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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짓궂게도 조금 그렇고 그런 이야기 (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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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장 약스포

총학생회장실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언제,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이 방은 한 줄기의 바람도 느껴지지 않아, 이곳이 만들어진 공간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곳에 들어서는 이를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하얀 바닥으로, 어떠한 흠도 허락지 않는 흰색이 발을 딛는 이에게 무언의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거기서 발을 한발짝 더 들이면, 수백명이 들어오고도 남을 넓은 면적이 보이고, 수십명이 나란히 머리를 밟고 서 있을 수 있을 높이가 눈 앞에 펼쳐졌다. 필요한 사람들만 오가는 방은 필요 이상으로 넓었고, 탁 트인 공간은 오히려 방 안의 공기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그런 부정적인 감각을 모두 잊혀지게 한다. 예술품처럼 나란히 세워진 창틀 사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세상의 끝과 끝이 만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절과 시간의 변화와 상관없이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하늘과 소용돌이처럼 별들이 줄지어 움직이는 우주가, 뚜렷한 경계선도 없이 섞여들어서,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우주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한낱 먼지와 같은 자들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오랫동안 존재했던 장관 앞에서 한없는 경외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던 당시의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책상 앞에 서서,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손으로 책상을 쓸었다. 아무 생각없이 해버리고 마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러고는 손을 뒤집어 보니, 하얀 장갑에는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그녀의 얼굴에 기꺼운 미소가 깃들었다. 다만 항상 웃는 낯인 걸 감안하면, 호수에 돌 하나 던진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다.

"권력은 누군가가 부여하는 거랍니다."

대답 없는 상대를 대신해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 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죠. 단순한 힘이 권력을 부여했던 때도 있고, 언젠가는 거느린 군사력이, 또 언젠가는 신분이 그런 역할을 했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계층이 그것을 정하기 시작했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대중이 통치자를 정하고 권력을 부여하기까지 이르렀죠."

싱긋, 웃는 그녀는 이곳만큼이나 새하얀 색으로 가득했다. 양손에 착용한 장갑부터 총학생회의 제복, 신고 있는 스타킹에 구두까지 온통 하얀색의 의상을 입고 있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전혀 하얗지 않았다.

"후후.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하는 건 잘난 척이나 다름 없겠죠."

카야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또각, 또각, 또각……하는 소리가 고요한 방에 거만하게 울리고, 분홍색 머리카락이 작게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인 마냥 태연히 총학생회장의 의자에 앉았다.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실눈으로 선생을 바라보는 모습이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선생에게는 의자가 조금 크다고 느껴졌다. 그녀의 체구 자체가 작은 탓일지도 모른다. 작은 체형에 백옥 같은 피부의 그녀는 항상 싱글싱글 웃고 있지만, 이면으로는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느낌을 줬다. 어쩌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 오히려 그녀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왕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지금은 통치자에게 목숨을 바치는 시대는 아니죠. 이번의 '협력' 에도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방금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선생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런 걸 협력이라고 부르지는 않을텐데. 카야."

시라누이 카야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책상에 올린 두 손을 손가락 사이사이 깍지를 껴서 맞잡고서 선생을 지긋이 바라봤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협력해주신 거로 보이는 걸요?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하지만……마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라고 어린애 처럼 말하시려는 건가요?"

상냥함에 비례하는 무례를 담아 나긋히 던져지는 말에, 선생은 다물린 입술 안으로 이를 악 물고 주먹을 꽉 쥐며 들끓는 분노를 참았다. 그가 학생에게 진지하게 화가 난 것은, 에덴조약 당시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 때에는 잘못된 방법으로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려는 학생에 대한 훈육의 의지를 내비쳤다면, 이번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순수한 분노에 가까웠다.

"내가 보기에는 네 쪽이 더 어린애 같구나."

그러나 그는 선생답게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카야는 더 말해보라는 듯이 기다렸다.

"권력을 그리 탐해 일을 벌렸으면서, 정작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넣지도 못하고 내 이름을 빌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어른의 도움을 청하는 어린애가 아니겠니."

인질이자 허수아비 신세인데도, 선생은 학생을 계도하고 훈계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잘못된 길을 걷는 학생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은 그의 철칙이었다. 그러나 올곧은 신념을 마주하면서도, 카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일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어른이라고."

이윽고 빙긋, 눈가가 초승달처럼 예쁘게 휘었다.

"저도 선생님이 그럴 수 있도록 돕고 있답니다."

