그럼 내가 상대해 줄게.”
“리오가?”
“나는 싫은 거야?”
만에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저 눈동자에 깃드는 불안을 보고 있노라면 절대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돌한 눈꼬리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쳐지는 모습을 맨정신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싫긴. 완전 고마운 일이지. 그럼 내가 뭘 하면 될까?”
“간단한 테스트야. 아까 말한 대로 상대의 의도를 읽은 연습.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내 보도록 해. 그동안의 경험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거야.”
“원하는 거? 지금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거야?”
언뜻 보기엔 완벽한 포커페이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진짜 메이드처럼 서서 주인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 모습은 빅시스터라는 이명답게 차분하고, 냉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컨대 전혀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스무고개냐고!’
“힌트라도 주면 안 될까?”
“…힌트라면 충분히 줬다고 생각해.”
“응? 충분히 줬다고? 언제?”
이마에 손을 얹고 곰곰이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았다. 그러고 보니 집에 온 이래로 오늘 날씨가 조금 쌀쌀한 것 같다는 말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수차례 했던 것 같았다.
분명 오늘은 쌀쌀한 날씨이기는 했지만, 청소할 때만 환기를 위해 잠시 개방했을 뿐이지 집안의 창문은 쭉 닫혀 있었다. 집안의 기온이 낮은 것도 아니었고.
그것도 히마리가 없을 때만 눈치를 살살 살펴 가며 쪼르르 찾아와서 그랬다. 히마리가 추워하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티는 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걸로 알았는데. 혹시 이게 무언가의 암시였을까?
‘아니면 진짜 춥나?’
“보일러 틀어 줄까?”
“….”
발랄하게 물었더니 꿰뚫을 듯 쏘아보는 벌침, 아니 눈침이 쏟아진다. 정답이 아닐 줄은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상정했지만, 까딱 주눅이 들 뻔했다.
“그런 거라면 당신한테 물어보지 않고 내가 했을 거야.”
리오가 쏘아붙이자 히마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드득거렸다.
갈피를 잡지 못해 인상을 쓰고 있으니 리오가 몸을 비틀어 에이프런을 고정하고 있던 등의 매듭을 풀었다. 몸의 커다란 굴곡을 타고 에이프런이 스르륵 떨어졌다.
고풍스러운 검정색 원피스가 자태를 드러냈다. 상체가 꽉 끼는 탓인지 타이츠처럼 천이 몸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곳곳에 속 피부를 드러내는 시스루 스타일의 꽃 자수들이 그녀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자극적인 광경이 펼쳐지자 또 어지러움이 도지는 듯했다.
이어서 리오가 허리를 숙여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설마 잊은 거야?”
그녀의 말에는 아쉬움이 아련하게 흘렀다.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다시 고개를 든 그녀에게 눈을 맞추었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표정 같은데도 아까와는 다르게 보였다.
확실히, 지금이라면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눈초리였다. 눈을 축 처진 어깨로 옮기자 그녀의 모습이 아예 그날을 재현해 겹쳐 보였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때는 금세 알 수 있었는데.
그렇구나. 공통점이라면 있었다. 그는 상대를 마주할 때 상대의 ‘존재 혹은 인격’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무너지려 하거나 변화하는 것에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흩뿌리는 눈빛, 긴장과 기대를 머금은 소중한 호흡과 손짓, 수줍음에 미처 똑바로 전하지 못하고 에둘러 말하는 꽃봉오리 하나.
얼핏 그것이 어떤 꽃의 봉오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비로소 깨달은 것은 겉으로 보이는 특징을 꽃이구나, 에서 그치지 않고 잘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그 안에 핀 꽃이 무엇인지 보인다는 점이었다.
‘좀 더 사소한 것들을 보자.’
그게 그녀의 질문에 그가 내린 답이었다.
“하하…. 물론 잊지는 않았지.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는데?”