입가에 띄운 미소는 미소보다는 조소에 가까웠다. 만일 카야가 학생이 아니라면 선생은 이성을 잃고 달려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카야는 학생이고, 설령 선생이 자제력이 없었다고 한들 그의 신체능력으로는 헤일로를 가진 이를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다.

"선생님께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인질로 잡아도 소용없다' 라고 하셨지만, 글쎄요. 인질로 잡힌 쪽은 선생이 아니라, 선생님의 학생들이죠."

그녀가 항상 실눈이던 눈을 가느다랗게 뜨자, 기이한 모양의 눈동자가 선생에게로 향했다. 선생은 그녀의 눈을 볼 때마다 이유 모를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 좌절감, 그 외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 가운데에서도 야릇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카야는 그 감정을 느꼈다.

"일이 잘못 되었을 때……잃게 될 것은 키보토스의 평화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잖아요?"

일련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키보토스는 어설프게나마 평화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선생이 카야의 옆에서 얼굴을 비췄기 때문이다. 비록 반강제적이라고는 하지만 카야가 입에 담은 '협력' 이라는 단어가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따라서 선생님을 내세우는 것도, 선생님이라면 이해해주시겠죠?"

"……."

선생은 대꾸하지 않았다. 카야는 선생의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돌려받으려 했다. 의자를 짚고 일어난 그녀가 다시 책상 옆으로 걸었다. 총학생회장실 바닥을 울리는 구두 소리가 선생에게로 다가오다가, 책상 앞에서 멈췄다.

"아까도 말했듯, 선생님의 협력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답니다. 선생님 덕분에 복잡한 일 따위 없이, 모든 것이 잘 해결 되고 있으니까요."

카야와 선생은 제법 키 차이가 났다. 그들의 키는 카야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보다 지금 더 티가 났다. 그러나 카야는 언제까지나 선생을 올려다 볼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도 협력해주실 거라 믿어요. 그렇게 해주시겠죠. 선생님?"

무언을 동의로 받아들이며, 카야는 책상에 엉덩이를 올렸다. 버릇 없는 아이처럼 책상에 앉고도 다소곳이 모은 두 다리가 어딘가 기묘했다.

"우선, 무릎을 꿇어주시겠어요? 제가 키가 작은 편인 거, 아시잖아요?"

탁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선생의 심장을 탐욕스레 꿰뚫었다.

***

"이제야 눈높이가 맞네요."

책상 위에 앉은 카야는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선생을 내려다본다. 선생이 아무리 키가 크다한들, 무릎 꿇은 그의 시선이 카야보다 높을 수는 없었다. 카야는 세련된 동작으로 입을 가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선생님은 내려다보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분이지만요."

선생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감추지 못 한 우월감이 서려 있으나, 선생을 평하는 목소리에서는 얼핏 존경심이 느껴졌다. 카야는 선생님을 초인으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범인(凡人)으로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음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서 더욱 꺾고 싶다.

초인이 무엇인지, 눈 앞의 범인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카야는 욕망을 내비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 자리는. 누군가를 내려다보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리가 아냐."

선생의 경고에도 카야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의 감정이 순간 치솟다가 서서히 가라 앉았다.

"네. 저는 대행일 뿐이니까요?"

시덥잖은 말장난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두 발을 천천히 움직였다. 하얀 스타킹과 구두를 신은 발이 번갈아 앞뒤로 흔들리다가, 오른쪽 발, 선생의 입장에서는 왼손에 가까운 발이 쭈욱 내밀어졌다. 장식이 없는 단정한 모양의 구두가 발가락 끝에 걸려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선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눈 앞에 내밀어진 발에, 정확히는 구두에 쏠렸다. 아슬한 침묵이 흐르고, 항상 올곧은 방향으로 향했던 시선이 서서히 올라가 카야의 시선과 마주하려 할 때, 툭- 하고 구두가 떨어졌다.

"받으셔야죠."

무례한 말을 내뱉은 입은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았다. 이어지는 말은 그걸 재확인하는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랍니다."

차가운 조소를 머금은 입술 위에 검지 손가락 마디가 닿았다.

"방금 학원 하나의 폐쇄를 결정했다고 하면 실감이 가시려나요? 물론 완전한 폐쇄는 쉽지 않겠죠. 1년, 아니, 반년이나 문을 닫게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입을 반쯤 가린 카야는 바닥에 떨어진 구두를 잠깐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구두가 떨어진 코사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반발한 누군가가 불미스러운 사건을 벌일 수도 있죠. 가령……과거 SRT 특수학원이 그랬던 것처럼?"

농담이에요. 농담. 카야는 입을 가린 손대신 발을 까딱였다. 스타킹에 감싸인 발가락이 우아하게 움직이다가 선생을 놀리듯이 움츠러들었다. 어느새 선생은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몸이든 마음이든 조금씩 반응했다.

"아시다시피, 권력이라는 건 그리 대단하지 않답니다. 그래도 누군가의 미래를 조금 빼앗는 정도는 가능하겠죠."

나긋하게 움직이는 발과 달리 담담하게 내뱉는 말에는 섬뜩한 경고가 담겼다. 누구에게는 반 년, 누구한테는 삼 년. 하며 중얼거리던 카야는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허벅지에 얹어서 다리를 꼬았다.

"다시 한 번 여쭙는데, 이번에는 대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허리를 숙여서 팔꿈치를 허벅지에 대고 턱을 괴었다. 스타킹 너머로 아슬히 비치는 다섯 발가락을 움츠리다가 펴기를 세 번, 선생의 코 앞으로 발이 다가왔다. 그리고 발의 주인이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했다.

"구두, 주워서 신겨주시겠어요?"

감추지 못한 치욕스러운 표정을 마주한 카야의 마음은 들끓었다. 들에 피어나는 불과 같이, 그녀의 흥미도 순식간에 치솟아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카야."

"선생님."

비어있는 손이 검지 손가락을 내밀어 선생을 가리켰다가, 발 밑을 가리켰다.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에요."

선생은 떨리는 손으로 구두를 신겼다. 카야는 당연하다는 듯이 발 끝을 꺾었다. 일부러 떨어뜨린 구두가 바닥에 부딪히고는 옆으로 넘어졌다.

"제대로 신겨주셔야죠."

선생은 인내를 발휘해서 조심스럽게 구두를 들어 공손한 자세로 신겼다. 아까보다 반듯하게 신겨진 구두가 재차 바닥에 떨어졌다. 장본인인 카야는 태연히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다시. 정성이 부족하셔요."

카야는 선생의 얼굴을 살폈다. 굴욕감이 어떤 모양새로 자리하는지, 수치심이 어느 방향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는지, 예술품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찬찬히 흝으며 느껴지는 쾌감을 만끽했다.

"다-시."

이번에도 구두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면서 카야는 속으로 숫자를 헤아렸다. 선생이 구두를 신겨주는 횟수가 키보토스에 존재하는 학원의 수와 일치할 즈음에야, 비로소 발을 살며시 내렸다.

"잘했어요."

카야는 턱을 괴었던 손을 내밀어서 손가락을 까딱여 선생을 불렀다. 칭찬의 의미로 머리라도 쓰다듬을 요량이었다.

"개보다는 쓸모가 있네요. 세상에 구두를 신겨주는 개는 없으니까. 칭찬이에요."

선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과되지 않은 말을 내뱉은 카야는 구둣발로 선생의 다리 사이를 갑작스레 짓밟았다. 급소를 짓밟힌 선생의 무거운 숨소리와 동시에, 카야는 발에 닿는 감촉을 선명하게 느꼈다. 기이하다는 단어로는 모자란, 신기한 감각이 발 끝에서부터 올라오며 그녀의 가학심을 자극했다.

"감사 인사를 이런 식으로 하실 줄은 몰랐지만요."

숨기지 마세요. 그런 명령은 안했잖아요. 비웃음을 듬뿍 머금은 명령과 함께 구두 앞코가 단단한 허벅지를 찔렀다. 애써 다리를 벌리는 선생의 셔츠가 벌써부터 식은땀으로 젖어들었다.

"그거, 꺼내세요."

선생은 애써 침묵을 지키려 했지만, 그 말을 듣고도 계속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카야? 지금 뭐라고……."

그러나 말을 꺼내기 무섭게, 카야는 발을 뻗어서 선생의 말문을 막았다.

"아니면……선생님께서 무엇에 욕정을 품었는지, 회견장에서 낱낱히 밝혀 보시겠어요?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선생은 카야의 손 위에서 놀아나는 신세였다. 불썽사납게도.

***

"후후후. 학생 앞에서 이런 걸 보여도 되는 건가요!"

고개 숙인 선생과 달리 그것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몸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지만-그 하나 만으로도 카야에게 비웃음을 사는데 충분했다.

"혹시, 다른 학생에게도 이런 꼴을 보인 적이 있으신가요? 궁금해졌거든요."

비록 그러한 일은 없었지만, 부정하는 말을 내뱉는 것조차 부끄러운 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움츠렸다. 그러자 카야가 발로 질책을 내렸다.

"대답하세요."

"윽……!"