“정말 짓궂다니까….”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시치미를 뚝 떼자, 그의 깨달음에 눈치챈 리오가 덩달아 자그마한 미소를 띠며 그를 향해 팔을 벌렸다.
‘종일 이래 주길 바랐던 거구나….’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 발 앞으로 다가가 리오의 검은 머릿결을 타고 천천히 팔을 둘러 꼭 껴안아 주었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당겨와 제 어깨 품에 묻었다.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대로.
“….”
압도적인 볼륨감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무리 꽉 껴안아도 몸이 제대로 겹치지 않는 게 느껴졌다.
‘잠깐…, 또 어지러운데.’
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분명 이율배반이긴 하지만. 내가 이러는 건 리오, 그때에도, 이번에도, 오직 너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도 내 상대가 되어 줘.”
하지만 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와와와….”
대신 그의 품에서 살짝 벗어나 처음 보는 새빨간 물감으로 뺨을 물들이고 잔뜩 풀어진 표정으로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옷깃을 당겨와 다시 한번 입을 맞추는 것으로 답했다.
“스토옵! 스톱이에요!”
히마리가 양팔을 들어 씩씩거리며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리오! 읏…, 제가 언제 거기까지 해도 된다고 그랬나요! 반칙…, 반칙이니까요!”
“이제 네 차례야, 히마리.”
“네?”
아쉽게 입을 뗀 그녀는 여전히 흐리멍덩한 눈을 뜬 그에게 전했다.
“이번엔 히마리가 바라는 걸…, 해 줘.”
“네? 네에? 저, 저는 그런 거 없는…, 데….”
그는 멍하니 몸을 돌려 히마리에게 다가갔다.
“잠, 잠시만요! 선생님? 꺗!”
그러고는 그녀를 곧바로 들어서 침대에 던졌다.
***
물이 들어찬 듯 꽉 막혀 있던 귀에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수다 소리가 문을 열었다.
“헉.”
번뜩 정신을 차렸더니 몸이 마법 같이 가벼워져 있었다. 찌뿌둥한 감각이나 어지러움 같은 것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고 모든 것이 빠져나가 유체가 된 것처럼 자유로웠다.
대신 없던 게 생겼다. 우선 허리가 조금 땅기고 이상한 곳이 뻐근했다. 딱히 무리한 운동을 한 적은 없는데. 그리고 양팔이 쥐가 난 듯 감각이 없다.
몸을 뒤로 당겨 일으키려 했지만 무언가가 짓누르고 있는 듯 가벼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내리니―
“무….”
말문이 막히고 속으로는 비명을 질렀다.
“으음…, 벌써 아침인가요….”
“….”
“얘, 들아…?”
그의 품 한쪽엔 눈을 비비적거리며 새하얀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올려다보는 히마리와 잠이 덜 깼는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능선을 가슴께에 치대는 리오가 있었다.
“아침….”
리오가 허리를 들어 몸을 살짝 일으키자 팔의 감각이 돌아오는 동시에 이상한 곳의 감각도 돌아오려 했다. 거대한,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두 덩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선생님?”
“이건….”
두 사람이 미처 존재감을 숨기지 못한 어딘가를 쳐다본다.
“아직도 기운이 남아계시는가 보네요.”
“6시…. 아직 출근까지 시간이 남아있어.”
“잠깐…, 잠깐만. 얘들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침 댓바람부터…!”
***
여기까지가 오늘, 샬레에 늦게 출근해 하소연할 곳 없이 홀로 기록하는 경위서. 그는 의자를 뒤로 젖히며 너덜너덜한 수첩을 닫았다.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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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서 수정 중
간신히 다 집어 넣었는데 후기가 짤렸네 대충 사심과 욕망을 꾹꾹 눌러 담아서 여태 쓴 것 중 가장 분량이 많았음 재밌게 봐주면 좋겠다 끝
나도 리오 히마리랑 3p 하고싶다
꼬추 터지겠다 시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