무심한 발짓에 선생은 신음을 삼켰다. 카야의 눈에도 준수한 얼굴은 인상을 찌푸리는 모양새도 잘생겼더랬다. 그녀의 입술이 티나지 않게 삐뚜름해졌다.

"그런 적은 없, 어."

카야의 얼굴에 약간이나마 자리했던 불만은, 선생의 말을 듣자마자 금방 만족감으로 사그라들었다.

"아아, 그러셔야죠. 이런 추태를 보였다가는……선생으로서 면목이 없을 거에요. 후후."

카야는 발을 모아서 선생의 것을 감쌌다. 뾰족한 뒷굽이 금방이라도 다리를 찌를 것 같았지만, 그녀는 세심하게 발을 움직여서 부드러운 자극만 주었다.

"저를 위해 울어 달라는 건 욕심이겠죠?"

위쪽 말고 아래로요. 카야는 재밌는 농담이라도 한 것처럼 키득거렸다.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는 와중에도, 선생은 카야를 훈계하려 했다.

"카야, 이런 짓은, 잘못된 거란다."

"잘못이라……. 선생님. 잘못된 건요."

감정을 실은 발짓이 다리 사이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구두 앞코가 선생의 것을 툭, 건드릴 때마다 선생은 숨을 거칠게 삼켰다. 카야는 그런 선생의 머리 위로 적나라한 매도를 쏟아냈다.

"이렇게나 한심하고 추레한 어른인 당신, 아닌가요? 학생에게 구두를 신겨주면서 아랫도리를 세우는 선생이라니, 저는 상상도 못했답니다."

카야는 일부러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입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어서, 그 의도는 뻔했다.

"역시 회견 자리에 나가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저는 총학생회장 대리의 발로 세우는 한심한 어른입니다'. 라고요. 후후. 한심한 선생님에게는 포상일지도 모르겠네요."

내용에 안 어울리게 활기찬 목소리로 떠들어대던 카야는 몸을 뒤로 기울여서 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선생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못한 감정이 가학심을 더욱 불태우는 원료가 되었다.

"입은 그렇게 꾹 닫고 계시지만."

카야는 두 발을 물장구 치듯 움직이며 선생의 다리 사이를 집요하게 쳐댔다. 자꾸만 시선이 선생의 얼굴과 그것 사이로 번갈아 움직였다. 도무지 내뱉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어서, 그녀는 조롱 섞인 말을 흘리고 만다.

"여기는 자기 주장에 열심인데요."

가여워라. 반쯤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나머지 반은 구두 신은 발을 내미는 동작으로 대신했다. 치마 아래로 각선미를 드러내는 다리가 요염하게 흔들거리고, 뽐내며 움직였다.

"제 구두, 다시 벗겨주실래요? 양쪽 다. 신고 있는 것보다는 벗고 있는 쪽이 낫잖아요. 맞죠?"

카야의 손에 비해 커다란 손이 구두를 잡고서, 아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정성들여 구두를 벗기기 시작했다. 선생은 마치 하인이나 노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선생의 얼굴이 비참하게 굳어버린 반면, 카야의 얼굴은 승리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네에. 그렇게……두 손으로. 귀중한 보물을 다루는 것처럼, 공손하고 소중하게 벗겨내도록 해요."

카야는 구두가 벗겨진 발을 움츠렸다가 폈다. 백옥처럼 새하얀 스타킹 신은 발가락 다섯개가 움직이며 선생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얇은 허리만큼이나 가느다란 종아리가 오히려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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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애써 눈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카야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스타킹의 재봉선이 도드러지는 가지런한 발가락이 선생의 물건을 침범하고, 제멋대로 유린하려 들었다.

"눈 돌리지 마세요. 고개 숙이지도 말고. 총학생회장 대행이 선생님께 하는 '부탁' 이랍니다."

"읏. 카야. 이건……."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해도 떨리는 목소리만은 감추지 못했다. 그 사실이 꽤나 기꺼운 나머지, 카야는 입술을 살짝 핥으며 발 끝으로 그것의 첨단을 툭, 툭, 차댔다. 그 때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그러시나요. 너절한 변명을 더 늘어놓지 않으시고."

카야는 책상을 짚고서 엉덩이를 약간 앞으로 뺐다. 그리고는 선생의 허벅지 위에 발을 디딛었다. 아까부터 이어진 자극 탓인지, 선생은 카야의 몸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렸다. 그러나 도망치지는 못했다. 단순히 카야에게 힘으로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런 관계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도망치지 못하는 선생의 물건을, 카야의 두 발바닥이 감싸쥐었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감촉이 선생에게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자극을 안겼다. 염소의 동공을 닮은 눈동자가 번민하는 선생의 모습을 빠짐없이 담았다.

"이것도 꽤나, 즐겁네요. 이게……좋은가요? 아니면, 이렇게?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라면 더욱 참으실 수 있잖아요?"

하지만 카야는 선생의 그것이 분출하기도 전에 발을 들었다. 번들거리는 우뚝 솟은 끝을, 카야는 엄지 발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하아, 스타킹이 더러워질 뻔했잖아요. 정말 버릇이 없으시네요."

수캐 같으시긴. 카야는 오른손에 낀 장갑의 끝을 물어서 쭈욱, 당겨 벗었다. 그리고는 끝을 잡아서 선생에게 자랑하듯 흔들었다. 선생의 눈이 장갑에 머무른 뒤에, 카야는 보란듯이 그것 위로 장갑을 떨어트렸다.

"알아서 해결하세요."

"윽……."

카야는 선생을 잠식한 절망을, 분노를, 기꺼이 삼켰다. 그리고 욕망도! 하지만 그녀도 기어코 게걸스러운 욕망에 삼켜지고 말았다.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죠."

카야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선생의 얼굴을 또렷히 쳐다봤다. 그녀가 바라던 성취감은 진즉에 달성했는데도, 그녀는 아직도 무언가를 갈망했다. 그를 채워줄 사람이 바로 앞에 있었다.

"욕망도, 분노도, 전부 어딘가에 쏟아버리시면, 되잖아요?"

귓가에서 멀리 떨어진 입술이 지척에 있는 마냥 계속해서 속살거렸다. 선악과를 먹게 유혹하던 뱀과 같으나, 소녀의 입에서 나는 소리는 쉿쉿거리지 않고 달짝지근해서, 선생의 귀에서부터 온 몸으로 파고 들었다.

"후후. 참지 않아도 좋답니다. 참는 건 초인의 역할인 걸요."

카야는 두 팔을 벌렸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빛났다.

"하지만 선생님 같은 범인은, 항상 마음대로……."

***

"아, 으읏. 응. 하으, 하으으……! 더 깊숙히, 네에, 그렇……게. 응읏……! 제법 이잖, 아읏……! 아뇨, 더엇! 욕망을, 읏, 담아서……말해주시겠어요? 기왕이면, 사랑……스럽게엣, 속삭이, 아흐읏……아앙!"

***

자리에 앉은 카야는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서류를 보고 있었다. 목까지 올라오는 칼라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도 흔적을 감추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달뜬 숨결이나 풍기는 분위기는 숨기지 못했다.

두 손에 다 들어오는 마냥 허리 붙들린 감각도, 허벅지를 붙잡던 손길도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문득 선생의 시선을 느낀 카야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는 선생을 올려다보고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어떤가요? 학생과 그런 행위를 하신 기분은?"

숱하게 그래왔듯이, 카야는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다. 카야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금 사각, 사각, 하며 펜대 놀리는 소리가 났다.

고요한 가운데 카야가 무심코 입술을 열었다.

"카이저 PMC가 무슨 짓을 했던 간에, 저는 선생님께 위해를 가하는 건 바라지 않아요. 거기서 얻는 실익도 없고."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말이었지만, 선생이 듣기에도 무언가 변명하는 느낌이 났다. 카야도 그걸 감지했는지, 입을 꾸욱 다물었다가는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렇다고요."

서류를 들여다보는 카야의 귀가 아주 약간, 토마토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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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기괴)카야가 최애인 사람이 있다?

저번주부터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2장 예고가 딱 박히더라구요...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토마토가 악마의 열매로 여겨졌다고 하네요.

읽어주셔서 칸샤,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두 배로 칸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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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3.05.31창작

[소설] 짓궂게도 조금 그렇고 그런 이야기 (카야)

#시라누이 카야#소설
좋아요 0댓글 37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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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DC
붕붕차차작가
게시물 25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3.05.31 09:36
조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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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7

나
ㅇDC
ㅇㅇ23.05.31

야해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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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DC
ㅇㅇ1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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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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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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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5.31
디시콘
ㅇDC
ㅇㅇ223.05.31

역시 발페티쉬는 전설이다... 표현력 넘오조아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5.31
디시콘
ㅇDC
ㅇㅇ323.05.31
디시콘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5.31
디시콘
ㅇDC
ㅇㅇ323.05.31

진자미쳤다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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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DC
ㅇㅇ423.05.31

ㅈㄴ 잘써서 더 꼴받네 쿠데타마렵게

붕DC
붕붕차차작성자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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